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명화로 읽는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4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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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약 20일 정도의 시간을 내어 러시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의 첫 시작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그곳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그림 구경을 했다. 그림에 엄청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봐야할 그림이 너무 많아서였다. 여행을 온 거니까 유명한 그림들은 다 보고 가자고 마음 먹고 몇날 며칠 미술관 투어를 했는데 그 많은 작품들을 전부 다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술관이 또 엄청나게 넓어서 수박 겉핥기로 보는데도 나중에는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해야 했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면 종아리가 붓고 발바닥이 아파서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우리는 나중에 꼭 시간 내어 러시아에 다시 오자고 약속 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전쟁이 터지고...러시아에 다시 가자는 우리의 약속은 저 멀리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작년말 무렵, 러시아 여행을 추억하면서 러시아 관련 책들을 몇 권 찾아서 읽어보았다. 여행 가기 전에 그래도 러시아 역사를 좀 공부하고 갔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 나는 건 표트르, 예카테리나 같은 엄청나게 유명한 몇 사람들의 이름뿐, 러시아 역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러시아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몇 권의 책을 골랐는데 그 중에서 이 책이 제일 재미있었다. 이반 뇌제부터 러시아 혁명까지 이어지는 러시아 왕실의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이 펼쳐 놓는데, 역사서이면서도 소설책을 읽는 느낌마저 들었다.


[ 로마노프가의 권세는 다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니스타시야가 후계자가 될 아들들을 남겼다고는 해도 뇌제의 재혼을 막을 수 없었다. 만약 새 황비가 마음에 든다면 그녀가 낳는 아들이 후계자로 지명될 것이다. 모든 것은 뇌제의 기분에 달려 있는데, 심지어 그 기분은 정상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변덕스러워지고 있었다.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된 것도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는 잇따라 새 황비를 맞아들여 전부 7명이나 되는 비를 두었지만, 저주라도 내린 듯 남자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


황제의 정신 상태는 망가져 가고 있는데 저주에 걸린 듯 남자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니...너무 재미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 일리야 레핀의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이라는 유명한 역사화가 있다. 죽어가는 자식을 끌어안은 차르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경악하는 모습을 그린, 충격적이고도 '무서운 그림'이다. 뇌제의 나이 50세, 이반의 나이 2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황제 나이 50세에 27세 아들을 뒀으면 자식 농사는 어느 정도 성공이다. 황제는 아들한테 왕위를 물려주고 편하게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두두둥. 1581년 11월 16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화가는 그 날의 사건을 그림으로 남긴 걸까. 너무 궁금해서 책장이 마구마구 넘어간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인물들은 웬만한 막장 드라마 캐릭터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렬한 인성들을 갖고 있어서 '이게 말이 돼?' 싶은 일들도 있고 '이 사람은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은 사람도 있으니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절대 지루하지 않다. 이런 재미난 스토리에 그림까지 덧붙여 놓으니 금상첨화다. 실제로 눈으로 보고온 그림들도 등장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계가 없지만, 나 혼자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점이다. 


[ 아나스타시야의 친정 로마노프 가문과 새 차르 표도르 1세의 황비의 친정 고두노프 가문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나스타시야의 조카 '표도르 니키티치 로마노프'와 표도르 1세의 황비의 오빠 '보리스 고두노프'의 대결이었다.] 


'누구 가문과 누구 가문이 경쟁했다'고 쓰고 끝내는 것보다 이렇게 정확하게 써주니까 훨씬 읽기에 편하다. 비록 러시아 이름의 압박 때문에 메모 해가면서 읽기는 했으나 그냥 술술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책 맨 앞에 왕실 가계도가 있어서 헷갈리면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된다.


작년말에 이 책을 완독하고 이번에 리뷰 쓰느라 다시 읽고 있는데...또 재미있다. 작가가 글을 잘 쓴 건지 로마노프 왕실 스토리가 막장이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무 재미있다ㅋㅋㅋㅋ. 러시아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지금까지 나의 베스트다. 역사서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이 책은 성공이라고 본다. 


