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대비(對比)

 

프란츠는 말했다. <인간의 계획에서 탄생해 너무 엄격하고 너무 손때가 탄 아름다움보다 뉴욕의 비의도적 아름다움은 훨씬 풍부하고 훨씬 다양할 거야. 하지만 더 이상 유럽식 아름다움이 아닌 거지. 우리에게 낯선 세상이야.>”(171, 문장부호 수정인용)

 

프란츠는 말했다. <인간의 계획에서 탄생해 너무 엄격하고 너무 계산된 아름다움보다 뉴욕의 비의도적 아름다움은 훨씬 풍부하고 훨씬 다양할 거야. 하지만 더 이상 유럽식 아름다움이 아닌 거지. 우리에게 낯선 세상이야.>”

 

프랑스어 원문: Franz dit : « Peut-être que la beauté non-intentionnelle de New York est beaucoup plus riche et beaucoup plus variée que la beauté trop austère et trop élaborée née d’un projet humain. Mais ce n’est plus la beauté européenne. C’est un monde étra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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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미래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57)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미래 심연으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프랑스어 원문: Le samedi et le dimanche il avait senti la douce légèreté de l’être venir à lui du fond de l’aven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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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책 읽어주는 남자, 김재혁 옮김, 시공사, 2014(4).

 

그 시절을 생각하면 왜 이리 슬픈 것일까? 잃어버린 행복 때문일까? [...] 그 후로 다가 온 것은 진상의 파악, 즉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은 나중에 가서 어차피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던가?”(52, 부분삭제 인용)

 

그 시절을 생각하면 왜 이리 슬픈 것일까? 잃어버린 행복 때문일까? [...]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이미 존재했었던 게 그 후에 밝혀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독일어 원문: Warum macht es mich so traurig, wenn ich an damals denke? Ist es die Sehnsucht nach vergangenem Glück [...] Ist es das Wissen, was danach kam und daß danach nur ans Licht kam, was schon da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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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무한성

 

프란츠는 빛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다. 요새는 정사를 위해 불을 끄는 것은 웃기는 짓으로 통한다. 이것을 아는 그는 침대 머리에 조그만 램프를 켜 두었다. 하지만사바나의 몸에 진입하는 순간 그는 눈을 감는다. 그를 사로잡는 관능이 어둠을 예고했던 것이다. 이 어둠은 순수하고 총체적이다. 이 어둠에는 이미지도 환영도 없으며, 끝도 경계선도 없다.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그렇다. 무한한 것을 찾고자 하는 자는 눈만 감으면 된다!)”(160-161)

 

프란츠는 빛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다. 요새는 정사를 위해 불을 끄는 것은 웃기는 짓으로 통한다. 이것을 아는 그는 침대 에 조그만 램프를 켜 두었다. 하지만사바나의 몸에 진입하는 순간 그는 눈을 감는다. 그를 사로잡는 관능이 어둠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 어둠은 순수하고 총체적이다. 이 어둠에는 이미지도 환영도 없으며, 끝도 경계도 없다.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그렇다. 무한한 것을 찾고자 하는 자는 눈만 감으면 된다!)”

 

프랑스어 원문: Comme par la lumière, il est attire par l’obscurité. De nos jours, éteindre pour faire l’amour passe pour ridicule ; il le sait et laisse une petite lumière allumée au-dessus du lit. A l’instant de pénétrer Sabina, il ferme pourtant les yeux. La volupté qui s’empare de lui exige l’obscurité. Cette obscurité est pure, entière, sans images ni visions, cette obscurité n’a pas de fin, pas de frontières, cette obscuritè est l’infini que chacun de nous porte en soi (oui, qui cherche l’infini n’a qu’à fermer les yeu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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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책 읽어주는 남자, 김재혁 옮김, 시공사, 2014(4).

 

반호프 거리, 한나의 집.

 

미하엘의 두 번째 방문.

 

“그 여자는 집에 없었다. [...] 현관문의 유리창을 통해 집 안이 들여다보였다. 현관에는 거울과 옷장, 시계가 있었다. 째깍째깍하며 시계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그녀를 만나보기로 그리고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현관의 시계는 십오 분과 삼십 분 그리고 정각마다 종을 쳤다. 나는 시계의 나직한 째깍 소리를 좇아, 종을 친 후 다음 종을 칠 때까지 900초를 세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자꾸만 정신이 분산되었다.”(32-33쪽, 부분삭제 인용)

 

그 여자는 집에 없었다. [...] 현관문의 유리창을 통해 집 안이 들여다보였다. 현관에는 거울과 옷장, 시계가 있었다. 째깍째깍하며 시계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그녀를 만나보기로 그리고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현관의 시계는 십오 분과 삼십 분, 사십오 분 그리고 정각마다 종을 쳤다. 나는 시계의 나직한 째깍 소리를 좇아, 종을 친 후 다음 종을 칠 때까지 900초를 세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자꾸만 정신이 분산되었다.”

 

독일어 원문: [...] Die Uhr im Flur schlug zur Viertel-, halben und vollen Stunde. Ich versuchte, dem leisen Ticken zu folgen und die neunhundert Sekunden vom einen Schlagen zum nächsten mitzuzählen, ließ mich aber immer wieder ablenken.

 

괘종시계(卦鐘時計)는 종을 치는 횟수에 따라, 세 종류로 구분한다.

 

예를 들면,

 

시간 당 1= 12:00

시간 당 2= 12:00, 12:30

시간 당 4= 12:00, 12:15, 12:30, 12:45

 

한나의 집에 있던 괘종시계는 마지막 유형.

 

그래서 미하엘이 15, 900초를 세면서 계속 괘종소리를 좇았던 것.

 

독일어 표현, ‘zur Viertel-, halben und vollen Stunde’zu jeder Viertelstunde’와 같은 뜻으로 15분마다라는 의미이다.

 

, ‘zur Viertelstunde’15분과 45분을 동시에 가리킨다.

 

 

(부기[附記]: 1999<세계사>의 초판본을 읽을 때부터 늘 이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 이 한나의 시계는 정각, 15, 30분에만 종을 치고, 45분에는 치지 않을까?

 

어리석게도, 한때는 45분은 건너뛰고 시간 당 3정각, 15, 30만 치는 괘종시계가 있나, 열심히 찾아본 적도 있다.

 

외국어란 어렵다. 그 표현을 모르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의 나랏말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인정하지만, 뭔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사태가 있을 경우 문제의식을 갖고 그 답을 계속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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