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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저장음식 - 제철 재료 그대로 말리고 절이고 삭히는
김영빈 지음 / 윈타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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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트에 가면 제철 과일, 채소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요즘 저장음식이 왜 필요할까? 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나 역시도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 굳이 말리고 절이고 삭히는지, 그 수고스러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트에서 고추를 싸게 팔길래 잔뜩 구입해 고추간장장아찌를 만들게 되면서부터 그 수고스러움과 정성과 기다림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틈만나면 저장음식을 만들고 있다. 매실청도 만들고, 고추, 오이, 양파, 깻잎, 마늘로 간장장아찌도 만들면서 저장음식을 만들게 하는 매력에 푹 빠져있는 중이다. 하지만 할 줄 아는 재료가 몇 개 되지 않아 조금 아쉬움이 남았었다. 요즘 식초, 효소 등을 만드는 법을 담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터라, 저장음식에 관한 책도 있을까 싶어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꼭 필요한 책 <<열두 달 저장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봤다.

 

 

 

시판 제품보다 못생기고 유혹적이지는 않지만 돌아서면 생각나고 입맛 다시게 하는 시간의 맛이 고스란히 녹아 있지요. (본문 5p)

 

이 책은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를 소개하면서 저장과 보관이 가능한 양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책을 받자마자 여름재료부터 찾아보면서 무엇을 해보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어찌나 설레여했던지. 얼마 전 먹고 버린 수박껍질이 왜이리 아까운지, 마트에서 애호박 싸게 파는 걸 안 사고 온 것이 왜이리 후회스러운지, 책을 보고 있자니 다시 마트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다. 괜시리 만들어놓은 마늘간장장아찌랑 매실청을 한 번씩 쳐다보면서 뿌듯해해보기도 했다.

 

 

여름 장마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알뜰 살림 밑천이 되는 봄 저장음식으로는 쑥, 고사리, 취나물, 가죽, 죽순을 말리고, 딸기잼, 체리잼, 앵두잼 등을 만들면 좋다. 양배추로도 피클을 만들 수 있으며, 도라지대추피클, 셀러리당근피클도 만들면 좋은 저장음식이 된다. 특히 봄에 나는 햇고사리를 직접 말리면 향도 좋고 시판되는 제품보다 질감도 부드럽다고 하니 내년 봄에는 고사리 말리기에 도전 해봐야겠다. 어린시절 밥상에 자주 올라왔던 마늘종은 결혼 후에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이 없는데, 마늘종과 무를 이용해 간장장아찌를 담글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것도 기억해둬야겠다. 내년 봄에는 이래저래 바빠질 거 같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매실을 얼른 구입해 매실청을 담아두었다. 하루에 한 번씩 괜시리 들여다보면서 혼자 뿌듯해하곤 했는데, 장마가 시작되기 전 초여름의 짧은 한때를 바쁘게 움직여야 배탈 없는 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 저자를 보면 매실청 하나 해놓고 좋아하는 걸 보면 아직 초보인가보다. 애호박을 말리기에 제철인 여름, 얼마 전 저렴한 가격에 파는 애호박을 안 산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장아찌 담그는 것만 생각했지 말리는 것은 생각 못한 탓이다. 말린 애호박은 나물을 해도 맛있지만 된장찌개에 넣으면 식감이 쫄깃하고 감칠맛이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잊지 말고 말려놔야겠다. 꽈리고추, 감자, 깻잎으로 만든 부각도 눈도장을 찍어본다. 오이로 장아찌를 담아두긴 했지만 피클은 만들어본 적이 없어 생각도 못했는데, 이 책을 보고 얼른 오이를 구입해 피클을 만들었다. 지금 숙성 중이니 며칠 후에 다시 끓여 식혀 부으면 된다. 어떤 맛이 나올지 폭풍 기대중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은 저자가 일 년 중 가능 눈코 뜰 새 없는 계절이란다. 얼마 전 이웃사촌이 고구마빼데기를 주었는데, 어떻게 먹을지 몰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 책을 보니 부드럽게 불려 죽을 끓이거나 밥을 지을 때 넣거나 조림 등을 만들 때 넣으면 요긴하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어야겠다. 가을이 되면 해보고 싶은 건 무말랭이다. 레시피대로 잘 만들어봐야겠다. 고구마, 우엉, 연근 등으로도 피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색다른 느낌의 피클은 어떤 맛을 줄지 기대가 된다. 고추장박이, 된장박이 등은 어린 시절 먹어만 봤는데, 이 책을 보니 간장장아찌와는 달리 새로운 맛을 줄 거 같다.

