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벤트 일공일삼 62
유은실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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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도서를 읽으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본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큰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우는 엄마를 보면서 절절한 사랑이야기냐고 묻고, 작은 아이는 우는 책은 여자가 읽는 책이라 읽을수가 없다는 엉뚱한 주장을 내세운다.  내 주변의 어떠한 사건과도 연관되어지는 것 하나 없는 이야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역시 유은실 작가다.  몇 해전에『내 머리에 햇살 냄새』을 만났을때 작가의 언어 능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어쩜 그렇게 딱 맞는 예쁜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마지막 이벤트』는 이 황홀하리 만치 가슴 찡한 이벤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이 느껴질때마다 숨겨둔 폭죽이 하나씩 터지면서 눈물샘도 함께 터지게 만들어 버린다.

 

 

일흔 아홉, 죽기 딱 좋은 나이를 외치는 영욱이의 할아버지는 비행 할아버지다.  젊은시절 자식들한테도 부인한테도 잘못한것이 너무 많아서 할아버지의 표현으로 할머니는 이혼하고 젊은 일본놈하고 일본으로 가셨고,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어 영욱이네 집에 오셨단다.  모두들 할아버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지만, 영욱이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좋다. 무조건 영욱이 편을 들어주시는 할아버지를 왜 그렇게들 쌀쌀맞게 대하는지, 할아버지 냄새도(사실, 영욱이는 축농증이라 냄새를 못맡는다) 검버섯도 영욱이는 정말 좋다.  결혼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일 정도로 말이다.  영욱이의 할아버지, 표시한 옹(할아버지가 '옹'을 쓸때는 뭔가 좋다는 뜻이다)은 박카스를 좋아하시고, 예쁜 할머니들도 좋아하시고, 영욱이와 문자를 주고 받는 것도 좋아하시는 유쾌한 분이시다.

 

그뿐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휴대폰 1번은 영욱이다. 바탕화면도 영욱이의 독사진이다.  어느 가족도 영욱이를 이렇게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욱이의 바탕화면도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여러번 죽을 것 같다고 하셨고, 처음 죽을 것 같다고 하셨을 땐 식구들이 '다'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울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양치기 소년의 허망한 울림이 되었고, 할아버지가 팬티에 오줌을 싸신 날 영욱이가 '다'들에게 전화를 걸었을때 할아버지께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카스 세병을 마셨야 한다고 하시던 할아버지께 한병만 사다드린 영욱에게 온 할아버지의 문자는 '치사한 표영욱 ㅠ.ㅠ'.  그럴 수 있지 않는가?  할아버지 팬티 상자의 비밀도, 이벤트 상자의 비밀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영욱인데 말이다.  '다'들에게 분명 전화를 했음에도 아빠도 엄마도, 고모도, 고모부도 오지 않은 그밤에 할아버지는 영욱이 손을 잡고 잠이 드셨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잠이든 영욱이를 남겨두고 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똥을 누네.  밥도 잘 먹고.' (p.132)

 

죽기 딱 좋은 나이라고 하셨지만 이건 아니다.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졸립기도 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 할아버지만 영욱이 곁에서 사라지셨다.  어린 시절부터 영욱이에게 할아버지의 이마는 푸른 하늘, 검버섯은 은하수 였고, 할아버지의 손짓을 알아듣는 것도 영욱이 뿐이었다.  아무도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할아버지의 죽음의 길앞에서는 서로의 이해타산을 하기 시작한다.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영욱인 할아버지의 가시는 길이 쓸쓸하고 아프다는걸 느끼게 된다.  어째서 할아버지가 그렇게 원하는 '이벤트'를 하려고 하지 않는걸까?  아니, 할아버지가 준비하신 특별한 '이벤트'는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소란이 일어나는 걸까?

 

할아버지는 소풍도 졸업도 이벤트라고 하셨기에, 죽음을 '마지막 이벤트'라고 하셨었다.  자식들에게 들키기 싫어 만들어 둔 팬티 상자 밑에 비밀스럽게 있던 이벤트 상자.  비밀의 이벤트 상자 속 내용물이 밝혀지면서 어른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영욱의 눈엔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추어진 장례 문화는 어쩜 우리가 그냥 지나쳐버린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용품으로 장례를 치르는 아빠, 부의를 조금만 하라는 고모부, 늘어져 선을 넘으면서 세워진 헌화. 영욱이가 할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은 곳곳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그 맘이 보여질때마다 가슴을 콕하고 찌른다.  아이의 마음이 나의 뭔가를 찌르고 있는데, 어떤것인지 찾아낼 수가 없다.  태어나 처음보는 할머니, 이야기도 하지 말라던 아빠가 할머니를 보고 펑펑 울고, 그렇게 찾지 않던 할아버지를 찾는 모습이 영욱에겐 이상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 가족일 것이다.

