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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책 파는 법 -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ㅣ 땅콩문고 시리즈
조선영 지음 / 유유 / 2020년 12월
평점 :
<책 파는 법>의 부제는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다. 온라인 서점 MD가 어떤 직업인지, 출근해서 뭘 하는지, 책을 팔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말해준다. 아주 오랫동안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지만 정작 온라인 서점 M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뭘 하는지는 정확히 몰랐기에 '재밌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저자, 글을 상당히 잘 쓰신다. 막히는 부분 없이 잘 읽힌다. 무엇보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얼마 전에 해외 출판 편집자가 쓴 책은 주제에서 벗어난 글이 너무 많아서 읽다가 중단했다. 일관되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온라인 서점 MD가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을 주문하고 그 책들을 판매해서 서점의 매출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온라인 서점 MD라고 하면 막연하게 여러 가지 책을 읽고 구매자들에게 추천할 책을 고르고 간략한 리뷰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MD 추천‘란에 들어가는 그런 글 말이다. 그런데 이분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책 재고 주문부터 하는 사람들이었다.
온라인 서점 MD의 출근 시간은 8시.(이분은 예스24 직원이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다. 출판사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회사에 도착해서 전날과 새벽에 들어온 주문서들을 싹 검토해서 책 주문을 넣는다고 한다. 아니, 나는 이런 건 시스템이 알아서 하는 건 줄 알았다. 일일이 고객들의 주문량을 검토해서 오늘은 이 책을 몇 권 주문해야 하는지 정하는 직원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세상에도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온라인 서점 MD의 책 주문 작업이라는 게 정말 흥미롭다.
온라인 서점 MD는 재고를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사들이고(당연히 많이 사야 싸다) 그 책들을 얼마나 많이 파는가, 로 승부를 보는 직업이다.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 사들인 책들이 생각보다 안 팔릴 때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MD도 많이 주문할 땐 즐겁다. 많이 주문할수록 공급가 조정도 좀 더 수월하니 원래 가격보다 3~5퍼센트 낮춰서 사들이면 정말이지 신이 난다. 문제는 책이 안 팔려 지옥을 맛볼 때다. 아무리 스테디셀러라고 해도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판매는 자연 감소하게 되어 있다. 더 이상 책을 쌓아 둘 공간이 없으니 안 팔릴 것 같으면 주문 좀 하지 말라는 물류센터 담당자의 항의에, 특별한 판매 계획이 없으면 출판사로 반품하라는 팀장의 통보 메일을 받아 보시라. 사들일 때의 흥겨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쪼그라든 죄인이 되어 지옥을 맛본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전화를 걸어 “혹 반품이 가능할까요”라고 어렵게 입을 뗀다. 내가 보낸 대량 주문 발주서를 받으실 땐 웃으셨던 부장님의 깊은 한숨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니, 나는 더욱 움츠러들어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아, 알겠습니다. 반품은 역시 어렵겠죠. 대신 굿즈 제작비 지원은 가능하실까요……?"」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을 반품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온라인 서점 MD의 괴로움이라니...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 했다. 책 판매는 오로지 출판사의 사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온라인 서점 MD는 때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하지 않는 일을 해야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책의 크기와 무게를 재서 기입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들어보면 직관적으로 아는 정보들을 온라인 서점에서는 알 수 없으니 그런 걸 구매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도 어디선가 자동으로 입력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MD들이 일일이 가로세로 길이 재고 저울에 무게 달아서 기입했다고 한다.(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예전에는 그렇게 했다고 한다.)
굿즈 관련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알라딘 서점이 굿즈로 대박을 치고 나서 다른 온라인 서점들도 너도나도 굿즈 전쟁에 뛰어들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굿즈의 진화를 굿즈 1.0시대부터 3.5시대(현재)까지 나누어 설명한다. 굿즈의 진화 과정을 지켜봤기에 새록새록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내 혈압을 오르게 한 부분이 있다. 바로 '띠지'다. 저자는 웹상에 띠지 두른 표지를 올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띠지 갈등'이라고 표현했다. 출판사는 띠지가 책 판매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면서 띠지 두른 표지를 웹에 올리기를 원한다. 온라인 서점은 띠지 없는 표지를 올리기를 원한다. 웹에 띠지 두른 표지를 올리면 구매자들은 띠지도 엄연한 상품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배송 중에 띠지가 훼손될 경우 책을 아예 바꿔달라고 항의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는 띠지가 골치 아픈 존재다.
하지만 띠지 갈등을 논할 때, 출판사도 온라인 서점 관계자들도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자책 구매자들의 불편함이다. 책을 받아서 띠지를 제거할 수 있는 종이책 구매자들과 달리, 전자책 구매자들은 웹상에 있는 표지에서 띠지를 벗길 수가 없다! 띠지를 입힌 채로 웹에 올리면 내 전자책 책장에도 그 띠지 두른 표지가 보여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띠지를 선호하지 않는데, 특히 사람 얼굴이 들어간 띠지는 정말로 선호하지 않는데, 온라인 서점이 띠지 두른 표지를 올려버리면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 표지를 간직해야만 한다. 나는 그게 온라인 서점의 횡포라고 생각했는데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니, 대충격이다.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전자책 관련 네이버 카페에 '띠지 없애기 캠페인'을 벌이는 분이 나타나셨다. 그 분은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서 웹에 올리는 표지에서 띠지를 제거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신다.(그 분은 그게 출판사의 정책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계셨나보다.) 그 메일을 보고 실제로 표지에서 띠지를 제거해준 출판사가 있고 그런 요청 따위 사뿐히 무시하고 띠지 두른 표지를 고수하는 출판사도 있다고 한다.
제발 출판사들이 띠지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띠지를 따로 촬영해서 이 책을 사면 이런 띠지가 나간다고 안내를 해주든지.(그럼 온라인 서점MD의 일이 엄청나게 늘어날테지만.) 아무튼 나는 띠지 없는 표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 간에 ‘띠지 갈등‘이 벌어졌을 때 부디 온라인 서점이 승리하시어 깔끔한 표지가 웹에 등록되기를 바란다.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것은 리커버에 대한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몇몇 환경 관련 책을 리커버하면서 나무 심기라는 공익적 활동까지 묶은 이벤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고 한다. 리커버와 환경 운동, 올바른 조합인건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매대에 깔린 책이 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 이왕 새로 찍는 거 새로운 표지로 바꾸겠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리커버 되는 책들 중에는 유행따라, 계절따라, 판매부수 따라 책표지를 갈아치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봄에는 벚꽃 에디션을 출시하면 잘 팔린다고 한다.)
책을 굿즈처럼 소장하는 팬덤을 지닌 작가들의 책은 리커버 할 때마다 판매량이 늘어날테니 출판사나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도 욕심나는 작업일테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것도 하나의 마케팅이니 리버커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환경 운동과 묶은 리버커라는 말이 가능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전자책을 홍보하는 건 어떨까. 전자책은 종이도 필요없고 인쇄도 필요없다. 온라인 서점 MD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재고 관리도 필요 없다. 물류센터 공간도 차지 안 하고, 배송도 필요 없다.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물론 내가 모르는 전자책 관련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건 그저 전자책을 사랑하는 한 독자의 근거 없는 헛소리다.)
아무튼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여기 쓴 내용 말고도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이 아니라면 온라인 서점 MD가 뭘 하는 사람들인지 어디 가서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어디 가서 온라인 서점 MD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것이 책 읽는 사람의 기쁨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