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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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SF의 제왕 류츠신의 대표작이자 중국 SF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만났다.  중국 과학 소설이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과학 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륙을 휩쓸었다고 해서 궁금했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가 않았고, 엄청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은하상과 중국 SF 네뷸러상, 서후 장르 문학상을 석권하며 문학성을 입증했단다.  게다가 너무나 유명한 모옌이 “류츠신은 평범한 인간의 삶에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더해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라며 극찬을 보냈다고 하니, 『삼체』에 대한 기대감은 극에 달했었다.  어떤 내용이 찾아올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기분좋은 설렘으로 책을 맞이했다.  

 

 

  책표지는 책 내용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던것 같다.  피라미드 같은것도 있고, 어린 동자와 우주인도 있고 정체를 알수 없는 것들이 정신없이 보인다. 게다가 은하계도 언듯 보이는듯 하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보이긴 하는데, 모두 아이들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꽃도 산호초같은 것들과 우주선을 타고 있는 우주선까지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씩 들고와서 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여진다. 현란하고 정신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다지 표지만 보고 이게 SF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코믹 SF쯤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책표지를 보면서 든 느낌은 <맨인블랙>이었으니까 말이다.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더해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는 『삼체』의 첫 느낌은 그랬다.   

 

  책 이야기를 찾아보니,『삼체』는 1960년대 문화 대혁명에서 시작해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수백 년 후 외계 함대와의 마지막 전쟁까지 이어지는 ‘지구의 과거’ 연작의 서곡에 해당하는 작품이란다.  그냥 이 책 한권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그럼 그렇지.  끝부분에 나오는 이야기가 묘해도 너무 묘했다.  이렇게 끝나버리면 몇백년 후의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니 맘대로 될지어라를 외칠 수 밖에는 없을테니 말이다. 이게 끝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끝내버려서 예원제가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사실이 아닌 소설 속 완벽한 허구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연작이라 하니 글의 앞뒤가 들어 맞는다. 처음은 중국 과학계의 기초 과학 연구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 교수님, 우리는 교수님이 그들의 권유를 수락해 과학의 경계에 가입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교수님을 모신 이유입니다." (p.24)

 

  나노 소재 연구자인 왕먀오는 호감을 가지고 있던 양둥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경찰과의 협조하에 ‘과학의 경계’ 회원들과 접촉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일이 가상현실 게임 [삼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먀오는 게임 [삼체]를 시작하고, 게임 속에서 세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기이한 “삼체 세계”를 접한다.  "삼체가 바로 그랬다.  수많은 정보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삼체의 설계자는 정보를 최대한 압축해 어떤 거대한 진실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광활한 하늘 사진처럼 말이다." (p.82) 지식인들의 지식욕을 묘하게 충족시켜주는 [삼체] 게임을 통해서 왕먀오는 인류 내부에서 절망과 동족 혐오를 키워내는 과정과 혹독한 환경 속에 2백여 차례나 멸망과 부활을 거듭하면 게임이 진화하는 것을 보게되고 그 과정에서 예원제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온화한 노부인. 유능한 과학자인 딸을 잃고 몇십년전에엔 남편을 잃었으면서도 온화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던 노부인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문화 대혁명의 광기 속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예원제, 자기만 살겠다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반동분자로 몰린 그녀는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특급 기밀 지역인 홍안 기지에 배속되어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외계 문명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홍안 기지에서 전파 발사와 수신 업무를 맡은 예원제는 어느 날 밤, 몇 해 전 자신이 우주로 쏘아올린 메시지에 대한 답신을 받는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는 순간 그곳의 위치가 파악되어 당신들의 세계는 점령당할 것이다.” 가능한 일일까?  몇억광년을 흘러 전해진 전파의 답장.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p.311)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따로 읽혀진다.  왜 왕먀오가 찍는 사진과 그의 눈에 카운트다운 숫자가 찍혔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과학의 경계'에서 꾸민 일이라고 두리뭉실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굉장히 어려운 과학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물리나 천체에 관해 전혀 모르기에 주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과학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주석을 보다보면 글에 흐름을 끊어버린다.  내경우는 그랬다.  이 쪽 지식이 있었으면 조금더 수월하게 읽혀 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온이 온화하고 태양 운동이 규칙적인 항세기와 하루에도 혹한과 폭염이 번갈아 휘몰아치는 난세기가 불규칙하게 교차하는 삼체 세계에서 태양 운행의 규칙을 찾아야 하는 룰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삼체 문명’의 생존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세계와 '삼체 세계'의 이야기가 닮은 듯 다르기 때문에 세계간 이동을 할때마다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SF는 SF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류츠신의 능력일 것이다.  가상의 게임세계로만 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게임에 파고드는 이들은 가상현실속에서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미래를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문명을 부인하기 위해서 외계문명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맞서는 사람들.  서막이 열렸단다.  이제 서막이 열렸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가 없다.  끝으로 가면서 어린시절에 본 <브이>가 생각난 이유는 인류를 벌레로 표현한 딩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메뚜기떼가 박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벌레를 위해 건배! 세계 종말이 이렇게 상쾌하다니. 벌레 만세! 지자 만세! 종말 만세!"(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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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해변
크로켓 존슨 글.그림,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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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쓰는 행동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아이들이 어렸을땐 엄마가 책을 읽어 주지만, 글자를 익히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읽으려 하고, 손을 이용해서 뭔가를 적으려고 한다.  그렇게 쓰기의 마법은 시작된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읽은 책 중엔 '요술연필 페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빨강 연필'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동화는 마법의 시간을 내 눈앞에 펼쳐놓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매개체로 연필을 사용하고, 연필은 쓰기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진다.  하지만, 쓰기는 연필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마법의 해변>에 모래밭위에서 벤과 앤이 'spell'로 마법을 부리는것 처럼 말이다.

