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과 세바스찬
니콜라 바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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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1943년 전쟁이 한창이던 알프스산맥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버려진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사랑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이 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양을 치고 사냥을 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던 마을에 독일군들이 나타나고 자유도 물자도 줄어드는 생활이 이어진다.

더구나 산에서는 양을 죽이고 사람마저 헤치는 괴물 '베트'의 출현으로 뒤숭숭하기만 하다. 실제로 사냥을 나갔던 마을주민 앙드레는 베트에게 공격을 당해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베트는 전에 양치기 주인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다 도망쳐 야생성을 보이는 불쌍한 개일 뿐이다.

여덟살인 세바스찬은 어려서 엄마가 산넘어 아메리카로 떠났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믿고 자라온 천진한 소년이다.

교육을 받아봤자 지금같은 시국에서는 도움이 안된다고 믿는 할아버지의 고집때문에 세바스찬은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그저 할아버지와 함께 양을 돌보거나 젖을 짜고 빵집을 하는 누나 앙젤리나를 심부름을 하는 정도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괴물 베트에게 마음을 빼앗긴 세바스찬은 베트가 괴물이 아니라 심한 트라우마로 적대감을 가진 불쌍한 개라는 것을 알게된다. 베트에게서 자신의 외로움과 상처가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적대감을 보이던 베트는 먹이를 주고 안심시키는 세바스찬에게 마음을 열게된다.

세바스찬은 베트가 암놈임을 알게되었고 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의 안식처인 대피소에서 돌봐주게 된다.

 

 

하지만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 독일군장교 브라운중위는 마을사람을 모아 베트를 잡으라고 명령한다.

벨에게 위험이 닥친 것을 직감한 세바스찬은 벨을 숨기려고 하지만 벨이 괴물이라고 믿는 할아버지의 계략으로 벨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벨이 죽었다고 생각한 세바스찬은 할아버지를 미워하게 되고 다행히 발견된 벨은 심한 부상으로 죽음에 놓이게 된다.

어린 소년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벨을 치료하지만 벨은 서서히 죽어가게 되고 결국 의사인 기욤에게 달려가 벨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사실 기욤은 의사이지만 레지스탕스일원으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탈출하는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장면을 세바스찬에게 들키고 서로에게 비밀을 묻지 않기로 약속하게 벨을 치료해 생명을 구해준다.

후일 늑대가 할아버지의 양들을 공격해오자 양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기욤이 발목을 다치고 심한 눈보라속에 죽을 위기가 닥치자 벨은 썰매에 기욤을 태워 마을로 데려오면서 은혜를 갚게된다.

 

 

앙젤리나를 좋아하던 기욤은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고 부상때문에 탈출 가이드를 할 수 없게 된 기욤을 대신해 앙젤리나가 한 가족의 탈출을 돕게된다. 몰래 누나뒤를 밟았던 세바스찬과 벨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얼음과 눈이 덮힌 산속에는 천길 낭떨어지인 크레바스가 숨어있다.

더구나 한밤중에 뒤를 쫓는 독일스키부대원들에게 잡히지 않기위해 사력을 다해 산을 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한다.

오로지 벨의 동물적인 감각만을 의지한 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거기에는 어린 소년 소녀도 함께 있다.

1960년대에 우리 드라마 '대장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는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한 벨과 세바스찬은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우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학대받은 기억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벨이 세바스찬의 사랑으로 순한개로 돌아오고 결국 벨은 기욤을 살리고 탈출을 돕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메리카로 갔던 엄마가 돌아올것이란 믿음으로 살아온 세바스찬의 비밀도 밝혀지면서 할아버지와 등을 돌렸던 세바스찬도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다.

 

참으로 감동스런 작품이었다. 전쟁중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의로운 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독일군이면서도 평화를 택한 브라운중위의 선행도 감동스럽다.

앙젤리나와 기욤 그리고 브라운중위의 삼각관계또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여러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이미지도 떠오르게 한다.

