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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평점 :
'세상에, 옷만 버리는 상자가 있단 말이야?'
'이거, 헌옷 상자가 아니라 보물 상자잖아!' (본문 8,9p)
우리 동네 곳곳에서 의류수거함을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아이들의 작은 옷이나 유행이 지나 입지 못하는 옷을 버리기(?)위해 자주 이용하곤 한다. 나에게는 단순하게 보이는 의류수거함이 작가의 눈에는 색다르게 보였던 것일까? 한낱 옷을 버리기 위한 수거함일 뿐인데 작가는 그 의류수거함을 매개체로 하여 인물의 관계망을 형성했고, 그를 통해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을 보여주었다.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오즈의 의류수거함>>의 작가 유영민은 수상자 인터뷰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자기를 치료하고 타인도 구원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인공 도로시의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작가가 말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의류수거함을 보게 되고, 그 속에서 여성용 스키니진을 발견한 도로시는 의류수거함이 헌옷 상자가 아니라 보물 상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부터 도로시에게는 은밀하가도 특별한 직업이 하나 생겼다. 바로 '비밀의 헌옷 수거상'이다. 낮에는 착실하고 선량한 여고생이지만 밤이 되면 헌옷 도둑이 된 것이다. 하루에 몇 동씩 정해서 의류수거함을 턴 그녀는 훔친 옷들을 구제 옷가게에 넘겨 돈을 벌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 도로시는 자살카페에 가입하려 했지만 까다로운 가입절차에 의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리포트는 심사에게 떨어지게 되고, 그녀는 자살 대신 차선책으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낙원으로 보이는 호주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의류수거함을 터는 이유도 이민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고, 그렇게 모은 옷은 호주 이민 카페에서 만나 친해지게 된 구제 의류숍 '마녀's House'에 넘겨왔다. 그런데 의류수거함에는 옷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옷 속에는 영수증, 돈, 수첩 등도 있었으며 심지어 버려진 강아지도 있었다. 도로시는 강아지에게 토토라는 이름을 붙혀주었고 토토는 마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낙원이란 없어. 낙원처럼 보일 뿐이지."
"알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그곳에는 남을 깔아뭉개야 살아남는 경쟁은 없겠죠. 한국에 계속 있다 보면 계속 경쟁에 시달려야 할 거예요. 대학에 가서는 학점 경쟁과 스펙 경쟁, 졸업해서는 입사 경쟁, 승진 경쟁....이젠 경쟁이라면 지긋지긋해요."
"만약 단순히 경쟁이 싫어서 이민을 결심하고 있다면 그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본문 39p)
의류수거함에서 옷을 훔치던 도로시는 노숙자인 숙자씨를 만나게 되었고, 새로운 헌옷 도둑 새터민인 카스 삼촌, 마녀의 소개로 알게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마마 그리고 손자와 함께 살면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 등을 만나게 된다. 그러던 중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그녀는 사진첩과 세 권이 노끈에 묶여있는 고급스러운 양장 노트에 적힌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도로시는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발견한 물건을 통해 그 주인이 자살할 것임을 알게 되고, 마녀, 숙자, 카스삼촌과 마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결국 이들은 195번 의류수거함을 우체통으로 이용하여 물건의 주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와의 대화통로로 삼으며 자살방지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도로시가 이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은 모두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녀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함은 물론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각자 아픔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폐지를 모아 두 손자와 살아가는 할머니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을 고쳐주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자살계획 중이었던 195도 변하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자살을 결심했던 도로시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꿈을 찾게 되는데, 독자는 절망 속에서 각자 힘을 내고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버려지는 것들을 말없이 자신의 품에 받아들이는 의류수거함. 더불어 그 버려지는 것들이 간직한 비밀과 슬픔, 고통과 외로움까지도 끌어안는 의류수거함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나는 과연 저 상자에 무엇을 버렸을까?' (본문 251p)
의류수거함을 통해 알지 못했던 세상을 경험하고 나누고 베푸는 과정을 배우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도로시의 성장과정이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내가 보고자하는 세계만 바라보며 타인의 아픔이나 절망에는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로시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을 보여준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의류수거함을 소재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을까? 수많은 경쟁 속에서 절망을 맛보는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파티처럼 즐겁고 환한 것으로 삶을 받아들여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좀 살만하지 않을런지.
"마치 오늘 파티처럼 즐겁고 환한 것으로 받아들여, 우리. 그렇게 정하고 우리의 지금 삶을 바라보면 반짝반짝, 광택이 나지 않는 순간이 없을 거야." (본문 23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