올 겨울에는 아이들이 먹다 버린 귤껍질을 잘 모아 말려봐야겠다.

 

 

얼마 전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징어를 판매하는 트럭을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오징어젓 만드는 레시피를 본 듯 하여 얼른 구입했다. 봄에 해 먹는 음식이지만, 한 번도 도전해 본 적 없는 젓갈 담그기가 하고 싶어 구입하고 말았다. 내장과 껍질을 제거하고 물기를 닦은 후에 저자가 알려준대로 곱게 채 썰고 다리는 5센티미터 길이로 썰었다. 소금과 청주에 버무린 후 밀페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지금 1차절임 중이다. 내일이면 쪽파와 마늘과 함께 무침양념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처음 만들어보는 오징어젓, 어떤 맛일까? 그 기다림이 너무 설레인다.

 

 

 

제철 재료 그대로 말리고 절이고 삭히는 <<열두 달 저장음식>> 책을 보면서 오이피클과 오징어젓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 책은 식탁 위에 펼쳐져 있으며, 나는 매일같이 무엇을 만들까 뒤적거리고 있다. 6년을 직장을 다니고 지금 6개월째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직장을 나가게 될 거 같다. 저장음식이 있으면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밑반찬 때문에 고민할 걱정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달은 유난히 마음이 바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우리 가족 식탁은 인스턴트가 아닌 내가 만든 반찬으로 채워주고 싶은 마음 탓이다. 예전에 선물 받은 김이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으니 오늘은 김간장장아찌를 해봐야겠다. 수록된 [재철 재료 열두 달 캘린더]를 냉장고에 붙혀놓고 꼭 잊지 말고 준비해나가야겠다.

제철의 풍미를 살려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음식, 이 책을 통해 저장음식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된 듯 하다.

 

(이미지출처: '열두 달 저장음식' 본문에서 발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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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상상 2014-08-1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말더듬이 왕과 언어 치료사 - 세계사 속 두 사람 이야기 : 서양편 인물로 읽는 역사
아작 지음, 이영림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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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잘 속에 숨어 있으면서 적을 피하거나 먹이를 구하는 보답으로 말미잘의 병든 촉수를 자르고 찌꺼기를 청소해 주는 흰동가리, 고래류, 상어류 등에 붙어살며 그들이 흘리는 찌꺼기들을 먹으면서 청소를 해주는 빨판상어, 진딧물의 달콤한 감로를 먹는 대신 무당벌레 등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는 개미 등 두 종류의 동물들은 서로서로가 도움을 주며 공생합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가 존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 관계 속에서 더 나아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요. 세계사 속 두 사람이야기를 담은 <<말더듬이 왕과 언어 치료사>>는 바로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뛰어난 인물로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두 사람' 덕분에 인류는 더욱 풍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었어요. (머리말 中)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관계는 정말 유명하지요. 스물일곱 뒤늦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고흐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작은 충고에도 쉽게 상처받은 성격 때문에 가족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서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동생 테오는 이런 고흐를 가장 잘 이해해 주었지요. 고흐가 화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응원해 준 테오는 용기와 희망은 물론이고, 가난했던 고흐에게 생활비와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돈도 주었습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화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고흐를 위해 화가 고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테오가 어려움에 처하자 고흐는 괴로워했고,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계속 부담을 주는 것이 괴로워 자살을 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불과 6개월 후 테오도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의 명작들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자연을 빚은 건축가로도 유명합니다. 가우디의 독창적이면서도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바로 구엘이었고,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카탈루냐의 찬란한 문화를 다시 세우려는 꿈을 꾸는 구엘과 카탈루냐 특유의 문화를 건축에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우디는 같은 꿈을 꾸는 친구가 되었지요. 독재자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부담함에 맞서 싸운 한스 숄과 조피 숄은 모두가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침묵할 때 용기 있게 맞서 싸운 남매였습니다. 과학자 이렌 퀴리는 엄마 마리 퀴리의 인류를 위한 과학자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실천하였고, 길 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렸던 위대한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그 스승이 못다 이룬 것을 자신의 손으로 갈무리하고 싶었던 플라톤운 신념을 지킨 스승과 철학을 꽃피운 제자였습니다.

