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의자들마다에 너는 앉았어. 

이런 건가. 


앨런 블룸과 그의 아내. 이 두 사람이 중요 인물인 것인데 

블룸에 대해서, 그와 함께면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무엇이든 우리는 말할 수 있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랬다고 같은 얘기가 (그리 대단해 보이는 내용도 아닌) 계속 반복되지만 

미묘한 변주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가 무얼 말하든 나는 이해한다. 모두. 다.  

내가 무얼 말하든 그는 이해한다. 모두. 다. (...) 위대하다고 느껴진다. 구체적인 사례는 기억을 못하지만 

이 노인들 진짜 별의별, 사소하고 중요한, 멀고 가까운, 자기 전부를 얘기했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다 얘기하고 그 모두를 이해하고. 이런 것에 아무 환상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이들 보면서는 아 재밌었겠다.  


그의 아내 이름은 재니스인데 

이 책에서 그녀 이름은 로자몽(로자몽드). 재니스도 로자몽도 혹시 유태인들에게 흔한 이름인가? 


로자몽. 이 이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 같다. 

어쩐지 웃기게 들리기도 한다. 


인간에게 언어와 사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언어와 사유. 

이것들이 막 신선하게 재출현하는 느낌. 


생전에 나르시스트로 악명이 높았다는데 

아니 이 정도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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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된다 느껴졌던 리 시걸의 문장들은 

벨로우 전기 비평하던 글보다는 다른 글에 있었던 거 같다. 

두 개의 글 같이 읽으면서 두 글이 섞이는 효과가 있었던 듯. 


벨로우 전기 비평하던 글에서 그래도 기억에 남았다 느꼈던 마지막 문단. 

찾아보니 그 문단은 이렇다. 


My father had died a few years before, without my being aware of it until over a year after he died. That is a long, sad, different story. Something caught in my throat as I stood there thinking of Bellow and my father. I had loved many people, but whom did I ever love in the same way that I loved them? Yet I fled from both of them. I wished — almost — that Bellow was there to tell me why.


(내 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넘게 지난 후에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이건 길고 슬프고 다른 때에 해야 하는 얘기다. 벨로우와 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서 있던 동안 목이 메었다. 내가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누굴 내가 내 아버지와 벨로우를 사랑했듯이 사랑했는가? 그럼에도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서 도망쳤다. 그게 왜인지 벨로우가 여기 있어 내게 말해주기를 나는 소망했다.) 


내가 왜 아버지와 벨로우 둘 다에게서 도망쳤는지 

벨로우에게서 이유를 듣고 싶다. : 이 마지막 문장이 강한 유인이었던 건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로 

뒤죽박죽 기억함. 이 마지막 문장에서, 벨로우가 어떻게 독자의 강한 사랑을 유발하고 그리고 떠남도 유발하고 

그리고 어떻게 그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해설할 사람..... 인가, 나도 갑자기 조금 안 거 같았던 것이었었던 것이었다. 더 잘 알고 싶어졌었다.  


리 시걸의 글들은 "tough-minded yet generous"라 평가된다는데 

저 조합도 꿈의 조합인 듯. 저 조합을 언제나 실현하는 비평가라면 .... 시간의 시험을 견딜 듯. 


읽었던 다른 글의 제목은 

Seize the Day Job. 인데 

벨로우 책 Seize the Day로 하는 말장난. 

day job. 작가, 예술가들이 생계를 위해 하는 낮 동안의 일. 

얄팍한 말장난 좋아하는 나는 이 말장난에도 웃었고 지금 쓰면서도 다시 웃게 된다. 

울고 싶게 만들던 문장들은 이 글에 더 있었던 거 같다. 


오늘 목표로 했던 작업을 조금 전 끝냈다. 

어디서 울고 싶었나, 천천히 다시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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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웃긴 대목들도 꽤 있다. 

제목의 라벨스타인은 앨런 블룸을 모델로 한 작중 인물. 

그러니까 형식적으로는 소설로 제시되는 책이긴 하다. 그런데 다 바로 화자 "나"는 솔 벨로우로, 라벨스타인은 

앨런 블룸으로 여겨진다. 책이 나왔을 때, 이걸 회고록으로 보면 안되고 소설로 봐야 하지 않는가, 그게 벨로우의 의도였다. 두 사람의 생애를 책 속으로 읽어넣지 마시라.. 얘기하는 이들 있었던 거 같다. 지금은, '거기 이름 빼고 허구가 있음?'이 대세인 듯.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웃긴 대목이 있는데 

병든 블룸에게 지상에 남은 시간이 실제로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시간의 문제지 죽음이 그의 아주 가까이에 왔음이 확정됐을 때. 이때 블룸은 갑자기 

아무에게나 성욕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아무에게나 sexual feeling이 일게 된다. 


블룸이 벨로우에게 말한다. 

"죽음이 이토록 기묘한 최음제일줄이야." (기묘한 최음제: weird aphrodisiac.) 


저 영어 구절도 웃김에 조금 기여하는 거 같다. 죽음과 최음제(aphrodisiac)의 연결을 죽어가는 사람 자신이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참 웃기기도 한데, 최음제라는 말도 웃김. 


이 두 사람이 실은 15년 나이차 나는 사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형"을 넣어 생각하면 조금 더 웃겨지기도 한다. 형. 죽음이 얼마나 이상한 최음제인줄 알아? 


