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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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年年歲歲)

파묘(破墓)
하고 싶은 말
무명(無名)
다가오는 것들

황정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는
한세진, 한영진, 이순일, 세 모녀가 화자가 되어
사람 사이에 완벽한 공감과 이해는 어려우며
가족일지라도 각자의 입장과 느낌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가족이지만 어떤 말로 인해 상처도 받고,
결국 하지 못할 말도 있으며
언짢고 불편한 것도 많다.
그러나 또한 가족이기에
남들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서로 해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
그게 궁금한 적이 있었고 실은 지금도 궁금하다.

‘작가의 말‘ 에서 작가는 이렇게 질문한다.

처음엔 가족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연년세세‘ 를 읽어 갈수록
구절구절마다 나자신과 내가 아는 사람들의 삶이 겹쳐져
그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소설은 그저 배경이 되었다.
신산스럽고 위태로운 각자의 삶속에서
연년세세되는것은 다 다르고
그것이 관계속에서 이해되기도 하고 비난받기도 한다.
억지스럽고 불필요한 것들이라도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본시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쁘게 행동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것이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완벽하고 절대적인 관계는 없다.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하려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나의 친구 K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늙어 병들고 치매를 앓으시는 노모를 혼자 모시고 있다.
어머니는 거동을 못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계신다.
음식을 해서(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정성스러운) 그것을
믹서기로 갈아 어머니에게 떠먹인다.
하루에 음식을 떠먹이는 일이 무려 4시간이나 걸린다,
K의 나머지 가족들은 거의 어머니를 돌보지 않고
한번씩 K가 불만을 터뜨려야 조금 돈을 보내준다.
밤에도 몇 번 잠에서 깨어 누워있는 어머니의
자세를 바꾸어준다.
그런 K에게 내가 너무 고생한다, 힘들겠다, 라고 말하면
K는
힘들지만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가 살아온 일생을 돌아보면
˝당신은 나에게 충분히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고 한다.
K의 말에 울컥했고
나는 그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다가오는 것들‘ 은 이 책에 실린 4번째 작품이기도 하고
동명의 프랑스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해 짤막하게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궁금해져 영화를 봤다.
프랑스 영화답게, 사람답게
주인공 나탈리는 그야말로 쿨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철학교사인 그녀는
성실하고 화도 잘내지 않는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가도
나탈리가 집필한 책이 더이상 수익을 낼것같지 않아
출판사가 포기할 때도,
자신을 따르던 제자, 파비앵에게 가치관에 대해
비판받을 때도 그녀는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한번씩 혼자서 꺼이꺼이 우는 정도이다.
그저 바쁘게 걸으며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을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나를 생각했다.

황정은의 문장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천천히 음미하듯 읽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이 조금은 평범했지만 나에게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함과 의미를
주어서 좋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ㅡ 뒷표지에~~

[밑줄긋기 ]

누나가 수고했다, 수고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누나, 너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지는 마.
그런 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히지는 않았다.ㅡp43~44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 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ㅡp70

망실된 그들의 이름은 이순일의 삶이 끝날 때 비로소 완전한 망(亡)이 될 것이다.이순일이 그 문서를 닫은 사람이었다. 이순일은 거기 적힌 이름들이 겪은 일을 누구에게도 넘길 생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로든 기록으로든 사람은 무언가를 세상에 남길 수 있고, 남기는데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그것을 내가 다시 생각하며 말해야 하는가. 이순일은 아이들이, 한영진과 한세진과 한만수가 그 일을 이야기로도 겪지 않기를 바랐다 ㅡ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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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5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멋져요. 연하남이랑 연애도 하고 ㅋㅋ셔츠 니트 늘어진거 걸쳐도 멋짐 . 가족이든 타인이든 완벽하고 절대적인 관계는 없다.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하려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동감합니다

페넬로페 2020-12-15 22:39   좋아요 1 | URL
네, 그냥 아무거나 걸치는데 멋지더라구요~~
주인공이 철학교사인데 책을 많이 보거든요^^
그것도 멋지고~~
저 위의 영화포스터는 한국에서 상영할때의 포스터인데 연년세세에서 비판을 해요^^
나탈리와 파비앵이 사제지간인데 연애는 하지 않거든요**

