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 16세기의 격동하는 삶과 죽음, 명예와 수치
조엘 해링톤 지음, 이지안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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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조엘 해링톤은 미국 출신 사학자로 1700년 이전 독일의 사회적, 법적, 종교적 주제에 대하여 연구하며 1989년부터 밴더빌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해링턴은 30년 전쟁 이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수)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뉘른베르크에 주목했을 것이며, 연구를 하던 중 프란츠 슈미트라고 하는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 일기 기록을 열람할 기회를 가져 당연히 대단한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뉘른베르크는 수공업 길드 이외에도 법과 질서의 요새라고 칭송받는 자유제국도시여서 다른 도시에 비하여 활발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형집행인. 흔히 망나니라고 불리는 직업의 사나이를 작가는 마이스터 프란츠, 마이스터 슈미트 등으로 칭하면서 엄연히 긴 도제생활을 거친 사형집행의 장인으로 깍듯하게 올려 불렀지만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름 높은 뉘른베르크의 수공업 길드가 사형집행을 길드로 편입시키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집행인들도 피집행자들에게 실수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고통을 극소화 하는 것이 일종의 직업윤리였더라도 극도의 혐오직업인 사형집행인을 길드는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아는 상식과 달리 뉘른베르크의 길드는 피혁, 무두장이, 신기료, 도살업 같은 직업도 길드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해링톤은 두어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와 노래로 한 시절을 풍미한 뉘른베르크 길드의 우두머리 한스 작스가 직업이 신기료인 것에 대해서는 슬쩍 모른 척해버린다. 나는 한스 작스는 바그너가 작곡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주인공으로 독일 이야기책에 나오거나 바그너가 창작한 인물인 줄로만 알았다가, 이번에 책을 통해서 실존 인물이며, 가장 유명한 뉘른베르크 길드 조합의 대표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럼 베크메서 씨도 실존인물이었을까?

  프란츠 슈미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하인리히 슈미트 씨를 따라다니면서 사형집행과 고문, 사체의 처리 같은 일을 오래 배운 후에 비교적 젊은 나이로 정식 사형집행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 하인리히 슈미트 씨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1553년 가을. 하인리히 슈미트 씨는 지금 지도상 체코 국경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에른 주 남서쪽에 있는 호프 시의 나무꾼이자 새사냥꾼으로 평화롭고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호프 시는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의 영토였다. 변경백邊境伯이란 국경지역의 방어를 위한 지역으로 봉건영주의 권한이 일반 영주보다 폭넓은 군사력과 행정권을 가지고 있었다(p.49 각주). 이곳의 젊은 제후가 알브레히트 알키비아데스 2세라는 독일인치고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였는데, 종교분쟁 당시 자기 이권에 따라 여기저기 막 붙어먹었던 모양이다. 책에서는 점잖게 합종연횡을 계속했다고 썼다. 영토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욕심이 스스로를 일종의 전쟁광으로 만든 모양이기도 했다. 알키비아데스 변경백에게는 호프 시를 위하여 한 명의 사형집행인을 종신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이미 재정이 황폐화된 마당에 다른 직종보다 적지 않은 연봉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중 반역죄로 마을의 총포공 세 명을 체포하여 사형 판결을 내놓고, 공개처형을 구경하기 위하여 새카맣게 모인 구경꾼들에게, 옛 관습을 들먹이는 연설을 하면서, 처형의 관객 가운데 한 명을 지목해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선언하고는 곧바로 하인리히 슈미트 씨를 꼽아버린 거였다.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그러나 알키비아데스 변경백은 슈미트 씨에게 만일 세 번 거절하면 같은 반역죄로 죄인들 옆에 세우겠다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급기야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을 얻게 됐다. 애초 알키비아데스와 슈미트 집안 사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란다.

  호프 시에서 사형집행인이 된 하인리히는 밤베르크로 가서 정식으로 시청에 등록된 공인 사형집행인이 된다. 그런데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직조공 또는 재단사 가문이었으며 자신은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나무꾼과 새잡이였음에도 어떻게 사형집행인의 일을 받아들였을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알브레히트 알키비아데스의 폭정이 종막을 내리고 자리를 승계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즉시 호프 시의 재건에 착수하여 인구가 늘고 재정이 충분한 상태로 만들었다. 한편 형법을 정비해 사법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처형건수와 처형의 강도가 각각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인리히 슈미트는 제후가 바뀌고 1년 동안 8건의 사형을 집행했으며, 이때 받은 대가는 다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해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원이었다. 이제 하인리히에게는 프란츠를 비롯한 여러 아이가 태어나 고정적인 수입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빵이 중하니까.

  하인리히는 보다 나은 수입을 위하여 밤베르크 주교후의 공식 사형집행인 자리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을 도전해 지위를 얻게 된다. 공식 사형집행인이 되기 위해 하인리히 슈미트는 갑작스레 고통스러운 직군으로 떨어져 20년 동안 굴욕의 시간을 지내고 난 다음이었다. 일반 시민의 경우에 비록 같은 시민계급의 사람들조차 악수는커녕 눈길 마주치는 것도 피하는 신분이어서 심지어 성 안에 들어와 사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아 공개처형장 옆의 부속건물에서 살아야 했지만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직업으로써 사형집행인은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만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를 알게 된 하인리히는 자신의 아들인 프란츠는 어린 시절부터 사형집행의 조기교육을 시켜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집행인을 만들고 싶어하고 정말로 그렇게 된다.

