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문학 출판사들 관행 성토 [06/05/03]
기존 문학 출판사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검증된 작가에게 줄을 서서 번갈아가며 원고를 받아 책을 내는 안일한 관행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적으로 신인 작가들의 발굴 및 육성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빈곤한 기획력의 타개 방안은 있는가 등등. 근각출판사마다 경쟁적으로 내고 있는 앤솔러지(Anthology·품집) 사태가 그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창비의‘20세기 한국소설’ 문학과지성의‘한국문학 전집’, 민음사의‘오늘의 작가 총서’ 발간재개, 문이당의‘청소년문고’…. 작가도부족하고 마땅한 기획도 없으니 커지는 논술시장이나 겨냥하자는, 안이하고 뻔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앤솔러지는 필요하고, 좋은 앤솔러지는 중요하다. 독일의 유명한 출판사인‘주어캄프’를 먹여살리는 것이 헤르만 헤세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매년 3, 4권의 헤세 앤솔러지가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주어캄프의 헤세 앤솔러지가 그 긴 세월동안 시장에 통하고 신뢰를 쌓아온 것은 그들의 돋보이는 기획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를 위한 헤세 읽기’‘힙합적으로 헤세 읽기’ 등등….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리 문학 출판계에도 회사별 특징과 특기, 대표 브랜드가 절실해지고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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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리스 > ‘500만부 돌파 베스트셀러’ 마법천자문 대박행진의 비결은

‘500만부 돌파 베스트셀러’ 마법천자문 대박행진의 비결은
[동아일보 2006-05-01 05:07]    

[동아일보]

‘저희 아이는 이제 여섯 살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불 화!’ 하고 외칩니다.…맞아요. 화로구이집의 간판을 보고 내는 소리지요.’

인터넷서점에서 한자학습 만화책 ‘마법천자문’의 독자 리뷰에 한 엄마가 올린 서평이다. 엄마들이 ‘중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3월 30일 11권이 출간된 지 2주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1, 2위로 뛰어올랐다. 또 11권 출간을 계기로 이전에 나왔던 1∼10권이 모두 어린이책 베스트셀러 20위 내에 진입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2003년 11월 1권이 나온 이래 10권까지 합해 모두 500만 부가 팔렸고 20권이 나올 2008년에는 2000만 부도 돌파할 것으로 출판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아무리 만화 학습도서가 인기가 있다 해도 이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기획의 이면을 들춰 봤다.

○ 공부도 놀이로

모든 일은 출판사 아울북 김진철(47) 상무의 ‘늦장가’에서 시작됐다. 2002년에 모기업인 ㈜북이십일은 사업분야 확장을 위해 한자학습 만화를 낸다는 방향만 잡고 진척이 없던 상태였다.

“기존의 어린이 한자교재는 어른이 봐도 재미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획수, 제자 원리를 꼭 다 알아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죠.”

김 상무는 “늦게 결혼해 당시 7, 5, 2세이던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데 지루해해서 별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난감 칼이 레이저빔이라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다 한자를 갖고 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감전되듯” 떠올랐다.

‘바람 풍!’을 외치면 ‘우아아∼’ 하고 쓰러지고 ‘막을 방!’을 외치면 바람을 막는 놀이를 아이들과 같이 해 봤다.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책 기획의 길이 보였다.

한자와 마법을 결합해 스토리만화로 만들자는 콘셉트가 확정되면서 기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존 한자만화는 한 권에 100자가량 들어갔지만 ‘마법천자문’은 한 권에 20자 씩만 정해 계속 반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 영상세대의 감각을 잡아라

게임,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에 익숙한 영상세대에게 한자를 스펙터클화해 ‘보여 주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었다. 교육사업본부 김창욱 팀장은 “어른은 ‘믿을 신’을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라고 철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없어 한다”며 “마법천자문은 손오공이 모두가 의심하던 동자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을 때 없어졌던 ‘믿을 신’자가 달처럼 떠오르는 등 글자의 뜻을 모두 이미지로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영상세대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대지에 칸을 만들어 그리는 기존의 만화 작법 대신 배경과 캐릭터 효과를 모두 따로 그린 뒤 각 장면을 촬영해 컴퓨터로 합성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했다.