 

 

책 제목 <<말더듬이 왕과 언어 치료사>>는 국민을 사랑한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와 왕의 언어 치료사였던 라이오넬 로그의 이야기입니다. 왕을 제 몸처럼 돌보며 정성을 다하는 로그가 있어 조지 6세는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말더듬이 왕이 아닌 조지 6세 곁에는 언어 치료사이며 가장 가까운 벗으로 왕을 보좌한 로그가 있었기 때문이죠.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은 이름 엥겔스는 처음에는 서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지요. 마음과 뜻이 통했기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격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면서 같은 꿈을 꾼 두 사람은 정말 좋은 파트너였습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문학의 길을 함께한 친구 괴테와 실러, 동등한 왕으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한 부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보살피고 의지한 아버지와 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마리아 갈릴레이, 그리고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룬 부부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티격태격 싸우며 단단한 우정을 쌓은 친구 푸치니와 토스카니니 역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 주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발전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세요. 나는 누구에게, 또 나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힘을 얻고 있을까요?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며, 그들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세계사 속 두 사람처럼 나와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나는 누군가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수도 있구요. 누군가와 함께 꿈꾸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거 같습니다.

<<말더듬이 왕과 언어 치료사>>는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 속에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그들을 통해 인물을 살펴보기도 하고, 역사를 알아갈 수 있어 아이들에게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듯 싶네요.

 

(이미지출처: '말더듬이 왕과 언어 치료사'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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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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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박범신 작가의 책은 그리 많이 읽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최근 <은교>를 영화로 접한 바 있었지만, 박범신 작가의 책을 읽은 건 <물의 나라><불의 나라> 이후로 정말 꽤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주한 박범신 작가의 책 <<소소한 풍경>>은 독특하면서도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사랑 이야기였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세 사람의 삼각관계로 인한 질투, 갈등이 아닌 세 사람이 사랑하는, 그렇다고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먼가 결핍이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소소한 풍경>>이었다.

 

이 책은 소설가인 '나'에게 제자인 여자 ㄱ이 간만에 전화를 걸어 의례적인 서두도 없이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셧어요?'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ㄱ이 살던 집터에서 발견된 데스마스크, '나'는 ㄱ을 기억내했고 다음 날 소소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것은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 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혼자 살던, 둘이 살던 그리고 셋이 살던 좋았던 그 이야기로 말이다. ㄱ은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뒤 대학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자신처럼 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그와의 우연한 부합에 사랑하게 되고 동거를 하게 되지만, 둘이 함께 살면서 알게 된 그의 모습에 대한 오해의 확장과 실망감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 뒤 그녀는 부모님이 살던 소소라는 곳으로 오게 되고, 혼자 사는 즐거움을 느끼던 그녀는 어느 날, 남자 ㄴ를 만나게 된다. ㄱ은 늦가을 사선으로 내려다보이는 다세대주택 외벽에 발을 대고 물구나무를 서 있던 갈 곳이 없던 남자와 함께 살게 되고 둘이 사니 더 좋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한 달쯤 뒤 이번에는 키 작고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년 같은 얼굴의 한 조선족 처녀가 찾아오게 되고, 그렇게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덩어리가 되어 살아간다. ㄱ은 셋이 사니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뜻밖이다. ㄴ이 내 집에 들어오고도 나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남편'이 아니라 단순한 '동숙자'이기 때문일까. 둘이 사는데 혼자 사는 것 같고 혼자 사는데 둘이 사는 것 같다. 동숙자가 줄 수 있는 예상 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본문 61p)