 

내 인생이 바뀔 정도로 커다란 문제가 생겨도 세상은 돌아간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도 나를 제외하고 모든것이 평온한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느순간 나 조차도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어린 영욱도 그럴 것이다.  그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수는 있지만, 평온의 시간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서 영욱인 자라날 것이다.  세상 모든것이 아픔없이 자라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 아픔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내게 오는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 견뎌내고 넘어서야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크기는 변한다.  인생에 완벽한 내 편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을테니 말이다.  영욱이도 비행 할아버지인 표시한 옹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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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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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래전에 <델마와 루이스>를 본 적이 있다.  20년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요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정도로 파급력이 강하고 잘만들어진 영화였던 기억이 난다.  자유를 외치며 그랜드캐년 벼랑끝을 질주하던 그들은 분명 사회적 약자로서 갇혀있던 벽을 깨고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지금보다 어린시절 어린시절 만났던 영화였기에 내 의식속에 델마와 루이스에 교감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이십대에 만났었던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난 이유는 오쿠다 히데오가 그려낸 나오미와 가나코가 그녀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영화와는 다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가나코의 이야기는 그녀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백화점 외판부 여직원 나오미. 미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관 큐레이터를 꿈꾸던 그녀가 백화점 외판부직원이 된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씩 외판부직원으로서 경력을 쌓아가고, 돈많은 고객들의 취향을 맞춰주면서 쾌감을 느낀다.  나오미의 친구인 가정주부 가나코.  결혼전부터 서로 잘맞는 그녀들에겐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던 나오미의 아버지.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숨고싶어하는 가나코.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어떠한 저항도 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살고있는 가나코의 현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나오미는 어린시절 아버지로 부터 상처입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p.123)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말에는 힘이 생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는 순간부터는 계획을 세우게되고 뭔가를 해야만 할것 같은 압력을 느끼기도 하면서 구체화되어간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가나코의 남편인 다쓰로에게서 발견한 나오미는 '클리어런스 플랜'을 세우고, 이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기 시작한다.  "죽여버릴까"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나오미는 가나코의 남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제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남편의 폭력에 벌벌 떨기만 하던 가나코는 나오미의 말에 동조하는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들의 위험한 '클리어런스 플랜'는 말도 안되게 착착 진행되어 가면서, 완전 범죄가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나오미 이야기'를 통해서 '클리어런스 플랜'을 제안하고 준비,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가 실현해나가는 계획은 말도 안되게 현실화 되어 간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완전 범죄가 있겠는가?  완전범죄를 꿈꾸는 이들은 수도없이 많지만, 범죄는 범죄다.  사람의 목숨을 신이 아닌 인간이 처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생각은 오쿠다 히데오의 글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으로 생각의 회전을 멈추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생각의 회전이 멈추어진 순간 모든 경우의 수를 치밀하게 계산한 완전범죄라고 믿었던 '클리어런스 플랜'의 허점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나오미와 가나코는 시시각각 궁지에 몰리게 된다.
 

  플랜의 완성을 위해 나오미와 가나코가 모의한 가나코 남편의 실종에 따른 사후 처리와 주변 인물들의 의혹은 이제 가나코의 몫으로 남게 된다.  하나씩 드러나는 허점들을 가나코는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분명 '클리어런스 플랜'이라는 근사한 단어를 사요하고 있지만, 살인은 범죄다.  가능할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가나코의 남편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중국인 린씨(린류키),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이 말도 안되는 범죄현장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은연중에 그녀들을 완벽한 피해자로 여기면서 그녀들의 완전 범죄가 완벽하게 클리어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기에 가나코 시어머니나 시누인 요코의 행동을 가족을 찾는 몸부림이 아닌 집착이나 범죄로 여겨지게 된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걸까?  폭력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럴진데, 그녀들이 말하는 플랜은 살인이다.  후회도 용서도 할수 없는 두번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녀들이 말하는 플랜이다.

