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 - 품사의 기초 비교하며 배우는 우리말
노정임 지음, 조승연 그림, 최경봉 감수 / 현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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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받아쓰기 테스트를 하는 코너가 등장합니다. 제시되는 문장들을 틀리는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곤 하지만 정말 헤깔리는 어려운 문장들이기 때문에 틀리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닐거라 생각이 들어요. 서평을 쓰는 저 역시도 간혹 띄어쓰기나 낱말이 헤깔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재확인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현암사에서 출간된 <<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가 눈길을 확 끌었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유치원에서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받아쓰기를 통해 테스트를 받습니다. 어려운 받침이 들어가는 낱말도 많고,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들이 왜이리도 많은지 아이들이 헤깔려 할 만합니다. 그런 탓에 <<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는 초등학생 아들과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선택한 책이었는데 이 책은 책제목과 달리 받아쓰기에 관한, 받아쓰기를 연습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책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지요. 이 책은 아이의 성장을 통해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우리말의 규칙(문법), 9가지 품사를 배우고 아이의 타고난 언어 감각을 새롭게 깨우는 책입니다. 받아쓰기는 문법을 알아야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이 책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의 규칙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흥미롭고 의미 있게 말과 글에 대한 자신감을 주는 책입니다. (표지 中)

 

 

 

받아쓰기 20점을 받고 속상해서 학교를 안 간다는 아이에게 아빠는 아기 때부터 말을 잘 했고, 알려 주기도 전에 말을 한 대단한 언어학자라고 부추깁니다. 아빠는 말이랑 글은 아주 가까운 사이기 때문에 말을 잘하기 때문에 글을 못 쓸리 없다고 하시네요. 이제 아빠는 아이에게 아이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 언어학자인이 보여줍니다.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이, 아, 바, 마'로 옹알이한 아이는 입으로 소리를 내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고, 처음에는 모든 동물을 '멍멍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이름을 모두 구별하게 되었죠. 첫 걸음마를 할 즈음에 말을 시작했는데 가족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하나씩 하나씩 따라하기 시작했지요. 엄마, 아빠, 맘마, 물, 눈 등 이름들, 즉 명사를 배우게 된 것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어나면서 '이거, 저거'를 가리키며 점점 여러 가지를 알아갔는데 이름 대신 쓰는 대명사를 스스로 알아 갔어요. 수량이나 순서를 나타내는 단어인 품사 수사를 알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할 말이 더욱 많아졌고, '맘마'대신 '배고파요'라는 말인 동사를 알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더 배우게 되었지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유치원에 가면서 아이는 '언어의 마술사'가 되었지요. 섬세한 표현에다가 엉뚱한 표현까지 보태지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관형사를 배우고, 부사를 배우고, 어릴 때는 '이, 가', '을, 를' 등 헤깔려했던 조사를 누군가 특별히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그 의미와 쓰임을 알아채고 알맞게 쓰게 되었지요. 이렇게 아이가 새로운 말을 할 때, 어른들이 가르쳐 준 말을 제대로 쓸 때, 기분과 상상력을 표현할 때 엄마 아빠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글자를 익히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금세 글자를 외우지.

아빠, 그런데 나는 왜 받아쓰기가 어려운 거야?

아기 때를 생각해 봐. 듣고 나서, 그다음에 말을 하는 거야. 듣기를 잘하니까 말을 잘 따라 하는 거지. 놀이를 할 때도 규칙이 있잖아. 마찬가지로 글쓰기를 할 때에도 규칙이 있어. 쓰기에는 문법이라는 '말의 규칙'이 필요해. (본문 32p)

 

 

 

<<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는 이렇게 받아쓰기를 연습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자라온 과정을 통해 우리말의 규칙 즉, 문법과 9가지 품사를 배우는 책이지요. 더불어 우리 아이들에게 타고난 언어학자라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말과 글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줄 수도 있지요. 어려운 품사 이름을 가르치기보다는 다양한 어휘를 익힘으로써 문법의 기초도 배우고 품사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마음에 쏙 듭니다. 짧지만 알찬 내용이 아이들이 읽기에도 부담없을 뿐만 아니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참 좋은 거 같아요. 책을 펼칠 때 우리 아이안에 잠재된 언어 능력도 함께 펼쳐지는 책 <<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 품사의 기초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답니다.

