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신漁神을 찾아서
장웨이 지음, 최창륵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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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앞날개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산둥성 룽커우시에서 태어났다. 고교 진학 대신 고무공장에서 일했으며,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음성聲音」(1982)과 「어떤 맑은 연못一潭淸水」(1984)이 중국작가협회 주최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음성聲音」의 한자어를 발음하면 “성음”이다. 거꾸로 쓴 거 아니다. 책에 그리 나와있다.)


  작가 장웨이는 1956년에 태어나 청소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고무공장 직공도 하고,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했던 모양이다. 앞날개 작가 소개를 읽으면 그러면서 소설을 써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1980년에 고향 룽커우시가 있는 얀타이 현에 있는 얀타이 대학 국어과를 졸업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장웨이 중단편소설선張煒中短篇小說選》으로 세 편의 긴 중편 또는 짧은 장편을 실었는데 등장인물이 산골 농부와 어부(어신을 찾아서), 바다를 면한 소도시(바닷가 호루라기)와 농촌(원두막의 밤)이며, 거의 모두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라, 혹시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과정은 이수만 한 작가의 환경과 직결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장 노동자와 농사, 어업에 종사하면서 빈 시간에 무수한 책을 읽고 글쓰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출판사도 장웨이의 청소년 시절을 유독 강조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조금이라도 더 유발하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겠지만. 악마처럼 거만한 문학과지성사가 그렇게 얍삽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았겠지. 그렇겠지. 뭐. 그래도 1980년 대학 졸업이니까, 이 당시 중국에서는 학교를 불문하고 대학이란 곳에 진학한 하나만 가지고도 머리가 상당히 좋다고 알아주던 시절이니 밝혔을 거 같은데 말씀이야.

  왜 이거 가지고 까탈을 유난하게 부리고 지랄이냐 하면,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를 읽다가, 이게 1987년 초에 완성했으니까 서른두 살이었는데, 바닷가에서 작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해 도시의 친구들을 배불리 먹여주곤 하는 천사표 늙은이, 빼빼 마른 것도 모자라 몸에 힘줄만 남은 라오진터우 영감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적지 않은 부분을 읽으면서, ① 지금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 ② 작품집에서 이런 건 좀 빼고 출판해도 될 거 같은 걸? ③ 하긴 문학과지성사가 가오가 있지 전편을 번역 출간해야 했겠지, ④ 스무 살 짜리가 습작한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이거, ⑤ 애당초 이 작가의 책을 번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교만을 떨었는데, 당연히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 하나에 대해서만 그랬다는 말이니 너무 웃지들 마시고요, 소설가도 정식으로 작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 거라는 황당한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바닷가 호루라기>는 마지막 스무 페이지를 남기고 도저히 읽어줄 수 없어서 세번째 실린 <원두막의 밤>으로 넘어갔다.


  근데 내가 아직 소설책 읽는 데 지극하게 얇은 소양밖에 없는 증거가 있으니, 이 장웨이란 56년 잔나비띠 작가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오르고 있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밥 딜런도 받는 상이니 장웨이라고 못 받을 이유는 없지만, 미국하고 관계가 단단히 틀어진 중국의 시인, 작가가 당분간은 노벨문학상을 받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긴 한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작품을 번역해 출간했다. 특히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대산세계문학총서 144번에 빛나는 단편집 《흥분이란 무엇인가》에는 작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는 <음성>과 <어떤 맑은 연못>이 다 실려 있다. 시집이 아닌 대산세계문학총서는 대충 다 읽은 듯한데, 어쿠, 이 책을 빼먹었다. 그래서 이 양반을 몰랐던 거다. 뭐 기회가 생기면 읽고 아니면 말고지 구태여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두 권 말고 <도연명의 유산>과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에세이. 안 읽을 거 같다.


  또 한 마디 할 것은, 책방 알라딘에서는 책의 제목을 《어신漁神을 찾아서》라고, 문학과지성사 출간 원본은 <어신魚神을 찾아서>라고 했다. “어”의 한자어 魚자 앞에 삼수변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뜻이 달라진다. 어신漁神은 고기잡이의 신, 신기에 가까운 고기잡이 내공을 가진 고수를 말하고, 어신魚神은 물고기 신, 용왕처럼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신이다. 내 경우엔 알라딘에서 책구경을 먼저 해서 어신漁神, 귀신 같은 어부라고 생각했으며 즉각 궈스싱의 희곡 <물고기 인간>을 떠올렸다. 내가 읽은 모든 책 가운데 <물고기 인간>에 나오는 낚시의 신이라 불리는 영감과 비슷한 수준의 낚시꾼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 끝에 잡아 매달고 오다가 상어한테 다 뜯어 먹히고 만 노인 말고는 없다. 그 노인도 낚시의 신 수준하고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하여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기잡이 노인이니까 좀 후까시를 해주면 그렇다는 말씀.

