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커피를 안마시니까 금단현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지 커피향이 나는 빵이 먹고 싶어진다. 로티보이의 번이라든가, 파리바게트의 모카빵이라든지. 어제는 집 앞 제과점이 카페 형식으로 리모델링을 한 후 개업행사가 있었다. 얼마 이상을 구매하면 딸기잼을 하나 얹어주고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정도. 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홍보 도우미 언니가 나눠주는 원두커피는 남편 것을 빼앗아 한 모금 마셔봤더니 너무 밍밍했다.

  지난 여름, 연수를 받는 동안 구내식당 점심이 질릴 즈음이면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곤 했는데 달라진 대학가 풍경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지갑이 두둑해져서인지, 씀씀이가 변해서인지, 한 끼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파는 숍들이 성업 중이었다. 5천원짜리 돈가스를 시키자 둘이 먹고도 남을 만큼 넓적한 돈가스가 나왔는데 바로 옆 커피숍에선 내가 좋아하는 모카라떼를 그 이상의 가격에 팔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커피전문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커피숍 겸 호프집이 많았다. 그런 집은 커피도 맛없고 안주도 맛없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가격대가 만만한 것도 아니어서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결국 그런대로 괜찮은 커피숍이 발견되면 너나없이 그곳으로 몰려들곤 했다. 한 공간의 창가 자리에서 과 선배가 소개팅을 하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동기 녀석이 헤어질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어느 날 오후, 중문 근처에 갔는데 -왜 갔는지는 지금은 생각이 안 나지만- 동아리 동기 J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이렇게 밖에서 만난 것도 반가운데 이야기나 할래, 하더니 나를 그런대로 괜찮았던 그 커피숍에 데려갔다. 그녀는 마침 비어 있던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는 아마도 모카라떼를 시켰을 것이고 그녀는 무슨 허브티 종류를 마셨던 것 같다.

  J는 불문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항상 자기가 왜 불문학을 하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투덜거리곤 했었다. 원래 국문학을 선택했지만 1학년 때 학점이 안 좋아서 밀렸다는 말도 했다. 학부제가 생긴 후로 그런 일은 잦은 편이었다. 그리고는 거의 머슴처럼 부려먹던 남자 친구 이야기, 특징적인 동아리 선배들에 대한 소감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좀 유명했다. 한낮에 J가 술에 취해 울고 있고 그런 J를 달래서 부축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두 번인가 봤다. J는 자기가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 애 밖에는 자기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또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도 동아리 밖에는 그런 자신을 받아줄 곳이 없다고도 했다.

 나는 네가 술을 잘 안 마시는 게 불만이야.

  대화 중간에 그녀가 툭, 그런 말을 던졌다. 별로 신선한 지적도 아니었지만 환한 대낮에, 그런대로 괜찮은 커피숍에 앉아서, 약속도 없이 만난 동기한테 갑자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좀 이상했다. 나는 머쓱해져서,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어? 하고 물었다.

 너는 술을 안 마셔도 솔직할 수 있어서 참 좋겠다.

  J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J의 눈빛은 비꼼도, 호기심도 아닌 부러움이었다. 내가 그랬던가. 무지해서 용맹한 무용담으로 점철된 시절이었으니 그리 보였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J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에 기함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그냥 까불었던 것이지만 J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흠모하던 선배를 계속 흠모했고 그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 나이에 그런 마음은 숨기려고 해도 잘 숨겨지지도 않지만. 그런 J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빛은 차갑고 매정했다. 우리에게는 장난기 가득 머금은 따듯한 눈빛을 보내면서도 유독 J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동아리에 드나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는 그녀에게 완전히 벽을 보였다. J는 사람들이 다 보는 잡기장에 악필로 심란한 마음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술을 마시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보였고 그녀가 쓴 시에는 복잡한 가족사와 외롭고 성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에 그녀는 나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술도 잘 마시고 시도 잘 쓰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있었다.

