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김칼리다. 태어난 곳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얀 울타리 옆 풀숲. 누군가가 나를 핥아주는 가운데 시커먼 괴물체가 옆에 들러붙어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새댁을 꼭 닮은 딸이오! 새댁, 애썼소!˝
우리동네 산파 까미 할머니였다. 앞이 흐릿했고 냄새도 잘 맡을 수 없었지만 배가 고팠다.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는데 아까 그 시커먼 것들이 앞을 가로막아서 땅에 뭐 떨어진 건 없나 찾아야 했다. 나중에 눈을 뜨고야 알게 되었지만 그 시커먼 것들은 언니와 오빠였다. 나와는 1도 닮지 않았다. 울엄마 붕어빵은 나 김칼리다. 언니는 나보다도 작았고 힘이 좀 없었다. 오빠는 통나무같이 우람하다. 엄마 젖을 먹으려고 내가 앙증맞게 고개를 돌렸는데 그 커다란 왕발로 나를 밀치는 통에 욕을 안하려다 했더니 체통이 절로 무너진다.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달라요? 아빠는 어떤 고양이였어요? 왜 언니는 나보다 작죠?˝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이는 멋진 고양이였지. 네 오빠가 그이를 쏙 빼닮았구나.˝
아빠 이야기를 할 때 엄마 눈은 늘 먼 곳을 바라본다.
˝태평스런 성격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거기다 언제나 당당했어. 어둠속에서 먹잇감을 낚아챌 땐 여우같았어. 그 목털 하며..˝
˝하지만 엄마, 여우는 개과이고 우리는 고양이인데..˝
날 흘겨보는 엄마의 눈빛이 위기감을 조성했기에 난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산책을 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언니와 오빠도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기에 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너는 누구냐˝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빛깔의 요상한 고양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는 그냥 고양이인데요. 당신은 누구셔요?‘
˝후훗 인간과 살지 않는 아깽이가 이렇게 엄마에게 삐져서 나오면 좋지 않단다. 얼른 들어가렴.˝
˝어머나,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죠?˝
˝이렇게 어린 아기를 산책하러 보내는 인간은 없지. 게다가 넌 지금 그루밍도 반쪽만 되어 있잖니? 엄마가 그루밍해주다가 뭔가 못마땅해서 그만뒀다는 뜻이지. 즉, 너는 엄마한테 뭔가로 빈축을 산 게로구나. 너희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너희를 먹여 살리는데 그러면 못써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는 인간에게 의탁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단다.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을 만나는 게 호강의 지름길이긴 한데..˝
요상한 빛깔 고양이가 말이 너무 길어져서 나는 자못 궁금한 척 다시 물어보았다. 내가 고객센터 직원도 아닌데 왜 자기 말만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당신은 누구셔요? 어쩌면 그렇게 뱃살이 참치처럼 두둑하셔요?˝
˝나는 저 초록색 지붕 집에 사는 앤이라고 해. 그린 게이블스의 앤이라는 책도 내 전생에 나왔지.˝
요상한 고양이는 내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자기처럼 위풍당당한 풍채의 고양이를 일컬어 뚱냥이라고 한다는 것과, 세상에는 캐리어 캣과 집 캣이 있다는 것 하며, 본인은 멀리 러시아에서 건너온 러시안 블루라는 것, 그리고 나는 고등어 태비라는 것. 이 대목에서 그 고양이는 갑자기 고등어가 먹고 싶다며 뒤뚱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등어 태비..고등어..언젠가는 나도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그러면 고등어처럼 헤엄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때가 속편한 순진한 시절이었다. 



초록지붕 앤 뚱냥이가 어디론가 뒤뚱뒤뚱 가버린 다음 얌전히 풀밭에 앉아 명상을 하려는데 어디선가 흰 나비가 보였다. 그래! 맹수로 태어났으니 실력을 갈고닦아 보자! 모차르트는 내 나이 무렵 바이엘도 떼고 교향곡 작곡도 시작했을것 같기도 한데 ‘여전사 김칼리‘로 이름을 날려 비단옷을 입고 엄마와 언니 오빠에게 돌아가면, 날 노려보았던 것을 후회할거야! 
흰 날개가 팔랑팔랑 내 눈도 팔랑팔랑 조그만 것이 뭐가 저렇게 날렵하단 말인가 간절하면 하늘이 응답한다는데 몸을 날려서 잡아야지!!!

너무 힘차게 날렸나보다. 

