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이 필요할 때


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훈, 2006.


 쇼펜하우어 하면 염세주의 철학자의 대표라 기억된다. 이 철학자의 문장론은 얼마나 다를까를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상당히 간결하고 쉬운 글이었다. 자연적으로 철학자들의 책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부터 갖고 있던 것을 말끔히 씻어주듯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은 사색과 글쓰기, 독서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담고 있는 글이다. 더 정확히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집 <어록과 보유>에서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만을 역자가 추려 제목을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라 붙인 것이다. 명언처럼 명료한 생각의 전개가 돋보인다.

  쇼펜하우어는 사색하는 인생은 남다르다며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사색이 단순한 신변잡기적 생각의 흐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고, 사색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것이 사상이라고 말한다. 단, 독서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기에 독서보다 더 한발 나아간 행위가 사색이고 사상가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색을 통해 사상가가 되었다면 사상가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사상가의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일수록 가능한 순수하고 명확하게, 간결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단순함이야말로 진리의 특징이며, 모든 천재들 또한 단순함을 사랑했다. 앞서 말했듯이 아름다운 문체는 사상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시대를 농락하는 사이비 사상가들처럼 문체를 통해 사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문체는 사상의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졸렬한 문장이 탄생하는 원인은 문체가 졸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사상이 졸렬하기 때문이다. p105~106


   글쓰기는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글쓰기는 글쓰는 기법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독서와 생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만 마냥 독서를 통해서 생각의 정리가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쇼펜하우어는 사상가의 글쓰기와 문체를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헤겔의 저작물에 대한 비판을 제법 한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헤겔의 글은 ‘졸렬함’의 표본이 되는 모양이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점차 독일어의 문법 체계를 파괴하는 글쓰기 형태가 이뤄지는 것에 상당히 분개한다. 언어의 삭제와 왜곡된 용법이 언어의 의미를 침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독일어의 핵심이랄 수 있는 완료형 시제의 삭제는 모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야만어로 전락시키게 될 거라며 제대로 된 문법의 교육을 강조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이러한 언어의 삭제가 글쓰기의 명료함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의 힘으로 이뤄내야 할 것을 문법의 삭제를 통해 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힘, 즉 수단이야말로 모국어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힘과 수단에 호소할 때 비로소 사상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으며, 작가의 미묘한 심리형태까지 정밀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아름답고 생기 있는 고전적인 문체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다.p133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철학이라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사색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흔들림없이 명언처럼, 힘있고 강건했다. 그러나 언어와 문법의 당시의 글쓰기 체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격앙되고 설명적이었다. 구체적인 단어와 문법체계를 들어가며 독일어의 문법 파괴 현상에 대해 지적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사색과 글쓰기, 문체를 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색과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이 세 주제를 관통하는 작가의 사상 또한 깔끔하고 명쾌했다. 독서도 필요한 일이고 중요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일이므로 쉬운 사색의 방법이다. 제 사상을 다듬는 일은 독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좀더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색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색을 통한 글쓰기는 명확한 사색을 통해 제 사상을 잘 정립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문장론의 핵심이었다.

  독서가 타인에게 제 생각을 떠넘기는 행위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지금 시점에서 와닿는 것은 사색은 제쳐두고 독서에 매달리는 행위가 지극히 편안한 길만 가려는 방법이란 말 때문이기도 하다. 지극히 그 심정으로 독서에 매달리고 있었다. 독서가 가장 쉬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게 사색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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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상하군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저, 유유, 2016.


  이 책의 핵심은 문장을 쓸 때의 주의해야 할 표현이다. 그런데 그런 가르침은 한쪽에 제쳐두고 함인주 씨와의 메일 내용이 더 흥미를 끈다. 함인주라는 작가의 존재를 확인해 볼 정도로 궁금했고, 메일의 내용이 더 끌렸다. 그렇게 난,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란 문구를 들어, 재밌고 기억나게 문장 표현을 다듬는 법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핵심 내용보다 부분 내용에 더 집착하는 독자가 되었다. 사실 저자가 짚어 주는 내용들은 낯설지 않은 익숙한 내용이었다. 다만 고쳐지지 않을 뿐. 머릿속에 잘 정리된 교정본이 들어 있다 한들 문장쓰기 습관을 고치긴 쉽지 않다. 좋은 말로 습관이고 내 문장의 특성이라며 감싸고 있을 뿐인. 그래서였을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전히 문장 다듬기의 실질적인 내용보다 메일 내용과 그들 만남이 더 생각난다. 그리고 애당초 이 글의 핵심 역시도 메일의 내용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실화인지, 허구인지를 생각지 않고 나중에서야 메일 내용은 허구였던가 생각했다. 메일은 교정 작업을 하는 저자에게 교정을 받은 번역가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메일을 보낸 데서 시작한다. 형식적으로 답변하다가 메일의 주인공 함인주의 문장에 관한 질문이 지속되자 저자는 실제 교정작업지를 살펴보며 함인주의 문장을 분석하고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함인주는 카프가의 단편 「유형지에서」를 거론하는데, 끌림의 주된 요인이 이 부분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기계는 실제 비인간적으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계가 이루는 세계에는 나머지가 없기 때문이겠죠. 조립을 끝낸 뒤에 볼트나 너트가 남는다면, 또는 부품은 만지 않더라도 빈자리가 남는다면 기계로서 작동할 수 없을 겁니다. 나머지를 갖지 않고 빈자리도 없는 기계는 이처럼 자기 완결적이라 치욕을 알지 못하죠. 치욕이란 스스로를 나머지나 빈자리로 여기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p124


