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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근육 트레이너의 말

  김영하 <말하다>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보다>에서 일상에서의 사회구조와 세밀함을 보았다면 <말하다>는 작가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 대담, 강연을 모아 엮은 것이다. 1995년에 첫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니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썼고 많은 곳에서 강연을 했으니만큼 그 많은 말들 중에서 이 책에 담은 내용은 어떤 특별함이 있어 선택한 것일지 기대하게 된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로서 ‘글쓰기’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글쓰기의 방법, 문학 등에 관련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때의 강연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주제에 맞추어 재정리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글쓰기로 살아온 작가로서 소설가로서의 정체성과 비전에 관한 강연과 질문들이 많았겠다 싶다. 다시 한번, 김영하 작가가 한국에서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작품이 번역된 인기 작가라는 것을 생각한다.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없어 작가의 말투나 몸짓은 모르겠다. 오래 전 TV의 여행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은 기억하는데 작가의 말투는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들을 그의 말로 전환해 듣기는 실패했다. 음성지원은 멀리고 가고 글을 통해 오히려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글을 읽었다. 어쨌든 제목은, <말하다>니까.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p28


  작가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위해서는 단단한 내면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데 그렇기에 “감성근육”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 말하는 감성근육이란 결국 더 많이 깊이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는 일들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 감성근육을 키우는 방법으로 어쩌면 글쓰기만한 방법이 있을까. 아마도 작가의 감성근육은 읽고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글쓰기에서 길러지고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자기해방이다. 글을 쓰는 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권리라 외친다. 이러한 생각으로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기에 다양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로서의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p57.


  그리고 작가가 되는 데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책’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것만이 작가를 만든다고 말한다. 모든 작가가 독자였고 주변 작가들에게도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단다. ㅎㅎ.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라고 말하는 작가의 한 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영하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운명이기 때문일까? 언젠가 어느 글에서 작가가 점을 보았는데 전혀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때였는데 작가를 언급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작가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p121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개인 블로그나 컨텐츠가 많이 있으니까 재능을 펼칠 여건이 많고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글’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어떤 분야의 재능은 꼭 누군가에게 정해진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것을 배워야 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에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발을 담궈볼 기회도 갖지 않으려 하거나 금세 풀이 죽어 ‘내 길이 아닌가봐요’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듯 온전히 기술과 기법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전혀 아니다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분명 글쓰기는 작가가 말하듯 ‘감성근육’을 키우면 다가가기 쉬워질 것이다. 아니 감성근육을 키우다 보면 가까이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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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충동을 몰고 온 여자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Writing Down the Bone

나탈리 골드버그, 권진욱 옮김, 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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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한 기술에 대한 글이기보다는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마음가짐, 의식에 관한 조언이 주가 되고 있다. 이러한 조언을 위해 저자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하고 있던 ‘선명상’의 방법적인 것을 글쓰기를 위한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가 전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보다 많이 비우고 덜어내고 느낌대로 따라가라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목차를 구성하기 보다는 에세이 형태로 짧게 글쓰기에 대해 자신이 가지는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리하여 60가지가 넘는 소꼭지로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독려하고 있다.

 책을 처음 읽은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그 새 검열관이 들어왔다. 처음엔 음~하며 읽었던 듯한데 북리뷰로 쓰려다 보니 제법 많은 검열관이 이 책을 검열한다. 글쓰기가 안됨에 대한 반발일까.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자연스러웠다는 정도. 작가가 제시하는 글쓰기 책이라고 하기엔 명료한 느낌이 들지 않은 책. 물론, 혼을 빼놓을 순 있겠다 싶다. 그것은 이 책이 조금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글을 쓰는 방식이 그러한 모양이다. 동양철학, 선명상을 글쓰기에 접목하고 있다고 말하듯이 곳곳에 그 느낌이 들어 있다. 그런 탓에 오히려 ‘나도 글을 쓸 수 있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느껴졌다. 몽환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단, 한번이다. 다시 읽으니까 검열관이 살아나며 냉철하게 봐지더라...

  우선, 이 책은 글쓰기를 내세운 명상(?) 수련 책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마치 글쓰기를 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신비체험을 하는 것인 마냥 깊은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맞다. 그렇게 몰입과 황홀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선’을 접목한 글쓰기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글쓰기가 모든 영감의, 생각을 비우는 형태의 명상수련법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니까.

