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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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재미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결국 어떻게 살았을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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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독서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또 네 권 정도 벌려놓았다.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이니까 벌려놓는다, 라는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 책 보다가 저 책 보다가 하고 있다. 이북 리더기는 사실 병렬 독서 하기에 좋은 수단은 아니다. 종이책처럼 눈이 딱 보이게 쌓아놓을 수가 없어서 가끔 내가 지금 벌려놓은 책이 뭐가 있지, 하면서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읽고 있는 책' 폴더를 따로 만들어서 꺼내놓기도 하는데 그것도 별로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번 달, 나 혼자 슈테판 츠바이크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광기와 우연의 역사>, <우체국 아가씨>, <과거로의 여행> 읽었고 <발자크 평전>은 건너뛰고 <어제의 세계> 읽고 있다. '옛날에 말이야, 이렇게 좋은 시절이 있었지'라면서 쓴 일종의 회고록 에세이다. 학창 시절을 추억하면서 쓴 부분을 읽고 있는데 그 시절 17세들은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남학생들이고 아마도 전부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을 것이다.) 다들 소설 쓰고 시 쓰고 비평하고 어떻게든 스스로가 똑똑하고 잘났고 남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 츠바이크 스스로 말하길 자신들이 이미 선생님들이나 기성 비평가들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하니...10대 때 그런 지적인 탐험에 빠져봤다는 게 뭔가 부러웠다.


얼마 전 드라마<리틀 드러머 걸>이랑 영화<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너무 재밌게 봤어서 내친김에 이 책까지 집어들었다. 구독 서비스에 없는 줄 알고 구입한 건데 알고 보니까 밀리에 있었다. 뭐...사서 읽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괜찮아ㅠㅠ극초반 읽고 있는데 이 사람의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시작하는 거라서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얼른 읽고 싶다.


올해 영어 책 많이 읽어보려고 하는데 그동안 너무 어려운 책들만 읽었나 싶어서(너무 어려워서 전부 다 중도하차) 그나마 쉬워보이는 청소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청소년 소설을 읽으니까 진도가 좀 나간다. 오전에 시간 날 때만 읽고 있는데 4분의 1 정도 읽었다. 앞으로 이렇게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을 적절하게 배분해봐야겠다. 어려운 책들은 국내 번역본이랑 비교해서 읽는 편이고 이 책은 그냥 원서만 읽는다.


존 르 카레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의 첫 시작 <Call for the Dead> 읽고 있는데 처음부터 정말 모르는 단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린다. 괜찮아, 사전 찾으면 돼. 그래도 재미있다. 국내번역본이 절판 상태인데다가 전자책이 없어서 이 책도 원서로만 읽어야 한다. 번역본이랑 같이 읽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데 번역본이 없다니!! 튜브 없이 냅다 물에 던져진 기분이다. 죽지 않으려면 헤엄 쳐야겠지. 살아서 돌아와야겠다. (그나저나 Call for the Dead 책 표지인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왜 적혀 있는거지. 작가 대표작이 바로 이 책이다,라고 소개하는 셈인데...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띠지로 두를 법한 내용을 표지에 박는 대담함이란;;게다가 제목은 너무 작고 작가 이름은 너무 크다.)


