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과 연관된 일상을 얘기하거나, 책 속에 책이 들어있는 책을 좋아한다. 카페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마냥 반갑고,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궁금하다. 은근슬쩍 옆으로 가서 책의 제목을 알아내려고 시도하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그것들을 다 제쳐두고 딱 하나 선택하라면’, ‘을 선택한 나는 다른 책덕후의 삶을 흠모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힘을 얻는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내고, 책의 감상에 대한 공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공적이란 말이 참 거창하지만, 단 한 분이라도 나의 글을 읽으니 사적은 아닐 것이다) 내가 책을 잘 읽고 있는 것인지, 한 번씩 고민에 빠진다. 나의 책읽기엔 분명 내가 살아온 삶과 추구해온 것, 나의 생각과 아집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책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 어쩌면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것들만 쓰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된다. 물론 책에 대한 해석은 각자 하는 것이지만,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무시한 책읽기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두 권의 책은 나와 비슷한 책덕후의 모습과, 그런 책덕후들이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안내서 같은 것이라 유익했다. 두 책이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연결되었다.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 -데비 텅 카툰 에세이

 

이 책의 원제목은 'Book Love'인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책덕후가, 책과 함께 하는 일상을 실감나게 나타낸 카툰이다. 책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딱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날 한없이 웃게 만들었다. 그 웃음은 뭔가가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닌, 마치 손주의 재롱에 흐뭇하게 미소 짓는 조부모님의 순수하고 사심 없는 웃음과 같다. 여행을 갔을 때, 말이 안되는 경이로움, “세상 구석구석에 어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를 느끼듯, 이 지구상의 모든 곳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반갑다.

 

책의 부제목은 책덕후가 책을 사랑하는 법인데 그 제목에 걸맞게 다양한 내용이 나와 있다._책의 분량이 아주 적고, 금방 다 읽을 수 있지만_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휼륭한 책이나, 특히 나에게 감동을 주는 책을 읽고 나면, 그 느낌을 나 혼자 간직하기보다 누군가와 나누기를 원한다. 그래서 독서 동아리와 알라딘 북플 활동을 하는 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독서 동아리 단체방엔 언제라도 내가 읽고 있는 책이나, 그 느낌들을 올릴 수 있다. 한 번씩 반응이 없을 때, 머쓱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의 감동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엔 최상위 책덕후의 남편? 아님 동거인이 나온다. 난 책을 읽으며 이 든든한 남자에 대해 주목했다. 어쩜 이다지도 책덕후의 남자로서 완벽할 수 있는지, 요즘 말로 넘사벽이다. 책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단 한 마디의 불만도 없이 묵묵히 그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준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 책덕후라면 이런 남자를 선택하는 행운을 누리기 바란다.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요즘 tv에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많다. 책과 함께 뮤지컬도 좋아하기에 더블 캐스팅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있다. 이 프로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주인공역인 베르테르의 배역을 정하는 경연인데, 최종 후보에 오른 배우들은 결선에서 베르테르역을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야 했다. 심사위원들은 후보자들에게 왜 그런 감정으로 노래했냐고 질문했다. 그때 어떤 배우는 베르테르가 무척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노래했다고 대답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난 한 번도 베르테르가 나약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약하다고 말한 배우는 어쩌면 베르테르가 자살한 사실을 두고 그렇게 생각한 것일 텐데, 이처럼 책에 대한 해석은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만약 그 배우가 연기한 베르테르를 내가 관람했다면, 난 그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 우리가 각자 갖는 관점은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달려 있다.

 

문학작품의 해석-일반적으로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학작품들은 줄거리 이면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내는 것을 해석이라고 한다. 해석은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개의 경우 숨어 있는 이야기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기 전에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인 홍진호 저자가 네 개의 유명한 고전을 설명하며, 책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과 그것의 여러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제시한 네 권의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정확한 독일어 번역은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고 한다.),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18~19세기의 독일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다양하게 서술하며, 책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해석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저자의 해설은 깊이가 있다.