  나는 좀 비겁하게도 스스로의 솔직함에 자신이 없던 터라 그 날 J와의 대화는 그냥 겉돌다 끝나 버렸던 것 같다. 이후에 그녀는 동방에 한 동안 뜸했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더니 갑자기 휴학을 해버렸다. 나중에 한 선배로부터 다단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더니 결혼을 했다고 하고 아기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무도 J의 소식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가끔씩 묵은 잡기장의 삐뚤빼뚤한 활자 속에서, 호평을 받았던 연작시 속에서, J를 떠올리곤 했다.

  중문의 그 커피숍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자리에는 편의점이 들어섰고 맞은편에는 커피 전문점이 생겼다. 당시 그 순간을 돌이켜 보면 J는 그 날 어쩌면 나랑 술을 마시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내가 먼저 스타우트를 주문해 버릴 텐데. 당시의 나는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타인이 보내는 큐 사인에 그다지 민첩하지 못했다. 이따금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커피숍으로 이끌던 J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도 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언젠가 한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서로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볼 수도 있을까, 아쉬운 마음. 지금이라면 내가 먼저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고, 커피를 살 수도 있을 텐데.

  혼자서, 친구들과, 지인들과, 때로는 낯선 사람과 다양한 이름의 커피숍에서 참으로 숱한 커피를 마셨지만 J와의 짧은 추억은 그 가운데서도 아주 검고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모락모락 커피 향 같은 이야기꽃을 피워 봐도 좋았으련만 커피 향을 즐기거나,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거나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커피 한 잔에 인연의 타이밍이 적절히 녹아들면 그보다 더 맛난 커피가 어디 있을까. 그런 아쉬움, 그리움이 드는 커피의 계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SHIN 2009-12-1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제목을 White coffee 로 읽고서, '응? 웬 하얀 커피?' 했다는. -_-
오늘은 오랜만에 믹스커피를 먹었는데요, 음, 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었답니다. (자판기 커피라서 그런가.킁)
누구나 커피를 주제로 글을 쓰라면 다들 제각각 이야기가 많을지도..하고
깐따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깐따삐야 2009-12-14 12:08   좋아요 0 | URL
white coffee라... 괜찮겠는데요? ^^
자판기마다 커피 맛이 조금씩 다르죠. 저 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 휴게실 자판기 커피가 가장 맛있었고 학생회관 자판기 커피가 가장 별로였던 것 같아요.
커피에 얽힌 사연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요!

레와 2009-12-1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 다닐때는 커피숍 보다는 단대 자판기 커피를 주로 마셨어요. 꼭 연못 근처에서..ㅋ 같은 학교안이라도 각 단대마다 커피 맛은 제각각..

싸고 양도 많은 인문대 커피가 그리운데요..^^

깐따삐야 2009-12-16 14:05   좋아요 0 | URL
그때는 단대 자판기 커피 가격이 150원~200원이었는데 여름에 연수 가서 보니 더 이상 인기가 없는 것 같고 그 옆에 덩치 큰 다른 자판기가 들어와 있더라구요. 그 안에는 컵이나 팩으로 제조된 온갖 커피 종류가 와글와글!

그러게요. 싸고 양도 많고 어느 날은 쓸쓸히 위안이 되기도 하는 그 커피가 그립군요.^^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통화 중에 오늘 당장 만나자고 했고 그러자고 했다. 뭔가 갑갑한 모양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삐딱하게 주차를 해놓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근처 고기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 왁자지껄한 식당도 오랜만이었다. 옆에는 통신회사 직원들이 단체회식을 하고 있었고 칸막이 하나로 그들을 방음한 채 주문을 했다. 갈매기살이 지방이 적대. 그래? 그거 시키자. 아가씨나 임신부나 먹으면서 몸매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다.

  올해로 2년차 교사, 대학 동기이자 십년지기 친구인 E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숙한 분위기를 하고 있어서 처음엔 선배인 줄 알고 인사까지 할 뻔 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생일도 늦은 동갑내기였다는. 친구가 될 인연이었는지 흡사 은하철도 999의 철이 같던 나와 통하는 데가 많았다. 지난 십년 동안 우리에게도 사소한 오해와 공백기가 있었지만 오래 갈 인연이었는지 지금껏 이런저런 속내를 많이 털어놓는 사이다. 

