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좋은 사람의 기준


며칠 전, 몸의 한 쪽에서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처음 타는 것이라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요금을 묻는 나에게 운전기사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그러고는 버스요금을 말해 주었다.


그 활기찬 목소리는 친절함이 담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난 그때 내게 병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근심스런 생각으로 병원에 가는 길이어서 마음이 회색빛이었다. 그런데 운전기사의 그 인사말에 마음이 훨씬 밝아짐을 느꼈다. 그 한 마디에 기분이 확 바뀐 나 자신에게 우선 놀랐고, 그 한 마디의 위력에도 놀랐다. 그 작은 친절이 우울하던 타인의 기분을 환하게 변화시키는 게 경이로웠다. 친절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생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가져야 할 미덕은 ‘배려’가 아닐까 한다.


만약 그때 버스기사가 요금을 묻는 나에게 버스요금도 모르냐고 하면서 짜증 섞인 말로 불친절하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근심하던 내 마음은 더 어두워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 운전기사가 참 고마웠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렸을 적, 집으로 가는 길에 헤매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는데, 내게 매우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어떤 사람을 보고 혹시 나를 도와주기 위해 하늘에서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절한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어린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누구에겐가 천사의 역할을 해 본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까. 때로는 사랑을 받는 일보다 사랑을 하는 일이 더 즐겁듯이, 선물을 받기보다 선물을 주는 것이 더 즐겁듯이, 천사를 만나는 일보다 직접 천사가 되어 보는 일이 더 즐거운 일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자기 기분에 빠져 남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엔 이기심이 있으며, 아무리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엔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잔인하게 강도질을 한 남자가 그의 애인에게만큼은 착한 남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건 없다. 남을 괴롭히며 사는 사람도 그의 어머니 앞에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알고 보면 착하다, 라는 말이 있으리라.


그래서 좋은 사람의 기준을 생각할 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기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과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는 게 맞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들인데, 타인을 얼마나 배려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은 남의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 식당에서 자기네 애들이 떠들어도 주의를 주지 않는 사람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먼 타인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산다는 게 더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없이 상처 받을 말을 쉽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늘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의 불행이 반으로 줄지도 모른다. 사람들로 인해 겪는 불행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밌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 보고에 따르면, 가난할수록 다른 사람의 느낌을 더 잘 알아본다고 한다. 더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남을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부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 감정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조선일보, 윤희영의 News English에서 인용함).” 이에 따르면 부자로만 산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남을 배려할 확률이 높다.

 

다음의 명언들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임을 알게 한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관심을 가지면 사람은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법이다(J. 신들러).”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이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다(R. 번스).”





다음의 명언들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왜나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자신에게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이다(파스칼).”


“남을 때린 자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플라톤).”


“가장 큰 쾌락은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이다(라 브뤼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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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 글에 명언을 많이 넣었다. 명언을 많이 알고 있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명언 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 위인들의 명언이 수록된 책들을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 본다. 아무 데나 펴서 마음이 끌리는 낱말에 대해 살펴보는 게 재밌다. 가령 행복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성공에 대해서, 질투에 대해서, 어떤 말들의 명언들이 있는지 읽어보는 것은 흥미롭다.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것은 <주제별로 엮은 좋은말 사전>이란 오래된 책인데, 자주 펼쳐 보았더니 제본된 부분이 뜯어졌다. 그래서 사용하기 불편하여 새 책을 산 것이 <세계의 명언 1>과 <세계의 명언 2>라는 책이다. 꽤 두꺼운 만큼 아주 많은 명언 ․ 격언 ․ 속담들을 만날 수 있으며, 낱말이 가나다순으로 배열되어 있어 보기 편하다.


 




 

 

 

 

 

 

명언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두꺼운 책을 가지면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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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2011-05-1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좋은 사람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정도일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1-05-15 21:3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왔군요. 매우 반가움.
늘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한다는 것,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요.
그런데 옹달샘님은 제가 보기에 좋은 사람 같음.ㅋ
 

<생활칼럼> 선의의 거짓말



적적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 거의 매일 친정에 들른다. 그러다가 내가 몸이 아파 가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 최근 감기몸살을 앓을 때도 그랬다. 우리 집과 친정은 걸어서 십오 분쯤 걸리는 거리인데 아픈 몸으로 찬바람을 쐬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나를 보면 금세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눈치를 채시므로 친정에 가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아시면 큰 걱정을 하셔서다. 이럴 때 내가 하는 거짓말은,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감기가 들어서 오늘은 가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그러면 친정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 내게 갖다 주러 오신다. 그러고는 체중이 빠진 것 같다면서 마음의 그늘을 가지신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젠 거짓말을 하는 요령이 생긴 것이다. 이럴 때 거짓말은 친정어머니와 나, 두 사람 다 편하게 만든다.


