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공화국 화학법정 9 - 음식과 화학, 과학공화국 법정 시리즈 42
정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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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공화국 법정 시리즈의 42번째 이야기는 <음식과 화학>이다.  음식에 어떤 과학 상식이 들어있을까 싶었는데, 이 책 상당히 재미있다. 처음부터 시리즈 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이상한 면도 있긴 하지만, 이번 호를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기 전에 정완상 교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니 <과학 공화국 법정 시리즈>를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한것이 아니라 정교수가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단다. 생활 속 과학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은 <과학 공화국 법정 시리즈>는 과목별 총 10편으로 50권에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 예정이다.  굉장히 많은 황당한 사건들이 웃음을 짓게 만드는데, 매번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끌어내는 정완상 교수의 능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화학 법정이 만들어진 이유야, 과학공화국 법정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이 과학공화국 국민들의 화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대 화학법정의 판사는 화학에 대한 책을 많이 쓴 화학짱 박사가 맡았고, 달랑 두명의 변호사를 선발했는데, 한사람은 화학과를 졸업했지만 화학을 모르는 화치 변호사와, 어릴 때부터 화학 영재 교육을 받은 화학 천재인 켐스 변호사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건들은 이번 시리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음료, 음식, 음식과 건강에 관한 사건으로 이루어진 과학 공화국 화학법정의 <음식과 화학> 편으로 들어가 보자.

 

  전자렌지에 우유를 오래 돌리면 왜 우유가 터질까?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골고루 데우기보다 어느 특정 부분을 특별히 더 가열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화학에 대한 부분을 찾았는가?  이 장에 나온 화학 이야기는 가열이다. 그렇담 카페라테를 만들땐 커피에 우유를 부어야 할까? 우유에 커피를 부어야 할까?  별다방에 친구와 가면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마시다가 우유를 넣어서 카페라떼를 만들어 먹는다. 좋다고 먹었는데, 이 방법이 틀렸단다.  뜨거운 커피에 우유를 따르면 우유가 가진 고유의 성질이 변하는 변성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유에 커피를 붓는 것이 제대로 된 카페라떼를 만드는 방법이란다.  이젠 별다방에 가도 제대로 된 카페라떼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유를 끓이면 왜 넘치는 걸까?  우유를 끓일 때 우유의 단백질과 표면장력 때문에 거품이 많이 일어난단다.  다른 예로는 물에 세재를 넣고 끓일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우리 몸의 온도가 내려갈까? 답은 아니다.  아이스크림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면 그 찬 기운에 의해 내장의 온도 역시 내려가기 때문에 온도를 감지한 내장의 기관들이 원래의 온도로 돌아가려고 하면서 에너지를 열로 방출하게 되어 체온이 상승하게 된단다.  옛 어른들이 '이열치열'을 말씀하신 것이 과학적인 원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변화하는 현상을 무엇이라고 할까? 금속이 녹스는 것이나 갈변현상, 물질이 타는 연소 반응 등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변화하는 것을 산화라고 한단다.   물질이 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물질 속의 탄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과정을 탄다라고 하는데, 탄소가 없는 것은 가열해도 타지 않는다. 그렇담, 물도 탈까? 수소와 산소로만 이루어진 물은 아무리 가열해도 탄소가 없기때문에 타지 않는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에도 화학상식이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음식의 간을 맞출때에는 설탕, 소금, 식초, 간장, 된장 순으로 넣어야 한단다.  양념은 분자량에 차이가 있어서 분자, 즉 맛의 알갱이가 큰 것을 먼저 넣어야 각각의 맛을 모두 살릴 수 있다.  설탕보다 소금을 먼저 넣으면 소금에 알갱이가 설탕보다 작아서 음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먼저 자리를 다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설탕이 들어갈 여지가 없게 되어 단 맛이 음식에 골고루 밸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상식 하나 더... 덜익은 파란 바나나나 레몬을 빨리 익히기 위해서는 종이봉투에 넣어 두면 되는데, 서양에서는 석유스토브를 켜서 과일을 익혔단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에틸렌 가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식물의 발아, 개화, 과일의 숙성, 낙엽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훨씬 맛있는 과일을 얻을 수가 있단다.

