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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느낌과 알아차림 - 나의 프루스트 읽기 연습
이수은 지음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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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은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바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이수은 작가의 독서 에세이라면 무조건 환영이다. <이 책이 시급합니다>와 <평균의 마음>을 재미있게 읽었다. <평균의 마음>은 틈날때마다 다시 펼쳐볼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런 책들을 쓴 작가니까 신작도 무조건 좋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에세이는 무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나서 쓴 에세이다.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 책을 앞으로 <시간>이라고 줄여서 표기하겠다.) 나는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리뷰 한 편 쓰는데도 어떻게 써야할까 생각하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이수은 작가는 <시간>을 읽고 책 한 권을 써냈다. 물론 <시간>이 보통 책이 아니긴 하다. 한국어 번역본 기준 열세 권 짜리 책이니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으로 책 한 권쯤 써내는 일이 가능한 걸까, 생각해보지만 읽는 것도 쉽지 않고 읽고 나서의 감상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나는 <시간>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수은 작가의 글을 워낙 좋아했기에 이 책을 구매했는데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히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시간>을 다 읽은 것마냥 은은한 감동마저 일었다. 내가 읽어본 많은 책들 중에는 앞부분만 재미있다가 뒷부분에 가서 힘이 빠지는 책들이 꽤 있었다.(그래서 이동진 평론가는 책을 고를 때 책의 4분의3 지점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 부분이 작가가 가장 힘이 빠지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좋았고, 심지어 뒤로 갈수록 더 에너지가 붙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읽고 나서 이렇게 가슴 충만한 에세이는 참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다 끝내자마자 나도 <시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라딘을 검색했고 민음사판이 가장 위에 떴다. 한 달에 한 권씩 읽어도 1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다.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이수은 작가는 3년4개월에 걸쳐 <시간>을 읽었다고 했다. 한 번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시간>만 읽은 게 아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관련된 여러 책들, 또 이 책을 쓰기 위해 인용한 여러 철학자들의 책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게 티가 났다. 그리고 이렇게 분량이 적지 않은 책 한 권이 탄생했다.

이 작가는 심지어 <시간>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우울증 혹은 불안장애로 보이는 심리장애까지 겪었다고 고백했다. 병원에 가서『시간』을 읽다가 우울 증상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갱년기장애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의사가 답하는 장면은 완전히 블랙코미디다. 하지만 이 책 전체로 보면 이수은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나는 치유로서의 자서전을 쓰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할 말이 아주아주아주 많아서 명치나 목구멍 어디쯤에서 정체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하나씩 순서대로 끄집어낼 수가 없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나도 이 책에 대해서 말하려니까 말문이 막힌다. 요약하기도 어렵고 어느 한 부분만 콕 집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책의 총체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그럴 때 내가 갖고 있는 언어라는 도구가 얼마나 빈약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은 <시간>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고, 만약 <시간>을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밖에는 없다.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밑줄을 백만 개쯤 그은 것 같다. 외우고 다니다가 어디선가 써먹고 싶은 문장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밑줄 친 부분 여러 개 인용하려다가 다 지우고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만 인용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된 부분이다.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이다.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것은 중력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높이뛰기처럼 연습을 필요로 한다.】