  두 번째, 다른 책들도 그렇고 나도 쓰게 되면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녀의 글쓰기 방법이 다른 글쓰기 책과 차별점이 무얼까. 선을 공부하는 그녀의 체험이 가미된 ‘생각하라’ ‘몰입하라’ ‘버려라’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마침 다른 글쓰기 책을 읽었고 그 책은 그녀의 책보다 이전에 출간된 책이었다. 말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 즉 글쓰기 방법이라 소개하는 내용이 독특하다거나 하지 않다는 것.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책은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내용을 좀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한다. 나열된 제목처럼 나탈리는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매우 많았던 듯하다. 하지만, 읽다 보니 반복적이다. 강박적이기까지 하다. 그녀 자신이 첫 문장에 사로잡혀, 영감에 사로잡혀 검열관은 냅두고 마구 글을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다. 조금 검열관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관련된 내용과 메시지, 제목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을 듯 보인다. 글쓰기의 방법론은 적게 나왔지만, 방법론과 글쓰기를 위한 마음가짐, 작가에 대한 인식 등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생각들을 전개해 나갔다면 글의 내용이 좀 더 깔끔하게 와 닿았을 것 같다.


 ‘선’, 동양철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명상하는 서양 여자.


 서점을 가면 글쓰기 책이 즐비하다. 세상은 글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 마냥, 글을 쓰는 것이 인생과 직결되는 것처럼 글쓰기 책이 연이어 생산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글쓰기 책은 증가하는 이 현상은 뭐지? 넘치는 글쓰기 책 중에서 나탈리의 글쓰기 책이 많이 거론된다. 왜지? 이 책은 1986년도 출간이고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책을 뛰어넘는 책이 나오지 않은 걸까. 당시 이 책은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또, 백만부의 판매고까지 올리며 전세계에 번역, 출간되었다 한다.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어떠한 글쓰기의 맛을 느꼈을까. 실질적으로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떠나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나탈리는 폴란드계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고 결혼과 이혼 과정을 거치며 살다가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치면서 인생의 전환을 겪게 되었다.

 그녀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그녀의 글쓰기와 그림보다 선행하는 것은 ‘선명상’으로 보인다. 그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맛도 약간 몽환적, 동양적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녀의 삶에서 이 명상을 통한 수련으로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듯하다. 글쓰기의 내용도 명상이 상당히 접목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널리 전하며 여전히 명상을 수행하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강의를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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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에 대한 직진 안내서



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 홍승완, 위즈덤하우스, 2008.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책쓰기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왜 책을 써야 하는지와 책을 쓸 때의 원칙, 구체적인 책쓰기 실천방법, 그리고 책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클리닉을 단계별로 제시함으로써 책을 쓰는 동기부여에서부터 실천까지 일관성 있게 가이드해주고 싶었다. p11


  저자들은 이 책의 목적을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 7장의 뼈대를 만들고 책을 써야 하는 이유와 책을 쓰기 위한 구상방법, 재료, 글쓰기방법, 출판을 위한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중간 중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에 대한 질의를 코멘트해주는 ‘책쓰기 클리닉’을 삽입하여 감칠맛을 더한다. 이 책쓰기 클리닉은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한 뒤데 붙여져 있다. 즉,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을 글쓰기, 책쓰기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다. 또 하나, 첫 책을 낸 저자들과 출판사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실제 책을 내본 저자와 출판사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생에서 왜 책을 쓰는 이유가 중요한지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들의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이야기로 ‘책쓰기’가 인생의 변화에, 전환에 매우 큰 영향력이 있음을 열렬하게 설득하고 있다. 책을 써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마치 정말 그래야 할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방법적인 노하우를 알려준다 해도 주술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듯하다.