김규홍 씨 등 3명의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서포팅 팀이 꾸려져 1만5000자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한자 급수에 따라 난이도를 분류하는 등의 작업을 전담했다. 보통 만화책은 6개월이면 출판되는데 ‘마법천자문’은 기획부터 첫 출판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 역시 입소문은 힘이 셌다

그렇게 해서 1, 2권을 동시에 내놓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첫 2주 동안 교보문고 전 지점에서 판매된 책은 하루 10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마케팅 팀은 책을 들고 독자를 찾아 나섰다. 수도권의 초등학교를 돌며 카드와 샘플 북을 뿌렸고 카드로 게임하는 법을 설명했다. 엄마들의 독서모임 등 ‘얼리 어댑터’가 될 만한 사람들을 집중 공략했다. 조금씩 꿈틀대던 시장이 폭발적 반응을 보인 것은 새 학기가 시작돼 입소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간 2004년 4월부터다. 기획팀은 각 권을 출판할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받고 아이디어가 채택된 아이들 이름을 책에 게재한다.

하지만 권을 거듭할수록 점점 두께가 얇아지고 그림만 커져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 상무는 “그림 그리는 데 오래 걸리다 보니 담을 수 있는 한자의 양에 한계가 있다”며 “암기와 학습의 대상을 놀이의 대상으로 바꾼 기획의 기조를 유지하되 난이도를 올리는 등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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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류의 유산 새롭게 해석할 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4/28

올해 들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만큼 대대적으로 언론에 소개된 책이 있을까? 1980년대에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면서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른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은 이 책은, 올해 초 책도 나오기 전에 보수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하고 사설에까지 언급하면서 대단한 반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이 떠나갈 듯이 떠든 것에 비하면 대중의 관심이 그리 대단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편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여러 출판사에서 이 책의 출간을 거부했다. 거부한 이유는 출판사마다 조금씩 달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성과'나 특정인물을 지나치게 공격하고 있어 출판사의 '앞날'에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출판기획자의 촉수는 늘 이런 파장을 몰고 올 새로운 '감성'을 담은 책에 열려 있다. 팩션, 블루오션, 서드 에이지, 디지로그 같은 신조어를 제목에 달기도 하는 등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을 펴내고자 한다. 성공하면 한 해 농사는 따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담론'을 담은 인문서에서 기획자는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열풍이 휩쓸고 간 1980년대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사상은 출현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니 기획자에게는 지금 같은 악조건이 없을 터이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사상가가 출현해 이른바 '빅 타이틀'을 내놓지 않은 지 꽤나 오래되었고 당분간은 그런 책이 출현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다고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출판기획자들이 관심을 두는 대표적인 영역이 인류가 축적해놓은 지적 유산을 새롭게 구성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그것은 주로 신화, 역사, 고전 등을 '객관적 명제'로 전달하는 痼?아니라 '주관적 맥락잡기'로 새롭게 해석한 책이었다. 인류의 문화를 재조명하는 책들이야말로 세상을 헤쳐 갈 상상력이라는 무기를 획득하려는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런 유의 책은 크게 두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특정 시기를 다룬 책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 18세기는 메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한국판 문예부흥기라는 18세기에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등은 “다단한 층위의 글쓰기를 통해 지배적 사유”를 마구 뒤흔들며 새로운 사유를 보여주었는데 그런 간접 경험이 오늘날의 대중에게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도 『나비와 전사』(고미숙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연암을 읽는다』(박희병 지음, 돌베개 펴냄) 등의 신간은 출간 즉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른 하나는 특정 테마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주제사로 『사도세자의 고백』,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같은 문제작들을 꾸준히 펴낸 이덕일이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제목을 바꿔 다시 출간한 『조선왕 독살 사건』은 팩션 열풍까지 더해져 12만 부나 팔렸으며 최신작 『조선 최대 갑부 역관』(김영사)도 출간 즉시 역사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세계 출판계에서는 이런 출판경향을 20세기 말부터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꾸준히 책을 펴내왔다. 국내 출판계는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서 있다. 수요는 있으나 '물건'이 한없이 부족하다. 이것이 우리 출판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사게재 : <한겨레> 출판전망대 200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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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 일본 지옥철속의 독서 열기 [06/04/28]
24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의 신주쿠 지하철역. 승강장에 서있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지하철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다른 차량을 타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순간 주변 사람들을 살펴봤다. 동요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색의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한권씩 들고 있는 책에 빠져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평온하기까지 했다.

