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101 Experience de philosophie quotidienne

  부제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작가 - 로제 폴 드르와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하, 일상생활에서 철학가들의 생각을 연결시킨 것이겠구나’였다. 나에게 철학이란, 다른 누군가가 생각하고 정리해놓은 수많은 이론을 다룬 학문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읽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어떻게 적용시키고 떠올릴 수 있는가가 생활에서의 철학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훼이크다, 이 어리석은 인간아!’ 라고 웃으면서 내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아, 첫 장을 펼쳤을 때의 놀라움이란…….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정리한 철학 이론을 풀어놓지 않았다. 대신 우리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준다.

 

  고대에 철학이 시작된 것이 바로 자신과 주변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101가지 다양한 철학 체험은 바로 고대의 철학가들이 고민했던 그 문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내가 속한 이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인가도 고려해보게 한다.

 

  일상에 아주 작은 변화를 가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한다. 익숙한 생활에 약간의 틈이나 균열을 만들어, 익히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종종 가면을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내면의 자신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사물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믿지 말라고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냥 위선과 가식을 던지라고만 한다. 그래서 상대와 세상에 대해 느낀 그대로 말하면,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상대에 대해 배려와 예의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불평불만만 많다고 하기도 하고.

 

  이 책은 혼자서 내면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물의 표면을 살짝 들춰보는 기술도 알려준다. 그 중 몇 개는 재미있게도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해봤을 그런 것들도 있었다. 역할극을 하는 것이 그랬다. 혼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거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상황 내지는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된 것을 상상하는 것 말이다.

 

  어릴 때는 그냥 혼자 심심할 때 하는 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걸로 나와 세상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철학 체험이라고 들고 있다. 오, 난 어릴 때부터 생각의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어! 갑자기 이런 자화자찬의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곧 ‘왜 지금은 유치한 인간이 되어 가는 걸까’라고 한숨의 시간도 뒤따라 왔지만…….

 

  물론 어떤 것은 ‘이러다가 미치는 거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조용한 방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다가 분리가 되는 느낌이 드는 체험이 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심화되면 안 좋은 게 아닐까?

 

  어디선가 거울이 앞에 두고 말을 걸다가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괴담이 떠올랐다. 음, 이 책에서는 거울 얘기는 없었으니까, 그럴 염려는 없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역시 어딘지 시도해보기에는 조금 겁이 났다. 난 의외로 소심하니까.

 

  그런 몇 가지를 빼고는, 심심할 때나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아무데나 책을 펼쳐서 따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굳이 모 노래의 가사처럼 지하철역에서 스트립쇼를 할 필요 없이, 방에서 혼자 여유롭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리는 말에는 스토리가 있다 -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설득 전략
이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부제 -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설득 전략

  작가 - 이서영

 

  편하고 쉽게 책장이 넘어갔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도 쉽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들은 대개 금방금방 읽는 가벼운 내용이 많았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달랐다. 다소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눈에 쏙쏙 들어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아, 이게 바로 저자가 계속 얘기한 스토리텔링 기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을 집중하게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기술.

 

  생각해보면 똑같은 얘기를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지루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서 헤매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같은 사람 주위에는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주위가 북적대고, 후자와 같은 경우에는 ‘넌 되도록 말하지 마라, 듣는 사람 속 터지니까.’라고 권유를 빙자한 상처받는 말을 듣게 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말 잘하는 법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지, 총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 알려주고 있다.

 

  Part Ⅰ 기억에 남는 ‘스토리’는 따로 있다

  Part Ⅱ 상대를 매혹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

  Part Ⅲ 설득력을 높이는 ‘스토리텔링 스피치’

  Part Ⅳ 매력 지수를 높이면 설득력도 높아진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저자가 꼽은 것은 진정성이었다. 자기의 경험을 녹여낸, 마음을 담은 이야기. 그리고 적절한 구조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유까지.

 

  두 번째 파트에서는 어떻게 하면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거나 내가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진심을 담아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상대의 욕구를 자극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로 상대하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저자는 프레젠테이션의 예과 다양한 활용 기법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파트는 직접적으로 상대와 대화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하고 있다. 특히 유머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적절한 제스처와 수사법, 집중력을 높이는 기술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는 외적인 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태도나 복장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음, 이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면접 등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팁 같다.

 

  읽으면서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많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자주 접하는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똑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구에게는 칭찬으로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비아냥거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상대방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텐데, 내가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결론은 상대방을 얼마나 배려하고 마음을 담았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도 그걸 강조하고 있다.