 글쓰기, 책쓰기에 갖는 어려움에 대한 친절한 고민상담란을 두고 있어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구나 하는 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또한 책을 쓴 저자들의 경험담을 보여주어 좋았고, 마찬가지로 출판사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실상 글쓰기 책은 너무 많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바라고 책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수많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나와 있다. 한번도 글을 써보지 않은 이가 글쓰기 책을 내기도 한다. 글쓰기의 매력이 무엇이기에를 느끼기 전에 대부분 자신은 이렇게 글쓰기를 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방법을 전하는데 사실 많은 책들이 말하는 ‘글쓰기 방법’은 차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하려는 핵심이 비슷하고 실제 글을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공통적이기에 그에 대한 방법 역시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기대가 덜한 탓일까. 그저 그런 글쓰기 책이라고 생각했다가 오,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 특히 글쓰기보다는 책쓰기에 집중이 된 책이라 ‘책을 써내야 한다’는 나의 의무로 인해 흡인력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구성이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일기가 있어서 재미있긴 했지만 출간일기가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실제 진행과정을 정리한 것인데 구체적으로 책을 쓰는 과정의 일정별 체크리스트를 보여주면 시간계획을 세울 때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처음엔 장뒤에 붙은 책쓰기 클리닉이 내용과 너무 중복되는 측면이 있기도 해서 이 부분을 뒤에 한챕터로 몰아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읽고 나서 핵심을 다시 되새기는 측면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관련 방법과 연결된다는 측면으로 보면 이 구성도 나쁘진 않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저자들을 내가 알고 있다. 도서관에 책방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 내가 저자를 제법 알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명의 저자가 쓴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많이 보지 않았는데, 이것을 구별해 낸다니. 그만큼 저자들의 글쓰기 방식이나 말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저자인 오병곤의 평소 하는 말투나 전하는 메시지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홍승완의 경우도 강연에서 하는 말투나 메시지가 드러났다. 결국 책이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풀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두 사람 다 ‘구본형’이라는 사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애제자로서 사부가 전한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열심히 공헌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잘 모르고 보면 낯선 저자들이긴 하지만, 잘 보면 친근한 느낌이다. 책쓰기라는 어렵고 힘들다는 과정을 편하게 이끌어가는 주축이다. 두 사람이 같이 이야기하는 모습은 좀, ‘푼수?’같아 보이지만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책쓰기 책 만큼은 경쾌함과 묵직함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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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아이러니에 빠질 시간

 

  타인의 독서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 어떤 문장과 단락을 좋아하는지 비교해 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가지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선택하는 책에서 취향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아하, 이런 책이었어?“라는 생각을 읽은 책에서는 ”음, 그렇군“ 하고 읽게 된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은 동서양의 문학과 철학 17개의 고전을 다루고 있다. 이를 크게 두 부분, 욕망과 도전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각각에 또다른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책의 내용을 풀어나간다. 제1부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에는 젊음, 배움, 도전, 고뇌, 성장, 자유, 정의, 성, 사랑이라는 9개의 키워드를 제2부 ‘모험을 선동하라’는 인생, 지혜, 사랑, 전통, 선택, 여행, 운명, 화해와 공존이라는 8개의 키워드를 핵심으로 선정하고 있다.

  고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하며 풀어나가는 책으로 고전을 소개하는 내용으로도 무방하다. 따라서 순서대로 읽어나간다거나 할 필요없이 목차를 보고 ‘필’이 오는 제목을, 책을 선택하여 각 장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고전에서 발췌한 부분, 그에 따른 사유의 연결이 이어지며 특히 어느 부분만이 감동적이다라고 하기 어렵게 전반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좋아하던 책은 좋아하였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을 그렇기에 감동적이다. 그간 저자의 책에서 많이 다루어 익숙한 신화를 제외하고 동양의 고전과 접목한 화두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편지도 좋았고, 자유를 외치는 그리스인 조르바도, 고뇌에 가득찬 베르테르와 라스콜리니코프도, 안티고네 이야기도 좋다. 그들의 이야기가 좋고 거기에 따른 생각 또한 좋다. 오디세우스와 오이디푸스는 익숙함인지 그들의 운명과 인생에 대한 애잔함 때문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석가가 아난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법을 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난아, 울지 마라. 이별이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이 문구로 저자가 떠올려지며 마음이 아릿해지지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제일 먼저 나온 책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며 마음이 먹먹해지며 첫 장을 들어가는데 미적거리게 만들어서인지 또한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이어져서인지 기억에 남는 장이 되었다. 그 중 한 부분이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글을 쓰게 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글쓰기가 좌절되었을 때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깊고 조용한 밤에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 답을 찾아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당신이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해 강력하고 확고하게 ‘써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성에 따라 세우십시오. 당신의 삶은 아주 하찮고 무심한 순간이라도 이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에 다가가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말로 표현해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충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왜 하필 이 책인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전의 선정 기준이었다. 왜 하필 이러한 책들일까? 책으로부터 저자가 강조하는 변화경영의 화두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익숙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민과 가치들을 어떤 책에서 이끌어 내느냐는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책의 선정 기준을 보니 저자가 마지막까지 방송했던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엮으며 저자가 남긴 칼럼과 편지들에서 내용들을 취합했다.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소개한 책은 거의가 책에 실려 있다. 빠진 부분은 <박문수전>, <주생전>, <박씨부인전>, <할아버지의 기도>이다. <할아버지의 기도>는 2000년대에 출간되어 고전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근간이므로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만 빠진 것 같아 아쉽다. 특히나 주로 신화속에서 변화경영을 이끌어 내는 저자였던 만큼 저자가 늘 이야기하던 책에서는 안정감과 익숙함으로 편안하게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나라 고전이야기에서 다루는 화두는 어떨까라는 호기심과 낯섬에서 설레임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들이 제외된 것이 조금 아쉽다. 그러므로 익숙하지 않은 책들에서 익숙하지 않은 화두를 읽어내는 혜안들로서 저자가 읽은 다른 책들, 그의 제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읽어 내려간 다른 더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낼 2탄을 기대한다. 


