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뒤로 상수는 혼자 쓸쓸히 거리를 걷거나 새벽 네다섯시에 깨어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있을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좌석의 사람들이 크게 웃거나 자기들끼리 뭔가에 대해 열의있게 대화할 때그 가을의 오후가 떠올랐다. 자신을 그렇듯 풍성하게 하던 감정이어느 임시직의 계약종료와 함께 간편하게 사라져버린 데 대해. 그러면 늘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시작도 진행도 종료도 모두 마음의 일이었는데 그 마음을 흐르게 한 동력은 자가발전이 아니었다는 것,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것만은 분명했다. 조교와 상수 사이에 있던 위계가 일종의 권력의 위치에너지를 생산해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런 상수의 분석은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이로웠는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특정한 상실감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단번에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말끔하게, 이를테면 고속도로 같은 것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그 길의 끝이 이제 막 도로를 포장한 콜타르의 냄새처럼 고약한 냉소와 허무 그리고 자기를 감싸는 모든 감정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상수가 실감했던 그 숱한 감지드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
"수능시험 날 졸리면 안되니까 늦잠 버릇 이제부터 꼭 고치시고요. 단백질, 비타민 같은 거 챙겨 먹고요."
조교는 그런 조언과 시험 잘 보라는 격려를 마지막으로 상수의시야에서 멀어졌다. 오함마처럼 단단한 그 몸이 멀어질수록 상수의마음은 봉쇄되는 기분이었다. 가을을 맞은 운동장에는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들이 축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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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늦었습니다."
이윽고 침묵을 이기지 못해 상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조교는 그런 상수를 바라보다가 "우리 뭐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상수는 ‘다‘나 까로 끝나지 않는 그 생경한 어미의 문장을 마음 속으로 한번 되새겨보았다. 있었어요? 하는, 상수도 쓰고 상수의친구들과 강사들도 다 쓰지만 유독 이 오함마 같은 남자는 쓰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청량한 문장을.
"제가 지각을 했거든요."
그러자 조교는 상황 판단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이 운동장에서 내내 열띠게 진행되었던그 작업에 착수해볼까 하면서 상수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순간,
조교가 상수에게 "이제 안해요. 제가 계약이 끝났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는 왜 그런지 좀 말갛게 웃었는데 그때야 비로소순박하고 천진하고 어딘가 세상일에 좀 심드렁한, 깃털처럼 가벼운이십대의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상수는 뭔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끝났다고요, 선생님?"
"수능 삼주 남기고 누가 얼차려를 받습니까. 저도 뭐 임시직이었고요."
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강도로 자기를 다그치고 닦달했던 상태가 그냥 기숙학원과의 계약이 끝나면 사라지는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대체 자기를 그렇게 조련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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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상수는 경애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흐트러지고 느슨해진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묶인 사람처럼 최소한의 동작, 최소한의 말, 최소한의 공간 만 차지한 채 사무실에서의 시간을 견디던 경애는 이제 책상 앞에 앉아 바나나나 과자 따위의 간식을 먹으며 여느 회사원들이 그러 듯 일상을 들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편안해지고 과세화되듯 지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남들처럼 사는 것이어, 수금이 되면, 좋네요, 하고 엄지손가락을 척 추켜올리고, 야근할 일이있으면, 짜증 지대로 아닌가요, 하고, 상수가 외근을 나갔다 오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슬며시 끄곤 했다. 상수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경애는 언제나 아무것도라 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하면 어떡합니까? 일을 해야지."
"일은 늘 하니까 특별한 뭘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상수는 그런 경애의 일종의 태업을 반가워하고 있었다. 무엇보 다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언제 책잡혀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을 덜한다는 뜻이었고 상사인 자신을 믿는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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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과학의 경계 학자들은 토론할 때 ‘SF‘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SF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두 단어의 영문 약자였다. 이것은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하고 모두 우주규칙의 본질과 관련된다.

‘저격수 가설‘은 저격수가 과녁에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과녁의 평면에 2차원 지능의 생물이 살고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과학자가 자신의 우주를 관찰한 결과 우주에는 10센티미터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격수가 잠깐 흥에 겨워 아무렇게나 한 행위를 자신들 우주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본 것이다.

농장주 가설‘은 공포스러운 색채를 띤다. 한 농장에 칠면조 무리가 있다. 농장주는 매일 오전 11시에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 중의 과 학자가 이 현상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1년여 동안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매일 오전 11시에는 먹이가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 했다고 생각하고는 추수감사절 새벽에 칠면조들에게 이 법칙을 공표한 다. 그러나 그날은 오전 11시가 되어도 먹이가 나타나지 않고 농장주가들어와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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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강의들 성말 잘 들으셨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종교를 논할 수 없고, 근대정신을 논할 수 없어요. 종교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테마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없어도 인간은 종교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요. 인간의 종교적과제는 산적해 있어요."

무아의 종교불교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시다. 4법인에 의하면 그 하나님은반드시 "무아" 이어야 합니다. 자기동일성 즉 자성自性이 없는 하나님이어야만 하죠. 이렇게 되면 이론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사실 무신론이란 황제신론을 진실한 신론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하죠. 4법인만큼 우주의 진리를 요약한 법인이 없어요. 간결하게 말씀드리죠.

4법인의 요체는 "무아無我"이 한마디입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무아의 종교" 입니다. 나도 무아고, 부처도 무아고, 중도 무아고, 절도 무아고, 다르마도 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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