지난 23∼27일 일본 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훨씬 더 혼잡한 ‘지옥철’을 타고 다니는 일본 사람들의 독서문화였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에다가, 엄청난 인파에 떠밀려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물론, 서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본인들이 지하철에서 읽는 책은 다양했다. 만화책부터 잡지, 소설책 등….‘만화 강국’답게 만화 단행본을 읽는 성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일본에는 성인에게도 유익하고 교훈적인 만화책이 많다.”는 것이 출장에 동행한 지인의 귀띔이다. 최근 일본에서 영화로 발간된 ‘다빈치코드’ 등 베스트셀러는 물론, 다양한 정보를 담은 시사잡지 등도 일본 지하철 출·퇴근길과 함께 하는 좋은 친구였다. 옆자리에 서있는 중년 신사의 손에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이 들려 있었다. 혹시 무가지인가 싶어 물었더니 1000엔(8000원)이나 하는 월간 시사잡지라고 했다. 깊이 있는 내용이 많아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한달 내내 읽는다고 덧붙였다. 순간 우리나라 지하철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무가지들이 생각났다. 연예인 등 가십성 뉴스로 가득한 무가지들이 우리나라 지하철 출·퇴근길에 끼어든 지 수년째.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해도 무가지에 먼저 눈길이 가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에는 과연 바람직한 지하철 독서문화가 존재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독서의 힘’은 대단하다고 했던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루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으려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소리 없이 10년 장기불황을 극복한 그들의 저력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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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3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하게 읽게 만드는 콘텐츠가 부럽죠.

하늘바람 2006-04-3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만두님 그래서 일본 출판 문화와 우리 나라 문화가 참 비교 되는 것같아요. 일본처럼 작은 것에도 완벽하게 하려하고 소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죠
 

[문화in] 전공·시공의 장벽 허무는 `지식 게릴라`
연구 공동체
수유 + 너머
3층 건물서 함께 먹고, 놀고, 쓰고
고전·한의학·과학 장르 넘나들기
1999년 교수의 꿈을 접은 한 '박사 실업자'(고전평론가 고미숙씨)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조그만 공부 모임이 불과 8년 만에 인문학검색하기의 활로를 개척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이하검색하기 수유+너머. 대표 고병권) 가 주목받는 이유다. 규모만 봐도 놀랍다. 수유리에 20평 방 하나를 월세 내 시작했으나 지금은 서울 원남동의 3층짜리 건물을 통채로 임대해 쓴다. 8년전 대여섯명 회원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정회원만 60명. 이 밖에 3~4개월 단위로 개설되는 각종 강좌와 세미나에 평균 100여명검색하기의 비정규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 밖에서 앎과 삶의 일치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지식 게릴라'들의 실험실 속으로 들어가봤다.

배영대 기자



그래픽 크게보기


이곳은 실험실이다. 전공의 경계,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부가 실험되는 곳. 대학의 지식인들이 정규군이라면,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은 '지식 게릴라'다. 이들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실험한다. 전공과 논문검색하기식 글쓰기의 무게에 짓눌린 삶을 거부하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들이다. 이진경검색하기, 고미숙, 고병권. 지식 게릴라를 이끄는 간판 스타다. 80년대 운동권 이론가로 유명했던 이진경을 비롯해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빠졌다가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로 전환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공부는 생활이다=여느 연구소와 다른 수유+너머의 특징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이다. 회원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소에서 함께 먹고, 함께 놀며, 함께 공부한다.