 

이 책은 문법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품사를 구분지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게 구성했어요. 품사의 이름을 강조하기보다는 예문을 즐겨 읽으며, 많은 어휘(단어)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문법 공부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어휘와 문장 그 자체가 바로 문법의 기초이기 때문이에요. (본문 38p)

 

(이미지출처: '아빠, 받아쓰기가 왜 어렵지?'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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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 가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박연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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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시가 문학이다. 시조는 짧은 노래(단가)이고, 가사는 긴 노래(장가)이다. 시조는 주로 하나의 소재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단상을 세 줄이라는 짧은 형식에 압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양식이다. 반면에 가사는 다양한 소재들이 가진 이미지의 연쇄나 인과적 결합을 통해 화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세계)이나 현실의 모습, 사건의 전말 등을 길게 표현하는 양식이다. 이런 점에서 시조가 스냅 사진이라면 가사는 여러 장의 스냅 사진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 254p)

 

고전 문학 작품은 시대가 바뀌었어도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가치가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살아온 궤적을 담고 있는 우리 고전은 많이 읽어야 한다는 자각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언어로 쓰인 탓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저자 역시 고전은 지난 시대의 언어로 쓰인 까닭에 지금 우리가, 우리의 청소년이 읽으려면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세계의 고전 작품 역시 시대마다 새롭게 고쳐 쓰는 작업이 거듭한 결과물인데, 우리 고전은 그런 작업에서 많이 늦어졌다고 한다. 이에 현재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해결의 실마리가 고전에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현암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품,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맛을 살리는 원칙 아래 고전 읽기를 통해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하는 문화의 힘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아래 쓰여진 <<가려 뽑은 가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가치관을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서 문학 작품에 표현된 가사들을 산수 자연에서 노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노래인 [강호 가사], 귀양지에서 지었거나 귀양지를 소재로 한 [유배 가사], 여행을 통하여 얻은 견문과 소감 등을 적은 [기행 가사],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잘 가르쳐서 타이르는 것을 주제로 한 [교훈 가사]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보이며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는 가사 등 총 다섯 장으로 나누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책 속에 수록된 작품은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것이 대부분인 탓에 흔히 알고 있는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서별곡, 관동별곡 외에는 굉장히 생소한 가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행이 어렵고 까다롭다는 느낌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앎에 대한 기쁨에 대한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는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맛을 살리되 지금의 언어로 고쳐써 읽기 쉽고, 글에 대한 해설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처음 가는 장소에서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을 때의 그 어리둥절한 생소함, 바로 그 신선한 충동을 우리 고전 작품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거기에는 일상을 벗어났으되 나의 뿌리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까지 함께 있다. 그것은 남의 나라 고전이 아닌 우리 고전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본문 中) 

 

 

 

우리가 고전 문학을 읽는 것은 그 시대 사회의 문화를 이해함은 물론이요,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일 것일 게다. <<가려 뽑은 가사>>는 앞서 언급한 원칙 아래 쓰여진 구성을 통해 그 시대와 소통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에 우리 고전 문학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데도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가려 뽑은 만큼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가 읽어야 할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은 이 책은 아름답고 멋스럽지만 그 매력을 미처 알지 못했던 가사에 대한 앎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원문의 느낌 그대로 수록되어 가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고전 문학의 어려움으로 우리 문학을 접하지 못했다면 <<가려 뽑은 가사>>를 적극 추천해본다.

 