 

 

오두막에 앉아 이야기책을 읽던 아이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해변으로 나왔다.  신나는 일들을 찾는 아이도 있고, 고둥을 찾는 아이도 있지만, 이제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  "이야기 속에서 진짜로 벌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 이야기란 단어들을 늘어놓은 것일 뿐이야.  단어는 글자에 불과해.  글자들은 그저 기호의 일종이고." 라면서 벤은 어른처럼 이야기를 하면서도 벤은 앤의 배고프다는 말에 모래위에 '잼(JAM)'이라는 단어를 쓴다.  파도가 모래사장 위로 몰려와 글자들을 가져가 버린 자리엔 잼이 가득들어 있는 은접시가 놓여있고, 벤과 앤은 마법의 해변위에서 펼쳐지는 마법들을 하나씩 펼쳐내기 시작한다.

 

잼.빵, 우유, 파라솔이 아닌 나무, 사탕, 마법의 왕국의 왕, 물고기, 숲, 성, 농장들이 차례대로 해변위에 나타나고, 아이들은 고동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이들 세계엔 아이들이 존재해야하는데,  마법의 해변에 나타난 왕은 어른이다.  어른이 마법의 해변에 나타난 순간 마법의 해변은 어른이 원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편이 훨씬 재미있어."라고 이야기하는 앤과 벤을 왕궁으로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왕.  왕을 따라가는 도중에 해변에 들어오는 물로 하나씩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마법의 세계.

 

아이들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음을 이야기 하면서 모두 사라져 버린 마법의 세계 속에서 벤은 고둥을 귀에 대고 바닷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현실로 돌아와 버린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꽤나 오래전 작품이다. 작가 크로켓 존슨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상상의 힘과 한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탐구'를 만들어낸 <마법의 해변>은 처음에는 <모래 위의 성>으로 1965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1975년에 작고한 크로켓 존슨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작가가 그려낸 원본 스케치를 담은 <마법의 해변>은 어른이 읽는 동화다.  아이의 눈을 대변하면 앤과 벤이 바라보는 세상은 파라솔이 아니고 나무다.  하지만, 어른인 왕은 자신을 기다리는 기마병이 있는 왕궁을 바라본다.

 

크로켓 존슨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적이 없기에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평가들은 그들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하고, 그가 그려낸 삽화에 매료되고 열광한다.  다 읽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마법의 해변>은 궁금하게 만든다.  한글 번역이 아닌 원문으로 읽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고 말이다.  이 이야기가 내가 느끼고 있는게 맞을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을 크로켓 존슨을 느끼고 있었던게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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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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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예쁘게도 그려낼 수가 있구나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는 푸른빛의 넘실거리는 파도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영 이질적으로 보여졌는데, 표지의 일러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 지금은 참 먹먹하다.  콩닥거리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먹먹함만 남겨놓고 파도의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니,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고, 보푸라기의 잔향이 남아있고, 십수년전에 내가 떠오르게 되니 책 한 권이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

 

 

