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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0. 작은 집, 작은 아이
― 생각을 키워 빛내는 말

 


  여섯 살 큰아이 긴치마를 한 벌 사려고 읍내로 마실을 갑니다. 어여쁜 옷과 신을 알뜰히 갖춘 옷집으로 갑니다. 큰아이는 알록달록 빛나는 옷보다 하얀 바탕에 꽃무늬 깃든 긴치마를 좋아합니다. 한 벌 골라서 장만합니다. 옷집 일꾼은 비닐가방에 옷을 담아서 줍니다. 비닐가방에는 ‘little house’라는 이름이 적힙니다.


  어른 옷을 파는 곳이든 아이 옷을 파는 곳이든, 한국말로 이름을 지어서 붙인 데가 매우 드뭅니다. 으레 영어로 이름을 짓고, 아예 알파벳으로 이름을 적습니다. 더 돌아보면, 양말 만드는 회사도, 신발 만드는 회사도 거의 영어 이름이요 알파벳 이름입니다. 한국말로 이름을 지어 한글로 이름을 적는 데가 퍽 드물어요.


  새 긴치마를 얻어 빙글빙글 웃는 큰아이가 손에 쥔 ‘little house’라는 이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말로는 “작은 집”입니다. 옷 만드는 회사에서는 “작은 집”처럼 수수하고 쉽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어요. “작은 마을”이라든지 “작은 아이”라든지 “작은 마음”이라든지 “작은 사랑”이라든지 “작은 누리”라든지 “작은 햇살”이라든지 “작은 나무”와 같은 이름도 좋아요. 이렇게 한국말로 수수하게 이름을 지어서 붙인 자그마한 회사가 틀림없이 몇 군데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작은 빵집”이나 “작은 밥집”이나 “작은 신집”이나 “작은 (구멍)가게”라는 이름 쓰는 데가 한 군데쯤은 있지 않을까요.


  천종호 님이 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라는 책 281쪽을 보면 “철수가 이곳에서 쉼과 회복을 얻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들이 되기를”과 같은 글월이 나와요. 글쓴이는 “쉼과 회복(回復)”을 말하는데, 요즈음 떠도는 말로 하자면 ‘힐링(healing)’이겠지요. ‘힐링’이란 “마음 치유(治癒)”를 뜻해요. ‘치유’는 다시 “치료(治療)”를 뜻하고, ‘치료’는 “아픈 데를 낫게 함”을 뜻해요. 처음부터 영어만 쓴다면 그냥 ‘힐링’일 텐데, 이 영어를 쓰기 앞서 ‘치료’나 ‘치유’라는 한자말이 여러모로 쓰였어요. 그리고 이 한자말을 쓰기 앞서는 “아픈 마음을 낫게 하는 일”이란 ‘쉼/쉬기’였으니 ‘쉰다’고 했고, ‘마음씻기’나 ‘마음씻이’ 같은 말을 썼어요.


  예부터 한겨레는 ‘씻김굿’을 했고 ‘호미씻이’나 ‘책씻이’를 했습니다. 이 같은 삶을 헤아리면 ‘마음씻이’뿐 아니라 ‘넋씻이’라든지 ‘아픔씻이’ 같은 새 낱말 얻을 수 있어요. ‘상처씻이’나 ‘생채기씻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슬픔씻이’나 ‘눈물씻이’를 떠올릴 만하고, ‘몸씻이’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누리는 삶을 돌아보며 이러한 삶을 잘 드러낼 낱말을 떠올립니다. 아플 때에는 어떻게 아픈가를 헤아리면서, 이 아픔을 어떻게 가시도록 하는가를 살핍니다. 곰곰이 헤아리고 찬찬히 살피면서 가장 알맞으며 따사로운 낱말을 떠올립니다.


  김영희 님이 쓴 《엄마를 졸업하다》(샘터,2012)라는 책을 봅니다. 236쪽에서 “책이 없을 때는 읽었던 것을 읽고 또 읽으며 되새김질 독서를 했다.” 같은 글월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재독(再讀)’이나 ‘삼독(三讀)’처럼 말하는 분도 있으나, 손쉽게 “또 읽다”라 말하면 돼요. “다시 읽다”나 “거듭 읽다”라 말해도 되고, “되새김질 읽기”라 말해도 되지요. 빨래를 하거나 도자기를 구울 적에 ‘애벌’과 ‘두벌’이라고 말해요. 책읽기에서도 이 낱말을 받아들여 ‘애벌읽기’와 ‘두벌읽기’와 ‘세벌읽기’처럼 쓸 수 있습니다. 한글 자판에 두벌식과 세벌식 있잖아요. 생각을 더 이으면 ‘애벌찾기·두벌찾기’, ‘애벌듣기·두벌듣기’, ‘애벌사랑·두벌사랑’, ‘애벌밥·두벌밥’, ‘애벌놀이·두벌놀이’처럼 차츰차츰 쓰임새를 넓힐 만합니다.


