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쏜살 문고
강경애 지음, 심진경 엮음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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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21.

다듬읽기 6


《소금》

 강경애

 민음사

 2019.10.18.



《소금》(강경애, 민음사, 2019)을 읽었습니다. 낱말이 하나하나 살아서 숨쉬는 글결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요새는 이만큼 글을 쓰거나 이렇게 글빛을 여미는 사람이 드뭅니다. 어쩌면 아주 사라졌을는지 모릅니다. 늘 쓰는 우리말이라지만 정작 ‘우리 마음을 담는 말’이 아닌 ‘우리를 억누리는 우두머리(권력자)가 욱여넣은 말’에 갇힌 굴레에서 못 헤어나온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다만, 강경애 님이 쓴 글에도 손볼 대목은 있습니다. 지난날 막 스며들던 일본말씨가 있고, 일본 한자말이 있습니다. 굳이 안 써도 될 한자말을 구태여 쓰면서 묶음표에 넣기도 하고요. 이런 여러 대목을 차곡차곡 손질하면서 되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말빛을 가꾸고 말넋을 북돋우며 말삶을 일구는 어진 사람으로 즐겁게 마주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말이 말인 줄 알기에 마음이 마음인 줄 알고, 넋이 넋인 줄 읽으면서 빛이 빛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ㅅㄴㄹ


끝도 없는 망망한 바다를 향하여 죽음의 길을 떠나는

→ 끝도 없는 바다로 죽음길을 떠나는

→ 끝없는 바다로 죽으러 떠나는

8쪽


토담을 볼 때마다 지금으로부터 사오 년 전 그 어느 날 밤

→ 흙담을 볼 때마다 너덧 해 앞서 그 어느 날 밤

9쪽


오늘 반공일이어

→ 오늘 아침만 해

→ 오늘 낮은 쉬어

13쪽


어머니의 언짢아하는 모양을 바라보는 봉염이는

→ 어머니가 언짢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봉염이는

→ 언짢아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봉염이는

16쪽


이 생각은 헛된 공상임을 깨달으며

→ 이 생각이 헛된 줄 깨달으며

27쪽


당장에 젖유모를 그만두고 나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는 듯

→ 얼른 젖어미를 그만두고 나가라고 호통이 떨어지는 듯

47쩍


흥! 하고 고소(苦笑)를 하였다

→ 흥! 하고 쓴웃음이었다

→ 흥! 하고 눈물이 났다

→ 흥! 하고 쓰거웠다

49쪽


십여 년을 이 소금 밀수로 늙었기 때문에 눈 감고도 용이하게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 열 해 남짓 이 소금팔이로 늙었기 때문에 눈 감고도 길을 찾아간다

→ 열 해 즈음 이 소금 뒷팔이로 늙었기 때문에 눈 감고도 길을 찾아간다

5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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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 - 번역가 황진희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여행 소소 그림책에세이 시리즈 2
황진희 지음 / 호호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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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4.17.

다듬읽기 1


《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

 황진희

 호호아

 2022.6.30.



《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황진희, 호호아, 2022)를 읽었습니다. 일본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뜻깊게 하시는구나 싶으면서도, ‘우리말씨’를 미처 살피지 못 하는 대목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볼 뿐 아니라, 아기가 어버이 목소리로 듣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이란, 다른 어느 책보다 토씨 하나를 더 가다듬고 낱말 하나를 새로 추슬러서, ‘무늬만 한글’인 책이 아닌 ‘알맹이로 수수하게 우리 살림살이를 숲빛으로 밝히는 이야기꽃’으로 여미려고 할 적에 ‘옮김(번역)’을 이룬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그림책을 우리말로 슬기롭고 어질게 옮기자면 ‘어른끼리 주고받는 말’이라든지 ‘어른이 읽을 책에 쓰는 글’부터 ‘더 쉽고 수수하게 손질한 우리말씨’일 수 있어야 합니다. 늘 온마음을 기울여야 글쓰기와 글옮김을 ‘어른답’게 ‘철든’ 눈빛으로 하게 마련입니다.