공포영화를 보면 놀랄 때 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던데 너무 놀라니 목소리조차 나오질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려고 했는데 몸이 붕 뜨더니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옆구리는 왜 이렇게 아프고 왜 이렇게 어지럽지..뭔가 허리와 얼마 있지도 않은 내 뱃살을 바짝 조여왔다. 점점 파고들면서 누군가 나를 꽉 움켜잡는 것이......아프고 아득하다. 이렇게 아득한건 처음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땅이 내게로 다가왔다. 사뿐하고 가뿐하게 몸이 가벼워지더니 커다란 노란 눈이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커다란 두 눈. 갈고리같은 강단있는 주둥이. 눈이 너무 날카로워서 쳐다만 봐도 화장실이 막 가고싶었다. 
˝다..당신은 누구세요? 저는 칼리라고 하는데요......˝
˝헙!!!!!!˝
내가 ‘헙‘의 뜻을 열심히 생각하려는데 커다란 생명체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더니 푸드덕 소리를 냈다.
˝저는 고양이에요. 그냥 고양이요.˝
˝세상에, 커다란 쥐새끼라고 생각했는데 넌 아깽이였구나. 배가 고파서 대충 봤더니..˝
˝당신은 누구세요? 처음 뵙는데요......˝
˝나는 *메이블이라고 해. 아직 어린 참매란다. 저기 멀리 내 매잡이가 기다리고 있어. 사냥하다가 너를 쥐새끼라고 생각하고 잡으려 했는데 하긴 고양이도 저녁으로 나쁘지는 않지...˝
쥐새끼.
쥐.
쥐새끼.
˝으갸갸갸갹 $**())_$@!&*()!!!!!!!˝
너무 화를 냈더니 머리가 띵해지면서 피가 어디론가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칼슘이 다량으로 빠져나가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님도 한때 이가 다 빠지셨다는데 이 매새끼 때문에 내 이가 빠져나가면 내 임플란트는 누가 해주며, 그 고통은 어찌한단 말인가. 순간 이성을 잃었더니 육두문자가 검열도 없이 튀어나와버렸고, 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누군가 폴-짝! 하고 다가왔다. 동네 고양이들을 다 모은 게 틀림없다. 창피하게...나는 공쥬님인데......
˝무슨 일이냐.˝
**목소리는 페르시아산 고양이처럼 노란빛이 도는 엷은 회색에 옻칠을 한 듯한 점이 박힌 미남 고양이였다. 그 옆에는 뱃살이 도둑하고 덩치가 우람한 고양이도 함께였다.
˝나는 서생 집에 사는 고양이. 이쪽은 인력거꾼네 집에 사는 쥐를 여러마리 잡으신 고양이님이시다.˝
˝저는 칼리라고 해요! 세상에 이 참매 이름이 매이...어쨌든 이 매가 나더러 쥐새끼랬어요!!!!!!˝
메이블은 난처해하며 ‘누구부터 먹을까‘ 하는 눈빛으로 우리 셋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고, 나머지 두 고양이는 낮잠을 방해받아 짜증난다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쥐새끼라는 말에 역시 격분하여 메이블을 노려보았다.
˝쥐새끼라니! 이 아깽이가 무슨 자금을 은닉하고 난세를 일으켰다고 그런 심한 욕을 한단 말인가 매 양반!˝
˝보아하니 우리 고양이 족속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이 아깽이를 욕하는 건 인력거꾼을 욕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내가 족제비의 방귀에도 굴하지 않고 족제비도 잡은 고양이인데!˝
논리가 개판이지만 참자.
˝......살려면 누구나 먹어야 하는데 생과 사가 쥐와 고양이를 가린단 말인가? 나는 피를 보면 흥분하고 일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사냥본능으로 이 쥐새, 아니 아깽이를 잡았을 뿐이야.˝
˝ 또 쥐새끼!!!!!!˝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참는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그러나 인력거꾼네 고양이가 나를 말렸다.
˝배고프면 내가 쥐잡이의 명수이니 나만 믿고 따라와보쇼.˝
듣자하니 인력거꾼네 고양이는 쥐를 정말 잘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잡는 족족 집사놈이 관청으로 쥐꼬리를 들고 가 돈으로 가로챘다는 것이 아닌가. 인력거꾼네 고양이와 메이블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서생네 고양이와 나, 둘만 남았다. 서생네 고양이는 자신이 집에서 푸대접, 자기 동네 흰둥이님이 낳으신 아기를 모조리 강물에 빠뜨려 죽여버린 몹쓸 인간 이야기 등을 늘어놓다가 눈물을 짓기도 했다.
˝고양이로 사는 건 참으로 복되고도 험하단다. 그 중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할 것은......˝
서생네 고양이라니 뭔가 대단한 묘생의 지혜를 들려줄 것만 같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뭘까!!!!
˝떡이다.˝
떡!
˝그것이 찰싹 입에 달라붙으면 꼬리를 휘휘 내저어도, 앞발을 입에 갖다대어 문질러대도, 심지어 뒷발로만 일어서 이족보행을 해도 수가 없지. 내 경우엔 심술궂은 하녀가 인정사정없이 떼어줘서 살아났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 뭐냐.˝
서생네 고양이라 해서 영리하지는 않구나......
˝왜 한숨을 쉬느냐잉?˝
인력거꾼네 고양이와 메이블이 돌아와서 나를 보고 묻길래 이야기했더니 인력거꾼네 고양이가 코웃음친다. 역시, 체득한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건....
˝어림없는 소리.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족제비의 방귀야.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어!˝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두 고양이가 싸우는데 메이블이 나를 움켜잡았다.
˝족제비라니, 한입거리를 가지고. 가자, 쥐새끼.˝
˝또또또!!!!˝
발톱으로 부리를 할퀴려는데 메이블이 나를 들어올렸다. 몸이 붕 떠올랐다.