오호,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절반만 YES다. 이 책에서 인용된 여러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이수은 작가가 펼치는 글의 향연을 반만 따라잡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너무 좋다. 나의 독서 취향과도 연관이 있는데,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너무 개인적인, 예를 들면 '힐링'이나 '위로' 같은 단어가 붙은 에세이나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그런 것보다는, 뭔가 이렇게 지적임이 철철 넘쳐 흐르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절반은 이해하겠는데 절반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경외하거나 감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이제 5월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고 해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이번 달에는 뭘 읽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동안 알라딘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밀리나 크레마클럽에 담아두었던 책들은 한 번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책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인생은 짧고 2024년도 네 달이나 지나갔고 시간은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갈텐데 내 취향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책들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음미하면서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진득하게 붙잡고 싶다. 이수은 작가가 <시간>에 온 마음을 들인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에 온통 마음을 쏟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은밀하고 복잡한 서사전략을 채택한 걸까. 이 소설이 무엇을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진술되어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역할을 온전히 독자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독하게 열렬히, 꼭 붙잡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다. 이것은 총력을 기울여 사랑해 주기를 요청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다는 문장이 너무 좋다.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마찬가지일 터.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나니 진지한 사유, 진지한 독서가 너무 좋아졌다. 나도 이런 깊은 독서를 하고 싶어져서 갑자기 철학 책 쓸어담고...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아무튼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은 너무 좋았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이렇게 멋진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느낀 그런 아름다움을 나도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도저히 표현할 말이 없다. 아, 그래서 프루스트도 그렇게 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수은 작가도 독후감으로 책 한 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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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교동에서 죽다 GD 시리즈
고영범 지음, 리덕수 그림 / 알마 출판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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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읽는 즐거움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달까. 그런데 얼마 전에 카렐 카페크가 쓴 <로봇>이라는 희곡을 우연히 읽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인물들의 대사로만 이야기가 진행이 되니까 몰입도가 높았다. 그래서 다른 희곡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알마 출판사의 GD시리즈가 생각이 났다. 민음사 유튜브에서 어떤 편집자님이 GD시리즈로 나온 책을 소개해줘서 기억에 남아있었다.(이때 소개된 책은 <소프루>였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살펴보다가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현재 59세인 '진영'이다. 미국에서 지내다가 누나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누나는 암에 걸려 항암 치료 중이다. 누나인 '진희'는 '진영'을 보자 이렇게 부탁한다. 자신의 딸인 '도연'을 만나서 글 같은 거 때려치우고 정신을 차리도록 설득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도연'은 사범대를 졸업하고 나서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도연'의 전공은 그 이름도 거창한 디지털서사콘텐츠창작학과. '도연'은 편의점에서 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어 글을 쓴다.


엄마인 '진희'의 눈에는 자신의 딸이 임용고시도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희'뿐 아니라 '진영' 역시 처음에는 '도연'에게 그거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한다. 누나인 '진희'의 부탁도 있었겠지만 '진영'의 눈에도 멀쩡하게 사범대학까지 나와놓고는 선생님을 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도연 : 그럼 삼촌 생각엔 제가 뭘 해야 돼요?  // 진영 : 그 디지털창조학과인지 뭔지 당장 때려치우고, 미국 올 생각도 하지 말고, 임용고시 준비해야지.  // 도연 : 그럼 사는 게 나아져요?  // 진영 :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지  //도연 : 예?  // 진영 : 내가 지금 얘기한 건 생계 대책의 문제고, 네가 말하는 건 삶의 의미의 문제잖아. 하나는 야구고, 하나는 축구야. 룰이 달라.】


그런데 그런 '진영'도 글을 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어떠한 장면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한다.


【도연 : 뭐 쓰세요?  //진영 : 비행기 타고 오는데, 앞줄이 텅 비었더라고. 그걸 둘러싼 몇 사람의 신경전과 허탈한 결말...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네. 그래서 써서 없애려고.】


이것이야말로 '도연'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다. '도연' 역시 계속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기에 그것을 최대한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왜 써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할수는 없기에 '도연'과 '진영'은 모두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읽은 모든 책을 리뷰로 남기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쓰지도 않는다. 한 책 끝내고 다른 책을 읽다가 전에 읽은 책이 계속 머리에 떠다니면 리뷰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진영'이 말한 '써서 없애려고 글을 쓴다'는 말이 굉장히 공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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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는 자신의 딸이 하라는 선생님은 안 하고 디지털무슨창작학과를 다니는 바람에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딸 때문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고등학교도 못 간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억울해서 병이 난 것이다. 이루지 못 했던 자신의 욕망을 죄다 딸에게 투사했는데 그런 딸마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대학도 나오고 더이상 남부러울 것이 없는 처지인데도,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을 거머쥐지 못하자 딸에게 분노를 쏟아 낸다. 내가 봤을 때, 등장인물 중에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바로 '진희'다. 그녀는 가슴 속에 맺힌 울분을 어떻게든 풀어냈어야 했다. 


