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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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에서 만난 그녀는 다소곳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었다.

물론 배역에 맞춘 이미지이겠지만 본성은 숨길 수 없는 것인지 약간은 소심한듯 발랄함보다는 내면에서

느껴지는 깊은 지성같은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흔히 연예인들이 책을 낸다고 하면 여행에세이나 패션, 자신의 취미생활에 대한 소개같은 것들이었다.

간혹 기성작가 버금가는 작품도 만나긴 하지만 이보영의 이 책은 브라운관에서 만난 그녀를 단숨에

내곁으로 끌어다 주었다. 화려한 미모의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지적인 이보영, 그리고 여리고 감성적인 결을 갖고 있는 인간 이보영의 모습을 발견하니 어느덧 그녀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내면서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놓는 일이 두려울법도 했을것이다.

혹은 사라지지 않을 활자가 언젠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까 주저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우는 접어도 좋을 것같다. 바쁜 와중에서도 그녀가 읽은 책들은 하나같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런 책들이다.

 

 

 

'꾸베씨의 행복여행'은 나도 아주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었다. 그녀가 한때 아주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 만났다는 이 책으로

그녀는 많은 위안과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하지 않기를' 나역시 희망한다.

 

 

 

그녀의 책고르기는 의외로 까다롭다. 평소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 선호하는 출판사, 각종 문학상 수상작 위주로 직접

서점을 방문해서 고른다고 하는데 이런 매서운 눈을 가진 독자에게 선택된 책들은 보나마나 뛰어난 책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읽었다는 책들과 그 작가들 그리고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까지 아주 괜찮다는 얘기다.

심지어 번역이 엉망인 책들은 가차없이 걸러진다니 출판사들은 긴장을 해야할 것 같다.

 

 

 

다소 보수적인 집안에 장녀로서의 책임감때문에 어린시절 마음앓이가 많았던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역시 책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읽었던'어린 왕자'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 읽어보니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말에 공감한다.

내 시선도 상황도 마음의 폭도 달라졌으니 같은 책이라도 느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아! '어린 왕자'의 글귀속에 이런 말이 있었던가? 나 역시 분명 읽었을 그 문장이 너무 새롭게 다가온다.

어린아이를 사랑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이를 갖지 못하고 비행기사고로 죽은 쌩떽쥐 베리의 이 소설은 지구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어린 왕자'를 만나는 일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가장 순수한 나를 만나는 일이므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보영은 직업의 특성상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친구도 많지 않고 아는 장소에만 가는 그녀로서는 이런 만남들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연예계가 의외로 까다롭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곳에서 마찰없이 지내기 위해 마음고생이 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만난 법정스님의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의 글귀는 그녀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큰 위안을 준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나 역시 이런 인연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법정스님이 의외로 이런 글을 쓰셨다니 의외였다. 누구든 만나면 좋은 인연이 되게 하라...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더니.

'애써 인연 맺지 말라. 만날 인연이라면 돌아가더라도 만나리라'

 

코끝이 찡해진다. 반생을 넘어 불필요한 인연들로 마음고생했던 내가 진작 이 글귀를 만났더라면...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텐데...어쩌면 나이어린 인생의 후배 이보영은 이런 보석같은 책을 만났을까.

이렇게 그녀가 쓴 이 책을 만난것도 인연이 아닐까. 아무 공통점도 없고 실제로 만날일은 더욱 없을 것 같은 그녀와의 인연이 바로 이렇게 이어진 것도 어차피 만날 인연은 만나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증명한 것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얼마전 축복같은 아이까지 낳은 그녀의 삶이 더 행복하고 따뜻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의 아이는 따뜻하고 지적인 엄마의 품에서 멋진 아이로 자랄 것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면서 말이다.

만나서 반가웠다고...TV에서가 아니라 깊은 그녀의 내면을 만나서 더욱 반가웠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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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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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년 전, 가나가와 현경의 경시였던 마키시마는 유괴사건을 수사했었다. 

유괴된 아이는 당시 텔레비전 방송에 자주 등장하던 대형할인점 사장의 손자였던 다섯 살 겐지군이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2000만엔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이를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었지만 경찰에 알리지 않다가 결국 아이 아버지의 결단으로 뒤늦게 신고가 들어온 상황이었다.

긴급하게 수사본부가 꾸려지고 돈과 아이를 맞바꿀 현장에 투입되지만 범인은 세 번이나 장소를 바꾸며 이동시켰고 최후의 일전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공원이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범인인듯한 청년의 뒷모습만 쫓다가 놓치고 만다. 며칠 후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경찰들은 작전실패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마키시마는 지휘관을 대신하여 회견장에 서게되고 다구치는 매스컴들을 향해 화를 참지 못한 채 설전을 벌이고 쫓기듯 회견장을 떠난다. 그 순간 어린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심장쇼크로 위험에 빠진 딸아이의

상황을 알리는 아내의 전화를 받게 되고 그 모든 상황은 매스컴에 그대로 중계되고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전화를 받는 개념없는 경찰로 낙인찍혀 좌천되고 만다.