  사형집행인은 일단 연봉이 높다.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직종이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좋은 직업은 아니기 때문에 사형집행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 헌신하려는 사람 역시 극히 드물기도 하다. 하지만 뉘른베르크나 아우크스부르크, 밤베르크 시에서조차 정식 집행인이 되면 높은 보수에, 일이 없을 때는 영주의 허락을 받아 이웃한 도시나 마을에 출장 집행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또한 당시 사법 시스템에는 지금 시각으로는 지극히 원시적인 법의학 수준만 가지고 있어서 용의자의 자백이라는 증거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별수사, 즉 고문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이 고문을 통해 사형집행인은 괜찮은 가외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집행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해체하고, 수거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저절로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이용하여 당시 수준에서는 꽤 어려운 난이도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정식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만큼은 아니지만 의사를 찾아갈 형편이 안 되는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치료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전통적으로 의료업을 겸하던 이발사와 함께. 그러나 이발사보다는 더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집행인이 나이가 들어 원숙해지면 의료행위로 인한 수입이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오히려 더 중요한 직업일 수 있었다.


  스스로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던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는 견습생 시절부터 자신이 집행한 거의 모든 사형에 관하여 일기 형식으로 메모를 해 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짧은 보고 식으로 시작했다가 세월이 가면서 죽은 이와 그가 저지른 범행, 사형의 방법, 심지어 집행인의 감정까지 보태게 된다.

  사형의 방식은 화형, 수레바퀴형, 교수형, 참수형으로 나뉜다. 다른 방식의 사형도 있었겠지만 법정에서는 이 네 가지 방식으로 선고를 내리고, 집행인이 집행하기 전, 집행하면서 방식을 좀 더 개선할 수도 있었다.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의 예를 든다면, 아무래도 정말 산 사람을 불에 태우면 고통이 지독할 수밖에 없으니 불을 붙이기 전에 슬쩍 목을 조르거나 하여간 다른 방법으로 죽인 다음 형태만 불에 태우는 식이다. 당시만 해도 미신의 시대니까 화형은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마술사, 마녀에게 집중했고, 잔인한 범죄에 대해서는 수레바퀴형을 집행했다. 형을 집행하기 전에 판사는 불에 달군 인두로 몇 번 지지는 형벌을 내릴 것도 선고했는데, 정말 빨간 인두형을 하면 피부와 근육이 인두에 들러붙어 인두를 떼는 순간 살덩이가 뚝 떨어져 나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린다고 한다. 집행대에 올라 바퀴 위에 눕혀 놓고 쇠로 만든 바퀴살에 다리와 팔을 걸어 돌리면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심하면 잘라진다는데 뭐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교수형도 교수목과 사람의 목이 매달인 간격이 너무 짧아 말 그대로 질식사를 시키는 것이라 고통이 심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죽은 후에도 그냥 내버려둬 몇 주가 지나 시체가 썩으면 저절로 교수대 아래 구덩이로 툭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교수형, 수레바퀴형, 화형을 선고 받았다가 탄원을 해 참수형으로 “감형”도 많이 해주었다고.

  주인공이랄 수 있는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는 다른 집행인들과 다르게 매번 작업을 심도있게 연구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늘 기록을 남겨 뉘른베르크의 법관과 공무원 사이에 신임이 대단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과의 혼인도 불가능하고, 항상 모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불명예 속에서 살아, 자신은 모르겠더라도 자식대에서는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게 해주기 위하여 독일의 황제에게 직접 신원복고의 탄원서를 제출한다. 물론 황제가 직접 읽어보고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나이 일흔 살이 넘어 기어코 명예로운 신분으로 돌아와 제국도시 뉘른베르크의 시민권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늙은 프란츠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병과 전쟁, 기근 등으로 프란츠 슈미트의 후손은 자식 대에서 끊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이 책은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까지 활동했던 모범적인 사형집행인의 삶을 그렸다고 해야지, 이것을 작가가 주장하는 대로 시대의 혁신 비슷한 인물, 시대상을 대변 같은 수사를, 안타깝지만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역사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프란츠 슈미트에 과한 후광을 그려준 느낌이다. 책은 재미있다. 재미로만 읽어도 왠만한 소설만큼은 된다. 그러나 역사책으로는, 조금 오버? 한겨례신문 서평을 보고 고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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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7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 가을에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둔 책인데...
빌리긴 했으나 미처 펴 보지도 못
하고 반납을 -

<행맨‘s 다이어리>라는 책으로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 아재
의 기록이 소개된 모양이네요.

사형 집행인의 당대 기록이 후대
의 연구가에 의해 부활하는 서사
가 흥미롭네요.

오늘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려
고 합니다.

Falstaff 2024-02-27 17:47   좋아요 1 | URL
작가의 오버가 넘 심해서 말입지요, 뭐 사가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부분을 과하게 객관화시켜서 마치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ㅎㅎㅎ 그랬습니다. 별 셋을 줄까, 넷을 줄까 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넷 주는 선에서 마감했답니다.

coolcat329 2024-02-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책이 있군요. 프란츠 슈미츠가 사형집행인으로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일기를 썼을까요?
우리나라 망나니는 돈 많이 못 벌었겠죠? 그래도 독일은 돈이라도 많이 줬네요. 참 돈이 뭔지 이런 일도 해야하고... 무서운데 또 읽고는 싶네요.

