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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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면 폭발하는 까칠한 남자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고지식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를 제대로 다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가족도 없고 타협도 없고 고집만 센 오베라는 남자를 제대로 알아보자.

 

 

철도회사에서 일했던 오베의 아버지는 기계를 좋아했고 성실했으며 정직한 사람이었다.

오베 역시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뭔가를 고치고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열 여섯 그의 아버지가 죽자 그는 아버지처럼 철도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직장동료이며 선배인 톰이 그를 도둑으로 몰아 내쫓길 위기에 처했지만 그의 정직성을 인정한 이사덕에 야간청소원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했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소냐!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웃기를 좋아했던 그녀만이 유일하게 오베라는 남자의 가치를 알아봤다.

하지만 소냐는 오베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사고를 당해 임신중이었던 아기도 잃고 자신도 휠체어 신세를 지는 장애를 가지게 된다. 오베는 그런 그녀를 위해 휠체어 크기에 맞춰 부엌을 개조했고 새로 옮긴 학교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도 만들어 주었다. 오베에게 소냐는 인생의 전부였고 유일하게 그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여신이었다.

하지만 암에 걸린 소냐는 결국 하늘나라고 떠나고 만다.

이제 오베에게 삶은 견디기 힘든 현실일 뿐이다. 유일한 선택은 자살이었다.

목을 메어 죽기로 한 날 이웃에 이사를 온 패트릭과 파르바네부부는 끊임없이 오베를 귀찮게 한다.

사다리를 빌려달라느니, 병원까지 태워달라느니...도대체 이 부부때문에 오베는 죽을 틈이 없다.

 

 

루네와 아네타는 같은 날 이사온 이웃이었다. 두 부부는 한동안 친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오베와 루네는 전혀 맞는 친구가 아니었다. 일단 차를 고르는 것부터가 달랐다. 오베는 평생 사브를 선택했고, 루네는 벤즈를 고집하더니 마지막엔 BMW를 선택하면서 오베는 등을 돌리게 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사브만을 사랑했던 오베는 이웃에서 다른 차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면 불같이 화를 낼 정도이다. 참 별난 남자 맞다.

 

 

어쨌든 죽으려고 라이플을 머리에 대기도 하고 약을 먹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 처리해야 할 일들에 밀려 죽어야 할 날들이 미뤄지게 된다. 와중에 파르바네는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않나 알츠하이머에 걸려 죽어가는 루네가 요양원에 맡겨지지 않도록 하얀셔츠를 입은 관료들을 혼내주기 위해 머리도 써야하는 오베!

이웃들의 어려움들을 해결해주면서 오베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심지어 파르바네의 일곱 살짜리 딸을 위해 아이패드를 선물하기도 한다. 이웃들은 까칠한 남자 오베가 사실은 따뜻한 사람이고 선한 사람임을 알게된다. 단지 표현하는 법이 서툴렀다는 것을.  좌충우돌 오베가 해결해나가는 사건들은 유머스럽고 엉뚱하다.

늘 아내의 묘지를 찾아가 꽃을 바쳤던 오베는 결국 아내의 곁으로 향한다. 아주 평화로운 표정을 한 채.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작품이다. 죽은 아내를 잊지못해 그녀의 곁으로 가려고 자살을 꿈꾸는 남자.

그리고 필연인지 그의 이웃들은 계속 그의 죽음을 방해한다. 그러면서 가족처럼 오베의 곁에서 오베의 가치를 알아가는 사람들.

이 작품이 왜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 것 같다. 우리 이웃에도 오베같은 남자가 살고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적어도 무단 주차를 하거나 강도짓을 하려는 사람들이 얼씬거리지 않을 것 같아 좋을텐데 말이다.

오베씨! 소냐와 함께 거기서는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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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행복 성장의 조건
폴 돌런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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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의를 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믓함, 또는 그러한 상태' 라고 되어있다.

인간은 살면서 행복을 얼만큼 느끼고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나는 행복한가.

이 책은 행복은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흔히 생각을 바꾸면 같은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바꿔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고 행동과 환경이라니 어찌보면 '발상의 전환'이랄까 파격적이고 실리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과연 내가 행복한가? 그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는 행복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고 소개한다.