진행하는 방법도 매번 조금씩 변주한다

→ 늘 조금씩 다르게 이끈다

→ 으레 조금씩 새롭게 꾸린다

→ 그때그때 조금씩 바꾸어 본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나면 마음이 느긋하다

→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나면 마음이 가볍다


다른 나라의 말을 오류 없이 읽어내서

→ 다른 나라 말을 바르게 읽어내서

→ 다른 나라 말을 옳게 읽어내서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문장을 다듬는 일을 한다

→ 우리말결을 부드럽게 살리는 일을 한다

→ 우리말씨로 매끄럽게 다듬는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했다

→ 서울로 오는 내내 꿈을 꾸는 듯했다

→ 서울로 오는 내내 꿈을 꾸듯 멍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로 홈런을 쳐 봤냐고 묻는다면

→ 누가 나한테 가장 좋아하는 일로 꿈을 이뤄 봤냐고 묻는다면

→ 누가 나한테 가장 좋아하는 일로 휙 넘겨 봤냐고 묻는다면


어린이가 가진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확장해 주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데다

→ 어린이다운 꿈나래를 마음껏 넓혀 주는 이야기가 사로잡는 데다

→ 어린이스런 꿈날개를 마음껏 살려 주는 이야기가 사로잡는 데다


아이들과 그림책의 만남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 아이들과 그림책은 나름대로 잘 만났다

→ 아이들은 그림책을 퍽 즐겁게 만났다


양육자들의 답은 여러 가지이다

→ 어버이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 어버이 말씀은 여러 가지이다


할아버지의 낮고 포근한 목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음표처럼 날아다녔다

→ 낮고 포근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아름다이 맞물려 콩나물처럼 날아다녔다

→ 할아버지 목소리는 낮고 포근히 아름다워서 가락빛처럼 날아다녔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 꽃소리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 멋스럽다는 말이 바로 떠올랐다


우리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고

→ 우리는 화다닥 여쭈었고

→ 우리는 잇달아 물어봤고

→ 우리는 쉬잖고 물었고

→ 우리는 마구마구 여쭙고


이 짧은 질문을 통해 잠시나마 나를 생각해 본다

→ 이 짧은 말로 살짝이나마 나를 생각해 본다

→ 이렇게 가볍게 물으며 문득 나를 생각해 본다


존재하는 많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 다 다른 숨결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 저마다 다른 빛을 받아들이는 숨길을

→ 모두 다른 숨빛을 받아들이는 길을


그림책 테라피는 그림책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 그림책 달래기는 그림책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이웃을 헤아리는 길이다

→ 그림책 보듬기는 그림책을 펴며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돌아보는 일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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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2022.10.4.

우리말숲 1 바라보기, 응시



바라보다 : 1. 어떤 대상을 바로 향하여 보다 2.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자신의 시각으로 관찰하다 3.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일에 기대나 희망을 가지다 4. 어떤 나이에 가깝게 다다르다

응시(凝視) :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봄 ≒ 응망



  어느 곳을 반듯하게 볼 적에 ‘바라보다’라 합니다. “바로 그곳을 보다 = 바라보다”요, “똑바로 보다 = 바라보다”인 셈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한자말 ‘응시’를 “눈길을 모아 한 곳을 + 똑바로 + 바라봄”으로 풀이하는데, “눈길을 모아 한 곳을”하고 “똑바로”는 같은 말이에요. 무엇보다도 “바로(똑바로) 보다 = 바라보다”이니 국립국어원은 ‘응시’를 겹말풀이로 다룬 셈입니다.


  한자말을 쓰기에 나쁘거나 틀릴 까닭은 없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이웃나라에서 한자말로 담아낼 뿐이고, 이 말씨를 지난날 우리나라 글바치가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먼저 ‘바라보다’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똑바로 헤아릴 노릇이며, ‘보다’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수수하게 ‘보다’ 한 마디를 쓸 만합니다. “가만히 보다”나 “고요히 보다”나 “차분히 보다”나 “곰곰이 보다”처럼 앞말을 여러모로 달리 붙이면서 봄결(보는결)을 새롭게 그릴 수 있습니다.



한 곳을 응시만 하고 있었다 → 한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 한 곳을 보기만 했다

그의 응시를 피했다 → 그이 눈길을 거슬렀다 / 그가 보자 눈길을 돌렸다

응시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 자꾸 바라볼 뿐이었다 / 그대로 볼 뿐이었다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 바깥을 보았다 / 바깥을 바라보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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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62. 비슷한말, 같은말, 다른말

― 저마다 즐겁게 쓰는 말



  한국말사전에는 ‘비슷한말’이 올림말로 나옵니다. 다만 이 낱말은 올림말로 나오되 ‘같은말’이나 ‘다른말’은 아직 올림말로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한자로 된 올림말’로는 ‘유의어(類義語)·동의어(同義語)·반의어(反義語)’가 있어요. 이밖에 ‘유어’와 ‘대어·대의어·상대어’ 같은 올림말도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한자로 엮은 ‘유의어’하고 ‘유어’는 올림말로 다룹니다. ‘반의어’에다가 ‘대어·대의어·상대어’까지 올림말로 다루고요. 이러면서 한국말로 쉽게 알아들을 만한 ‘같은말’이나 ‘다른말’은 올림말로 안 다루지요. 이밖에 ‘닮은말’도 올림말로 안 다루고요. 한국말을 다루는 사전이 너무 좁다고 할 만합니다.