(이미지출처: '가려 뽑은 가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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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이야기 - <곤충기>를 쓴 파브르의 특별한 삶
매튜 클라크 스미스 지음, 줄리아노 페리 그림, 홍수원 옮김 / 두레아이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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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월이 파브르가 타계한 지 100년이 된다고 하네요. 『곤충기』곤충기』의 저자이자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파브르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동·식물 연구자 중 한 사람입니다. 찰스 다윈은 그런 그에 대해 견줄 사람이 없는 뛰어난 관찰자라 하였지요. 그의 업적은 두말 할 것 없이 정말 훌륭하지만 그보다도 그가 발견한 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마법사 혹은 미친 사람이라 불리며 평생 곤충을 사랑했던 파브르의 이야기가 두레아이들의 <<파브르 이야기>>에서 펼쳐집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지내면서 자기 할 일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죠. 높은 담과 플라타너스로 둘러싸인 분홍색 집에서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눈동자가 딱정벌레처럼 새카맣고, 검은색 우묵모자를 쓰고, 동물들에게 이상한 말을 거는 노인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이 노인을 마법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 했지요. 이 노인은 햇볕이 가장 뜨거운 한낮에는 땡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딱정벌레가 땅에 구멍을 파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캄캄한 밤에는 숲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거미들이 거미줄 치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마을 어린이들이 죽은 두더지와 도마뱀을 주워 오면 한 마리에 1페니씩을 주기도 했지요. 해가 거듭될수록 이 노인을 둘러싼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노인이 나이가 들어 더 늙어진 어느 가을날, 프랑스 대통령이 그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딱정벌레와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에게 대통령이 찾아오는 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궁금해했지요. 이 노인은 바로 장-앙리 파르브였습니다. 약 백 년 전쯤 어느 산기슭에서 태어난 그는 집이 가난해서 태어나서 몇 년 뒤 부모님 곁을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했어요. 어린 파브르는 오래되고 색이 바랜 농가에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거칠고 우중충한 곳이었지만 파브르에게는 작은 놀라운 세상이었어요. 점박이긴다리풍뎅이, 아마니타버섯, 암모나이트 화석, 수정, 운모 조각 등 이런 것들은 파브르에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의 대상이었지요. 일곱 살 때 가족이 도시로 이사하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파브르는 친구들이 라틴 어를 배울 때 책상 여기저기 감춰 둔 말벌 침과 금어초 꼬투리를 만지작거렸고 그런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요.

 

 

 

열여섯 살이 되어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게 된 파브르는 철도원으로 일하고, 시장에서 레몬을 파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작고 놀라운 세계에 빠져있었지요. 결혼을 해서 첫째와 둘째 자식이 차례로 숨지면서 슬픔에 겨워 곤충에 관심이 점차 줄어들었을 때도 파브르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마침내 최고의 학위를 받았고, 노래기벌과에 속하는 어떤 말벌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그의 열정은 더 커졌지요. 하지만 자신이 알아낸 내용을 널리 알려 주려고,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수업을 듣게 해주었던 파브르를 정부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결국 일자리를 잃었고 무서운 폐렴에 걸려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지요. 헌데 아들이 겨울잠에 빠진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벌들을 가져오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게 되었어요. 그 뒤 파브르는 몇 달동안 곤충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그 속에는 모두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날 때마다 놀라운 일과 발견은 계속되었고, 곤충들의 모습을 시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장-앙리 파브르는 노벨상 후보가 되었습니다.

 

 

 

파브르가 과학자로서 중요한 일을 많이 해냈지만 그보다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관찰 결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지요. 이 책은 평생 곤충을 사랑했던 파브르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네요. 국내에는 아이들을 위한 파브르의 삶 전체를 들려주는 단행본 전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파브르의 <곤충기>는 흔히 접할 수 있었지만 파브르의 전기를 담은 책을 접하기는 어려웠던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파브르의 전기를 아름답게 그려낸 이 그림책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그림책은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고,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곤충을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파브르의 열정을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인내와 끈기가 만들어낸 놀라운 업적,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듯 합니다.

 

 

인간이나 동물에게는 모두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음악에 빠져들고, 어떤 아이는 수치에 대한 이해가 빠릅니다. 곤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류의 벌은 나뭇잎을 잘 자르고, 어떤 종류의 벌은 진흙으로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재능을 천성이라고 부르지만 곤충의 세계에서는 본능이라고 부릅니다. 본능은 동물의 천성입니다. -장-앙리 파브르

 