 


 

육년 후, 변방으로 좌천되었던 마키시마는 네명의 사내아이가 연쇄적으로 살해된 사건에 다시 투입된다.

육년 전 사건의 지휘관이었던 소네는 조카이면서 총무과장인 우에쿠사의 조언으로 이 사건을 방송국의 타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에 노출시키기로 한다.

우에쿠사는 엄친아스타일의 남자로 오래전 짝사랑하던 여자 미오코가 뉴스앵커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기위해 이 극장형수사를 이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엄청난 댓가가 뒤따를 이 프로젝트에 희생양이 되줄 인물을 찾던 중 육 년전 맹수의 먹잇감이었던 사내 마키시마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사건현장에 투입된 마키시마는 육년 전의 '영맨'이 아니었다.

거의 잡을 뻔했던 유괴범을 놓치고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절망은 범인들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고 죄책감은 그를 냉혈한처럼 만들었다. 그런 그를 다시 불러올린 소네의 음흉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쇄살인범을 쫓는 수사본부의 수장을 맡은 마키시마는 변방의 경찰서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다독여주었던 쓰다와 함께 가나가와 현경으로 향한다.


인기 프로그램인 '뉴스 나이트 아이즈'에 출현한 마키시마는 스스로를 '배드맨'으로 칭하는 범인을 향해 어둠에 숨어있지 말고 왜 아이들을 살해했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락을 달라고 말한다.

결국 마키시마의 예측대로 배드맨에게 편지가 날아오고 마키시마와 배드맨과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공개수사와 비슷한 방식을 취하면서 서서히 범인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려는 마키시마의 작전과 그를 조롱하며 꼬리를 감추고 있는 배드맨과의 일전도 흥미롭지만 이 극장용수사를 이용하여 사랑을 얻으려는 우에쿠사의 비열한 음모가 사건과 얽히면서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마키시마가 출현중인 '뉴스 나이트 아이즈'의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라이벌 방송사인 '뉴스 라이브'의 앵커 미오코의 환심을 사기위해 우에쿠사는 비밀리에 그녀에게 수사상황을 전하고 '뉴스 라이브'는 그의 정보를 이용하여 '뉴스 나이트 아이즈'의 시청률을 따라잡기 위해 이 사건속에 뛰어든다.


범인을 찾아내려는 마키시마와 그를 무대로 끌어올려 다시 추락시키려는 소네, 그리고 이 무대의 상황을 집착과도 같은 사랑에 이용하려는 우에쿠사, 시청률에 목을 매어 맹수처럼 달려드는 방송사까지 한 마디로 모든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투영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상처받은 형사와 그를 묵묵히 지켜주고 도와주는 부하경찰들, 그리고 경찰내 스파이를 잡아내기 위해 덫을 놓는 장면들까지 여러 플릇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작품이다.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무대에 오른 마키시마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둠속의 범인을 끌어내고 결국 범인의 정체에 접근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손자 잇페이가 납치되고 그는 범인의 요구대로 다른 무대로 향한다.


납치된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경찰과 아이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그리고 분노!

과연 경찰은 그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할까? 어쩌면 그 죄책감은 사죄를 넘어 평생 주홍글씨로 남아 스스로 감옥에 갇혀 사는 경찰도 있을 것이다. 마키시마처럼.

 


 

나름의 이유로 이 작품의 무대에 오른 인간들의 심리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육년 전 사건에 대한 결말이 다소 아쉽게 다가온다. 냉철한 인물로 그려진 마키시마의 마지막 사건, 바로 자신의 손자가 납치되는 상황은 사실 읽는 내내 독자마저 예측이 되는 포석이 깔려있었다. 다소 어이없이 다른 무대로 끌려가는 마키시마의 모습은 작품내내 흐르던 그의 카리스마에 흠집을 남긴다. 그럼에도 범인에게 피격을 당한 후 병원 침대위에서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가슴속에 쌓인 사죄의 말을 전하는 장면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범인에게 고한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처럼 상처받은 경찰 마키시마의 도전이 성공을 거둔 멋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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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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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컬러링북이 한창 인기다. 특별한 내용도 없이 우리 어린 시절 색칠하기책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빈곳을 자신만의 색으로 칠하다보면 뭔가 채워지는 듯한 만족감을 느껴서인지 반응이 뜨겁다.

이 책 역시 시로 채우는 컬러링북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면에 시가 적혀있고 곁에 빈 란에 그 시를 채워넣는 '따라쓰기 좋은 시집'이라고 해야겠다.