잠만 각자 집에서 따로 잔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연구 코뮌(Commune.공동체)'이라고 부른다. 공부와 생활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개 세미나나 강좌에 참여하러 왔다가 함께 먹고 놀고 공부하는 생활에 매료된다.

한끼 식사 비용은 1800원. 먹을 만큼 먹고, 음식을 남겨선 안된다. 자기 그릇은 스스로 설거지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종묘와 창경원은 이들의 앞마당이다. 식사를 마치고 30-40분가량 앞마당을 산책하며 연구공간의 숙제를 논의하고 풀어간다.

코뮌이라 하면 흔히 무슨 거대한 이념이나 은밀한 혁명조직이 연상되지만 수유+너머는 그렇지 않다. 고미숙은 말한다. "거창한 이념으로 생각할 것 없다. 그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이다. 고통받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구제는 그 다음 문제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타인을, 사회를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수유+너머 같은 크고 작은 코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지구촌 곳곳에 생겨나기를 바란다. 육아방이나 공동주택도 구상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결혼을 해서 아기들이 생겨나고, 또 연로한 부모들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유+너머는 8년 전에 비해 양과 질에서 크게 진화했다. 하지만 진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철학과 규율이 있다.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는 것. 인간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마저도 상대적이다. 관계와 관계, 맥락과 맥락이 부딪치고 접속하며 펼쳐지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새로운 인간 관계를 즐긴다. 공부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 모든 것이 공부다. 즐기면서 하는 공부, 이들이 지향하는 연구의 유토피아다.


◆공간은 변신한다=이들이 생활하는 건물은 모두 3층이다. 옥상까지 4개의 공간이 이들의 무대다. 1층은 식당-강당-체육관을 겸한다. 겸한다는 것, 어울리지 않은 것들의 조화를 이곳에선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식탁보를 벗겨내면 어떤 것은 책상이고, 어떤 것은 탁구대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고전문학 따로 하고, 현대 철학 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과 역사와 문학은 물론 동서양 고전과 자연과학, 한의학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사유의 날개를 펼친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과 20세기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가 시공을 뛰어넘어 초대된다. 그런 열린 자세는 수유+너머의 경쟁력이다.

건물의 2층은 카페, 세미나실, 영화관람실, 갤러리, 서점으로 이용된다. 방마다 용도가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칸막이를 치거나 빼면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3층은 공부방과 요가실. 책상의 좌석 독점은 금물. 소지품은 벽쪽에 세워놓은 공용 책꽂이를 사용한다. 장기간 많은 책을 펼쳐놓고 글을 써야하는 회원에겐 집필실이란 이름의 개인 책상을 제공한다. 논문이나 저술을 생산해야만 집필실을 나올 수 있다는 불문율이 있기에 섣불리 개인석을 차지려고 하지 않는다.


◆많이 벌기보다 적게 쓴다=수유+너머의 매월 유지비용은 건물 임대료를 포함해 1000만원 정도. 외부의 후원은 없다. 스스로 생산하는 컨텐트와 자율적 생활이 특정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하기에 기업.정치단체 등의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 주수입원은 정회원의 회비, 수강료, 강사들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특별회비. 정회원 60명은 개인 여건에 맞춰 매월 3만~20만원의 회비를 낸다. 식사 준비와 건물 청소도 정회원 몫. 3~4개월 단위로 열리는 강좌나 세미나의 주제는 제한이 없다. 한 강좌당 수강료는 7만원 정도다. 고병권 대표는 "많이 벌기보다는 적게 쓰는 법을 배워나가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뜻에 공감한 이들이 전해주는 쌀과 반찬거리 같은 소량의 선물은 받고 있다. 최근 6개월간 쌀을 사본 적이 없다. 건물 내 집기와 가구는 거의 다 재활용품. 이사 가는 회원들이 쓰던 물건을 가져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구실이 자리를 잡아 나가자 진로와 노후검색하기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고미숙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공부만큼 확실한 노후대책은 없어요".

2006.04.27 21:05 입력 / 2006.04.27 21: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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