  문장이 이상한지, 표현을 제대로 하도록 도와주는 문장 교열책을 들여다보는 이유 자체도 그것 아닌가. 내 문장을 갖고 싶은 이유, 내 문장이라 부를 글을 잘 쓰고픈 욕구. 그러나 문장의 어색한 표현이라 하며 밑줄 좌악, 빨간 줄 좌악 그어 수정하다 보면 그 문장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문장이 되어 한곳에 집합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과장이겠지만 이에 대한 기억이 분명 있다. 학창시절 교편에서 한 원고를 두고도 문장을 교정하는 이에 따라서 수많은 문장으로 교정되어 나타난 기억. 교정자 각각은 자신만의 문장으로, 문장의 어미들을 수정해 놓았다. 그러니, 그것은 결국 함인주의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게 할 요소인 것이다.


언어가 개인의 것일 수 없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발화는 개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문장 또한 개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나 문장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더군요.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는 문장은 분명 누군가 개인이 쓴 것이고 따라서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을진대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은 뒤에도 그 목소리는 그대로 살아 있는 건가요? p118

    

  글을 쓰는 개인이 자신의 문장을 수정하면서 점차로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선 타인이 쓴 말을 써보기도 하고 내 표현을 정확한 문장표현법어 맞추어 재단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타인에게라도 글을 보여줄라치면 쑥스러움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는 메일을 쓸 때조차 상대방이 메일의 오자를, 맞춤법을 확인하는 건 아닌가하는 강박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이 글 속 문구처럼 ‘치욕’을 겪을까 전전긍긍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에서 멀어지기도 할 것이고, 글쓰기가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되어 버릴 것이다.

 

기계적이라는 말은 반성과 회의를 모른다는 말이고 따라서 ‘자기’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합의의 세계는 바로 이런 기계의 세계일 겁니다. 합의된 내용보다 형식을 그 생명력으로 삼음으로써 참여자들을 나머지로 만드는 세계 말이죠.

 말과 글 또한 합의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라면 ‘나’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늘 치욕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합의된 대로 말하거나 쓰지 않으면 내 생각이나 의도는 물론 느낌조차 표현할 수 없다는 치욕 말입니다. 끊임없이 말하고 쓰면서도 끊임없이 그 말과 글의 세계에서 나머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치욕……. p126~127


  내 문장을 갖는 일. 저자의 말대로 ‘최대한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좋을 일이지만 문장쓰기는 늘, 그렇게 문장표현이라는 굴레에 가려 내용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형식적 두려움, 그러니까 합의된, 기계적 세계를 탈피하는 일조차도 그것을 수없이 겪은 후에야 이뤄질 세계가 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글이, 문장이, 이상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도 타인의 눈을,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인지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이미 인이 박혀 버린 내 표현과 문장들에 ‘치욕’을 찾는 일은 기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 책이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갖는 관심을 반영한 것일 게다. 그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쉬운 점은 교정과 교열에 관한 책임에도, 출판사가 그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책의 편집이, 글자체가 깔끔하지가 않다. a4에 쓴 글을 인쇄한 듯한 성의없는 출간으로 느껴졌다. 쓸데없이 페이지를 늘이는 책도 맘에 들진 않지만 최소한의 책의 외면도 생각지 않는 출판도 맘에 들진 않는다. 독자들에게 훨씬 더 읽기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편집이 그렇게도 이상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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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다


나탈리 골드버그, 글쓰며 사는 삶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에선 글쓰기 강사로 명망이 높다.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출연하였던 만큼 사람들이 이 작가에게 열광하는 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당연하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작가의 명성을 높여준 책이다. 이 책의 성공 이후 작가는 이전보다 더욱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니 <글쓰며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 <글쓰며 사는 삶>은 글을 쓰며 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을 살자는 글쓰기에 관한 책일까. 두 가지가 다 버무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삶을 궁금해 하며 이야기 듣기를 원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과 더불어 ‘작가의 인생’을 살아보고픈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가의 삶’은 무언가 다른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탈리 골드버그는 흘리며, 그러니까 ‘써라’라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된다는 건 보고 생각하고 존재하는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p5


  <글쓰며 사는 삶>도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충동질하며 멈추지 말고 일단 써라!라고 부추기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선과 명상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 책은 정리되고 정제된 어감, 이를테면 선과 명상이 주는 차분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들뜬 느낌이 가득하다. 한편으로는 응원가에 가까운 형태라고 해야 할까.