 

ㄴ은 우물을 판다. 그는 스스로 풍경이 된다. 마침내 우물에서 물이 솟았으나 ㄴ은 성취감 대신 그의 어때와 등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우물에 바짝 다가가  앉았고, ㄷ은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등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고, 마침내 우물에는 그녀만이 그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우물 밑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ㄱ은 다시 혼자가 되어 이사를 하게되었고, 이후 그들이 살던 집터가 허물어지면서 ㄴ의 데스마스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ㄱ은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게 되지만, 불법체류자였던 ㄷ을 경찰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고, 미제사건이 되어버린 이 사건 아니, 이 사랑은 이제 ㄴ의 이야기 그리고 ㄷ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소소한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모두 셋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하며 사랑받는 자, 오직 둘만 있는 독특하고 이상한 사랑(본문 336p)을 담아냈다. 복도훈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셋이 동거하는 사랑은 욕망이되 욕망의 "멸진"을 향하는 욕망이며, 삼각형을 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소소한 풍경'의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라고 콕 짚어서 말하기에는 먼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생의 심연으로 가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녹아내어 인간의 본질적인 사랑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에 대한 본질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다보면 소설가 '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은교>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에 대한 공통점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책을 읽는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두 작품에서 박범신 작가만의 사랑을,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파격적인 사랑과 인간 심연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독특하지만 매혹적인...사랑.

<<소소한 풍경>>은 <은교>에서 시인 이적요가 꿈꾸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즉 결핍되었던 완전범죄를 새롭게 꿈꾸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소한 풍경>>이 <은교>를 떠올리게 하는 건 사뭇 시사적이다....<<소소한 풍경>>은 <은교>와 가장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먼 이야기다. (본문 343,344p)

 

"사람들 몸뚱어리 속에 가시들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죽음까지 이어져 있는지, 또한 타자의 그 무엇이 한 존재를 그토록 매혹시키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매움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록(본문 348p)인 <<소소한 풍경>>을 통해 바라본 사랑, 삶, 죽음은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독자로서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나 스스로에 대해 커다란 의구심이 들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독특하면서도 매혹적인 스토리임을 이해하고 확신하기에는 나의 짧은 독서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들 ㄱ,ㄴ,ㄷ...하지만 나는 어느 새 마음 깊이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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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와 델피노 숲의 친구들
고고도 글.그림 / 상상박물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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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카는 풍선 낙하산이 필요 없어요.

여러분도 나무 위 염소들처럼 모두가 깜짝 놀랄 능력을 보여 주세요.

로카처럼 두려움을 이기고 씩씩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요. (본문 中)

 

 