 

  어디까지 갈수 있을까?  '델마와 루이스'처럼 그랜드 캐년 넘어로 달려야할까?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완전범죄는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그 과정을 생각하는 순간순간이 그녀들에겐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플랜이후 가나코는 충분히 행복할까?  아니,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일에 어린시절을 투영하고 플랜을 실행한 나오미는 행복할까?  모든 가족을 뒤로하고 둘만이 새로 시작하는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읽는 독자들뿐 아니라 나오미와 가나코조차도 말이다.  분명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들로 하여금 롤러코스터에 태우고 스릴을 만끽하기에 부족함 없게 만들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기에 통쾌함만 기억하려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는 것도, 폭력 뒤에 '클리어런스 플랜'을 계획하는 것도 그저 소설이길 워원한다.  내가 그녀들에게 동조하는 것도 역시나 소설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그저 현실에선 절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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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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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책을 만났을때 느낌... 485페이지의 꽤나 두꺼운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데, 표지도 영 내 감각을 자극하지 않았다.  뒤로 밀려놓고 나중에 읽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었다.  책들 아래 깔아놓고는 몇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어째서 제바스티안 피체크라는 작가명을 못 봤던 걸까?  『눈알 수집가』,『눈알 사냥꾼』의 제바스티안 피체크라는 작가명을 보게 된건 정말 우연이었다.  내가 뭔짓을 한거지?  어떻게 이 책을 소설이 아닌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시사서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요점을 콕 찝어 내기는 했지만, 재미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독일 사이코스릴러의 제왕'인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제바스티안 피테크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미하엘 초코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 이력을 읽다보니 천재 법의학자란다.  아하.. 그래서 이번 작품에 법의학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 많이 보여지고 있었구나.  법의학 세계는 미드를 통해서만 만났으니 내 상식은 조금은 드라마틱하지만 약간은 조연의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탄탄한 논리력으로 무장하고 훅 들어올지 생각도 못했다.  그러기에 이야기는 전작들보다 현실적이고, 현실적이기에 무서움은 배가되어 다가온다.  그들이 만들어낸 인물들에 동의되어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에 빠져버리니 말이다.  상상보다 무서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던가?  작가는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날것 같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다.  

 

  변태성욕자이자 사이코패스 납치범.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할때는 뉴스의 한토막 기삿거리에 불과하지만, 가족과 연관지어진다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법의학자 파울 헤르츠펠트는 위아래 턱이 사라진 괴물 같은 시체의 머리에서 전화번호와 딸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고, 자신의 딸, 한나가 납친된것을 알게 된다.  딸을 찾기 위해서는 납치범이 남겨놓은 단서를 찾아야하고, 그 과정에서 헤르츠펠트는 태풍으로 인해 세상과 차단된 섬 헬고란트에 있는 린다에게 섬에서 발견한 주검을 부검하도록 부탁하게 된다.  과거 연인이었던 스토커를 피해 도망 온 만화가 린다는 딸의 납치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헤르츠펠트를 돕기로 하지만, 자의는 아는듯하고, 처음 해보는 시체 해부의 부담과 함께 스토커의 흔적으로 불안에 떨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완벽하게 차단된 섬 헬고란트에 갇힌 소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납치범에게 수차례 지옥에서나 겪을 법한 일을 당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비디오로 찍히고 있고, 납치법은 소녀를 구타하고 온갖 학대를 자행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기로에 선 소녀는 잔혹한 납치범과 맞서기로 결심을 한다.  딸을 구하기위해서 범인이 낸 수수께끼를 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독자는 소녀의 긴박한 상황들까지 따라가야만 한다.  소녀는 살아서 탈출 할 수 있을까?  헤르츠펠트와 린다는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소녀를 구해낼 수 있을까?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숨돌릴 수 없게 만드는 필력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숨을 죽이게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만을 따라가게 만들어 버린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적인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책장은 넘어가지만, 숨을 쉴수가 없으니 시체를 해부하는 린다처럼 떨리기까지 한다.

 

  린다와 헤르츠펠트에게 다가오는 위험은 숨을 죽이게 만들고, 시체 해부를 하는 린다를 편한 상태로 두지를 않는다.  어쩌면 딸을 납치당한 헤르츠펠트보다 차단되어 있는 섬에 있는 린다가 훨씬 위험하게 그려지고 있다.  물론, 함께 그려지는 소녀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책의 반전은 뒷통수를 맞게 하기에 조금도 과하지 않지만, 그 반전이 소름끼치게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부모와 자식이 느끼는 거리. 사건의 해결이 모든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오죽이나 좋겠냐만은 삶은 절대 그렇지가 않고, 작가는 이 모든것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이야기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조금 이해해달라는 건데, 그게 왜 그리 어려운지, 완벽한 고립으로 차단되어진 섬만이 아니라, 생각과 소통의 차단이 어쩌면 더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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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 누나, 혼저옵서예 - 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 개론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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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영민 작가의 전작을 워낙에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도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효리 누나가 나오기에, 이효리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부제가 '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개론'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그의 프로필엔 '소설가, 편의점 알바생, 요망진 제주 청년'이라는 표현이 되어 있다.  푸른 바다와 맞닿은 소박한 마을 '애월'의 G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차군. 차영민 작가가 들려주는 알바학 개론은 어떤걸까?