아마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마지막 수업'의 무대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싶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출판사 '밝은 세상'의 작품은 한번도 기대를 져버린 적이 없다. 오랫동안 감동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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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장의 전당표 - 전당포 주인이 들려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29
친쓰린 지음, 한수희 옮김 / 작은씨앗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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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전당포 간판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가 자주 언급한 것처럼 '전당포'란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생활형편이 나아져 전당포가 필요없어진 것일까?

'돈이 필요한 때에 물건을 가져가 돈을 빌리는 업'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삼 십년 넘게 전당포업을

해온 저자의 '전당포이야기'에는 모든 인간군상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녹아있었다.

 

 

예전에는 타이완에서도 오래전 우리민족에게도 있었던 '민며느리제'가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라도 덜어보자고 다른 집으로 보내는 며느리제도인데 말하자면 양녀처럼 들여다 일시켜먹다가 얼추 결혼할 나이가 되면 집안 아들과 짝을 맺어주는 제도이다. 이렇게 결혼을 한 부부에게는 큰 정이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일꾼처럼 들인 제도라 고부간의 사이도 좋지 않았단다. 다첸의 전당포에 오래된 금비녀를 들고 나타난 할머니가 바로 이런 민며느리였다는데 친부모처럼 시부모를 섬기다보니 시부모가 감복하여 집안에 여인들에게 물려주는 금비녀를 물려받았단다.

하지만 아들이 얻은 며느리는 황 할머니에 눈에 차지 않아 몰래 금비녀를 빼돌리기 위해 전당포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신이 죽어도 절대 아들내외에게 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할머니. 하지만 전당포주인의 중재에 할머니와 아들내외는 화해를 하고 금비녀를 찾아갔다는 일화가 감동스럽다.

 

도박을 하기위해 뻔질나게 전당포를 드나드는 사람, 대학교 학비를 위해 자신의 입학통지서를 맡겼던 여학생, 저승가는 길에 쓰기위해 모아두었던 할머니의 수미전을 쓸 수가 없어 돈을 맡기고 돈을 빌려간 손자, 분단전에도 타이완으로 이주를 해와서도 군부의 영광을 누렸던 차오 장군의 일화는 중국의 근대역사와 함께 몰락한 장군의 일생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예전의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집안의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면서까지 누리고 싶었던 안락한 삶. 하지만 아흔이 넘어서도 목숨은 남아있고 더 이상 맡길 물건도 없었던 차오 장군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아마도 장제스장군이 훈장처럼 하사했던 브라우닝 권총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전당포업을 오래하면서 물건을 보는 안목과 더불어 사람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고 한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물건에서만 짚어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약에 취한 사람, 도박에 빠진 사람, 신용을 지킬 사람까지 가늠해내는 재주가 있는 그는 '손님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전당포를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물건의 진위보다 사람의 진위를 감정하는 것이 전당포를 할 수 있는 중요 조건이라는 것이다.

하긴 남을 속이는 일이 너무나 빈번한 요즘 경제적인 손실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정말로 중요할 것같다.

 

 

전당포라는 업이 물건을 맡아두고 돈을 내주고 맡긴 만큼 이자를 챙기는 것으로 안다. 기한이 경과되면 판매를 통해 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렇게 모인 돈을 투자도 하는 모양이다.

수출을 하려고 제작했던 컬러냄비를 못팔게된 사장이 전당포에 컨테이너째로 맡기고 돈을 빌어간다. 하지만 사장은 외국으로 도주하면서 컨테이너를 양도하게 된다. 저자는 이 물건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팔면서 영업의 노하우를 알게된다. 사이즈별로 가격별로 가격표를 붙여 팔다가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자 아예 고객 스스로 돈을 넣고 잔돈을 거슬러갈 수 있는 돈통을 앞에 놓고 사이즈에 관계없이 갯수에 따라 50위안씩 정해 팔았더니 원금을 넘게 돈을 회수했고 자신만의 장사모델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전당포뿐 아니라 장사수완도 있었던 셈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든 나는 사람 감정이 물건 감정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당포 주인인 저자 천쓰린은 물건과 돈을 맞바꿔주는 사업자가 아니라 사람을 꿰뚫어 보고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다고 믿는 정확하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부호의 외아들 다뚝 천의 믿을 수 없는 타이완 여행기와 볼품없는 중고 파커 만년필에 깃든 사세지간의 정에 얽힌 이야기를 보다보니 사람 사는 모습이 어디나 다 비슷하구나 싶다.