(이미지출처: '파브르 이야기'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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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강지영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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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듯 하다. 불과 며칠 전 좀비를 소재로 한 동화책을 읽은 바 있는데, 이런 추세는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와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메르스의 공포가 우리나라를 휩쓸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천 쪼가리인 마스크에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대책이 아닌 메르스 확진자가 몇 명인지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뉴스만 바라봐야했을 때, 영화 <감기>가 재조명되고 있었다. 바이러스의 출현, 안일한 정부의 대책, 그리고 감염자와 의심환자들의 대책없는 격리 등이 현 상황과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외줄타기보다 아슬아슬하고, 저글링보다 짜릿한 보통 사람들의 리얼 버라이어티 가족 생존기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영화 <연가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제약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했던 씁슬했던 장면도 소설 속에서 재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두 영화와 아주 많이 흡사하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닮아있다. 좀비라는 설정이 없었다면,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라는 소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강지영 작가가 없었다면  정말 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초과가 소설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두 달 일주일동안 세상은 초봄 무렵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감기가 슬슬 유행을 시작해, 여름이 된 지금은 곳곳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임시 휴업이나 폐업까지 선언한 상점이 늘어나고 있었다. 유독 중국과 한국에서만 발병한 이 감기는, 페인플루라 불리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공식적으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 또한 없었다. 이 때, 초과는 유이 엄마에게 전화를 받게 된다. 초과가 유이를 낳은 건 9년 전 초여름이었다. 스무 살의 초과는 저체중에 저혈압, 게다가 희귀 혈액형인 RH-O형의 고위험군 산모였고 남편 이석은 대학 신입생 시절, 미국 국적의 교환학생으로 둘은 교제 3개월 만에 유이를 임신하고 예식 없이 동거를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출산으로 유이가 태어났고 얼마 후 학교와 아파트를 알아본다며 미국으로 들어간 이석은 연락이 끊겼다. 대신 이석과 서류상 부부라는 제시카가 찾아와 자신은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으니 유이를 잘 키우겠노라며 데려갔다. 헌데 유이가 탈장증세가 있어서 수술을 해야하는데 엄마가 있는 한국에서 받고 싶어 하여 곧 한국에 올 것이며 지정 헌혈자를 구해 놓기로 했던 탓에 유이에게 미리 전화를 준 것이다.

 

그동안 초과는 페인플루가 대통령이나 대통령 졸개들이 사고 치고 그거 조용히 덮으려는 수작이라 생각했지만, 유이가 오기로 한 이상 자신이 페인플루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수혈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과는 피에 좋다는 미역국 재료를 사들고 엄마와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오빠 근대, 다담달이면 몸을 풀게 될 언니 초희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초희는 초과의 신랑도 페인플루에 감염되고 집 앞 골목에서 주찬 할아버지가 최 집사의 살점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페인플루가 윤재가 말한 것처럼 이 괴질의 정체가 좀비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데 설상가상 초희마저 페인플루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근대는 코믹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초과는 딸이 입원해있을 지성대병원으로, 초희 역시 출산을 위해 지성대병원으로 가야만 한다. 근대는 커뮤니티 회원인 지저벨과 타라를 만나 가족을 서울로 데려올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떠나고, 초과는 윤재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로 떠난다. 초과는 초희를 위해 페인플루 의심환자를 신고하지만 감염 의심자들을 격리하고 확진되면 소각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이 초희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되고 엄마는 딸 초희를 위해 경찰과 대치후 지성대병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이들을 가족을 위해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좀비의 습격으로 언제 감염되어 좀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의지만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들의 횡보는 용기보다는 만용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고군분투 속에서 지저벨이 감염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엄마와 초희도 경찰에 잡히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며, 윤재와 초과 역시 좀비와 특별기동대로부터 잡히게 될 상황에 처한다. 이 상황에서 5년 전 초희가 지방의 모 신문사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수상식에 참여해 알게 되었던 윤재의 비밀이 드러나고 근대와 타라 역시 이 바이러스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다. 이로써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했던 두 국가의 대립, 영생과 종말을 주장하는 사이비종교와 제약 회사들의 이익이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권력자들의 이익 앞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건 힘센 슈퍼히어로가 아니에요. 힘없고 약점 많은 악당들이지." (본문 172p)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는 이렇게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꿋꿋이 길을 떠나는 조금은 황당하고 무모해보이는 가족의 횡보를 보여준다. 이들의 횡보 속에서 소설은 가족이라는 소재로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런 위험한 현실에서 세상을 구하는 것은 슈퍼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슈퍼히어로나 권력을 가진 국가도 아닌 힘없고 약점 많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두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지만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있고, 가족을 위해 실험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 한 줄이 빛이 되어주고 있어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좀비라는 소재와 개성있는 주인공이라는 차별화를 통해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메르스의 공포를 체험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접하게 된 소설이었던 탓에 그 공포가 좀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덧붙히자면, 개인적으로 제시카의 눈물겨운 모성애가 유독 눈길을 끈다.