1974년, 이들 남매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망하고 이들은 서교동을 떠나 도망치듯이 화곡동으로 이사를 간다. 거기에서 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과일 가게를 하나 맡았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아버지는 쓰러져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 하고 있으니 나머지 모든 집안 일은 남매들의 차지였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식구들의 간병을 해야했기에 '진희'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어머니의 과일 가게를 온전히 떠맡았다.


이래서 희곡이든 소설이든 한국 문학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외국 문학은 나와 일정한 거리감이 있어서 그렇게 아프지 않다. 아프긴 아픈데 그래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문학은 읽을 때 너무 힘들다. 이 희곡은 현재와 1970년대를 오가는데 그게 우리 엄마, 이모,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서 쉽사리 책장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문학이 다루는 대상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울 때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 그래서 괴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희' 때문에 괴로웠고 '도연' 때문에 괴로웠고 1970년대를 살아갔던 그 시절 사람들의 어려움 때문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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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기억이 오락가락 하신다. 그래서 '도연'을 보고도 다른 자식들의 이름을 불러댄다. '도연'은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서 연기를 해주는데 어느 날은 자신의 엄마인 '진희'의 입장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도연'이 자신의 엄마가 되어,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슬펐다. 도연은 자신의 엄마를 연기하면서 어느새 엄마의 삶을 이해했다. 마음 속으로 공감하는 그런 거 말고, 진짜로 그 사람이 되어서 말을 해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구나. 자신을 그렇게 구박하던 엄마인데도 '도연'은 '진희'의 삶을 변론하고 있었다.


'도연'이라는 캐릭터를 보며 배운 것 하나가 있다면, 자신의 삶을 위로하려면 글을 써야 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말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글 쓰기는 기본적으로 내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는 행위이고,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굉장히 가까워지는 행위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너무 가까이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삶과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글 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는 거리를 두고 타인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가 정말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한다는 건...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싫다ㅠ그 사람의 입장에서 연기까지 했다가는 정말로 그 사람을 이해해버릴까봐 너무 싫다. '이해해야 해, 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아'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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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희곡의 제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남매는 서교동에 살다가 화곡동으로 이사 왔는데 서교동에서 죽은 건 누구였을까. 희곡 안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다. 그래서 제목을 생각할수록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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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선집 3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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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 선집의 세 번째 책이다. 앞선 두 책에 비해 확연하게 대중적인 색채가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커포티의 소설보다 동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나조차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눈 앞에 촤라락 펼쳐질 정도이니 얼마나 유명한 영화였는지 알 법하다. 오히려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있으며, 작가가 <인 콜드 블러드>의 트루먼 커포티라는 걸 알고서 놀랐을 정도였다. <인 콜드 블러드>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잘 매칭이 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주인공은 십여 년 전 홀리 골라이틀리라는 여인을 알고 지냈다. 그녀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커포티의 인물 묘사이다. 주인공 ‘나’가 홀리를 처음 봤을 때 나오는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여름에 가까운 따뜻한 저녁이었고, 여자는 날씬하고 시원한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샌들을 신었으며, 진주 초커를 걸고 있었다. 세련되게 마른 몸매였지만 아침 식사용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거친 분홍빛이 뺨을 짙게 물들였다. 커다란 입에 위로 들린 코. 검은 선글라스가 눈을 가렸다. 유아기를 넘어선 얼굴이었지만 아직 어른 여성의 이편으로 넘어왔다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자가 열여섯에서 서른 사이 어디쯤이리라고 짐작했다.】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가졌다니. 영화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홀리를 연기했지만 소설 속 홀리는 오드리 헵번과는 약간 이미지가 다르다. 내 상상 속 홀리는 좀더 야생마 느낌이다.