우리 대부분은 진실해야 옳은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진실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상대방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낫다고 여겨질 때 거짓말을 할 것이다.

만약 늘 진실해야만 한다면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게 될 듯싶다. 그래서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친구가 옷을 새로 사 입고 나와서 “이 옷 어떠니?”라고 묻는데, 느껴지는 대로 솔직하게 말한답시고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해 준다면 그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둘의 관계는 좋은 친구관계가 유지될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연히 어느 커피숍에서 친한 친구의 남편이 어떤 여자와 만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연인관계였다. 이 때 이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해 줘야 할까, 말까. 어떤 것이 그 친구를 위하는 일이 될까. 만약 그 얘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친구는 남편에게 속고 사는 바보가 되고 말 것이며 더 불행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남편이 비밀리에 연애를 하다가 언젠가는 연인관계를 정리할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굳이 진실을 말해서 그 친구를 불행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또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가 있는데, 동생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가 충격과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이 사실을 숨겨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이것은 마이클 샌델 저,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내가 어머니라고 가정하고 어떤 답을 원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고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할 것이다. 그 선택에 따라 결정이 다를 것이다. 이럴 때 나라면 고통스런 진실보다 고통을 없애주는 거짓을 택할 것 같다. 사람이 진실해야 함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게 해 주는 경우라면 거짓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실이 꼭 필요한 경우는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본 경우가 아닐까. 가령 어느 축구 시합에서 누군가가 반칙을 했고 그 반칙을 공개하지 않으면 상대편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그런 경우에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또 죽어가는 암 환자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 의사나 가족이 말해 줘야 하는 이유는 그 진실이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에 따른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된 장 발장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은 미리엘 신부였다. 그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신부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장 발장은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서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경관들에게 잡혀 성당으로 끌려온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한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때 장 발장에 대해 화를 낼 줄 알았던 미리엘 신부는 다음과 같은 뜻밖의 말을 한다.





“오, 수고들 많소. 그런데 장 발장이 아니시오? 당신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져가시라고 드린 물건 가운데 은그릇만 가져가셨기에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가셨는지 궁금했습니다.” - 빅토르 위고 저, <레 미제라블> 중에서.



        

 

그러면서 신부는 벽난로 위에서 은촛대 두 개를 가지고 오더니 장 발장에게 내밀었다. 장 발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떨결에 은촛대를 받았다. 이 일에 감동한 장 발장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다.


미리엘 신부가 거짓말을 했던 것은 장 발장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 그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은 장 발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거짓말이 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 때 미리엘 신부의 거짓말을 떠올린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는데, 거짓말도 잘하면 처세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다. 어느 누구에게든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해로운 진실보다 이로운 거짓말이 나으며, 악의의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 누구든 미리엘 신부를 ‘진실성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거짓말을 해도 되는 조건은 그처럼 ‘진실성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의 거짓말인 경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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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살다보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모를 때가 있다. 이 때 옳게 판단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올바른 판단력을 얻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고 독서가 필요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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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3-2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째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기 조심하시길...

옹달샘 2011-05-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을 위한 거짓말보다는 나를 위한 거짓말을 더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페크pek0501 2011-05-15 21:34   좋아요 0 | URL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 사는 것,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울 거예요. ㅋ
 


<생활칼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며칠 전,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전화통화로 친구와 다투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전화가 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하면서 밤 열한 시가 넘도록 통화가 계속되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자야 할 시간이니 그만 자라고 했을 텐데,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를 보니 자기 나름대로 심각한 것 같아 편히 잠들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 두기로 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건 내가 오해한 것 같아”, “미안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서로 화해가 되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들어 보았더니,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어른도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 오해가 생겨 서로 섭섭한 일이 많은데, 어른에 비해 미성숙한 중학생들에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기분을 알 수 없으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기분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잠자리가 되어 보아야 하고, 개미가 되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을 알려면 타인과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봐야 하므로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일지 모른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고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