  고기를 먹고 나서 근처 도넛 가게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망고주스, E는 카페라떼. 고기에 밥까지 먹고 도넛까지 먹었다. 그녀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고민하면서도 노란봉지 인스턴트커피와 종종 시켜먹는 피자를 끊기가 힘들다고 했다. 커피는 정말 그렇다. 수업 마치고 나와서 목이 아플 때, 스트레스와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데에는 뜨겁고 진한 인스턴트커피만한 게 없다.

  늘 하는 고민이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역시 인간관계가 가장 속을 썩인다. E는 올해 담임이 없다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단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사람’ 축에 끼어버려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또래 동료 중에 남달리 싹싹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매번 비교되기 십상이다. 어느 날, 옆자리 선생님이 E에게 그러더란다. 일 년 넘게 생활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E 자신은 그저 말수가 적고 자기 일 이외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인데 동료나 선배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도 학기 초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새 학교로 와서 적응하기도 바쁜데 일거리까지 많다보니 내심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먼저 들어오려고 했다는 이유로 고령의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어르신이 나가시는데 양보는커녕 먼저 문을 밀고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잠깐 보자고 하실 때는 왜 그런지 영문을 몰랐는데 이유를 듣고 보니 맥이 빠졌다.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이래저래 분주한 아침부터 그런 일로 훈계를 듣는 일이 마뜩치 않았다. 결국 공손히 듣고 있지를 못하고 반발을 했다.

  저는 바쁜 아침에 문 맞은편에 누가 서 있는지 미리 예상하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양보해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결국 간단한 잔소리 몇 마디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크게 벌인 셈이었다. 갑자기 흥분한 선생님은 몇 호봉이냐, 몇 살이냐 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욕 먹일 셈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누구한테 그렇게 배웠느냐,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느냐, 는 말은 반드시 피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내가 듣고 있자니 팽- 돌더라는. 여러 가지 대꾸를 했지만 내 말의 핵심은, 나이를 허투루 먹었냐는 반응이었고 선생님은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 일은 항상 뒷수습이 문제인데 사태를 아신 교장 선생님은 그냥 웃어 넘기셨지만 그 선생님과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이 나를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급식실에 내려갔더니 벌써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그러던 말던 밥을 푹푹 퍼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마쳤다. 그래도 어르신한테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셔서 젊은 사람이니 먼저 사과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당일에는 차마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선생님은 웬일인지 눈에 띌 정도로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을 잘 챙겨주셨다. 나 역시 전보다 더욱 공손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께 혼이 난 젊은 선생님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나처럼 눈에 뵈는 거 없이 행동한 경우는 없었는가 보다. 선생님으로서는 아마도 일생의 봉변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나도 사고 칠 컨디션이었고 선생님도 망신살 뻗친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지는 몰라도 E도 감정 처리가 영 서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문처리를 하다보면 인상이 저절로 일그러지고 쌍욕이 마구 튀어나온다고. 자기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한가하게 관찰만 하다가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보면 울화가 치민단다. 회식자리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싶은데 그조차도 허락이 안 될 때는 정말 참기 힘들단다. 원래 피로에 장사 없는 법이다. 심신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예민해지다보면 사소한 말 한 마디도 귀에 걸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나나 E처럼 남의 일에 무심한 타입들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연애라도 하면 좋으련만 어째 남자를 만나도 별 느낌이 없단다. 소개팅도 지겹고 만나러 가는 일도 귀찮다고. 남들은 뭐든지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뭐든지 잘 못하고 느린 건지 모르겠어. 주차할 때부터 툴툴거리더니 어느 새 열패감 덩어리다. 남보다 좀 더 일찍 이룬다고 마냥 좋을 것 같으냐. 그 사람들은 더, 더, 더 하고 있을 거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행복하지는 않다. 부족한 것 천지인데 자족하며 즐거워한다. 언젠가부터 그렇듯 소박한 마음가짐보다 위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능글능글해진 친구도 있는데 E는 새내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그대로다. 나는 좀 어정쩡한 상태여서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 별로 노련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것으로 치자면 E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화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맺을 때가 많다. 누구 한쪽에서 단호하게 이렇게 해봐, 하면 좋을 텐데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다보니 나도 그래! 라는 공감에서 그칠 때가 더 많다.