  어느 말이든 스스로 쓰면서 익숙해요. 즐겁게 쓰는 말이 즐겁게 녹아들어요. 사랑스럽게 듣고 쓰는 말은 사랑스럽게 젖어듭니다. 기쁘게 나누는 말은 기쁘게 다가오지요.


  생각을 키울 때에 빛나는 말입니다. 생각을 키우면서 빛내는 말입니다. 어린나무 한 그루를 심어 꾸준히 돌보면 우람하게 자라 좋은 그늘을 드리우고 예쁜 꽃을 피우며 맛난 열매 베풀어요. 작은 씨앗 한 톨을 심어 천천히 아끼면 곧 싹이 트고 줄기가 오르며 고운 빛 베풀어요. 나무를 심듯 생각을 키워 말을 빛냅니다. 씨앗을 심듯 생각을 북돋아 말을 가꾸어요.


  아이들 옷 만드는 회사를 비롯해서, 아이들 책 만드는 회사에서는 “작은 집”이나 “작은 사랑” 같은 이름 아리땁게 쓸 만합니다. “큰 집”이나 “큰 사랑” 같은 이름을 써도 아름답습니다. “작은 아이 큰 마음”이라든지 “작은 사랑 큰 웃음” 같은 이름을 써 볼 수 있어요. 이름을 띄어서 적을 수 있고, 이름을 붙여서 “큰마음 작은아이”라든지 “큰사랑 작은꿈”처럼 적을 수 있어요. 즐겁게 부를 이름을 즐겁게 지을 때에 빛나고, 기쁘게 나눌 이름을 기쁘게 붙일 때에 환합니다. 조그마한 이름 하나에도 우주가 깃든다고 할 테니, 이름 몇 글자는 무척 값있고 뜻있어요.


  그러고 보면, 예부터 한겨레는 냇물이 작으면 ‘작은내’라 했고, 냇물이 크면 ‘큰내’라 했어요. 골짜기나 멧골이 깊거나 크면 ‘큰골’이라 했고, 작다 싶으면 ‘작은골’이라 했습니다. 또 ‘고을’을 줄여 ‘골’이라고도 하고, ‘마을’을 줄여 ‘말’이라고도 했기에, ‘큰골’과 ‘큰말’ 같은 땅이름도 있습니다. ‘한터’나 ‘한밭’이나 ‘한벌’ 같은 땅이름에서 ‘한’도 ‘크다’를 뜻해요.


  우리 집 작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작은 아이들은 작은 손을 놀려 작은 연필을 쥐고는 작은 공책에 작은 글씨로 작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눈망울로 작은 사랑을 밝힙니다. 어른과 어린이가 나란히 서면 어린이 키는 작아요. 크기가 작으니 작다고 합니다만, 둘은 똑같은 숨결이요 삶입니다. 어른 둘이 나란히 설 적에 키가 작은 사람 있을 텐데, 둘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이며 사랑이에요. 땅덩이 큰 나라이든 작은 나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삶터예요. 굳이 ‘작은숲’이나 ‘작은누리’처럼 이름을 붙인다면, 스스로 다소곳하게 서며 이웃을 살며시 높이는 한결 깊은 넋과 사랑을 보여주는 셈이 되리라 느껴요.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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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4. 마음을 사로잡는 빛깔
―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말

 


  지난해에 못 본 꽃을 올해에 구경합니다. 그러께에 못 본 꽃을 올해에 새롭게 구경합니다. 이제껏 못 본 꽃을 올해에 비로소 구경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죽 보기는 보았지만, 이름을 몰라서 못 알아챈 꽃이 있습니다. 여태 으레 스치기는 했으나, 눈여겨보지 않아서 못 보았다고 생각하는 꽃이 있습니다.


  올해 오월 우리 집 꽃밭에서 피어나는 노란붓꽃 바라봅니다. 마을 곳곳에는 오월 첫머리부터 붓꽃이 피었으나, 우리 집 꽃밭에서는 오월 저물 무렵 드디어 붓꽃이 핍니다. 우리 집 동백나무도 마을 동백나무보다 보름쯤 늦게 꽃송이 환해요. 볕이 살짝 적게 드니까 꽃도 살짝 늦구나 싶은데, 마을 다른 나무와 풀이 꽃을 일찍 피우면 그만큼 꽃이 일찍 집니다. 우리 집 나무와 풀이 꽃을 늦게 피우면, 그만큼 더 오래 한결 느긋하게 꽃을 누려요.


