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저자 인터뷰 듣고 궁금해진 책. 

장르 규정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스릴러이기도 하고 sf이기도 하고 

(또 뭐라고 했더라, 일종의 성장 소설?). 작가가 아이를 낳은 해에 작가의 언니가 죽었다. 

아이를 얻은 기쁨과 언니를 잃은 고통이 격하게 서로를 교체하며 오가는 세월을 살았다. 아마도 그러면서 

구상된 소설. 주인공은 어린 아기가 있는 고식물학자(paleobotanist). 남편, 혹은 (아이들) 아버지의 

언급이 한 마디도 없었던 걸 보면 싱글맘. 아이들과 집에 있을 때 옆방에 침입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 그녀는 자기 삶 전체를 다시 보게 할 도전을 받게 되는데 (.....) 


고생물학자, 고식물학자들이 그러듯이 

발굴된 화석을 놓고 그것이 그 시대와 현시대에 대해 

알게 하는 것들을 보는 훈련을 한다면 

우리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이 '화석'이 되는 걸 알 수 있다... 

당신 책상 서랍 속에 있는 10년 전의 사진도 화석이다. : 책이 궁금해진 건 이런 얘기 때문이었다. 


사진도 화석이다. 

여기서 무엇인가 놀라운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아주 멀리 갈 수 있는 용기는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던데

(무엇보다 삶에 지쳤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기 제한이나 자기 기만이 아니라) 아마존 리뷰 지금 확인해 보니 

실제로 그런가 보았다. 





<즐거운 학문> 100번 단장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경멸하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경의를 표하는 법도 인간은 배워야 한다." 


이 책 정말 거의 모든 문장이 그렇다. 아네. 하고 휙 넘어가는 때도 있다가 

세상에 이보다 더 깊이있고 오묘, 심오한 문장이 있을 수 없을 거 같은 때도 있고. 


오늘 아침엔 후자. 

니체의 한 문장을 놓고 반 나절 얘기하기 한다면 이 문장도 좋은 후보일 것이다. 

경멸하는 법을 배워가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은 있는가. 

경의를 표하는 법을 배우는 인물의 예는? 

경멸은 어떻게 배워지는가? 경멸은 감정인가, 인식인가. 

감정이든 인식이든, 경멸의 내용은 무엇인가. (.........) 아무튼 여러 질문들을 만들고 

그에서 출발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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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는 Everyman's Library 판도 나와 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하다가 

거기서 나온 카뮈 선집 조금 넘겨 보다 실망스럽던 기억도 남. 


카뮈도 실은 좀 어정쩡하지 않나. 작품들끼리도 들쭉날쭉. 

같은 작품 안에서도 들쭉날쭉. 그렇지 않나. <이방인>은 어떤 점에서는 걸작인지 몰라도 

어떤 점에서는, 그것 있다 해서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음, 않았음... 같은 책 아닌가. 

카뮈 책들 제대로 읽은 건 하나도 없으면서 막 저런 생각 든다. 막 함. 그냥 아무 생각 드는대로 하고 봄. 


그런데 영어로는 저렇게 나온 책. 

저 책에 니체에 대한 논의가 좀 있는데 

그것들 찾아서 보다가 


어쨌든 카뮈는 

적어도 thinker는 아닌 것으로.................. 

영어권(아이비리그 교수들 포함하여) 사람들이 아무리 

사상가 카뮈를 말하더라도, 내겐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 책에서 니체 논의는 

좀 너무한 경향 있다. 대강 아는 대상을 놓고 

'효과'에 유념하는 말들을 하게 될 때 나오는, 조금 맞고 많이 틀린 말들. 

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문학, 한국의 철학(무려.....)이 세계의 필독 대상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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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사 강좌에 

한국 문학은 포함된 작품이 없고 

일본 문학은 꽤 있다. 하이쿠. 겐지 이야기. 히구치 이치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히구치 이치요는 처음 들은 이름이고 

19세기 말의 여성 작가. 일본 근현대 문학에서 중요한 작가. 지금 찾아보니 24세에 요절했다. 

"이치요의 작가 생활은 14개월에 불과했지만 근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키재기>, <섣달 그믐날>, <흐린 강> 등이 있다." 


강좌에서 주로 다룬 소설은 영어 제목이 Child's Play인데 

그게 <키재기>인듯. 교수가 일본어 원제는 이게 아니라면서 어린이들이 키를 표시하고 

그 키 표시로 애정을 알리는? 그런 제목이라 말했던 듯하다. 


집안 사정 때문에 유곽으로 보내지는 딸. 

미모일수록 유곽에서 애호받는 여자들. 

.... 이런 요소가 저 소설에 있나 보았다. 유곽에 가기 전의 유년기가 

그게 단 사흘, 세 시간에 불과하게 기억되더라도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의 시대라서 그에 깊이 애착하는 여자 주인공. 