그래도 아버지의 사회사업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어주고 기부도 하는 전당포 주인 천씨의 삶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멋진 모습이다.

장물을 맡았다는 오해도 받고 감옥에 갈뻔한 일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전당포'간판을 걸어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그의 '다첸 전당포'에는 단순한 물건과 돈이 오가는공간이 아닌 감정과 온기가 존재하는 특별한 전당포이다. 천일야화처럼 사람사는 다양한 모습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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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과 보물 - 20세기 브랜드에 관한 명상, 증보판
윤준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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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동네어귀에 가위소리 철걱거리며 '고물 삽니다'라고 외치는 아저씨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떨어진 고무신짝이며 아버지가 비워냈던 소주병에 구멍난 양은남비 등속들이 뽀얀 강냉이로 바꿔지던

시절이 있었다. 고물이 보물단지가 되어 내 손에 쥐어지던 그런 시절말이다.

나이가 들면 눈물샘도 헐거워지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울컥 거렸다.

돌아가기 싫은 지단했던 시간과 만나는 일들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과거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에서 오래전 덮개가 달린 TV가 나오고 등뒤에 커다란 밧데리를 짊어진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보이면 가슴속에 아지랑이가 몽골거리며 올라오는 것같이 간지럼이 느껴졌었다.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돌아보기 싫었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 내 앞에 불쑥 서있는 것만 같은 책이다.

표지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포니택시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그림이 있고 딱 이글을 쓸수밖에 없을 것같은 저자가 청바지에 모자를 떡허니 쓴 모습이 뒤에 이어져 있다.

길을 가다가 시장하여 찾아든 소박한 식당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기가막힌 맛을 찾은 것처럼 보물같이 다가온 책이다.



지금의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어리버리하던 내 중학교 시절 나를 붙들어주었던 한 손에 잡혔던 그 책들.

'삼중당'이라는 말속에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여학생의 외로움과 방황이 묻어 있었다. 책은 사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에서나 빌려보는 것이라 여겼던 그 시절 간절하게 손에 넣고 싶었던 삼중당의 그 책들. 청계천 헌책방에 가면 혹시 만날 수 있으려나.

''삼중당문고'란 이름에 향수를 갖는 분이라면, 지금 어디서든 그 시절에 읽은 책값의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를 진작 뽑아내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분들일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가슴이 덜컥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누군가는 삼중당의 그 소중한 부가가치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삶을 살고 있겠지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부끄러워진다.



학교가 파하면 쪼르륵 달려갔던 만화방에서 만났던 주인공들의 이름을 들으니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꺼벙이, 독고탁, 땡이...그리고 신문연재속에서 만났던 고바우영감이며 왈순아지매...아 너무도 그리운 이름들이다.

이런 토종만화도 있었지만 그 시절 만화의 대부분은 일본 것을 베낀 것이라는 것도 그 때는 몰랐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희자나 권영섭이란 만화작가는 실제 존재했을까? 작가님 혹시 이글을 보시면 알려주시길..


책을 읽다보면 마치 나와 합체가 된 것같은 일체감이나 동화감에 휩싸이게 하는 작가가 있다.

'윤준호'라는 이름으로는 그의 나이가 검색되지 않더니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나온 그의 정보에서 나는 작가가 나와 한 살 터울의 동시대 사람임을 알아내었다. 어쩐지 나를 이렇게 온전히 아무런 저항없이 과거의 시간으로 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 시간을 나와 함께 했을 것이란 짐작이 맞았다.