  아이들과 이웃마을로 자전거 타고 나들이를 가다가, 어느 빈집 앞에서 우뚝 섭니다. 아이들 모두 자전거에서 내리라 하고는 빈집으로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이 빈집에는 창포가 무리지어 자라거든요. 집은 빈 지 열 해 가까이 되었다는데, 예전 살던 사람이 심어서 가꾼 창포는 열 해 가까이 스스로 씩씩하게 피고 지면서 씨앗을 맺어요. 우리 식구는 지난해와 그러께 이 빈집에서 창포씨 얻어서 곳곳에 뿌리기만 했지, 아직 창포꽃은 못 보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창포꽃 노란 송이송이 잔치마당 마주합니다.


  한참 노란창초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우리 집 노란붓꽃하고 서로 많이 닮았구나 싶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우리 집 꽃하고 견주니, 붓꽃과 창포가 어떻게 다른 줄 알겠습니다. 사진으로만 살필 때에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면서 헤아립니다.


  우리 집 여섯 살짜리 큰아이는 충청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머니하고 언젠가 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꽃 좋아해요?” “나? 나는 노란 꽃. 벼리는?” “벼리는 빨간 꽃.” 이날 뒤로 여섯 살짜리 큰아이는 길을 가며 노란 꽃을 볼 때마다 말합니다. “아버지, 저기 봐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란 꽃이다. 그치?” “아버지, 저기요. 벼리가 좋아하는 빨간 꽃 있네.”


  네 식구 함께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새롭게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앞서까지 시골들과 시골숲에서 어떤 꽃과 풀이 피고 지며 시들다가 새롭게 피어나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책 많이 읽고 도감 많이 살피며 이야기 많이 들었대서 알 수 없어요. 몸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봄부터 여름과 가을 지나 겨울을 나며 가만히 꽃을 생각합니다. 시골들과 시골숲에서 스스로 나고 지는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노란 꽃’이 매우 많아요. 거의 다 노란 꽃이라 할 만해요. 숲에서 나고 지는 나무꽃 말끄러미 쳐다보면, 나무꽃은 ‘푸른 꽃’이 아주 많아요. 이를테면, 느티나무 느티꽃은 오롯이 풀빛입니다. 초피나무 초피꽃도 옹글게 풀빛이에요. 사철나무도 뽕나무도 꽃송이는 풀빛입니다. 투박하고 못생겼다 하는 모과나무 모과열매인데, 모과꽃은 옅게 볼그스름합니다. 분홍이라 말하기에는 분홍하고는 좀 다른 모과꽃빛인데, 옅은 볼그스름한 빛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지 싶어요. 살구꽃과 배꽃과 능금꽃과 복숭아꽃도 그래요. 이 꽃들 바라보며 빛깔말 섣불리 못 씁니다. 앵두꽃과 딸기꽃과 탱자꽃과 찔레꽃을 바라볼 적에도 그렇지요. 앵두꽃 빛깔은 ‘앵두꽃빛’ 아니고는 나타내지 못하겠어요. 찔레꽃 빛깔을 그냥 ‘흰빛’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요. ‘찔레꽃빛’이 가장 걸맞아요.


  배우 김남주 님이 쓴 《김남주의 집》(그책,2010)이라는 책을 읽다가 215쪽에서 “요즘에는 옐로, 레드, 오렌지 등 다양한 원색의 페이턴트 소재는 물론이고” 같은 글월을 만납니다. 책을 살짝 덮습니다. 눈을 조용히 감습니다. 김남주 님은 이녁 아이들 낳아서 돌보는 자리에서도 “옐로, 레드, 오렌지” 같은 빛깔말 살그마니 이야기하겠지요. 김남주 님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옐로, 레드, 오렌지” 같은 낱말을 익숙하게 들을 뿐 아니라, 입으로도 말하겠지요.