공부잘하는 언니와 달리 구박만 받고 엄마의 식당일을 도맡아 도아와주고 용돈 한번 받기 힘든 달림은 자신은 콩쥐라고 이야기를 한다.  중학생인 달림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귀신 놀이터에서 혼자 앉아 있는 노랑모자를 만나 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를 찾고 있다는 이 녀석이 왜 달림을 쫄래쫄쨰 따라오는지 모르겠지만, 달림은 사랑스러운 노란모자를 자신의 방까지 몰래 데리고 오고, 노란모자를 하고 있는 꼬마를 볼때마다 따뜻해지고, 애틋해지는 것을 느낀다.  배꼽이 간질간질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  병일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은 이야기하지만, 이 느낌은 분명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보풀이라고 하는 이 사랑스러운 꼬마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  "아주 작은 사람을 보풀이라고 하는 거야." (p.60)

 

요즘 아이들답게 이성교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달림의 소꼽친구인 지평이 나오고, 달림의 절친인 미루의 남자친구인 종하까지. 그냥 같이 있는게 좋았을 뿐인데,  중학교 아이들의 신체가 성인같아 진지는 오래되었다.  함께 있는 것만 좋은 아이들.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성교육 시간에 뭘 했냐고?'  뭘 했을까?  분명 지지부진한 이야기들을 들었고, 깔깔거리고 웃었는데, 미루가 임식을 했단다.  종하 선배가 무섭다고 달아나 버리면서 미루랑 달림이랑 지평이 셋이서 아이를 같이 키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 아주 쉽게 답이 나오는 듯 하지만,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건 무섭다.  그러니 아이들이다.  중3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어린아이고, 세상을 향한 문을 어떻게 열어주고 보여줘야 할지는 어른들이 할 일이다.  

 

달림이네 가계옆에 자리잡고 있는 뒷문이 열려있는 산부인과.  열 여섯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일수 밖에 없다.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낸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 분장하고 찾아간 산부인과.  아이를 낳는 것은 무섭다.  엄마 몰래 낳는것은 더 무섭다.  돌아서 버린것 같은 종하 선배도 무섭다. 이 모든것이 미루는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용기내어 산부인과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미루가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다.  미루야... 도대체 어디간거니?   미루 걱정도 걱정이지만, 달림이 주변에서 움직이는 보푸라기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달림은 보푸라기의 엄마를 찾아주고 싶어진다.  어느새, 달림이의 엄마도, 언니 해림이도 보푸라기에게 관심을 갖고, 이 예쁜 아기에게 빨려들어 버렸다.

 

계속 엄마를 찾아 다니는 보푸라기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바닷가 마을 깊은 곳에 숨겨진 동굴로 달림을 데리고 간 보푸라기.  그곳에 있는 슈가맨과 노랑모자와 같은 모자들을 쓰고 있는 보풀들.  비 내리는 날 보푸라기에게 빌려준 교복 상의를 찾아야 하는데, 슈가맨이 입고 있는 교복을 달라고 할 수가 없는 달림이.  그리고 슈가맨으로 부터 듣게 되는 이야기들.  "저 아이들은 아기들이 자라면서 해야 할 행동들을 그냥 무심히 놀이하듯 하는 거야.  저 아이들은 정말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거야.  저 보풀은 지금 핥고 맛보는 중이겠고, 또 저기 저 보풀은 일어서고 걸음마를 하는 거고, 만져보고, 기지개 켜보고, 젖을 빨고, 손가락을 빨고..."  (p.210)

 