  주인공 화자는 이제 백살에 육박하는 노인이다. 그래도 기억력이 여전히 생생해서 팔십 여 년 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좋은 소일거리라, 자리를 턱, 잡고 저 멀고 먼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이 2015년. 그러니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초반 중국의 두메산골이다. 화자 ‘나’는 큰 산의 깊은 곳, 깊고도 깊어서 이웃집이라고 해도 산 하나를 넘어야 있을 법하게 깊은 산골에서 돌덩이로 쌓은 집에서, 작은 돌투성이 밭을 개간해 고구마도 심고, 토란도 심고, 감자도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가끔 운 나쁜 짐승도 잡아 단백질 보충도 하고 그랬는데, 아주 드물게, 정말 정말 드물게 물고기 한 마리를 얻으면 그야말로 집안에 난리가 났다. 기껏 미꾸라지 한 두 마리, 그것도 죽어 바짝 마른 바람에 썩지 않은 미꾸라지 두 마리를 구했을 때도 물을 끓이고 미꾸라지를 넣고, 그 위에 각종 야채를 올려 푹푹 곤 다음 엄마, 아빠, ‘나’, 세 식구가 침을 뚝뚝 흘리며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좀 들자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산 두 개를 넘어 강줄기가 있는 골짜기의 학교, 당연히 서당 수준이긴 하지만 하여튼 학교를 가게 했고, 방 두 칸 집은 안방과 교실로 쓰는 큰 방 하나로 되어 있었는데, 가끔 안방에서 물고기 비린내가 풍기는 바람에 ‘나’의 코가 흥분,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암만해도 돋보기를 낀 사팔눈의 영감 선생이 집 옆에 딸린 연못 속에는 아무리 더워도 발도 담그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물고기 요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하루 날을 잡아 연못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납짝 엎드려 해가 으슥할 때까지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이 연못 옆에 쪼그려 앉아 작은 대나무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래 그러고 있다가 난데없이 대나무를 휙 잡아당겨보니 자루의 끝에는 역시 대나무로 만든 망, 그물 역할을 하는 망이 달렸고, 그 속에 한 뼘 정도의 물고기가 두어 마리 들어 있었던 거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호, 환호성을 질렀고, 선생은 나를 불러 치도곤을 내렸으며, 아빠를 불러오라 명을 하더니 기어코 퇴학을 시켜버리고 말았다. 워낙 산골이라 물고기는 이렇게 귀했던 거였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평온해 했다. 이왕 끝까지 공부하지 못할 것, 공부를 한다고 해서 꼭 좋은 사람, 부자, 기타 등등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어떤 일을 해 성공할 것인지 정해보라고 했다. ‘나’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큰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을 감고도 물고기가 머무는 곳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일이라서, 무엇보다 먼저 ‘어신’부터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번 본 적 있는 바,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신선처럼 혼자 지내고, 족장님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고기잡이의 고수란다. 그저 보통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절대 어신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어신이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주 이사를 다니는데 점점 깊은 산골로 들어가 겉보기엔 가난뱅이 같지만 살면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영위한다는 말씀. 사실은 아버지 젊은 시절에 어신을 찾아가 제자가 되려 했지만 도무지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 중도 작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나’의 엄마와 결혼해 ‘나’를 낳고 자족하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거란다.

  이 착한 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몇날 며칠을 걸어 드디어 어신, 이라고 아버지가 말하는 80대 노인을 찾아간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저 말고 이 아이를 제자, 아니, 아들로 받아 주십시오. 얘야, 스승님께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리하여 ‘나’는 늙고 늙은 어신의 양아들이 되어 어신의 모든 것을 옆에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어신漁神 이야기. 작 후반에 가서 이 어신을 생을 마감하고,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으나 인연을 맺지 못한 다른 어신漁神을 만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그려지고, 이후 마지막으로 이번엔 진짜 어신魚神이 등장하며 작품을 맺는다. 그러니 제목을 魚神이라 해도, 어신漁神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듯. 재미있는 것이 남자 어신은 수영에 서툴고 물에 들어가기 싫어한다. 작은 연못이나 개울에서 큰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천하신공의 소유자. 이름하여 한수旱手. 건조한 손. 반면에 이 어신이 평생 사랑해 마지 않은, 꿈엔들 잊으리까, 이젠 노파가 된 여인 어신은 물이 풍족하게 가득한 큰 호수에서 본 모습을 보이는 수수水手. 물의 손. 이 두 늙은이의 평생에 걸친 이루어지지 못한 순결한 사랑도 재미있다.

  그러나 분명 내가 소설을 읽는 소양이 부족해 생긴 일이겠지만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 맞지 않아서, 셋보다 많은 별점은 주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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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1-1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그렇게 문지를 미워하십니까? ㅎㅎ
삼수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차이가 있군요. 첨 알았습니다.
작가에 대한 주례사가 좋던데 노벨문학상이 주목할 정도면 상을 타던 못 타던 꽤 유명한가 봅니다.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세계 정세가 좀 안정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안정있고 독서가 있는 거지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데 책이 눈에 들어오나요? 참 거시기한 요즘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Falstaff 2024-01-17 16:01   좋아요 1 | URL
창비만큼 안 미워해요. ㅋㅋㅋㅋ 이 사람들이 좋은 작품 많이 찍는데 미워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근데 거만하긴 오지게 거만해요.

자기 주장을 세상에 외치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인 세대가 있습니다. 이젠 한 발 뒷방으로 꺼져주는 것이 고마운 시점에 달한 인간들 말입니다. 저도 혹시 이런 무리들에 이미 편입된 건 아닌지 가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단 한 번도 안정되어본 적이 없고, 언젠가 여의도 만한 혜성이 지구에 떨어질 때까지도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거 같습네다. 크크크크크.....

Falstaff 2024-01-17 16:04   좋아요 0 | URL
굉장히 유명한 출판계 뒷담화인데요, 한 때 잘 나가다가 난데없이 미국으로 이민가더니 다시 돌아와 활동하는, 한때 인기있던 소설가의 작품 속에 그로테스크한 폭력적 인물로 aw라는 작자가 나옵니다. 이 aw가 키보드에서 문지의 첫 자음이라는 유언비어가.... ㅋㅋㅋㅋ.... 있었습지요.
 