  우리 집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서 ‘노란 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할머니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이라서 ‘빨간 꽃’을 말하지 않아요. 노란 꽃송이 아름다우니까 ‘노란 꽃’이라 말합니다. 빨간 꽃송이 어여쁘니까 ‘빨간 꽃’이라 말해요. 나는 찔레꽃이 하얗게 빛나기에 ‘하얀 꽃’이라 말하지만, 하얗다는 낱말만으로는 모자라다 여겨 ‘찔레꽃빛’을 생각합니다. 딸기꽃도 하얀 꽃송이로 빛나는데, 딸기꽃이랑 찔레꽃을 나란히 바라보면 두 흰꽃은 사뭇 다른 흰빛이기에 딸기꽃한테는 ‘딸기꽃빛’이라는 이름을 붙여 봅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고픈 말을 헤아리면서 ‘노랑, 빨강, 살구빛’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른인 나 스스로 노란 빛깔 보면서 ‘노랗다’ 하고 말합니다. 살구빛이로구나 싶어 ‘살구빛’이라 말합니다. 파란 빛깔 볼 적에는 ‘파랗다’ 하고 말하며, ‘쪽빛’이라고도 말하며, 때로는 ‘현호색빛’이라고도 말합니다. 어느 날에는 ‘짙은하늘빛’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늘빛은 낮과 밤이 달라 ‘낮하늘빛’과 ‘밤하늘빛’이 다르지요. 검정도 그냥 ‘검정’이라 말할 때하고 ‘밤하늘빛’이라 말할 때에는 다릅니다. ‘까마중 열매빛’이라 말할 때에도 또 달라요. 어느 때에는 ‘그림자빛’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삶이 생각을 빚습니다. 생각은 다시 삶을 빚습니다. 삶이 생각을 빛냅니다. 생각은 새삼스레 삶을 빛냅니다. 삶이 흐르면서 말이 하나둘 태어납니다. 생각을 북돋우면서 말을 하나둘 낳습니다.


  ‘예쁜이’라는 낱말은 예쁜 사람 가리키고 마주하면서 저절로 태어납니다. ‘고운이’라는 낱말은 고운 사람 만나고 사귀면서 시나브로 태어납니다. 누군가는 ‘멋진이’ 되고 누군가는 ‘사랑이’ 됩니다. 누군가는 ‘착한이’ 되며 누군가는 ‘꿈이’ 됩니다. 누군가는 ‘바른이’ 될 테고 누군가는 ‘믿음이’ 되겠지요.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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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3. 꽃말과 사랑말
― 삶과 마음을 가꾸는 말

 


  제비꽃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지성사,2013) 을 읽다가 33쪽에서 “운동회 날에는 달리기, 오자미 놀이, 기마전 같은 단체 경기에서” 같은 대목을 봅니다. 책을 가만히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책을 쓴 분은 ‘오자미’라고 적는데, 나는 어릴 적에 ‘오재미’라고 말했어요. 1982∼1987년에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 쓰던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사와 둘레 어른은 으레 ‘오재미’라 했어요. 그무렵에는 ‘오재미·오제미·오자미’ 같은 낱말이 사투리처럼 조금씩 달리 쓰는 말인 듯 잘못 듣고 잘못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오재미’를 마련해서 하나씩 가져오라 할 때마다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속에 콩이나 쌀을 넣으라’ 했어요. 천주머니에 콩을 넣으면 ‘콩주머니’인 셈입니다. 모래를 넣으면 ‘모래주머니’ 되고, 쌀을 넣으면 ‘쌀주머니’ 돼요. 지난날에는 먹고살기 어렵던 가난한 집들 많아, 천주머니에 콩이나 쌀을 못 넣기 일쑤였어요. 동무들은 학교 운동장 한쪽을 파서 모래를 담고는 교실에서 바느질을 해서 모래주머니를 내놓곤 했어요.


  콩이나 쌀 아닌 모래 넣은 주머니를 내면, 교사들은 아주 싫어했어요. 모래 담은 천주머니는 몇 번 던지면 가는 모래가 술술 빠져나오며 못 쓰게 되었거든요.


  그나저나, ‘오재미’이든 ‘오제미’이든 ‘오자미’이든 모두 일본말이에요. 일본에서는 콩을 넣은 주머니를 던지며 노는 ‘お手玉(오테다마)’가 있다고 해요. 이 ‘오테다마’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말꼴이 살짝 바뀌었어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오자미’라 쓰지 말고 ‘놀이주머니’로 고쳐쓰라 나와요. 그런데, 정작 국어사전 올림말로 ‘놀이주머니’도 없고 ‘콩주머니’도 없어요. 올바로 고쳐쓸 한국말을 외려 안 싣고, 일본말만 실은 국어사전이에요.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펴봅니다. 아직도 ‘리어카’나 ‘바께쓰’나 ‘오라이’ 같은 일본말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 퍽 많아요. ‘손수레’나 ‘양동이’나 ‘좋아’ 같은 한국말을 써야 알맞고 바르며 고운 줄 못 깨닫는 분 꽤 많아요. 때로는 한국말이 맛이 안 난다 여기며 일본말을 쓰기도 해요. 한국말 ‘병따개’로는 병을 따는 맛이 안 나고, ‘오프너’ 같은 영어를 써야 비로소 병을 따는 맛이 난다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사장에서 일할 적에는 ‘막일’ 아닌 ‘노가다’라는 일본말을 써야 제대로 일하는 줄 여기곤 해요.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을 더 읽습니다. 115쪽에 “제비꽃 종류도 대부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이른바 조춘早春 식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이라 말하다가 “조춘早春 식물”이라 말합니다. 쉽고 알맞게 “이른 봄에 꽃이 피는”이라 적었으면 이대로 글을 마무리지어 “이른 봄에 꽃이 핀다”라든지 “이른 봄에 꽃이 피는 특징이 있다”처럼 하면 되지요. 애써 ‘조춘’이라는 어려운 한자말 끌어들이고서, 다시 한자로 ‘早春’처럼 붙여야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붙이니 말이 어렵고, 뜻이 뒤죽박죽 섞여요.