서니데이 2020-12-23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제 서재에서 소소한 이벤트를 합니다.
시간되시면 구경오세요.^^

scott 2020-12-23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하여 트리나무 한그루 심어드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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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Merry..........:+☆+:............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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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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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페넬로페 2020-12-23 23:55   좋아요 1 | URL
와! 너무 감사합니다^^
scott님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맞이하게 되었어요**

페크pek0501 2020-12-23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페넬로페 2020-12-24 00: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
건강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서니데이 2020-12-25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되세요.^^

페넬로페 2020-12-25 18: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서니데이님**
 

요즘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하루가 터무니없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또다른 하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잠에서 깨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직선으로 그냥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하루의 오후에는 가슴이 텅 비고 나를 둘러싼 공기에 주눅들고  허무해져 울어버리고 싶어진다. 연암 박지원이 끝없이 넓게 펼쳐진 요동벌판을 지나며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 이라며 그곳이 훌륭한 울음터라고 했듯이 한번씩 나에게도 통곡할 울음터가 필요하다.

 

 지난 가을엔 책은 많이 읽었는데 거의 정리를 하지 못했다. 시간은 가고 기억은 사라져 가서 안타까웠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정신이 좀 돌아와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 이 해가 가고 있고 내년엔 또 새 책을 읽어야 하기에 어서 내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두 문장가는 우리들에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광활한 우주의 한 점 초록별에 사는 지구인들에게, 벌써 망해버린 명나라의 유령들을 여전히 붙잡고 살아가는 답답한 이들에게 편협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합리적인 곳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코스모스중에서, p386

 

오랑캐라고 하는 청나라는 중국의 제도에서 이익이 될 만하고 오래 향유할 만한 것들을 가로채 가지고는 마치 본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양한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열하일기 상 중에서, p240~241

 

연암 박지원과 칼 세이건은 같은 것을 다르고 다양하게 말하고 있다.

 

엮은이 고미숙은 '열하일기는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흔해 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 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 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 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 의 장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열하일기』를 통해 아주 낯설고 새로운 여행의 배치를 만나게 된다.'

고 했듯이 우리는 사람, 환경, 우주 모두를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 듯 하다.

 

 

 

 

 

 

 

 

 

 

 

 

 

 

 

 

 

 

 

한 번씩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해질 것이고 결국 나 혼자서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생각만으로도 암담하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들과 쉼표와 마침표의 문장부호만으로 서술되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나의 상상으로 예상되는 눈멂의 세계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해준다. 실명은 눈을 뜬 채 행해지는 온갖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경고이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을 실명을 통해 보게 하고 일깨우려는 것 같다.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명은 또 이런 것,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p294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여기에 이 지도를 세우기 위해, 운명이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는 운명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p330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인간이 겪는 비극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위의 4작품은 개인의 욕망과 욕심, 잘못된 판단. 질투로 인해 끝이 불행하다. 과실, 성격적 결함, 단순한 판단 착오나 실수라는 뜻의 '하마르티아' 로 인해 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한다. 그것이 자기자신 한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아고와 멕베스 부인과 같은 주위의 사람때문에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이 작품들을 읽어 갈 때 이미 우리는 주인공들이 앞으로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단지 나약하고 본성에 따르는 인간일 뿐인지라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많은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은 딸들이 배반한다는 것을 리어왕은 인정하지 못했고, 당신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땐 이미 멕베스는 왕이 된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사랑에 빠져버렸기에 안토니는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극이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중에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을 감상하며 배우들은 앞날을 모르는 것 처럼 연기하지만 관객들은 어느정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며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내가 똑같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나역시 비극적인 삶을 살거라는 공포를 느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상황에 막닥뜨린다면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는(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소극적 긍정을 하며 주인공들이 마치 나인양 불쌍해진다.

 

내일과 또 내일과, 내일과 또 내일이

이렇게 쩨쩨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든 지난날은 죽음 향한 바보들의

흙 되는 길 밝혀 줬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

-멕베스, 5막 5장, p459

 

 

 

 

 

 

 

 

 

 

 

 

 

 

 

 

 

 

 

 

'햄릿' 이라는 인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전에 읽었던 '아이스퀼로스 비극' 중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에서 오레스테스는 그의 모친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가 부친 아가멤논을 죽였음을 알 때 아무 망설임없이 복수를 감행한다. 그에 비해 햄릿은 망설이고 고뇌한다. 오레스테스와 다르게 햄릿은 르네상스의 인물이기 때문일까?