어느 지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고인의 부모가 문상객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사십대에 암으로 죽은 지인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고, 그래서 큰 슬픔에 잠겨 있을 그 부모님을 어떻게 뵈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갔던 곳이라 그 부모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상상으론 자식의 죽음 앞에 부모가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삶의 의욕을 잃은 침울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방인’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식당에서 태연히 점심을 먹는다. 또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서 살인의 동기에 대하여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말한다. 찌는 듯한 더위와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느껴서 말한 것이다. 이런 뫼르소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마침내 뫼르소에겐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 저, 이방인, p126, 책세상>




검사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는 해수욕을 해서는 안 되고, (이성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며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눠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해서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우린 모든 인간을, 모든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의 역사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며 생활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나와 아주 다른 타인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제로, 한 가지 잣대로 누군가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또는 도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해 우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땐 ‘사람은 각기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이해하길 포기해야 하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인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가 말했듯이 ‘경험은 생각의 산물이고 생각은 행동의 산물’이라고 볼 때, 타인의 경험을 똑같이 공유할 수 없기에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나처럼 살아보지 않고서는 누구든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뫼르소. 그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어딘가 뫼르소와 닮은 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를 비난하는 대신 ‘뫼르소’ 같은 사람인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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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저,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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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 방법이 중요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젊어진 것 같단 인사를 했더니, 그분이 기분 나쁜 표정을 보여 당황한 적이 있다. 나는 젊어 보인다며 기분 좋게 해주려 했는데, 그 선배는 ‘내가 그만큼 늙었다는 말이냐’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말 한 마디로 낭패를 보았다.


‘예뻐졌네’하는 말도 듣기 따라서는 ‘예전엔 예쁘지 않았다’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을 잘 가려서 해야 될 듯싶다. 말을 건넨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말의 뜻을 오해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지만, 우린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만큼이나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어느 날, 우리 집 우편함에 어떤 봉지가 들어 있어서 꺼내 보았다. 거기엔 글씨가 씌어 있었는데, 아파트 주변에 쥐들이 많으니 이 쥐약을 곳곳에 뿌려 놓아 쥐들을 잡자는 내용이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동네를 위한 일이므로 그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봉지를 들고 그 약을 어디에 뿌리는 것이냐고 묻기 위해 경비원 아저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비원 아저씨가 내가 들고 있는 쥐약 봉지를 보더니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쥐약을 함부로 뿌리는 사람 때문에 어제 개 한 마리가 죽었다면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길에 쥐약을 뿌리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란 걸 난 왜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다. 좋은 이웃이 되려다가 나쁜 이웃이 될 뻔한 내 마음을 그 아저씨는 알 턱이 없을 게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도 ‘방법’이 중요하다.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 사랑하던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장자 저, <장자> 중에서.


어떤 어머니는 자식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들을 또는 딸을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을 만들어 버려서 주위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호의에도 사랑에도 중요한 건 그것을 나타내는 좋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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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할 뿐, 불이 전해지면 그 불은 꺼짐을 모릅니다. - <장자> 163쪽, 현암사.


당신은 호랑이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죽일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도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찢을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호랑이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리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살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 <장자> 202쪽, 현암사.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 <장자> 368쪽, 현암사.


저에게 누군가가 좋은 책을 열 권만 뽑으라면 서슴지 않고 그 중 한 권으로 장자가 쓴 <장자>를 뽑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장자>의 글을 많이 인용하기도 하였는데, 앞으로도 인용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장자>에는 깊은 의미를 가진, 생각할 거리의 글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글도 많기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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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저, <장자>를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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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은 글이군요. 꼭 장자라는 책을 사볼래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페크pek0501 2010-05-20 18:49   좋아요 0 | URL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지리진 2010-08-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억.. 선생님~ 장자였어요?? 전 왜 노자를 샀을까요?? ㅠ.ㅠ
선생님께서 가장 권해주고 싶다던 철학서... ㅠㅠㅠ 초간 노자 양방웅 도서출판 예경 구입해버렸어요~ 헐. 그리고!! 남교수님 책 샀답니다~ 항상 끼고 다니면서 읽을 거에요!! 추천해주신 책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벼락같이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바보같이 답답할만큼 꽉 막혔었다는 생각이요!ㅜ 편협하고 생각이 좁았단 사실을요..ㅜㅜ 하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주에 선생님께서 하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과 이해에 대한 말씀들... 그 땐 무슨 도덕관과 상식 따위를 생각하면서 "이해 절대 불가"란 신념을 꼿꼿이 세웠는데... 이 세상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나나 내 친구들에게 어쩌면 사고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을 가져야 겠어! 란 생각이 불현듯 든 거에요!! 그런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생각과 관심 어쩌면 제가 좁쌀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이해와 공감 등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고, 문화 경제 정치에 대한 이해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페크pek0501 2010-08-12 12:45   좋아요 0 | URL
ㅋ 전 장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노자입니다. 두 권 다 좋아요.
공자나 맹자에 비해 좋던데,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진님의 댓글에 답글을 쓰다가 글이 길어져서 아예 페이퍼에 글을 올렸어요.
단상(9)<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글입니다. 보시길...