  학문을 하며 쓰는 낱말로 ‘조춘 식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글월을 헤아리면, 학문을 할 적에도 ‘이른봄 식물’이나 ‘이른봄꽃’처럼 쉽게 새 낱말 빚을 만해요. 더 생각해 보면, 한자말로만 ‘조춘’이라 한 낱말 쓸 노릇 아니라, 한국말로도 ‘이른봄·이른여름·이른가을·이른겨울’처럼 쓸 수 있어요. 국어사전에는 ‘첫봄·첫여름·첫가을·첫겨울’ 같은 낱말 실려요. ‘조춘·조하·조추·조동’처럼 알쏭달쏭한 한자말은 안 써도 즐겁습니다. 아니, ‘조하’나 ‘조동’이라는 낱말이 무엇인지 알 사람은 아주 적어요.


  제비꽃은 이른 봄에 핍니다. 곧, ‘이른봄꽃’입니다. 찔레꽃은 늦은 봄에 핍니다. 곧, ‘늦봄꽃’입니다. 모과꽃이나 탱자꽃이나 붓꽃은 한창 무르익은 봄에 핍니다. 곧, ‘한봄꽃’이에요. 감꽃은 봄이 저물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에 피니, ‘이른여름꽃’ 또는 ‘첫여름꽃’이 됩니다. 바야흐로 가을이나 겨울 다가올 적에 피는 꽃은 ‘가을꽃’과 ‘겨울꽃’ 될 텐데, 철을 더 헤아려 ‘늦가을꽃’이나 ‘첫겨울꽃’ 같은 낱말 새삼스레 빚을 수 있습니다.


  눈은 겨울에 내려 ‘겨울눈’인데 봄까지 내리면 ‘봄눈’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르면 ‘일월눈’이나 ‘이월눈’, 그리고 ‘삼월눈’과 ‘사월눈’처럼 쓸 수 있습니다. 바람을 두고 ‘오월바람’과 ‘유월바람’이라 쓸 수 있어요. 하늘을 놓고 ‘칠월하늘’과 ‘팔월하늘’이라 쓸 수 있고, 비를 가리켜 ‘구월비’와 ‘시월비’라 쓸 수 있어요.


  하루하루 흐르는 삶을 바라보며 말 한 마디 짓습니다. 삶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말을 즐겁게 짓습니다. 즐거운 삶에서 즐거운 말 샘솟는 동안, 내 마음에도 즐거움 샘솟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시나브로 사랑씨앗 한 톨 맺습니다. 내 마음에도 사랑씨앗을 한 톨 심고, 이웃 마음에도 사랑씨앗을 한 톨 심습니다. 알맞고 바르며 아름다운 말로 생각을 가다듬고 삶을 빛내는 사이, 어느덧 내 꿈과 사랑도 알맞고 바를 뿐 아니라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꽃을 생각하니 꽃다운 말이 됩니다. 사랑을 생각하니 사랑스러운 말이 됩니다. 웃음을 생각하니 웃음 넘치는 말이 됩니다. 기쁨을 생각하니 기쁨 가득한 말이 됩니다. 삶을 가꾸듯 말을 가꿉니다. 삶을 가꾸듯 말을 가꾸면서 마음을 나란히 가꿉니다. 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꿉니다. 말을 가꾸는 몸가짐으로 마음을 함께 가꿉니다. 말과 마음을 가꾸면서 저절로 삶을 가꾸고 사랑을 가꿉니다.


