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제학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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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Economics of Happiness

  부제 - 경쟁과 양극화를 넘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저자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제목만 보고는 행복에 관한 책이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표지도 분위기 있게 꽃이 그려진 것이, 아기자기한 작지만 소소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거라 추측하게 했다. 또한 띠지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저자의 외모는 그런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줬다.


  하지만 그 예상은 목록을 보는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내 추측은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던 옛 선인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저자의 말투는 겉으로는 미소처럼 온화했지만 그 내용은 무자비했고 단호했다. 처음에는 편하게 바닥에 엎드려서 읽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누님!” 이런 분위기?


  저자의 주장은 간단했다. 세계화라는 허명에 속지 말자. 미디어에 속지 말자. 외제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기업의 말빨과 광고에 속지 말자.


  저자는 세계화보다는 지역화를 주장한다. 세계화라는 것이 전 세계가 평화롭고 똑같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IMF나 WTO같은 국제기구가 사실은 몇몇 강대국, 특히 미국과 대기업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개발도상국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고 폭로한다. 오직 소수를 위해 전 세계의 부가 움직인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지금 외국계 대형 마트와 동네 재래시장 간의 다툼이 몇 년째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똑같은 외국계 대형 마트가 세 개나 들어올 필요가 없는데, 굳이 그 회사는 진출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이 추위에 장외 투쟁까지 벌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외국계 매형 마트보다는 지역 경제에 발전이 되는 것은 동네 재래시장이라 말한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결국 그 동네 주민들이지만, 마트 직원들은 안 그럴 경우가 있으니까. 모 개그맨이 외치는 것처럼 ‘누구를 위한 마트란 말입니까!’라고 묻고 싶다. 새로 지은 아파트 주민을 위해서 재래시장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해도 좋은지 말이다.


  저런 일은 우리 동네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면서, 세계화라는 말이 얼마나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인지 입증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한다.


  책을 읽다보니, 전에 접한 ‘욕망하는 냉장고’가 떠올랐다. 거기서 ‘푸드 마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한 식품이 재배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오기까지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 거리가 길수록 신선도는 떨어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비슷한 개념이 나온다. 저자는 그것을 지역화의 한 예로 들고 있다.


  지역화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문화 교육 세계관 등의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의 미를 최고라고 여기는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자국의 개성과 미를 잃어버린다고 주장한다. 또한 특정 국가에서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교육을, 두루 통용되는 전반적인 공부를 하는 동안 놓칠 수 있다고 외친다.


  책을 읽으며, ‘세상 참 무섭구나.’라고 생각했다.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화도 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책에 적은 것들이 다 저자의 오버이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고…….


  문득 예전 광고가 떠올랐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그리고 명언이 생각났다.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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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 사월의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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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ogitamus

  부제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저자 - 브뤼노 라투르



  저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유명한 석학이고 ‘21세기의 헤겔’이라고 불린다는데, 고백하자면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나중에 내 후손들은 이 사람의 이론을 외우느라 윤리나 도덕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 이해를 못하겠어!’하고 절규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칸트나 플라톤의 이론을 외우느라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생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가 한 대학생에게 보내는 총 여섯 개의 편지로 이루어져있다.


  첫 번째 편지 -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두 번째 편지 - 과학기술의 미궁 속으로

  세 번째 편지 - 이것은 왜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네 번째 편지 - 과학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기

  다섯 번째 편지 - 무엇을 할 것인가?

  여섯 번째 편지 - 과학인문학이 그리는 하이브리드 세계


  교수님이 보내는 편지라니! 그것도 시사문제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편지라니, 받는 학생의 기분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수님에게서 받은 편지라고는 성적표밖에 없었기에, 속으로 매우 두근거렸을 것 같다. 어쩌면 죽 나열된 용어와 설명 때문에 교수님 너무하다고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일인 지도를 받는다고 감격했을지도. 그래도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신문 기사 스크랩도 열심히 하는 걸 보니, 꽤나 열성적인 학생인 것 같다.


