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나는 작가다.

15년 전 세 소녀의 실종 사건을 기본으로 한다.

갑자기 사라진 이 소녀들의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

이때 이들과 같은 오두막에 머물렀던 소녀 에마가 주인공이다.

소녀는 이 사건으로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작가는 과거의 사실을 하나씩 밝혀내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간다.

그 과정의 핵심은 15년만 다시 열린 나이팅게일 캠프다.

나이팅게일 캠프의 주인 프래니는 에마가 미술 교사로 참석하기를 바란다.

이제 어른이 된 에마가 이전과 같은 오두막에 어린 세 명의 여학생과 머문다.


같은 장소, 같은 방, 자신을 빼면 같은 세 명의 여학생들.

15년 전에는 가장 막내였다면 이제는 캠프 유경험자이자 미술교사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15년 전 이야기들이 교차한다.

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세 소녀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들 중에서 여왕벌 역할을 하면서 에마를 돌보아주는 학생은 비비언이다.

비비언은 첫 생리를 하는 그녀를 도와주고, 이 캠프의 전설을 알려준다.

이 캠프가 있는 미드나이트 호수의 건설과 관련된 무서운 전설이다.

실제 이 호수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댐을 만들고 부수면서 만들었다.

이 호수 밑에 귀가 멀고 나환자들이 살던 마을을 수몰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비비언들이 사라진 이후 정신병을 앓은 에마는 그림으로 그 병을 벗어난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모두 사라진 세 소녀 비비언, 내털리, 앨리슨이 그려져 있다.

실제 그녀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이것밖에 없다.

다른 그림은 그릴 수가 없어 그림을 멈추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은 수집가의 인기를 끌고, 전시회에서 모두 팔린다.

이런 그녀에게 새롭게 열리는 나이팅게일 캠프는 아주 힘든 선택의 순간이다.

15년 전 실종 사건의 악몽을 떨쳐낼 기회이지만 상황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온 캠프에서 비비언의 지도를 통해 그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이 캠프가 있는 곳에 있었던 정신병원에 대한 자료를 발견한다.

그 시대 여성들이 어떤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지 알려준다.

새로운 괴담이 하나 추가되고, 과거 여성 차별의 역사가 서늘하게 나타난다.


두 진실, 한 거짓 게임. 단순히 게임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 게임 속에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단서들이 들어있다.

무심하게 읽었던 이 게임 속에 깔아 둔 복선은 아주 중요한 단서들이다.

작가는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복잡하고 서늘하게 만든다.

여기에 에마가 동경하고 짝사랑했던 테오를 등장시켜 더 복잡하게 만든다.

테오는 15년 전 에마의 진술 때문에 아주 강력한 용의자가 된 적이 있다.

이 진술의 내용이 무엇인지 마지막 부분에 밝히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거짓말과 오해와 괴담과 전설이 뒤섞여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게 몰아간다.

그리고 다시 사건이 발생했을 때 15년 전 사건은 유령과 함께 돌아온다.


아주 뛰어난 가독성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아주 노련하게 나를 괴담과 전설로 몰고 갔다.

이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한다.

과거의 사건과 전설과 괴담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 당사자라면 어떨까? 단순한 괴담이나 전설이 아니다.

15년 전 막내였던 에마는 이제 새로운 여학생들의 큰언니가 된다.

이들과 함께 한 모험 중 하나는 이들의 유대감을 높여준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거와 교차하고, 과거는 현재와 맞물려 돌아간다.

로맨스가 엮이고 상황이 꼬이면서 상황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숨겨진 사실 하나가 드러나면서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드러나는 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소년 마스터피스 시리즈 (사파리) 14
엘로이 모레노 지음, 성초림 옮김 / 사파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가해자나 피해자의 심리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피해 소년이 겪는 심리적 변화와 행동을 자세히 보여준다.