  꽃내음 나누려는 마음일 때에는, 내 마음 담아서 나타내는 말마디에 꽃내음 찬찬히 묻어납니다. 사랑빛 함께하려는 생각일 때에는, 내 사랑 드러내려는 말마디에 사랑스러운 빛줄기 곱다시 드리웁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오자미’라는 낱말 파헤쳐 고쳐쓰라 일컫기 앞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여느 어버이와 교사 스스로 고운 넋 담는 고운 말 쓰면서 고운 삶 되기를 빕니다. 학문하는 사람이 전문으로 쓰는 낱말에도 따사롭고 살가우며 넉넉한 숨결 북돋우는 마음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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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9. 봄제비와 봄들꽃
― 고운 생각에서 태어나는 고운 말

 


  제비는 철새입니다. 철 따라 둥지 틀 자리를 새로 찾아서 날아다니기에 철새입니다. 참새는 텃새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한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어 살아가기에 텃새입니다.


  고흥 시골집에 봄날 제비가 찾아듭니다. 지난해에는 4월 봄에 찾아들더니, 올해에는 3월 봄에 찾아들어요. 올해에는 참 일찍 오는군요. 왜 이리 일찍 오는가 알쏭달쏭합니다. 이 나라 날씨가 차츰 따스해지니까, 아니 더워지니까, 제비도 일찍 찾아올까요.


  아침에 째째째째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제비가 찾아온 줄 깨닫습니다. 지난해에는 들마실을 하며 제비 날갯짓을 처음 만났고, 올해에는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 지난해 알을 깐 제비 세 마리가 노니는 모습을 보며 제비 노랫소리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래, 이제 너희가 이곳에서 짝을 찾아 알을 낳고 새끼 돌보려 한다면, 똥받이를 달아야겠구나.


  제비가 둥지에서 새끼들 똥을 받아 밑으로 버리니, 똥을 받아낼 나무판을 대야 합니다. 제비똥 받는 나무판이니, 말 그대로 똥받이입니다. 똥받이를 대지 않으면, 처마 밑은 온통 똥바다가 돼요.


  제비가 봄에 찾아오니, 봄철을 일컬어 제비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비가 찾아드는 이맘때는 꽃이 바야흐로 피어나는 철이기에, 봄철은 꽃철이라 달리 일컬을 수 있습니다. 재미나게 말을 엮는다면, 봄제비철이나 봄제비꽃철이나 봄꽃철이나 봄꽃제비철처럼 새 낱말 지을 수 있어요. 봄날 봄꽃 마실을 누리는 사람은 봄마실을 하는 셈이요, 봄꽃마실 즐기는 셈입니다. 봄에 피는 꽃이기에 봄꽃이면서, 봄들꽃이라 할 수 있어요. 멧골에서 피는 봄꽃은 봄멧꽃이라 해도 어여쁩니다.


  봄에는 그야말로 온통 봄입니다. 봄바람, 봄꽃가루, 봄구름, 봄하늘, 봄볕, 봄나무, 봄밭, 봄노래, 봄새, 봄아이, 봄놀이, 봄들, 봄바다, 봄밥, ……. 여름에는 여름바람을 비롯해서 여름밥까지 있고, 가을에도 겨울에도 새삼스러운 하루를 누리면서 새로운 이름 하나 얻습니다.


  내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를 지키는 짝꿍은 곁지기이면서 옆지기입니다. 곁에 있어 곁지기요, 옆에 있어 옆지기입니다. 책방을 지키는 일꾼은 책방지기요,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이라면 도서관지기입니다. 나라를 보살피는 일꾼은 나라지기라 할 만하고, 겨레 삶을 북돋우려 하는 일꾼은 겨레지기라 할 수 있어요. 문화를 가꾸는 일꾼은 문화지기요, 교육을 살찌우는 일꾼은 교육지기입니다. 은행지기, 가게지기, 식당지기, 마을지기, 학교지기처럼 ‘-지기’라는 말마디로 말샘을 퍼올리면 즐겁습니다. ‘-지기’를 더 헤아리면, 하늘지기, 흙지기, 시골지기, 사랑지기, 꿈지기, 이야기지기처럼 남다른 지기를 생각할 수 있고, 노래지기, 아이지기, 책지기, 웃음지기처럼 여러 갈래로 생각을 넓힐 만합니다.


  1989년에 처음 나온 《우리글 바로쓰기》(이오덕 씀,한길사 펴냄)라는 책을 찬찬히 되읽습니다. 이 책을 쓴 이오덕 님은 “훌륭한 문학의 업적을 남긴 분도 아이들에게 잘못된 말을 가르쳐 우리 말을 병들게 했을 경우, 그 잘못을 드러내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13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싶은 문학을 일군 분이라 하더라도, 알맞지 못하고 바르지 못하며 슬기롭지 못한 글을 써서, 엉뚱한 글투를 퍼뜨리고 만다면, 이 대목은 나무랄밖에 없어요. 나무라면서 바로잡거나 바로세워야지요. 알맞고 바르며 슬기로운 말과 글이 되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이오덕 님은 “통속적이 아닌 말, 고상한 말을 표준말로 삼는다고 중류사회의 말을 쓰다 보니 농민의 말, 민중의 말은 ‘통속적인 말’로 버림받고, 사전에까지 ‘통속적’이라 풀이해 놓는 것 아닌가(18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여러 차례 되읽고 곱읽으면서 생각을 갈무리해 봅니다.