성냥공장이 즐비했다던 인천에서 성장한 탓일까. 작가는 유독 인천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수인선 협궤열차며 유엔성냥이며 경인선에 어린 추억까지.  그의 첫사랑이 살았다던 당산동을 지나칠 때면 그도 나처럼 아련한 시간속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꼬름한 냄새가 나던 이명래고약을 성냥불로 그을려 녹인 후 종기에 붙였던 기억이며 빨간 이뿐이 비누로 양은냄비를 북북 문질러 광을 내던 기억, 그리고 많이 먹으면 똥이 나오지 않는다고 옷장위에 숨겨두었던 원기소를 동생을 엎드려 놓고 꺼내 내려 실컷 먹다가 며칠 변비로 고생했던 기억까지..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시간들이 마꾸 되살아났다.



 

단지 지나간 시간들과 만날 수 있게 해준 60가지의 카테고리를 골라낸 것도 예사롭지 않지만 덧붙인 그의 철학들도 대단하기만 하다.  성냥을 소지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상징이란 말, 신만이 가졌던 불씨를 갖는다는 것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뜻...아 그렇지. 불씨가 열정이 되고 청춘을, 젊음을 불태우다가 언젠가는 사그러지는 그 순환의 법칙들.


하필이면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붉은 글씨로 온 나라가 어린이를 추앙하는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일 년 열두달 모든 날이 어린이 날이 되어버린 요즘같은 시대에 어린이 날이야 없앨일은 아니지만 굳이 공휴일까지야...하는 저자의 말에 동감 한표!

그 어린이를 희생과 눈물로 길러낸 어버이날에 붉은 훈장을 씌우고 공휴일로 하자는 그의 말에 또 한표!

원기소라도 먹고 힘을 내야하는 요즘 어머니와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그의 응원이겠지만 불쑥 이제 저자나 나나 그 요즘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자리에 있고보니 슬며시 어린이를 밀어내고 붉은 공휴일이라도 차지하고픈 흑심으로 비춰질까 걱정스럽긴 하다.


글은 역시 마음으로 써야 제맛이다. 오래된 기억을 잊지 않고 떠올려 종이위에 살려낸 그의 기억력과

맛깔스런 철학들...그런 것들이 섞여 숙성되고 발효되어 지금 내 인생의 술상에 올라앉은 느낌이다.

잘 삭은 홍어회 한 접시에 그의 막걸리같은 이 책을 놓고 저자와 한잔 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대나무 소리가 사각거린다는 학교로 찾아가 불쑥 청하고 싶다.

"고물단지가 될뻔했던 시간들을 보물단지로 만들어 주었으니 한 잔 살게요. 시간 되시죠?"

한 오십년 쯤 후에 지금 내곁에 있는 어떤 것들이 보물이 되어 추억될 수 있을까.

스마트한 세상에 미처 골라낼 시간조차 없이 지나쳐버리는 수 많은 고물들중에 보물을 골라내는

안목을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칠까...무조건 어린이를 추앙하는 오늘같은 날 이 책을 덮으면서

문득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삼중당 책 읽고 그럭저럭 고단한 삶을 살아낸 스스로에게 술 한잔 권하는 오늘이 될 것같다. 수고 많았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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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
서영 지음 / 책벗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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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중국은 여자를 귀하게 여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남성위주의 역사속에 그나마 흔적을 남긴 중국여성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떠올랐다. 신사임당이나 허날선헌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들이 그나마 흔적을

남겼지만 이 책에 소개된 중국의 여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책의 표지에는 15세 연상인 한량 유방과 결혼하여 그가 왕이 되는데 크게 일조한 여치의 초상이 그려져있다.

중국의 비범한 여성중에는 뛰어난 미모로 왕을 미혹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미인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여치는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존경받았지만 후에 한나라의 시조가 되는 남편 유방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질투의 화신으로 변하고 만다. 영웅이 미인을 마다할리 없다지만 유방이 총애하던 척희의 사지를 자르고 돼지우리에 던져넣은 여치의 포악함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동서고금 시앗에 대한 본부인들의 앙심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여치가 자신이 원하는 왕을 세우고 그에 못지 않은 권력을 누렸을만큼 그녀의 능력은 탁월했다.