탤리 가의 빈집 (외) 범우희곡선 11
랜퍼드 윌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범우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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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포드 윌슨Lanford Wilson은 우리나라에선 낯설지만 미국에선 상당히 유명한 극작가다. 1937년에 미주리 주 레바논Lebanon에서 출생한 윌슨은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 비올레타 테이트를 따라가 스프링필드에서 함께 살았다. 열한 살 때 엄마가 농부 월트 레너드와 결혼해 미주리 주 오작Ozark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 같은 것으로 어린 마음에 상처 입는 일은 없었거나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다닐 때 단편소설을 끼적이던 윌슨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에서 톰 역을 했을 때부터 연극과 극작에 열광했다. 이후 아버지가 이주해 살던 샌디에이고와 시카고를 거쳐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꿈도 꾸지 못하고, 오프-브로드웨이에도 끼지 못해 오프오프-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성공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그는 오프오프에서 오프로, 그리고 드디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초기 극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다. 1980년엔 퓰리처 상을, 2004년엔 연극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이후 학술예술원 회원의 자리에 앉는 등 연극인으로 (뉴욕에 집이 두 채였으니 돈도 벌었지만) 서부가 시작하는 저 미주리 깡촌 출신이 온갖 명예를 누리다가 2011년 73년의 나이로 차마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탤리가의 빈집 (외)》는 표제작품과 <토분 쌓는 사람들: The Mound Builders>, 두 편의 희곡이 실린 작품집이다. 랜포드 윌슨의 작품집은 범우사에서 출간한 이 책 딱 한 권이며, 1994년 초판본을 아직도 정가 4천원, 할인가 3천6백원에 팔고 있을 정도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숨겨진 극작가라서 그의 대표작이 어떤 작품인지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눈치껏 보아하니 <토분 쌓는 사람들>은 주요 작품 목록엔 들어가지 않는 거 같다. 당연히 공연 평으로 소개한 것을 보면 “윌슨이 발표한 작품 중 가장 심오하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수작”이라거나 “장엄한 아름다움” 또는 “지난 10년 새 나왔던 연극 중 다섯 개 안에 드는 가장 중대하고 뜻깊은 연극”이라 했지만 주례사에 무슨 말을 못할까. 내용은 원주민 유적지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와 발굴지를 개발할 꿈을 꾸고 있는 땅 주인과의 갈등이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연히 속내는 무지하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리나라 독자라면 출연진이 하는 역사 이야기를 그런가보다, 이렇게 짐작하고 넘어가야 할 정도로 다채로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금관, 동관과 부장품, 그리고 이것들의 의의를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에 작품을 비극으로 전환하는 인텔리들의 비윤리성 같은 것이 도드라지며 극은 결말을 향해 치달으며, 마지막으로 에필로그 형식으로 끝맺는다. 나는 <토분 쌓는 사람들>의 주례사에 껌벅 넘어가서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암만해도 표제작인 <탤리 가의 빈집>이 훨씬 좋았다.


  <탤리 가의 빈집>의 주인공은 멧과 샐리. 멧은 마흔두 살, 샐리는 서른한 살. 샐리의 말에 의하면, 열한 살의 나이 차이는 1944년 당시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들은 일년 전에 연애를 하다가 샐리의 오빠 버디와 아버지가 마땅하게 여기지 않아 헤어졌다. 샐리는 오래 전에 동네의 황금가족으로 꼽던 캠블 가의 외동아들 할리와 약혼을 했었다. 불행하게 샐리가 골반염증으로 1년 동안 고등학교를 휴학하는 동안 콜롬비아 대학에 진학한 할리는 괜찮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을 했다. 샐리는 간호보조사로 일하면서 연애 한 번 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었던 것. 작품 말기에 알려지지만 샐리의 골반염증이 당시 의학발달 미비로 그만 나팔관을 오염시켜 임신과 출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 이유였다. 요즘이야 일부러도 낳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그건 가장 최악의 결혼 조건이었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샐리의 말대로 괜찮은 남자는 전부 다 징용당해 유럽이나 태평양에 나가 있었다. 그럼 1944년 현재 서른한 살인 전 약혼자 할리 캠블도 괜찮지 않은 남자였던 셈. 현재의 캠블은 정신적으로는 미련하고, 육체적으로는 초고도비만 상태다.

  멧은 족보가 좀 복잡하다. 아버지는 프러시아 유대인.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프러시아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스페인계 유대인이라고 잘못 알려진 우크라이나 여성을 만나 혼인을 하고, 딸을 라트비아에서 낳고, 아들 멧은 리투아니아에서 낳는다. 그래서 작품 가운데 샐리가 멧의 정체를 밝히기 요구하자, 프러시아 사람과 우크라이나 사람 사이의 리투아니아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들은 프러시아에 살다가 세계대전을 앞두고 흉흉해지자 니스로 이주했지만 거기서 프랑스 니스 경찰에 체포당해 엔지니어인 프러시아 사람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가족과 헤어져 리투아니아 사람인 멧만 뤼벡에 사는 삼촌네와 함께 바나나 보트를 타고 노르웨이에 도착한 후, 카라카스를 거쳐 미국에 당도해 오늘에 이른 것. 이러니 멧에게는 국가나 충성심 같은 단어 자체가 대단히 낯설다. 반면에 도시의 두번째 부자집이었다가 대공황 덕에 찌그러지고, 이후에 전쟁 특수를 맞아 기사회생한 탤리 가는 여전히 애국주의적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멧이 좋지는 않았겠지.

  텔리 가의 빈집이 정말 비어 있는 집이냐고? 아니다. 탤리 가문이 잘 나갈 때, 근방에 제일 큰 공장 지분의 2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던 시절, 하도 돈이 많이 벌리는 바람에 남는 돈으로 직공들 보너스 줄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하게 가진 땅에 건물을 짓고는 했다. 샐리의 삼촌이 주로 그런 짓을 했다. 집 앞에 근사한 정자를 짓고 싶었지만 탤리 씨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집에서 떨어져 있는 강가에다 보트장, 그러니까 보트 계류장 건물을 멋있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이 양반이 여간해 그러지 않았건만 이상하게 이 보트 하우스는 곧바로 슬슬 기울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샐리를 제외하고는 귀신 나올까 겁나서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 곳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샐리는 어려서부터 이곳을 자신의 아지트 삼아 자주 와서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랬던 모양이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이 보트 하우스에서 진행한다. 계류장엔 보트 두 척이 있고, 이 가운데 한 척은 수리를 위해 뒤집어져 있으나 그 상태로 족히 5년 이상은 버틴 거 같다.