하지만 가해자의 시선도 결코 내려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 피해 소년을 들여다보는 친구와 선생의 시선도 같이 담겨 있다.

소년이 좋아했던 소녀의 행동은 적극적이지 못했고, 선생은 교장의 벽에 부딪힌다.

생존을 위해 소년은 자신이 만화 속 슈퍼 영웅처럼 변하기를 바란다.

말벌에 쏘였을 때 스파이더맨처럼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은 마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변하지 않는다.


병원에 실려 온 지 사흘이 지나 피해 소년은 깨어난다.

이 소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는다.

분명히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고가 어떤 것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백 개의 팔찌를 찬 소녀, 눈썹에 흉터가 있는 소년, 손가락이 아홉 개 반인 소년 등을 등장시킨다.

이 소설의 흥미롭고 재밌는 지점 중 하나가 이름이 아닌 외형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들은 피해 소년이 짝사랑하거나 절친이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 중 둘이 병문안을 오지만 그들 사이에 이전 같은 분위기는 없다.

왜 이렇게 이들은 변한 것일까?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한다.

의사는 아이가 말하는 말이 처음에는 황당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피해 소년은 평범한 학교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시험지를 달라고 한 손가락이 아홉 개 반인 소년이 등뒤에 오기 전까지는.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요구를 “싫어”라고 말한다.

이 말 한 마디가 소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손가락 아홉 개 반인 소년 MM이 이 단어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피해 소년은 공포에 떨면서 집으로 간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소년에 대한 MM의 폭력이 가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점심 샌드위치에 작은 폭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폭력은 강해지고, 이를 부추기는 아이들도 생긴다.


소년이 이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쥐약을 넣어 가져간다.

하지만 MM이 먹기 직전 그를 밀치면서 위기 상황을 넘어간다.

그런데 이 행동이 MM의 분노를 더 부채질한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폭력은 이제 소년의 삶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간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소년의 등에 물건을 집어 던진다.

이것을 눈치 채는 선생이 있지만 드래곤을 등에 새긴 선생 이외는 무시한다.

드래곤 선생만 교장에게 말하지만 교장의 반응은 문제만 일어나지 말라는 수준이다.

드래곤 선생은 직접 MM에게 경고를 보내지만 교장의 처분 없음이 소년을 더 은밀한 폭력으로 내몬다.

소년은 어느 날 자신에게 투명인간 같은 능력이 생겨 괴롭힘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외면만 받는 소년에게 이런 능력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자신이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한 소년의 처참한 삶.

이를 지켜보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방관하는 두 명의 친구.

자신의 경험으로 드래곤을 새긴 선생의 관찰과 작은 몸부림.

공론화가 되어 문제가 되는 것이 두렵지만 변화가 없어 계속 괴롭히는 손 가락 아홉 개 반인 소년.

바쁜 일상에 자신들의 아이가 어떤 폭력에 시달리는지 깨닫지 못하는 부모.

문제 초기에 사건을 더 크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교장의 안일한 사고 방식.

소년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못 본 척한 사람들과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은 사람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건 내 문제가 아니야.”란 삶의 철학을 가진 우리들을 돌아보게 한다.

읽는 내내 무거운 내용 때문에 빠르게 읽히는 글을 자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겁고 답답한 내용이지만 짧고 간결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성이 너무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쿠키런 킹덤 15 : 그랜드베리 무역시장 - 오리지널 레벨업 코믹북 쿠키런 킹덤 15
김강현 지음, 김기수 그림 / 서울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쿠키런 킹덤 시리즈 15권이다.

캔들지팡이의 카타리나의 화염 공격에 용감한 쿠키 일행은 위험에 처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용감한 쿠키가 온몸으로 화염 공격을 막는다.

그 뒤를 블랙레이즌맛 쿠키가 달려가면서 카타리나를 공격하고 물리친다.

그런데 용감한 쿠키는 이미 시커멓게 탄 상태다.