 

이 책의 주요 키워드는 문학작품의 해석, 세기전환기, 자연주의, 유미주의,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발전소설, 환상문학인데, 이 키워드만 보더라도 고전을 읽을 때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작품에 걸맞는 도구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고전을 읽기가 지극히 즐겁고 재미있다고 한다.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읽으며 난 어떤 도구를 손에 쥐고 있었는지 잠시 고민하고 반성하게 하는 문장이다. 어쩌면 읽기에 필요한 도구를 얻기 위해 공부하기보다, 오히려 읽기 어려운 책을 많이 읽어냈다는 허세를 부리려는 도구로 사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 중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는 처음 듣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지 않고 저자의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책을 읽자고 다짐해도 실천이 잘 안되는지라 그냥 그 부분을 읽었다. 소설을 읽지 않아도 저자의 해설은 그 자체로 유익했다. 특히 유미주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좋아, 같은 종류의 다른 소설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에 소개된 다섯 작품에 대해 저자는 데미안을 통해 문학작품은 해석을 거쳐야만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통해 한 작품이 여러 해석의 층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672번째 밤의 동화를 통해 복잡한 해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정답에 해당하는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해석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프카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해석을 유도한다. 단지 그 중 어떤 하나가 정답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p242

 

고전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며, 그 책에 대한 해석과 느낌은 읽는 사람 각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금만 더 책에 대한 배경이나 작가에 대해 안다면 더 많은 것을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해석의 필요성을 알고, 해석을 위한 정보만 가지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에게 지루하고 어려운 것으로만 여겨졌던 문학작품들이 훨씬 더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문학작품의 해석에 익숙해지면, 거꾸로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일들과 사회적, 문학적, 정치적 현상들을 보다 선명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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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5-18 09: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왠지 그림체가 인별그램에서 많이
보는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인별그램에 등장하는 해외 책쟁이
들의 기록도 아주 신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삶의 소소한 낙 중의
하나이지효.

페넬로페 2021-05-18 09:45   좋아요 5 | URL
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요~~한 번에 휘리릭 읽지만 책덕후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어 재밌어요^^

mini74 2021-05-18 10: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고민을 매번 합니다.ㅠㅠ 책덕후남편은 다음 생애에 ㅠㅠ

페넬로페 2021-05-18 14:26   좋아요 2 | URL
네, 담 생엔 꼭 그런 사람 만나도록 해요^^

새파랑 2021-05-18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몰랐는데, 북플하면서 책 정보를 주고 받는게 책 읽는것 만큼 즐겁다는걸 알았어요~ 저 에세이 책 영문판으로 사려고 담아놨는데, 다음달에는 꼭 주문해야겠어요. 저도 카페나 지하철에서 책보는 사람있으면 무슨책인지 몰래 보는데 제가 이상한게 아니었군요^^

페넬로페 2021-05-18 14:31   좋아요 4 | URL
저도 이 북플 활동이 너무 좋아요^^
이 책은 영어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저는 영어가 부족해 원서로 책 읽는 분들이 넘 부럽군요 ㅎㅎ
담에 시간이 좀 나면 영어공부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미미 2021-05-18 1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가명강>이 이런 뜻이었네요ㅋㅋㅋㅋ시리즈 찜해놓기만 했었는데 재밌는 의미군요! <Book Love>도 그 옆사람에 대해선 든든하다고만 생각하고 넘겼는데 페넬로페님 글 읽으니 새삼 더 중요하게 여겨져요. 함께 읽고 감상하는 여러분들도요.^^* 시기마다 달라지는 책에 관한 느낌과 이해. 이런 것들이 사람마다도 차이를 드러내서 이 세계가 더 풍요롭지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해용~♡

페넬로페 2021-05-18 14:35   좋아요 4 | URL
미미님 말씀처럼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세계에 여러 관점과 해석들이 있어 좋은것 같아요^^함께 읽어가고 서로 격려해주고♡♡
미미님이나 저는 이렇게 자유롭게 책 많이 읽을수 있으니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 충분히 책덕후의 낭군이 될수있는 자격이 있는듯요~~

scott 2021-05-18 16: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해 목표중 하나가
파우스트 완독인데
페넬로페님 페이퍼를 읽고나니
호프만스탈에 눈길이 ㅎㅎ