  저자의 책, 아니 여섯 통의 편지를 다 읽으니 ‘그러니까 이 사람은 문과와 이과가 서로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상호보완을 하면서 지구촌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처음 느낀 것은 첫 번째 편지에서였다. 저자는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왕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서, 로마의 공격을 물리치는 위업을 이뤘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에서 나온 개코 원숭이 얘기에서 확신했다. 저자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과학 기술 없는 인문학은 원숭이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조금 놀라웠다. 그렇구나, 그래서 도구를 다루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온 거구나. 다른 동물도 도구를 다루지만, 그것을 발전시켜 문명을 이룬 건 인간뿐이니 과학 기술은 인간의 생활에서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거였구나.


  그러다가 의문이 생겼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그 사실은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히 과학과 인문이 같이 발전을 해야 하는 거잖아. 그 둘의 관계는 2인 3각 같은 거잖아. 한쪽이 너무 앞서면 넘어지는 건 당연한데?


  어쩌면 그런 사실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 저자가 강조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서 또 얘기하는 걸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한다.’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원제를 ‘Cogitamus ergo sumus'에서 따온 것이리라.


  그나저나 대중 교양서라고 하는데, 어느 대중을 위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집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몰라서 덮어뒀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진도가 나갔지만, 역시 중간까지 읽고 살포시 책장에 꽂아뒀다. 세 번째가 되어야 겨우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저자의 용어 해석이라든지 용어 선택이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름대로 쉽게 풀이하고 간단한 어휘를 선택한 것 같기는 한데, 남이 만든 그만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 100%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내 머리에 좀 더 많은 지식을 저장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한 다음,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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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화
도미니크 볼통 지음, 김주노 옮김 / 살림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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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Autre Mondialisation

  저자 - 도미니크 볼통



  요즘 다문화 가정에 대한 홍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이라든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이름아래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거부 반응도 만만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자국민에 대한 보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서 외국인에 대한 특혜만 늘이는 정책에 대한 비판과 재한외국인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규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과연 세계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호갱님이 되는 것이 세계화인지 아니면 우리가 펼치고 있는 정책이 이상한 것인지 궁금했다.


  이 책의 앞부분을 보면, 초판일이 2004년이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한국어판을 내면서, 5장 한국에 대한 부분과 최근에 일어난 아랍의 봄과 같은 일련의 사태들을 6장에 첨가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고,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물론 ‘이건 좀…….’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었다.


  저자는 세계화란 서구화도 아니고 미국화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서구, 특히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에게 정보를 준다거나 그들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라 언급한다. 기술이나 자식의 전달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 부분에서는 공감했다. 기술이나 지식의 전수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우위에 있는 쪽이 아직 모르는 상대에게 알려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세계화는 문화의 세계화이다. 문화란 한 국가 내지는 민족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생활 습관을 아우르는 것이니, 어느 문화가 우위고 어느 문화가 하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거나 국력이 강한 나라 중심으로 세계화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여러 가지 부작용과 반발이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란의 예를 들고 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설득하려는 상대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의 주장이나 방법만 우기다가 피를 본 경우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친구사이도 그렇고, 연애하는 커플 내지는 결혼하는 연인들, 그리고 사업적인 관계까지. 이렇듯이 개인끼리의 관계도 대화가 필요한 법인데, 하물며 국가대 국가의 사이에 우격다짐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무조건 자신들의 주장과 입장을 우기며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벌어진 엄청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샘물 교회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건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설득하려면, 무조건 우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내 자신을 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대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저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서구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해 설명을 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문제에 대한 대안까지 서술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오오,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팔랑 귀라는 걸 감안해야한다.


  책에서는 정부와 언론의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세계화란 개인이 벌이는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자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정책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대로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언론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하는 언론은 그닥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관광을 타국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긴다. 외국인에게 자국을 알릴 수 있고, 개인이 외국에 대해 낯선 경험과 동시에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해진 코스대로 맛집을 돌아다니고, 여행사와 연계된 면세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몇몇 건물이나 박물관을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보는 관광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을 느낄 수 있는 관광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음, 치안이 좋아야 할 것이다. 외국인이 안심하고 타국을 돌아다니려면 말이다. 또한 외국어도 어느 정도 해야 할 테고. 그래서 저자는 영어 중심의 교육을 거부한다. 뜨끔했다.