 

복수를 하는 자는 이유가 있고,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복수의 서사' 는 '고통의 등가교환' 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서사이며 거의 실현 불가능한 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실패하는가가 그 성패에 달려있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억울하게 죽어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을 위해 햄릿은 아들로써 뭔가를 해야 한다. 당연히 아버지를 위해 어서 나서야 하겠지만 햄릿은 자신의. 자신만의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햄릿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거의 죽게된다. 우유부단한 햄릿이다. 그러나 그 망설임속에 있는 이유와 슬픔을 알기에 우리는 햄릿을 이해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 속에 존재가 있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햄릿, 3막 1장. p94~95

 

'To be, or not to be.'

햄릿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이 문장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또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 여러가지로 번역되는데 내 생각엔 햄릿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나름 둘 다 맞는 것 같다.

 

 

 

 

 

 

 

 

 

 

 

 

 

 

 

 

 

 

 

 

 

 

직접 읽지 않아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고귀하고 애절한 사랑의 대명사가 아닌가.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냥 덤덤히 책을 읽었다. 그 덤덤함의 이유는 뭘까.

 

캐플렛가의 딸인 줄리엣은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 상대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대놓고 말한다.

 

뭐 뭐, 어쨌다고? 말을 돌려! 이게 뭐지?

"반갑다." "고맙다" 하다가 "고맙잖다."

게다가 "반갑잖다?" 버릇없는 것 같으니.

고맙다 반갑다 다 집어치우고

그 잘난 몸이나 추슬러 이번 주 목요일에

성 베드로 성당으로 파리스와 함께 가.

안 그러면 틀에 묶어 내가 끌고 가겠다.

나가, 누렇게 썩을 년아! 나가, 이 못난 것아!

허연 상판하고는! -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p113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지배하는 시절에 자유연애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리비아 핫세' 로 연상되는 나의 줄리엣이 아버지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을 쓸 때 '약강 오보격 무운시' 라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모든 운문 형식 가운데 이 '약강 오보격 무운시' 가 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가장 가까우며 셰익스피어가 그 대표적인 사용자이다라고 〈민음사판〉의 번역자는 말한다. 그래서 번역자도 그 형식으로 번역을 했다고 하셨는데 우리말이 영어와는 달라서인지 책을 읽는데 사실 많이 불편했다. 역자의 노력은 가상하나 앞 뒤가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데도 많은 것 같아 유감이다.

 

〈열린 책들〉 판은 그러한 형식에 완전히 얽매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기는 민음사판보다 좀 쉬웠다. 그러나 너무 산문적인 느낌이 강해서 아쉬웠다.

 

 

 

 

그 밖에 읽은 책들.....

 

 

 

 

 

 

 

 

 

 

 

 

 

 

 

 

 

 

 

 

 

 

 

 

 

 

 

 

 

 

 

 

그리고

 

 

 

 

 

 

 

 

 

 

 

 

 

 

 

 

 

 

 

 

박상영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사랑에 관한 얘기인데 그 대상이 동성이다. 여자사람친구 재희와 엄마도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그냥 즐기려고 만나기도 한다.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어 그 사람을 만나야 하고, 진짜 사랑하는데 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이성을 사랑하든 동성을 사랑하든 사랑이란 비슷비슷한 유형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p169

 

반짝,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감히 규호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p248

 

그래,그래 맞는 말이다. 어쩌면 그 절절한 사랑들은 한여름밤의 꿈들일지도 모른다. 훼방꾼 큐피드의 화살에 맞아 휘청거리며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국엔 만신창이가 된 자기자신만 남는다.  