중국의 고대 미녀인 4대 미인인 서시, 왕소군, 초선, 양옥환(양귀비)중에 두 여인의 삶이 나온다.

가슴앓이를 하여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는 서시를 흉내내는 여인들이 많았을만큼 창백한 미모를 자랑했던 서시는 사실 최초의 미녀스파이였다고 한다.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구천과 부차의 이야기속에 그녀가 등장한다.

오월동주의 오나라와 월나라는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다. 호시탐탐 원수 갚을 날만 기다렸던 구천에게 신하 범려는 부차에게 서시를 보내 염탐을 하자는 제안을 하게되고 서시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오나라는 멸망하고 서시의 최후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한 나라의 존망을 결정한 서시의 아름다움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단지 예쁘기만 했을까. 아마 머리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의 미모가 역사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렸을지는 모르지만 한 여자로서의 일생은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통일하여 황제가 된 진시황의 뒤에는 파 과부 청이란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시댁의 가업을 이어 광산업으로 성공한 그녀는 진시황의 안목을 미리 알아보고 많은 재산을 헌납하고 진시황은 그 돈으로 전쟁을 하여 중국을 통일한다.

영원불사를 꿈꿨던 진시황에게 수은으로 강을 이룬 진시황릉을 제안한 것도 청이었다.

청이란 여인을 보며 제주에서 장사로 큰 돈을 벌었던 만덕이 겹쳐진다. 말하자면 두 여인들은 현대의 CEO인 셈이다.

만덕은 가난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그토록 원하던 육지에 올라 금강산 구경을 하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지만 청은 한 나라를 세우는데 원동력이 되었으니 가히 그 파워가 엄청나다.



어쨋든 오래전 중국이란 나라도 남자들의 세계였다. 단지 남자의 부속물로 살다가 사그러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불태우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네들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역사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역사가 되기도 하는 법.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그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찬란한 성취를 이룩한 여인네들의 삶을 보니 영원히 사그러지지 않는 꽃을 보는 것 같았다. 악녀였든 선녀였든 한바탕 제대로 살다간 여인네들의 삶이 문득 부러워졌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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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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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중에 교육의 본질이 출세나 취업을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는 작금의 세태를

비난하는 것에 큰 공감을 느꼈다. 교육이란 단어가 이 책의 주제인 '수업'과는 조금 다른 뜻이긴

하지만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심신을 연마하고 인격을 고양시켰던 작업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혹은 출세의 디딤돌쯤으로 변질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랫동안 합기도 유단자로서 무술인으로서 평생을 배움과 함께한 저자의 참다운 수업에 대한 조언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약삭빠르고 성적위주의 사회에서 좀더 진득하게 어쩌면 어리석은 마음으로 수업을 해보자는 조언에 공감한다.



무술인들이 무예를 겨루는 도장은 그저 대기실일 뿐이고 도장밖이 무대라는 스승의 말이 크게 와닿는다.

반 백년을 살아보고 사회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치 전쟁터의 한복판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지긋지긋해 보이는 학교라는 공간에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될거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오로지 '공부'라는 상대와 싸워야 하는 학교라는 공간은 역시 대기실일 뿐이다.

하지만 학교밖으로 나서는 순간 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아바타처럼 온갖 무기를 들고 전투를 시작해야 한다.

그저 성적만 올려야하는 교육에 익숙했던 아이들에게 세상은 면역체결핍의 무시무시한 체험장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부모의 과잉으로 독립적이지 못한 자아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자존'과 '자아'를 착각하는 상황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는 즉시 '자아'를 벗어 던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명상이 좋은 수업임을 권하고 있다.


문학과 철학, 교육분야에서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주던 사상가인 저자가 만일 무도인으로 자신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가슴에 와닿는 수업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식이 아닌 지혜 그리고 무술인에게 필요한 기의 훈련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조언이 스마트시대의 아이들에게 좋은 교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디지털시대 일수록 심신은 아날로그로 역행해야 참다운 수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 선배에게서 좋은 수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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