  제가 낸 책은 어떤 사전일까요? 말 그대로 비슷한말 사전입니다.  ‘동의어 사전’이 아니지요. 저는 ‘같은말(← 동의어)’이 아니라 ‘비슷한말(← 유의어)’을 다루는 사전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를 잘못 헤아린 나머지 동의어 사전이라고 말씀하는 분이 있습니다.


  ‘비슷한말’이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워낙 널리 쓰기 때문에 사전에 올림말로 실릴 만합니다. 그리고 다른 낱말, 이를테면 ‘같은말’이나 ‘다른말’도 사람들이 널리 쓰니, 이런 낱말도 머잖아 올림말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알맞게 살리고 즐겁게 살리며 아름답게 살리는 말이라면, 바로 이러한 낱말을 학자가 잘 알아채면서 사전에 담을 수 있으면 좋을 테고요.


  여기에서 더 헤아려 본다면, ‘비슷한말’이라는 낱말을 즐겁게 쓸 수 있듯이 ‘비슷한책’이나 ‘비슷한노래’나 ‘비슷한꿈’이나 ‘비슷한삶’이나 ‘비슷한글’ 같은 낱말도 재미나게 지어 볼 만합니다. ‘닮은-’을 앞가지로 삼아서 새 낱말을 지어 볼 수도 있어요. ‘닮은-’을 앞가지로 삼은 낱말로는 ‘닮은꼴’이 있어요. 이밖에 ‘닮은얼굴’이나 ‘닮은사람’이나 ‘닮은글’이나 ‘닮은일’이나 ‘닮은곳’ 같은 낱말도 얼마든지 쓸 만하리라 느껴요.


  생각을 담는 그릇이 말이에요. 생각을 살찌우거나 북돋우도록 새로운 말을 넉넉히 지을 수 있는 기틀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굳은 틀에 갇히는 말이 아니라, 야무지고 튼튼하면서 너른 품으로 어루만지는 슬기로운 기틀이 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서로 ‘비슷한마음·비슷한생각’이나 ‘닮은마음·닮은생각’이 되곤 합니다. ‘한마음’이나 ‘한뜻’이 되기도 하지만, 꼭 같은 마음인 한마음까지는 아니되, 서로 많이 비슷하다면 ‘비슷한마음’이 되지요. 어쩌면 이렇게 같다고 할 만한 모습일까 싶으면 ‘닮은마음’이고요.


  저마다 즐겁게 쓸 수 있는 말일 때에 저마다 즐겁게 가꿀 수 있는 생각입니다. 말도 생각도 삶도 모두 즐겁게 가꾸면서 너른 사랑과 꿈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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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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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1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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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61. 우리가 ‘말’로 ‘생각’을 나타내는 뜻

― 알맞게 나누는 ‘표현·이해’는 무엇일까


[수수께끼] 궁금한 것이 있어요. 많은 ‘교수’들이 ‘권위적·강압적’과 같은 ‘-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제가 저런 말을 많이 쓰는 ‘교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면, 저런 한자말이 가르치는 데 빠른 ‘이해’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자말을 너무 ‘남용’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우리말이 주는 맛을 모르고 ‘무분별’하게 한자말을 쓰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 대부분 한자말을 적당히 쓰고 ‘이해’하는 것에 서로 어느 정도 ‘약속’이 되어 있어서, 적당한 한자말이 ‘표현’과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우리말을 쓰는 것도 좋지만, 저런 교수님들이 하는 ‘강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말로 생각을 나타냅니다. 말을 쓰지 않는다면 눈짓이나 손짓이나 몸짓으로 생각을 나타냅니다. 눈짓·손짓·몸짓을 쓰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생각을 나타내요. 자, 이러한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눈짓·손짓·몸짓으로 생각을 나타낼 적에는 ‘어떤 말’을 쓰는 셈일까요? 이때에 우리는 한국말이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그저 ‘생각’을 나타낼 뿐입니다. 마음으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다고 할 적에도 ‘마음’을 읽거나 밝힐 뿐이고, ‘마음’에 ‘생각’을 남아서 뜻을 주고받는 셈입니다.


  ‘말’을 쓰는 까닭은 바로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을 곧바로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힘을 잃었다고 할 수 있기에 말을 빌어서 마음을 나타낸다고 할 만해요.


  나라나 겨레마다 말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말만 다를 뿐 생각이나 마음은 같습니다. ‘돌’이나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름)’은 나라나 겨레마다 모두 다를 테지만, 돌이나 나무를 바라보는 생각이나 마음은 같아요. 그래서 눈짓·손짓·몸짓으로 ‘그려서’ 얼마든지 ‘마음 나타내기’하고 ‘마음 읽기’를 해요.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연장’이나 ‘그릇’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내는 연장이거나, 생각이나 마음을 담는 그릇이지요. 어떤 연장이나 그릇을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영어라는 연장이나 그릇을 써서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고, 프랑스말이나 네덜란드말이나 포르투갈말이나 일본말이라는 연장이나 그릇을 써서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낼 수 있어요.