  봄날 피는 봄꽃 가운데 맨 먼저 피는 꽃은 ‘봄까지꽃’이에요. 늦겨울에 처음 꽃봉오리 터뜨리고, 봄이 저물 무렵 꽃도 저물기에, 참말 봄까지만 피는 꽃이라서 ‘봄까지꽃’이라고 해요. 그러나, 퍽 많은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한테서 식물학 배운 한국 식물학자가 일본 풀이름을 고스란히 옮겨서 퍼뜨린 ‘개불알풀꽃’이라는 낱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라 할 꽃이름을 바로잡자고 여러 사람이 애썼는데, 그만 어느 시인이 ‘봄까지꽃’ 말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봄까치꽃’이라 시에 잘못 쓴 적 있어요. 봄과 까치가 잘 어울려서 ‘봄까치꽃’인 줄 잘못 알았다고 하지요. 이리하여,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꽃이름을 옳게 모르는 채, 오늘날까지 ‘개불알풀꽃’과 ‘봄까치꽃’이라 잘못 쓰는 사람 퍽 많습니다. 언제쯤 봄꽃 이름 하나 살가이 건사할 수 있을까요.


  봄까지꽃이 피고 나면 곁에서 별꽃이 피어요. 별을 닮아 별꽃이라 하는데, 별꽃은 별꽃나물이라 하기도 해요. 별꽃이 피면, 이윽고 코딱지나물꽃이 피어요. 시골사람은 코딱지나물꽃이라 하고, 식물학자는 이런 이름이 ‘통속적’이라 해서 ‘광대나물꽃’이라고 꽃이름을 다르게 붙였어요.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광대나물’이라는 이름만 오르지, ‘코딱지나물’이라는 이름은 못 올라요.


  ‘애호박’은 작은 호박이라서 애호박입니다. 서울에는 애오개라는 데가 있는데, 작은 고개라서 애오개입니다. 그러나, 애오개가 작은 고개인 줄 미처 살피지 못한 예전 지식인들은 ‘아현동’이라고 동네 이름을 한자로 옮겨적으면서 ‘阿峴’이라 붙였어요. 왜 한겨레가 예부터 익히 가리키던 땅이름으로 동네 이름을 붙이지 못할까요. 골안마을, 무너미마을, 한티재 같은 이름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면서, 땅이름을 비롯해서 먼먼 옛날 사람들 넋을 돌아본다면 역사와 문화와 삶을 한결 슬기롭게 돌아볼 수 있을 텐데요.


  고운 생각에서 고운 말이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고운 사랑에서 고운 이야기 자란다고 느낍니다. 먼 옛날 옛적 누군가, ‘풀’, ‘하늘’, ‘보리’, ‘꿈’, ‘아이’, ‘빛’, ‘누리’, ‘무지개’ 같은 낱말을 어떤 사랑으로 지었을까 가만히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사랑 하나로 빚을 새로운 말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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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1. 바람소리와 숨소리
―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치는 사람

 