..야!!
...리야!!
...칼리야!!!
엄마?
˝칼리야! 너는 무슨 애가 잠을 이렇게 파닥대며 자는거니! 우리 칼리 키크려나보다!˝
메이블이 나를 들어올렸는데..그 전에 인력거꾼네 고양이..서생..떡..
˝잠꼬대를 일어나서도 하는구나 원! 그루밍 받다가 너무 곤히 자길래 안깨웠더니만! 얼른 일어나 저녁 먹어야지!˝
***옛날 칼리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스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칼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깨어, 곧바로 놀라서 보니 칼리가 되어있었다.
알지 못하겠다. 칼리가 꿈에 쥐새끼가 된 것인가, 아깽이가 꿈에 칼리가 된 것인가? 
칼리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이 묘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헬렌 맥도날드, 메이블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나온 고사, 호접지몽
을 멋대로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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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치즈버거 꿈을 꾸었다.







수타공법 면을 던지듯 더이상 촌스러울 수 없을 것 같은 현란한 리듬, 오로지 치즈버거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만든 것 같은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펼쳐졌다. 크라제를 시작으로 버거킹으로 끝냈으나 기왕 먹는 거 더 경박하게 먹어보리라! 다짐하며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몬드 밀크를 넘어 이제는 헴프 씨드 밀크, 유기농 아보카도, 텃밭에서 직접 따온 에일리움은 잠시 잊고 기름기로 위장을 적시리라 다짐했다. 그러자 친구 하나가 웃으며 말한다.


 "치즈 버거, 달링. 치이이이즈 버거!"


 혀의 굴림도 윤활유를 바른듯 미끄럽다. 베어나오는 육즙이 느껴지는듯한 길다른 모음에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한다. 모든 걸 다 넣은 이 세상의 치즈버거. 그런 것을 먹을 때엔 햇빛은 바삭바삭해야 하고, 바람은 흥얼거려야 한다. 쌈을 먹을 때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가둔 육즙과 경박한 슬라이스 치즈를 한 번에. 엊그제 넷플릭스에서 본 옥자는 잠깐 잊을거야. 번드르르한 기름이 입술에 묻는 것도 상관 없어. 샷 하나 추가, 얼음 작게, 홀밀크 대신 하프 앤 하프로! 이렇게 주문하던 취향도 없지. 치즈버거 올 더 웨이! 대신 아는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그가 적당히 나를 못본 체 해 주었으면 좋겠어. 일회용 테이크아웃 잔에 부딪히는 얼음은 서글서글한 소리를 내고, 양상추가 이와 이 사이에서 아삭 소리를 내는 날. 달고 짠 감자튀김과 케첩, 소고기 패티와 슬라이스 양파. 

 노래 가사처럼 육식을 그만두고 자연에 귀화하려 하였으나 해바라기 씨와 당근 주스에 지친 어느 날이라면, 
 치즈버거 앞으로.



천국의 치즈버거.

어니언 슬라이스를 얹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네.

뭔가 특별한 걸 원하거나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야.

난 그냥 천국의 치즈버거.


천국의 치즈버거

미디움 레어 머스터드 추가

어니언 슬라이스를 얹으면 최고


양상추, 토마토.

하인즈57이랑 감자튀김

커다란 코셔 피클과 차가운 맥주

세상에 뭘 더 바래?

-지미 버펫, 치즈버거 인 파라다이스



세상에 이런 가사와 리듬, 코러스와 메인 보컬이 경박하고 촌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음에 놀랐는데, 듣고 나면 묘하게 치즈버거가 먹고 싶어진다. 무려 70년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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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했던 겨자색 재킷이 사라지고 나서는, 바람 없이 서늘한 그곳의 공기가 사라지고 나서는, 무인 순환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문을 나섰던 그 이후 느꼈던 마음의 소용돌이가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일주일 전 오늘 우리는 필레 미뇽을 굽고 내가 가진 값비싼 포도주를 꺼내 환송회를 벌였다. 웃고 떠들고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 잠들었고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공항에서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그는 천천히 사라졌고 나는 천천히 무너졌다. 사람들 그림자가 허깨비 같았고 사방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지독한 환지통이었다.




 햇빛을 한가득 받으며 산책하기.

 그의 것까지 같이 커피를 주문하기. 

 군중 속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LGBT  퍼레이드가 이곳에서는 꽤 대중적인 행사이다) 구경.  

 유람선 타기. 

 집에서 스테이크 구워먹기. 

 아껴둔 와인을 따기. 

 항의편지 쓰기. 

