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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프루프
에릭 윌슨 지음, 김진선 옮김, 알렉스 켄드릭.스티븐 켄드릭 원작 / 살림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결혼이란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서야 현실을 알았다는 판에 박힌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시간도 꽤 걸렸다. 여기서 캘럽과 캐서린이 걸린 7년 보다는 적지만(글쎄. 나도 그 정도 되었던 것도 같고.) 서로를 이해 못해서 갈등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 책이 결혼 생활에 대한 충고 내지는 반면교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그들의 심리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즉 의사소통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캘럽과 캐서린이 한창 사이가 안 좋을 때의 대화를 보면,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대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 대화를 어떻게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는 기본적인 것이 신앙이었다. 글쎄, 종교를 갖지 않은 나로서는 조금 맥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위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일맥상통하는 면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내게 전달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밖에서는 훌륭한 소방관으로 누구에게나 존경받지만 정작 가장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내에게는 무시당하는 캘럽의 마음을 읽으며 뜨끔했다. 남편이 내게 종종 하던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 남편과는 같은 분야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방면에서는 내가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우월감이 있었던 나였기에 남편이 하는 일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었다. 뻔히 아니까. 그런데 궁극적인 것은 그 일을 알기 때문에 남편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괜한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의 능력을 인정하면 상대적으로 내 능력이 평가절하 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남편의 능력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했다. 물론 남편이 상당히 기뻐했음은 당연한 수순이다. 꼭 그 한 가지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결혼이란 서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을 서로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모가 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과연 주변에서 아무 문제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넘기는 것일 게다. 캐서린과 캘럽이 그랬고, 캘럽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원래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책으로 냈다고 한다. 2008년 미국 최고의 기독교 영화로 선정되었단다. 그런데 비종교인이 보기에 지나치게 종교적인 것들이 있어서 그 부분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다만 보편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충분히 공감했다. 아마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겠다. 나는 단지 캘럽과 캐서린의 생활과 내 생활을 견주는 재미밖에 못 느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