  E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앉아 있다 반짝 일어난다.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낯설다. 웬 남자? 아주 잠깐, 그런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인생을 늘 소풍 온 것처럼 사는 그에 비하면 나는 인생을 늘 부담스럽게 사는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인 것을. 어깨에 힘만 주면 대수냐고. 당장 절실해 보이는 고민이나 문제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E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간 또한 나중에 웃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 낙관하는 자세는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지나쳐 게으름이나 뻔뻔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조금 늦게, 더디 깨친다고 해서 자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때 묻지 않아 서투른 E, 어여 자신감을 되찾기를. 우리는 서로의 능수능란하지 못함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서로를 좋아하잖아.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12-0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E라는 분은 답답한 심정을 들어 줄 임신이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같이 얼굴보고 대화를 해줄 수 있는 깐따삐야님 같은 분이 곁에 있어 행복할꺼에요..

웽스북스 2009-12-06 21:30   좋아요 0 | URL
메피님 댓글에 추천을 날리고 싶은 웬디씨 ㅋㅋ

깐따삐야 2009-12-07 10:21   좋아요 0 | URL
E한테도 그렇게 말해줄래요. 넌 내가 있어 행복한 거냐(?) ㅋㅋ

웽스북스 2009-12-0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요즘 깐따삐야님 글이 많아서 괜시리 좋아요. 헤헷. 글로 태교를?
E랑 저랑 비슷한 점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 주변 사람들한테 좀 듣는 스타일이라서 말이죠.

참, 예정일은 언제에요?

깐따삐야 2009-12-07 10:27   좋아요 0 | URL
여기 와서 좋은 글 읽고, 웬디양님 사진도 보고, 나도 뭔가 끄적이고. 이만한 태교도 없죠.^^
E나 웬디양님이나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은 타입인 것 같은데 혼자 생각이 많다보면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가 봐요.

예정일은 확실치 않다고들 하던데 내년 4월 초순 쯤이에요.

레와 2009-12-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깐따삐야님 글이 많아서 좋아요!^^


얼굴에 그때그때의 감정이 바로 들어나는 저 같은 사람은 때론 무심함이 필요한데
타고난 성격은 참.. 안 변해요.
딴엔 노력했는데 '넌 하나도 안변했어!' 이런말 들으면 또 좌절하고..^^;

살면 살 수록 어려워요. 으흐~

깐따삐야 2009-12-08 12: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감정 덩어리죠.ㅋ 그저 주변에 무심한 편일 뿐. 제 일에는 도끼눈 뜨고 아우성입니다.
정말 살면 살수록 어렵죠? ^^
 

  쉬게 되면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EBS에서 하는 ‘60분 부모’라는 프로그램이다. 아침 먹고 집안일 좀 하고나서 10시쯤 되면 한가해지는데 그때부터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된다. 처음엔 개그맨 이혁재가 MC인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차분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잘한다.

  영유아부터 어린이까지, 식이장애부터 학습장애 등등 다루는 소재도 폭넓다. 예비 엄마가 아니라 교사의 입장에서 시청을 해도 건질 것이 많은 방송이다.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아이의 잘못은 대개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 어떤 엄마들은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방송 중에 펑펑 울기도 한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진 아이가 퇴근한 엄마에게, “엄마, 빨리 가. 집에 오지 마.” 하는 것을 보고 괜히 뜨끔했었다. 하루 종일 안 보이다가 저녁때만 되면 나타나서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하는 엄마를 반길 리가 있겠는가. 머잖아 내 모습인 것 같아 한숨만 나왔다.

  매주 목요일에는 부부심리탐구 코너가 진행된다. SOS에 출연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가 아니라 적어도 겉만 봐선 멀쩡한 부부들이 출연한다. 대개 신청자는 아내이고 처음에 남편들은 아내의 고민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또한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부부 문제는 서로를 너무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 연애기간이 길고 짧고 와는 무관하다. 전문가들은 관찰카메라를 통해 평소 사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고 상담을 통해 부부의 어린 시절 내상까지 끄집어낸다.