 

 

 

  개론은 총론이면서도 입문서다.  어떤 학문을 시작해도, 처음엔 개론부터 들어간다.  그러니, 알바학을 접하려면 '알바학개론'을 넘겨버리고 시작할수는 없을 것이다.  '효리 누나'가 제목에 왜 들어갔나 했더니, 차영민 작가가 있는 곳이 '애월'이란다.  '소길댁'이라 불리는 가수 이효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애월'이란다.  가장 핫한 인물이 살고 있어서, 제목을 요렇게 뽑은 것 같은데, 아직 알바형 차군은 효리 누나를 만나지는 못했다고 하니, 효리 누나를 보고싶은 마음에 제목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뽑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책을 만났다면 효리 누나가 차작가님의 싸인을 받기 위해서라도 새벽녁 G편의점에 들릴것이다.  이렇게 맛나게 알바학 개론을 펼쳐내는 작가에게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근에 편의점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 뿐 아니라, 우리 집 주변은 대형 마트들도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새벽에도 집 주변은 어둡지가 않다.  제주는 지금까지 딱 두번 가본것이 전부이고, 그것도 몇 십년 전 일이니, 지금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바닷가라는 특성상 폭풍우가 몰아칠때면 24시간 일해야하는 편의점이 곤역을 치르는 것 같다.  폭풍우로 인한 전기가 끊겼을때의 편의점 알바의 주의사항을 이책이 아니면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글도 쓰고 돈도 벌겠다는 야무진 목적을 가지고 새벽 편의점의 알바형이 된 차작가의 글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로의 문을 열어 주고 있으니, 확실히 '개론'은 맞다.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그 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안동안'의 성장 이야기를 읽어봤다면 대략 차 작가가 어떤 청소년기를 살았는지 알수 있다.  노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차작가는 청소년기에 '천부적인 뚫기 능력'을 가졌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편의점에서 사서는 안되는 물건을 살수 있는 뚫기 비법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있다.  물론, 공개가 되었으니, 편의점주님들과 알바생들은 꼭 숙지해야만 하는 내용이다.  아이들과 편의점 알바생과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까 사뭇 기대되어 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애월에 있는 G편의점에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뚫기의 신공들일듯하다.  차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아이들이 사용한다고 해도, '천부적인'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를 이길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새벽이 오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다.  그의 말처럼 그 시간을 잘 이용해서 공부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오기도 하지만, 직장은 엄연한 직장이라, 시간에 맞게 일을 해야 하고, 오는 손님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햐야만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알바형이 들려주는 진상 손님들과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일용한 양식이 되어주는 삼각김밥과 질기디 질긴 호빵.  오븐으로 만들어 내는 빵들과 동전을 사수하기 위해서 007작전 버금가게 움직이는 일들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이다.  평범한 일상이 어떨때는 한편의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물론, 이 일상이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펙타클하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사소한 것으로 소설보다 두근거리고, 잠못드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승만 할아버지, 진상손님들, 김사장님, 화가 아저씨까지 말이다.

 

  알바형 차군은 확실히 작가다. 이렇게 재미나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의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제주를 생각하면 이효리 보다 차영민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를 것이고, 애월이라는 동네를 떠올리면 TV에 나왔다는 낙지 라면집 사장님보다 G편의점 알바형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G편의점 알바형은 아무때나 만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남들이 모두 잠이 드는 시간에 비로서 꽃을 피우듯 움직이는 인물이니, 시간을 확인하고 가야만 한다.  애월에 있는 G편의점. 편의점 카운터에 『그 녀석의 몽타주』와 『효리 누나, 혼저옵서예』가 있다면,  "차영민 작가님. 사인좀...?" 하고 책을 내밀어 보자. 이 매력적인 알바형때문에 제주에, 애월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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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 퀸 1 - 세븐 링 서커스 괴도 퀸 시리즈 1
하야미네 카오루 지음, 정진희 그림, 김영주 옮김 / 비룡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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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와 함께 읽는다고 생각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동,청소년 동화를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나도 빠져들어서 책 속 주인공이 되어버릴때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하야미네 가오루 작가의 『괴짜 탐정』시리즈는 아이들 뿐 아니라 나 역시 무척이나 사랑하는 작품이다.  시리즈가 2기로 넘어섰는데, 하야미네 가오루의 새 작품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혹시, 탐정 시리즈가 끝이난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책을 읽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시즌이 넘어가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지를 못했는데, 『괴도 퀸』을 만나보니, 퀸이 괴짜 탐정을 만난 상황이 나와 있어서 그들이 어디에서 만났는지 사뭇 궁금하다.  하야미네 가오루가 만들어낸 유쾌하고도 짜릿한 인물들.  이제 그 자리를 괴도 퀸과 퀸의 파트너인 조커, 요상한 인공지능 컴퓨터 RD가 이어간다.