‘누구에게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을 찾아 오늘도 이렇게 책의 바다 속에 허우적 거리며 장바구니 채우고 비우고 ㅎㅎ

플친님들 통해 전에는 지나쳤던 책들 읽게 되는 기회를 얻고 함께 얘기 나누는 공간과 시간이 너무 소중하네요.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 이라는 책도 페넬로페님 포스팅 읽지 않았다면
그냥 책 소개와 줄거리 작가의 개인적 감상만 늘어놓은책이라고 생각 했을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1-05-18 16:59   좋아요 4 | URL
파우스트는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것 같아요^^
고전은 정말 여러 번 읽어야 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ㅠㅠ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책이 저한테는 좋았어요~~근데 어떤분은 너무 작품을 분석해놓은 책이라 좋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제가 북플 활동하면서 scott님의 페이퍼로 저의 책에 대한 해석의 수단을 많이 얻는것 아시죵!

페크pek0501 2021-05-19 15: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딱 한 권만 못 읽었네요.호프만스탈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은 두 번 읽었고
데미안은 두 번째로 현재 읽고 있어요.
변신 단편집은 예전에 읽음.

알라디너 님들이 올린 책과 제가 읽은 책이 겹치는 경우가 드문데 오늘 별일입니다.
이런 날도 있어 좋습니다. ^^

페넬로페 2021-05-19 19:52   좋아요 3 | URL
저는 호프만스탈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 페크님께서는 벌써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책읽기의 능력지이십니다^^
북플에서 많은 책을 만날 때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으면 무지 반갑더라고요 ㅎㅎ

han22598 2021-05-20 05: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북러브 읽고 같은 페이지 찍어서 올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크크크 통했네요.^^ 전 페넬로페님같은 북러버들의 외침덕분에 덕보고 있는 수혜자일뿐이죠 ㅎㅎ

이 작가의 다른 책 quiet girl in a nosy world에서 남친(=남편, 아마 동일인물인듯해요)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나와요 ㅎㅎ

페넬로페 2021-05-20 09:26   좋아요 3 | URL
저 지금 han님 서재에 다녀왔어요~~
와, 정말 그러네요^^
분명 han님께서 먼저 이 책에 대한 리뷰 올려셨는데 ㅎㅎ
제가 몇 번이나 책을 뒤적이며 어떤 그림을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저 그림의 내용이 젤 마음에 닿아 골랐거든요~~
소개해주신 데비 텅의 다른 카툰도 읽어보고 싶어요^^

scott 2021-06-04 20: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2관왕 १✌˚◡˚✌५

페넬로페 2021-06-04 23:26   좋아요 2 | URL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6-04 20: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06-04 23:26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해용♡♡

mini74 2021-06-04 20: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6-04 23:28   좋아요 2 | URL
mini님, 감사해요^
이렇게 축하해주심에**

미미 2021-06-04 2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 축하드려용~♥

페넬로페 2021-06-04 23:30   좋아요 2 | URL
책을 사랑한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6-04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대단대단~!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06-04 23:30   좋아요 2 | URL
대단하신 새파랑님께 대단하다는 칭찬 들으니 더 기분 좋아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6-04 21: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6-04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자주 가는 편의점에 일하시는 분에게 대뜸 ‘무슨 책 읽으세요‘ 라고 갑자기 저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와 서로 무안했던 적이 있어요 ㅎㅎㅎ 정말 책읽는 사람만 봐도 반갑다는 말 공감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5월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6-04 23:33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죠?
책 읽는 사람만 봐도 좋더라고요^^
초딩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단지 나머지 모든 이들과 함께 본드 거리를 걸어가는 이 놀라운 그리고 약간은 엄숙한 행진이 있을 뿐이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이 존재가 말이다. 
더 이상 클러리서가 아니다.
이 존재는 리처드 댈러웨이 부인이었다.
- P20