 관광명소 둘러보기. 

 동양사 박물관 가기. 

 등산. 

 지도를 보고 길 찾기. 


 


 그 여름, 이 여름, 


 나는 그를 위한답시고 참 안 하던 일을 많이 했다. 그는 나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나의 소중한 손님이었으니, 그가 보고 싶은 걸 많이 보여주고, 먹고 싶어 하는 걸 많이 차려주고, 내 집에서 머무는 동안 최대한 편안히 머물렀으면 하고 바랐다. 내 마음이 부담되었는지 그는 내 집에 오고 난 딱 사흘 후부터 일주일간을 앓아누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먹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그를 내 고양이들만 무심한듯 살뜰하게 보살폈다. 그가 기운을 차린 후부터는 어디에 가고 싶으냐, 무엇을 보고 싶으냐,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닦달해댔고 일어난 첫날 그는 육개장이라고 말했다. 쇠고기를 삶아서 알맞게 뜯어 넣고, 얼큰하게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인 국. 그는 한 숟갈 뜨고 몸을 회복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아스라한 모래바람 같은 것이, 우리 사이에 서걱서걱 불었다. 예쁜 거리도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즐겨가는 가게의 커피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지나고 나니 모두가 다 내 욕심이었던 것들.




 "무슨 술 마실까? 너 맥주 좋아하지?"

 "맥주는 사귀던 걔가 좋아하던 거야."

 "너는 걔 이야기 빼면 남는 게 뭐야?"

 "없는 것 같아."

 



 나는 이럴 때 잘 스미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그저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을 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고양이 봐라! 너무 예쁘지 않냐? 나날이 귀여움을 갱신한다! 이런 나의 말에 지청구처럼 '같이 가자! 불출산!' 이라고 말해주는 그의 재주가 부러웠다. 마음이 텅 비었다는 말에 난 머리까지 텅 빈 것 같다는 답을 했다. 시간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 어리고 여리던, 교복을 입고 같은 반 교실 책상에 앉아있었던 너와 내가 이렇게 한 달을 같이 보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는 당시에도, 지금에도 스미는 재주는 없는 사람인 채로 남았을 뿐, 동동 뜨다 보니 여기까지 떠밀려 와버렸다고 서로 보며 웃었다. 





 산책, 커피 주문. 비용 대 효율 따져보기. 헤어진 사람 이야기 하기.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집 안에만 일주일 있었는데 핏빛을 찬 손목과 비교해보니 이렇게 살갗이 탔어." 


 "네가 주문해 볼래? 외국 나오면 이런 게 기억에 남더라."

 "그건 너 같은 인간이나 해당하는 말이고, 난 이 나라 말 못해. 네가 주문해."

 "사이즈는? 얼음 양은? 샷은 몇 개? 우유는 무슨 종류로 해?"

 "나한테 왜 그런 걸 다 물어보냐! 저기 메뉴판에 있는 대로 할래! 난 서브웨이 주문도 귀찮아."


 "저기 바다 건너 내가 구경해 보고 싶은 데가 있어!"

 "가볼래? 기왕 왔으니까."

 "입장권이 생각보다 비싸. 그 돈 주고 왜 거기에 가냐!"

 "가보고 싶었다면서!"

 "입장권 가격 알기 전 이야기지!"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 너와 하는 일들, 좋은 고기를 사와서 집에서 구워 먹기, 좋은 와인을 곁들이기, 함께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기는 전부 다 헤어진 걔와 하고 싶었던 것들이야."

 

 나는 그에게 이런 답을 한 적이 있다.


 "너와 나는 좋아하는 것도, 취향도, 성격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나는 네가 하려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어. 아마 너도 그렇겠지."



  

  그가 내 집에 머무는 동안의 중간 즈음, 우리는 숲을 산책했다. 등산이라고 하기도, 산책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무엇을 함께 했다. 산장 초입에서 방문객 틈에 길게 늘어선 줄 끝에서 주문한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 내가 말했다.

 "나도 이런 데서 커피 내리고 싶어."

 산장, 사람들이 한 번 왔다가는 곳.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서늘한 곳. 어쩌면 곰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 곳.

 그러자 그가 깊이 수긍하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여기서 커피 내리고 싶다. 물 반 고기 반이네."




 산에 가면 사람이 착해진다는데 몇 년에 한 번꼴로 산에 왔으니 착하지 않은 날이 태반일 것이다. 고소공포로 손에 땀이 축축해진 내 손을 잡아주고, 아래를 보지 말고 자기 얼굴을 보라고 말해주고,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를 보다 생각했다. 아마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높은 산중에서 '저 앞에 먼저 가던 사람 중 하나 당뇨 걸렸나보다. 서울에서 유명한 병원은 어디라는데....' 하던 그의 말이 쓸데없이 떠오를 것 같다고. 