진지리진 2010-08-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그동안 드러나는 뭔가에 대해 다소 가식적일 정도로 그럴 듯해 보이거나 괜찮아 보이면 되겠지했는데, 그보다는 인간 그 자체(자연스러움과 본성 등등)에 대한 이해...도 아니겠죠~ 제 수준에선, 뭐랄까~ 그 자체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이고 안목적 매커니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교수님 칼럼에서처럼... 어쩌면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에서조차 권선징악 사필귀정 류의 도덕적 국수 자락을 뽑아 지성을 배불리거나, 내 상식에선이란 서두로 운운하는 제 뇌의 오만한 식성과 착각어린 상상적 비만에 대해 재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겠어요!!
요즘...무더위에 태풍까지... 이사 준비로 바쁘실텐데~ 더구나 손가락 마비 마법에 걸리는 논문 쓰는 와중에도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쌤께!!^^

페크pek0501 2010-08-12 12:46   좋아요 0 | URL
진님처럼 젊은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저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ㅋ

진주 2012-10-3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슬플까요..

페크pek0501 2012-11-01 21: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왜 슬프실까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주 2012-11-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죄송해요 그때의 마음만 담아두고 갔네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의 부분을 읽고
저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저를 모르면서 막말하는 인간들이 생각이 났어요.
저는 그들을 존중해줬지만 돌아오는건 상처뿐이더군요.. 물론 이야기를 해주어도 못알아듣는 인간들 때문에 속상했어요. 제 후배들과 옆사람들도 같은 피해를 보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게 사람을 대하니 참 그들이 이젠 짜증나고 싫어요

페크pek0501 2012-11-16 20:30   좋아요 0 | URL
의사소통, 이것 참 어렵지요.
죄송할 것까진 없습니다. 오히려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던 걸요.
오래전에 쓴 글인데, 저도 님 덕분에 다시 읽어 봤답니다.
날짜를 보니까 2년도 더 된 글이네요.
오래전의 글도 읽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생활칼럼>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번에 큰딸이 ‘수능’이라 일컫는 대입 시험을 봤다. 그리고 수시모집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믿었기에 나의 실망은 컸다. 아이는 거의 매일,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장 독서실로 가서 공부하여 밤 열두 시 넘어 집에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간식을 주고 말벗을 해 주고 새벽 한 시가 되어야 잘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고등학생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삼 년 동안 했던 뒷바라지였다. 그런데 불합격이라니, 그 결과 앞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내가 삼 년간 새벽 한 시에 자고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새벽밥을 먹인 결과가 불합격이란 말이지.”


이에 대해 아이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엄마보고 그냥 자라고 했잖아.”


사실 아이의 말이 맞다. 아이는 간식만 식탁에 챙겨 놓고 먼저 자라고 내게 여러 번 말했었다. 그 말을 듣지 않은 건 나였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힘들까 봐 학교와 학원을 자동차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아이가 밤새 공부하면 옆에서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어서, 이 정도의 뒷바라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해 주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야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던, 나 스스로의 선택인 셈이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밤에 편히 잘 만큼 내 신경은 무디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자식으로 인해 수면 부족을 견디며 지낸 것을 대단한 희생으로 착각했었나 보다.