 

'누구나 눈물 한 말 한숨 한 짐씩 짊어지고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헤매며 산다'라는 작가의 말이 따뜻하다.

시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도 모른다는 그 말에 코끝이 찡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시 '긍정적인 밥'에서 함민복은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고 가난한 시인의 삶을 찬양한다.

아마도 이 시가 쓰여질 무렵 시 한편의 원고료가 그 정도였던가보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 싶다. 시써서 부자가 되었다는 시인은 거의 본적이 없다.

아마 쌀 두말보다는 몇 가마쯤 들여놓은 시인은 몇 명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시인의 삶은 고달프지만 무병을 앓고 굿을 해야 목숨을 잇는다는 무당처럼 그들은 시를 쓴다.

 


 

'접시꽃 당신'의 작가 도종환의 '흔들리며피는 꽃'은 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일 것이다.

흔들리는 꽃이 마치 우리네 인생과 다름없어 흔들흔들 흔들리면서도 줄기를 곧게 세우고 살아야 한다는 이 시를 읽다보면 비틀비틀 위태로운 내 인생도 잠시 위안을 얻는다.

시 한권을 세상에 내놓기위해 시인들은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수 많은 종이위에 핏물같은 언어들을 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들이 마음으로 다가오면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역사가 된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인 라이너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글쎄 그러면 언젠가 시인의 충고처럼 삶이 나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까?

두툼한 소설이 전해도 모자란 의미들을 단 한줄로 압축해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 드는 주옥같은 시 111편 속에서 반짝 거리는 별들을 발견하고 그 별들이 우리의 슬픔들을 거두어 가져 갈지도 모르겠다.

책의 맨 뒷면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에서

읽히지 못하면 완성되지 못하는 책의 운명이 느껴졌다. 그 반은 채워야 비로소 책은 완성된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도 서점에는 완성되지 못하고 꽂힌 시집들이 무수할 것이다.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듯 그 많은 책들이

소생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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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
손명주 지음 / 큰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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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보고 관심을 가진 것은 날만 좋으면 멀리 제주가 건너다보이는 거문도라는 섬에 내려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귀촌을 꿈꿔봤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 귀촌하여 새로운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자체에서는 귀촌을 거들어주는 프로그램도 있단다.

100년은 너끈히 사는 시대에 이른 퇴직이나 도시에 찌든 삶에 쫓겨 허둥거리기 보다는 한 번쯤 생각해봐도 좋을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준비없이 내려올만큼 촌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나는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라는 정의를 보면 글이나 예술작품등을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는 작가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꿈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고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게스트하우스주인외에 작가라고 소개해도 좋을지 머뭇거리는 것을 보게된다.  등단을 하고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이들을 작가라고 한다면 굳이 작가쪽으로 직업분류를 하기 어려울수도 있겠지만 작가라고 부른들 누가 와서 시비야 붙겠는가. 결국 자신의 인정여부에 달린것 아닐까?



시골에서 자라 부모님의 소망처럼 손에 흙안묻히고 도시로 진출한 잘나가는 아들이었던 저자는 출퇴근시간에 목매고 적성에도 안맞는 거래처관리에 회식문화까지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결국 여행왔던 제주풍경에 반했던 기억을 떠올려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제주의 농가주택을 사들여 게스트하우스를 꾸미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단다.

도시녀인 아내 워니를 설득하여 딱 2년만 제주에서 살아보고 못견디면 그 때 다시 도시로 돌아오자고 꼬셔서..나 역시 여행왔다 홀딱 반한 거문도에 내려와 허름한 주택하나를 구입하여 개축이 아닌 신축을 감행했었다.

확실히 제주특별자치도는 여기보다 땅값 집값이 비싸긴 했다. 그래도 물 건너와 몸값 부풀려진 자재비며 인부들을 구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내 평생 다시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다소 소심해보이고 꼼꼼한 저자답게 집을 짓는 상황이며 건축비까지 나와있어 혹시라도 제주로 귀촌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 물론 당시보다 뭐든 올랐을테지만..



누구나 여행은 설레기 마련이고 풍경일때가 더 아름다운 법이다. 막상 그 풍경속에 나를 가두면 그 때부터 삶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 귀촌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노동이 아니라 낯선 시선과 텃세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소상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 곳을 떠나 살아갈 것이 아니면 텃세부분을 언급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섬을 비롯하여 육지에서도 텃세는 존재한다. 하지만 특히 육지것이라고 이름붙여질만큼 섬사람들은 육지것들에 대해 전혀 호의를 품고 있지 않다. 거문도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여기는 제주보다 낫다고.