  자신들의 의사와는 별개로 헤어지게 된 샐리와 멧. 역시 이들은 서로를 연모하고 있지만 안 만나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라, 조금은 서먹서먹하다. 그리하여 나이 더 많은 남자인 멧이 용감하게 먼저 샐리네 집의 벨을 눌렀고, 샐리의 올케가 문을 열었으나 한 마디도 섞지 않고 남편 버디를 불렀으며, 버디는 곧바로 자기 눈 앞에서 꺼지라고, 사라지라고 소리를 쳤다. 멧도 만만치 않은 사내이거늘 이따위 말에 깨갱할 턱이 없다. 그리하여 버텼더니 집 안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던 샐리의 전 약혼자이자 초고도비만증의 할리가 등장해 경찰에 신고해버렸고, 그 사이에 오빠 버디는 벽에 걸려있던 멧돼지 사냥용 엽총을 메고 나타나 총구를 멧의 얼굴을 향해 겨누었던 거였다. 이쯤 되면 아무리 천하의 멧이라 하더라도 앗 뜨거라, 할 수밖에 없어서 작전상 후퇴하여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1년 전 가본 적이 있던 보트 하우스로 발길을 돌렸으며, 당시에도 자기 편(이라기보다 사랑과 연애 편)을 들었던 숙모 로티 탤리 여사한테 샐리를 이곳으로 보내 달라고 귀띔했던 거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샐리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다시 보트 하우스에 도착한 저녁 또는 늦은 오후 시간에 작품은 시작한다.

  좋다. 화끈하게 스포일러 만들어보자. 유대인이며 라트비아 또는 리투아니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지독하게 방랑하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어본 멧, 그리고 실제로 게이였던 극작가 랜포드 윌슨의 성향이 근본적으로 무생식, 무자식이 상팔자 주의자인 건 이해하시겠지? 그런데 상대방 샐리는 후천적이긴 하지만 나팔관 이상으로 영구 불임인 여성. 이 두 명이 천생연분이 아니면 세상 어느 커플의 궁합이 맞겠느냐고?


  책의 서문에 랜포드 윌슨을 “현대의 체홉”이라 칭했지만, 읽어보니까 체홉은 좀 멀고, 같은 미국인 그작가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유진 오닐하고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이 비슷한 거 같다. 아닐지도 모른다. 오닐과 비슷한 시기에 극작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면면이 다 윌슨에게 일종의 후광이 되었을 것이니. 다만 선배 극작가들과 윌슨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사가 무지하게 많다는 거. 공연하는 배우 죽어나가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독자들이여, 아직도 이 책의 가격이 정가 4천원, 10퍼센트 할인가격이 3천6백원인 것을 기억하시면 주저하지 마시라. 이 이상 가성비 갑은 내 남은 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진짜로 사 보시고 욕하기는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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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1-16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 보라는 건지 말라는건지 헷갈립니다. ㅎㅎ 체홉보다 멀다니 그도 좀 그렇구요. ㅋ
그래도 뭐 책이 싸니까 부담은 없겠습니다. 모처럼 옛 추억에도 빠져 볼만하고. 범우사는 저 학교 때 많이 읽었던 책이 거든요. 삼중당은 판형이 넘 작아 손이 안 가고. 지금도 책이 나오나 싶은데 이렇게 읽는 분이 계셨네요. 지금은 워낙 메이저 출판사들이 꽉 잡고 있는 형국이라 짠합니다요.ㅠ

Falstaff 2024-01-16 15: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시리즈는 더 이상 찍지 않을 거 같습니다. 범우사, 한때 꽤 좋아했던 출판사였는데 요즘은 상황이 좀 안 좋은 거 같더라고요. 그래도 책은 계속 나옵니다. 금속활자 시대하고 비교하면 교정 교열도 좋지 않고 뭐 그래요. 삼중당은 진즉에 망가진 걸로.... 세계문학, 하면 결코 두 번째 자리에 놓을 수 없던 정음사도 사라졌잖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문학전집을 찍은 신구문화사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있기는 있을 거 같은데....
 
공손한 손 창비시선 297
고영민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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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는 고영민.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이리저리 지나다니면서 얼핏 시 몇 수도 읽어본 거 같다. 1968년 서산,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이다. 2002년에 이 양반이 시인으로 등단하는 바람에 축구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는 농담도 들린다. 생긴 모습은 영낙없이 차도남이건만 시 읽어보면 완전히 논두렁이다. 시집이 나온 때가 2009년. 시인이 갓 사십대가 됐을 때. 그러니 그의 삼십대 후반의 생활과, 추억과, 그리움과, 회상, 그리고 노스탤지어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읽으면 읽는 즉시 장면이 눈 앞에 확 그려지는 시. 주장하는 것이나 말하고 싶은 풍경이나, 아니면 운율감이나 하여간 시로 형상/비형상화 하고 싶은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편한 시. 애초에 이해불가인 문장과 단어를 읽으면서 오직 하나, 시나 시인의 유명세 때문에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에서 자유로운 시. 저 오랜 시절의 그림과 생활과 사람들을 회상하는 남루한 그림이라면 더욱 좋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낡아 누추하지만 뭔가 하나가 마음 속에서 부스러지지 않나? 나는 비록 도시 취향이지만 얼마든지 좋다.

  붉고 오종종한 작은 열매 앵두. 시인은 어느 날, 거리를 달리는 앵두를 발견하고 이렇게 노래한다.



  앵두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전문)



  예전 말로 다방 레지. <너는 내 운명>에서 스쿠터 타고 커피 배달을 하던 전도연 생각하면 딱이다. 여기서 나는 조심해야 한다. 이 시 어디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빨간 헬멧의 여성이 커피 배달을 하는 다방 아가씨라고 이야기를 했느냐, 라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한테 물어보면 이미 써서 발표한 것이라서 자기도 모른다고 시침을 뚝 뗄 것이다. 이미 품에서 떠난 ‘그녀’이니까. 하여간 독자인 나는 1연을 읽으면서 단박에 농촌 마을의 커피 배달하는 아가씨를 연상했고, 배달 아가씨의 결정판으로 전도연이 떠올랐으며, 유치장 철망을 흔들면서 오열하는 황정민이 참 기가 막혔지, 여기까지 진척시켰다. 그러니 일상적으로 곱지 않게 바라보는 커피 아가씨의 붉은 헬멧을 앵두도 딱 꼽을 수 있는 시선이 바로 시인의 눈길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에 처음 실리는 작품으로 이 시를 올려 놓았음에야.