【여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따라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쥔 통통한 손은 약간 부적절해 보였다.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미적인 면에서. 그는 키가 작고 몸통이 거대했으며 햇볕에 탔고 포마드를 발랐다. 몸을 감싼 핀스트라이프 정장 옷깃에 꽃은 카네이션은 시들시들했다.】


홀리의 엉덩이에 어떤 남자가 손을 얹는 것을 보고서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미적인 면에서 부적절해 보였다는 문장 보고 빵 터졌다ㅋㅋㅋㅋㅋ. 주인공은 홀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닐까 헷갈리는 부분들이 많다.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홀리를 여자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홀리를 보지 못하는 나날 동안 분개심까지 느꼈다는 걸 보니 도대체 홀리라는 사람의 매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하루하루 지나면서는 그녀에게 어떤 얼토당토않은 분개심까지 느꼈다. 절친한 친구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심란한 외로움이 내 삶에 들어왔지만 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그들은 소금도 없고, 설탕도 치지 않은 음식처럼 맹맹하게 느껴졌다. 수요일쯤 되자 홀리에 대한 생각, 싱싱 교도소와 샐리 토마토, 화장실 갔다 오라고 남자들이 50달러를 찔러주는 세계에 대한 생각이 계속 달라붙어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소설을 읽다가 또 빵 터진 부분이 있다. 주인공 ‘나’의 직업은 소설가인데 이제 막 잡지에 소설을 싣기 시작한 단계다. 홀리는 헐리우드에서 스타 대리인으로 일하는 오제이 버먼과도 인연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나’의 소설을 보냈다. 그 소설을 받아본 오제이는 ‘길을 잘못 들었다’면서 ‘흑인과 아이들 이야기라니, 그걸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평한다. 홀리 역시 이렇게 덧붙인다.


【"뭐, 나도 그 사람 생각이랑 같아요. 그 소설 두 번 읽어봤는데. 짜증 나는 애들이랑 흑인이랑. 떨리는 이파리. 게다가 묘사뿐이고.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이 대사를 보자마다 트루먼 커포티의 초기 소설인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짜증 나는 애들'은 조엘과 아이다벨, '흑인'은 미주리 피버, 게다가 '떨리는 이파리'까지.(그 소설에는 자연 묘사가 엄청 많이 나온다.) 커포티가 자신의 전작을 의식하고 쓴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래서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인 소설을 좋아한다. 주인공의 삶에 작가 자신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머싯 몸이 쓴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도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작가이자 스파이다. 


다시 커포티의 책으로 돌아와서, 홀리는 자기 자신을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방랑벽과 역마살의 끝판왕인 캐릭터다.


【"하늘을 바라보는 편이 하늘에 사는 것보다는 더 좋답니다. 무척 공허한 곳이에요. 무척 흐릿하고. 천둥이 치면 다들 사라지는 그런 나라일 뿐이야."】


방랑벽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어떤 장소에도 정착하지 못할 뿐더러 어떤 사람에게도 쉽사리 정착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홀리도 그것을 깨닫고 하늘에 사는 것은 무척 공허하다고 말한다. 홀리가 처음 만나는 '나'에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전부 공허함 때문일까. 겁이 없고 당찬 캐릭터인데도 이런 쓸쓸한 면모까지 있어서 홀리가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 같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티빙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진열장을 바라다보며 시작하는 그 유명한 영화. 그런데 확실히 소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영화는 홀리의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홀리의 시점에 이입하여 보게 된다. 그래서 홀리가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저 캐릭터는 왜 저러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나’의 일인칭 시점이라 어차피 홀리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깔고 들어가서 그런지 '홀리는 왜 저럴까'와 같은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았다. 홀리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커포티의 유려한 문장까지 더해지니 더욱 좋았다.