요즘 영드 <셜록>을 다시 보고 있다. 한창 유명할 때 한 번 봤는데 최근에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았더니 쿠팡 플레이에 있다. 나는 쿠팡 와우 회원이 아니지만 엄마가 와우 회원이어서 아이디와 비번을 살짝쿵 빌려서 보고 있다. 쿠플에 <셜록>도 있고 <해리포터>시리즈 영화도 있고 <닥터 후>도 있다. <닥터 후>는 너무 길어서 엄두가 안 난다. 일단 <셜록>부터 보고 있는데 너무 노림수가 많다. 셜록이랑 왓슨을 왜 이렇게 엮어대려고 하는건지...ㅋㅋㅋ주변에서 쉴새 없이 엮어대고 홈즈는 아무 반응이 없고 왓슨은 진땀 흘리면서 부정하고. 예전에 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게 이상할 정도로, 너무 노렸다. 흐흠. 아무튼 재미있고, 런던 물가 비싸서 플랫메이트를 구할 정도라면서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고 밖에서 외식을 해도 되는걸까 궁금해졌다. 현실에서 그랬다가는 파산각인데. 셜록 역의 배우는 검은 머리가 낫다. <팅.테.솔.스>에서 하고 나온 노란 머리는 정말 안 어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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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오후 한 시쯤에 밀크티 한 잔을 사먹었다. 요즘 얼그레이 밀크티에 빠져 있는데 아이스/로우 슈가/라지 사이즈로 주문하면 딱 좋다. 문제는 카페인이다. 희한하게 나한테는 커피보다 밀크티가 더 카페인 각성 효과가 크다. 오후 한 시면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문제 없는 시간대인데 밀크티는 문제가 있다. 그날 자정이 넘어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예 말똥말똥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피곤하고 잠이 오는데 잠에 빠져들지 못하는 묘한 각성 상태였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아침, 일어나니까 너무 피곤했다.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좀비처럼 지냈다. 책만 펴면 잠이 쏟아지는데 낮잠 잤다가는 또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버티다가 저녁 8시에 쓰러져서 잠들었다.


어제 잠 안 자고 버티면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다. 얼마 전 <리틀 드러머 걸>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또다른 존 르 카레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를 골랐다. 사실 <팅.테.솔.스>를 몇 년 전에 보다가 인물들이 너무 헷갈려서 중간에 끈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아예 노트와 펜을 들고 새로운 사람들 나올 때마다 메모하면서 봤다. 유명한 영국 배우가 총출동한 영화라는데 나는 영화도 드라마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아는 얼굴이라고는 콜린 퍼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정도였다. 콘트롤 역의 배우와 조지 스마일리 역의 배우도 낯은 익은데 완전히 얼굴을 익힌 상태는 아니라 처음에 둘이 헷갈렸다. 


그렇게 보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해버렸다. 어느새 노트도 내려놓고 모니터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봤다. 하...너무 재밌다. 원래 로맨스 작품보다는 심장 쫄깃한 추리 스릴러물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팅.테.솔.스>는 잔잔하고 차가운 스파이물이라고 해서 내 취향 아닐까봐 오래 미뤄뒀다. 그런데 완전히 취향저격 당했다. 몇 년 전에 극장에서 재개봉 했던데 그때 못 본 게 한이다. 


영화 다 보고 나서 바로 존 르 카레 소설들을 찾아봤다. 책이 엄청 많은데 어쨌든 그 중에서 조지 스마일리가 나오는 시리즈 위주로 검색했다. 그런데 뭔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 번호 매겨서 쭉 나온 게 아니라서 그야말로 중구난방 제각각이다. 아마존 사이트를 검색했더니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순서가 나와있다.


1. Call for the Dead

2. A Murder of Quality

3.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4. The Looking Glass War

5. Tinker, Tailor, Soldier, Spy

6. The Honourable Schoolboy

7. Smiley's People

8. The Secret Pilgrim

9. A Legacy of Spies


이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 번역본들을 찾아보는데 1번인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죽.자.전)>가 절판이다. 두두둥. 시리즈 맨 첫 번째 책이 절판이면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말이다. 심지어 전자책도 없다. 아니 전자책이 존재하는데 팔지를 않는다. 알라딘과 교보에서는 전자책이 검색되지 않고, 예사에는 전자책이 있다고 나오는데 절판이라면서 주문 버튼을 없애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ㅠㅠ 시리즈 2번인 <A Murder of Quality>는 국내 번역본이 없고 3번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추.나.스)>부터 정상 유통되고 있다. 앞의 두 권을 건너뛰고 시리즈 3번부터 읽으려니까 왠지 손이 안 간다...

지금은 품절 상태인 <죽.자.전>과 <추.나.스> 합본판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시리즈 3번인 <추.나.스>가 <죽.자.전>보다 더 앞에 와있다ㅋㅋㅋ그러니까 독자들은 시리즈 3번을 먼저 읽고 1번을 읽게 된다는 소리다. 왜 이렇게 혼란스럽게 책을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현재는 품절이니까 다행이다.