Falstaff 2024-02-27 17:50   좋아요 1 | URL
아이구.... 굳이 뭐 직접 읽으실 필요까지는.... ㅋㅋㅋ
정말 읽어보셔도 제 독후감이 거의 다일 텐데, 재미는 있으나, 굳이 내돈내산은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크레파스
채영주 지음, 김형중.한수영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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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영주. 낯선 이름의 소설가이다. 1962년 임인년 부산생. 1988년에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2002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하필이면 이이의 활동시기하고 내가 봉급쟁이 한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지내느라 책을 거의 안 읽던 때하고 겹친다. 2022년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소설가 채영주의 사망 20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책 몇 권을 “기념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찍었다. 중단편 열 편을 가려 선집 한 권을 꾸렸고, 장편소설 가운에 오늘 읽은 <크레파스>를 골랐다. “채영주 20주기 기념 선집 간행사”는 “이 선집을 그를 기억하는 많은 분, 무엇보다도 아직도 그를 작가로 소중히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께 바칩니다.”라고 해서, 오히려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독자(나)로 하여금 아주 대단한/대단했던 소설가였을 것이란 기대를 충만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정찬의 말에 의하면 그의 지병은 “위무력증”. 짧게 이야기해서 굶어 죽었다는 거다. 2002년에 굶어서 죽는다? 교사로 정년퇴임한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를 둔 소설가라면 굶어 죽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였다. 신경정신과 방면의 집중치료가 필요했었다. 채영주에게는 사는 일이 남들과 같을 수 없었나 보다. 학자가 되기 위하여 독일유학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사라져버려 웨이터, 주방보조, 빵 공장 직공 등을 전전하기도 했고, 1992년에 결혼식 며칠 전에 난데없이 잠적해 식장을 찾은 하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고 정찬은 말한다. 다양한 작품을 썼는데 그의 라이브러리엔 <무위록>라는 제목의 정통 무협지, 동화 <비밀의 동굴>도 포함된다. 읽기도 전에 이렇게 독자의 기대를 키워 놓았으니, 그것 참. 작가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작품에 더 의미를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빤한 느와르였다. 게다가 나는 느와르와는 상극인 체질이다. 세상에 읽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피가 튀는…….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이유진은 LA가 잘린 도마뱀의 꼬리만큼 싫다. 천사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유진이 처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는 거의 빈털터리라 제대로 된 숙소에서도 살지 못하고 큰 방에 침대 열 개 남짓 들여놓고 여덟 시간 단위로 침대를 대여해주는 시간제 침대 숙소에서 묵었다. 서양인들의 몸에서 나는 이상한 체취와 불결한 오물 냄새가 그득한 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몇 년이 흐른 후까지 생각만 해도 진저리를 치게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명도의 피부와 피부색에 따를 개별적 냄새를 맡은 수 있고, 모든 파렴치한 행위를 볼 수 있는 곳. 유진의 부모는 한국인들 특유의 억척스러움으로 금방 시간제 침대 숙소를 벗어나 작은 싱글 아파트에 들어갔다. 아버지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어머니도 주점에 서빙 직원으로 취직을 해야 했으며, 어쩔 수 없어서 동의한 것이긴 해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짧은 유니폼을 견디지 못했다. 하루 종일 남자들의 담배 연기 속을 급한 걸음으로 맥주 조끼를 날라야 하고, 기름기 많은 음식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일. 아버지는 어머니 몸에 밴 담배 냄새, 기름기 냄새, 술 냄새를 못 견디겠다고 크게 짜증을 부렸지만 사실 짧은 치마와 유니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다툼이 심해졌고, 몸과 마음이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던 어머니가 바득바득 따지기 시작했으며, 평소엔 절대 그러지 않았던 아버지는 꼭지까지 흥분해 어머니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으며, 어머니는 그대로 뒤로 돌아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로 뛰쳐나가 버렸다. 어머니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아침이 밝은 후에 거구의 백인 경찰이 집에 와서 어머니가 불량배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새엄마를 들였으며 ‘모친’은 그림형제들의 동화에 나오는 계모와는 달리 유진을 살뜰하게 돌보았다. 그럼에도 유진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작품의 첫번째 무대는 주유소. 주인공 이유진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가 된 절친 재익과 우리나라에서 속칭 총잡이로 불리는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학교에서는 ‘올리버’라는 이름의 백인 소년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올리버는 LA에서 제일 큰 주류 도매상과 호텔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외아들로 LA 일부 지역의 패권을 두고 여러 해째 흑인 패거리들과 으르렁거리는 관계에 있었다. 그는 아시아인, 이 가운데서 특히 한국인 소년들을 자기 수하에 부리고 싶어 해 현수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한국 출신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다만 한국인 소년 커뮤니티에서 제일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진이 고분고분하지 않아 그의 생일 기념으로 유진과 재익을 죽지 않을 만큼만 두드려주려고 차 네 대에 스무 명이 몰려 들었다. 빌리, 찰스, 덴버를 비롯해 차에서 쇠파이프, 각목, 체인을 가지고 내리는 소년들은 아르바이트 생들을 가차없이 구타하기 시작했고, 피와 살이 튀는 와중에 유진은 급유기의 가솔린 건을 뽑아 그들에게 휘발유를 난사했다. 그리고 품에서 성냥을 꺼내 위협한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그게 쉽나. 유진의 저항은 곧 끝나가고 다시 폭행을 시작할 때쯤 갑자기 차량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비교적 차도 가까운 곳에서 얻어 터지고 있던 유진을 나꿔채 차에 싣고 현장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유진은 혼절해버리는 바람에 상황을 알지 못했지만, 그를 구해준 사람은 한 살 더 많은 흑인 동급생 닉 베이슨이었다. 흑인 소년 커뮤니티에서 크게 힘을 쓰는 권력자. 그러나 선한 마음과 합리적인 행동을 할 줄 아는 반듯한 청년.