책 맨 뒤에 실린 옮긴이 해설을 보면 커포티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트루먼 커포티 선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정성스러운 옮긴이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 뒤에 해설이 있으면 꼭 챙겨 보는 편인데 어떤 해설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청탁 받았으니까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 실린 옮긴이 해설에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그런 게 참 좋았다. 


【우리가 이 세속적인 도시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물질적인 욕망이 순수하게 종교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런 속물성까지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기도서 같은 책이다. 모두 홀리 골라이틀리와 함께 언제나 여행 중이지만, 언젠가는 환한 창가의 고양이처럼 자기 자리를 찾기를 바라며.(옮긴이 해설)】


캬, 해설도 문학적이다.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인 <인 콜드 블러드>로 넘어가야 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몇 년 전에 이미 읽었던터라 건너뛸까 말까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워낙 좋아하는 책이니 이참에 재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커포티를 알게된 것도 <인 콜드 블러드> 덕분이었으니까 말이다. 트루먼 커포티 선집 읽기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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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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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알게 됐더라. 김혜리 기자가 진행하는 팟빵에서 정세랑 작가가 책 세 권을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 중 한 권이었다. 배명훈의 <화성과 나>, 타야리 존스의 <미국식 결혼>, 그리고 이 책이었다. 그때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었다가 이북 적립금을 모아모아 구매했다.


주인공은 수의사인 클래라 베닝이다. 수의사 하면 동물병원에 앉아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고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클래라는 야생동물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여서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해오던 동물병원 수의사랑은 활동 범위가 완전히 달랐다. 야생 올빼미 새끼들을 집으로 데려가서 돌보기도 하고, 야생 토끼나 오소리를 수술하기도 한다. 게다가 뱀까지 잡아야 한다. 극한직업이 따로 없다.


클래라가 사는 마을 곳곳에서 갑자기 뱀이 출몰한다. 근처에 살던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클래라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 방에 뱀이 있으니 빨리 좀 와달라고 말한다. '뱀 모양 인형인데 착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집에 도착했는데 진짜 자고 있는 아기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게다가 아기가 꿈틀꿈틀 하면서 잠에서 깨려고 한다. 이대로 아기가 일어나서 울기 시작하면 놀란 뱀이 아기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클래라는 가죽 장갑을 끼고 뱀을 생포하고 아기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다행히 클래라는 뱀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 한때 도마뱀을 공부하면서 뱀도 같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더 많은 뱀들이 출몰하면서 클래라가 가진 파충류 지식이 빛을 발한다. 누군가가 클래라에게 동물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 왜 파충류 전문가가 야생동물 전문병원에 있는 거냐고 묻는다. 클래라가 야생동물 병원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얼굴 한쪽에는 흉터가 있다. 그래서 클래라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이웃의 식사 초대를 모두 쳐낸다. 하지만 마을에 나타나는 뱀 때문에 클래라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사람들과 계속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고슴도치, 토끼를 돌보는 일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궁금할까? 야생동물들에게는 뻔뻔하거나 호의를 품은 주인이 없으며, 수많은 방문객이 야생동물을 멍하니 구경하러 오지 않았다. 내게는 야생동물들을 돌보는 일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보장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척 서투르니까.】


【내가 아는 사실은 이 영국 마을의 자연 질서가 완전히 어긋나버렸다는 점이었다. 조용한 영국 마을에서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는 경우는 없었다. 잠에서 깼을 때 열대 지역의 독사를 발견하는 일도 있을 수 없는 경우였다.】


솔직히 이웃에 뱀이 나타나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클래라는 관심을 쏟는다. 직업적인 소명일 수도 있는데, 사실 나타나는 뱀들이 너무나도 범상치 않아서 신경 끄고 살기가 어렵다. 가끔씩 출몰하는 영국 풀뱀들이라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맹독을 가진 타이판 뱀까지 출몰하는 지경에 이르자 도저히 신경을 끄고 살 수가 없다. 타이판은 파푸아뉴기니나 호주 같은 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뱀인데 그게 어떻게 영국 가정집에 나타나는지 클래라는 이해할 수 없다. 


