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W 엄마가 콩국수를 해주겠다는 말을 그냥 무심코 흘려들었다. 집에서 직접 콩을 갈아 만든다는 것. 비지가 나오면 찌개를 끓여먹는다는 것. 언니한테 꼭 한번 해주고 싶다는 말을 그냥 고맙게, 즐겁게 들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유치원 가방을 든 채 영달이를 따라 놀이터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나에게 처음엔 머뭇머뭇 말을 못 붙이더니 나중에는 자신이 학창시절에 얼마나 골 때리는 학생이었는가를 열렬히 토로했고 그 솔직한 웅변이 재미있어서 그녀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더랬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살피다가는 엄마, 라는 부름이나 으앙, 하는 소리에 벌떡벌떡 튀어 나가곤 하는 네추럴 본 엄마들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가 짬짬이 들려주는 사연들이 마냥 재미있었다.
그리고는 W 엄마가 점심 초대를 한다는 이야기를 Y의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게 생긴 W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였다. 우리는 함께 물놀이장에 갈 예정이었기에 물놀이를 마치고 나서 바로 점심을 준비하여 우리를 초대한다는 게 나로서는 상상만 해도 힘에 부치는 일. 물놀이를 마치면 빨래거리가 줄줄이 나올 것이고 아이를 깨끗이 씻겨야 할 것이며 이 더위에 육수를 뻘뻘 흘리고 나서 다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 앞에 선다는 것이 끔찍한 일일 터. 내 식구야 평소 나 하던 식대로 먹이면 그만이라지만 남을 불러서 밥을 먹인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부담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W 엄마는 꼭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아직 손 데지 않은 새 반찬인 오이도라지무침, 볶음고추장을 챙겨서 W의 집으로 갔다.
W 엄마는 갓 헹구어낸 뽀얀 소면에 시원한 콩국물을 부어주며 맛있게 먹으라 했다. 그새 고기도 삶았는지 초들초들하게 삶아진 돼지고기, 부추무침, 양념쌈장, 내가 가져온 오이도라지무침 등을 펼쳐놓고 엄마 셋, 아이 다섯이 오붓하게 점심을 먹었다. 소박하지만 황송한 밥상. 정작 본인은 수저를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허기진 동네 언니들이 부지런히 국수발을 건져 올리고 콩국물을 후루룩 쩝쩝대는 것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근처 사는 친정엄마로부터 새로 담은 김치, 갓 만든 맛스런 반찬들을 날름날름 얻어다 먹고 있는 나는 W네 묵은 김치를 보자 어쩐지 송구스러워 이거 등갈비 넣고 찜해 먹으면 맛있겠다, 볶음고추장은 만능이니 떡볶이도 해먹고 그래, 괜한 참견질을 해대며 너스레를 떨었다.
함께 사는 남자를 지상 최고의 배필로 알며 매일 아침 꼬박 삼십분씩 걸어서 병든 친정엄마를 보살피러 가는 사람. 암병동 아이들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무리한 선행학습을 시키는 건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사람. 그 흔한 토마토나 오이마저 얹지 않고 말갛게 국물과 소면 그대로 담아 내어온 그녀의 콩국수가, 고지식하게 담백했던 그녀의 음식이, 그녀를 닮아 있어 참 좋았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남은 콩국물과 콩비지를 주러 오겠단다. 안 그래도 된다 했는데 고집이 쇠심줄 같아 결국 내려갔다. 아까 내가 가져갔던 반찬통에 하얀 콩국물과 인절미 같은 콩비지가 담겨 있다. 그새 옮겨 담고 그 자리에 새것을 담아 왔다. 점심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너무 수고했다, 아이들 개학하면 우리끼리 편안히 점심 먹자, 내가 산다, 하고서는 빠빠이 하여 보냈다. 한 덩치 하는 사람인데 돌아서며 보이는 등판이 어쩐지 애잔하다. 현란하고 느끼한 위선과 허영의 시대, 누가 무어라든 소처럼 묵묵하게 제 갈 길 가며 엊그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태도가 참 든든했다. 자주 찾아오는 우연은 아니지만 자기 비호, 타인 비하로 들끓는 집단의 생리에서 저만치 비껴서 있는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되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젠 거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찬탄과 아집 안에 갇혀 지내는 무리들로부터 빠져 나와 새벽 공기마냥 쨍하니 시원한 인간들을 접한다는 것도 하나의 낙이라면 낙인 셈. 그럼에도 동네 언니들을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는, 착한 W 엄마.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어느 날은 목이 아플 정도로 연신 고개만 주억거리고 이따금씩 까칠한 언사로 산통을 깨버리는 바보 같은 내가 좋았다니. 빠듯한 육아와 소신 있는 삶 속에 그녀의 피로와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직장을 벗어나면 영달이 엄마라는 호칭이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엄연히 이름이 있지 않은가.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물어보고 내 이름도 알려줘야겠다.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오는 길. 둘째가 탄 유모차를 끌고 감기에 걸렸다는 첫째를 앞세운 채 이글이글 타오르는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그녀의 모습에 활짝 웃어보였지만 구슬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뒤돌아보다 마주친 그녀의 등이 또다시 애잔하고 어른어른하여, 나 자신 부실한 몸뚱이 걱정은 차치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그녀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나이를 먹는 건지 공연히 오지랖이 뻗친 건지 사람이든, 삶이든, 일이든, 뭐든지 오래 생각하거나 깊이 알게 되면 남는 건 어쩐지 슬픔뿐이네. 그래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마음으로 가만가만 노래만 부른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나르는
새들의 날갯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저 지친 어깨 위에
시장어귀에 엄마 품에서 잠든 아가의
마른 이마 위에
공원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에 홀로 서 있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수없이 밟고 지나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 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 시인과 촌장, ‘사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