'조금 번거러워 보이지만 활동의 세부 내용이나 각각의 활동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 정확한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테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 사용법을 행복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요소들을 죽 나열한 뒤 성취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돈, 새로운 경험, 섹스와 잠, 새집, 동료들....행복감을 주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이 일지에 쓰여진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런 요소들이 내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스스로 채점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같다.

 

 

과연 이런 일지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하루하루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시도해봐도 좋은 방법같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런 잣대로 삶을 재어보는 일에 무디어 지고 일상이 나른하기 마련이다.

새롭게 일상을 바라보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즐거움과 목적의식 모두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행복하거나 슬픈 정도는 비슷할 수 있지만, 즐거움과 목적의식이 조합되는 비율은 저마다 다르다.

때에 따라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마냥 즐겁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목적의식이 있는가...이 두가지가 적절하게 만족되어야 진정한 행복이라는 말인데 나를 즐겁게 해주는 어떤 요인이 삶에 목적의식에 반영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해석으로 들린다.

 

 

더구나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중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의 확실한 방법이라는데 한표 던지고 싶다.

바로 전에 읽었던 '블루베일의 시간'에서 말기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보면서 죽어가는 이들이 우리는 왜 좀 더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는지 후회의 말을 남기는 것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혼자서는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진들 진정 큰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면 더 많은 것들이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신앙이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접촉이 많기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록 경험치도 높아지고 혹시라도 상처를 받았을 때라면 상실감으로부터 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막연히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더라도 좀 더 행복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아과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미 우리가 해왔던 일들도 조목조목 들여다보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된다. 지루하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늘 내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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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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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와는 참 인연이 깊은 책이다. 여고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수녀님이기 때문이다. 강릉에 있는 갈바리의원은 10년도 훨씬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아 수녀회에 또다른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포천에도 여러번 간적이 있었다.

수녀회에 거의 막바지로 들어간 친구는 그 시절 아직 '호스피스'개념도 없던 시절에 자신을

가장 적절한 곳에 쓰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바로 이 수녀회였는데

지금도 전국방방곡곡은 물론 전세계를 다니며 '호스피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몇 년전부터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대중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도 삶의 마지막 여정이고 삶처럼 고귀하게 다루어져야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스피스'나 '안락사'같은 단어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중에는 이런 주제가 낯설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죽음을 맞이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나 역시 그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적어도 선택할 수 있다면 죽음의 형태만큼은 스스로 선택하리라 다짐했다.

이런 생각에는 재작년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죽음을 전혀 예기하지 못하고 병원에 들어갔던 여동생은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면서 호흡기를 꽂아야했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차라리 호흡기를 꽂지 말고 그 시간 조금 힘들더라고 가족들과 마지막시간을 보냈더라면 덜 아쉽지 않았을까.

 

 

강릉의 갈바리의원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병원이다.

말기암환자같은 시한부 인생들이 항암치료같은 의학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면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호스피스 병원인 셈인데 사실 죽음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이 병원의 치료를 포기하고 이 기관에 들어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누구나 삶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기에 치료를 좀더 해보면 어떨까하는 실날같은 희망을 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역시 죽음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기에 갈바리의원에 들어오는 환자나 가족들은 아주 많은 생각과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마지막이 다가오면 '파티'를 한다고 표현한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병실마다 눈물바다가 되긴 하지만 수녀님들은 마음껏 우는 것도 파티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닥치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남길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가는 사람은 가는 사람대로, 남은 사람은 남는 사람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가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언젠가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남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축복을 해주는 경건한 시간이 바로 '파티'이다.

 

평생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일만 죽도록 하다가 겨우 살만해지니 덜컥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족들에게 제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자고 말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너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구나.' 곧 세상을 떠날 아빠가 아들에게 뒤늦은 후회의 편지를 썼다.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 사랑한다고 더 말해주지 못한 것,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부탁한다는 말들을 썼다.

돈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던 일들이 후회로 남고 만 것이다.

 

 

나를 위해서 살아 본적이 없는 것도, 남을 위해 봉사를 좀 더 하지 못한 일들도 후회로 남았다.

과연 나는 지금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까.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떠올리지는 않을까.

 

다큐 3일에서도 이 병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고 독립영화 '목숨'에서도 감동스런 이야기가 펼쳐졌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을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들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흐른다.