  나탈리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방법이나 원칙들도 살펴보면 익숙하게 들어온 글쓰기 방법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글을 잘쓰는 방법에 관한 책들은 너무 많이 있고, 글을 쓰기 위한 태도에 관한 책도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같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렇게 확실한 방법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 그것 또한 같다. “안 쓰니까”

  쓰고자 하는 열망만 있고 손가락을 움직이니 않으니,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으니 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글쓰기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한발 떼기가 힘든 글쓰기에 대해 그게 뭐 별건 줄 알아?라고 외치는 것이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 독려법인 듯하다. 그리고 항상 조금 업된 느낌으로 그녀는 외친다.

  “길게 생각할 거 없어, 망설이지 마, 그냥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

  

  처음 시를 썼을 때 느낀 완전함과 생동감, 스스로 뭔가를 창조했다는 기쁨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던 때가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글을 쓰면 그저 행복했다고. 그렇지만 자신도 글을 쓰고 나서 한동안 무력감이 찾아온 적도 있고 글을 써서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노라 말한다. 하지만 무력감이라는 건 첫 해를 잘 견디면 몸에 적응 돼서 쓰러뜨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독이란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걸 말하지만, 글이 작아지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글은 열정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또 외친다. 이런 이미지가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외치라고.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말하라. “나는 작가다.” 스스로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그냥 씨앗 하나를 심어놓았다고 생각하자. 우리의 삶은 거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무거운 펜을 들어 막막한 페이지 위에 올려놓고 실제로 쓰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p123


  글쓰기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독후감 숙제만 나와도 귀찮아하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생겨나는 것은. 영상매체로 인해 책을 보는 이들은 급격히 감소했음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이 열망들은, 나탈리 골드버그와 같은 글쓰기 책을 통해 글쓰기를 부추기는 사람들 때문일까. 작가 자신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의 길로 떠나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삶을 옥죄는 것은 열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망이 없는 삶 역시, 삶을 끊임없이 옥죄고 흔들어 놓을 것이다.


글쓰기는 자유의 길로 떠나는 위대한 여정이다. 남들의 눈에는 헐렁한 옷을 입고 밋밋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이며 글을 쓰는 모습이 지루하게 보이겠지만, 바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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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길들이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저, 

작가 수업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지만,

나쁜 소설은 작가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준다.

         -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작가수업을 읽고 놀란 건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글쓰기에 관한 책 중 맘에 드는 책이라는 점. 두 번째는 작가가 1892년생이고 이미 사망했고 이 책은 1934년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된 책의 역사에 놀랐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책은 전세계에서 사랑받았고 글쓰기의 지침서이자 필독서인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동일한 형태의 기법과 태도를 말하는 글쓰기 책들과 다른 이 책이 가진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홀리고 있을까.

 얘기를 달리하면 지금의 글쓰기 책들 역시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을 읽고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 방법을 터득해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 책만큼의 흡인력과 매력을 못 느꼈을까.

   이 책은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면서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대한 신뢰를 준다. 마냥 ‘쓸 수 있다! 써라!’라는 격려와 주술식 선동이 아니라 차분하게 보다 글을 잘 쓸 수 있기 위한 진솔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먼저 제시해서 공감과 함께 몰입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글쓰기 책에서 원하는 것이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제시일 거라고 생각하게끔 된다. 그것이 글을 잘 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하지만 사실 가장 큰 글쓰기의 어려움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 바로 “심리적인 어려움”이다.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듯한 이 침묵의 기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일단 저주 어린 주문에서 풀려나면 거침없이 술술 써내려 갈 수 있다. 글쓰기 교사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영감의 번개가 내려쳐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문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완벽이라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더러는, 과도한 허영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 작가는 외면당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다 결국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손 댈 수 없게 된다. p33 


