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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ㅣ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3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프란시스 던킨 베드포드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4년 6월
평점 :
보물창고에서 <세계명작전집> 시리즈가 새로 출간되었다. <올 에이지 클래식><클래식 보물창고> 등을 통해 보물창고의 고전을 접해본 적이 있는지라 새로운 명작 시리즈의 출간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001 <어린왕자>를 시작으로 10권의 고전이 이미 출간되었으나 내가 처음 접하게 된 책은 003 <<피터 팬>>이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 팬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고전'이라는 별칭이 붙을만큼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재탄생되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세기의 명작 <<피터 팬>>. 어른도, 학교도 없는, 그래서 즐겁게 놀기만 해도 좋을 동심의 세계 '네버랜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던 곳이며, 책임감도 사회의 억압도 필요없는 마냥 행복한 어린시절 그대로 머무르고 싶어 피터 팬이 되고 싶었던 바람 역시 누구나 가져보기도 했지만, 사실 네버랜드와 피터 팬은 열세 살 죽어 영원히 소년으로 남은 형과 그를 대신해야 했던 작가 제임스 매뉴 배리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어 탄생된 조금은 슬픈 사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총애를 받던 형 데이비드가 사고로 죽자 우울증에 시달린 어머니를 위해 형의 옷을 입고 형의 행동을 흉내 내며 형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배리는 형이 죽은 나이인 열세살 무렵부터는 자라지 않아 평생 150센티미터 남짓한 키로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런 배리의 환경과 형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아픔 등이 <<피터 팬>>으로 탄생된 것이다.
"웬디, 밤이 되면 우리에게 이불을 덮어 줄 수도 있어."
"밤에 우리에게 이불을 덮어 준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거든."
"우리 옷을 꿰매 줄 수도 있고 주머니를 달아 줄 수도 있을거야. 우리 옷엔 주머니가 하나도 없거든." (본문 51p)
사실 나에게 <<피터 팬>>은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더 많이 접해온 작품이다. 책은 어린시절 읽은 것이 전부였기에 성인이 되어 읽게 된 <<피터 팬>>은 또다른 감흥을 선물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 피터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네버랜드는 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엄마가 되어 읽게 된 <<피터 팬>>에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가 점점 부각되어 보여지는 것을 느꼈다. 피터가 엄마가 필요하다며 웬디를 데리고 갔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엄마는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던 어린시절 어른이 없는 네버랜드는 환상의 세계였다. 하지만 네버랜드에서 조차 엄마는 필요했고, 우을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위해 형이 되어야만 했던 배리에게도 배리 자신을 향한 엄마의 관심,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보물창고 <<피터 팬>>에는 배리의 생가와 무덤, 그리고 피터 팬 탄생의 배경이 된 켄싱턴 공원과 피터 팬 동상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터 팬의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켄싱턴 공원에서 인연을 맺게 된 데이비스 부부의 다섯 아이들의 사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배리가 <<피터 팬>>의 저작권을 기부한 그레이드 오먼드 스트리스 아동 병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고자 했던 배리의 마음이 느껴진다. 헌데 <<피터 팬>>이 원래 이런 내용이었던가? 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피터 팬의 이야기가 원작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 듯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작보다는 각색된 작품이나 <<피터 팬>>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여겨지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원작 <<피터 팬>>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비유와 풍자가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아름답고 귀엽게만 '꾸며진' 등장인물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등장인물들을 마주하는 순간 독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본문 中)
애니메이션이 아닌 비유와 풍자가 가득한 원작에 충실한 <<피터 팬>>을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다소 낯설은 느낌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는 내용과 다를 바가 없어 안도했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동심은 그대로였으며, 아이들이 느끼게 될 환상도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엄마, 지금은 왜 못 날아요?"
"그건 엄마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나는 법을 잊어버려."
"왜 나는 법을 잊어버리는데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으니까. 즐겁고 순진하고 이기적인 사람만 날 수 있거든." (본문 257p)
어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해야 할 의무와 책임과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웬디는 해적을 무찌르고 집으로 돌아오고 어른이 되어 딸을 낳았다. 웬디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으며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 소년들도 물론 어른이 되었다. 누구나 이렇게 어른이 된다. <<피터 팬>>은 모든 아이들은 자라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도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다. 다만 현실에 지치고 지치는 어른이 될지라도, 어린시절 가졌던 동심과 순수한 마음을 잊지 말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 우리에게는 힘든 마음을 달래줄 네버랜드가 있기 때문에.
웬디는 비참한 소년의 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제 웬디는 피터 팬 때문에 상심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어른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젖어 있었다. (본문 262p)
어른이 되면 때때로 어린시절의 순수했던 마음, 즐거웠던 시절들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들의 바람을 담은 <<피터 팬>>이 더욱 사랑받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어린시절 네버랜드를 날 수 있었던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하지만 웬디가 제인에게 피터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내가 내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들려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어른이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네버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이미지출처: '피터 팬'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