 꼭,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블루'에서 교통사고의 순간에 '자, 이제 딸꾹질을 해 봐'라고 말하던 남자처럼. 그래서 그 순간이 왔을 때, 이상하게 남은 것은 그가 남긴 낱말 몇 조각, 경쾌한 억양,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이, 집사가 왜 이렇게 늦었나?'하며 고양이 셜록의 앞발을 잡고 있던 그의 모습 같은 것. 나이가 들면서 이별이 자주 다가온다. 오늘 헤어지면서도 겉으로 인사하지 않고 마음이 물러나곤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가 떠난 다음, 그는 내 방에 물건 하나 남겨두지 않고 흡사 여기 다녀가지 않은 듯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다가 세면대의 가그린 병 하나를 보고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제목은 김행숙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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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옹! 에에에옹!"

 아까처럼 잦아들겠거니 하며 다시 눈을 감아 보았지만, 새끼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옆집에서도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내려가 봐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믿기지 않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네!!! 내 야구 빠따 어디 갔어! 내 이 도둑고양이 새끼들 다 잡아 죽여버릴라니!"

 자리에서 90도로 로보트처럼 삐끄덕 하고 튕겨져 일어났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엌에 씻어 놓은 햇반 그릇 하나와 간식 캔을 호주머니에 넣자마자 문을 잠그고 파자마 바람으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새끼고양이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옆 건물 1층 주차장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오도카니 건물 현관을 등지고 앉아 울고 있었다. 

 ... 순간 묘하게 뒷덜미가 서늘했다. 이상한 느낌에 슬며시 뒤를 돌아보니 얼마쯤 떨어져 있는 어둠 속에서 아저씨 하나가 비틀비틀 약주를 거하게 한 모양새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온."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을 말과 판이하게도 다르게 아저씨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물체가 나를 소리 없이 경악케 했다.

 "나비야. 나비 시키. 이 도둑괭이 새키. 어디갔어. 이리 나와 봐!"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붉은색 벽돌 한 개였다. 



 인연과 묘연이 엉키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잠시 맡아만 봤다가 입양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양이 넷을 맡은 것이 올해 5월이 되면 이제 채 2년이다. 엄마 고양이 하나와 새끼 셋, 그중 엄마 고양이는 입양처가 생겨 중성화 수술을 한 다음 보냈고, 새끼 셋은 지금도 나와 함께 지낸다. 얼마 전 동물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몸무게를 재어보니 그나마 제일 큰 수놈 셜록이 4킬로그램, 암컷 칼리가 3.6킬로, 님부스가 3.1킬로그램.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난다. 세 마리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을 때 지인 하나가 '너 그러다가 못보낸다'라고 한 말대로,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나고도 나는 셋을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기로 했다. 그래서 잠시 여행을 결심했을 때 셋을 함께 케이지에 넣어 같이 여행을 다닌 다음부터는 아예 여행을 포기했다. 



 포기한 것은 아래와 같다.



 =내가 삼남매 칼리, 셜록, 님부스와 함께 살면서 포기한 것=

고양이 털 안묻은 검정 옷

고양이 털 안묻은 흰색 옷

여행

외박



반면 삼남매와 함께 살면서 하게 된 일들은 아래와 같다.



=내가 삼남매 칼리, 셜록, 님부스와 함께 살면서 하게 된 일=

고양이 화장실 청소(매일 2회, 화장실 살균소독 주 1회)

집안 환기(매일)

바닥 청소(진공청소기, 진드기 퇴치제 살포 주 2회)

캣사료, 캣 모래 구입

고양이용 음식(주로 닭가슴살, 새우, 가끔씩 연어) 상비





귀여우면 됐지 뭘 더 바래?-김칼리, 1년 10개월, 암컷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냥?-셜록 딩글베리, 님부스 이천(1년 10개월령, 수컷, 암컷)


 아무리 보아도 득보다 실이 많은 이 관계인데, 이들이 눈을 맞추며 내게 말을 걸고, 침대에서 곁을 파고들고, 내게 놀자고 장난감을 물고 올 때면 예상치 못한 만족감이 스민다. 이들은 간섭하지 않고 공감한다. 종종 내가 집을 오랜 시간 비우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린다. 고양이는 장소를 섬길 뿐, 주인을 모른다니. 개처럼 충성스럽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다니. 원래 길에서 사니까 버리고 가도 된다니, 역시 '신비롭다'는 말의 어원은 '모른다', 내지는 '관심 없다'가 아닐까. 






 


 윤소해의 '커피 타는 고양이'는 고양이에 관심 없으면 지나치기 쉬운 책이다. 책의 언어는 뜨겁고 종종 집사의 마음이 글의 리듬을 앞질러가서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일 수도 있다. 어쩌랴. 지나친 애정은 불출산 맑은 공기를 불러올 수밖에. 어쩌면 전의 고양이 키우는 집사들과 2017년 지금 고양이 키우는 집사들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1990년대 초반 정도만 하여도 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동물병원도 드물었고,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동물 보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나만 빼고 다들 고양이 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이 키우고, 많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들 42마리와 윤소해가 만든 풍경이 '커피 타는 고양이'라는 캣카페이다. 