잎들이 어수선한 숲 깊은 곳, 영혼 속에서 가지가 지끈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발굽들이 꽂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었다. 
언제고 아주 만족스럽거나, 아주 안전하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언제라도 괴물이, 이 미워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픈 뒤로 이 미움은 그녀 등을 후비듯이 아프게 하는 힘이 있었다. 
또한 그녀에게 물리적인 고통을 주었고 아름다움이나 우정, 건강한 것, 사랑받는 것, 그녀의 집을 기쁨이 가득 찬 반석으로 만드는 일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뒤흔들고 무릎 꿇고 굴복하게 만들었다. 
마치 정말로 괴물이 뿌리에서부터 파헤치는 것 같았다. 
마치 만족스러워하는 이 모든 차림새가 이기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미움! 모순, 모순이야! 
그녀는 자신에게 소리 지르면서 멀베리네 꽃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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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6 0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댈러웨이 부인 읽고 계시군요.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말이죠.
같은 책을 우리가 어떻게 같게 또는 다르게 읽을지..... 너무 좋아요. ^^

2021-05-16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5-16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너무 유명해서...
그런데 왠지 지루할 거라는 생각에 그만 두었죠. 나중에 추천할 만한 작품이었는지 글 올려 주세요.^^

페넬로페 2021-05-16 17:33   좋아요 2 | URL
네,정말 읽기가 쉽지는 않아요~~울프의 글을 지금 나이들어 읽으니 공감되는 내용이 많은것 같아요^^
근데 젊었을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아요^^

레삭매냐 2021-05-17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를 좀 읽어 보겠다고
이 책 저 책 사두긴 했는데 한 개두
읽은 게 없네요 흠...

미국 사람들도 버지니아 울프의 책
들은 문체가 어려워서 어렵다고 하
더라구요. 위안 삼아 보렵니다.

페넬로페 2021-05-17 13:31   좋아요 0 | URL
두 달동안 독서동아리에서 울프 읽기를 하고 있는데 넘 힘들어요~~그냥 이 기회에 울프 책 좀 읽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으려 합니다^^
 

 

 

 

 

 

 

 

 

 

 

 

 

 

 

    

지지않는 하루는 암이라는 병 앞에 소환된 저자가, 1년 동안 일상과 생각을 기록한 글이다. 고통 속에서 암 투병을 하는 사람이 쓴 글이 맞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이 책에 있는 모든 문장들은 담백하고 담담하다. 수술을 받고, 여러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 중에도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매일 아침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 간다. 몸에 힘든 병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에 고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천천히, 세심하게 보고 느낀다. 사물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내가 예외일 이유가 없음을 받아들이며, 몽테뉴의 책에 위로를 받는다.

 

{암이라는 병도 비슷하다. 피레네의 종소리처럼 내 인생에 눈금을 긋는다. 병이 생기기 전과 그 이후로 자르고, 그 이전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사색하게 만들며 사는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번씩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육신의 고통이야 말할 필요가 없고, 그보다 내 손이 미치지 못할 가족을 생각하면 더 암담하다. 나의 소진(消盡)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없다면 그들의 삶 역시 피폐해질 것이다. 병을 앓는 육신의 아픔은 온전히 개별자의 몫이지만, 시작하고 일궈놓은 관계에서조차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만으로도 신산스럽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암울해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무한히 위로해야 하는데도 정작 난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같은 반대적이며 이중적인 것들 모두 내 마음이 결정하며, 그저 담담히 인생과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난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 그 일기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육아일기로 교체되었는데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일기를 쓰라고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도 전반적인 일기의 내용은 반성과 후회였다.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는지, 아님 스스로가 못나빠진 얼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매순간 치열하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내 일기는 항상 그렇게 반성만이 가득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나의 문장들에 싫증이 나서 어느 순간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화열의 지지않는 하루를 읽고 다시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다시 일기를 쓴다면, 이 책에 적힌 문장처럼 나의 일상을 묵묵히, 간결하게 기록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영리한 행복을 추구하는 글로 쓸 것 같다.

 

{의사가 물었다.

마담 르그랑은 무슨 일을 하나요?”

디자이너고 글도 씁니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좋은 책의 주제를 준 겁니다.”

.............................

 

저녁 식탁에서 구역질 때문에 식사를 멈추는 걸 보고 올비가 말한다.

