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를 위한 심리상담
로버트 드 보드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제 - Counselling for Toads

  저자 - 로버트 드 보드



  두꺼비와 두더지, 쥐 그리고 오소리가 나오는 동화가 있었다. 철없는 두꺼비가 신나게 나대는 내용인데, 예전에 읽어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책은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그 모든 모험이 끝난 다음, 주인공이었던 두꺼비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우울증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지난 날 자신이 저질렀던 그 많은 실수를 떠올리면서, 또한 친구들이 자기에게 했던 상처 주는 말들을 기억하며 실의에 빠진 두꺼비 토드. 왜 자기는 이 모양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만 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은 그에게 심리 상담을 받아보길 권유한다. 이 책은 그가 왜가리 헤런에게서 상담을 받으면서 서서히 치유 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상담을 받는 토드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 조금씩 달라졌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고,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내밀어보기로 했다. 언제 그들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변화하고 성장한 것은 토드뿐만이 아니었다. 아마 그가 긍정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원래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물이라니까.


  아, 그래서 부모님이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시는 건가? 그런데 그 친구에게 내가 나쁜 친구라면……. 음, 어려운 문제는 패스하자.


  이 책은 상담 과정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심리학책이 아니라, 상담 책이다. 심리 상담이 어떤 과정으로 어떤 반응과 함께 이루어지면서, 어떻게 상담자와 피상담자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과 이야기의 끝이 어떤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지도 함께.


  하지만 ‘아, 이런 과정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거구나’ 내지는 ‘원인이 뭔지 알아야 해결이 보이는 구나’ 라고 대충 알게만 되었지, 내가 직접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란 말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이고, 남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도 의도를 생각해볼 것이다. 그 당시 상황도 고려하는 건 기본이고.


  책은 어렵지 않고 쉽게 읽혔다. 중간에 몇 가지 이론이 나왔지만, 머리를 싸매고 이게 뭔가 인상을 쓸 필요는 없었다. 또 어떤 말은 너무도 멋있어서, ‘어머, 이건 꼭 외워야 해!’라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한 번만 읽고 책꽂이에 보관하기에는 아까운 책이었다. 힘들고 우울해질 때 꺼내어 읽으면 나름 힐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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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
실뱅 들루베 지음, 문신원 옮김, 니콜라스 베디 그림 / 지식채널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원제 - Pourquoi Faisons-nous Des Choses Stupides Ou Irrationnelles?

  저자 - 실벵 들루베

  그림 - 니콜라스 베디



  일본 만화 ‘데스 노트’에 나오는 사신 류크는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을 지켜보다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참 재미있어.’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인간은 참 재미있어.’와 ‘에이, 설마. 난 안 그럴걸?’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책에 나온 상황을 접한다면,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라 생각한다. 불행히도인지 다행스럽게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행동, 그 중에서 황당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 12개를 골라 그에 얽힌 실험이나 사례를 얘기하고 있다. 또한 관련 영화나 TV 드라마도 간략하게 소개를 해준다. 그래서 ‘아, 이게 그 얘기구나.’라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중에는 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보지 못한 것들은 나중에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1.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까?

  2. 무엇이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가?

  3. 유언비어는 어떻게 널리 퍼지는가?

  4. 틀린 줄 알면서도 왜 다수의 의견에 따를까?

  5. 우리’와 ‘그들’은 언제 하나가 될까?

  6. 왜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까?

  7. 무엇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가?

  8. 완벽해 보이는 그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

  9. 그들은 왜 피해자를 외면했을까?

  10. 왜 사람들은 권력에 쉽게 눈이 머는 걸까?

  11. 이타심은 타고나는 것일까?

  12. 무엇이 진정 군중을 움직이는가?


  문득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 역시 심리학계에서 행한 실험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상황에 대한 실험과 사례를 다루고 있고,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실험과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삽화가 있는데, 참으로 귀엽고 깜찍한 그림체이다.


  책을 다 읽고, 사람은 결국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러니까 로빈슨 크루소같이 섬에서 혼자 살아가는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혼자 살아가는 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주관을 갖고 내 의지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의미이다.


  무슨 행동을 하든지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곁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행동을 취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고, 때로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고…….


  요즘은 ‘착하게 행동하면 호구 내지는 호갱으로 본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뒤이어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과 ‘아는 게 힘이다’는 옛 말도 생각났다.


  저런 사실을 몰랐다면,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마냥 헤헤거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의도가 어떠한 것인지,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아닌지 따질 필요 없이 말이다. 하지만 저런 걸 알면 어느 정도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주관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


  아, 그런데 그 주관적인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라는 보장은 어디 있을까? 갑자기 예전부터 생각해온 난제가 생각난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되었을 때 혼자 살아남으려고 도망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같이 좀비가 되는 게 더 편할까?


  이 책에서 공감을 한 대목은 공격적 성향에 대한 연구였다. 공격적 행동에 처벌을 받는 걸 본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자제하려고 했고,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보상을 받는 걸 본 아이들은 곧바로 따라했다. 단지 게임이나 랩 가사로 어린애들이 폭력적이 되는 게 아니었다.