  아쉬운 점은 저자는 세계화의 일반론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충돌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만약에 양쪽의 문화가 한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에 대한 처우가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명예 살인이, 과연 그들만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기본권 차원에서 없애야 하는 것인지 그는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지엽적인 문제라 언급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론을 얘기하고 있으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한다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뭔가 빠졌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여간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세계화라는 것이 무조건 남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동시에 남의 것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뒤쳐진다는 그래서 자신의 것을 빼앗긴다는 공포심만 줄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곳에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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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클래식 - 물리학의 원전을 순례하다
이종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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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물리학의 원전을 순례하다.

  저자 - 이종필



  이 책처럼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까하고 약간 걱정이 되었다.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할 수 있는 논문 열편이라니. 난 과학, 특히 물리를 포기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인데.


  그러다가 머리말에 ‘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라는 문장과 뒤표지 추천인의 ‘사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물리학이나 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라는 문장에 ‘오오-’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어라? 이건 내 예상하고 다른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3장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장 방정식’부분에서는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저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외계어의 향연이었다.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셋으로 음성 채팅을 하던 애인님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난 즉시 그 페이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전송을 했다. 잠시 후, 헤드셋 너머에서 ‘으으…….’하는 신음 소리와 ‘왜 나를 괴롭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공식이나 이론에 대한 설명 부분을 넘기고 그냥 읽다보면, 또 흥미진진했다. 하나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더욱 더 발전시키기도 하고, 또 반대되는 이론을 확립해서 그것을 증명하고, 그러면 또 누군가 그것을 발전시키면서 응용하고. 이런 식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뭐라고 해야 할까, 뚝심 있어 보이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하루 이틀에 나오는 것이 아니니, 중간에 마음이 흔들리고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믿고 꾸준히 연구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의 기쁨은 또 얼마나 클까? 창조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겼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신의 영역에 한발 내딛었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를 그들이 믿는다면 말이다.


  물리학자들은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고 본문에 나오는데,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공식들은 단순하다기보다는 복잡하고, 고도의 계산력과 엄청난 생각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장 방정식’은 단 4쪽짜리이고, 바딘과 브래튼의 ‘트랜지스터, 3극 반도체’ 논문이 1쪽을 약간 넘는다는 부분에서, 진짜로 단순한 걸 좋아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기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 공식을 이해하는 건 논문을 읽는 사람의 몫일 테고, 자신은 과정과 결과만 적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니니까,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해시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알아먹으면 물리학자이고 아니면 일반인? 내가 학창 시절에 물리를 왜 포기했는지 새삼 이해가 갔다. 난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물리학 논문들이라고 하지만, 반 정도는 우주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하긴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도 별을 보는 걸로 시작을 했었지.


  그리고 20세기 물리학의 시작은 아인슈타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의 상대성 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면 빅뱅 이론과 팽창하는 우주 이론이 나왔고, 물질의 내부에 대입하면 핵에 대한 연구가 나왔으니 말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팽창하는 우주 이론에 대해서는 ‘혐오스럽다.’고 말했다니, 조금 놀랐다. 이건 흡사 인터넷에 올린 내 사진이 다양한 포샵 처리를 통해 짤방으로 유포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대로 변형시키지 마, 이놈들아!’라고 느끼는 감정과 아주 조금은 비슷할까? 하지만 팽창하는 우주는 현대에서는 정설이 되고 있으니, 음.


  책을 읽다가, 다른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들어봤던 이름이 나오면 참으로 반가웠다. 예를 들면 슈뢰딩거라든지 파인만이라든지 허블이라든지.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아는 게 나왔다는 그런 편안함? 특히 ‘이휘소’라는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오오’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그 분에 대한 일화를 읽으니, 국내에서 너무 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참고 문헌에서 ‘위키피디아’라는 이름을 보고는 감동을 받았다. 나와는 다른 존재로 여겨지는 물리학자도 나와 같은 사이트를 보고 있다는 동질감? 외계언어를 써서 외계인인줄 알았던 물리학자도 역시 인간이었다는 안도감? 하여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한 권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다니. 책, 도대체 너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었다. 그만큼 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사람에게 좌절감과 동시에 학구열을 불타오르게 하고 희로애락을 맛보게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논문의 이론 부분에 대한 설명이 과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저자와 추천을 한 교수님이 물리학자라서 쉽게 보였을 뿐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데 어렵게 느껴질 리가 없다. 이건 그들에게 낚인 거다.