“6개월 뒤에 출산하는 거야. 이번에는 아이가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이왕이면 저 문장처럼, 기지와 충만한 위로가 가득한 글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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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9 19: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러한 하루하루의 영리한 행복을 아프기 전에 알게 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저도 일기 비슷한 메모는 쓰는데 이게 쓰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ㅎㅎ 페네로페님의 일기쓰기를 응원할께요~!!

페넬로페 2021-05-10 00:12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말씀이 맞아요~~영리한 행복을 하루하루 찾아내며 살아야 해요^^이 말은 오르한 파묵의 책에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읽을 책은 어찌나 많은지~~조금이라도 일기 쓰기 해야할텐데 ㅎㅎ
응원, 감사해요^^

미미 2021-05-09 19: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비의 마지막 말도 의사의 말도 인상적이네요! 인생에 예상치 못한 불행들. 어쩌면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새로운 삶으로 건너는 다리가 될수도 끝이 안보이는 절벽도 될 수 있겠죠.🥲

페넬로페 2021-05-10 00:15   좋아요 3 | URL
그렇죠! 간결하면서도 의미있는 말들이 참 좋았어요^^잘 받아들여야 하는데 매번 이런 글들을 통해 새삼 또 다짐하고 있어요~~끊임없는 학습이 반복되어야 하니 저는 참 어리석은 사람 같기도 해요^^

scott 2021-05-09 21: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물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내가 예외일 이유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불완전함을 받아 들이지 못해 고집과 아집만 가득 늘어나는,,,
코로나 팬더믹에 페넬로페님이 오늘 올려주신 페이퍼 더더욱 공감하게 되네요.


페넬로페 2021-05-10 00:19   좋아요 3 | URL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서로 공유해야함에도 세상은 그저 욕망의 발산으로만 돌아가는 현실이 참 안타깝죠! 저자의 문장을 통해 많이 비워야함을 또 깨달았어요^^
우연히 오늘 올린 저와 scott님의 글이 통하는것 같아요^^
이화열 작가도 이 책에서 계속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해 썼거든요^^

cyrus 2021-05-10 0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게 힘을 주는 글입니다. 저도 ‘지지 않는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겠어요. 적은 시간이라도 글을 써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5-10 09:38   좋아요 2 | URL
네, 지지않는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 같아요^^
cyrus님의 글은 언제나 좋으니 꼭 계속 쓰시기 바래요♡♡


페크pek0501 2021-05-14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길게 몸살을 앓았어요. 다 나았나 싶어 나갔다 오면 또 몸살.
집안 청소를 하고 나면 또 몸살, 그렇게 길게 가더군요. 입맛이 없어 저절로 커피를 끊고 지냈어요.
다시 커피가 맛있어서 며칠 전부터 마시니, 아마 이제 몸살 끝인가 봐요.

아파도, 병이 있어도 의연하게 사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러워요.

우리 모두 건강합시당~~~

페넬로페 2021-05-14 14:07   좋아요 2 | URL
페크님, 몸살로 고생이 많으셨네요~~
커피까지 끊으실 정도로 아프셨다면 그 힘듦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됩니다~~
우리가 책에서 많은 힘과 희망을 얻지만, 책에 있는 것이 다가 아닐것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 역시 그 의연함을 존경해요^^
건강 회복하셨다니 기쁩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기대해요**

 

책은 나에게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 사람의 성공담이나 인생 역정보다 스타일에 더관심 있는 편이다. 몽테뉴는 나와 책을 읽는 습관이 꼭비슷했다.

난 책을 슬렁슬렁 읽지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렇게읽고 났을 때 내게 남는 건 그 책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책을 통해서 내가 판단한 것, 감동받은 것, 상상한 것뿐이다.
작가, 배경, 어휘들, 이런저런 상황들, 그런 것들은 당장에잊어버리고 만다.
_ 몽테뉴 - P144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행복은 그저 하나의 단어일뿐이다. 추론이 아니다. 인생은 그냥 인생 지체로 좋은 것이다.
행복하다는 건 여행, 성공, 부, 기쁨 때문이 아니다. 그냥 행 - P258