  고영민 같은 서정시인을 읽다 보면, 이제 시어란 시어는 다 개발했기 때문에 시의 암호화와 메타포가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시인들의 주장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그런 시절은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실린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는 제법 긴 시인데, 전문을 읽지 않고 따로 뚝 떼어 산문처럼 읽는다면 별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있으나 정말 평이한 단어와 문장만으로도 넉넉하게 그릴 수 있는 한 장면도 있다.


  눈이 왔다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너와 함께 걷는다

  목도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너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고

  말없이 다가와 팔짱을 끼워줬다

  나는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략)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고

  새의 발자국 같은 흔적들이 그 위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부분)


  시집 《공손한 손》을 관통하는 정조는 위에서 말한 추억, 그리움, 회상, 그리고 노스탤지어다. 이상향은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 깊게 담겨 있는 어릴 적 들판. 시집을 읽어보면 혹시 시인이 아직 농촌이나 농촌을 면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추측도 가능하지만, 천상병 문학상을 받은 2020년 현재 포철교육재단에 근무하고 있다니까 위도 높은 순으로 인천, 포항, 광양 가운데 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속에 이런 풍경을 담고 있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태생적 시의 재산으로 얼마냐는 말이지.



  허밍, 허밍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 짐칸에 실려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언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손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 자를 적어온

  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    (전문: 3연 아낙들은 “무언”입니다. “무엇”의 오식 아닙니다.)



  시집 한 권 읽고 외우고 싶은 시 두 수를 발견하면 팔땡이고, 세 수 이상이면 대박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손한 손》은 대박이다. 소설 속에서는 대개 아버지들이 가족의 괴물인데, 시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시집에서도 아버지와 관련한 어여쁜 광경이 몇 군데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어느 순간, 무거운 세상을 저버린다. 어쩔 수 있나, 인생인 걸. 어려서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시인에게 아버지가 밥 한 술을 씹지 말고 꿀꺽 삼키라고 했듯이 이제 시인이 목에 가시가 걸린 딸 아이에게 밥 한 술을 꿀꺽 삼키라고 밥상머리에서 말하고 있는 시도 정겹다. 이런 것을 다 소개하고 싶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져 애써 참아야 하는 것이 아쉽다. 다만 이런 시.



  해감


  민물에 담가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 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몸 속에 새겨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르렁, 그르렁 입가로 한움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 안쪽에 헐겁게 담겨 있었다 짠물을 걸러내며 당신은 물무늬 진 사구를 온몸으로 기고, 몸을 잊으려 한쪽 눈을 마저 닫자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울컥울컥, 검은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토해졌다 나는 당신의 손을 움켜쥔 채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들어갔다 여윈 갈빗대에서 해조음이 들려왔다 어느 순간, 이제 오지 마라! 따라오지 말라고 이놈아! 당신의 불호령을 들었다 두꺼운 껍질 밖으로 나는 움찔, 한순간 떠밀려나왔다 패각을 움켜쥔 채 꼭 사나흘만 더 묵고 싶다던 당신의 늙은 아내가 밀려나왔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몸 밖으로 검은 해변을 푸득푸득, 싸놓았다 지끄럽던 한 생애가 말갛게 비워지고 있었다   (전문)



  그렇게 가는 거지.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고. 이 시집 이후에도 고영민은 각종 문학상을 수집하며 계속 시집을 내고 있다. 또 읽어야겠다. 어째 요즘엔 충청남도 출생 시인들을 많이 읽는다. 대전 사람 고 윤택수, 홍성 출신 이정록, 이번엔 서산의 고영민까지. 출생이 어디면 어떠냐, 시인이 시만 좋으면 대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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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1-15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시인이랍니다.

Falstaff 2024-01-15 08: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 반갑습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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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경비원>을 재미나게 읽어서 이이의 새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얼른 읽었는데, 루이스 어드리크, 이이를 좋아하는 독자가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도서관에 어드리크의 책이 거의 다 있는 걸 보니까. 어드리크는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원주민 혼혈 어머니 사이의 일곱 남매 가운데 맏딸로 태어났다. 루이스의 부모가 노스다코타 주의 가장 오른쪽, 가장 아래쪽에 있는 리치랜드 카운티의 와페턴 시의 인디언 기숙학교 교사로 있어서 작가도 인디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따져보면 혈통의 1/4만 인디언 계이다. 그러나 핏줄보다 자란 환경과 어울린 사람들, 생각하는 방법이 그들과 더 유사하다면 스스로 본인이 인디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들 조금도 문제될 건 없겠다. 겨우 책 두 권을 읽고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루이스 어드리크는 윌라 캐더, 윌리엄 포크너, 셔우드 앤더슨, 카슨 매컬러스를 잇는 지방주의 작가처럼 노스다코타를 작중 무대로 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작중에 주인공 델핀이 소설책 읽기에 맛을 들이는데, 집중해서 읽는 소설가 중에 포크너와 캐더가 들어 있기도 하다.

  <밤의 경비원>은 미국 정부와 인디언들이 “국가 대 국가”의 계약으로 인감도장 찍은 것을 지키려는 치페와 부족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은 작가의 아버지처럼 독일계 이민 남성과 20세기 이전에 이민을 온 백인 가정의 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장소는 여전히 노스다코타인데 자리를 조금 올려서 리치랜드와 인접한 북쪽 카스 카운티의 아거스빌Argusville. 아거스빌은 작품에서 소개한대로 도시가 설 이유가 없었음에도 단지 철도가 놓이고 정거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 작은 마을을 만든 곳이다. 위키피디아에 나오기를 20세기 말까지는 인구가 150명이 되지 않았다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면소재지보다도 작은 동네였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정류장 앞에 구멍가게 하나, 짜장면집 하나 있는 촌동네 생각하면 딱이다. 지금은 주택 건축 붐이 크게 불어 2020년 기준 인구가 무려 480명이다. 그러나 시대는 1922년부터 1954년까지.