 

  말을 잘하면 사기꾼 기질이 있다고 장난스레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영업을 잘하는 체질이라고도 하고. 그런데 꼭 누군가를 홀리기기 위해 말을 잘 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법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인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리고, 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오해가 줄어들고 다툼이 적어질 것이다.

 

  단순히 면접을 잘 보기 위해, 발표를 잘해서 점수를 잘 따기 위해, 영업을 잘 하기 위해, 글을 잘 쓰기 위해 이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만 읽는다고 갑자기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상대를 파악하고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철저한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고 진심을 보인다는 건 마음의 문제이다. 사람을 마음으로 대한다는 건, 상대를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말이다. 그리고 연습과 준비를 한다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빨리 빨리 조급증에 걸린 현대인은 잊기 쉬운 항목이다.

 

  준비와 마음. 이건 어느 시대에나 상대를 대할 때 통용이 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단어는 아닐까?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서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외 지음, 이병무 옮김 / 다반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작가 - 케빈 베일스, 조 트로드, 알렉스 켄트 윌리엄슨 공저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고 마음이 아파서 책을 두세 번 덮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약한 여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남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노예의 대부분은 여자와 아이들이라고 하니까.


  노예라는 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린 아이들이 멋모르고 하는 주인님과 펫 놀이 또는 노예팅 같은 것을 할 때나 들어볼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예는 근절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였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노예였다.


  맙소사! 이 세상에 아직까지 노예라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조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노예제의 존립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정 무역 제품을 써야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와 닿았다. 그 전까지는 그냥 팔아먹으려는 마케팅의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노예가 생기는 원인을 읽으니, 화도 나고 마음이 아팠다. 돈 때문에, 신분제 때문에, 정치적 상황 때문에, 전쟁 때문에 그리고 제일 황당한 건 종교 때문에! 아니, 진짜 어떻게 종교가! 읽으면서 열불이 났다. 돈 때문에 팔려가고, 부패한 정부가 범죄 조직과 결탁해서 사람들을 팔아넘기거나, 전쟁으로 진 나라의 여자나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까지는 화가 났지만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종교가? 이 대목에서는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여성과 어린 아이들의 성적 착취에 관한 대목에서 역시 두 번째로 책을 덮었다.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범죄 추리 소설이나 외국 드라마나 호러 스릴러 영화에서 종종 다루는 소재였다. 반복되고 우려먹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방송 매체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소설은 판매 부수를 올리려고, 더욱 더 극적으로 과장되게 만들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건 가짜라고, 진짜 그럴 리 없다고, 마음 한편으로 믿고 위안을 얻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의 증언 기록을 읽어보니, 이건 뭐. 소설이나 드라마는 약과였다. 어째서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그토록 무자비하고 난폭하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낙태를 시키겠다며 깨진 맥주병을 여자 몸에 삽입하거나 배를 때리고,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을 유독 가스로 가득 찬 광산의 좁은 갱도로 밀어 넣고,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 일부로 불구로 만들고 말이다.


  그리고 기껏 성노예나 강제 노역에서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선금과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넘어가서 아이를 넘긴 부모의 잘못이고, 그들을 속인 놈들의 잘못인데. 왜 그 고통을 어린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걸까?


  특히 성매매의 대상이었다가 돌아온 여자들이 겪는 2차, 3차 고통에 관한 부분은 한숨만 나왔다. 한국의 강간 피해자들이 겪는 고충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을 여러 남자들 앞에서 얘기해야하고, 너도 좋지 않았냐는 질문이나 받고.


  에이즈 같은 질병에 걸릴 까봐 갈수록 어린 여자아이만 원한다는 남자들의 기록을 읽는 순간, 속으로는 욕이 쉴 새 없이 튀어 나왔다. 내가 아는 욕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외국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가정부나 보모로 데리고 와서,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악덕 고용주에 대한 부분도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같은 인간으로, 같은 여자로, 같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말이다.


  노예제라는 것이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종식되지 않을 것 같다. 공정 무역 제품을 사용하고, 국가에서 노예제를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노예였던 사람들에게 재활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100% 근절될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돈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어쩌면 타인을 대하는 사람의 의식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인간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가능할 것 같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나에게 남을 깔보고 멸시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할 것 같다. 남이 아픈 것은 나도 아픈 일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것이다. 내 쾌락을 위해 남을 괴롭히지 말자. 피부색이 다르다고, 나보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몸이 불편하다고 남을 못살게 굴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덧붙여서, ‘한국,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 캐나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대부분은 상업적인 성적 착취를 위해 인신매매된 여성들이다.’라는 대목에서는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여기의 진보
심보선.장석준.박상훈 외 지음 / 이음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 심보선,장석준,박상훈,홍기빈,이택광,하종강,서동진,엄기호,박경신,홍세화 공저


  총 열 명의 사회 진보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각각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보는 이름은 홍세화씨 한 사람뿐.