복하므로 행복하다. 인생의 풍미가 행복이다. 딸기에서 딸기 맛이 나듯 인생에서 나는 맛이 행복이다. 햇빛은 아름답고, 비는 달콤하고, 세상의 소음은 음악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이것이 일련의 기쁨이다. 슬픔, 고통, 심지어 피로도 인생의 맛이다.
존재한다는 건 그냥 좋은 것이다. 다른 무엇과 비교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존재는 허무가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지도 지속하지도 않았으리라. 눈을 즐겁게 하는 색깔을 생각하라. 느끼는것은 기쁨이다. 우린 삶에 갇힌 죄수가 아니라. 삶을 맛보며사는 것이다. 보고 만지고 판단하고 세상을 펼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아침 보행자 같다. 지평선에 쌓인 모든 것들이갖는 의미는 바로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모든 삶은 기쁨의 노래다. 사람들은 베토벤이고통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다른 존재들도 .
그 나름의 승리를 쟁취한다. 거지나 개도, 의심할 여지없이.

알랭 ㅡ노르망디인의 어록 Propos d‘un Normands - P259

시간과 물로 흐르는 감을 보고,
시간도 강임을 기먹하라.
강처럼 무리도 사라지고
물처럼 우리의 얼굴도 스러짐을 말라.

깨어 있음은 또 하나의 꿈.
꿈꾸지 많는 꿈, 잠들지 않는 꿈이며,
육신이 두려워하는 건
매일 밤 죽음처럼 찾아보는 꿈이라 생각하라.

인간이 살아온 일상.
그 유구한 세월의 상징을 보고
세월의 횡포를 음악과 속삭임.
그리고 상징으로 바꿔라.

죽음과 석양에서 찾아낸 꿈,
그 서글픈 황금은 시일지니.
가난하고 불멸하는 사일지니,
시는 여명과 석양처럼 다시 온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학 Arte poeties - P13

겉장이 파란 노트 한 권, 연필 두 자루, 그리고 연필깎이와
대리석 테이블들, 이른 아침의 향기, 맺힌 땀, 
그것을 닦기위한 손수건 한 장, 그리고 행운, 
이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모든 것들이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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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5-09 0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 운이 좋은 인생,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조금 더 자주 찾아오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복권을 사도 행운의 결과가 다른 것처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1-05-09 10:46   좋아요 2 | URL
네, 정말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이 가득한 삶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니데이님!
행복하시길 바래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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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이때 소련군은 폴란드 장교 및 지식인을 대거 수용소에 가둔다. NKVD(내무인민위원회-스탈린의 통치 기간동안 행해진 정치적 숙청의 직접적인 실행 기관)는 포로들의 성향을 철저히 파악하여 소련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모두 제거하자고 스탈린에게 제안했고, 스탈린도 이를 수용한다. 1940년 봄, 카틴 숲에서 수천 명이 학살된다(카틴 숲 대학살). 카틴 외에도 하리코프, 칼리닌 부근 수용소의 포로까지 합치면 당시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은 총 2만여명에 이른다. 결국 그 지역에 살아 남은 포로는 그랴조베츠 수용소에 있던 400여 명의 장교와 군인들 뿐이었다.(서문과 옮긴이 미주에서)

 

 