  닉은 유진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뼈는 부러지지 않은 유진의 몸에 붕대를 감고 일 주일 가량 푹 쉬게 해준다. 그러나 집안에는 뾰족한 성격의 동생 샐리가 있어서 닉의 방에 놓인 엄마 침대 시트에 피가 묻은 것을 질색한다. 어머니는 십여 년 전에 일을 마치고 샐리를 돌보기 위해 LA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버스 안에 커다란 몸집의 백인이 자기를 쳐다보다가 백인 남자한테 흑인 년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하게 구타당하고, 버스에서 내던져져 팔목 골절상을 당한 일을 직접 들어서, 어머니가 돌보려 했던 아이가 바로 자신이어서, 흑인 커뮤니티 이외의 인종들을 혐오하는 성향이 짙다. 흑인 가정 치고는 놀랍게도 벽면 한쪽을 책장과 낡은 전축이 차지하고 있는데 한 2백장 정도의 LP 전부를 흑인 음악으로 구성했다. 샐리는 살며시 들어와 음악을 틀고, 문을 조금 열어놓아 거실 탁자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는 했다. 그러다 며칠 후, 유진이 샐리에게 “음악도 편식하는 건 좋지 않아요. 비틀즈나 씨씨알Creedance Clearwater Revival CCR 같은 소프트한 백인 음악도 들어보지 그래요.”라고 했다가 그게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것인 줄은 몰랐다.

  이 일을 계기로 닉과 친해진 유진. 그는 닉을 통해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얼굴을 알리게 되지만, LA 청소년 집단에서 패권을 쥐고 싶어하는 올리버의 눈에는 도무지 곱게 봐줄 수 없었던 거였다. 게다가 아버지도 하필이면 흑인들과 친하게 다니는 외아들이 마땅하지 않은 건 당연하고. 미국으로 이민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백인 집착은 유명하지 않은가 말이지. 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유진은 죽은 어머니를 꺼내면서 아버지와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달으려 하는 반면,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유진의 일에 관해서는 알고도 침묵을 지키기만 한다. 이렇게 지내다가 LA의 축제 가운데 하루인 한국인의 날이 되고, 유진은 닉과 닉의 여자친구 아이린, 그리고 샐리와 퍼레이드 구경을 나왔다. 행사를 즐기며 기념품도 사주는 유진. 그렇게 즐거운 하루가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올리버의 한국인 수하들이 그들에게 따라붙어 다시 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유진은 한국소년에게 크게 상처를 입혀, 10만 달러의 현금을 아버지가 물어줘야 했다. LA가 지긋지긋한 유진.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원하는 바대로 경영학을 공부하겠으니 뉴욕으로 보내달라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당부했고, 문제가 해결된 다음날 아침 곧바로 뉴욕행 기차에 오른다.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벌써 7년 후, 아이비리그 가운데 한 곳인 컬럼비아 대학을 나와 공인회계사가 된 이유진. 뉴욕에서 회계법인에 들어가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LA에서 온 전화를 직접 받지 못하고 며칠 후에야 받게 되는데, 아버지가 운영중인 술도매상에서 괴한의 총에 심장을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즉각 비행기를 타고 LA로 날아가는 이유진. 이미 그림은 그려졌다. 흑백 간 갈등 사이에 낀 한국인 커뮤니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인종간 갈등을 유발시키는 집단. 독자는 읽으면서 저절로 선악의 배열과 사건의 전모를 눈치챘다는 것을 아마 작가만 몰랐던 듯하다. 작가의 이른 타계는 아쉽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을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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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2-26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찍 죽으면 올려쳐 지는 경향이 있긴하죠 ㅋㅋㅋ단호한 백작님 ㅋㅋㅋ

Falstaff 2024-02-26 16:5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일정 나이 이상이면 먼저 죽는 게 형이라더군요. 먼저 죽었는데 지가 와서 절 안 해? 이렇게 말입죠. ㅋㅋㅋㅋ

stella.K 2024-02-26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이런 글을 썼군요. 저도 느와르는 별로긴한데 그래도 재밌게만 쓴다면야.
근데 문단계에선 나름 춰줬나 봅니다.
위무력증이 굶어죽는 거군요. 의학용어는 참...
근데 굶어 죽었다면 자발적이었단 걸까요? 거식증 같은. 암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니 그 인생이
편하진 않았겠네요.

Falstaff 2024-02-26 16:58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만, 20주년 특별 ˝기념선집˝이 나왔다니 아주 혹해서 읽었다가, 아주 찍해버렸습니다. ㅎㅎㅎ
인터뷰 기사 읽고 심각한 사람이다 싶었습니다. 그냥 뭐든지 평범한 게 제일이예요. ^^
 