  그러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말을 쓸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생각이나 마음을 슬기롭게 나타낼까요? 아니면, 허울로는 ‘한글’이지만, 이 한글(글)이라는 또 다른 ‘연장’이나 ‘그릇’에 ‘한국말답지 않은 말’을 끌어들여서 생각이나 마음을 그냥저냥 나타낼까요?


  번역투라는 ‘연장·그릇(말)’을 빌어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여느 사람은 못 알아들을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라는 ‘연장·그릇(말)’을 빌어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라고 하면 될 테지만, 누군가는 굳이 영어로 ‘포토’라고 말하면서 사진강의를 해요. 요새는 ‘글’이라 말하지 않고 ‘텍스트’라는 영어를 써야 뭔가 비평이 된다고 여기는 지식인이나 작가나 비평가도 많아요. 그런데 어떠한 말짓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우면서 정갈한데다가 곱기까지 한 말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연장·그릇(말)’을 골라서 쓰든 모두 ‘나 스스로 고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고르는 길은 내 ‘넋’을 이루고 내 ‘삶’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흔히 쓴다’고 하기에 나도 그 말을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좋든 나쁘든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흔히 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구태여 똑같이 안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나쁘든 좋든 말이지요. 그래서 온누리 어느 나라에나 고장말(사투리)이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은 자리에서 길어올린 말이 바로 ‘고장말(사투리)’입니다.


  대학교나 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말은 ‘표준말’이나 ‘서울말’이나 ‘학문말’이나 ‘글말’입니다. 이러한 말도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옳거나 좋은 말이 아니고, 그르거나 나쁜 말이 아닙니다. 그저 ‘의사소통을 하는 연장이나 그릇’으로 삼는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학교나 수많은 학교를 비롯해서, 지식이나 학문을 다루는 이들은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그릇’을 단단히 붙잡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운 그 울타리(학문 체계)에 그들이 들어서기까지 ‘그 울타리에 깃든 그릇’이 되는 말을 달달 외워서 그 울타리에 깃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득권·권력’이라고 하겠지요. 기득권이나 권력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어렵게 쌓아올린 기득권이나 권력을 모든 사람이 아주 손쉽게 차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말은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 갇히기 마련입니다. ‘그 울타리에서 쓰는 말’이 어려운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번역투이든 일본 한자말이든, 그 울타리 안쪽에서는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그 울타리를 지키려고 ‘그 울타리 말’로 ‘기득권을 감싸는 의사소통’만 할 뿐입니다. 이러면서 ‘기득권을 감싸는 의사소통’을 가리켜 ‘전문용어·학술용어’라는 이름을 살며시 붙여요.


  ‘권위적’이나 ‘강압적’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그들한테 이 말이 익숙하기 때문이고, 그들 스스로 이 말에서 더는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지어서 새로운 말을 쓰려는 마음이 없으니 어느 한 가지 말에서 멈추거나 고이고 말아요. ‘권위적·강압적’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써야 ‘의사소통·표현·이해’가 더 잘 되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말만 알고 이런 말로만 생각하고 이런 말로만 삶을 바라보려고 할 뿐입니다. ‘그 울타리에 걸맞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곳(학교나 강단이나 사회나 정치)에서는 ‘의사소통·표현·이해’라는 말을 쓸 테지만, 어느 곳에서는 ‘의사소통·표현·이해’라는 말이 없이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누고 ‘말하기’를 하며 ‘알아듣기’를 합니다. 힘을 내세우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니 ‘권위적’이나 ‘강압적’이 됩니다. ‘말’도 얼마든지 ‘권력’이 되기 때문에 ‘권위적·강압적’ 같은 말마디로 ‘울타리 감싸기를 하는 권력’을 그대로 이으려 합니다. 그들하고 똑같이 권력을 물려받거나 이어받을 생각이라면 우리도 그들하고 똑같은 ‘권위적·강압적’ 같은 말을 쓰면 되고, 우리는 그들과 달리 새로운 마음이 되고 새로운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삶·살림·사랑을 이루려 한다면, 이제부터 새로운 말을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쓰면 됩니다. 다만, ‘새로운 말’도 ‘지식 권력’이 되지 않도록 ‘누구나 즐겁게’, 그러니까 그야말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누구나 즐겁게 알아듣고 나눌 수 있을 만한 ‘새로운 말’이 될 때에 비로소 ‘권력 아닌 삶을 짓는 말’이 될 만합니다. 2016.4.2.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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