  1차 세계대전에 독일군 저격수로 참전한 피델리스 발트포겔. 저격수의 본질은 원샷원킬이다. 다만 한 발의 발사를 위하여 그는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는 정물로 있어야 했으며, 드디어 목표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아무 머뭇거림과 선입견과 판단 없이, 숨을 들이마시고 약간 뱉은 상태에서 참고, 맹목적으로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원래는 어울리기 좋아하고 사교성도 있는 청년이었지만 전쟁, 특별히 저격수가 된 이후로 그는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 무한히 기다리고, 무한히 인내하는 습관을 들여야 했으며, 이 습관 때문에 적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아군에게도 참으로 재수없는, 정이 안 가는,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인간으로 취급 받았다. 하는 일이 오직 생명 제거를 위한 일이라서. 가까이하면 어쩐지 죽음이 그만큼 빨리 올 듯한 느낌. 그에게는 하인리히라는 이름의 전우가 있었다. 그가 피델리스를 두 번 살려주었다. 한 번은 적의 총알이 피델리스의 턱을 관통하고 지나갔을 때, 또 한 번은 정신을 잃고 진흙탕에 엎어져 있을 때 장갑차가 그를 깔고 지나가려 했을 때. 모든 사람이 피델리스를 경원해도 하인리히는 절대 그러지 않았으며 그를 보면 늘 웃음을 지어주었다. 선한 하인리히는 가슴에 건 로켓 속에 든 애인 에바 칼프의 초상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에바와 결혼하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말기에 퇴각하면서 포탄 파편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자신을 두 번이나 살려 주었음에도 피델리스는 그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걸음을 돌려야 했다. 일단 살아야 했으니까.

  1918년 11월 말. 전쟁이 끝나고 꼬박 열이틀을 걸어 프랑스 국경에 접한 집에 도착한 피델리스는 며칠 동안 잠에 빠져 있다가 몸을 깨끗이 하고 오일렌슈트라세 17번지에 있는 방치된 느낌의 집을 방문한다. 지금은 피델리스의 주머니에 든 하인리히의 로켓 속 여인 에바 칼프를 찾아. 사랑하는 하인리히가 아닌 그의 전우가 방문한 것으로 단박 불행한 일을 알아챈 만삭의 에바는 정신을 잃고, 피델리스는 며칠 후 하인리히와 약속한 대로 에바에게 청혼을 해 결혼한다. 그녀의 크고 둥근 배에서는 숲속 벌꿀의 달콤한 끝에 남는 쌉싸래한 맛이 났다.


  드디어 1922년이 왔다. 전후 보상금 문제로 자국 화폐를 무한정으로 발행해 불행의 마르크화 시대를 맞이한 도축장인Meisterbutcher 발트포겔 가문은 저격수 출신의 둘째 아들이 제대할 때 가져온 라이플 총을 메고 숲에 들어가 밀렵을 해 잡아온 멧돼지를 발트포겔 씨가 장인솜씨로 유럽에서 제일 맛있는 소시지로 만들어 팔아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그래도 괜찮게 지냈다. 에바의 아들 프란츠가 벌써 세 살이 되었을 때, 루트비히스루에 광장에서 난생 처음 미국의 흰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상에나. 빵이 각이 질 수가 있다니. 독일인이 구운 빵은 언제나 모서리가 둥글다. 그러나 미국인이 만든 빵은 새하얀 색깔에 각이 또렷한 사각형. 미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한 마디가 더 들렸다. 이 빵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무한정 생산하는 것이라나. 아, 미국의 첨단 기계 기술에 넋이 나간 피델리스는 그 자리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뉴욕에 도착한 피델리스가 아는 영어라고는 기차, 기차역, 서쪽, 최고의 소시지, 정육점 주인, 일자리, 돈, 땅 밖에 없었고, 가방엔 약간의 내의와 아버지가 정성들여 만든 유럽 최고의 소시지, 기가 막히게 잘 드는 가업용 칼 여섯 자루와 칼갈이 봉, 표면의 거칠기가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숫돌, 주머니 속 35센트가 전부였다. 이미 발전할 대로 다 발전한 동부보다 서부에 더 큰 기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애초부터 시애틀로 갈 예정이었던 피델리스는 이제 뉴욕 역에서 가방을 펼쳐놓고 아버지의 소시지를 팔기 시작했다. 가방을 들고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온몸에 위장막을 감고 엎드려 숨을 죽이고 하루 종일, 심하면 몇날 며칠을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 숙달이 된 피델리스의 놀랄만한 인내심에 뉴욕시민은 놀라 자빠져 그의 소시지를 거의 대부분을 산다. 이때 생각하기를, 나머지는 열차 안에서 팔면 되겠다 싶어 돈이 되는 대로 차표를 끊어 서쪽으로 출발한 피델리스. 그는 얼마 가지 못한 뉴다코타주 아거스빌에서 하차한다. 일단 이곳 정육점에 취직을 해 돈을 벌어 다시 서쪽으로 갈 요량으로. 그러나 생각대로 되면 그게 인생인가? 그는 그곳을 영영 떠나지 못한다. 그것보다 돈을 벌어 시 외곽에 정육점을 차리고, 누나 마리아 테레사와 아내 에바와 (에바의)아들 프란츠를 데려오는 선에서 타협을 한다.