 

사랑의 정체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부모들은 그 현상을 인정하기 보다 병으로 여기고 치료되기를 원한다. '대도시의 사랑법' 의 주인공 영의 엄마도 그랬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영은 상처를 받고 엄마와 소원해지지만 그 엄마는 암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이기에 영은 엄마를 돌본다.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있잖아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내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테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 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아마도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영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 역시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와 똑같이 외동딸을 두고 있는 어떤 분이 소설. '딸에 대하여' 를 읽고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대상이 누구든 딸과 함께 있어 준다면  내가 가고 없을 때 홀로 남겨질 딸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러면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도시의 사랑법' 엔 올림픽 공원이 자주 나온다. 우리집에서 산책길을 따라 45분쯤 가면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는 지라 좀 반가웠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올해는 자주 올림픽 공원까지 걸어갔다. 걷다보니 걷는 것의 매력에 푹 빠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갔다.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면 생수나 커피를 사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곳의 벤치에 않아 그저 멍하니 있다 온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벤치에 않아 영을 생각하기도 했다. 무서운 병에 걸려버린 영!

내내 영이 한 말이 걸린다. 영이 좀 편안히 잘 살면 좋겠다.

 

지난 시절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열심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미간에 짙은 주름을 짓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호흡만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P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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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셨는데요!!!!! 더구나 제가 오래 벼르던 [코스모스]!! 저도 책을 받았으니 조만간 따라서 읽을게요~~!!^^

페넬로페 2020-12-13 16:59   좋아요 1 | URL
이번에 읽은 책들은 워낙에 유명한 책들이라 글쓰기가 조심스러웠어요 ㅎㅎ
코스모스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읽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유튜브에 칼 세이건이 만든 영상도 있는데 옛날거라 좀 그렇더라구요^^

scott 2020-12-13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페이퍼 한글자 한글자 음미하면서 읽어야할 구절이 많네요 연암박지원에 책을 제외하고 코스모스부터 셰익스피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2020년에 제가 읽었던 책들의 흔적과 똑같네요 지금은 이덕무 산문과 도끼선생에 죽음의 집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마무리짓지 못하는 2020년이네요

페넬로페 2020-12-13 20:04   좋아요 2 | URL
scott님과 읽었던 책이 겹치는게 많아서 영광입니다^^
2021년도엔 어떤 책들을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파이버 2020-12-13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최근에서야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영이 엄마한테 느끼는 감정도 이해가고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도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가을 동안 다독하셨네요! 이제 연말에 읽은 책들 페이퍼를 기다리겠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3 20:30   좋아요 2 | URL
네, 저도 파이버님과 같은 생각이었어요~~
영과 그의 엄마의 입장이 둘 다 이해되더라구요^^

모모 2020-12-14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그동안 글소식이 뜸하여 바쁘신가 아님 슬럼프이신가 했는데...역시나 였네요! 좋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4 23:03   좋아요 2 | URL
조금 바빴고 많이 슬럼프였습니다~~
모모님!
안부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조심 하세요**

scott 2021-01-09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어제보다 덜춥다고 해도 밖은 꽁꽁
건강 잘챙기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09 11: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아직 몰랐어요^^
살며시 얼굴에 미소 한모금!
기분 좋네요**

초딩 2021-01-0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추카드려요~~~!!!

페넬로페 2021-01-09 11:53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서재에 오셔서 축하해 주셔서요^^
 

외출했다 돌아온 딸아이가 나에게 책을 두 권 내밀었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엄마에게 책선물 하고 싶어서 사왔다고 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을 받아 놀랐고 기뻤다.
그런데 한편으로 알라딘이나 **24에서 책을 샀다면
할인도 받고 적립금도 챙길 수 있었을텐데.
이런 아쉬움을 얘기하니 딸아이는
책이 많은 곳에서
ㅡ그것도 베스트셀러나 주력 상품이 있는 곳은
빨간 조명도 빵빵하게 비쳐주는 ㅡ
여기저기 다니며 책구경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계산대에서 직접 돈을 지불하는 기쁨을
몇천원 더 내고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건 너의 선택이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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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06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국에 있었을 때 따님처럼 그런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교보니 그런 큰 서점에 가서 사곤 했어요. 인터넷으로 클릭해서 사면 마일리지등 혜택이 있지만 책에 둘러싸여 어떤책을 고를까 만져보고 살펴보고 하는 그 기쁨을 가끔은 느끼고 싶더라고요. 야무진 딸, 책 선택도 기특하네요. 👍❤️

