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편지 창비시선_다시봄
강은교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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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만에 강은교를 읽는다. 헌책 샀다. 이이의 《허무집》과 《풀잎》 이후 시집으로는 처음 읽는다. 그동안 잡지에 나오면 읽고 아니면 말고 그랬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지만 정말 그런 시만 쓰고 싶었을까,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나는 그것이 의심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1945년에 함경남도 흥원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 출생 이후 줄곧 서울 살다가 80년대 중반이 지나서 박사 받고 동아대학 국문과 교수하느라 부산에 살았으니 이 정도면 서울 사람이라고 해야지 뭐. 애초에 허무와 존재를 고민하던 시인이었으나 세월이 점점 험해지니 참여의 길로 한 발을 디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지만, 애초에 깔린 모던한 사색을 어찌 몽땅 털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하여간. 내가 아는, 이라기 보다, 내 기억 속 강은교와 가장 가까운 시는 이거였다.



  벽 속의 편지

      그날



  이 세상의 모든 눈물이

  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

  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


  그대, 아직

  길 위에서 길을 버리지 못하는 이여.   (전문)



 이 시를 70년대, 80년대에 읽었다면 “그날”에 관해서는 누구나 다 말도 한 마디 할 필요 없이 읽는 순간 팍, 이해를 하고, 아니면 시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해했다고 치고 “개벽”이라 말했을 거 같다. 그러나 시집이 나온 시기가 1992년. 시인의 나이 마흔일곱 시절.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왕년의 민주투사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을 하고(했나? 며칠 더 있어야 하나?), 여전히 자본 카르텔에 대한 저항은 저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목이 터질 망정, 하여간 그날을 이젠 꼭 다 같은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달인이 강은교, 라고 생각했다. 모던한 인텔리이지만 리얼리즘을 노래해야 했던 불운한 시기에 빌어먹을 전성기를 달린 시인. 예를 들어 <울음의 線 – 그 첫번째>의 첫 연을 읽어보면:


  나의 이름을

  골리앗 크레인

  ‘외로운 늑대’라고 불러다오

  별을 세고 있으면 문득 별이 사라진다

  새벽 2시

  어둠이 동지들 곁

  씨멘트 위에서 끓고 있다   (부분)


  강은교의 팬들에게 돌팔매를 맞아 죽을 말이겠지만 현직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노래치고는 공허하다. 난데없이 등장한 외로운 늑대는 또 뭐여?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 농성하는 사람, ‘동지’들이 외로운 늑대라고? 내가 단어를 잘못 알고 있는지 싶어 ‘외로운 늑대 lone wolf’ 검색해봤다. 하여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는 알겠으니까 그건 그냥 넘어간다 쳐도, 동지들은 새벽 두 시에 찬 씨멘트 위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것이 선생한테 그렇게도 사무치는지,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는 그들에게 한 다리 건너다. 오늘 도리스 레싱 작품에서 더 적절한 문구를 읽었지만 인용하지 않는 것은 나 역시 강선생의 오랜 독자라서임을 통촉하시옵소서.

  다음엔 이것 한 번 읽어보시라.



  새우



  꼬부라진 등을 메고

  비릿한 수염이 허공을 뻗어 있는

  희푸른

  그 새우를 아는가.


  허허벌판 접시 위에서

  모진 이들에게

  살껍데기를 다 벗기우고

  가끔씩 푸들푸들

  세상맛을 보는 듯 경련하는

  그 새우를 아는가.


  퍼덕이는 말과 말 사이로

  미사일들의

  숨죽인 굉음과 굉음 사이로

  가끔씩 푸드드득


  푸드드드득.   (전문)



  1992년 출간 시집이니 이 당시 산 채로 껍질을 벗겨도 아직 신경은 살아 있어 가끔 접시 위에서 푸드득 살을 떨던 새우는 요즘에 양식해서 자주 상에 오르는 대하가 아니다. 보리새우라고 부르고, 당시엔 ‘오도리’라 했던 남해 특산 어종이었다. 단맛이 일품이고 주문하면 종업원이 직접 껍질을 까주기도 했다. 술꾼들이 상 위에 껍질 벗긴 보리새우를 올려놓고 수다를 떠는 광경이다. 그러나 창비 진영의 작가, 시인, 독자가 이 시를 읽을 때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를 떠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술꾼들의 수다를 미사일 터지는 장면으로 변환할 수 있고. 이럴 때 시인은 시치미 뚝 떼고 뒷짐을 지고 있으면 된다. 해석은 당신들이 하라고. 그냥 껍질 벗긴 새우의 장면을 연상하면 더 좋은 시가 될 터인데, 끙. 내 의견대로 읽는다면 괜찮은 모더니즘 시일 수 있을 텐데.

  비슷한 수산물이 하나 더 있다. 강은교는 수산물엔 폭탄이 터지는 습관이 있다.