  상담 과정을 보고 있자면 부부란 것이 참말이지, 배우자의 과거까지 뭉뚱그려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힘든 인연이구나 싶어진다. 인디언들이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더니 부부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출연자들은 그 동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하거나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배우자의 내밀한 아픔, 극복되지 못한 열등감,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렇듯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연민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케언니가 오빠에게 연민을 좀 가져봤으면, 할 때가 있었다. 오빠가 남자고, 남편이라고 해서 의지만 할 것이 아니라 크게 품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언니의 불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빠를 지극히 잘 아는 시누이로서의 욕심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올케가 되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동생으로서 오빠를 안쓰러워하는 시누이의 한 마디 안에 한때 내가 느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아는 것과 실제로 삶을 사는 것은 역시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중에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a small, good thing)’이라는 단편이 있다. 상심한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이 줄 수 있는 것이란 갓 구워낸 따끈한 빵 뿐이지만 부부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얻는다. 주인의 말처럼 ‘그렇게 고급스런 빵은 아니지만’ 슬픔으로 축축해진 가슴을 다시 덥힐 수 있는 빵. 학교에서, 책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고급스런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웠지만 그것들이 누군가 꼭 필요할 때 내미는 빵 한 덩어리만 할까 싶다.  

  ‘60분 부모’에서 전문가들이 내리는 처방도 결코 거창하지 않다. 사사건건 말이 많은 부모에게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세요, 정서불안의 아이를 염려하는 부모에게는 주변 환경부터 깨끗이 정돈하세요, 서로에 대해 아쉽고 서운한 점을 토로하는 부부들에게는 알고 보면 각자가 다 힘든 겁니다... TV라는 매체가 시청하는 그 순간만으로 그칠 때가 많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은 자기 몫의 삶과 역할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초적인 삶의 태도를 날마다 되새길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9-12-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타인의 필터 하나를 거치고 나면, 뿌옇던 것이 명확할 때가 있지요. 저도 종종 즐겨봤더랬습니다.

깐따삐야 2009-12-06 19: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는 모양은 다들 비슷비슷한데 의외의 힌트를 얻기도 합니다. Jude님도 애청자셨군요.^^

Mephistopheles 2009-12-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뭔가 말하고 싶은데 그냥 꼭꼭 참고 있을래요...^^

깐따삐야 2009-12-06 19:46   좋아요 0 | URL
으흐흐...?
이런 걸 보고 달으나마나, 달지 않느니만도 못한 댓글이라고 하던가요.-_-

Mephistopheles 2009-12-06 19:50   좋아요 0 | URL
사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또 다르고 새롭게 보여지기도 한다잖아요. 그나저나 임신 중 날고기.그러니까 회...말고 간장게장이나 그런 것도 피해야 하는 건가요???

깐따삐야 2009-12-07 10:30   좋아요 0 | URL
아니 머 그 말씀을 그렇게 꼭꼭 참으시기까지 하셨어요. ㅋㅋ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는 임신부들도 있다던데 저는 안 좋다는 건 그래도 피하는 쪽이에요. 근데 왜요? 간장게장 사주시게요? 헤헤~
 