죽음이 이토록 기묘한 최음제일줄 몰랐다고 하더니 

"그런데 내가 왜 이 얘길 형에게 하고 있지? 형이 알아두면 좋을 거 같다 생각했나 봐." 




이미 죽은 친구를 기억하면서 

자기 죽음도 가까이 있음을 자각하는 노인이 쓴 책이라 

죽음이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겠기도 하다. 이 주제에, 30대의 나였다면 별로 마음가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귀기울여 듣게 되는 여러 대목들이 있다. 죽음의 한 (존엄한?) 방식을 "legit"하게 제시하는 책일 거 같다. 순전히 농담의 연속 같기도 한데 그러나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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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깊이 사랑한 두 가지. 물리학과 사막. 

둘을 결합할 수 없음이 유감이다. (My two great loves are physics and desert country. It's a pity they can't be combined." 


오펜하이머가 친구에게 쓴 편지가 출전이다. 

<원자탄 만들기>에서 맨하탄 프로젝트 기지 입지로 로스 알라모스가 선정되고 프로젝트를 지휘할 사람으로 오펜하이머가 결정되는 과정을 말하는 장 제목이 "Physics and Desert Country"다. 


실제로 로스 알라모스가 사막이긴 했지만 

물리학과 사막이라니. 둘의 연결에서 나오는 이 독특함은 무엇인가. 무슨 감성인가. 

하였는데 오펜하이머가 편지에 쓴 구절이 출전이었다. 그의 저 문장을 인용하고 나서 리처드 로즈가 덧붙이는 말은: 

"이제 그 둘이 결합할 것이었다." 


왼쪽에서 두번째, 백팩 메고 7부 나팔바지 비슷한 걸 입으신 분이 페르미. 

패셔니스타. 이태리 남자. 





같은 날 찍은 것이 분명한 다른 사진도 있다. 


오펜하이머가 버클리 물리학과에서 

미국에서 그 전까지 본 바 없는 "위대한 이론 물리학의 전통"을 어떻게 이끌었나에 대한 논의가 있다. 

그는 의외로 독특하고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알았던 물리학자 한스 베트(Hans Bethe)는 물리학자로서 오펜하이머의 리더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탁월한 취향이다. 그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가 선택하는 주제들을 보면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들은 진정 그의 삶의 일부였다. 답을 구하는 것이 그가 하는 투쟁이었다. 그의 관심사와 그의 투쟁은 공유되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탁월한 취향이다. 

기억하고 두고 두고 생각한다면 좋겠는 문장이었다. 


리처드 로즈에 따르면 오펜하이머의 그 섬약한 (키가 185? 그런데 체중은 60kg를 넘은 적이 없음? 언제나 저체중. 아프면 50kg 이하가 되기도 한? 망할 미국의 도량형, 피트, 인치, 파운드와 결합한 숫자들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저 비슷한 얘기가 책에 나온다) 체격에, 부조화할 거 같지만 아니었던 기이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사실 동영상 뿐 아니라 이미지로만 보아도 그게 어떤 카리스마였을까 알 거 같다. 하여튼 그는 맨하탄 프로젝트, 정말 제대로 이끌기가 거의 불가능한 집단(노벨상 수상자가 발에 채이는...)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는 뉴멕시코의 화이트샌즈. 가려고 하면 갈 수 있기는 한가? 같은 의문이 드는 코로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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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더워서 

속으로 울었다. 저녁 먹고 근처 새로 생긴 편의점 가서 

기네스 오리지널 사와서 마셨다. 맥주가 십년 전처럼 맛있다면 좋겠는데.  

세월이 흐름은 맥주가 덜 맛있어짐을 뜻한다. 자고 일어나서 에어컨 없이 버틸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은 며칠이나 남았다고 예보되나 보았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다음 주 중 이틀 더. 


오전 아홉 시에 이미 30도. 

18년엔 새벽 네시던가 세시던가에 30도이던 날도 있었지. 

그 때도 속으로 울었다. 그냥 오늘이 종말이라고 생각하시오. 매일 그러시오. 


30도, 한 33도까지도 밖에 나가서 나무 그늘 어느 정도 있는 곳이면 

그렇게 막 아주 덥지는 않다. 코로나 이전 (BC!) 시대, 35도 이상이 아니면 

나가서 돌아다니다 오는 일에 두려움 없었던 거 같다. 그 두려움 없음은 집에 있을 때의 안심이기도 했다. 

지금은... (AD!) 일단 30도 넘기 시작하면 집에서는 피부를 지지는 듯한 뜨거움. 

이게 그러니까 과장이긴 한데 또 매우 현실적인 느낌이다. 미세한 전기 철망을 매순간 통과하는 느낌. 

그리고 밖에 나가는 건 새벽에 캄캄할 때 아니면 그 자체로 결단을 요구함. 


리히터의 열정 소나타. 쉽게 지루해진다고 쓰고 나서, 사실 쓰면서도 '아니지 않나?' 했다가 

오늘 들어봄. 하 역시. 최고입니다. 얼른 좀 좋은 장비로 제대로 들어보고 싶어진다. 다 유튜브로 전화기로 듣고 

있으면서 뭐 어쩌고 하지 말아야겠. 


핑크 플로이드. 다 유튜브로 전화기로 아무리 들어도 지겨워지지 않는 핑크 플로이드. 

릴랙스 릴랙스 릴랙스. 


그래 이렇게 아무말 포스팅하면서 

더위와 공포를 잠시 잊는 하루를 보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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