  아구



  오늘 아구 한 마리 사왔네

  멋진 아구찜, 아구탕의 꿈을 위하여


  쭉 찢어진 아가리가 몸뚱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네

  그 녀석의 뼈는 또 왜 그리 억세던지

  칼로 내려치는 나를 향해 연신 비아냥거리고 있었네

  그 녀석의 미끌거리는 잿빛 살껍질도

  날아가는 로켓탄 같은 아가리도


  ‘어둠이 질기면 얼마나 질기랴’

  그 녀석의 짓무른 눈

  젖어, 고함치고 있었네.   (전문)



  이 시도 마찬가지다. 기껏 통통하게 살 오른 아구 한 마리 사와서 칼로 치다가 작은 따옴표 쳐서 강조하기를 ‘어둠이 짙으면 얼마나 질기랴’ 한 마디를 해야 속이 풀린다. 아구탕 걸지게 한 국자 떠 마신 것처럼. 바로 앞 연의 마지막 행 “날아가는 로켓탄 같은 아가리” 역시 ‘어둠이 질기면 얼마나 질기랴’를 쓰기 위해 굳이 로켓탄까지 찬조출연한 거 같다. 아구찜, 아구탕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큼지막한 식칼로 아구의 몸을 우당당탕 치고 있다가 시인의 눈에 큼지막한 아구의 아가리가 로켓탄처럼 보였고, 하고 많은 중에서 하필이면 로켓탄처럼 보였고, 싱싱하지 않았나? 짓무른 눈도 지 까짓 것이 얼마나 질기겠어? 고함을 친단다. 그럼으로 해서 시인은 동류의 동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내 말이 뭐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명인이라니까. 매콤한 아구찜, 얼큰한 아구탕으로 시작했다가 어둠 규탄대회로 끝나는 거 말이지. 하긴 뭐. 시는 시고, 삶은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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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문지 스펙트럼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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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란 작품이다. 하나는 오에의 문장. 내가 여태 오에 겐자부로를 헛 읽은 거 같다. 아니면 이이가 조밀하게 직조하는 날실과 씨실의 얽힘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은 그냥 넘어간 것인지도.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보다 오에 겐자부로가 부사와 형용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한 작품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스토리 중심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작가인줄 알았는데 아오,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고 꾸밈도 많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쓰다니. 다른 하나는 새싹을 뽑는 것도 모자라 기어이 어린 짐승에게 총질을 하는 어른의 비정함을 노골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 일반에서 어린이는 현재 또는 미래의 희망을 은유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놀라움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의외였던 두 가지를 합쳐 말하자면, 집단 이기심에 의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유려하고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광상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심미적 문장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적재적소엔 바로 그 문장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칼로 벤 듯한 글도 읽힌다.


  “살인의 시대였다. 지루한 홍수처럼 전쟁이 집단적인 광기가 인간의 정념 구석구석에, 몸의 빈틈없는 구석구석에, 숲이며 도로, 하늘에 범람하고 있었다.” (14쪽)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 폭격기가 도심을 공격하기 시작해 피해자가 속출하자 급기야 일본 군부는 시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린다. 일본처럼 태평양 너머 저 멀리 있는 본토가 폭격당하고 있다면 당연히 이 전쟁은 지는 전쟁이다. 전황이 불리해질수록 군부는 더욱 악착 같이 집단 최면을 시도해 국민들 역시 더욱 교조적이 되는데, 일본처럼 전장과 후방이 극단적으로 먼 거리일수록 더 할 것임은 당연하다.

  나는 일반적인 일본 사람들의 성향을 알지 못한다. 다만 천 년 세월동안 무신정권 치하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센 자한테 약하고 약한 자한테 강하게 진화되어 왔다는 건 이해한다. 전쟁 말기의 극단적 애국주의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심리.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작품 속의 일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모든 행위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감화원 소년들이다. 도시에 소개령이 내려지자 감화원에서는 원생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각자 알아서 소개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다수 가족들은 결코 자신들의 못된 혈육을 맞으러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공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못살게 구는 선배를 찔러 감화원에 오게 되었는데, 아이를 데려가라는 편지를 받은 아버지가 군화 신고 징용일꾼모자를 쓰고 동생까지 데리고 나타나 ‘나’를 데려가기는커녕 동생마저 감화원의 집단 소개의 일원으로 붙여 놓고 가버렸다. 그래서 ‘나’의 아무 잘못 없는 어린 동생까지 합해 열다섯 명의 원생들이 변변치 않고 푸르죽죽한 제복을 입고 헝겊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채 1차 소개원의 신분으로 걸어서 멀고 먼 시골까지 걸어가고 있다.