페넬로페 2020-12-06 11:37   좋아요 0 | URL
네 전에는 저도 그랬던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서점에 나가지를 않는것 같아요~~
코로나로 낭만이 사라지는 느낌이예요 ㅠㅠ

scott 2020-12-0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쁜딸,엄마사랑^.^

페넬로페 2020-12-06 11: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

mini74 2020-12-06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저도 그래서 가끔 동네서점을 찾는답니다. 그 장소가 주는 기쁨이 있지요 ~

페넬로페 2020-12-06 11:41   좋아요 1 | URL
요즘은 거의 주변에 서점을 찾아보기 힘든것 같아요~~
소소한 기쁨들이 사라지고 있네요^^

모모 2020-12-06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선물이군요, 전 책 선물 받을때가 제일 좋아요..
읽고 느낀점 올려주세요^^

페넬로페 2020-12-06 16:0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책선물 받으면 좋더라구요^^
열심히 읽고 글 쓸께요**

파이버 2020-12-06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께서 재밌는 책만 쏙쏙 골라서 선물하신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글을 읽으니 저까지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조금 일찍 온 크리스마스 선물이네요^^♡

페넬로페 2020-12-06 19:02   좋아요 2 | URL
‘크리스마스‘ 라는 단어가 무척 신선하게 들립니다^^
미리 인사드려요~~
메리 크리스마스, 파이버님!

서니데이 2020-12-06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건교사 안은영 재미있어요.
이번에 새로나온 표지가 더 예쁘더라고요.
따님이 좋은 선물 하셔서 좋으셨겠어요.
페넬로페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0-12-06 21:24   좋아요 1 | URL
책 두 권 다 좋다고 하더라구요~~
읽을 책이 점점 많아지네요 ㅎㅎ
서니데이님!
일욜의 남은 저녁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셔요^^

서니데이 2020-12-10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페넬로페 2020-12-10 22: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와~~
너무 기분 좋아요 ㅎㅎ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처음엔 사기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읽어 갈수록 익숙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기는 한다. 하지만 내 손안에 쥐어진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다음 장으로 가면 그 전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것도 같지만 절대적인 배경지식의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지도도 찾이보았다. 유튜브와 네이버 열린 연단의 '사기열전' 강의도 들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도 그런 이유로 같이 읽기 시작하였다.

 

문득 중학교 시절, 한국사와 세계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국사 선생님은 수업을 하실 때, 그 넓은 칠판에 한 번 빽빽히 판서를 하시고, 그것을 지우고 두 번째 판서를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항상 그 전 시간 수업 내용을 물어보시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순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 날의 날짜와 같은 번호가 될 수도 있었고 그 날짜의 그 다음 번호가 될 수도 있었다. 복불복으로 한 사람이 지목되면 그 다음에 앉은 사람, 또는 대각선으로, 그 옆으로 순서대로 죽 질문하셨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은 세워두었다가 마지막에 등짝이나 목덜미를 한 대씩 때리셨고-그것도 당신의 손바닥으로- 그렇게 맞고서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선생님의 폭력이었지만 그땐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좀 재미있었다. 가르치는게 엉망인 것이 아니라 훌륭히 수업을 하시는 분이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들 선생님을 존경했었다.

 

국사 선생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세계사 선생님은 무척 유머가 있으셨다. 항상 우리를 웃겨주시면서 직접적인 세계사의 내용과 더불어 그 배경에 대한 얘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셔서 언제나 세계사 시간은 재미있었다. 그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시 중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니 그때가 생각나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은 중학교 시절의 세계사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다. 책 내용 곳곳에 '사기'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사기를 바탕으로 여러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구성한 듯 싶다. 소설이지만 역사에 대한 것이기에 다큐멘터리나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재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작가의 상상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고, 작가의 사관도 궁금하지만 일단은 그냥 읽었다.

 

'항우와 유방' 1은 진시황 '정' 이 중원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로 전국시대는 끝을 맺고 각 나라는 진의 행정조직으로 재편된다.