 길고양이들과 유기된 고양이들을 구조하면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있다. 도둑고양이에게 또 밥을 주면 망신당하게 할테니 각오하라거나 죽여버리겠다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듣는 순간도 아니다. 오랜 시간 밥을 챙겨주며 멀리서 자라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가 누군가의 잔인함과 서슬 퍼런 외면 때문에 보란 듯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도 아니다. 

 가난한 살림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병원비에 허덕이며 비어있는 통장 잔고를 매번 확인하는 순간도, 가족과 친구에게 왜 그러고 사냐며 한심하다는 핀잔을 듣는 순간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내가 이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직감하는 그 순간이다.




 왜 하필 고양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그저 나 자신보다 더 작고 약한 존재, 자신을 챙길 수 없는 존재를 보살피는데 왜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 라는 질문에 '그럼 당신은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에 반대합니까?'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너는 왜 그렇게 도둑고양이 밥을 주고 다녀?'라는 질문에 '그러면 너는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책임질 수 없으면서 모든 생명을 떠안고 데려와 내버려두는 것이 애니멀 호더라면, 나는, 혹은 저자 윤소해는 자기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어떤 친구는 차라리 독거노인이나 기아난민을 도우라는 말을 들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왜 틀린 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보통 죄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왜 약한 존재를 보살피는 사람에게는 그가 한 일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종용할까. 





 지하철역 부근에서 성인 남자에게 빗자루로 두들겨 맞다가, 꽁꽁 묶은 쓰레기 봉지 속에 버려져서, 이민 간다고, 여행 간다고, 결혼한다고, 들였다가 알레르기가 있거나 다른 이유로, 임신해서, 줍냥했다가 부모님이 반대해서, 싫증 나서.




 42마리의 사연이자 흔히 접하는 사유.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한 나라의 국격이 보인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떠오른다. 저자의 희망은 그래서 카페 문을 닫는 것이다. 더는 버려지는 고양이가 없어서 카페 문을 닫는 것. 자생하기 위해 영업하는 곳. 생명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무지가 무관심으로, 혹은 폭력으로 번지는 것에 반대하는 곳. 

 거대한 담론보다 한 마리의 고양이. 커피 타는 고양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언젠가의 쉼터를 준비하고 싶다. 동물이 가족이라고 하면 이해 못 하는 시선이 있어도 좋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아직도 도둑고양이가 표준 국어로 등재되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저자가 후기에 썼듯이, '어느 날 불현듯 만난 고양이가 지금의 성격과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과 이유가 궁금해지고 그 이유를 알게 되거나 느끼게 되는 때. 바로 그 순간 내가 '움직일 이유'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반드시 받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왜 카페를 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힘든데."

 그러면 한참 부연 설명을 들려준 뒤 마지막에 대답한다.

 "카페를 그만두기 위해서 카페를 합니다."

 사람들은 고양이 카페에 대한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양이 카페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거의 대부분 품종묘이다. 그 아이들은 숍에서 사왔거나(나는 이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숍엔느 어떻게 아이들이 오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가정에서 분양받아 데려왔거나.

 애초에 고양이 카페의 존재 자체가 슬픈 일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고양이들을 제대로 케어한다면 고양이 카페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다 빚만 떠안고 망할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많든 적든 카페의 고양이들은 당장 갈 곳이 없어진다. 품종묘라 하여도 몇 개월 몇 년 동안 입양처가 구해지지 않는 것이 태반인데 하루아침에 그 많은 고양이들을 어찌한다는 말인가. 

 ...더 이상 버려지는 고양이들이 없어서 카페 문을 닫는 것. 이것이 내가 진정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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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7-01-31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삼남매 칼리, 셜록, 님부스와 함께 살면서 포기한 것=
고양이 털 안묻은 검정 옷
고양이 털 안묻은 흰색 옷
여행
외박


저도 얼마전 이 얘기 했어요. 예전에 여행 많이 다녔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고 나서, 고양이들 때문에 못 간다고 해도,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고양이와 함께 하는 늘 같은 일상뿐이라고 해도 비교대상에 올릴 수도 없을만큼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소중해요.

별 일이 없는한 내가 녀석들보다 오래 살텐데, 함께 하는 모든 시간 아끼며 잘 보내야지 싶습니다.
말로는 이제 두자릿수 나이라 제 노년도 냥님 노년도 점점 자주 생각하게 돼요.