4 3 2 1 (1) (양장)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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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쪽에 달하는 오스터의 현란한 구라. 삐딱하게 생각하면 애초에 나갈 길을 잃고 헤매다 몰라 몰라 생각나는 대로 다 써봐, 한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대단한 구라, 말빨이라 두 손 발딱 들었다. 항복. 오스터표 아메리칸 해피엔드 기대하지 마시라. 무척 길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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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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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1953년 발표 작품. 30대 후반에 쓴 장편소설. 아직 누보로망으로 선회하기 전이라 책은 수월하게 읽힌다. 여기서 “수월하게”라는 건 뒤라스의 작품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평온한 삶>이나 <태평양을 막는 제방> 같은 초기작품이 아니라서 이미 스토리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경우엔 딱 적당할 정도의 건조함이 있어서 좋았다. 완전한 심리소설.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 얼핏 보기엔 변덕일 수도 있고, 질투, 신경질, 히스테리일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 삶의 저층을 이루어 삶을 지탱해 나가게 만드는 장치인 인내와 배려에 더 가까워 보이는 감정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지를 보여준다. 얼핏 읽으면 <모데라토 칸타빌레>와 비슷한 느낌이다. 대서양-겨울과 지중해-여름의 차이는 있으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모데라토…>보다는 덜 버석거린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정강이뼈 부근 바닷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 한결 같은 무더위가 대기를 지배하는 이곳은 밤조차 누구에게도 휴식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며 힘들게 잠에 빠져 있건만 함께 온 젊은 가정부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라는 주인의 말을 결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라와 자크가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으로 휴가를 와 보니, 여름 휴가지로 자크는 아주 싫지는 않다고 하고, 사라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 해변가로 온 이유는 사라와 오랜 우정을 맺은 남자 루디의 추천 때문이었다. 루디 역시 아내 지나와 함께 조금 떨어진 숙소를 빌려 지내고 있는데, 이 커플은 12년 전부터 이곳에서 휴가를 나고 있으며 12년전 보다 이전에 이곳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 이 두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다이아나는 호텔에 숙박하고 있어서, 아이까지 합해 여섯 명이 일행을 이룬다. 이상 기후 때문에 파리와 베를린은 섭씨 42도를 넘어서고 로마는 45도까지 치솟는 여름이다.

  이들이 도착한 휴가지는 산에 둘러싸이고 바다에 면해 거의 완전히 고립된 지형으로 산에서 바다로 사라 부부가 묵는 별장 몇 미터 앞에 너르게 은빛 강물이 흐른다. 이 강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사라는 생각한다. 고립된 바닷가라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무덥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대전에 휩쓸리는 등 역사의 풍파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고립 지형이 전력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으니까. 이레 반이라니까 한 열흘 전쯤 루디의 별장 뒷산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하던 청년이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폭사해서,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산에 도착해 아들 시신의 파편을 찾고 있었다. 이제 작업은 끝났지만 갑자기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아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 나이든 어머니는 청년의 사망확인서에 서명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동네의 식료품점 주인은 이 노부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늘 산에 올라 함께 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은근히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기 바라는 것 같다. 이 사건 때문에 여름휴가지인 이곳에선 모든 무도회가 취소되었으며 마을 전체가 상중으로 변한 기분이어서 많은 휴가객은 죽은 청년의 부모가 빨리 떠나주기 바란다.

  산기슭의 강을 따라 모여 있는 삼십여 채의 집. 이들과 나머지 세상을 잇는 건 오직 바다로 가로막힌 7킬로미터 남짓한 흙길 뿐이라서, 삼십여 채에 세든 세계 각지의 휴가객들은 서로가 어떻게 휴가를 지내고 있는지 훤히 눈치를 채고 있다. 모든 휴가객은 사라와 자크 커플, 그리고 루디와 지나 커플이 왜 그런 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로 격렬하게, 자주 싸움을 하는 지는 알고 있다. 원래 이런 곳에서 여가, 수영, 보트, 낚시 다음으로 재미있는 건 같은 곳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라서.


  실제로 두 커플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고, 결혼한 대다수의 커플은 늘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는 거 아닌가? 극소수는 커플 중 한 명이 그냥 죽어 지내는 거고. 위에서 말한 동네 식료품점 주인이 그런 경우이다. 어찌어찌 결혼을 했는데 도무지 아내는 자신을 사랑하는 거 같지 않다. 자신은 아내를 정말 사랑하건만 아내는 오직 가게를 운영하고 확장하는 것에만 모든 정열을 쏟는다. 식료품점 주인은 아내가 하필이면 나 같은 남자를 만나서 사랑이 없는 삶을 사는 거라고 짐작해서, 아내를 위해 남자들과 가깝게 지낼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한테도 관심이 없고 남편의 이런 노력에 격하게 화를 낸다. 오직 가게 확장과 돈벌기에 몰두하던 아내는 결국 카운터에서 장부를 검토하다가 그 자세를 그대로 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신은 그만두고 아내가 하다못해 다른 사람을 사랑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 뭐 그렇다는 거다. 그게 진실인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눈 등장인물, 그리고 독자들도 알 방법이 없다.

  루디와 이곳 출신인 것 같은 아내 지나도 비슷하다. 루디는 지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으나 지나는 루디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사람들은 안다. 역시 독자도 안다. 지나 역시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의 생각과 다르게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지나는 매사에 남편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화를 폭발시키며, 그 강도가 가볍지 않아서 이곳의 휴양객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지나 역시 식료품점 주인과 함께 매일 산에 머물고 있는 지뢰 폭발로 죽은 청년의 부모를 만나러 가며 그들의 점심식사를 챙겨준다. 남편 루디는 점심을 먹든지 말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으면서.