사건은 뱀에서 시작하여 더 큰 스토리로 이어진다. 클래라는 처음엔 이 뱀들이 어떻게 영국에 들어왔는지, 누가 도대체 이 뱀들을 가정집에 풀어놓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벌이다가 이 사건에 아주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이 마을들의 비밀이 밝혀진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수의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신선했다.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데도 사건 해결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뱀에 대해서라면 경찰도 형사도 무쓸모다. 뱀을 다루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훈련된 파충류 전문가가 아니라면 함부로 나설 수 없다. 클래라는 자신이 대단한 파충류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하며 겸손을 부리지만, 무시무시한 독사를 만났는데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 맹독을 가진 타이판을 보고서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장면에서 클래라에게 반했다. 함께 있던 남성이 다른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클래라를 설득하는데, 클래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사이에 이 뱀이 집 안의 어떤 구멍들을 통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금 자신이 잡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진짜 멋져.


그렇게 멋지게 타이판 뱀을 생포해놓고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뱀 전문가에게 자신이 잡은 것을 보여주러 가는 길에는 또 소심해진다.


【노스는 덮개를 살짝 열어 틈을 벌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만약 저 뱀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뱀이라면 어떡하지? 무려 숀 노스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애완용 뱀 한 마리를 보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시차에 시달리며 브리스톨까지 온 것이라면, 멍청한 나는 무슨 낯으로 그를 본단 말인가?】


주인공이 이렇게 멋짐과 소심함을 오가는 캐릭터여서 이 소설이 한층 더 재밌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 흉터를 보고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할 때, '외모에 결함이 있으면 내면이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를 격려하려 했다. '사람들이 전부 외모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단다, 클래라.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마치 볼썽사나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더 좋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듯, 아니면 외모의 결함을 내면의 뭔가로 당연히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주변 인간들에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은둔형 캐릭터가 프로페셔널하게 활약하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고 뱀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들(?)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뱀은 무조건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뱀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어서 깜놀했다. 그리고 뱀은 끈적거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실크처럼 부드럽다고. 으아아아악, 상상하지 말자. 상상하지 말자. 살면서 읽게 될 뱀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다 읽은 것 같다. 더이상 뱀은 그만(ㅠㅠ) 샤론 볼턴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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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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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 플래그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읽었다. 동명의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고 책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한동안 절판이었던 모양인데 최근에 새 표지를 입고 다시 나왔다. 전자책도 나왔길래 냉큼 구입했다.


이 책은 1980년대, 에벌린과 니니 스레드굿 부인의 대화로 시작이 된다. 에벌린은 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 왔다가 니니를 만나게 된다. 니니가 에벌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에벌린은 처음에 니니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니니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니니가 해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지 스레드굿과 루스 제이미슨이 운영하는 그 카페는 기찻길 부근에 위치하여 오고 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지가 그 카페를 열었을 때는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시절이었다. 가난하고 배가 고픈 떠돌이 손님들이 휘슬스톱 카페로 찾아와 먹을 것을 주면 허드렛일을 해서 갚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지는 그런 손님들을 단 한 번도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흑인이 음식을 팔아달라고 찾아와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 시절, 흑인은 백인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다. 흑인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분리되어 백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활동해야 했다. 이지는 흑인들을 위해 뒷문에 메뉴판을 새로 달았다. 그들을 앞문으로 들여 테이블 위에 앉혀 음식을 먹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신들은 물론 그 흑인들마저 위험해지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어서 할 수 없이 뒷문으로 음식을 팔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그저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철길에서 놀다가 목숨을 잃거나 팔을 잃기도 하고, 2차대전에 참전하여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KKK단이 돌아다니면서 흑인들을 위협하고는 했고, 남편이 부인을 때려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 시절이었다. 이지와 루스를 비롯한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은 그 시절을 그저 무기력하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개인이 사회 전체를 뒤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몇 사람만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 주인공들은 알고 있었다. 이지와 루스, 그리고 십시와 온젤, 빅조지 가족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때론 잔인하고, 때론 따뜻했던 그 시절을 헤쳐나간다.