그런 제주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자연스레 제주에 녹아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살아갈뿐이 아닐까.  내가 이 책을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섬과 저 섬이 뭐가 다를까..하는 것이었다.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려면 지하철로도 1시간 반정도..강변북로나 올림픽도로가 막히지 않는다면 40분 정도?

사실 10분정도 떨어진 대형마트를 가는 것은 아무일도 아닐만큼 평범한 일이지만 섬에서의 거리감각은 확실히 다르다.

남쪽이라는 선입견때문에 겨울에도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은 언감생심이다. 그 칼바람에 대한 지긋지긋한 체험을 이 책에서도 발견하니 전장에서 동지를 만난 느낌이다. 한 여름의 그 끈쩍거림과 머리끝이 타는 것같은 뜨거움은 또 어쩌고.

나도 네이버 블로그에 '섬에서 살아볼까'를 써 올리고 있고 때로 낚시로 얻은 횟감을 놓고 술한잔 하는 이야기나 사진을 올리면 '너는 좋겠다'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긴 모진 텃세와 아량없는 비바람을 견디고 이만한 여유도 느끼지 못할거면 뭐하러 섬에서 살꺼나. 느긋하게 책 읽고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던 저자역시 아직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제주의 삶을 접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게 되었으니 제주가 그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선물한 것이 아닐까.

별로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사람 가려가며 살아가는 저자가 이만큼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보여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든 다녀가는 사람이든 덜 상처받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섬생활이 되기를 제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저자와 같은 꿈을 갖고 내려와 버티고 있는 내가 응원한다.

육지것들의 힘을 꼭 보여주기를! 제주에 가면 한 번 들려 육지것들끼리 뭉쳐봅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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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보낸 5년 - 인생의 갈림길에서 시작된 아주 특별한 만남
존 쉴림 지음, 김진숙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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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평화가 느껴지는 책이다. '천국에서 보낸 5년'이란 제목처럼 잠시 천국을 다녀온 느낌이랄까.

서른한 살,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방황하던 청년 존 쉴림은 여든 일곱살의 아우구스티노수녀를 만나게 된다.

160년된 수녀원안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안에서의 첫만남은 5년동안이나 이어지게 된다.

우연처럼 보였던 두사람의 만남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느님이 예정해놓으신 깜짝파티였다고 생각한다.

성직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답게 존은 반듯하고 건실하게 성장했지만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방황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고등학교 임시 교사직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정규교사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가업인 맥주회사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맥주요리책을 발간하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전혀 알수가 없었던 때였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아우구스티노수녀역시 이제는 공방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작은 기적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수녀님의 작품에 매료된 존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고 공방실에서 잠자고 있던 작품들은 다시 생명을 얻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은 수녀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에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들을 얻어내기 시작한다.

용서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이며 자신에게도 선물이라는 말은 나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작은 점 하나를 보세요. 점은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표시죠....처음에는 이 점이 단순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답니다...하지만 이 단순한 점은 마침표가 되어 가장 중요한 문장을 끝맺는 힘이 있어요."

아! 나는 수녀님의 이 말에서 소박하고 단순한 것들에 깃든 힘을 느꼈다.

그리고 작은 점 하나도 모이면 별이 가득한 우주라는 말에 가슴이 쿵 떨어지는 충격이 전해졌다.

이 세상 하느님이 지어놓으신 모든 것에는 힘이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의미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소한 점 하나에 깃든 의미가 이럴질대 우리 인간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낮은 곳에 있는 어느 생명 한 조각조차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



"인생에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기쁨도 슬픔도 모두 선물입니다."

왜 내게만 이런 슬픔들이 불행들이 기웃거리는 것일까...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깃든 슬픔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선물이라니...

수녀님의 말씀처럼 슬픔을 느껴보지 못하면 기쁨도 알지 못하고 불행을 겪지 않으면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건져내기 힘들 것이다.


이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늙은 수녀가 아니라 예술가 수녀로서 인생의 등대불을 비춰주는 등대지기로 알려진 수녀님 뒤에는 수녀님을 일찌감치 알아본 존의 선한 마음이 있었다.

방황하는 자신에게 조용히 길을 알려주는 수녀님을 통해 존은 인내와 평화를 얻는다.

하느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모든 예비하심처럼 존은 정규교사직보다 더 나은 대학강사가 되었고 갈구하던 맥주요리책도 출판하게 된다. 존에 의해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수녀님은 5년간 존의 곁을 지키다 천국으로 떠나고 만다. 하지만 수녀님이 남기신 수많은 말들은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져 우리곁에 남았다. 우리가 여전히 의문을 갖고 풀지 못하는 수많은 숙제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죠?

"도자기를 만들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거든요" 수녀님이 유쾌하게 대답하시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천국에서 사랑했던 고양이 블리첸과 하느님곁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계실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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