  초임 발령지에서 함께 근무했던 Y선생님이 결혼소식을 전해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배우자도 같은 종교를 가진 남자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신랑감이 기독교 신자인데다 치과의사라고. 나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줌마)처럼 호들갑을 떨며 참 잘됐다고 축하해주었다. 결혼을 코앞에 앞둔 예비신부의 마음이 다 그렇듯 그녀는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는 너무 큰 환상이나 기대만 갖지 않으면 괜찮다고 세상 다 산 아줌마처럼 말했다. 결혼식 치르는 일도 체력이 중요하니 건강 잘 챙기라는 말과 함께. Y선생님은 내가 결혼을 해서 그런 말을 하고, 아기를 갖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Y선생님은 내가 발령을 받은 이듬해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첫인상은 밝고, 영리해 보였다. 같은 학년을 맡은 적은 없는데 비슷한 또래인데다 규모가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함께 어울릴 일이 많았다. 가까이서 보니 직선적으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애교가 있어 나이와 직책을 불문하고 융화가 잘 되는 편이었다. 직선적으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뒷수습이 안 되어서 엉망진창이던 나와는 영 대조적이었다. 그런데도 젊은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Y선생님과 나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둘 다 호오가 뚜렷한 성격답게 면전에서 각자의 흉을 보기도 했다. 방송용어 같은 말만 주고받으며 심심한 거리에 머무는 관계가 있는 반면, 서로가 서로를 날카롭게 간파해가며 가까워지는 관계도 있다. 그녀는 특히 우리 엄마를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간 후로는 수학여행 가서 엄마를 드린다고 미역도 사오고, 싹싹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녀는 항상 내게 K선생님은 결혼도 안 할 것 같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잘 살 것 같다고 말했었다. 발령 후 3년 즈음 슬럼프를 겪다가 대학원으로 내뺐을 때도 내가 거기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가 보다. 너도 여기 와봐라, 되게 좋다고 했더니 어느새 박차를 가해 내가 졸업하던 해에 그녀가 입학을 했다. 이야기 도중에 내게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오는데 문득 힘이 빠져, 이제 곧 애 엄마가 될 텐데, 여기서 더 하면 허영심이 생겨서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고루한 대답을 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변하다니, 탄식으로 응대했다.

  나는 변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Y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던 당시의 내 모습은, 용감했다기보다 뭘 잘 모르니까 겁도 없었던 것 같다. 인생 초반에 큰 실패란 것을 겪어보지 않은 범생이들의 행로가 대개 그러하듯 마음먹으면 다 될 것 같고 잘 안 될 것 같은 일도 일단 저지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가다보면 맛 가는 수가 있는 정신상태. 그만큼 주변과의 충돌이 잦았고 나 자신과의 불화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위험한 연애, 어려운 책, 까칠한 인간 등등에 매혹되던 시절이었으니 뒤늦은 사춘기를 사회에 나와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당시 동료들은 뒤에서는 욕을 했을지언정 앞에서는 독특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즐거워했다. 다시 돌아봐도 너무 솔직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좀 피곤하기는 해도 신기했을 수는 있겠다.

  세월이 흐른다고 근본이 바뀔까. 별로 그렇지는 않다. 그 모습 그대로 갖고 가는 부분이 더 많고 이따금 죽지 않은 열정이 슬근슬근 가슴을 간질일 때도 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 여기저기 부딪치고 신혼 초에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깨달았다. 나와 상대의 바닥을 보았다 싶을 만큼 치열하게 다투면서 건진 한 가지.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거구나. 기껏해야 자장면과 짬뽕, 순대국밥과 곱창전골 사이에서 고민하며 사람이 다 먹을 수는 없는 거야, 아쉬워하던 나였는데 장족의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특히 남편과 나는 연애 때부터 지금껏 서로에게 허용적인 편인데도, 그런데도, 깨달음은 꽤 징하다.

  Y선생님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러질 예정이란다. 아줌마가 다 된 것 같은 말투에 놀라워했는데 배부른 모습까지 보면 앉아있다 벌떡 일어서지 않을까 모르겠다. 내내 논문 주제 걱정을 하는 그녀에게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에 더 신경 쓰라고, 논문은 열 달 채우면 다 나오게 되어 있다고 정말 임신부다운 조언을 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 대학원 선배가 내게 했던 조언이었다. 살면서 가끔 인생의 언니, 오빠들로부터 주워들었던 말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와 닿지 않아 흘려들었던 것들도 어느 순간 과연 그렇구나, 싶어질 때가 온다. 진즉에 말 좀 잘 들어가며 살걸, 하다가도 진즉에 그렇게 살았으면 내가 내가 아닌 게 되어버리니. 역시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어 스스로 망가지거나 자폭하지 않고 이만큼 온 것도 다행이라는 위안.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면 언제나 화끈화끈. -_- 내가 기억하는 Y선생님은 인생 늦둥이인 나보다 더 의연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녀의 행복을 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12-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노래가
'내겐 더 많은 꿈이 있어 어떤 꿈일까??" 일까요..
아니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일까요..
아니면 '슬퍼도 울지 않을꺼야 난 웃으며 달릴 꺼야~~ 일까요..