 왜 이 키워드인가?

 

  책을 읽기 전 목차를 통해서 먼저 본 것은 어떤 책이 있는가였고 두 번째는 왜 이렇게 나누었을까, 그 다음으로는 키워드였다. 크게 욕망과 도전으로 분류하였고 내면의 가치들에 따른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분류하고 정리하였을까라는 생각을 거듭 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책에서든 저자가 제시한 다른 키워드, 내면적 가치들을 대입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번 보자. 저자는 저자는 도전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베르테르의 사랑에서도 데카메론, 향연에서도 와 닿는다.

 - 고뇌에 찬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에로틱한 사랑, <데카메론>

 - 관념론적 사랑, <향연>

 - 방법적 사랑, <사랑의 기술>

  그러므로 큰 주제를 두고서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형태로 얘기하는 책들을 배치하여 또다시 다양한 시각으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 또한 흥미로울 듯하다. 인간의 삶에서 요구되는 가치는 다양하고 그 가치에 대한 관념과 사유는 다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들을 어떻게 이끌어 내서 내게로 적용해야 할 지 모르는 많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고전읽기 선동가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오래도록 고전읽기를 강요받고 있다. ‘고전이 그래서 고전이다’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고전을 읽기를 바라는 수많은 마음들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당한 것을 너도 당해봐, 하는 심정도 있으려나....아무튼 오래도록 사람들에게서 추천받고 있다면 그 나름의 이유를 맛보는 것이 마냥 나쁘다거나 귀찮은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나만의 끌림을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거고.

  여기, 이 책은 고전에 대한 끌림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고전은 바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창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찔러 그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이것을 ‘에로틱 아이러니’라고 불렀다. 고전은 나를 바꾸는 지독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삶에 기쁨을 쏟아주는 위대한 이야기다. 내면의 가치를 잃었다고 느낀다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지표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황홀을 맛본 지 오래되었다면 내 영혼을 위해 바로 지금이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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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 대한민국 보통 가족을 위한 독서 성장 에세이
김정은.유형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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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꾸고 싶어-엄마는 바뀔까요?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독서습관을 길러줘야 하고 권장목록과 유명인의 추천도서 목록을 행복을 향한 열차 티켓을 거머쥐는 것처럼 수집한다. 하지만 이것도 한때다.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대망의 대학교를 입학하기까지가 대한민국의 최종 독서의 종착역인 까닭이다.

  독서에 대한 열의가 정말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한국인의 독서량과 독서시간은 가히 참담하다. 또한 책읽기 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거나 방송에 등장한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다거나 베스트셀러니까 읽어야 한다는 형태의 독서가 전반적인 흐름이다. 유명인이 추천한 책의 줄거리를 읽고 그들의 감상을 내 것인 양 하는 어느덧 과시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독서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무화되고 강박에 휩싸인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점점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우리의 책읽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은 아닐까. 

