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조라 학교에 나와 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영달이를 뒤로 하고 학교까지 걸어오는데 갑자기 발걸음이 뒤엉키고 시야가 뿌얘지는 것이 빈혈은 아닐테고. 학교 오기 정말 싫었나 보다. 점심으로 김치비빔밥인지 김치덮밥인지 김치볶음밥인지 정체불명의 김치밥을 맛없게 먹고 나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이 낯익은 글상자에 글을 쓰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구나.
출산 이후로 모든 관절이 좋지 않았는데 한번 크게 넘어진 뒤로 무릎이 나빠져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다. 연말정산을 하는데 의료비를 보고 기함했다. 동네 의사가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도 아니련만 돈을 저리 많이도 갖다 줬군. 좋아지다가 나빠지다가 하는 무릎 상황에 이제는 짜증보다는 적응을 할 때인가. 남편은 어깨가 아프다고 해도 나이 탓, 무릎이 아프다고 해도 나이 탓, 머리가 아프다고 해도 나이 탓을 해대며 본인이 사십줄에 들어선 것을 으스댄다. 그 나이가 놀랍고 그 나이를 먹고도 칭찬과 비난에 따라서 눈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폼이 너무나 유치해서 또 놀랍다. 고령화 시대에 제발 나이 탓만 하지 말고 나잇값 좀 하며 삽시다.
영달이는 여섯 살. 작년 초 유치원 적응 후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극한 모범생이 되었다. 물론 사회생활의 적잖은 스트레스를 집에 돌아와 만만한 어미에게 풀어내기 일쑤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친정엄마가 편찮으셨던 모습을 지켜보며 요즘들어 죽음에 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아졌고 제 아비와 어미를 엄정한 잣대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왜 결혼식 사진 속에서 아빠 혼자만 웃고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시무룩해 있느냐는 예리한 질문 앞에서 허둥대다가 위기철의 '우리 아빠, 숲의 거인'을 읽어주며 세상 모든 결혼의 비의에 대해 설명했다. 영달이는 결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며 과학자가 되어 혼자 살겠다는 선언을 했고 남편과 나는 부모로서 송구한 마음에 각자의 뒷모습에 자꾸만 흠칫거리는 못난 어미, 아비로 살고 있다.
지난 달, 친정엄마가 편찮으셨던 일주일은 재난 25시와도 같았다. 당장에 영달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일을 남편과 내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가며 번갈아 해야 했고 유약하신 아버지께서 덩달아 몸이 안좋아지시는 바람에 친정과 우리집을 정신없이 오가는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떨걱대는 무릎에는 파스가 네 장씩 붙어 있었고 꽁꽁 언 양손에는 국통, 김치통 등이 주렁주렁. 잠을 못 자서 안개 같은 머릿 속은 온통 엄마의 검사 결과에 대한 슬픈 상상으로 가득했다. 육아휴직이든 간병휴직이든 내고서 엄마를 돌봐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다가도 갑자기 나를 포함, 영달이까지 불쌍해져서 눈물을 찔끔찔끔. 엄마는 그 와중에도 오빠한테는 자신의 상황을 절대 알려선 안 된다며 이미 방정맞은 내 입을 봉하는가 하면 오빠와 올케가 내려온다고 하자 쑥떡을 쪄놔야 한다고 야간 외출을 도모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일관되게 깐깐하고 거침없는 모습으로 주변을 놀래켰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괜찮았고 엄마도 씩씩하게 걸어서 퇴원하셨지만 나의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후 일주일간 매일매일 엄마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아야 마음을 놓았던 것 같다. 무뚝뚝한 오빠의 전화질과 택배 공납도 엄청났다.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배달되는 것 같았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걷는지 달리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엄마, 지금은 안 그래도 돼. 엄마도 이제 나이를 생각하세요. 오래오래 살아서 부족한 딸내미를 계속 혼내고 가르치고 해야 나도 엄마만큼은 못해도 그 발뒤꿈치라도 엇비슷하게 따라가는 어미가 되고 인간이 되지."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부탁인지 위로인지 푸념인지 하소연인지도 모를 소리를 매양 해가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엄마의 옷자락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
요즘 나는 홀딱 발가벗겨진 채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거나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일 때가 많다. 고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읽다보니 삼십 중반을 넘겼으면 이제 중년이나 다름없던데 어째 이 나이를 먹고도 자신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선생도 십년쯤 했으면 눈을 감고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육아도 오년쯤 해왔으면 아이 마음까지는 못 읽어도 입에서 나오는 말뜻은 읽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하고도 육년쯤 살았으면 우정 비슷한 감정이라도 생겨나야 할텐데 싸우는 게 귀찮아서 아예 입도 닫고 귀도 닫고 할 때가 많으니 살면 살수록 첩첩산중, 혼비중천이다.
독서와 사색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지난 시절에는, 영달이 비유로 엄마가 공주처럼 예뻤던 그 찰나의 시절에는 무엇이 무엇인가, 정의를 찾아 참 많이도 헤맸었다. 그 무엇에는 행복, 자유, 사랑 등이 있었으리라. 지금은? 들기름 발라 구워낸 고소한 꽁치살이 딸내미 입으로 쏙쏙 들어갈 때마다 헤벌쭉 좋아라 하는, 집중력 있게 밥 먹이기의 달인이 된 또 다른 내가 있다. 별일 없이 흘러가는 다행한 하루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안도의 숨을 쉬며 잠자리에 드는 낯선 내가 있다. 수필과 자동차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괴리감. 하지만 어쩐지 이 또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나저나 토토가에 015B는 왜 안 나오는 것이냐.
새해에는 아픈 무릎이 더 많이 아프지는 않길 바라며 똑똑하고 건강한 영달이도 딱 이 정도만 똑똑하고 건강하여도 과분할 듯 하고 영달이의 바람직한 인생관 및 결혼관 성립을 위해 남편과의 비정상회담도 정상회담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무엇보다도, 나의 영원한 멘토인 우리 엄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엄마, 아프지 마요. 제발. 그리고 십년 넘게 하고 있는 선생 노릇도 부디 아이들 인생에 지저분한 낙서로 남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찌어찌 살다 보면 나도 인간 될 날이 오리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죽을 수 있으리라. 설사 그렇지 못하다 해도 그렇게 살려고 아등바등 노력은 해야 하리라. 매일매일이 첩첩산중, 혼비중천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쉬운 방학이 가고 있다. 점. 점.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