큰 판형에 귀여운 표지 삽화가 눈에 띄는 책입니다. 이 그림책은 저자가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의 염소들이 커다란 나무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올라가 있었는데,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 있는 염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인상적이었다고 하네요. 염소의 발굽은 높은 곳을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고 합니다. 저는 염소가 높은 곳을 쉽게 오른다는 사실을 예전에 <동물농장>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어요. 염소가 바닷가 절벽에 올라가 옴짝달싹 하지 못해 구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얼마전 풍도 여행을 간 <1박 2일>프로그램에서 염소들이 절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답니다. 저는 염소의 이런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작가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나처럼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염소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네요. 그렇게 해서 이 그림책의 주인공 로카가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델피노'는 스페인어로 소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델피노 숲에는 바위 거인이 우뚝 솟아 있는데, 바위 거인은 비, 바람, 안개를 다스리며 오래전부터 숲을 지키고 있지요. 이 이야기는 소나무가 우거진 설악산과 봉우리에 우뚝 솟은 울산바위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요. 여기에 앞서 염소의 그림을 보고 생각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지요. 숲 한가운데 아담한 집에는 어린 염소 코카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요.로카는 오늘 친구들이랑 밤나무골에서 놀기로 했는데, 높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 로카는 떨어질까 무서워 풍선을 매달았습니다. 엄마가 염소들은 튼튼한 발굽이 있어서 높은 바위를 잘 탄다고 말씀하시지만, 로카는 풍선 낙하산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지요. 로카는 풍선을 매달고 영리한 부엉이 오스카, 멋쟁이 토끼 토토, 덩치 큰 로봇 마로, 작은 개구리 에드워드를 만났습니다.

 

 

그때, 갑자기 숲이 어두워지고 세찬 바람이 불었어요. 친구들은 바위 거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어 바위 거인에게 가보기로 하지요. 먼저 오스카가 힘차게 날아올랐지만 세찬 바람에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고, 날개는 없지만 빠른 두 다리가 있는 토토가 달려가 보았지만,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힘세고 단단한 몸을 가진 마로와 단짝 에드워드가 함께 나섰지만,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마로는 고장이 나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로카 뿐이었어요. 높은 곳이 무서운 로카는 풀 죽은 친구들을 보며 용기를 냈습니다. 안개가 앞을 가로막고, 검은 비구름이 훼방을 놓고,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도 몰아쳤으며 설상가상 바람은 로카의 풍선을 하나둘 낚아채버렸어요. 하지만 로카는 어느새 풍선 낙하산 없이 바위산 정상에 올라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깜빡 잠이 든 바위 거인을 깨워 숲을 엉망으로 만든 천둥 번개, 안개, 바람 등을 다스리도록 했지요.

 

 

"어린 염소가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로카야, 넌 정말 용감하구나."

 

 

로카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걸을 더 나아갔고, 더 자라났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많은 고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안개, 바람, 천둥, 장대비와 같은 고난을 만난 것처럼 말이에요. 누구나 고난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로카처럼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답니다.

부록으로 그림책이 탄생하게 된 이유와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어 또다른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었어요. 귀여운 삽화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로카의 이야기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네요.

 

(이미지출처: '로카와 델피노 숲의 친구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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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북의 1 - 닥터 이방인 원작 소설
최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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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심장은 너를 향해 뛸 준비가 되어 있다!

 

 

 

이종석, 박해진, 강소라, 진세연 주연의 SBS 드라마 <닥터 이방인>이 한창 방영 중이다.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 편이라,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배우 박해진으로 인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좀 갖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이 북이십일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인 <북의>를 나는 이렇게 원작 소설을 통해 먼저 접해보기로 했다. <<소설 북의>>는 드라마와는 다른 스토리, 새로운 인물, 보다 깊은 갈등의 전개로 진행된다고 하니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2006년 11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외곽 두정 마을. 박훈은 지금 너른 등짝이 땀에 젖는 줄도 모른 채 급히 페달을 밟으며 임신 5개월의 어린 안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로커 장 씨에게 착수금으로 건넨 인민폐 2만 위안으로  어렵게 분실 여권을 구하고, 다섯 번이나 거처를 옮겨다니며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모든 기억들은 이제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작별이다. 하지만, 아내는 제복을 입은 군인 십여 명에 의해 끌려가고, 박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가의 도움으로 남으로 탈북하게 된다. 그리고 여인의 배를 쓰다듬어 주거나 만두를 사 자전거를 탈탈거리며 달리는 풍경이나 흔들리는 배 안에서 들려오는 사내들의 거친 말투 등의 또다시 다가갈 수 없는 꿈을 꾸며 오늘도 어제 같은 하루를 보낸지 7년이 지났다.

