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주몽
린다 수 박 글, 이광익 그림, 최인자 옮김 / 서울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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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이라는 게 꼭 사실을 다뤄야 할 필요는 없다. '소설'이라는 단어 자체가 '꾸면낸 것'이라는 뜻이니.

특정 독자를 상대로 한 것들에 이미 아는 것에서 뽑아내는 것은 어디서나 보는 일이다. 서양 이야기 중에는 성경이나 각 나라의(비록 뒤섞였더라도 고유라고 믿어줄 수 있는)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인에게는 생소한 고구려의 주몽을 화두로 잡는 것은 신선한 시도가 된다. 문제는 그 주제가 낯설지 않은 나라(또는 사회 또는 집단)에 오면 어색해진다는 것이다. 부여나 고구려 때는 방바닥에 앉는 것보다는 의자에 앉는 게 보통이었다는 게 정설인데, 미국의 교포 입장에서는 알지 못하는 지식일 것이다. 그 외에 글 여기 저기에서 보이는 헛점이 너무 많지만 넘어 가자, 소설이니까.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사소한 것에서 글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있다. 그래야 2천년을 뛰어넘어 온 사람 사이에 말이 잘 통하는 것도 허용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09년 2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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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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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읽을 때 여기저기서 줄거리를 이미 알고 읽기 시작하여서인지 자꾸 그 줄거리와 비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여 당황하였으나 학회차 비행기를 타면서 대기 시간에 읽다가 다시 밤에 시간이 날 때 읽다가 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멀리 내버렸습니다.

여러 작품들에서도 시도된 바 있는 각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와 생각이 이곳에서도 반복되었지만 조금 다른 점은 동일한 정보가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나 상황, 그리고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에 의하여 왜곡된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조금 색달랐습니다. 물론 그에 의한 줄거리의 변형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모든 것을 아는 작가의 시점이 아니라 일부만 아는 개개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에 맞지 않는 인물은 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 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4부격인 "1999년 런던"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소설속의 작가가 마음대로 슬쩍 비틀어놓은 내용(소설)임을 알게 되면서 잠시 허망해지기도 합니다.

소설이란 허구와 같은 말입니다. 즉 사실이 아니란 것인데, 일어날 가능성은 있는 것이고 요즘에는 체험소설이니 하면서 사실성을 갖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 원칙에 충실한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뭔가 작가가 완성하지 못하고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느낌을 두어 군데에서 느껴졌습니다. 각각에 대한 반응은 각자가 다른 법이므로 그게 어떤 것이었고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덮어두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만 쓰자면, 제목이 왜 속죄가 되었는지 궁금하고 소설속 작가가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자위하는 장면에서는...... 

(08년 5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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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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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정적인 내용을 싫어하지 않기에 책 자체에 대한 호감은 여전히 있으나, 책을 들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결말을 예상하게 되어 실망이 큰 작품이었다.(불행하게도 전개 자체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냥 물흐르듯이 쓴 작품일뿐이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어찌하리.

하지만 책을 아직 적게 읽은 우리 애들과 아내가 보기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무슨 상의 심사위원들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사족) 오늘 리뷰를 4개 썼는데 전부 부정적이네요. 첫날부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반성 중입니다. 

(07년 12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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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린
로렌 세인트 존 지음, 조영지 옮김, 데이비드 딘 그림 / 예림당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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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틴은 남자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여자처럼 묘사되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 뒤에 여자임이 증명되어 일단 적응했습니다. 저자는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마틴이 태어난 후 마을의 예언자 그레이스가 그녀를 전설의 그 아이라고 하자(전설에는 권능과 고난이 뒤따른다) 아이를 그 예언에서 벗어나게 하고픈 엄마 베로니카는 영국으로 가족과 함께 떠난다. 11살 때 원인 모를 불이 나서 아빠 엄마가 죽자 마틴은 남아프리카에 사는 외할머니 그윈 토마스에게로 가게 된다.

마틴을 공항으로 마중나온 사람은 관리인 텐다이였고, 중간에 그레이스를 만나게 된다. 다른 동물 관리인으로 알렉스가 있다. 마틴은 (아프리카에서는)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하얀 기린(제미)을 만나고 친해진다.

간교에 의해 제미가 납치(생포)되자 마틴은 케이프타운 항구로 가서 벤의 도움을 받아 제미를 구출한다.

는 게 줄거리인데 전설이나 예언을 너무 강조한 흠이 있습니다.

일련의 일이 벌어지는 동기를 살펴보면 하나로 모아집니다. '내 판단에 의해 다른 이의 생활을 좌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선의든 악의든 간에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판단착오/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후속작 <돌고래의 노래>라는 것에 독후감이 조금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벤트가 있었나 봅니다. 유형이 비슷하네요. 

(09년 2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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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

ㅅㅅ를 사랑하는 여자 2014-09-1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감되요!
 
한걸음만 다가서 봐 세계아동문학상 수상작 8
이반 서덜 지음, 김옥수 옮김, 윤예지 그림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조쉬가 고모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를 거의 시간순서대로 기술한 글로써 대부분이 조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는 방식으로써 '나만의 생각'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 독자로서는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형식이지요.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이상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몇 등장인물의 태도나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어차피 한 사람의 생각과 표리부동해질 수 있는 말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다른 사람의 말(어쩌면 그 말도 주인공처럼 서로 다른 생각과 말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읽으면 그렇게 됩니다.

아마 이런 형식이기 때문에 상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 받은 작품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생겨버렸습니다.) 이른바 문제작이기 때문이죠.

1971년도에 상을 받았으니 아마 그 해 쯤 출간된 작품 같습니다.

증조할아버지와 백년의 나이 차가 난다는 대목과 증조할아버지가 1821년생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주인공이 15살인 것까지 따지면 배경은 1930년대 중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70년대, 또는 60년대의 작품에는 이런 글이 많았던 것 같으니, 아마 시대 조류에 맞는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검토할 가치가 있는 문제작이었을 것이고요. 사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느낌도 시간 낭비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더 이전 시대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이 책도 굳이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그나저나 책 제목이 왜 '한걸음만 다가서 봐'일까요? 사실 제목 때문에 (이미 리뷰를 쓴) 독자들이 그런 혼동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원제 'Josh'가 더 글 내용과 부합하는 제목입니다. 

(09년 2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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