그 유년기의 첫사랑. 




지금 시국이 시국이라서가 아니라 

싫다, 징그럽다. 이런 느낌 듬. 유곽 (brothel). 기생 (courtesan). 이런 말을 

계속 쓰면서 설명해야 하는 소설. 물론 그게 자체로 소설의 성취에 대해 말하는 건 무엇도 없지만 

..... 위대한 근대 문학이 다른 주제로 쓰여질 수는 없었을까? 


그러다 <설국>으로 오니 

이것도 유곽 (brothel), 기생 (courtesan) 이 말들을 

연달아 쓰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소설. 




사실 무엇보다 교수에게 감탄했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깊이 읽은 사람. 

그 외에도 여러 걸작들을 깊이 읽고, 잘 듣고 밑줄 치고 여러 번 돌아와 생각해 볼만한 

깊이 있는 말들을 많이 하는 사람. <설국>도 깊이 몰입해서, 얕게 이러저러한 빈말은 1도 없이, 설명한다. 


넓은 범위에 그럴 수 있다는 것. 

편견 없이 들어가고 이해한다는 것. 

나라면 특히 <설국>에, 그러려 아무리 애써도 그러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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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넘어서>에 

"심리학이 학문의 여왕이 될 것이다" 말하는 몇몇 단장이 있다. 

이 얘기도, 처음엔 단순명확해 보이는 거 같다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읽고 비교하고 생각할수록) 

하도 심오해서 의미 확정 불가인 것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단장들 거의 전부가 그럴 것이다. 

다 읽고 안 거 같은데, 인용되는 걸로 다시 보면 

알던 단장이 아니다. 다른 내용이 되어 있다. 


그래서 좌절과 함께 살게 되긴 하는데 그런가 하면 

점점 더 실감하기도 한다. 니체가 어떤 엄청난 일을 한 것인지. 







영어판 <힘에의 의지>. Will to Power. 

이 책은 니체의 유고를 니체 여동생이 묶어 냈던 책.  

독일에서는 진작에 그랬던 거 같지만 영어권에서도 이제 이 책은, 이 제목 이 형식으로는 사라질 책. 

여기 묶인 유고들을 시기별로 다시 정리한 <유고> 제목 책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하판 전집에 

<권력에의 의지>가 있지만 책세상 판에서는 (독일어 판이나 요즘 영어판처럼) 몇 권의 "유고"들에 포함된 듯. 


아무튼. 

이 책 보면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 니체가 과연 어떤 미친 (오직 좋은 의미로만, 미친) 인간이었는지. 

그는 과연 무얼 한 건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거든, 믿어라. 

그러나, 알고 싶거든, 물어라." : 니체가 여동생에게 쓴 한 편지에 이런 문장도 있는데 

그렇게 "묻는" 사람이라면 


니체에게 적대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니체에게 적대적이라면 "묻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묻는" 인간들이 니체의 중요한 단장들을 놓고 

해석 배틀........... 같은 거 한다면 엄청난 (실로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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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아흐마토바. 

세계문학사 강좌에 포함된 20세기 시인. 


스탈린의 공포 체제, 대숙청 시기를 기록한 뛰어난 시들을 남겼다고. 

오늘 처음 들은 이름. 강좌의 교수에 따르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시인들 중 한 사람. 


그녀는 당국에 의해 "만족스럽지 못한 시인 (unsatisfactory poet)" 판정을 받고 

작품을 발표는 물론 쓰지도 못하게 되었다 한다. 집에서 몰래 쓰면 될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시 원고가 만에 하나 그녀에게 적대적인 이에 의해 발견된다면 그로 인해 그녀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그녀 자신 모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드물게 종이에 

시를 썼다면 바로 종이를 태워 없앴다. 종이 위에 손으로 쓰지 않는 대신 그녀는 머리 속으로 시를 쓰고 

암송했다. 이 시기 그녀와 동거하던 러시아 작가가 있는데 시가 완성되고 암송되었음을 그 작가도 같이 

암송하면서 확인했다. 


스탈린 사후 

그녀가 다시 시쓰기 시작하고 

그녀의 예전 작품들이 복권되기 시작하는데 

아무 원고 없이 그녀, 그리고 시들을 같이 암송했던 작가의 기억에 기대어 복원된 시들도 출간되었다. 




저런 얘기. 

참으로..... 어메이징. 

그 두 사람은 시를 암송하면서 그리고 시가 온전히 암송되었음을 확인할 때도 

오직 속삭이기만 했다고 한다. 누가 엿들을 수도 있고 집 안에 도청장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에도, 러시아적 방식으로 (인간 한계를 다시 보게 하는) 아웃라이어들이 여럿인 듯함. 

시쓰기, 쓰기에 대해 인간이 이 정도로 절박하고 헌신적일 수 있음에 대해 경이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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