 

이렇게 폐인처럼 살아가는 그에게 보통 키에 깡마른 몸, 도수 높은 뿔테 안경, 어떤 식으로든 적수가 될 수 없는 풍모를 지닌 어딘지 낯이 익은 노인이 찾아온다. 그 노인의 이름은 노태수. 약 3년 전 봄, 새터민을 대상으로 하는 '북한이탈주민 보건의료인 자격심의위원회'의 심사위원이었던 노태수는 탈북 의사들이 남족에서 의사 국가고시를 치르기 전, 일차적으로 시험 적격성을 테스트하여 응시 작격을 부여하는 자리에서 박훈을 만나게 되었고, 박훈의 실력을 눈여겨본 노태수는 '새터민 의료진 교육 지원사업'에 그를 소개하였다. 그 덕에 박훈은 의사 국가고시에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노태수가 박훈을 찾아온 것은, 노태수 자신이 젊은 시절 고안한 획기적인 좌심실 재건술인 세이버 수술을 위해 손으로 병변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을 가진 박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이버 수술은 죽어 가던 심장도 살려낼 기적의 수술법이었지만 난이도가 높은 탓에 성공 가능성은 낮았고, 노태수가 의욕적으로 수술에 도전했다가 수술 직후 환자가 연이어 죽는 바람에 사기꾼으로 몰려 병원에서 퇴출당한 바 있었다. 노태수는 대략 10개월 안에 열 번의 수술을 단 한 차례의 실패도 없이 성공한다면 10억을 주겠다고 한다. 박훈은 공화국으로 다시 끌려간 아내를 구해올 수 있는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목숨을 판돈으로 거는 제안이기에 거절한다.

 

한편, 세종병원에 밀려 십수 년째 깨지지 않는 2위인 동우의료원에서는 여왕벌 문성주가 민수현에게 남북 합작 병원을 선점하기 위해 언론에 동우를 노출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오라고 한다. 민수현은 마취의 금봉현을 통해 듣게된 세이버 수술이 해결방안이 될 듯 싶었고, 세이버 수술의 성공의 관건인 손놀림 빠른 의사를 찾던 중 2004년 북한 용천에서 원인 미상의 대형 폭발 사고에 파견되었다가 만난 박훈을 떠올리게 되고, 그를 찾아간다. 박훈은 그렇게 민수현을 통해 또 한번 세이버 수술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고 10억을 제안하지만, 민수현은 세이버 수술과 노태수를 반대하는 문성주로 인해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한다. 이후 박훈은 1천만 원이라는 돈을 배팅한 노태수를 찾아가게 되고, 동부의료원의 이사장을 통해 두 사람은 동우의료원에 입성하게 된다. 두 사람은 602호의 병원의 골칫거리인 선천적 좌실실 이상으로 내원한 스물여덟의 청년을 수술하기로 하고, 박훈은 공화국으로 끌려간 아내를 구해오기 위한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다.

 

<<소설 북의 1>>은 노태수와 문성주의 오래된 악연, 성공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민수현, 북에 두고온 아내 송재희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닌 천재 외과의사 박훈, 이들 주인공을 통해 음모와 갈등으로 빚어지는 병원의 치열한 암투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치열한 음모와 암투 속에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이 드러날 것이며, 비정한 권력 집단을 통해 냉혹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 여과없이 보여질 듯 싶다. 이런 이권다툼 속에서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줄 박훈의 인간적인 면은 더욱 두드러질 듯 싶은데 앞으로 그가 보여줄 매력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이 자명하다. 음모와 암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여줄 박훈의 무모한 도전!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이미지출처: '소설 북의 1'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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