그나저나 깐따삐야님도 이제 내 누님같은 꽃이 다 되었습니다 그려....^^

깐따삐야 2009-12-03 12:08   좋아요 0 | URL
뭐든 봄여름가을겨울 노래면 다 좋아요! 김종진 목소리를 부르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요.

늙었다는 말씀? 아주 순간이더라구요.ㅠ

레와 2009-12-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과거에 비추어 미래의 내 모습.. 상상이 안되요.
그 과거에 지금 내 모습이 이럴꺼란 상상을 못했거든요..^^;

깐따삐야 2009-12-03 12:10   좋아요 0 | URL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한창 흘러나오던 때가 있었죠.^^

레와님은 구체적인 나이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항상 소녀 같으셔요. 저도 제 나이 서른에 이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제목을 써놓고 보니 뭐 요리랄 것까지야... 하는 생각. 예전에 레토르트 식품 광고를 보며 달랑 3분 요리 해주고 요리사 소리 듣는 엄마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의 내 식생활을 보면 엄마가 만드신 완제품을 가스 불에 데우는 정도이니 광고 속 주부와 다를 것이 없다. 요즘은 임신을 핑계로 만둣국에 얹을 파와 계란 지단까지 엄마가 썰어다 주시니 참 한가한 손모가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편도 엄마 손맛에 길이 들어서인지 늘 소식을 주장해오던 사람인데 먹는 양이 많이 늘었다. 결혼 전에 자취를 하면서는 주로 밖에서 먹고 들어오거나 혼자 먹을 분량만큼만 만들어서 먹곤 했다고 한다. 그는 마음먹으면 음식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입덧이 심해 주방 근처에도 못 갈 때는 손수 볶음밥도 해주고, 김밥도 싸주고, 특히 김치나 부추를 넣고 만드는 부침개는 나보다 보기 좋게 잘 부친다. 언제 김치 한 번 담가보시지, 했더니 장모님이 하시는 거 옆에서 한번 보면 담글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만만하다. 엄마도 이제는 음식을 건네시면서 남편한테 당부를 한다. 이거는 가자마자 냉장고에 넣고, 생선 구울 때는 얘가 둔해져서 혹시 모르니까 자네가 하고... 가스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프라이팬 손잡이를 건드려서 몇 번 뒤집은 적이 있는 나를 못 미더워하시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을 봐서 뭘 좀 해볼까 싶다가도 왠지 재료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관둘 때가 많다. 엄마는 알뜰하게 장을 봐서 혹시 부족한 재료가 있어도 맛있게 만드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는데다 혹시 실패하면? 남는 재료들은? 괜히 쓰레기만 만드는 거 아냐? 그러저러한 노파심에 에잇, 그냥 얻어다 먹자, 마음을 접는다. 엄마는 먹어본 게 있으면 나중에 다 잘할 수 있다고, 자꾸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솜씨는 는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는데 나는 이러다 3분 요리 광고 속 그 엄마가 될까봐 좀 불안하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뭔가를 만들면 항상 맛있다고 한다. 김치는 물론이고 매일 먹는 국과 밑반찬까지 몽땅 얻어다 먹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도 음식을 하기는 한다. 엄마가 소고기로 육수를 내주시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그것으로 미역국도 끓이고 무국도 끓인다. 사골 육수로는 만둣국이나 떡국을 끓인다. 어설프긴 하지만 본 건 있어가지고 김 가루도 고명으로 올리고 지단도 부쳐 올린다. 혹시 사골 육수가 남으면 김치찌개 끓일 때 사용한다. 돼지고기, 적당히 시금시금해진 김치, 사골 육수, 세 가지면 다른 것을 넣지 않아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멸치 육수로는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끓인다. 된장찌개에는 주로 두부, 버섯, 감자 등을 넣고 청국장에는 두부하고 김치만 넣는다. 여름에는 호박 넣고 끓여야 맛있던데 요즘은 감자가 별미더라. 특히 나는 청양고추를 꼭 썰어 넣어서 약간 칼칼한 맛을 즐긴다. 그런데 다른 재료 다 좋아도 된장이 맛없으면 된장요리는 말짱 맹탕. 반드시 집된장이거나 시판되는 된장 중에서도 집된장 맛이 나는 된장이어야 한다. 어쨌든 몇 가지 국물 요리를 해본 결과 육수가 맛있으면 절반의 성공은 장담할 수 있다.  