  산에서 청년이 지뢰폭발로 죽은 다음 날, 이곳 해변에 멋있고, 빠르고, 어떻게 봐도 비싸게 보이는 보트를 몰고 한 남자가 등장한다. 장Jean. 약간 차갑지만 호감 가는 스타일의 남자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30대가량으로 보이는 싱글이지만 집에 아내가 있다고 나중에 말한다. 멋진 배를 아직은 얻어 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그룹 가운데 두 명이 남자의 보트를 타고 싶어한다. 루디와 (사라의)아이. 이틀 전 사라가 호텔에 가서 친구 다이아나를 부를 때 남자와 처음 대면한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떨떨하게 인식했고, 사라는 그가 그렇게 인식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런 건 원래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니까. 이후 이들은 이틀 연속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만나 대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말한다. “원하시면 제 배로 해안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이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역시 남편 자크는 본능적으로,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 늘 하던 대로 호텔의 캐노피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쇠공 놀이를 하는 시간에 사라가 남자와 슬쩍 자리에서 사라져도 알고만 있을 뿐 뭐라하지 않는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말릴 필요가 없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자크가 다이아나와 깊은 사이가 되는 것을 사라가 눈치를 챘으면서도 남편한테, 다이아나한테 말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만일 그것에 대해 말을 한다면 자신들 사이의 사랑이 한 순간에 증발할 것 같아서.


  자크가 짧은 여행을 제안한다. 지금 처한 상황을 바꿀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이지만 사라는 별로 관심이 없다. 처음엔 그랬다. 옛 로마 사람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의 후예, 고대 에트투리아인들의 공동묘지를 보러가자고. 그곳에 가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도 볼 수 있다면서. 사는 게 다 그렇다. 위기를 맞고, 전환을 하고, 그래서 다시 조금 더 살고. 그게 인생이지.

  흥미롭게 읽었다. 어떻게 이리 세심하게 그것도 건조한 문장으로 사람의 심상을 그려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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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23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채영주, <크레파스>
회요일. 조엘 해링톤,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
수요일. 이스마엘 카다레, <잘못된 만찬>
목요일. 정지돈,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
금요일. 이언 매큐언, <암스테르담>

반유행열반인 2024-02-23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ㅋㅋㅋ팔백작님 일목요연 한바닥 정리 보니까 소설 읽은게 다시 살아나는 것 같네요. 사람들이 독후감만 읽고 책 안 읽게 되면 어쩝니까? ㅋㅋㅋ 저는 뒤라스 소설에 비교적 젊은 애들이 유럽 여기저기 휴양 다니고 권태 느끼고 하는 거 보면 부럽다 못해 배아프더라구요. 야 그렇게 무료하면 책 읽어 책, 헛짓거리 말고… 난 이놈들처럼 지겨워 죽을라고 안 하고 잘 놀 자신 있는데…보내줘 지중해ㅋㅋㅋ

Falstaff 2024-02-23 16:39   좋아요 0 | URL
앗, 독후감이 그리 상세합니까? 에구... 조심해야겠네요. ㅜㅜ
ㅎㅎㅎ 휴가 다니는 거 저는 별로 부럽지 않던데요. 걔네들도 결국은 인구의 1~5% 인간들한테만 허용되는 거더라고요. (수치는 믿지 마시고요. ㅋㅋ)

blanca 2024-02-2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최근 <모데라토 칸타빌레> 읽었는데 스토리가 사라졌네요. 대체 어디까지가 서사고 어디까지고 상상인지 구분이 잘 안 가더라고요. ^^ Falstaff님 리뷰 보고 <태평양 옆 제방> 읽었는데 저의 최애 작품이 되었답니다. 진짜 잘 쓰는 작가인 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4-02-23 09:57   좋아요 0 | URL
<태평양 옆 제방> 저도요! *덥석!* 사람들이<연인>보다 이걸 읽어야 하는데....

Falstaff 2024-02-23 16:42   좋아요 0 | URL
아휴,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저는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좀 더 좋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뭐 중요한 건 아닙니다. 뒤라스가 매혹적인 작가니까요. 저도 아래 잠자냥 님 댓글처럼 <연인> 또는 <애인>이 뒤라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것이 싫은 인간입니다. ㅎㅎ

잠자냥 2024-02-2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폴스타프 님이 5별 줄줄은 몰랐어요. ㅎㅎ

Falstaff 2024-02-23 16:43   좋아요 1 | URL
세련된 심리묘사가 있잖아요. 그것만 가지고도 별5 안 되겠습니까? ㅎㅎㅎ

moonnight 2024-02-23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 구판으로 읽었는데 어렴풋이 줄거리가 떠오르네요^^ 예쁜 책으로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Falstaff님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2-23 16:4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진짜 별 거 없는 독후감인데... ^^;;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시선 478
신동호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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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강원도 화천 출생에다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데뷔했으면, 아무리 지방신문이라도 만 열여덟 살 때니까, 이거 신동 아냐, 신동? 경복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입석부근> 한 번 내봤다가 덜컥 당선한 황석영 이후에 아주, 아주 가끔 등장하는 영재 말이지. 대개 강원도에서 공부 잘하면 춘천으로 유학해 춘천고등학교 다니고 다시 서울로 가서 명문대학 졸업하는 게 코스인데, 시집 읽어보면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고향에서 역시 대처인 춘천 나와 춘천고등학교 가려고 했는데 때를 잘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평준화 시대를 맞아 춘천고등학교 대신 강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재수 한 번 하고(그럼 재수하면서 신춘문예 먹은 거야?) 서울로 가서 왕십리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대학, 한대 졸업했다. 전형적인 86세대답게 대학 다니며 민주화운동 하다가 남산, 당시 이름으로 안기부 수사실에 끌려 가 매도 좀 맞았고, 마흔여덟 시간동안 잠도 못 자고 그랬던 모양이다. (겸양의 말씀이겠지만) 거물은 아니고 수사관들 말에 의하면 피라미였단다. 대학 졸업하고 뭐 해서 먹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가 들어 아이들 낳고 왕십리, 답십리, 미아사거리에서 창문여고 쪽으로 쭉 들어간 장위동 등 주로 강북지역에서 가난한 살림 지지고 볶으면서도 중대 예술대학에서 석사, 모교인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위는 안 땄지만 박사과정 수료한 것이 2001년. 시집도 내고 산문집도 내고,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시절은 고단했으리라. 가난한 시인이라는 건 이렇게 글로 써 놓아야 멋도 있고 폼도 나고, 가오도 잡고 그런 것이지, 정말로 가난한 시인, 그것도 시인 부부라면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있다가 출판사에서 전화해 오늘 조촐하게 누구 출판기념 겸해서 회식합니다, 하면 부리나케 버스 타고 가서 허리띠 끌러놓고 내일 먹을 거까지 와구와구 퍼먹는 형편을 뜻한다. 이 궁상맞은 시절도 세월이 가면 다 추억이 되는 법. 시인은 왕십리 시절, 답십리 시절, 장위동, 상계동 시절 모두 아련하게 그때는 그랬지, 이젠 이런 단계까지 왔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7년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하고 빈 자리를 후보 문재인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해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그러자마자 신동호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스카우트, 임기가 끝날 때까지 꼬박 5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 쓰는 일을 했다. 지금은 한신대학 초빙 특강 교수를 한다는데 요즘 대학엔 “초빙 특강 교수”라는 것도 있나?