Jeanne_Hebuterne 2017-01-31 11:48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떠오르지는 않지만 포기한 것이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카펫이 깔린 목조건물에 살고, 셜록은 산책냥이라서 매일 뒷마당 풀숲도 다니고 나무에도 올라가고...4,5월이면 벼룩과의 대전쟁이에요ㅠㅠ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제가 벼룩 알레르기라는데 겨울 빼고는 가려워서 잠자리가 힘듭니다. 그만큼 예방과 박멸에 신경을 써도 산책냥+중장모+목조건물+카펫 효과가 ....집을 불태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래도 참고 지내요. 아마 모든 집사들은 뭔가 힘든 점이 있으나 참는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도 그래요. 함께 다닌다고 해도 세마리를 이동장에 같이 넣고 모래박스 들고 룸서비스 하지말고 푯말 걸고 지내기를 몇 번 해보니 그냥 집에 있고 말자...하게 되더라고요. 남매끼리 떨어지면 힘들겠다는 생각에 셋 다 같이 지내기로 결정하는데 툭탁대며 싸우다가도 같이 그루밍하고 엉켜 자는 걸 보면, 과연 이들과 나는 무슨 인연이어서 이렇게 먼 바다 건너와서까지 만났나..신기해요.

이 글을 쓰다 생각했습니다. 전 모든 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하기는 바라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길고양이를 돕거나, 함께 지내는 고양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걸 보고 소위 ‘고나리질‘은 좀 그만 해주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인의 취향이고 생명을 대하는 태도이니까요.

덧-말로, 대학까지 보내야죠! 제 주변의 노묘를 돌보는 집사가 ‘난 우리 고양이 대학 갈 때까지 키울거야!‘라던데 그 말이 쏙 박혔어요. 그러니까 오래오래 같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좋아하는 존재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
 

 스포일러 있습니다.




가엾고도 가엾고나. 가짜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강렬하고 단호하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지 않았으니 그만큼 아름답다.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작품 '아가씨'는 이름만큼 요사스럽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다시 듣게 하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얼굴을 다시 보게 한다. 관객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는 감각을 이미지로 응축시켜 만든 것 같은 주제는 뜻밖에 단호하다. 바야흐로 박찬욱은, 자기 작품을 자유롭게 통제하고 거칠게 풀어뜨려 이 소품과도 같은 영화로 한숨 쉬어가려 한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골방에 갇혀있다가 풀려난 남자가 찾아가는 군만두의 맛, 떨어질 때의 타, 타, 탁월한 황홀함, 이런 것들을 이루어낸 감독이 선택한 로맨스는 어떤 것이었던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의 초반 몇몇 부분을 가져와 각색한 박찬욱의 '아가씨'는 193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속고 속이는 사기극이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자기가 속는지를 모르고 속았으면서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1930년대 배경의, 숙희와 히데코의 터널. 

 자, 이것은 어떨까. 매일 밤 잠들기 전 생각나는 액수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 사기꾼 백작은 아가씨 곁에 몸종 숙희를 붙여둔다. 어머, 백작님이 오신 다음부터 발톱이 빨리 자라네요. 사랑하게 되실 거에요. 라는 말 따위로 아가씨가 백작과 사랑에 빠졌다고 믿게 한 다음, 마침내 결혼하게 되면 아가씨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아가씨의 상속재산을 나누자는 모의.

 아니면 이것은 또 어떠한가. 다섯 살 무렵 벚나무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와 평생 어딜 가본 적도 없고 하는 일은 이모부가 모은 책 낭독회를 하면서 얼마 후면 그 늙은 이모부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되어 있는데', 이 모든 수동태 앞에 나타나는 능동의 동사. 사기꾼 백작이 속내를 밝히고 같이 도망가자고 한다. 물론 돈은 좀 나눠야겠지만. 도망가고 나면 이모부가 찾을 테니 몸종 여자아이를 자기 이름으로 정신병원에 넣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읊은 이야기는 영화 '아가씨'의 1부와 2부이다. 같은 이야기가 두 번에 걸쳐 변주를 이루는 1부와 2부. 1부는 하녀 숙희의 눈으로, 2부는 아가씨 히데코의 머리로, 3부는 두 사람의 맞닿은 손으로 끝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에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나오는 씬이 몇 가지 있다. 아가씨와 숙희가 서로의 옷을 바꿔 입으며 바라볼 때 마주하는 두 사람의 얼굴. 혹은 두 사람이 섹스할 때 맞잡게 되는 손. 능동과 수동의 경계, 보여주는 탐미를 넘어서 즐기는 손이 주는 느낌은 강렬한 주어의 느낌. 어쩌면, 손이 두 사람의 살결을 탐미적으로 훑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손을 아가씨의 장갑 서랍을 들여다보듯 아래에서 위로 쓸어내리지 않아서인지도, 또는 그 맞잡은 손이 굳게 서로만을 의식하고 있어서인지도, 혹은 전부 다 인지. 어느 것에도 잠식되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나는 이 두 사람의 맞잡은 손, 그 손에 담긴 힘이 참으로 명쾌하고 담대해서 그와 반대로 영화 속 남자들의 속은 시커멓고 남은 여자들의 얼굴은 허여멀건 하다. 