  피델리스가 이후에 마르쿠스와 쌍둥이 에리히와 에밀을 낳아 모두 네 명의 아들을 두는 사이에, 미시시피 상류의 작은 타운인 아거스빌에서 연극공연을 하다 만난 보잘것없는 농장 출신의 억센 폴란드 여자(라고 일단 알아두면 좋을) 델핀 바츠카와 1차대전에 참전하여 몸의 여러 곳에 흉터가 생긴 반 오지브웨족 인디언 시프리언 라자르 커플은 극단에서 독립해 둘이 한 팀으로 균형잡기 쇼를 하면서 생활한다. 커플 이상이 아닌 커플. 시프리언이 전쟁에 나가 이질에 걸려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장했다. 생전 처음 듣는다. 이질은 한정없이 설사를 하는 병인데 그게 어떻게 생식기 혈관과 연결이 지어지나? 책을 1/5 정도 읽으면 이유가 나온다. 그는 사내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고, 남자와 동성애를 하는 장면을 하필이면 델핀 바로 앞에서 저질러 버린다. 함께 한 침대에서 자면서도 시프리언은 델핀을 누이처럼 좋아하고, 나중엔 사랑하게 돼 청혼까지 하지만, 델핀은 이를 거절한다. 자꾸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고어필드에서 철물점 주인과 야밤에 공공장소의 벤치에서 벌인 일이 떠올라서. 그는 지브웨족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아 미국 시민권도, 투표권도 없는 상태였다.

  델핀은 어려서 어머니 마리가 일찍 죽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 로이는 돌이킬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라, 학교 공부에 뛰어나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음에도 애당초 진학을 포기한 채 비참한 생활에서 탈출하고자 지역 극단에 들어간 거였다. 이것도 그렇게 알아두자. 1934년, 궁핍했던 시절. 미국의 서민들은 삶의 고단함을 눅여줄 웃음거리가 필요해 델핀과 시프리언은 돈을 제법 벌었다. 그래서 둘은 싸구려 보조 보석 반지를 두 개 사서 나누어 끼고 아거스빌로 귀향길에 오른다. 네군도 단풍나무에 둘러싸인 고립된 농가는 그나마 변두리라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 다행이었다.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슈납스에 취한 아버지는 뛰쳐 도망을 쳤고, 집에서는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역한 냄새가 풍겼으며, 진짜로 들어가보니 온갖 난장판에 토사물과 바싹 말라버린 사람들의 분뇨가 찌든 악취를 발산했다. 며칠을 청소해도 역한 악취는 사라지지 않아, 결국 냄새의 근원인 마루 밑 식료저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엔 잊히지 않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들이 바글대는 세 구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심한 알코올 중독 증세로 환상과 환청과 섬망을 겪는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주인공은 위에서 소개한 피델리스 발트포겔과 델핀 바츠카. 이들이 어떻게 엮이는지, 그건 이야기하지 않겠다. 제목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에 대하여. 피델리스는 전쟁 때 했던 저격수나 직업인 도살과 정육점 칼잡이 일과 대비되게 매우 고운 리릭 테너의 목소리를 지녔고, 성량도 괜찮아 노래하기를 즐겼다. 독일에서도 정육점 주인들과 도살업자들만으로 구성한 노래클럽이 있어서 미국에 정착한 피델리스는 자리를 잡자마자 정육점 주인들로만 구성한 노래클럽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아거스빌에 정육업, 도살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겨우 두 명. 도무지 한 팀을 꾸릴 수 없어서 모든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조직했다. 그리하여 첫 모임은 발트포겔의 도살실에서 열었는데, 천장이 높은 도살실이 의외로 울림이 좋고 널찍하게 퍼져 아주 그만이었다. 참석한 인사들도 고을에서는 막강하게 대출전문 은행가 바리톤 줌브러게 씨와 그의 직원 포틀랜드 채버스, 아거스빌의 폴스타프라고도 불린 한 시절의 셰익스피어 전문 연극인이었던 팔세토(무진장 높은 고음) 음역의 보안관 호크, 고을에 한 명 밖에 없는 의사 하차 싸, 그리고 주인공 델핀 바츠카의 아버지인 술꾼이자 바리톤 로이 씨 등등이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 사건도 난다. 사건들로 이 가운데에서도 비명에 가는 사람이 당연히 생긴다. 그 사이에 독일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와 달리 미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도 있고, 독일군으로 참전한 아들도 있고, 아들이 행여나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나 전전긍긍하는 어머니도 있다. 이렇게 1954년까지 두 가족이 사는 모습을 그린 작품.

  전형적인 미국 드라마지만 이런 미국식이면 좋다. 읽다가 울기도 했지 뭐야. 당신도 정말 읽을 생각이면 각오하시라. 눈물 한 방울 정도는 찔끔 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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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1-12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고영민, 《공손한 손》
화요일. 랜퍼드 윌슨, 《탤리 가의 빈집(외)》
수요일. 장웨이, 《어신魚神을 찾아서》
목요일. 오노레 드 발자크, <사기꾼>
금요일. 알랭 로브그리예, <진>

잠자냥 2024-01-12 0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 책이라 보관함에 담아두기는 했는데 표지가 좀 ㅋㅋㅋㅋㅋ 이상해서 선뜻 손이 안 갔거든요. 폴스타프를 울리다니 읽어야겠습니다…..근데 그거 소주방울 튄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1-12 07:25   좋아요 1 | URL
열람실에 쐬주 못 가져 들어갑니다. ㅎㅎㅎ
표지 사진 보시면, 백인일 수도 있고, 선주민일 수도 있고... 막 그렇잖아요. 재미납니다.

레삭매냐 2024-01-12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어제 이 책 무너진 제 책탑
정리하다가 발견했어요.

미처 샀는 지도 모르는 그런 책
을 북플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
물론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밤의 경비원>도 읽다 말...

Falstaff 2024-01-12 16:1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어서 읽으셔요. 이 여사님 작품이 재미있더라고요. 눈에 보이면 더 읽을 예정이랍니다.

coolcat329 2024-01-12 1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밤의 경비원은 기억하는데 작가 이름은 이제서야 제 머리에 각인이 되었어요. <밤의 경비원> 부터 읽어봐야 겠습니다. 이번 글 읽으니 엄청 끌리네요~^^
작가 찾아봤는데 분위기있는 미인이십니다.