 

  음식 궁합중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복숭아와 장어도 궁합이 맞지 않은 음식 중 하나인데, 이 또한 화학 상식으로 풀어주고 있다.  장어는 장에 부담을 줘서 설사가 생기게 할 수 있고, 복숭아는 유기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장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두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먹으면 장에 탈이 날 가능성이 많단다.  그것뿐이 아니다. 과학으로 풀어주는 음식이야기 중에는 감기약 대신 고구마를 쪄 먹는 이야기도 들어있다.  고구마 100g속에는 30ml나 되는 비타민 C가 들어있어서 고구마를 먹으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단다.  게다가 고구마는 찌더라도 영양소가 90%는 남아있고, 날로 먹는 것보다 쪄 서 먹는 것이 단 맛이 나기 때문에 먹기가 좋단다. 이유는 온도가 높을 수록 전분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번 <음식과 화학>편이 다른 시리즈보다 재미있었던 이유는 주부입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선은 재미있고, 과학이야기지만 실생활에 많이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었다. 재미있게 읽다보면 과학 상식이 쑥쑥 늘어나는 요 책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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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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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무렵에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되어 있는 책을 처음 만났었던 것 같다.  수업에 필요한 책이라 읽기 시작했는데, 영문으로 된 원서이기도 했고, 인물들이 어찌나 많은지, 성경 복음서 중 마태복음의 처음을 읽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몇장이 넘어가고 나서야 인물관계도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리스 신화>속 영웅들에 빠졌었다.  우리집 책장 에 아이와 관련된 책의 대부분은 성경과 신화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어드, 북유럽 신화까지 작은 아이는 신화 속 영웅들에 빠져 있다.  내가 좋아했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남자아이 눈에 불멸하는 신들과 불멸은 아니어도 필멸하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모험을 펼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눈길을 잡았을 것이다.

 

 

 

  편하게 앉아서 책장을 넘기니 겉표지에 호기심을 느꼈지는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림 좋아하는 큰 아이는 조각상에 호기심을 느꼈을 것이고,  신화에 빠져있는 작은 아이는 그림만으로 신들의 이야기임을 감지했을 것이다.  물론, 책장을 몇장 넘겨보고는 그냥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그리스 신화>나 <일리어드>를 아직 서사시로 만날 나이는 아니니 말이다.  이책은 총 5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서정시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2부는 다양한 산문 매체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한 내용, 데부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대한 내용, 4부는 플라톤의 두 대화에 등장하는 영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5부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영웅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이 하버드대 그레고리 나지 교수의 24개 강의록을 기초로 만들어졌는데 5부는 다른 강의들이 추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연구 목적으로 읽는 독자들은 추가된 부분을 나중에 확인해도 무관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는 이 책을 다 읽는 것만으로 벅찰 것 같다.

 

  지은이 그레고리 나지는 하버드 대학교의 그리스 고전 문학 프랜시스 존스 석좌교수이며 비교문학 교수이고, 워싱턴 D.C에 있는 하버드 그리스 고전 연구 센터 소장이다.  그레고리 나지 교수는 ‘영웅’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개념은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달랐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꽤나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사실 그렇게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강의록을 넘기는게 어렵지는 않다.  전문적인 용어들과 작가만 사용하는 용어들('국가 간의' 혹은 국제적이'대신 '폴리스 사이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책에선 '판-헬레닉', '범 그리스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단다. (p.25)이 있기는 하지만, 이 문장들로 글이 막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찌나 주석을 열심히 달아 놓았는지, 글 읽고 주석보고 하다보면 어떤 내용을 읽고 있는지도 헷갈릴떄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역사적인 맥락의 분석을 통해서만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오이디푸스,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를 문학이 아닌, 연구 목적으로 읽게 되면 이렇게 어렵게 다가 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기록과 작품들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로 되어 있는 것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으며, 특별히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스어 원문을 함께 소개하였고,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 표면에 새겨진 그림과 같은 유물의 사진들을 통해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BC 5세기경에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교양이 있는 인간이라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p.27) 이 강의록에선 기본적인 교양에 대한 내용은 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구체화되면, 종교와 관련된 내용은 신들의 형태와 기능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호메르스식 서사시는 일종의 신화로 다른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서사시는 의식으 틀안에 있다(p.451)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식을 수행함으로써뿐만 아니라 의식의 틀 안에 있는 신화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으로써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목적으로 하는 강의록이기에 결코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내가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알고 있긴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리스 신화속 영웅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많은 부분에 분포되어 있고, 인류 역사 속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었다.  나지 교수가 1970년대 후반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정리해온 과정을 바탕으로 한 24개 강의록을 기록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매력적인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상식처럼 알고 있던 신화속 영웅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만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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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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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중에서 조정래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13년엔 『정글만리』가 거의 모든 서점의 베스트를 차지했었고, 인터넷으로 연재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읽혀지고 있고, 읽으면서 현시대를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통해서 분명 작가의 생각을 알게 되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생각을 여러각도에서 풀어쓴 글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작가의 말에서 선생은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국면의 이야기들은 조정래 선생의 문학론이기도 하고, 인생관이기도 하고, 민족의식이기도 하고, 민족사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고, 사회 인식이기도 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염원이기도 하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누군가의 문학론, 인생관을 들여다 보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조정래 선생의 문학론과 인생관, 민족의식은 들여다 보고 싶었다.  선생의 책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가슴 벅찬 감정에 밤잠 설치던 그 날들을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10개의 인터뷰와 뉴스 기사들을 만나보자.  한국인과 중국인의 마주 보기 :『정글만리』를 답파하며 (서경석: 문화계간지 <자음과모음>) / 글길 만 리를 돌아가니 ‘진짜’ 중국이 보이더라 (안서현: 월간문예지<문학사상>) / 작가의 소임, 작가의 노력 (송지헌.조은유: OBS<명불허전>) / 오늘,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 (김정수: 2014.3.24<한겨레>) / 조정래에게 길을 묻다 (송윤정): <참여사회>) / 작가는 시대의 나침반이다 (이광재: <중앙선데이>) / 민족주의자의 초상 (2004.3.16 <한겨레>) / 문학은 한 생을 바쳐도 좋을, 아름다운 이상 (채희윤: 계간문예지 <문학들>) / 등거리 외교 시대, 영세중립화의 꿈 (희망제작소 <조찬 인문학 강연>) / 인문학, 인간의 발견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 <인문학, 최고의 공부'나는 누구인가?'>)