 

그 전까지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통일이란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그가 중국 통일이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자 사람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p15

 

각 나라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유민이 되어버렸고 권력은 오로지 황제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시황제는 중앙집권과 법치주의를 내세워 폭정을 일삼았다. 형벌을 내리고 세금을 거두며 각종 토목공사의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노역을 강제했다. 그로 인해 유민들의 불만이 많아졌고 이것은 언제라도 반란의 싹이 될 수 있었다.

 

'진시황의 결정적 패착은 모든 백성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역의 현장으로 내 몰았다는데 있었다.-p68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황당하게도 온량거를 타고 순행하던 수레안에서 죽고, 환관 조고가 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를 내세워 권력을 잡는다.

 

양자강 이남의 강남은 중국의 변방지대이고 황하지역의 중원과 언어와 풍속도 달랐다. 진정한 한족이라 인정도 못받을 정도로 그들은 그들 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항우는 BC223년에 멸망한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의 유명한 장군 향연의 후손으로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 의해 교육받았다. 항우는 강남 사람을 일컫는 형만이었지만 중원 문화를 배운 집안의 자손으로 키가 8척이나 되어 일단 외모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육체적으로 초인에 가까운 조건을 가졌고 민첩하고 직관력이 뛰어났으며 힘도 무척 셌다. 항우는 희대의 명장이었다.

 

항우보다 15세가 많은 유방은 패현 중앙리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방의 '방'은 형 또는 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그는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다. 거의 문맹 수준이었던 유방은 아는 것은 별로 없었고 허풍쟁이였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귀여움' 또는 '애교'라고 표현했다.

 

그 감탄하는 모습에는 애교가 넘쳤고, 그 애교는 그냥 그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덕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유방이 나아가는 곳마다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서로 신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었다.-p256

 

그 시대는 '종횡가' 라 불리는 책사 또는 유세가들의 활약이 많았고 필수적 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천하의 쟁패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유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되었다. 유방은 그들을 보는 선구안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능력있는 관리를 찾아내는 눈과 그들을 크게 대우해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진나라의 횡포가 심해져 초나라의 농민 출신인 진승은 우연히 진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시작된다.

 

'진승은 거대한 진 제국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돌팔매질이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를 일으키고 있었다.'-p163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서로 뭉쳤다가 배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초나라의 후예인 항우의 주력군은 거록성으로, 유방의 별동대는 관중으로 향한다. 거록성에는 연승을 거듭한 진나라 '장한' 의 20만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항우의 7만 부대는 그들과 대적할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경포의 선공과 항우의 용맹함으로 초는 거록에서 승리하고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한다.

 

한자 '坑' 은 '구덩이' 또는 '구덩이에 묻다' 라는 뜻이다. '분서갱유' 에서의 갱은 유교를 금지하고 법가주의 사상을 지향한 진시황이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린 것을 뜻한다. 항우도 갱을 좋아했다. 숙부 항량과 같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는 몇 천 명에 달하는 항복군을 포박하여 성 밖 구덩이에 산 채로 묻어버린다. 거록성 전투에서의 승리후에도 진나라 병사와 초나라 병사간의 반목이 시작되자 진나라 병사 20만을 갱해버린다.

 

보통 대학살은 병기를 사용하는 법인데, 그럴 때는 살륙이 중노동이 된다. 항우는 피학살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교활한 방법을 구사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대학살극이었다.-p355

이 일로 항우는 민심을 잃는다. 원한에 사무친 그들의 가족은 유방에게 기울어진다.

 

몇 만의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먹어야 하고 잠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대부분은 백성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조달한다. 식량을 빼앗긴 백성들은 유민이 되고, 유민이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식량이었다. 대소 영웅호걸들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줌으로써 그 자리를 보장받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들에겐 먹거리와 잠잘 곳이 필요하다.

 

역사의 결말을 이미 알지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2권에서 기대해본다.

 

 

***아!

컴퓨터 절전모드 상태에서 로그아웃된 것도 모르고 다시 돌아와 신나게 써서 등록했지만 내 글을 찾을 수 없어 중간부터 다시 썼다. 포기할까 하다가 아까워 그냥 썼다. 허탈감과 피로가 몰려온다.