Falstaff 2024-01-12 16:11   좋아요 1 | URL
옙. 글을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겠 쓰더라고요. 딱 제 스타일. ㅋㅋㅋ

그레이스 2024-01-12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도를 못따라가겠네요.^^

Falstaff 2024-01-13 15: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좀 많이 올리나요? 좀 줄여야겠습니다. ^^
 
어느 날 거위가
전예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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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예진은 스물여덟 살 때인 2019년에 <어느 날 거위가>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며칠 후면 5년차에 접어드는 작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눈썹을 휘날릴 시기렸다? 책에는 데뷔작부터 2021년까지 쓴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렸다. 지금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며 올해 2023년 말이나 늦어도 24년 초까지는 완성하고 싶다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ARKO 문학나눔 관련 영상을 통해 말한다.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도 ARKO 문학나눔 책으로 동네 도서관 신간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신진작가의 책이라 읽었다. 문지에서 나온 신인들 책이 읽어볼 만하다. 이번에도 기대를 갖고 열람실로 올라갔다.


  제일 먼저 나오는 단편의 제목이 <팬티>다. 그래, 그래. 바지를 뜻하는 팬츠 말고, 소위 ‘빤쓰’라 불리기도 하는 그 ‘팬티’ 맞다. 2019년에 잡지 『Axt』에 실렸던 작품으로 데뷔작을 빼고는 가장 먼저 발표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의 작품이 제일 앞에 실렸기도 하고, 다중의 눈길을 끄는 제목인 것도 맞아서 그런지 이 책을 소개하는 여러 서평을 봐도 <팬티>를 먼저 거론하는 것들이 많다. 어떻게 됐느냐 하면, 나무에 팬티가 걸려 있는 설치미술과 관련한 이야기다. 여기에 이제 노령에 접어들려고 하는 강상미라는 이름의 여성이 끼어든다. 모 광고회사의 부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강상미는 적지 않은 수의 늙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젊은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안의 나뭇가지 가득 팬티가 걸려 있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옆집 103호 30대 여성은 스트링과 망사팬티에만 불만이다. 이 두 팬티가 여성의 성 상품화와 깊게 관련이 되어 있다면서. 나중에 보면 정작 자발적으로 망사 팬티를 걸려고 하는 여성은 전혀 그런 뜻도 없지만.

  이렇듯 책에 실린 전예진의 작품 모두 메타포다. 전방 위수지역에서 닭을 튀겨 파는 치킨집 주인은 군부대로 배달을 나갔다가 성인 네 명이 삶아 먹어도 남을 큼지막한 거위로 변신metamorphosis한 장준태 병장과 이현우 상병을 데려왔다가, 거위가 닭튀김을 얼마나 잘 먹는지, 별 해괴한 일을 겪는 이야기(어느 날 거위가). 기획팀장으로 성격을 조금 까칠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몇 년 일 하나만큼은 잘하고 있던 유귀동 차장은 경영진이 바뀌면서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룹의 한 명으로 지금은 1층 로비의 그림 속 여인으로 역시 변신해 있다(점심 같이 먹을래요?). 오빠 김수민은 어려서부터 소아비만으로 진단을 받더니 이후 체형이 조금씩 바뀌어 드디어 고래로 변신해 바다로 떠나 연락이 없고(숨통), 우울한 미래의 어느 날엔 해수면이 치솟아 모든 아파트 건물은 방수처리를 했어도 아파트에 따라 5층, 7층까지는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고모는 불법으로 잠수 배달운송을 하기도 한다(우리 집에 놀러 와). 돈도 잘 버는 데다가 요리실력도 좋은 친구 집에 연어회를 사가지고 늦게 도착한 호진은 팔, 다리, 나중엔 목이 뎅거덩 부러지는 좀비로 변하고 만다(좋아질 거예요). 부모가 날이면 날마다 격렬한 부부싸움을 하다가 드디어 이혼을 실행하려 하는 찰나에 할머니가 손녀들 데리고 동해안 바닷가 콘도미니엄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 이야기인 <파도를 보는 일> 정도만 자주 읽은 순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독자는 조금도 쫄 거 없다. 전예진은 그래도 순한 맛의 메타포를 사용했다.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지금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 면에서 (2022년 기준) 작가의 17년 지기라고 주장하는 경기도 포천의 한 책방 주인 말마따나 “리얼리즘 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좀 어울리지 않지? 메타포와 리얼리즘이라니까? 그것도 선입견이다. 대부분의 문학 또는 예술 행위 자체가 메타포의 효과적인 활용일 수 있으니. (아쭈, 아마추어가 이렇게 막 말해도 괜찮은 거야?) 이왕 그러려면 전예진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편한 서술이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싶다. 나도 매운 맛은 좀 정도껏 매운 게 좋다.

  다만, 작품 속 등장인물이 변신하고, 변신하고 또 변신하는 바람에 책 뒤편으로 가면 뭐 그런가보다, 하는 마음이 된다는 점. 장편을 쓰고 있다는데 이번엔 어떤 변신을 만들고 있으려나, 싶어지는 거. 설마 변신이 전예진의 패턴은 아니겠지? 좋다, 장편 하나를 더 읽어보고 이이의 독자가 될지 말지 따져보겠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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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1-1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예진 거위랑 팬티 소설 흥미롭게 읽고 다음 소설도 궁금했는데 소설집 나왔군요. (친구가 행사한다고 저 작가 찾길래 나온 학과 염탐해서 과사무실로 연결해보라고 알려주기도,..온라인 흥신소)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더. 나아아중에…

Falstaff 2024-01-14 19:19   좋아요 1 | URL
아오, 굉장해요! 요즘 작가 프로필에서는 여간해서 학교, 학과, 출생 연도, 고향... 이런 거 찾기가 무지 힘들잖아요. ㅎㅎㅎ 정말 온라인 흥신소 어울립니다. 연두 게이샤 맛있더라고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1-14 22:15   좋아요 1 | URL
일단 가격이 착해서 가격 대비로 신선도가 좋죠 ㅋㅋㅋ 이 집요함을 어둠의 경로 말고 세상에 도움 되는 데 써야 하는데...글쎄 쓸데가 없는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