 

  처음은 요즘 가장 핫한『정글만리』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글만리>속 주요 인물들과 중국을 향해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중국이 이렇게 핫한 나라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정글만리>를 통해서 본 것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훨씬 와 닿는다.  자본주의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돈 놓고 돈 먹기', '자본 불패, 자본 필승'이 와 닿았다고 이야기 해야할까?  중국의 3대 금기사항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마오쩌둥에 대한 비난이나 험담, 중국공산당에 대한 불신이나 비판, 마지막으로 대만 독립의 지지가 그것이었는데, 대만이 독립하는 날에는 티베트, 신장위구르를 비롯해 중국 영토의 65퍼센트를 잃게 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소수 민족은 어떨까?  물론,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국익에 중국이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의 관점이니 다른 관점은 잠시 접어두자.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범인들과는 다르다.  <정글만리>를 쓰기 전 취재수첩이 21권, 6~7년 동안에 기사 스크랩이 90권, 중국통사를 비롯한 경제를 다룬 저서 80여권, 책에 대한 포스트잇이 20여권, 자료들을 종류별로 분류, 정리한 대학노트가 2권, 구성.인물,줄거리노트 각 1권씩이라고 하니 선생이 중국통이 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선생의 인터뷰에는 선생의 작품만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부인인 김초혜 시인과의 러브스토리도 상당 부분 들어있는데,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부인 참 멋지다.  김초혜 시인에 대한 부분을 들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미당 서정주 시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화 옆에서>로 잘 알려준 서정주 시인이 친일시인이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노년에 전두환 찬양의 시를 쓴것은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것만 처음 알았겠는가?  IMF 이자가 25%라는 어마어마한 금리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니 난 정치. 경제에 너무나 관심이 없었다. 

 

  작가를 두고 '그 시대의 산소이며, 등불이며, 나침반'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거기에 어울리는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고, 작가는 정치인과 같은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분단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기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작가의 길은 분명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자기만 옳고 의롭다 여긴다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조정래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난 선생의 글을 읽고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한 부분만 가지고 어떻게 모든것을 이야기 하겠는가?  하지만, 해냄에서 펴낸 『조정래의 시선 視線』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만들고 있다.  역사와 경제, 정치를 들여다 보게 하고 있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눈 감고 귀 닫고 입 다물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가면 안되는 이유를 노작가가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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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용접공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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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을 읽지 않고 만화를 읽었다.   읽으면서 어린시절 만났던 <환상특급>이라는 외국 드라마가 떠올랐는데, 이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의 중간쯤에 모호한 상태가 꼭 안개속에 갇혀있는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구전되어지던 이야기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인위적으로 만든 꿈과 침대 귀신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수중 용접공』은 내게 <환상특급>을 떠올리게 했는데, 데이먼 린들로프가 서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환상특급>에서는 아쉽게도 누락되었던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야기라고 말이다.  분명 만화책을 읽고 있는데,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 거친 그림체 속에서 과거의 소리와 음악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나뿐일까?  그런 기분이 든다면 '수중 용접공'이라는 <환상특급>의 기이한 열차에 함께 올라타도 문제가 없을것 같다.