다른 책들도 더 찾아보았다. 시리즈 4번인 <The Looking Glass War>는 '거울 나라의 전쟁'이라는 영화만 검색되고 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조지 스마일리가 주인공이 아니어서 안 읽어도 된다는 평도 있다. 오케이, 이 책은 넘어가겠어. 


그 다음이 시리즈 5번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인데 스마일리 시리즈 중에서 5, 6, 7번을 따로 묶어서 '카를라 3부작'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팅.테.솔.스>는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5번이면서 카를라 3부작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 중요한 책인 것이다. 그래, 카를라 3부작을 읽어야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자마자 또 구매 욕구가 사라진다. 왜냐하면, 몇 십권도 아니고 고작 3부작인데 그 안에서 출판사가 갈리고 표지 디자인도 전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통일성 있는 표지를 원했단 말이다.

심지어 <팅.테.솔.스>와 <오너러블 스쿨 보이>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건데도 어떻게 이렇게 표지 통일성이 떨어지는지 모르겠다.(<스마일리의 사람들>은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나왔다.) 


문제는 또 있다. 영화 배우 얼굴과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4월 전격 개봉'이라고 쓰인 저 표지 말이다. 지금이 2024년인데 2012년 개봉한 영화의 배우 얼굴이 박힌 표지를 갖고 싶지도 않고, '4월 개봉'이라는 말도 너무 거슬린다. 저걸 표지에 박아버리면 나는 영원히 2012년에 갇혀버리는 셈이다. 아마도 띠지로 만든 것 같은데 종이책 사용자들과 달리 전자책 사용자들은 띠지를 벗길 수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전자책 표지를 따로 올려주지 않는 한 저 책을 구매할 수는 없을 것 같다...ㅠ


슬픈 마음을 안고 다른 책들을 더 찾아봤다. 시리즈 8번인 <The Secret Pilgrim>은 국내 번역되지 않은 듯 하고 마지막 9번이 <스파이의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존 르 카레 소설을 열린책들에서 한참 내다가 그 후에는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내는 듯 싶더니 또 열린책들에서도 나온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출판사가 갈라지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미국 아마존을 살펴보니 한 출판사에서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아홉 권을 전부 출간했고 표지 디자인도 통일성 있게 만들었다. 심지어 박스 셋도 팔고 있다. 좋겠다...부럽다...이렇게 또 영어 공부를 다짐해본다. 아무래도 존 르 카레 소설은 내가 영어 실력을 키워서 원서로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한국어 번역본이 싫은 건 절대 아니다. 한국어를 사랑하고 번역가라는 직업을 너무 사랑하고 번역가도 아니면서 번역 관련 책도 읽어봤다. 다만 출판사 두 곳에서 내는 바람에 표지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 심지어 한 출판사 내에서도 표지 디자인 통일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시리즈 맨 첫 번째 책은 전자책도 없이 절판되었다는 점, 표지에 배우 얼굴이 박혀있다는 점 등등 구매 욕구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판권을 전부 사들여서 통일성 있는 시리즈로 출간해주면(전자책도 함께 내준다면) 구매할 의사가 생길텐데 그 전까지는 모르겠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이렇게 또 2024년 목표인 영어 공부 의지를 불태워본다.


아무튼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순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절판)

2. A Murder of Quality(미번역)

3.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4. The Looking Glass War(미번역)

5.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6. 오너러블 스쿨보이

7. 스마일리의 사람들

8. The Secret Pilgrim(미번역)

9. 스파이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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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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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원이다. 이름은 크리스티네.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1926년 어느 날, 이모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게 된다. 이모는 미국에 살고 있어서 그동안 전혀 교류가 없는 사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유럽으로 휴가를 왔고 자신의 언니, 즉 크리스티네의 엄마를 자신이 묵는 호텔로 초대했다. 하지만 크리스티네의 엄마는 너무나 몸이 쇠약해져서 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엄마 대신 크리스티네가 이모를 만나러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그 여행으로 인해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너무나 간단해서 몇 줄로도 요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간단한 스토리라고 해서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는 작가 츠바이크의 맹렬한 힘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전쟁 후의 가난을 묘사하는 이런 문장들에서 무릎을 꿇었다.