  나는 정치적으로 이쪽, 저쪽을 따지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방면은 시를 읽는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걸 먼저 밝히고 시작하자. 우울한 대한민국은 이짝과 저짝이 워낙, 모세가 건넌 홍해바다처럼 짝 갈라져서 이런 인물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여차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애초에 외밭에서 짚신 갈아 신지 않겠으니, 허접한 독후감 읽는 분께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라. 그래도 오해하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알아서 하시고.

  이 시집은 몇 달 전, 어쩌면 일년 전 쯤에 읽다가 던져둔 거다. 시집 열어보니까 전에 읽으면서 책갈피 꽂아둔 것이 몇 개 보여서 알았다. 그때 이이가 19대 청와대 인사란 것도 몰랐다. 그땐 왜 읽다가 말았을까? 시집은 절대 분량이 적어 읽다가 만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어차피 시인 신동호의 약사를 잠깐 짚었으니 그 순서대로 시를 읽어보겠다. 먼저 시인의 아버지. 우습게도 아버지는 <금강전도金剛全圖>에 생몰을 소개한다. “아버지는 여수에서 나셨고 / 춘천에서 숟가락을 놓으셨다” 라고. 그러면 전남이 원적지인가? 그냥 출생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먼저 돌아간 큰아버지가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 파로호 어촌계 소속의 민물 어부로 일하다가 먼저 숟가락 놓으신 후에 지금 작은형이 뒤를 이어 배를 탄다고 하니. 이이가 금강산이니 북한 사람이니, 이 속에 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아마 문 전 대통령을 따라 북한을 방문했고, 금강산 구경도 했으며, 북한 작가들과 저작권 논의도 해서 그랬을 것이다. 북한강도 그래 빠지지 않고 금강산 발원이란 말을 보탤 수밖에. 맑고 넓고 추운 북한강의 명물 <황쏘가리>에 얽힌 큰아버지 생각. 



  송사리만 할 때 송사리를 잡으러 강에 나갔다가 수면 가까이 올라온 황쏘가리를 보고 숨이 턱 막혔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는 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강의 내밀한 비밀을 알게 된 듯, 나는 어렵게 송사리를 놓아주었다.


  큰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화천 가는 길, 헤드라이트 불 앞에 장수하늘소가 나타났다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멀어져갔다. 메뚜기나 물방개에서 느끼지 못한 위엄, 모든 생물에게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걸 남겨주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1, 2연)



  황쏘가리와 장수하늘소.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 변두리에 가면 사슴벌레하고 하늘소는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 장수하늘소는 못 봤다. 그게 어른 손바닥 만하다는데 화천에는 아직도 아주 드물게 있는 거 같다. 얼마 전에 화천에서 죽은 소설가 이외수도 장수하늘소 이야기를 한 적 있는 걸로 안다. 뭍에 장수하늘소가 있으면 물에 있는 것이 황쏘가리. 황쏘가리도 못 봤다. 팔뚝 만하다고 한다. 쏘가리는 요즘엔 양식을 해서 매운탕으로도 먹고, 안심하고 회로도 먹지만 여전히 오지게 비싸다. 하여간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정말로 본 적 있는 고향 화천과 큰아버지가 운전한 오토바이의 추억. 시집을 읽으면 과장해서 한 열번은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가 나오고 다섯 번은 큰아버지와 작은형이 등장한다. 시인한테 고향이라니.


  화천 사람이 객지인 춘천과 서울에서 하숙을 했으니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했을꼬? 이 가운데 가장 궁상스러운 것이 먹고 사는 문제다.



  라면 한꺼번에 많이 끓이기, 그 실패와 성공의 역사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은 사춘기 소년들에게 제격이다.

  휘청이는 삶은 그때 몸에 밴 것이다.


  정환네 엄마는 도청의 꽤 높은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종종 정환이 돈으로 라면을 사서 끓여 먹었다. 성질 급하고 배고팠던 우리는 매번 물이 끓기도 전에 라면을 모조리 넣어 버렸다. 퉁퉁 불은 그 맛없는 라면 앞에서 툴툴대면서도 서로 먼저 먹겠다고 직진했다. 나는 세상이 끓기도 전에 몸을 던져 번번이 쓰러졌다.


