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에어컨을 오늘 주문하려고 하는데, 에어컨 주문이 밀려, 오늘 주문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뒤에 설치가 된다고 하며 에어컨이 있는 내가 부럽다는 얘기를 했다.
난 올 5월에 에어컨을 샀다. 돈도 없고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늠이 무슨 에어컨이냐고 하겠지만.. 난 더위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한다. 아니 고통스러워한다. 몸에 유난히 열이 많고, (깔끔하여?) 땀 나는 느낌을 싫어한다.
2001년에 서울에 올라온 뒤로 에어컨을 절대로 틀지않는 아줌마가 운영하는 고시원에서 1년, 짐통같이이 더운 반양옥 자치방에서 2년 여름을 보내면서 "내 기필코 2004년 여름은 절대로 열대야로 잠 못드는 일이 없게하겠다"는 강한 결심으로 빚을 내서라도 에어컨 한 대는 사겠다며 과감히 저질렀다.
일주일간 온 인터넷쇼핑몰과 옥션을 뒤적여 최적의 가격과 조건인, 무이자 6개월로 40여만원짜리 벽걸이 에어컨을 샀다. 지난 2년동안은 동거하는 방돌이 녀석의 반대로 사고 싶었지만 못 샀던 에어컨을 그녀석이랑 찢어졌으니.. 맘 놓고 산 것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불편함을 절대로 못 참고 확 질러버리는 성미...
그런데, 얼마 전 영화 <투모로우>를 보고, <즐거운 불편>이라는 책을 읽고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에어컨을 산 이래로 7월중순까지 에어컨을 가동한 건 모두 합쳐 3시간도 안되었다.(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덥지 않았으므로 웬만하면 참을 만 했고, 그래서 한동안은 에어컨을 괜히 샀다고 후회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주 장마가 끝난 직후부터 오늘까지의 이 더위가 나를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에어컨을 너무너무 잘 샀고, 그것도 성수기가 아닌 5월에 사서 너무너무 싸게 잘 샀고, 미리미리 사 두어서 더울 때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는 달사한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 더운 바람이 확 풍기는 에어컨 세워진 골목길을 지나가면 심각한 불쾌감과 고민에 휩싸였다. <투모로우>를 보고도 에어컨으로 지구 온난화에 일조를 한다면 정말 무뇌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난 회사에서도 '찬 바람을 뿜어라 에어컨아! 더 빵빵하게 찬바람을 뿜어내라~'고 주문을 걸고, 집에와서도 10분 에어컨, 20분 선풍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난 왜 이리 악행을 하고 있는걸까?
고민.. 고민.. 골목길을 걸어오면서 계속 고민! 하지만, 집에 도착한 나의 첫번째 행동은 에어컨 리모콘의 '운전'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아~ 너무너무 시원하다'. 그래! 어떻거니 저떻거니해도 시원한게 좋다. 내일 빙하기가 닥치더라도 난 에어컨으로 1도를 낮춘다.
하지만 에어컨을 사랑한 죄로 빙하기라는 하늘의 죄를 나 자신이 받아도 싸지만, 에어컨을 가동한 것과 전혀 상관없는 선량한 다수의 지구인들게까지 재난을 닥치게 할 수는 없는데... 큰 일이다. 큰 일..
어제도 나, 남동생, 사촌동생, 거기다가 오랜만에 서울 구경하려 갑자기 올라온 여동생까지 넷이서 좁디 좁은 방안에서 어깨를 붙이고 자면서 '에어컨이 가져다준 (불행한) 행복'을 만끽했다. 이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어찌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며, 지구의 불행을 가속시키는 일에 스스로 변명하며, 잠깨는 일 없이 잤다.
'당장은 즐겁지만 먼 불행을 자초하는 편리함'과 '당장은 괴롭지만 행복을 약속하는 불편'. 나의 실패 중인 다이어트도 이런 이치를 그대로 반영하겠지.
하지만 이 글도, 더운데 컴퓨터로 더 덥게 만들면서, 또 에어컨을 틀면서 쓰고 있다. 아... 오늘은 이만 에어컨을 끄고 더워에 잠 설치며 뒤척여야하나? 어떻해야하지.. ㅠ.ㅠ 머리로 아무리 잘난 생각을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쯤되면 <투모로우>와 <즐거운 불편>을 보지않는 삶을 사는게 나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또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는 것도 죄'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에어컨을 꺼야하나 말아야하나 가뜩이나 헷갈리는 마음에, 앎과 실천이란 무엇인가, 지구를 살릴 것인가 줄일 것이가하는 겉잡을 수 없는 생각으로 더 심란해진다. 아.. 덥다.. 더워.. 쯧쯧... 내 인생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