'톡톡톡' 두드리는 보푸라기의 손가락 끝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톡톡톡' 세번의 두드림으로 전해진다.  큰아이를 낳기전에 잃었던 아이도 그런 두드림을 했었을까?  결혼하지 마자 들어섰던 아이.  아이의 잘못됨을 듣고 누워있던 병원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었다.  내겐 엄마도, 남편도 있었지만 아이의 사라짐은 아팠고, 두려웠었다.  어쩜 그 아이도 에밀레 별에 가기전에 허락된 지구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상큼 발랄하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는 고운 포장지를 한겹 벗겨내니, 가족간에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고,  달림은 해림이 꼭꼭 감춘 아픔과 사라진 해림의 요요를 만나게 된다.  미루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알 수 없다.  어떤것이 정답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없다.  미루의 엄마에 눈엔 미루만 보일테니까.  열 여섯 그 예쁜 나이엔 열 여섯에 보이는 것들만 보일테니까.  언제나 모든 순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니, 뱃속에 있을때는 그렇지 않았을까?  저렇게 높은 파도가 몰아쳐도 엄마 뱃속은 안전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엄마의 뱃속 밖에서있는 사람들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귀기울여 보자.  누군가 '톡톡톡'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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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들려주는 군주론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93
신복룡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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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 나라를 걱정하는 한 관료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의 조국 이탈리아가 분열되어 강대국에게 휘둘리고 부정과 부패가 팽배한 난세였던 시기.  그는 나라를 구해 줄 강력한 지도자를 간절히 원했고.  외교관으로 일하며 다양한 군주의 모델을 연구했다.  그리고 정치학의 고전이라는 <군주론>을 탄생시켰는데,  훗날, 군주를 위해 쓴책이 군중에게 군주의 나쁜 면을 알린 셈이 되어 금서로 지정되었단다.  집필이 끝나자 메디치 가문으로 달려가 군주의 덕을 이야기했음에도 외면당했던 마키아멜리의 <군주론>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책 표지중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16세기 초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고등학교 필독서에 항상 들어가 있는것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그때는 어찌나 재미가 없었는지, 대강의 내용만 파악을 하려고 했었다.  읽어야 할 책이라고 되어있는 필독이 얼마나 많았었던가?  그 당시에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에게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인데, 우리집 아이들은 도통 나만큼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책 표지 때문인듯하다. 판타지의 세계를 접목시켜서 너무나 재미나게 풀어낸 신복룡교수님의 『마키아벨리가 들려주는 군주론 이야기』는 초등학생인 동호의 이야기가 서문을 연다.  언제나 화를 내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호랑이 선생님이 동호네 담임 선생님이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화를 내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못마땅한 동호의 눈에 마키아벨리가 나타나고, 16세기 이탈리아의 살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날 동호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있는 마키아 벨리와 그와 함께 있는 라비에누스와 레이아나를 만나게 된다.

 

마키아벨리와 함께 있는 것 만큼 <군주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동호는 마키아벨리가 왜 <군주론>을 썼는지를 알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엄청난 독서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점에는 그는 탁월한 역사학자였다.  유력자의 부탁으로 책을 집필하거나 누군가에게 헌상하기 위해 쓴 책이 많았던 그는 몰락한 귀족으로서의 신분 상승에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고, 역사학자나 정치학자 이전에 문필가로써 소설과 희곡도 썼었기에 그의 문장이 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키아벨리는 민중의 역할을 결코 낮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탈리아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 가기에게는 역부족이었다고 여겼기에 메디치 가문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타락한 교황권에 대한 저항으로써 마키아벨리는 폭력과 독재를 행하는 교황으로 부터 조국을 구출하고 싶었고, 열강의 틈에 끼어 무너져 가는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고자하는 열망이 강했었다. 당시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가 공화주의로 재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메디치 가문과 같은 거대한 권력의 도움을 받고자 했었다.  나라가 부패하여 스스로 개혁할 수 없을 때에는 군주의 손길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왕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완성했을 것이다.  군주론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강력한 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쟁과 관대에 관한 세가지 경고도 하고 있는데, 첫째, 용병을 쓰지 말것. 둘쨰, 동맹을 맺지 말것. 셋째, 중립을 지켜서는 안된다는 내용으로 군주는 이러한 행동을 분명히 할때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이다.

 

마키의벨리의 사상은 군주의 심성보다 기술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데,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째, 적과 동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둘째, 그의 사상에는 성악설이 포함되어 있기에 군주는 잔혹해야 하며, 악행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인은 여우의 교활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은 덕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덕이있으면서 잔혹해야한다는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책을 읽어보면 어떤 내용인지 알수 있다. <군주론>의 완성과 함께 초등학생인 동호는 다시 현실로 넘어온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호랑이 선생님을 보면서 동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속 군주를 상기시킨다. 