  요즘처럼 약자에 대한 온갖 폭력이 흘러넘치게 된 것은, 가해자는 떵떵거리고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이상한 풍조는, 예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처벌이 약해서 애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온갖 범죄를 저질러도 줄만 잘 서면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사회 구조가 범죄를 조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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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부제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저자 - 한승태



  르포르타주 - 사건이나 인물을 탐방하여 현장감을 살리며 제작하는 보고 형식 프로그램. ‘르포’로 줄여 쓰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識見)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과 관련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의 부제와 위에 검색한 용어의 뜻을 보는 순간, 앞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상상할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존재할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그리고 어쩌다가 살짝 실상을 엿보게 되었을 때는 애써 외면하고 모른척하고 싶었던 그런 일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저자가 겪은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저자는 여섯 개의 일을 했던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꽃게잡이,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 그리고 자동차 부품 공장.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하고 있다. 어차피 이 사회라는 것이 나 혼자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도 무형이건 유형이건 뭔가를 생산하고, 누군가 그런 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낸 뭔가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고 말이다.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면서 살아가는데 사회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공존공생을 하는데, 모든 일이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한만큼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한 사회지만, 정작 제대로 챙기는 사람은 없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정당하고 공정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고용주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나에겐, 고용주들의 그런 행태가 정당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꽃게잡이는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열악한 작업 환경 아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편의점과 주유소는 서비스업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주유소 쓰레기통을 자기 집 전용 쓰레기장으로 아는 무개념 고객들의 진상 짓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돼지 농장과 자동차 부품 공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권위주의에 집착하는 간부들의 이중적인 태도도 곁들였다.


  비닐하우스는 그나마 고용주가 다른 일자리에 비해 양심은 있어보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책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청년이었다.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사회를 풍자하는 자조적인 비아냥거림도 날릴 줄 알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반항도 해본다.


  주유소에서 집안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고객에게 반격을 날린 것은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 껄끄러우면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맛있는 빵을 먹었는데, 그 안에 벌레 반쪽이 들어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꾹 참고 일할 수 없는 것이다.


  막말로 저자는 그딴 식으로 행동을 하고 그곳을 그만두면 땡이다. 하지만 사장은? 비록 일은 힘들고 대우는 형편없고 진상 고객이 줄지어 있더라도, 사장은 그게 그의 유일한 밥줄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또 어떻고? 그가 저지른 일 뒷수습을 하기위해 얼마나 머리를 조아려야했을까?


  어쩌면 사장이나 직원들과 사이가 좋았다면, 주인공이 그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에게 그곳이 유일한 밥줄이 아니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런 직장을 택한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목메고 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남이 날 배려해주지 않는데, 내가 굳이 그런 남까지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착하고 선한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요즘은 사람이 선량하고 기본을 지키려고 하면 호구로 보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내가 싫다고 남의 밥그릇에 재를 뿌리는 짓은 안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 배가 부르면 종의 배고픔을 살피지 않는다(我腹旣飽 不察奴飢)는 말도 생각났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 편의를 위한 쪽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하거나 들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없는 일로 여기거나 외면하려고 한다. 누군가 앞에 나서서 어떤 일에 대해 부당함을 역설하면 동조하지만, 곧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고백하자면 나도 그러하다. 가능하면 대세를 따라서, 유일한 밥줄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다. 나도 남보다 내가 더 소중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남을 짓밟고, 남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을 정도로 우위에 있거나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권리도 중요하고 남의 권리도 중요하다. 내 목숨이 중요하면 남의 목숨도 중요하고 말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책의 제목은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이 뭐가 있겠는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이지. 저자는 어쩌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답게 살 조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왜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까? 음, 그런데 저 표현은 좀 이상하다. 인간 이하의 대접이라니, 그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데 기본 원칙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런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걸까? 그러면 인간은 뭘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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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 몽테뉴의 12가지 고민들
솔 프램튼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제 - When I Am Playing with My Cat, How Do I Know That She Is Not Playing with Me?

  부제 -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 몽테뉴의 12가지 고민들

  저자 - 솔 프램튼



  제목이 무척이나 길어서, 처음에는 어떤 책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 대한 얘기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가 부제를 보고는 ‘헉!’하고 놀랐다. 몽테뉴라니……설마 그 서양 철학가? 혹시라도 막 이해 못할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책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웬걸? 너무도 재미있고, 몽테뉴라는 사람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한 아저씨의 일기가 책 속에 펼쳐져 있었다. 다만 그 아저씨가 전직 법관에, 전직 시장에 성을 가진 영주라는 게 많이 다를 뿐이다.


  내가 나를 썼다는 부제의 말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기록을 했다는 뜻이리라. 한국어는 참 어렵다. 16세기,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는 격변기이고 질병과 전쟁으로 요동치는 세상에서 지인과 가족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해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감정을 쓴 글은 몽테뉴가 처음이라는 뜻이라 해석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몽테뉴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병이 시달리면서 때로는 나약하고 또 어떨 때는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섹스에 대해서 읽을 때는 ‘남자란…….’하면서 피식 웃음도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충실하게 일기를 적었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책으로까지 내놓았다.