  왕십리, 무학예식장 뒤편 자취방은 재래식 화장실 옆에 있었다. 다섯 식구의 옆방은 가난으로 부산스러웠고, 똥을 참는 버릇은 그때 생긴 것이리라.


  조그만 아이들 셋을 불러 앉혀놓고 라면 두개로 넷이 배불리 먹는 요리를 했다. 잘게 부숴 불리면 엄지만큼 굵어진 라면이 배를 채웠다. 어느 날 말도 않고 삽십만원 보증금에 삼만원 월세방을 떴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세상이 끓을 때까지 아이들이 기다려줄까 생각한다. 그럴 거 같다. 아직도 똥이 잘 안 나오는 건 나뿐일 것이다.


  지금도 가끔 춘천시 교동 언덕 위 우리의 아지트,

  정환네 집으로 간다.   (전문)



  그림 그려지시지? 이런 궁상이라니. 그런데 나는 넷째 연, 아이들 셋을 불러서 라면 두 개를 끓여 먹는 장면에, 이 아이들이 누굴까, 궁금했다. 자기 아이들? 조금 크면 집에서 키우는 개 푸들의 털을 깎다가 바리캉 기름이 없어서 도중에 그만 둔 일 때문에 아빠를 들들 볶는 사춘기 소녀가 되는? 거참 모르겠는 걸. 시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 셋을 두었다면 빨라도 90년대 중후반일 거 같은데 서울에서 어떤 방이 보증금 삼십만원에 월세 삼만원일까? 혹시 고등학교 시절 춘천에서 동네 꼬마들 불러서 끓여준 거 아냐? 시간 배열이 거 좀 수상하다.

  하여튼 왕십리 똥파리 무학예식장 뒤편의 자취방에서 심한 변비로 시달리고 있을 때, 시인은 속칭 ‘달려갔다.’ 혁명을 믿고 혁명을 위해 복무했다는 대가로. <경장更張>, 갑오경장 할 때 경장이란 시에서 노래하기를:



  경장更張



  ‘경장’의 재발견. 마음속에서 잘 떠나질 않는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고쳐 맨다는 뜻.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용맹정진하기엔 미련이 많은, 의지박약형 인간인 내가 혁명을 꿈꾼 건 오직 스무살 뜨거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온 ‘광주’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피 냄새는 늘 두려웠다. 늦었지만 고백한다.


  ‘경장’에 담긴 두가지 의미가 맘에 든다. 거문고를 부숴버리지 않고 줄만 고쳐 맨다는 것, 그 결과가 조화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  (전문)



  원래 그런 거 아냐? 두렵기 때문에 더 용감해지는 거. 잃을 것이 없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거. 하긴 워낙 깡다구가 좋은 인간들도 있더라. 정보과 형사가 두다다다닥 두드려 패자 죽자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 몰라요, 몰라, 씨발, 하던 선배. 뭐야, 씨발? 아, 아니예요. 아파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취소, 취소. 이러던 양반은 나중에 정당 언저리에 왔다갔다 하더니 공천 한 번 못 받고 찌그러져 살더라.

  근데 내가 이 시집을 읽다가 경천동지할 만큼 놀란 건, 시인이라서 그런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고 발랄한 통일관이었다. 신동호가 경애해 마지않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가 여전히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통일 한국, 스페인어로 “깔마 꼬레아”를 여행할 때 필요한 가이드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시의 제목은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



  깔마 꼬레아에서 가볼 곳은 세곳이다.

  평화협정 서명한 판문점,

  New Triangle Age를 공표한 금강산,

  바다 위 어디, 하나의 꼬레아 기념탐.

  칼로는 제주도 유채꽃을 추천했지만

  나는 개마고원에서 들쭉을 볼 작정이다.


  입국은 평양 순안공항으로 정한다.

  평부선을 타고 봉동역에 가서

  판문점까지는 자전거를 타면 된다.

  안내서는 인천공항을 추천한다.


  전쟁과 정전, 종전과 평화.

  과거는 팜파스의 소들처럼 느긋하다.

  협정서에 남겨진 서명은 아직 힘차다.

  강대국 사이에서 이뤄낸 반전은

  두고두고 세계의 교과서에 남을 것이다.  (부분)



  이 시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에 필적할 유일한 시집을 고르라면 딱 떠오르는 거 읎으셔? 나는 우리나라 19대 대통령을 역임한 문재인, 그냥 이렇게 호칭하고 싶은데 그러긴 뒤가 좀 캥기고, 마땅하게 붙일 건 습관적으로 “각하” 정도가 어울릴 것도 같지만 그건 전임 대통령이 싫다고 길길이 뛰실 거 같아서, 하여간 그 양반한테 외람되지만,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썼다고 추정되는 <용비어천가>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 스스로가 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앞으로 5년 안에 통일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휴전선이 열리는 날, 드디어 그날이 오면, 나는 집을 팔고 회사도 때려치워 퇴직금 들고 묘향산 초입으로 달려가 토종닭 집을 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던 종자다. 나는 닭 모가지 비틀고, 마누라는 카운터 보고, 주방과 홀은 현지 고용할 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었던 인간으로, 신동호의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순진한 통일관을 훔쳐보자 혀가 쑥 나와버렸다. 아무리 문정부의 비서를 했다고 하더라도 50대 중반이 이렇게 순진하면, 아이고, 정말로 해먹을 거라고는 시인밖에 없는 사람…… 맞지? 아무리 시인이라도 너무 순진한 중장년은요, 꼴이 우스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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