우리는 지적 노동을 해서라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우리를 잠식하는 쇠약과 불안을 극복하고 뇌에 녹이 스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 중 몇 사람이 군사학과 역사학,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p10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 밑에 다닥다닥 붙어 않아, 당시 우리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강의를 열중해 듣던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이 같은 각고의 지성적 노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던 정신의 세계를 생각하고 그것에 반응할 수 있었다. -p12~13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료들을 보며, 항상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그들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정신의 세계만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은 위태롭다. 인간의 육신은 그들의 지성과 정신을 위해 희생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히려 집요하게 유기적인 작동을 하고, 그 결과를 인식시키려 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안간힘을 쓰며 정신을 지키려하는 그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없고, 가진 것이라곤 프루스트 작품에 대한 기억만으로 강의를 하며, 육신의 피곤함 속에서도 모여 앉아 강의를 듣는다. ‘교외수업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순간들의 시간은 그들에게 기쁨이었고,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로 남아 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폴란드 출신의 화가이자 작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는 그랴조베츠 포로 수용소에서 동료들을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를 주제로 강의한 그의 노트 일부를 옮긴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숭고한 이야기에 내가 더 기대한 것은, 수용소의 현실과 강의를 듣는 그들의 느낌과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배경에 불과하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차프스키의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강의의 내용이다. 그것에 대해 살짝 실망했지만, 곧 그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세 번 정도 도전하고, 곧 포기해버린 책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이기에 차프스키의 강의는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좋은 입문서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프랑스의 문화적인 배경을 시작으로 프루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소개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용에 대해. 비록 조각조각, 자신의 기억만으로의 강의이지만 무척 훌륭했다. 이 책을 전혀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인 나에게 흥미를 주었으며,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에 대한 구절에서는 재미있기까지 했다. 10권이 넘는 대하소설의 내용을 기억하며, 생각을 꺼낼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열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만약 내가 그러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난 우리의 정신을 위해 무엇을 얘기할 수 있고, 읽은 책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매일 매 순간, 책을 읽지만, 읽은 내용에 대해 정리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부족한 나이기에, 자신있게 기억으로만 얘기해줄 수 있는 책이 별로 없음을 실감한다. 이 책은 나의 책읽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프로스트의 작품에 대한 기억뿐이어서 어떻게든 그것을 정확하게 떠올려 보려고 정말로 애를 많이 썼다. 사실 이것은 문학 에세이가 아니다. 내 인생에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싶은 책, 내가 정말 많은 빚을 진 어느 작품에 대한 추억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서문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내가 기대하지 않던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출판사를 바꿔가며 두 번이나 꼬박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아니 나에게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때까지 내가 생각한 좋은 소설이나 고전은 시대적인 상황과 작가의 이력을 배제하고(물론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냥 글을 읽음(글 속에서)으로써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울프의 소설은 그러한 느낌에서 살짝 빗나갔다. 서사를 거의 배제하고, 자신의 경험에서 온 것들을 의식의 흐름속에서 계속 내뱉는 그 말들은, 작가의 배경을 잘 모르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등대로는 나에게 좋은 소설인지, 아닌지가 잘 판단되지 않았다. 차프스키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었던 시기는 프랑스어에 대한 실력이 그렇게 대단한 편이 아니었을 때이다. 문학적 소양도 많지 않아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책에서 주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프루스트가 다루는 이야기와 그것에 담긴 의미였지 문학적 질료나 형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의 조합으로써 심리를 해석하는 예지가 곧장 내 가슴을 밀고 들어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울프의 글에 대한 나의 느낌이 굉장히 편협적이고, 결국 나의 독서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형식을 파괴하고, 내 안의 굳은 덩어리같이 뭉쳐있는 아집과 벽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가 얘기하는 것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이면의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차프스키의 문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뒤늦게 깨닫는다.

 

프루스트는 나이가 들면서 어떤 냄새나 어떤 향기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생애 마지막 몇 해 동안 전체를 코르크로 덮은 방에서 생활했다. 영하 45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노역에 시달리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수용소의 삶 역시 사방이 코르크로 막힌 것처럼 단절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곳에서, 프루스트와 살아남은 자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정신을 위한 강의를 듣는다. 그들은 그렇게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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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05 15: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유를 잘 알았기 때문이겠죠? 지식인들을 우선적으로 잡아가고 죽인걸 보면요. 정신적 의지란 전염성도 강한것 같습니다.제목부터 뭉클해요!🥲

페넬로페 2021-05-05 18:12   좋아요 3 | URL
철저하게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민들기 위해 지식인부터 죽이는것이 참 잔인하죠? 이 책의 제목과 짪은 서문에서 참 가슴 뭉클하고 숙연해져요^^

coolcat329 2021-05-05 16: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입문서로 읽으면 좋군요. 기억에 의존한 강의라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작가의 열정이 대단했네요.
저는 방금 읽은 책도 선뜻 말하기 힘든데 말이에요.