글을 찾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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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없는 것 같아요.ㅠ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알라딘 임시저장 기능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렇고, 그래도 다시 쓰신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페넬로페 2020-11-30 13: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글이 날아갔을때의 암담함이 다시 떠오르네요 ㅠㅠ
그곳에서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겅하시기 바랍니다^^
 
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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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 개인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면 예상치도 않게 그것이 악의로 해석되어 그 사람에게 내팽겨쳐지든 그것만으로 끝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라고 마르케타 개인에게 보낸 루드비크의 농담은 그렇게 끝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그것을 위하여 몸바친 어떤 사상과 주의를 바탕으로 조직된 단체에 의해 문제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배반당하고 축출된다.

 

체코의 1948년 2월혁명 후,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은 경직되고 심각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여러 학습 모임들이 조직되어 빈번한 모임을 가지고 모든 조직원들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과 자아비판이 행해졌다. 가벼운 행동과 미소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누구였을끼?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궃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p55~56

 

여러 얼굴을 가진, 누구나가 다 그럴 수 있는 평범한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농담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문제는, 마르케타가 어떤 것의 저 너머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직 사물 자체만을 볼 수 있는 여자였다는데 있다. 결국 그 농담으로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되고 학업의 지속을 금지당하고, 최악에 속하는 검정표지를 받아 광부로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루드비크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던진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면 그것이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루드비크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했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그 조직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줄 안 것이다. 거기서부터 루드비크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 불행은 루드비크의 모든 것을 빼았았다. 예상도 하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뒷통수를 맞은 인간은 나락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상당히 삶이 억울할 것이며 그 분노로 인해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며 루드비크의 루치에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본다.

 

'잊혔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유배당한 루드비크의 삶에 구원처럼 나타난 루치에를 루드비크는 사랑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욕망과 행위가 '사랑'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라서 당연한 그 행위가 루치에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은지 루드비크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질문해보지도 않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루드비크는 결국은 권력을 갈망했으며 자신의 여자는 성녀처럼 순결하며 구원을 가져다주어야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기적인 남자에 불과했다.

 

루치에는 코스트카에게 루드비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루드비크를 만났고 묘지에 있는 꽃을 훔쳐다 그에게 준다. 남녀간의 흔한 사랑은 아니라도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라는 한 인간을 불쌍히 여겼고, 어긋났지만 사랑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돌고돌아 먼 훗날 루드비크는 깨닫는다.

코스트카가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 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을 해냈지만 자신은 그렇게 히지 못했다고 깨닫고, 마지막에 속죄를 함으로써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다양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 '농담'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가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루드비크와 연관이 있다. 작가 개인의 삶이 이 작품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문장 군데군데에 괄호로 부연설명이 많이 되어 있다. 초보자가 행할 수 있는 무수한 설명인지 아니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살면서 삶을 살아가는 당위와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포장하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코스트카에게는 종교가, 헬레나에게는 자신의 신념이. 야로슬라프에게는 전통이 그런 것이다. 그 선택들은 지극히 각자의 것이지만 다만 그것들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변명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잃어 나락으로 빠진 루드비크는 억울함과 패배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친구 야로슬라프를 찾아간다. 농담이 놈담이 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며 치욕적이다.  

 

언젠가부터 난 누군가로부터 오해받고 상처받기 싫어 농담을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비겁한  것 같아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훅 들어가 그 사람의 약함과 치부를 보고 당황하며 돌아서기 보다 그냥 그 언저리에서 머물며 기다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괜찮은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멋진 농담을 준비해놓고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들떠 올라서 내려버릴 수 없는 나의 정신에 차분함을 주었다. 이 소설로 가을의 느낌을 만끽했고 현재의 가을과 함께 했다. 고맙다.

쓰러진 야로슬라프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루드비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을 환하게 밝힌 구급차이다. 그 빨간 불빛속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돌아 본 나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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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0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농담리뷰 당선 축!카 ㅋㅋ

쿤데라 ‘불멸‘ 읽고 있었는데 흠,

프랑스로 망명하기전에 작품들 체코어로 쓰인 농담-참을수 없는 존재들-불멸들이 최고작들인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0-12-10 23: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쿤데라의 작품들을 다 읽고 싶은데 왜이리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scott님의 ‘불멸‘ 후기 기대할께요^^

페크pek0501 2020-12-23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0-12-23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