모두가 용감한 쿠키의 죽음을 슬퍼할 때 치료사맛 쿠키가 나선다.

용감한 쿠키의 지팡이로 탄 부분을 때려 용감한 쿠키를 살려낸다.

이제 수천 년 동안 시간이 멈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때 치료사맛 쿠키를 누군가가 공격한다.


다크카카오 쿠키가 아포카토맛 쿠키와 함께 나타났다.

다크카카오 쿠키는 수천 년이 흘렀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용감한 쿠키를 공격한다.

용감한 쿠키의 지팡이가 부서지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벨벳케이크맛 쿠키가 위기에서 구해준다.

그리고 왜 벨벳케이크맛 쿠키가 어둠마녀 쿠키의 편에 섰는지 알려준다.

다크카카오 쿠키는 서원의 정지장 속에 잠든 아들을 발견한다.

자신의 소울잼을 꺼내 아들을 살리려고 하는 순간 치료사맛 쿠키가 정체를 드러낸다.

다크카카오 쿠키가 가진 소울잼의 일부가 몸밖으로 나온 상태다.

이 일부를 아포카토맛 쿠키가 빼앗아 간다.


치료사맛 쿠키의 정체가 나온 후 수천 년 전 동지들이 다시 뭉쳤다.

새로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

용감한 쿠키와 함께 한 친구들은 새로운 왕국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는다.

이 시리즈의 재밌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헤어짐이다.

이 헤어짐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동행자들의 성장을 담고 있다.

커스터드3세맛 쿠키 가계의 숨겨진 힘이 드러나면서 그 가능성을 시험할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용감한 쿠키는 과거의 동료와 함께 새로운 모험을 향해 나아간다.

이 새로운 모험은 수천 년의 시간 속에 변한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바뀐 세계 속에서 이들은 모든 것이 낯설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랩은 음악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필요한 물건을 사지도 못한다.

왕이었던 과거에 모든 물건은 부하들이 구해서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 앞에 새로운 모험을 알려주는 검객 라즈베리맛 쿠키가 등장한다.

이 검객의 실력은 잘 알 수 없고, 엄청난 부자란 것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돈의 가치, 훨씬 편해진 마차 등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죽은 듯한 다크카카오 쿠키의 아들 다크초코 쿠키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과연 다음 권에서는 다크초코 쿠키가 등장할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끌로이
박이강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고,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지만 첫 번째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강남 부자 아이가 경험하는 삶의 한 단면을 보았다.

피아노에 재능이 없어 다른 길로 공부를 선택한 지유의 이야기다.

공부가 더 쉬었던 것은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부도 그녀 엄마의 바람처럼 압도적이지는 않다.

미국 유명 대학에 떨어진 지유를 편입 방식으로 뉴욕 대학에 보낸다.

이런 방식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여기저기에서 보고 들은 것 때문이다.


지유를 보면 엄마의 그늘 속에서 곱게 자란 소녀의 전형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

흔한 학창 시절 일탈조차 그녀는 모른 채 살았다.

뉴욕 대학에 입학한 그녀의 영어 실력은 엄마의 기대와는 달랐다.

불안정하고 불안한 뉴욕 생활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사람이 끌로이다.

끌로이는 지유와 대척점에 서 있는 삶을 살아간다.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긴다.

이런 그녀에게 지유는 강하게 끌린다. 동성애적 요소가 살짝 보인다.

하지만 끌로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한 번도 정확하게 내뱉지 못한다.

다만 그녀와 함께 살고 주변에 머물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가슴 아파한다.


지유는 엄마의 병 때문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다.

이때는 이미 끌로이와 사이가 틀어진 뒤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후반부에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지유의 순진한 폭력에 놀란다.

대학을 몇 년이나 다닌 그녀가 이 정도 의식 수준이라니.

온실 속에서 평온하게 자란 그녀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힘도, 능력도, 열정도 없다.