  시골마을에서는 으레 마루문이나 창문을 열고 하루를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사람 귀를 거슬리는 소리는 웬만해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에, 장사꾼 짐차 알리는 소리, 마을방송 소리, 이런저런 자동차와 방송 소리 있지만, 이들 몇 가지 소리를 빼면 고즈넉한 시골소리 살그마니 스며듭니다. 이를테면,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들새와 멧새가 노랫소리 들려줍니다. ‘새소리’이지요. 문을 열고 바깥바람 들어오도록 하면, 바깥소리 함께 들리는데, 시골마을 감도는 새소리는 한두 가지나 몇 가지 아닙니다. 종달새인가 찌르레기인가 아직 알쏭달쏭하다고 느끼지만, 아마 종달새도 찌르레기도 맞구나 싶은 새소리를 듣고, 뻐꾸기 노래를 들으며, 박새와 동고비 노래를 듣습니다. 노랑할미새 노래를 듣고, 직박구리 노래를 들어요. 제비와 멧비둘기와 까치와 까마귀와 참새도 여러 새소리 사이에 노랫소리 섞습니다. 저녁에는 소쩍새와 휘파람새 노래를 들려주고,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설 무렵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한껏 무르익을 테지요.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지내더라도 마루문을 열지 않으면 새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시골 들판에서 일하고, 시골 밭자락에서 일하며, 시골 숲속에서 마실을 누리지 않으면 새소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시골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버스나 자가용 타고 학교를 오가면, 시골을 온통 채우는 새소리하고 멀어져요. 버스 구르는 소리와 자가용 달리는 소리를 내내 듣겠지요. 버스나 자가용을 안 타더라도 손전화 매만지거나 귀에 소리통 꽂고 대중노래를 들으면, 이때에도 시골소리하고는 멀찍이 떨어질 테고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를 건드립니다. 바람이 동백잎과 동백꽃을 건드립니다. 사월에 흐드러진 풀빛 꽃망울 한가득 터뜨리는 느티나무는 꽃잎과 나뭇잎이 사르락사르락 부대끼면서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느티꽃이 지는 오월되면 짙푸르게 빛나는 느티잎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풀노래 들려주지요. 가을에는 붉게 물드는 잎사귀 얼크러지는 새로운 풀노래 들려줍니다. 철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른 소리예요.


  밭뙈기에 옹크리고 앉아 흙을 만지고 풀을 돌보노라면, 앉은뱅이 나즈막한 꽃대를 건드리는 바람을 쐽니다. 들바람이요 흙바람이자, 봄꽃바람입니다. 가느다란 냉이꽃대 건드리는 봄바람과 굵직한 유채꽃대 흔드는 봄바람은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릅니다. 민들레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딸기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달라요. 탱자꽃 건드리는 봄바람과 찔레꽃 건드리는 봄바람은 또 이대로 소리와 냄새와 빛깔이 다르지요.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어떤 소리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참새는 ‘짹짹’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귀뚜라미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풀벌레 풀노래 소리결 또한 모두 다르며, 어떤 틀에 박힌 글로 적바림할 수 없습니다. 왜가리는 어떤 소리를 내며 울까요? 제비는 어떤 소리를 내며 처마 밑 둥지에 깐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나를까요? 시골마을에 깃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맡아 가르치는 분들은 시골아이한테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어떤 빛깔을 보여주며, 어떤 무늬를 깨닫도록 북돋울까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어떤 소리·모습·빛깔·무늬를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밝힐 수 있을까요?


  강성미 님이 쓴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라는 책을 읽다가, 217쪽에서 “난 속으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는 대목을 보고, 234쪽에서 “어휴, 민주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하는 대목을 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강성미 님은 한숨소리를 아직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 일꾼도 한겨레 한숨소리를 어떻게 적을 때에 알맞은가 하는 대목을 미처 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아예 모르지는 않는 한숨소리예요. 다만,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 드물고, 올바로 이야기하는 어른 찾아보기 힘들며, 저마다 입시공부와 영어공부에 얽매여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는 길은 좀처럼 느긋하게 들려줄 틈이 없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자, 숨을 한 번 들이켜봐요. 어떻게 들이켜나요. 후우우욱 들이켜겠지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겨 봐요. 어떻게 생각에 잠기나요. 으흐흐흐흠 생각에 잠기겠지요. 아이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에 어떤 숨소리 새어나오나요. 아이구, 으이구, 아유, 같은 말이 절로 나오겠지요.


  예부터 한겨레 어느 누구도 숨소리를 잘못 적은 일 없어요. 왜냐하면, 어른들은 이녁 어버이한테서 말을 곱게 물려받았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이녁 스스로 어른 되어 아이들 낳으면 다시 곱게 물려주었어요. 이런 삶을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 이었어요. 이러다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미군정과 한국전쟁과 분단과 온갖 아프고 힘겨운 나날 이어지면서 ‘어른이 아이한테 말 슬기롭고 올곧게 물려주던 삶’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한국과 이웃한 일본에서는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휴’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후유’로 적습니다. 또는 ‘히유’로 적어요. 때로는 ‘어휴’나 ‘아휴’가 되지요. ‘으흠’이나 ‘에헴’처럼 숨소리를 내요.


  아주 조그마한 대목이라 할 숨소리예요. 아주 자그마한 자리라 할 새소리이고 벌레소리예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아주 조그마한 대목 올바로 들려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올바르지 않은 말을 늘 듣고 으레 따라해요. 우리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아주 자그마한 자리 슬기롭고 해맑게 밝혀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한국말하고 자꾸 멀어져요. 집에서부터 어버이 누구나 알맞고 아름답게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포근하고 넉넉한 넋으로 말과 글을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4.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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