작가는 미스터리한 사건 두 가지를 던져주고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나는 대공황 시절 기차에서 물건을 훔쳐 흑인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길바닥이 던져주던 도둑 ‘레일로드 빌’이 누군인가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이다. 특히 살인사건과 관련된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괴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풍기니...이 소설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주요한 정서 중 하나는 ‘쓸쓸함’이다. 1980년대, 요양원에 들어와있는 니니 스레드굿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휘슬스톱 카페가 존재했던 과거 그 시절을 추억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니니의 이야기를 듣는 에벌린 역시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그들을 마치 친구처럼 느낀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비록 역사가 개인에게 잔인했을지언정 개인은 서로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던 시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에벌린은 자신이 살아가는 1980년대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정숙한 여자 프레임에 갇혀서 정작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은 전부 남처럼 느껴지고, 마트에서 웬 양아치 청년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에벌린은,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로 망가져버린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과거와 현재’의 대결은 불공평한 싸움이다. 과거는 언제나 힘이 세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는 말이 적혀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피루스에 진짜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진위 여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현재는 거지 같은 것이며, 요즘 애들은 언제나 예의가 없고, 세상은 계속해서 망가져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규정해버리면 나머지 삶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후에 남는 것은 '쓸쓸함'이라는 감정 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함정에 빠질 뻔했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과거는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현재는 왜 이렇게 거지 같은 거람?!!!


하지만 이 소설은 지나간 시절에 대해 추억하면서도 마냥 쓸쓸하게만 끝나지는 않는다. 1980년대를 살아가는 에벌린 카우치라는 인물 덕분이다. 에벌린은 니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비록 현재를 구성하는 그 모든 요소들이 짜증이 나긴 하지만, 에벌린은 자신에게 남겨진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니니로 인해 변화하게 되는 에벌린 카우치 덕분에 이 소설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소설은 계속해서 과거의 휘슬스톱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소중한 것은 현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에벌린 카우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우. 당신은 아직 젊어요. 마흔여덟 살이면 아직 아기일뿐이라고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메리 케이는 나이를 상관 안 해요. 그녀 역시 햇병아리는 아니거든요. 자, 내가 에벌린이라면, 그리고 에벌린처럼 피부가 곱고 에벌린 정도 나이라면, 캐딜락에 도전해 보겠어요. 물론 운전면허를 따야하겠지만 어쨌든 도전은 해 볼 거예요. 생각해 봐요, 에벌린. 에벌린이 나처럼 오래 산다면 앞으로 살 날이 37년이나 남아 있어요."】

 

【에벌린은 스레드굿 부인에게 이곳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음, 있어요, 가끔 느껴요.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으니....가끔 교회 사람들이 보러오긴 하지만 그저 안부 인사나 나누고 가 버리죠.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만나고 작별하는 거죠. 가끔 클리오와 어린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난 일들을 그려 본답니다.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스레드굿 부인은 에벌린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힘이에요,에벌린. 꿈,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한 꿈이죠."】


두꺼운 책인데도 흡입력이 굉장해서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여행 버킷 리스트에 '미국 남부에 가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먹기'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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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8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안 읽어봤지만, 여러 사람이 이 책 좋다고 하는 말은 본 듯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사람은 마음을 나누고 살았네요 한국 사람도 예전이 좋았어 하는 말 하기도 하네요 좋았던 때도 있지만 그런 때만 있었던 건 아닐 텐데... 정말 지나간 날이 더 힘이 센가 봅니다

좋은 날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지금을 살아야죠 지금도 좋게 만들어가면 되겠습니다 그게 쉬운 건 아니겠지만...


희선

Laika 2024-04-13 15: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좋은 날을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야죠! 이 책을 보고나면 그런 마음가짐이 드는 것 같아요...^^책을 보고나서 영화도 봤는데 책이 훨씬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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