그녀의 이분법적 사고는 자신의 편리에 의해 나누어진다.

그녀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녀의 엄마가 말한대로 그 풍요를 누리고 산다.


지유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끌로이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삶의 단편을 담아서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끌로이와 닮은 듯한 한 여자 아이를 본다.

다시 그곳을 찾아가 만난 아이가 타투를 하는 미지다.

작은 일탈로 손가락에 타투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 타투를 기점으로 미지의 연락이 자주 오게 되고, 끌로이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자신의 감정을, 성 정체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듯한 소녀 미지.

온실 속 화초와 잡초는 서로 끌리지만 너무 달라 충돌이 일어난다.

이렇게 생긴 이야기는 지유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미노 게임은 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엄마의 유일한 취미다.

도미노는 쓰러트리기 전에 넘어질 때 모습을 상상하고 세워야 한다.

이 소설 속에서 도미노의 두 개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뉴욕에서 끌로이를 위한다고 한 전화 한 통이다.

다른 하나는 미지에게 끌리는 마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그녀의 행동이다.

지유의 순수한 무지와 유약한 모습은 가족의 부와 삼촌의 법률 지식으로 지켜진다.

아비지 교통 사고의 비밀과 그 후유증이 남긴 두 집안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비된다.

작가는 지유 집안만을 다루면서 반대 집안의 비극은 눈 닫아 버린다.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것은 실패와 실수에도 끄떡없는 그 집안의 부와 권력이다.

왠지 모르게 지유와 그 가족들의 모습에서 계급의 향기가 난다.

다행이라면 마지막에 지유가 몸에 새기는 타투가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에 장석주의 글을 읽는다.

한때 그의 글이 좋아 열심히 찾아 읽은 적이 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그의 글을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예전 같은 시간도 여유도 없으면서 우선 순위가 뒤로 밀렸다.

그러다 요즘 시집 읽기가 힘들었는데 시평론집이 나왔다.

얼마 전 시 창작에 대한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시집은 어렵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는 있지만 시 이해도는 높이지 못했다.

 

스물아홉 편의 시와 시인들.

낯익은 시인보다 낯선 시인들이 더 많다.

한 번 읽었던 시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뭐 읽었다고 해도 그것을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편을 시를 천천히 읽고 분석한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그 평론 글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글들은 다시 시어들을 읽어보게 한다.

섬세하지 못한 내가 놓친 시어와 감상들이 조금씩 살아난다.


솔직히 말해 이 책에 실린 시들 대부분은 낯설고 어렵다.

아마 각각의 시집에서 만났다면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의문 부호를 달면서 끝났다.

희망이 절망보다 더 괴롭고, 이마와 환대를 어떻게 연결했겠는가.

이원의 <목소리들>에 나오는 28개의 단어의 시어들은 또 어떤가!

추억을 불러오는 정진규의 시 <옛날 국수 가게>는 짧지만 가게 주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이렇게 저자는 시인들의 시를 해석하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풀어놓는다.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철학의 이해도는 글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단순히 한 편의 시만 다루지 않고 그것과 관련된 철학을 같이 풀어낸다.

 

29명의 시인들이 낯설게 보고 시어로 담아낸 시들은 시평론을 거치면서 달라진다.

원래 시는 그대로인데 그 시를 보는 내 시선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단지 그 시만이 아니라 시집 전체를 읽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 글들을 보면서 최근 내가 시집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 보였다.

시에 대한 이해를 단숨에 올릴 수는 없지만 작은 단서는 발견한 느낌이다.

가끔 읽게 되는 시집 뒤에 나오는 평론과는 다른 글이라 읽기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단숨에 읽기에는 담고 있는 내용들이 무겁다면 조금씩 읽으면 된다.

실제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이 책을 며칠이나 걸려 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낯선 시인들을 여러 명 만난 것이다.

나의 좁았던 시인의 문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넓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