'천년 만년 살 것 같았나 보죠...지금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데...'

죽음을 앞둔 이들의 쓸쓸한 말들이 가슴을 친다.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그 길 죽음!

혹시라도 남을 이들에게 후회스런 일들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위해 쓴 시간들은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수녀님들과 의사가 있는 갈바리의원에서는 지금도 죽음과 사랑이 교차되고 있다.

남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이렇게 선한 일을 하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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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송병선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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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혁명가라던가 투쟁가라고 하면 체게바라나 카스트로같은 카리스마를 연상하게 된다.

우루과이라면 '우루과이라운드'가 얼른 생각나지만 남미국가중에서는 잘 알려진바가 없는 국가이다.

한때는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렸을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나라인데다 낙천적인 성격의 국민들이

순하게 살아온 나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무히카 전 대통령의 전기를 담은 이 책을 읽다보면

남미의 뜨거운 열정을 닮은 시간들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이렇게 선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할아버지가 한 때는 국민전선연합의 도시게릴라출신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같은 것들이 나라마다 있었던 모양인데 우루과이역시 60~70년대에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극심했고 무히카역시 이 거센 흐름에 중심에 있었다. 군부와 대립하고 노동자세력을 대변하는 게릴라로서 지하 땅꿀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총탄을 맞거나 잡혀 투옥되기도 하는 등 그의 시간들은 지난하기 그지 없었다.

 

 

가난한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 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사실 전세계에서 대통령을 지냈거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선택받은 교육을 받거나 환경을 지닌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심지어 가난한 출신은 거의 드물정도가 아닐까. 무히카는 말한다.

"우루과이에 가장 필요치 않은 사람이 바로 강한 사람이에요!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똑똑하다는 정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도움을 청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흔히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태평시절에야 굳이 영웅이 필요도 없겠지만 해결책이 필요한 순간 짠하고 나타나 해결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뜻일게다.

그런의미에서 보면 무히카는 적절한 시기에 나타난 우루과이의 영웅인셈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밑에서 성장한 무히카는 일찍부터 사회와 노동계급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관심까지도 많아서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물러난 지금도 꽃을 키우는 농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뿐더러 소외받은 사람의 상처까지도 보듬는 품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풍요롭게 부족함이 없이 자란 사람보다는 가난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보면 자신의 가난이 극심할 수록 권력을 잡았을 때 보상심리가 발휘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 점에서 무히카의 '큰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가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지나왔던 길에는 수많은 폭력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도 인간인만큼 어찌 폭력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가 지금의 부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같은 도시게릴라출신이라는 공통점과 대업을 위해 자신의 삶의 어느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8순의 할아버지이지만 한 때 그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여러 여자들과 동거를 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남미국가답게 당시로서도 파격적인 자유연애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는 것은 게릴라로서의 삶에서는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사선과 맞닿은 자신의 삶에서 상처받을 가족을 만드는 일이 유일하게 그가 포기한 일이 아닐까싶다.

 

 

"혁명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구들이 아주 다른 환경에서 표출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의 이 말에서 사랑의 다른 표현을 그가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부인과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대통령시절에도 반은 자신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지금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예후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우루과이라는 나라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그가 적의 보복이 필요없는 안정된 정치를 수행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거니와 아무 두려움없이 살아갈만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부를 도둑질해간 전직 대통령들의 사저에 여전히 경호원들이 둘러싸여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니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도 무히카 대통령에게 보내는 우루과이국민들의 사랑만큼 전직대통령에게 무한 애정을 보내는 그런 시대가 오기는 할 것인가.

 

대체로 무히카가 지내온 시대는 전세계가 이데올로기와 경제의 급격한 변화에 정치적으로 불안한 때였다.

우리를 포함하여 수많은 나라가 독재정치에 휘둘리기도 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가 있는가하면 몰락한 정치인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시대에 자칫 독재국이 되거나 빈곤국에 전락할 수도 있었던 우루과이가 무히카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곁에 있는 이웃 아르헨티나나 쿠바의 몰락을 보면 왜 우루과이는 행운이었는지를 쉽게 비교할 수 있다.