 

 

  Queen. 분명 내 상식으로 퀸은 여성을 의미한다.  책 표지를 통해서 만난 인물도 예쁘진 않지만 분명 여성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모르겠다.  퀸의 성 정체성을 말이다.  책에서는 그리스 조각상 같은 절대적인 미모의 긴 금발을 휘날린다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도통 여성은 아닌듯 하다.  업무상 파트너라는 냉혈남 조커와, 세계 최고의 인공 지능 컴퓨터 RD와 함께 비행성 트루바우더를 타고 다니는 퀸의 행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멋들어진 괴도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어딘지 나사 하나 빠진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런 인물은 괴짜 탐정을 통해서 이미 만났기 때문이지, 더욱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런 인물이 어떤 멋들어진 일을 펼칠까 하고 말이다.  역시나 하야미네 가오루의 주인공 답게 퀸은 모든것이 어설프지만 모든것이 완벽한 인물로 그려진다.  어느것 하나도 허투루 하는 것이 없는 인물, 어쩌면 뒤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조커와 RD 때문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고전 속 홍길동 오라버니를 시작으로 괴도라하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곳은 무슨일이 생겨도 가야만 한다.  유럽에 루팽이 그랬고, 일본엔 코난과 힘을 겨루는 괴도 키드가 그러지 않는가?  매화꽃 그려진 서찰을 남겨놓는 조선시대부터 괴도 키드의 익살스러운 카드까지.  예고장을 보내 놓고 대담무쌍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괴도.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현대사회까지 이어지는 괴도라는 존재는 얼마나 낭만적인가를 외치는 것은 괴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들뿐이고, 그 속에 우리의 괴도 퀸도 포함된다.  어두운 밤이 되면 낭만을 느끼고 아름다운 꿈속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괴도 퀸.  대담무쌍한 범행을 이야기하지만, 동력자들은 콧방귀 끼면 '흥~!'을 외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울 것 같다.  퀸의 범행 대상이 되어 버린 '린덴의 장미'.  과거 '네펠티티의 미소'라 불리던 저주의 보석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 퀸이 주인공이니, 독자는 어떻게 퀸이 철통같은 보안을 하고 있는 호시비시 다이조의 '린덴의 장미'를 훔치는 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될줄 알았는데,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어 진다.  퀸과 전면 대결을 펼치고 있는 '세븐 링 서커스'.  내가 알고 있는 서커스는 봉춘서커스와 태양의 서커스가 전부인데, 이젠 세븐 링 서커스도 눈여겨 봐야 할 것 같다.  단장 화이트 페이스, 최면술사 샤먼 사이토, 곡예사 실버 캣 히토미, 열쇠 수리공 죠 세서미, 마술사 프리즘 프리즘, 조련사 비스트, 괴력남 장 폭과 죽마남 스타일리 이노우예로 이루어진 세븐 링 서커스는 투루바우더속에서 고양이들의 벼룩을 잡고 있는 인물들처럼 기이 하지만, 그들보다 더욱 조직적으로 보인다.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괴도 퀸의 예고장을 무시하고 '린덴의 장미'를 가지고 사라진 세븐 링 서커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괴도 퀸.

 

  이제 이야기는 누가 괴도인지 알수 없는 상황속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아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괴도 퀸의 능력과 그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화이트 페이스.  그들에겐 어떤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걸까?  괴도 퀸 1권의 오프닝은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속에 세워진 서커스 천막이었다.  약속을 하는 어린 소녀와 피에로.  전쟁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리는 마을.  이 숨막히는 오프닝이 퀸의 모험을 따라가다가 잊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말이다.  책장을 마지막까지 넘기고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하야미네 가오루는 『괴도 퀸』에서도 여지없이 펼쳐보이고 있다.  이 모든 인물들에게 숨겨져 있는 비밀을 책장을 넘겨보기 바란다.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분명한것은 역시 하야미네 가오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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