 1부의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2부의 아가씨의 시선이 하나하나 붙잡는다.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애는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내가 되고 물새 같은 히데코는 물새 같은 내가 된다. 숙희가 히데코를 속이려 했던가? 히데코가 숙희를 속이려 했던가? 백작이 이 둘을 속이려 했었지. 그러다가 숙희와 히데코가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두 사람의 욕망이 뻗어 나가는 시점에 와서 함께 문 앞에서 멈추어 앉아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밀어서 여는 장면이 몇 번에 걸쳐 나오는 순간, 박찬욱이 하려는 말은 무엇보다도 간단하다. 이것은 로맨스.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인지한 장애물을 하나씩 하나씩 뛰어넘어 마침내 서로 손을 굳게 잡는 연대의 이야기. 나는 굳이 '연대'라는 단어를 골랐는데 그것은 이 두 여자의 사랑이 에로스적 색채와 더불어 '평등'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만약 연대와 사랑,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면 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두 사람이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의 기본값이 사랑이기 때문에. 극중에는 '사랑? 사기꾼이 사랑을 하나?'라고 스스로 말하는 숙희의 모습이 나오는데 영화 전체는 이 말을 천천히 뒤집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가득 채운 것은 눈빛과 시선, 소리와 낱말, 빛과 그림자.







 배경은 주로 실내이고 서로서로 속일 때 가장 사소하고 중요한 것이 눈빛이니, 영화 속에서는 인물의 시점 숏이 유난하다. 숙희가 처음 아가씨에게 인사할 때 아가씨는 마침 거울을 등지고 있어 숙희에게는 아가씨의 얼굴과 목덜미가 한눈에 보인다. 아가씨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숙희의 강아지 같은 눈이다. 그 직전 등장했던 라쇼몽과도 같던 군인들의 빗길 속 행진, 얼굴이 누렇게 달아올라 돈 이야기와 모의에 정신이 없는 보영당 사람들을 비추던 그 빛과 소리는 아가씨에게 이르면 아이보리빛의 보얀 향내로 피어난다. 지그재그 길을 숙희가 비를 맞으며 걸어와 마침내 커다란 착각에 이를 때, 실내를 채운 것은 아가씨와 백작의 가짜 대화. 세상 부자 중에서도 누구보다 서책을 사랑해서 금을 팔아 책을 산다는 코우즈키가 모은 것은 사실 성애 소설. 의외, 역설, 진짜와 가짜 사이의 틈은 보영당에서는 누렇게라도 들던 빛이 코우즈키의 서재에는 아예 들지 않으며, 그의 지하실은 숫제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가 푸른 안개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아가씨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분명 류성희 미술감독이 공을 들인 저택이 분명하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oil on canvas, 1948



 숙희가 히데코 아가씨의 집에 처음 들어갈 때 작은 불빛 하나로 앞을 밝히며 가는 자동차가 가는 길은 마치 피터 그리너웨이의 차례로 익사시키기를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한밤중 보이는 집 전경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아닌가. 섬세하면서도 계속 보노라면 기괴한 윌리엄 모리스가 작업한 듯한 느낌의 벽지가 드리운 아가씨의 방, 벨라스케스가 한 번쯤 그렸음 직한 아가씨의 옷자락. 거기에서 나아가면 남성 성기의 상징인 뱀이 대가리를 든 코우즈키의 서재가 나온다. 한 번도 영화 속에서 쓰임을 발휘해보지 못한 코우즈키의 성기 대신 빳빳하게 선 뱀 대가리의 쓰임을 보노라면 영화 속 모든 세트가 어떻게 등장인물과 함께 호응하는지가 그대로 보이기까지 한다. 

 가만히 있음으로는 자신의 존재증명을 다 할 수 없는 코우즈키의 서재는 그런 의미에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낭독회도 열고 서책도 탐하고, 어린 조카에게 변태적 글읽기도 가르치고, 아내를 고문할 수 있는 그의 공간은, 앞서 말했듯 '누군가의 무엇'같은 무언가가 가득 채운 코우즈키 월드다. 영국, 일본, 한국의 가옥이 한데 붙어있고, 실제로는 조선인이면서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서 일본인 행세를 하고, 이 겹겹이 문과 문으로 쌓인 집을 보노라면 코우즈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얄팍한 거짓말 그 자체의 인물이라는 것을, 이 모든 '지나가는 세트'가 그 전부로 말하고 있다. 









 영화 전체를 세트가 앞서나가지도, 뒷걸음질 치지도 않는 말하는 배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조화로운가 하면 이질적이고 어지러운가 하면 간단하다. 뒤틀리고 암담하면서도 제 할 일 못하는 흐리멍덩한 이 안개 속을, 두 사람의 사랑은 거침없이 뚫고 지나간다. 가는 길목길목이 어떠하던가. 커다란 보름달은 숙희의 문에 있다가 두 사람이 저택을 탈출할 때 흐리게 웃는다. 마침내 해피 엔딩에서 달이 환하게 걷혔다가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 숙희의 방문에 가서 앉는 커다란 보름달. 이렇게 분명히 밝혔음에도 이 영화 속 두 사람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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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4 0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