  어릴 적에 ‘진보’ 내지는 ‘좌파’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해리 포터’에서 이름을 부를 수 없던 그 사람처럼 말이다. 중학교 때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가 되어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학교 주위로 매캐한 냄새가 종종 바람을 타고 실려 왔고, 거리가 시끌벅적했다. ‘진보’라는 말은 조금 허용이 되었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말은 금기어였다.


  대학교에서 나에게 ‘좌파’라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한 학회실에서, 수업도 듣지 않고 민중가요나 부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들의 모습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난 아마 그 당시 꽤나 잘난 척하는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그런 학회 선배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난 너희와는 달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머리에는 ‘대학생 좌파 = 멋도 모르고 선동당하는 모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허송세월하려고 대학을 온 게 아니라면서 그들을 한심해했다. 변화를 원한다면, 세력을 키워서 집권층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물어본 이런 내 질문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라는 비웃음만 돌아왔을 뿐이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그런 쪽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뉴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진보’란 결국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고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좌파’나 ‘진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왔다 갔다 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카드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진보 = 빨갱이’라는 말이 대뜸 나오는 시대이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이 퍼져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모 사이트 댓글을 보면, 진짜 가관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댓글을 달면 단번에 ‘너 빨갱이지?’라는 답글이 달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저 공식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무지로 빚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 이런 장르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최근에 뉴스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도대체 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떠올랐다.


  쉽게 풀어서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쓸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써도 되지만 그러면 ‘진보’라는 고고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예상한 이 책의 독자층 수준이 높은 것인지 의문이다.


  대학 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대답하던 동기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그건 네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하고, 자기들끼리 민족이니 평등이니 하니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은 접근을 불허하는 그런 느낌. 그러니 ‘진보’가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이건 어쩌면 처음부터 맞지 않는 레벨의 책을 고른 내 책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보’라는 것이 현 상황에 머무르거나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소외받고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하는 계층의 권익 대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진보’는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Fail이다. 그런 사람들은 종이책에서만 볼 수 있나보다, 도도새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람들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난 집과 직장만 다니는 소심한 인간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부제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

  작가 - 구본형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 떠올랐다. 아,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두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특징을 잡아서, 현대에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말하는 점이 비슷했다. 다른 점은 진 시노다 볼린의 책은 여신들만 나왔지만, 이 책은 신화에 나오는 남신, 여신 그리고 인간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헐, 우리에게 다중 인격을 요구하는 건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시 읽어볼까 찾아보니 없다. 아, 애인님에게 선물로 드렸지. 조만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삼천포는 여기까지 가고, 본 책으로 돌아와야겠다.


  이 책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물론 몇몇 경우는 ‘이건 좀 무리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봐서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신화의 현대적 적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현대인들이 무수히 많이 느끼는 감정들을 신화의 인물들에 대입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정도의 제시를 하고 있다.


  즉, 자기 계발서 라고 볼 수 있다.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 이라는 의미라면 계발이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자기 계발이라는 게, 남이 하라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거나 읽고, 공감을 하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1 밀리그램이라도 변화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란, 남이 뭐라고 하면 반발심을 먼저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초반까지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신화와 현대를 논리적으로 잘 연결시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맞아, 그런 법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연상 작용의 기발함에 무릎을 친다. 아,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구나! 특히 ‘크로노스와 시간’, ‘시시포스와 반복적인 일’, ‘니오베와 허영’ 등은 진짜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후반이지만 ‘다이달로스와 사유 불능’도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들면 ‘오디세우스 두 번째 이야기인 교활함’에 관한 것이라든지 ‘안티고네와 불복종’ 그리고 ‘미노스와 추기경과 조소’는 다소 억지스러운 연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건 남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적절한 고전 그림의 삽입과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견해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133쪽 두 번째 문단 다섯 번째 줄의 ‘당시에는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대단한 수치였기 때문에 왕비는 왕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왕비는 여자였고, 그녀가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 것인데 왜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라고 적혔을까?


  차라리 ‘당시에는 남자끼리라도 남에게’로 썼으면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