 

(이미지출처: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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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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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을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열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희열은 범인을 맞쳤다고 생각한 순간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놀라운 반전을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던 중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최근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을 느끼게 된 작품이 있다. 바로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1973년 처음 출간된지 40년이나 지난 작품으로 분쿄도 서점 기획 '다시 만나고 싶은 복간 희망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수차례 개정되었음에도 번번이 절판되는 이 소설은 40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없는 스토리지만 당시에는 이 파격적인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독자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40만 독자를 홀린 천재적 걸작이라는 칭호를 받은 <<모방살의>>는 반전의 묘미를 가장 극대화한 서술트릭을 선보이고 있다.

 

7월 7일 오후 7시. 도쿄 기타 구 이나즈키 정의 고묘소 빌라 3층에 사는 사카이 마사오라는 남자가 자기 집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추리소설 작가였던 사카이 마사오는 자신의 소설제목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과 같은 그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카이 마사오는 청산가리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었고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카이 마사오의 집이 당시 제삼자가 출입할 수 없는 상태였고, 같은 아파트에서 가깝게 지냈던 와다에 의하면 사카이 마사오가 마음처럼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했다는 점을 감안해 봤을 때 조사관은 그의 죽음에 대해 자살 가능성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연인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나카다 아키코, 사년 전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결성한 동인잡지 <추리원탁>의 동료였던 쓰쿠미 신스케는 사카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고 각자 이 죽음에 대해 직접 추적해나간다.

 

아키코는 사카이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받은 상태였다. 5월 초 사카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아키코는 사카이의 집을 찾은 세련된 미모를 가진 서른 살 전후의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사카이에게 50만 엔짜리 수표를 준 것을 기억해낸다. 되짚어보면 그가 집에 틀어박힌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고, 시간이 흐른 뒤 도가노라는 그 여성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던 때를 떠올린다. 아키코는 도가노 리쓰코라는 여자가 사카이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그녀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아키코는 택시기사로부터 도야마의 오코우치 조선 사장의 아들 다카오카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카이와 리쓰코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한다. 그렇게 아키코는 도야마의 알리바이를 추적해감으로써 사카이의 타살 근거를 찾아간다.

 

반면, <주간 동서>에서 '살인 리포트'라는 기사를 싣고 있는 쓰쿠미는 편집자 가라쿠사 다이치로부터 다음 호에 사카이 마사오 사건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스쿠미는 사카이가 죽기 일주일 전쯤 모임 날짜와 장소를 전하기 위해 전화했다가 그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었다. 혹 그 작품도 퇴짜를 맞았기 때문에 자살을 한 것일까, 라는 생각에 쓰쿠미는 편집자 사사키 사부로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편집부의 실권자인 야나기사와 구니오의 여동생이 사카이한테 열을 올렸다가 실연의 고통으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쓰쿠미는 야나기사와 구니오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한 줄 한 줄 음미하다 보면 "이거 한 방 먹었는걸!"하는 쾌감이 남는다. 아무쪼록 작가가 설치한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_ 아유카와 데쓰야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뒤쫓게 되는데, 교차서술로 보여주는 두 사람을 쫓다보면 독자는 점점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용의자, 서로 다른 살해동기로 인해 범인을 추리하다보면 굉장히 혼란스러워지는데,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있다면 사카이의 유작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이 유작 뒤에 숨겨진 진실이 점점 실체를 드러나게 되고 독자 역시 범인을 추리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추리는 완전히 빗나갔고 예상치 못한 결말과 마주하게 될 뿐이었다. 그 결말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반전이었고, 오랜만에 느낀 희열이었다. 곧 이 소설 <<모방살의>>의 응용편인 <<천계살의>>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몹시 기대가 된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추리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강추!! 그 놀라운 반전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기에.

 

(이미지출처: '모방살의'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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