 

'내 이름은 잭 조지프이다. 나는 노바스코샤 주 티그스베이 해안에 설치된 석유 시추션에서 수중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태워났고, 아마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낳았을 때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1990년의 핼러윈 데이 밤에 사라졌다.  내가 열 살 때였다..' (p.98~99)

 

 

  노바스코샤 연안의 시추선에서 일하는 수중 용접공 잭 조지프는 막대한 수압을 견디며 깊은 바다 속에서 일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으로 나온다.  어느날 잭은 바다 밑에서 시계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하는 소리.  바닷속 보물을 찾던 아버지처럼 잭은 물에 이끌리고, 유일하게 마음 편하고 혼자인 장소인 바다속을 좋아한다.  아내의 출산일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부담감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위축되어 버리고는 물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잭은 아내와 곧 태어날 아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기시감처럼 잭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장면들.  잭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두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해저의 고독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이에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 생긴다.

 

  바다밑 바닥에서 시계를 줍자마자 잭의 시간은 뒤죽박죽으로 변하고, 시추선으로 올라온 잭은 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공간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음에도 잭은 아내의 출산을 걱정하지만, 그 순간 잭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10살의 어린 아이로 변해 있다.  이혼을 한 부모님. 만남이 쉽지 않은 아버지는 잭과 함께 할때 마다 술을 드셨고, <가라앉은 도시>라는 놀이를 하곤 했었다.  온 마을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고 상상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 바닷속 보물을 찾고자 했던 아버지와 아버지가 건네주던 시계를 쓰레기라며 버렸던 어린 잭. 그리고 그 시계를 찾아주겠다고 약속 했던 아버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핼러윈 데이에 물에 들어 갔다가 사라져 버린 아버지.  잭에 기억속에 봉인이 풀리면서 잭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현실과 환상의 중간쯤인 어딘가에서 잭은 그렇게 아버지를 만난다.  아들을 위해 시계를 찾던 아버지를. 아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를 잭은 아버지가 자신을 낳았던 나이가 되어 드디어 만나게 되고, 잭은 비로서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게 된다.  모든것이 사라질 것 같은 그 시간에 시추선 위에선 위험을 감지한 동료가 내려와 잭을 구해내고, 잭은 아내가 순산을 한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환상특급은 잭은 손에 어린시절 물속에 버렸던 시계를 보여주면서 끝이난다. 『수중 용접공』은 아버지와 아들, 탄생과 죽음, 기억과 현실과 함께 수면 아래 묻어 두고 있던 기억의 보물을 꺼내주고 있다.  어쩌면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이야기를 잭은 스스로 치료를 받고 이겨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것 뒤에 항상 수면 아래에서 잭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던 아버의 존재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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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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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엄마와 이야기 하다 보면 간혹 엄마의 인생은 책 한권 분량이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어린시절부터 여학교시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우리 남매가 결혼을 할때까지의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들었음에도 그리 세세하게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엄마가 걸어왔던 길을 글로 남기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었다.  함께 기뻐했던 일들,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던 일들, 기억속에서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까지 엄마의 세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빅 픽처』가 워낙에 강했기 때문에, 후속작들이 빛을 덜 발했다 하여도, 여전히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들은 히트를 치고 있고, 자꾸만 손이 가게 된다.  여자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묘사 할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성 심리에 정통한 더글라스 케네디가 선사한 이번 작품은 인생의 모든 조각들의 모음이다.  1966~1973년까지의 젊은 시절의 한나의 이야기와 50이 넘어버린 2003년 현재의 한나의 이야기가 1, 2 부로 나뉘어 져서 보여지고 있다.