 

어떤 사람이 현명한 군주일까?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읽는 <군주론>은 그저 왕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무서운 군주 같은 호랑이 담임선생님에 맞서는 동호의 용기,  험악한 군인을 제압하는 마키아벨리의 비법.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갖추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군주론>은 현실에세 만나게 되는 이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역사가이자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물론,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하는 마음도 담겨져 있었지만, 세상사를 흑백으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가 왜 그 당시에 <군주론>을 이야기했는지, 왜 <군주론>을 신복룡 교수는 동호의 담임 선생님과 대입시켰는지 그걸 알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군주론>은 현실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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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가 들려주는 지동설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45
곽영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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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시간에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는 것은 언제나 난제였다.  수식을 풀다가 까딱 잘못하면 이상하게 나왔고 모든 사고의 정지를 느끼게 하는 머리 아픈 시간이었다.  당시 지구과학 선생님은 남자를 만날땐 꼭 지구가 지동설과 지구 둘레를 계산할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에 난 지구 둘레 계산도 잊어 버렸다.  그뿐인가?  천동설은 생각도 못하는 남편을 만났으니, 선생님 말씀을 들은걸까?  아니, 위성사진으로, 지구본으로 지구가 둥글고 지동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감사해야겠다.  어쨌든, 내게 어머어마한 과제를 남겨줬던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그가 들려주는 지동설은 이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너무나 궁금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원래 대학에서는 신학공부를 했고 그후 카톨릭 교회의 참사회 의원이었다.  당시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 수학, 천문학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어서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교회에서도 천문학을 배울 것을 권장 했기 때문에 천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 천문학을 권장했는데, 당시의 율리우스력은 오래 사용하다보니 달력 날짜와 별자리가 10일 이상차이가 나게 되었고, 잘못된 달력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달력보다는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가 더 고민이었고,  당시에는 모두 천동설을 믿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많아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연현상들이 신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점점 믿지 않게 되면서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지만,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인이었다.  그리스는 인구도 영토도 적고, 넓지 않은 나라였지만 인류 역사 발전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고, 당시에는 신화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가 많았다.  신화와 과학은 다르다.  신화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지만 과학은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반박할 수 있기에 고대 그리스 인의 주장이 과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과학자들은 관측과 측정을 통해 많은 사실들을 알아냈지만, 그때까지 알아낸 사실들을 모두 비례 값이었고, 정확한 값을 알기 위해서 지구, 달, 태양 중 하나의 크기만 측정하면 나머지 값의 비례식을 이용해서 계산할 수 있는 일을 에라토스테네스가 알아낸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수석 사서로 근무하면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하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를 측정하길 원했다.  그는 태양빛이 매년 하지에 시에네에 판 우물 바닥까지 비춘다는 사실과,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시에네에서 약 800km떨어진 도시로, 그는 태양빛이 시에네 우물의 바닥까지 비추는 시각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막대 그림자의 각도를 측정해서 각도가 7.2도라는것을 알아내고, 지구중심에서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에 그은 두 직선이 우루는 각과 같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렇게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가 25만 스타드라는 것을 계산하게 되는데, 이 값은 실제 값과 2% 오차밖에 나지 않았고, 그렇게  최초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크기를 알아냈다.

 

고대 천문학자들 모두 지구는 정지해 있고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기원전 5세기 피라고라스의 제자였던 필로라우스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말을하다 미친사람 취급을 당했고,  기원전 310년에 태어난 아리스타르코스도 태양 중심 천문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동설은 고대 그리스인의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았고, 지구가 실제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돌설은 천동설과의 논쟁에서 졌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복잡한 천동설 체계를 완성한 것은 프롤레마이오스로 <수학집대성>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책은 후에 <알마게스트>로 알려지면서 '천문학 백과사전'과 같은 책으로 여겨졌다.

 

코페르니쿠스에 지동설에 관한 주장 중에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때 틀린것이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행성이 원동을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성들이 태양 가까이 있는 어떤 점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실수는 1500년대에 살았던 그로서는 짐작도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들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에 실려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레티커스가 지지해주었고, 레티커스가 출판을 해주면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전에 자신의 책을 보게되지만, 그의 책에 실린 두개의 서문 중 하나는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그의 책 내용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몰고 간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후배과학자들에 의해서 완성이 된다.  우주 관측이 가능한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직접 관측한 갈레리이는 이단 심문소에서 지동설 금지 이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유명한데, 진실여부는 알수 없다. 브라헤의 조수였던 케플러에 의해서 행성이 타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하지만 케플러는 천체들이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왜 가까이 있는 행성보다 천천히 도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이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중력이라는 개념을 알아낸 뉴턴이다.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중력의 영향도 덜 받게 되어 태양과 가까이 있는 행성보다 천천히 돈다는 것을 수학적 공식으로 밝혀냄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완성이 된다. 그리고 우리아이들은 지금 그 내용들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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