페넬로페 2021-05-05 18:13   좋아요 4 | URL
네, 이 책이 제가 기대한대로의 서술로 이어지진 않지만, 프루스트에 대해서는 좋았어요~~

scott 2021-05-05 16: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유제프 차프스키가 카틴 숲 대학살 사건에서(소련이 2만2000명의 폴란드 군 장교와 엘리트들을 카틴 숲에서 집단 학살시킴) 살아남은 79명중 한 사람입니다.
수용소 영하 40도 이하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의 한것 그자체도 믿기 힘들 정도네요 온전하게 살아 움직이는것 조차 힘든 상황이였을텐데
극한의 상황속에서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 마저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라면, 우리 라면,,,,

저도 지금 프루스트와 울프 여사의 책 번갈아 가며 읽고 있어서 인지 페넬로페님의 이 리뷰 읽고 또 읽고,,,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형식을 파괴하고, 내 안의 굳은 덩어리같이 뭉쳐있는 아집과 벽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페넬로페님의 이 문장에 깊이 동감!
카프카가 ‘책이란 우리 안의 꽁꽁 언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여야 한다‘ 라는 말을 남겼죠.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살아남아서 이런 글을 남긴 작가에게 무한의 감사를~

이책 장바구니로~ପ(๑•̀ᴗ•̀)* ৳৸ᵃᵑᵏ T৹ *

페넬로페 2021-05-05 18:16   좋아요 3 | URL
scott님께서도 울프 읽고 계시는군요~~저는 이 책 읽으며 scott니의 페이퍼에 올려주신 프루스트에 대한 글들이 많이 도움됐어요~~차프스키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79명이라 살아남은 자의 고뇌도 많을것 같았어요 ㅠㅠ

새파랑 2021-05-05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 프루스트의 책을 읽을 수 있는건가요? ㅎㅎ ‘정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강의라는게 엄청 인상적인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에게 반성과 성찰을 하게 만든다니 꼭 읽어봐야 겠네요^^
(저도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게 ~~!)

페넬로페 2021-05-05 18:18   좋아요 3 | URL
확실히 이 책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접근은 좀 쉬울것 같아요^^책을 그냥 읽는데 급급한게 아닐까하는 반성을 했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05 2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결말에 가서는 이렇게
심오한 각성이 등장하게 될
줄이야.

저는 도저히 그 경지에 이르
지 못할 듯하여, 기존에 하
던 대로 편협하고 자기만족
적인 그런 독서를 하는 것으로.

쿨럭.

페넬로페 2021-05-05 22:41   좋아요 2 | URL
ㅎㅎ
제가 잘하는 것이 반성이고 각성이라~~
레삭매냐님은 충분히 독자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분이시죠~~
그저 저는 중간중간 각성하며 따라가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5-05 21: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어야겠군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무너지지 않기위해 책을 펼쳐드는 순간이 많지 않을까요?
저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런데...^^
마음이 너무 힘들때는 아주 어려운 책을 읽어요^^

페넬로페 2021-05-05 22:44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의 말씀이 맞아요~~
우리의 일상, 특히 여기 알라디너들은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조만간 같이 프루스트 읽어요^^

mini74 2021-05-05 21: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읽은 책에 정신적 비상식량인 말이 있더라고요. 절박한 순간 필요한 건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ㅠ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리뷰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1-05-05 22:46   좋아요 5 | URL
그 절박한 순간을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고 뭉클하더라고요~~
정신적 비상식량으로 더 치열하게 책 읽고 쟁여놔야겠어요^^ㅎㅎ

scott 2021-06-04 2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제프 차프스키!!
페넬로페님에게 땡 TO날린 리뷰

이달의 당선작!
제예감 적중 함요 ㅎㅎ
추카~*추카~*٩(๑❛ᴗ❛๑)۶

페넬로페 2021-06-04 23:21   좋아요 3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땡 to도요^^

그레이스 2021-06-04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06-04 23:22   좋아요 3 | URL
에휴.감사드려요^^

미미 2021-06-04 2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06-04 23:22   좋아요 3 | URL
미미님, 이렇게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4 2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 페넬로페님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6-04 23:23   좋아요 2 | URL
초딩님, 제 서재에 방문해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06-04 23: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6-04 23:24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드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1-06-04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한번 더 축하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