  독서에 대한 순수한 열의를 방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할 책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과 맞물려 ‘학습’으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독서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형성된 탓이기도 하다. 학습을 떠나서도 책이 인생의 진리이며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얘기되는 현실에서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을 때 오는 참담함도 더해진다면 독서에 대한 열망은 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헬조선이란 ‘생계’를 위한 지극히 전투적인 사회에서 책에서 위로받기엔 책과 함께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어쩌면 타인의 독서경험과 추천목록을 찾아 읽기는 이렇게 형성된 독서습관 탓에 아직도 ‘내 경험’을 찾지 못한 이들의 독서습관 형성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느낀 이들의 진정성있는 경험을 공유하고픈 이유일지도 모른다. 왜냐고, 여전히 독서에 대한 울렁증과 강박증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그 강박을 완전히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독서를 하고 싶은 열정의 첫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린, 어떤 형태로든 정말로 책을 ‘잘’ 읽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엄마 바꾸고 싶어!' , 큰 아이의 절절한 외침


  강박적으로 독서의 필요성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절절하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가족의 독서 경험을 공유하기를 권한다. 한 가족이 함께 독서를 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가족도 심상치는 않다. 아빠는 파업 중이고 엄마는 직업병으로 백수이자 병원을 오가고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아이들은 엄마와의 거리감에 힘들어하고, 마침내 엄마를 바꿨으면 좋겠다라고 하기까지. 헬조선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들 가족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정말로 독서에서 이루어졌다. 이 경험은 이 가족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차별적이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 ‘이 가족이 특별한 것일 뿐이야’라는 생각은 책을 읽으며 은연 중에 전혀 특별한 그들만의 경험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어내고 소통하는 탁월한 엄마, 아빠의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전전긍긍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가족 모두가 저자이다. 아빠와 엄마와 두 딸이 함께 읽고 나눈 독서의 경험이다. 그들이 읽은 책을 통해 현재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을 책 속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들 가족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탁월한 것이기도 하겠다. 책 속의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대체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리고 마침내 가족이 ‘가족’으로 똘똘 뭉치는 광경은 오히려 파업이 해결된 지 아닌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만큼 큰아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과 엄마가 아이의 재능과 관심을 아이의 기준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나 작은 아이가 언니와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꿈과 자신감을 길러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고나 할까. 가족생활에서 중요한 요인이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지만 그래서 위기인 아빠의 ‘파업’은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나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수많은 위기의 한 요인일 뿐이며 이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알아 가기에 더 이상 위협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하는 아빠, 아픈 엄마, 서로가 낯선 가족들"


  책의 서술자는 엄마인 것 같다. 문체나 이야기의 흐름이 그렇다. 주제에 맞추어 그들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주제마다 아빠의 편지가 따로 있기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가족 토크쇼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의 ‘서술자’ 측면에서 아빠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며 책이 출간되기까지 직접적인 집필자인 엄마에게 공이 크다라고 한다고. 하지만 저자인 엄마는 이 책의 전반적인 기획과 출발이 아버지에게서 나왔고 문체의 통일성을 위해 톤을 맞춘 것이라며 아빠의 역할이 적지 않음을 강조했다. 흐뭇한 광경이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하게 글쓰기로 엄마, 아빠, 아이들의 공을 구분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농담반 진담으로 이 책은 다 엄마가 한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아빠의 지분이 커져가고 있었다. 아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얼까. 그것은 이 가족의 전체적인 가치와 철학을 이끌어가는 데 아빠의 생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국가나, 핵심적인 가치와 목표 아래 다양한 형태의 일들이 이루어진다.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느냐가 한 가정을, 한 나라를 만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이 집안의 큰 가치가 흔들리지 않게 올곧게 지켜갈 수 있도록 하는데 흔들림없었던 ‘아빠’에게 박수를 건넨다. 아빠의 기본적인 가치와 엄마의 가치와 행동력이 맞물려 이 가정의 독서관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각자의 역할들을 충실히 해내고 그리고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만들어 낸 결실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이 가족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가족들의 경험이 녹여나 그들이 읽은 책들이 더욱 빛나는 듯하다. 유쾌하고 독특한 이 가족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강박이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얼마나 큰 소통이 되는지를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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