작년말에는 이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빌려 읽고 끝낼 책이 아닌 것 같아서 이번에 이 책을 포함한 시리즈 전체를 구입했다. 합스부르크, 부르봉, 독일 프로이센, 영국, 그리고 러시아 로마노프 이렇게 다섯 권이 나와 있다. 다른 네 권도 이 책만큼이나 재밌기를 바라본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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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0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화로 보는 역사여서 재미있겠습니다 역사는 사람 이야기기도 하네요 다시 러시아에 갈 수 있는 날 오겠지요 그림을 많이 보시다니 좋은 기억으로 남았겠습니다 다시 가실 날 있을 겁니다


희선
 
[eBook] 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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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월가는 돈을 뺏고 동급생들은 재능을 뺏고 교수는 자존감을 뺏고 학교는 풀타임 강의자리를 줬다뺏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주인공이 가르친 학생들의 미숙한 한국어, 노숙자에게 준 20달러, 지랄맞은 남매 관계, 가족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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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탄탱고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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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또 희한하게 멈추고 싶지는 않아서 끝까지 읽었다. 역자 해설까지 읽으니까 비로소 뭔가가 보이는 느낌. 1부의 3장과 2부의 2장이 제일 인상깊었다. 영화도 찾아봤는데 7시간이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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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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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이론서가 시중에 꽤나 많이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좋았다. 책을 읽고나면 항상 밑줄 친 부분을 노션에 옮겨 적는데 이 책은 밑줄을 너무 많이 쳐서 노션에 옮기지 말까 고민하기도 했다.


우선 나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다. 이 책을 철저하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읽었다. 그동안 봤던 소설과 드라마들을 떠올리면서 '맞아맞아. 이런 부분은 이래서 별로였고 이런 부분은 이래서 정말 좋았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좀더 실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이 책 원서는 2012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10년 전에 번역이 되어 나왔는데 이번에 새 표지를 입고 새로 나왔다.


[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지금 눈앞에 어떻게 이리도 강력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묻는 우리 뇌의 영역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환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진짜처럼, 삶처럼 느껴진다. 최근 학술지에 보고된 뇌 영상 연구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움직이는 부분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인간이 강력한 이야기에 몰입할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밤새 읽기를 멈출 수 없을 때 우리가 느끼는 생생한 이미지와 본능적 반응을 설명해준다. ]


십몇 년 전에 쓰인 책이라서 그 사이에 뇌 과학 분야에서 어떤 연구들이 더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은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진짜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몰입도 높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한 12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장부터 12장까지 전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었던 건 6장이었다. 6장 제목은 '구체적으로 쓰기', 부제는 '떠올릴 수 없다면 존재하는 게 아니다'이다.


이런 문장을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2006년 10월, 허리케인으로 인한 홍수로 6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감정은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엄마 손을 놓치고 홍수로 떠내려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수도 있다. <끌리는...>은 이게 바로 구체적으로 쓴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소설 안의 문장에서도 일반론 대신 구체성을 끄집어내라고 요구한다. '트레버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문장을 쓰지 말고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힘을 굉장히 강조한다. '아름다운 글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고 '이야기가 아름다운 글을 이긴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견해는 <끌리는...> 작가의 견해와 99% 일치한다. 나는 소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밑줄 친 문장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다 읽고 나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라고 곱씹을 수 있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밖에도 갈등은 이런 것이어야 하고, 복선은 이렇게 짜야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실용적인 방법론을 풀어놓는다. 구체적으로 쓰라고 요구하는 사람답게 이런 주장을 할 때마다 사례를 들어 비교해준다. 밋밋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바뀌는 과정을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중이 제머리를 못 깎는 것처럼 작가들은 자신이 쓴 이야기의 단점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제삼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끌리는...>을 쓴 작가는 본인이 소설을 쓰지는 않을지라도 남들이 쓴 소설에서 이런 저런 부분을 만지면 어떻게 좋아질 수 있을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소설 창작을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 문지혁 작가다. 이 분이 쓴 소설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번역서도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번역도 걸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잘 읽혔다.


[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을 살 수 있고,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는 35초도 살 수 없다고. 그렇다. 35초란 우리 뇌가 각종 정보를 분석하는 속도에 비하면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충동이다. 우리는 언제나 의미를 갈구하는 존재다. ]


[ 주제는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절대 노골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함축되어 있다. 주제를 최우선으로 하고 이야기는 그 다음에 놓는 책과 영화들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깨기 쉽다. 이야기가 주제를 보여주는 것이지, 주제가 이야기를 말해주는 게 아니다. ]


[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것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죽이기 전에. ]


[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가? 이따금씩 흥미롭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방향으로 빗나가지는 않는가?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독자의 기대를 꺾어버리지는 않는가? 빨간 펜을 꺼내 그 부분을 표시하라. 소심해질 필요는 없다. 일찍이 새뮤얼 존슨이 작가들에게 했던 충고를 기억하라. "당신이 쓴 글을 꼼꼼히 읽어라. 그리고 특별히 맘에 든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그걸 빼버려라.” ]


[ 독자로서 우리가 찾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과 연관시킬 수 있는 무엇이다. '자신의 진실'에 집중하는 작가들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이 쓴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원하는 한, 글쓰기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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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 -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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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문외한이어서 전체적으로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 챕터에서 이 작가의 엄청난 필력을 느꼈고 이 작가의 글을 더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완벽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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