 

 

 

  스무살은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는 나이이니 모든것이 변화하는것은 사실이지만,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었다고는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한후 주변을 보니, 서른이라는 나이도 여전히 아이같은 나이인데, 스무살이 무슨 어른이겠는가?  하지만, 스무살에 도달한 아이들은 스스로 어른임을 내세우기에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분석하려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한나 역시 그랬다.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이끌며 매스컴의 총아가 된 존 윈드럽 래덤 교수와 뉴욕갤러리에서 매년 개인전을 열 만큼 널리 인정받는 화가인 도로시 래덤의 딸인 한나 어릴 때부터 한나는 자기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누구의 딸’로 더 알려져 있다. 한나는 스스로를 부모와 달리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부쩍 자신감을 잃지만, 부모는 부모이기에 '엄마의 자살 기도는 결별을 선언한 남편과 반기를 든 딸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립하려는 의도적인 계획이 아니었을까?' (p.57)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다.

 

  한나의 엄마는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지만 한나는 댄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한나가 졸업도 하기 전에 댄과의 결혼을 발표하자 도로시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려고 하냐며 딸을 비꼬고, 한나는 부모의 우려와 친구 마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댄과 결혼해 곧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한나는 자신이 부모가 우려하던 대로 덫에 걸렀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이 이런것을..."제프리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펠험으로 이주한 결정도 실수인 것 같고, 블랜드 박사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가 어그러진 것에도 마음을 상했어요. 물론 제 인내심이 부족한 탓이죠.  살다 보면 뜻밖의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p.110)  아빠를 통해 알게된 토비어스 저슨이 댄이 시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을 비운 시기에 한나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육아에 지치고 남편에 대한 애정이 식어 외롭고 지쳐있을 때 찾아온 저슨의 유혹은 한나가 넘어가기에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멋져 보이던 저슨의 목적이 한나를 이용해 캐나다로 도주하기 위한 것이었을 줄.  한나는 협박과 불안에 저슨을 캐나다까지 피신시키고 돌아온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떤 비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아니,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비밀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서는 안 돼.' (p.219) 친구인 마지에게만 털어놓은 이야기를 속에 품고 한나는 삶은 2003년을 배경으로 넘어온다.  34년 동안 헌신해 온 결혼 생활의 결과 존경받는 교사, 남편은 의사, 아들은 변호사, 딸은 펀드매니저가 되어있으니 완벽한 집으로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남편, 강한 종교적 신념으로 배타적인 아들 제프리, 유부남과의 실연에 절망하고 있는 딸, 리지까지 한나의 삶은 항상 그리 순탄치가 않다.

 

  서른해가 지났다.  그렇게 깐깐하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빠 역시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 시간이 되었다.  가장 친한 마지는 폐암으로 몇개월 남지 않았다고 하고 세상은 그냥 흘러가는것 같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제 아이들만을 바라보는 나이도 남편만을 바라보는 나이도 아니지만, 여전히 치기어린 행동을 하는 딸아이는 한나의 아픈 손가락이고, 리지를 절망속으로 몰아놓은 의사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데, 세상은 리지를 정신병자로, 한나와 댄을 제대로 양육을 하지 못한 인물로 몰아세운다.  멀쩡한 사람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게 이렇게 쉬웠던가?  말도 안되게 그 옛날 생각하기도 싫은 토비어스 저슨이 책을 썼고, 그중 한 챕터가 한나에 관한 이야기란다. 사랑에 빠져 조국과 남편을 배신한 유부녀.  세상이 다 알아버린 리지의 실종과 맞물려 책을 팔 욕심인지 저슨이 나섰다.  모든걸 잃어 버린 한나.  왜 모든게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가?  한마디로 듣지 않고 한나의 독서토론 친구에게 가버린 댄, 낙태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제프리. 여전히 미궁에 빠져 실종상태로 있는 리지.

 

  더글라스 케네디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대략의 감은 이미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맞다.  새드도 해피도 아니지만, 한나를 위기에 그대로 넣어 두지는 않는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든 작품들이 약간은 권선징악을 풍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밀한 심리 묘사는 역시나 책을 읽는 내내, 한나와 동일시 되게 만들어 버리고, 황색 기사들이 목을 죄어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생! 필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마주하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겠는가?  바로 어제까지도 웃으면 지내던 이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가족마저도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버지 외에 한나에겐 가족도 아군이 아니었다.  삼십년을 산 남편이 얼씨구나 다른 여자에게 떠나버리는 상황이라니... 세상은 원래 이렇다고 포기해 버릴까?  한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웠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책을 통해 만난 아이들은 결코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엄마의 삶을 그려보다가 책 말미엔 내게 맡겨진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자로 생각이 바뀌어버린 소설이『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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