" 1919년, 여자가 스물한 살 때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당국이 끝없이 쏟아내는 법령 아래 숨었을 뿐이었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전쟁공채와 지폐의 방공호 아래로 교활하게 기어 들어가 숨어 있던 가난은 뻔뻔스럽게 기어 나와 우묵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며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전쟁의 시궁창에 남겨진 것들을 집어삼켰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던 겨우내 하늘에서는 수십만, 수백만 개의 돈다발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눈은 온기 있는 손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돈은 잠을 자는 사이에도 녹아버렸다. 다시 시장으로 뛰어가기 위해 나무 굽을 댄 구두로 바꿔 신는 동안에도 돈이 날아가 버렸다.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항상 너무 늦었다. 생활이 수학이 되고,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숫자들의 소용돌이가 되고, 마지막 남은 물건들을 시커멓고 탐욕스런 진공 속으로 빨아들이는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준 황금 머리핀이 머리에서 사라졌고, 어머니의 결혼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갔으며, 다마스크 식탁보가 식탁에서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던져 넣어도 소용없었다. 그 시커먼 지옥 같은 구멍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늦게까지 잠도 못 자고 앉아서 털스웨터를 짜거나 방을 전부 세놓아도, 부엌을 침실 삼아 다른 사람과 같이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잠을 자는 것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 안 드는 일이었다. 여자는 늦은 밤, 지옥 같은 현실은 잊은 채 지치고 수척해진 육체를, 설렘이 사라져 버린 돌덩이 같은 육체를 침대에 눕혔다."


크리스티네 가족은 전쟁 전에는 꽤나 멀쩡하게 살았다. 아버지와 오빠가 동물박제 사업을 했는데 꽤나 실력이 좋아서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졌고 "지금처럼 총으로 사람을 쏘아 죽이는 전쟁 중에 박제를 주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마디로 전쟁으로 인해 집안이 쫄딱 망했고 크리스티네 가족은 산송장과 다름 없는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크리스티네가 미국에 살던 부자 이모를 만나고 나서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지점부터는 소설이 힘을 얻어서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도대체 크리스티네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측이 안 되어서 책을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결말 부분은 스포라서 여기에 적을 수 없지만 맨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티네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과연 그 결심이 어떠한 것일지 두구두구.


이 책은 1차대전 이후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 들어 어쩐지 그 시절이 남일 같지가 않다. 신문을 보면 연일 여기저기서 전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끝이 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싸우고 있으며 심지어 전쟁이 더 확대될 조짐을 보인단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건인지, 폭력은 왜 이렇게 반복되는 것인지 정말 심란한 요즘이다.


이 소설 다 읽고나서 <리틀 드러머 걸>시리즈를 봤는데 폭력의 고리를 끊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우울해졌다. 흑흑. <리틀 드러머 걸>은 1970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테러 작전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 보고나서 이 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진짜 '인간이 뭔가' 싶어진다.(그래도 <리틀 드러머 걸> 작품 자체는 강추다)


그래도 크리스티네가 부자 이모와 만나고나서 변신하는 장면에서는 한 인간의 특성이라는 건 확정지을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자멸하는 길로 걸어가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문장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사람은 꼬리가 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 도마뱀이 아니야. 자네가 말했듯이 내가 운이 좋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열여덟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황금 같은 6년이 살아 있는 육체에서 잘려 나가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불구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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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몇년 전에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라는 제목으로도 나왔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번역자도 같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나오면서 너무나 직관적인 제목을 버리고 <우체국 아가씨>라는 제목을 택했다. 게다가 표지도 아련하게 바뀌었다. 표지 새로 입힌 건 정말 다행이다. 예전 표지였으면 나는 절대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 표지는 흡사 까치에서 나온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리게 한다. 악몽 같은 표지다. 존.세.거는 종이책만 리커버 하지 말고 전자책도 리커버 좀 해주길 바란다ㅠㅠ