  물론 그럴 경우에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빼고, 좋은 쪽으로만 편집을 했을 수도 있다. 나 같으면 그럴 것이다, 아마.


  그런데 이 사람, 그렇게 안 한 것 같다. 대놓고 그 당시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자국은 물론 타국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평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제들까지도 그의 예리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 아무리 가톨릭이 욕을 먹는다고 해도, 여전히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신부와 사제인데!


  이런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며 확실한 소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득 그는 자존감이 무척이나 높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정, 죽음 , 회의, 동물, 전쟁, 여행, 고통, 섹스, 관계, 취향, 유년 그리고 자아에 이르기까지, 몽테뉴는 솔직하게 느낀 바를 쓴 것 같았다. 거기에 저자의 자세한 설명과 나름대로의 추측이 적절하게 곁들어져 있었다.


  그가 마침내 평생을 믿어온 스토아학파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장인 ‘자아’를 읽으면서, 경험과 생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때로는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하고, 깊은 사고를 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동물이다.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하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전에는 그냥 옛날에 살다가 죽은 사람의 글로만 여겼던 몽테뉴의 ‘에세’를 찬찬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 전에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평생을 치열하게 싸우고 충실히 살다간 한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


  -인생은 그 자체가 목표이자 목적이다. 죽음은 분명히 끝이지만,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죽음은 마 지막이고 한계이지만, 목적은 아니다, p. 311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실질적으로 신성한 삶의 경지이다. 자기 자신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아 밖에서 떠도는 것이다. p.322


  ps. 문득 몽테뉴는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영향력 있는 파워블로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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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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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저자 - 이덕일



  지금까지는 대개 왕에 관한 책이 많았다. 왕들이 갖춰야할 덕목이나 그들이 공부하던 제왕학같은 것을 정치 경제 교육에 연관시킨 내용들이었다. 그런 책을 보면서, ‘왜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다 왕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아! 그래서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나왔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모두가 다 왕을 외칠 때, 난 대세를 따르지 않겠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그런 책은 멀리했다. 추리 소설이 아니라서 안 읽은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왕이 아닌, 왕을 만든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흔히 ‘킹메이커’라 불리는 자들에 대한 얘기다. 가능하면 외래어를 안 쓰고 싶지만, 이게 더 단어가 짧다. 그들이 어떤 사람을 왕으로 점찍고, 어떤 방법으로 그를 즉위시키는 데 노력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보필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킹메이커들이 가져야할 덕목과 피해야 할 행위를 열한 개 골라서, 그에 맞는 역사적 인물을 예로 들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왕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했기에 그가 왕이 되었다는 말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몇 명 보였다. 김춘추라든지 주몽이 그런 예이다.


  저자가 선택한 열한가지 코드는 다음과 같다. 1번 어젠다부터 9번 실력까지는 덕목이고, 10번과 맹목과 11번 역린은 피해야 할 것들이다.


  1 어젠다_비주류, 주류사회를 바꾸다: 김유신

  2 헌신_충심으로 고려를 세우다: 신숭겸·배현경·복지겸·홍유

  3 시야_내부의 지분 대신 더 넓은 곳을 바라보다: 소서노

  4 사상_생각의 힘으로 세상을 뒤집다: 정도전

  5 시운_평생 할 말 다 하면서 고종명하다: 황희

  6 정책_보통의 군주 아래 삶의 변화를 이끌다: 김육

  7 기상_전통을 지키려다 쿠데타를 맞다: 천추태후

  8 악역_나라를 위해 희생할 운명을 받아들이다: 강홍립

  9 실력_성실과 기술로 한양도성을 쌓다: 박자청

  10 맹목_목적 잃은 권력을 탐하다: 인수대비

  11 역린_참모는 참모일 뿐, 선을 넘지 않는다: 홍국영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없었다. 한두 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생각이 나는데, 덕목 아홉 가지를 다 갖췄다거나 피해야할 두 가지를 극복한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 勿爲牛後)’라는 말이 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듯이 모두가 다 남보다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고 무조건 자기가 윗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 앞에 서면, 누군가는 중간에 서야하고 또 누군가는 뒤에 서야 한다. 이제는 앞에 나서서 큰소리치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현명하게 조언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건 경제건 사회 어느 한 구석 그런 사람들이 불필요한 분야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다들 앞에 서기 바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적은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가족을 팔아 권력을 쥐어봤자, 좋을 건 없다. 그런 권력이 천년만년 지속될 리가 없으니까. 그건 인수대비의 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홍국영도 마찬가지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목표를 확실히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그것을 이룬 다음에도 흐트러지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비딱하고 나쁘게 보자면, 분수를 알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머물러있으라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일인자가 될 능력이 없다면, 괜히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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