사실 나는 내 생활로 바빠 아이 공부에 마음을 크게 써 주지 못했다. 그저 밤잠을 적게 잔 것 빼고는 특별히 뒷바라지한 게 없다. 그런데도 아이의 낙방에 서운함과 허탈함을 느꼈으니 나보다 더한 어머니들은 어땠을까, 헤아려진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삶의 대표적인 경우가 ‘기러기 아빠’의 삶이 아닐까 한다. 그 아내도 힘든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나는 ‘기러기 아빠’의 사연을 들을 적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가 부모가 바라는 대로 성공의 길을 걷게 되면 모를까, 만약 아이가 부모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그 부모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부모가 “너 하나 외국에서 공부시키겠다고 우리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도 감수했는데, 결과가 이게 뭐니?”라고 말했을 때 그 자식이, “누가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떨어져 살라고 했어요?”라고 한다면….


희생은 부모 자식 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있다. 어느 부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가 알뜰하래?”


부부 이야기 하나. 남편은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내는 알뜰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백화점 쇼핑을 갔다. 남편은 자신의 옷과 선글라스를 값비싼 것으로 샀고 아내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부부는 싸움이 났다.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은 이러했다. “난 그렇게 알뜰하게 사는데, 당신은 꼭 그렇게 비싼 물건을 사야 돼?” 이에 대해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비싼 물건 사지 그랬어?” 그리고 이어진 말은, “누가 알뜰하래? 당신이 알뜰해서 하나도 고맙지 않아, 오히려 그래서 피곤해.”였다. 아내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 달라고 했어?”


부부 이야기 둘. 마흔 살이 다 되어 뒤늦게 늦둥이를 낳은 아내의 사연 또한 이와 비슷하였다. 딸 둘을 낳고 세 번째로 낳은 자식이 그동안 열망하던 아들이었는데, 남편은 아이의 기저귀조차 갈아주지 않았고 아이를 좀 봐 달라고 하면 고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따졌다. “난 당신이 아들이 없어서 허전할까 봐 힘든 걸 감수하고 아들을 낳았어. 난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당신은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 없잖아.” 이에 대해 남편은, “누가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 달라고 했어? 괜히 낳아서 아이의 울음소리에 밤잠도 못 자게 하잖아.”라고 응수했다. 아내는 할 말을 잃었다.


알뜰한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알뜰히 살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고 여겼어야 옳았다. 늦둥이를 낳은 아내 역시,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 주고 싶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늦둥이를 낳았다고 여겼어야 옳았다. 그래야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기러기 아빠의 가정이 생겨난 것도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다. ‘자식 때문에’라기보다는 ‘외국에서 조기 유학을 하는 자식을 두고 싶어서’, ‘외국 유학으로 남들보다 월등히 사회적 성공을 거둘 자식을 두고 싶어서’, 그런 욕심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그래야 자식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넋두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부모 자식 간 좋은 관계가 되기 어렵다. 그런 부모에 대해 자식이 부담스럽게 생각할 게 뻔하고 어쩌면 짜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되면 그 대상을 원망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든지 그것은 타자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보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도스토예프스키(소설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이 행복을 불행으로 맞바꾸지 않으려면, 그 결과에 실망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탓을 상대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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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수시모집에서 낙방한 아이는 결국 정시모집에선 합격하여 자신이 원하는 학교, 자신이 원하는 학과의 대학생이 되었다. 내 생활로 바빠 밤잠을 적게 잔 것 빼고는 엄마로서 마음을 크게 써 주지 못했는데도, 대학에 무난히 합격해 큰 기쁨을 안겨 준 딸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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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10-03-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보다 연배가 꽤나 있으시군요. 저는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비슷해서 제 또래인 줄 알았습니다. ^^;; 따님께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ㅎ

님의 글또한 라캉이 이야기한 '욕망의 주체'란 주제로 환원될 수 있을 듯 보이네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저런 자잘한 충돌이 생긴 듯. 라캉이 말했듯 인간이 어릴 땐 엄마란 존재의 눈치를 보며 살고 커서도 그러한 종속 관계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삶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기에 결국 제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좇으며 산다는 뭐 그런 말.
지나치게 환원론적이 말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대부분 사안은 지극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잔가지인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ㅎ

페크pek0501 2010-03-07 00: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기서 거기인 얘기, 그런 경우가 많죠. 책을 읽다보면 같은 내용의 글을 저자마다 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말이 생각나죠.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은 없다. 그저 새로운 방식이 있을 뿐이다.' - 내용은 같은데 표현방식만 다르다는...

젊은 친구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사실 전 바밤바님이 최근까지 여자인 줄 알았답니다. ㅋㅋ 그런데 님의 글 중에 '누나'라는 낱말을 쓰길래 알았어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읽고 적게 쓰자'주의거든요.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