<우체국 아가씨> 읽기 전에 <광기와 우연의 역사>도 읽었는데 이것도 국내 출판본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들이 퍼블릭 도메인이어서 여기저기서 번역되어 나온 것 같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제일 최근에 나온 이화북스 버전으로 읽었다. '최신 완역판'이라는 문구에 끌리기도 했고 전자책으로 나온 게 이것밖에 없었다.


또 무슨 책들이 있나 찾아보다가 <마리 앙투아네트>도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들은 아직 전자책이 없는데 츠바이크 선집을 내고 있는 이화북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꼭 전자책으로 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츠바이크의 책을 좀더 찾다가 예쁜 표지로 유명한 녹색광선에서도 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녹색광선은 전자책을 내지 않으니까 나 같은 전자책 사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똑같은 제목의 책이 하나 보인다. 이것도 같은 내용인가보다. 표지만 보면 녹색광선이 가장 최신에 나온 책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세창출판사 버전이 더 최신이다. 이 출판사에서는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를 내고 있다. 게다가 전자책도 있다. 전자책 이용자인 나는 만약 <감정의 혼란>이 읽고 싶다면 세창출판사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쯤 되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츠바이크의 책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출판이 된 걸까. 이걸 어느 정도 알아둬야 겹치기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몇 개 더 찾아봤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체스 이야기>와 <낯선 여인의 편지>도 세창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낯선 여인의 편지>와 <모르는 여인의 편지>로 제목이 살짝 다르지만 같은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나온다. 너무 많아서 맨 위에 있는 책들만 가져왔다.


소설집도 그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의 수록 작품은 '아찔한 비밀, 불안,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 모르는 여인의 편지, 보이지 않는 소장품, 어느 여인의 24시간'이다. 이 안에 '모르는 여인의 편지'가 또 수록되어 있다. 맨 마지막에 실린 '어느 여인의 24시간'도 낯이 익은 제목이다. 빛소굴 출판사에서 낸 츠바이크 소설집 '과거로의 여행'에 실린 두 번째 작품 제목이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인데 아마도 두 개가 같은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천재, 광기, 열정>이라는 책이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를 쓰다'라는 제목의 츠바이크 평전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들의 원전이 바로 <천재, 광기, 열정 1,2>라고 소개해준 페이퍼를 발견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헷갈릴 뻔 했다. <천재, 광기, 열정 1,2>에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클라이스트,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총 8명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쓰다' 시리즈에서는 클라이스트와 디킨스 내용이 빠진 듯 싶다.


이처럼 수도 없이 변주되어 나온 츠바이크의 책들인데 대산세계문학에서 나온 <초조한 마음>은 국내 출판본이 이거 하나뿐이고 전자책이 없다. 대산세계문학에서 전자책을 만들 계획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해서 전자책이랑 같이 출간할 계획이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전자책으로 읽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ㅠㅠ그야말로 초조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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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4-01-2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요 몇년 사이 처음 알게 되어서 빛소굴의 우체국 아가씨, 녹색광선의 감정의 혼란, 빛소굴의 과거로의 여행,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초조한 마음을 총 네권을 샀는데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저는 그냥 표지가 예쁘기로 유명한 녹색광선 책을 사모으다가 빛소굴 책도 예뻐서 같이 사모으다가 (초조한 마음은 번역본이 이거 하나 뿐이라 그냥 샀고요) 아무튼 사모으기만 하고 아직 읽지는 않은 저로서는 같은 책을 여러 권 사지 않은게 운이 좋았네요. 😅

Laika 2024-01-23 18:02   좋아요 1 | URL
저도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츠바이크 책들이 꽤나 잘 팔렸던 걸까요ㅎㅎ...아무튼 겹치기 구매를 하지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저도 이것저것 전자책으로 구입했는데 다행히 중복되는 내용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