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명성 아래서는 오래 머물기 힘들다.

   大名之下, 難以久居(대명지하, 난이구거)

 

물러날 때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세속의 명예와 부귀에 목을 매다가 씁쓸하고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사람은 역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사마천(司馬遷)사기곳곳에서 잘 물러나라고 충고한다. “성공 밑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된다.”(成功之下, 不可久處), “공을 이루고 나면 용감하게 물러나라.”(功成勇退)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장량(張良)의 사당에는 큰 바위에다 아예 知止”(지지)라고 큼지막하게 새겨 놓았다. ‘멈출 줄 알아라!’는 뜻이다. 인생의 브레이크를 잘 밟으라는 말로 들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노욕(老慾)으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병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든 늙은이들이 헛된 명성과 부귀 그리고 알량한 권력을 끝까지 붙들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이 남의 자리를 빼앗거나 남을 부리거나 남에게 행세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득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멋이 든다는 것이란 광고 문구가 뇌리를 스친다. 멋진 늙은이의 씨가 말랐다.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장량

 

 

 

 

 

 

중국사의 오늘:

1964113

신화사에서 섬서성 남전현 공왕령에서 원인(猿人)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 원인의 두개골을 발견한 이후 처음 발견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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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피면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다.

   察己則可以知人(찰기칙가이지인)

 

이어지는 대목은 지금을 살피면 과거를 알 수 있다”(察今則可以知古)이다. 흔히 과거를 살피면 현재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현재를 살펴 과거를 유추하라고 권한다. 어느 쪽이나 다 필요한 자세이다. 이 두 구절은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살핀 다음 미루어 유추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살핀다는 ’()은 참 속뜻이 깊은 말이다. 겉뿐만 아니라 속도 들여다본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길을 잘 살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듯이, 자신을 잘 살피면 내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 조심하게 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언행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바르게 인식하여 내 언행을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를 미루어 현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언행을 잘 살피면 과거의 모습까지 알아서 지금의 나를 반성하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가 과거의 그림자라면,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빛이다. 그래서 여씨춘추를 지은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가 하나이고, 남과 내가 같을 따름이다”(古今一也, 人與我同耳)라고 말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신대람(愼大覽) 찰금(察今)

 

 

 

 

중국사의 오늘:

1949112

중국 민용항공공사(약칭 민항)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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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재능도 신속함이 중요하다.

   才能成功, 以速爲貴(재능성공, 이속위귀)

 

유자는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의 양나라 유협(劉勰)지었다고 하는 책이다. 이 대목은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충분한 지혜를 가졌더라도 민첩함이 필요하다”(智能決策, 以疾爲奇)는 구절로 이어진다. 다 같은 재능, 비슷한 지혜를 가졌더라도 기회를 제대로 잡아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일을 추진하지 못하면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즉 승부와 성과의 갈림길이 기회와 속도에 있다는 말이다. 재능과 지혜의 운용에서는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중요한 정책을 세워서 그것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는 근본을 버리고 요령만 뒤쫓는 단견(短見)은 절대 금물이다.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는 행동이나 무조건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무소신과 어중간한 태도 또한 피해야 한다. 한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계획을 수립하기가 아주 어렵거나 아예 시행할 수조차 없는 사업이나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업이나 정책의 성격과 정책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명구이기도 하다.

 

유자(劉子) 귀속(貴速)

 

 

 

 

중국사의 오늘:

680111(당 고종 영융 원년 10월 병오)

티베트의 권력자 송찬간포에게 시집갔던 문성공주가 죽었다. 공주는 티베트로 가면서 불교를 가져가 티베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문성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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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을 건너면서 배 안에 있는 사람을 강물에 물어보았네

 

맹호연(孟浩然, 689740)

 

썰물에 강물은 평시대로 흐르건만 바람 일지 않고

조각배로 너와 함께 건너는구나.

때때로 목을 빼어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어느 곳이 월나라의 청산이런가?

 

 

* 맹호연

 

 

 

 

 

 

渡浙江問舟中人

 

潮落江平未有風

扁舟共濟與君同

時時引領望天末

何處靑山是越中

 

 

 

*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출신이다. 맹자(孟子)의 후손으로 자처하며 늦게까지 고향에서 공부에 힘쓰다가 40세 무렵 과거에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장안(長安)에 머무르며 여러 사람과 교류하였지만 뜻을 얻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였다. 만년에 재상 장구령(張九齡)의 부탁으로 잠시 그 밑에서 일한 것 이외에는 관직에 오르지 못한 채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도연명(陶淵明)을 존경하여 고독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한 작품을 남겼다. 일찍이 왕유(王維)의 추천으로 황제 현종(玄宗)을 만나 시를 올렸는데 현명치 못한 주인을 만나 버림받았다는 구절 때문에 현종의 노여움을 사서 모처럼의 벼슬길을 놓쳤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시집 맹호연집(4)에 약 200수가 전한다. 그의 시는 자연으로부터 터득한 진리를 매우 담담한 필치로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무한한 시적 정취를 풍긴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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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고통에 이르면 모든 것을 초월한다.

   艱苦卓絶(간고탁절)

 

소옹(邵雍)은 송나라 때의 이름난 철학가이자 성리학의 대가였다. 어렸을 때는 집안이 가난하여 생활이 팍팍했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책을 읽고 지식을 연마했다. 젊은 소옹은 자신의 큰 뜻을 펼치고 공명을 세우길 강렬하게 희망했다. 그래서 읽지 않은 책이 없었는데, 독서를 시작할 때는 정말이지 지독한 각오로 자신을 채찍질해서. 겨울에는 화로를 피우지 않았고 여름에는 부채를 들지 않았다. 그 뒤 소옹은 자신의 공부에 회의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가 천하를 주유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다시 돌아와 출입을 끊은 채 학문에 정진했다. 관직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휘현 현령으로 있던 이지재(李之才)는 소옹의 이런 엄격한 학문 자세에 감동하여 자신이 평생 패운 하도(河圖), 낙서(洛書), 복희팔괘64를 하나하나 소옹에게 전수했고, 소옹은 자신의 재능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 내며 일체를 초월하는 정신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로 발전했다. ‘간고탁절은 원래 지독한 각오로 자신을 채찍질한다는 뜻의 견고각려’(堅苦刻勵)에서 변화된 성어이며, 뜻은 같다.

 

송사(宋史) 소옹전(邵雍傳)

 

 

 

 

 

중국사의 오늘 :

16441031(청 세조 순치 원년 10월 병진)

청 황실이 공자의 65대손 공윤식(孔允植)을 연성공(衍聖公, 성인의 후손에 대한 존칭)으로 봉하고, 공자 자손에게 5경 박사를 세습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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