  그밖에도 가끔 카레도 끓이고, 불고기도 하고, 기본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하는데 자신이 없는 것은 밑반찬과 나물 종류다. 우리 집에 꾸준히 있는 반찬이 멸치, 새우, 오징어채 볶음인데 내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다. 엄마가 하시는 것을 구경은 많이 했는데 빛깔 내는 것도 그렇고, 보아하니 마늘, 대추 같은 것도 저며 넣어야 하고, 의외로 귀찮더라는. 시금치나 고사리 같은 나물류도 그렇다. 얼마나 데쳐야 하는지, 들기름과 마늘 다진 것은 언제,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 쉽다는 콩나물 무침도 아직 안 해봤다. 레시피만 알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 

  상태가 이런데도 생각은 야무지다. 앞으로 시어머니 생신이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이번에 생신 상을 한번 차려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년에 아버님 생신상은 어머님이 차리셨고 어머님 생신상은 시누이가 대접했다. 그때 나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 생신 때는 제가... -_-;; 나는 빈말을 하거나 공수표 날리는 일을 스스로 금하는 편인데 그만큼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거나 잊어버리는 일에도 능숙하지를 못하다. 아직 만삭인 것도 아닌데 결혼해서 처음 생신상 한번 차려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엄마처럼 입맛 까다로운 분은 자신이 없지만 다행히 시부모님들은 내가 미역국에 계란을 풀어도 아마 잘했다고 하실 거다.

  엄마한테 이 사태를 고했더니 도와주시겠단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다 하는 게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는데 이번에 불고기와 잡채 정도는 완전히 마스터 해야지. 굴비나 조기 같은 생선을 굽는 것만 하지 찌는 것은 잘 못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배워야겠다. 아, 나는 음식을 정말 잘하고 싶다. 입덧할 때 밥맛이 없어서 외식을 연달아 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는 못 살겠더라는. 나처럼 집밥에 인이 박힌 사람은 시대가 변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내 입의 즐거움, 내 몸의 건강을 위해 기본 음식들을 배워놓아야만 한다. 친구들이 온다고 해도 겁내지 않고, 친척들이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고,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음식을 그 날로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음식을 잘하는 것도 자신감, 또는 행복의 한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12-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 역시 음식엔 거의 문외한 잼뱅이 수준이었는데...
이젠 무침류나 밑반찬류는 꽤 완성도가 높게 결과물이 나온다죠.
특히 윤기 좔좔 흐르는 연근 조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만....
아직도 국물내는 요리는 제가 한 수 위........에요..호호

깐따삐야 2009-12-02 12:25   좋아요 0 | URL
아, 저 연근조림도 좋아하고 우엉조림도 좋아하고 장조림도 좋아하는데! 만들지는 못한다는.-_-
메피님은 역시 마당쇠다운 실력을 뽐내시는군요. 이제 냄비요리의 계절이 왔으니 마님을 위한 밥상을 준비해 보시와요.^^

레와 2009-12-0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나물 무침,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 (^^;;)

독립을 하고 내 손으로 매끼를 챙기다 보니, 한그릇 음식이 편해졌어요.
뭐든 30분이내에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입맛 없을때는 무조건 상추쌈! ㅎ

언제였는지.. 제가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말입니다.(풉~)
현실은.. (먼산____________________ ( ")

깐따삐야 2009-12-02 12:30   좋아요 0 | URL
험... 전 콩나물국도 어렵더라구요. 먹을만 하긴 한데 집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에요. 뚜껑을 계속 열거나 닫아놓고 끓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뭔가 미진한.ㅠ

저도 자취할 땐 빨리 해서 빨리 먹고 치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상추쌈도 편하고. 요즘엔 구운김에 달래간장이 맛나더라구요.

현모양처, 아예 꿈도 꾸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아요. 레와님은 결혼하면 아주 재미나게 사실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