   문제의 근원. 도러시아 브랜드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또한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거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는 언어가, 그 해결의 방법이 도러시아 브랜드의 것이 나에게 좀 더 와 닿았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한 습관이나 환경,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독서법, 예술적 시각을 훈련하는 것 등 대체로 비슷한 조언들과 설명에도 훨씬 쉽게 긍정이 되는 것도 이 책의 전반적인 서술의 매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의 명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얼마나 좋은 작품이 탄생하느냐는 그대와 그대의 삶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대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지, 분별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대의 경험이 독자의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훌륭한 글쓰기의 요소를 얼마나 철저하게 익혔는지, 말의 가락을 가려짚는 귀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성실히 훈련에 임했다면 일관성 있고 균형 잡힌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p194~195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여 책의 제목을 살펴본다. <작가수업> 그리고,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드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든 삼지 않든 우리 모두 말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라고 했다. 맞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작가가 되든 그렇지 않든 우린 말에 길들여져 있으니 조금이라도 말에 대해, 글에 대해 잘 아는 방법이 이 말을 길들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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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통로


 유시민·정훈이, 표현의 기술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듯하다. 또 그만큼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기도 한 모양이다. 지속적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 아니면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글을 잘 쓴다는 사람에게 가지는 본능적인 궁금증인 걸까. 표현의 자유인 듯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당당하게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하는 걸지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은 정치인이라는 이력을 떠나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것일 게다.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 혹은 선거자금을 위해 출간기념회를 가진다. 알고 보면 대필한 글이고 별 내용없는 선거용 자서전을 남발하는 상황이 수두룩하다. 그에 반해 유시민에겐 ‘작가’로서 글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 글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 글에 감성과 논리가 있다는 것이 그의 글이 가지는 장점일 것이다. 작가 자신도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론 형성’이라고 말한다.  


 저는 김훈과 다릅니다. 물론 저도 글로 제 자신을 표현하지요. 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제 글쓰기의 목적은 언제나 ‘여론 형성’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남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를,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 옳은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다는 뜻입니다. p13


  글쓰는 목적을 명확히 아는 것은 표현의 기술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목적에 따라 글에 대한 세밀한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을 쓰는 방법상의 차이일 뿐, 우선적으로 글쓰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생각을 가지는 것, 생각을 명확히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지만 하고싶은 말대로 정확하게 글로 표현이 될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작가의 말대로 “글을 쓸 때는 오로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실감나게 문자로 표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무엇에 관한 어떤 내용을 무슨 목적으로 쓰든, 모두 다!”


  김어준은 자신이 본 사람들 중에서 말을 할 때 처음과 끝의 말의 논리 정연한 사람으로 유시민을 꼽았다. 처음 시작하는 말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주어, 서술어, 연결어미 등의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말보다 글이 수정 기회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로도 명확히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 작가의 글이 명쾌하게 전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없이 논리적인 추론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 자신은 ‘도덕적 직관’에 크게 의지한다고 한다. 우선은 느끼고 그 다음에 이유를 찾는다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때론 이유없이 무언가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고 후에야 왜 그런지를 반성하며 생각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도덕적 직관에 의하든 논리적 추론에 의하든 단지 인식의 틀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표현의 내용이나 구조는 달라질 것이다. 정해놓고 생각을 하게 되면 생각은 자유롭게 나아가지 않는다. 많은 것을 아는 것 또한 표현을 확장시키는 데 중요하다. 내가 보고 아는 것이 제한적이면 글 또한 표현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독서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제안은 글쓰기 책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더해 악플 대처방법도 알려준다. 두려움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면 생각이 막힐 수밖에 없다며 마음을 살펴 받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악플과 비판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데 자신은 ‘논리적 증명이 있는가, 글에 대한 역비판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말이 정말로 통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그들의 생각을 애써 바꾸려 하지 말라고. 우리 뇌의 ‘폐쇄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강하게 작용하는 그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글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자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쓴 텍스트를 나와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글에 담은 생각과 감정을 독자도 똑같이 읽어 가도록 하려면 그에 필요한 콘텍스트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글쓴이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문학 글쓰기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겠지만, 정보 교환과 소통, 공감을 목표로 하는 생활 글쓰기와 논리 글쓰기라면 그렇게 써야만 제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42~143


  글도 말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나 혼자만의 표현에 잠기어 글을 쓰는 때가 있다. 글을 쓸 땐 내 감정과 의견을 우선하여 이것을 남이 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읽는다’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 따라서 타인과의 교감이나 공감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기장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은 왜인지...

  이 책은 유시민의 글만이 아니라 만화가 정훈의 그림도 실려 있다. 유시민이 글로 자기의 표현의 기술을 알려준다면 정훈은 만화로 자신의 표현기술을 알려 준다. 방법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두 사람은 일치하여 말한다. 정훈 역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을 웃게 하든, 한 줄의 글로 사람을 울게 하든,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든, 그냥 무심코 한 행동이든 간에 가장 좋은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입니다. p360


  결국 ‘표현’은 내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알아달라는 호소이다. 이러한 열망을 가지고 글쓰기며 표현을 잘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들. 결국 이 힘들고 어려운 헬조선 사회에서 사실은 소통하고 싶은 열망의 몸짓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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