그가 걸어온 한 나라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한 인간의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국민과 함께 울고 웃어주던 무히카같은 대통령을 우리도 갖고 싶다.

지금 정치에 발을 담근 모든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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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과 세바스찬
니콜라 바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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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1943년 전쟁이 한창이던 알프스산맥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버려진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사랑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이 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양을 치고 사냥을 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던 마을에 독일군들이 나타나고 자유도 물자도 줄어드는 생활이 이어진다.

더구나 산에서는 양을 죽이고 사람마저 헤치는 괴물 '베트'의 출현으로 뒤숭숭하기만 하다. 실제로 사냥을 나갔던 마을주민 앙드레는 베트에게 공격을 당해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베트는 전에 양치기 주인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다 도망쳐 야생성을 보이는 불쌍한 개일 뿐이다.

여덟살인 세바스찬은 어려서 엄마가 산넘어 아메리카로 떠났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믿고 자라온 천진한 소년이다.

교육을 받아봤자 지금같은 시국에서는 도움이 안된다고 믿는 할아버지의 고집때문에 세바스찬은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그저 할아버지와 함께 양을 돌보거나 젖을 짜고 빵집을 하는 누나 앙젤리나를 심부름을 하는 정도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괴물 베트에게 마음을 빼앗긴 세바스찬은 베트가 괴물이 아니라 심한 트라우마로 적대감을 가진 불쌍한 개라는 것을 알게된다. 베트에게서 자신의 외로움과 상처가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적대감을 보이던 베트는 먹이를 주고 안심시키는 세바스찬에게 마음을 열게된다.

세바스찬은 베트가 암놈임을 알게되었고 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의 안식처인 대피소에서 돌봐주게 된다.

 

 

하지만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 독일군장교 브라운중위는 마을사람을 모아 베트를 잡으라고 명령한다.

벨에게 위험이 닥친 것을 직감한 세바스찬은 벨을 숨기려고 하지만 벨이 괴물이라고 믿는 할아버지의 계략으로 벨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벨이 죽었다고 생각한 세바스찬은 할아버지를 미워하게 되고 다행히 발견된 벨은 심한 부상으로 죽음에 놓이게 된다.

어린 소년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벨을 치료하지만 벨은 서서히 죽어가게 되고 결국 의사인 기욤에게 달려가 벨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사실 기욤은 의사이지만 레지스탕스일원으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탈출하는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장면을 세바스찬에게 들키고 서로에게 비밀을 묻지 않기로 약속하게 벨을 치료해 생명을 구해준다.

후일 늑대가 할아버지의 양들을 공격해오자 양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기욤이 발목을 다치고 심한 눈보라속에 죽을 위기가 닥치자 벨은 썰매에 기욤을 태워 마을로 데려오면서 은혜를 갚게된다.

 

 

앙젤리나를 좋아하던 기욤은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고 부상때문에 탈출 가이드를 할 수 없게 된 기욤을 대신해 앙젤리나가 한 가족의 탈출을 돕게된다. 몰래 누나뒤를 밟았던 세바스찬과 벨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얼음과 눈이 덮힌 산속에는 천길 낭떨어지인 크레바스가 숨어있다.

더구나 한밤중에 뒤를 쫓는 독일스키부대원들에게 잡히지 않기위해 사력을 다해 산을 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한다.

오로지 벨의 동물적인 감각만을 의지한 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거기에는 어린 소년 소녀도 함께 있다.

1960년대에 우리 드라마 '대장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는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한 벨과 세바스찬은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우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학대받은 기억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벨이 세바스찬의 사랑으로 순한개로 돌아오고 결국 벨은 기욤을 살리고 탈출을 돕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메리카로 갔던 엄마가 돌아올것이란 믿음으로 살아온 세바스찬의 비밀도 밝혀지면서 할아버지와 등을 돌렸던 세바스찬도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다.

 

참으로 감동스런 작품이었다. 전쟁중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의로운 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독일군이면서도 평화를 택한 브라운중위의 선행도 감동스럽다.

앙젤리나와 기욤 그리고 브라운중위의 삼각관계또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여러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이미지도 떠오르게 한다.

아마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마지막 수업'의 무대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싶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출판사 '밝은 세상'의 작품은 한번도 기대를 져버린 적이 없다. 오랫동안 감동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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