하지만 공식을 건너뛰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집념과 탐구 정신, 도전 의식, 끈기, 의지, 집중력 등등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이란, 앞으로 나아가려는 도전과 그 성취의 반복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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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 세계 자원전쟁의 승자 중국의 위협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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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자원전쟁의 승자 중국의 위협

  저자 - 담비사 모요



  책은 표지부터 위압적이다. 하얀 바탕에 붉게 휘날리는 중국 국기, 그리고 검은색 띠지에는 ‘승자독식’이라고 크게 적혀있다. 내용을 읽지 않아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중국이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건 예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중국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다. 저 나라가 지금은 문이 닫혀있지만, 열리는 순간 세계를 뒤흔들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건 현실화가 되고 있다.


  중학교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아이들보다 많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렇다. 뭐라고 확실히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땅덩이에 걸맞은 수많은 인구, 엄청난 판매 시장이자 제조 시장, 자원의 공급처.


  이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지상에서 형성된 자본을 가지고 중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읽다보면, 중국이 이라크나 북한을 제치고 ‘악의 축’ 정상에 등극할 것 같다. 그들은 철없는 중2병 허세에 찌든 아이가 자해공갈을 하고 있는 느낌이고, 중국은 뒤에서 조용히 남몰래 모든 일을 지휘하고 수행하는 어둠의 흑막 같은 분위기다.


  어쩌면 이 저자는 중국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상도도 없는 무지막지한 나라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표와 그림들은, 과대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도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느 나라건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미국은 군사적 공격까지 했는데, 자기 나라에 없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당하게 돈을 주고 타국에서 구매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속된 말로 내 돈으로 내가 산다는데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왜 난리냐고 중국이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 강국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빈국에 접근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 나라에는 더 이익이 되는 조건들이니, 당연히 그들은 중국과 교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도가 없다고 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그건 당신 생각이지.’ 라고 넘기거나, 음모론을 좋아한다고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 읽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싸울 상대가 줄어드니까, 중국을 새로운 대전 상대로 고른 건가? 이런 상상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어 보인다.


  국내에서 모 기업이 문어발도 모자라서 지네발 사업 확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저러다가 모든 산업과 상업이 저들 손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XX 공화국이 되어버리겠네. 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에 대한 불안감도 슬쩍 든다.


  그것과 비슷한 이치다. 외국의 자원을 엄청난 자본으로 독점하려는 그들의 구매력을 보면, 우리도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이러다가 물도 광석도 석유도 다 중국이 가져가는 거 아냐? 나중에 다 중국에게 굽실거리면서 ‘중국님, 광석 조금만 굽실굽실. 님이 짱이심.’ 이런 미래가 그려질 수 있다.


  미래세계를 다룬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다국적 대기업이 정부를 쥐고 흔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극심한 차이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그려지기도 한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도 엄브렐라 사가 전 세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다 백인이었다. 하지만 꼭 그들이 백인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영화나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그들이 중국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책을 저자의 과대망상이나 음모론에서 나온 내용이라고 그냥 웃고 넘길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이 손 놓고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조치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그걸 책에 적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해줄까? 아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뭔가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뭔가 대책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0%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안 일어난다는 보장도 0%가 아니니까. 비 온다는 확률이 20%만 되어도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데, 하물며 이런 일에서 대비를 안 한다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아마 우리 정부도 대책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중국을 ‘짱깨’라고 비하하면서 얕잡아보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아, 저런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물론 존재한다. 뭐, 한중일 삼국은 서로를 비하하면서 지내니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편집으로 만들어진 사진이나 글을 보면서, 중국은 땅덩어리만 크지 국민성이 저질이라서 뭘 해도 안 된다고,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낮추어보면 안 된다. 상대를 욕하려면, 확실히 알고 욕해야 할 테니까. 어설프게 욕하면 자신의 얄팍한 지식이나 논리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상님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거기에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맞받아치지 말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공부하자.


  사실 제목을 이어 첫 문장에 '6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라는 개드립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1초는 깁니다.'라는 것까지. 하지만 그럴 분위기의 글이 아니라 패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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