  감화원.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가두어 두고 교정하는 시설이다. 다수를 가두어 두면 반드시 그곳을 이탈하려는 사람이 발생한다. 1차 소개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미나미(남쪽)이란 별호로 불리는 남창 출신 소년이 다른 어린 소년과 함께 적절한 밤시간을 틈타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미 시골지역으로 접어들어 인적이 드문 고장이거늘 이들은 시골 어른들한테 붙잡혀 무수하게 구타당하고 순경에게 넘겨 버렸다. 시골. 이곳은 외지에서 온 사람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내는 농민이란 또 하나의 바다였다. 감화원 아이들이 작은 집단을 이루어 간신히 표류하고 있는 섬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가는 곳마다 시골사람들은 이들을 에워싸고 현기증이 날 만큼 감탄하며 보고 있었는데, 원생들은 눈길에서 일상적인 굴욕과 어두운 분노를 함께 느껴야 했다. 그러나 원생들의 일상들은 몸과 마음에 극도로 상처를 입으면서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 연거푸 가로놓여 있어 그것들과 맞부딪혀가는 수밖에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탈주한 감화원 원생을 잡아 넘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직접 잡아서 두드려 팬 다음에 경찰을 불러 신병을 인수하는 건 조금 과하다 싶지만, 경찰에게 탈주한 원생이 어디에 숨어 있다는 것을 신고하는 정도야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지금은 일단 이렇게만 하고 넘어가자.

  하여간 감화원생들은 소개지로 출발한 다음부터 지칠 줄 모르고 탈주 시도를 반복했으나 매번 악의에 불타는 시골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혀 초주검이 되어 다시 끌려오기를 계속했다.


  감화원생은 마지막 소개지로 가는 도중에 해군 하사관학교 병사들이 길을 가득 메운 것을 목격한다. 이들 가운데 중년의 헌병도 끼어 있다. 하사관학교 병사 한 명이 탈영을 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벌써 “산사냥”을 사흘째 하고 있다. 산사냥이란 건 총기가 별로/거의 없는 농촌사람들이 대신 죽창이나 막대에 대검을 꽂은 무기를 들고 산을 샅샅이 훑으며 창질, 칼질을 해가는 것으로 멧돼지 사냥보다 더 끔찍하다고 한다. 산 사람을 사냥하는 것을 말하는지, 산 속에서 사냥하는 걸 말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변절자, 탈옥수 체포에 주민들이 동원되었던 것이 발전한 것 아닐까 싶다. 나중에 정말 산사냥의 결과를 읽을 수 있다. 이 탈영한 해군 하사관 학교 병사를 조선인 리(李)가 숨겨주고 있었는데 발각이 나서 산으로 도망갔다가 사냥을 당해 끌려올 때는, 죽창에 찔린 그의 왼쪽 배가 열려 내장이 밖으로 돌출되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건 나중 일이고, 하사관학교 병사들이 소득 없이 철수할 때 감화원생을 이끌고 가는 보호 교관이 헌병 하사관에게 접근해 말을 잘 했는지 그의 트럭에 태워 마지막 최종 목적지인 두메 산골 부근까지 그날 밤 안에 가게 되었다. 이 책이 열한 번째 오에 겐자부로. 감화원생이 내린 곳이 오에의 다른 작품 속에 자주 나오는 자신의 동네 부근인 거 같다. 매우 익숙하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지난번 홍수 때 길이 끊어져 이젠 벌목한 나무 운송용 궤도차를 타고 깊고 깊은 골짜기 건너 저 편 마을이었다. <만옌 원년의 풋볼>을 예로 든다면 그해 민란이 일어나던 경사진 산지역. 골짜기는 <익사>에서 ‘나’의 아버지가 마을을 빠져나가다가 물에 빠져 죽은 골짜기보다 훨씬 더 깊게 만들어 놓은 거 같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두메산골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간 곳의 경종(tocsin) 망루, 그 오른쪽에 있는 절이 이들의 숙소이다. 도착지에서는 친절하던 대장장이도 이곳에 오자마자 안면을 철회하고 냉정하며 거칠게 변한다. 이곳의 모든 주민들이 감화원생을 경원하는 것이 훤하다.

  마르고 키가 큰 늙은 촌장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소나무 산을 개간하는 것. 만일 도둑질, 방화, 폭력을 하는 녀석은 마을사람들이 죽도록 패줄 것이며, 규율을 어긴 자는 반장을 정해 기억해 두었다가 보고를 하란다. ‘나’는 엉겁결에 반장이 되어버린다. 밤에는 밖에서 문을 닫아 열쇠를 채워버린다. 밤새 불이나 전부 타서 죽거나 말거나.

  다음날 이들이 맡은 첫번째 작업은 동네에 널려 있는 죽은 짐승을 땅에 파묻는 일. 개와 고양이와 죽은 쥐를 들고 냇가로 가보니 그동안 죽은 짐승이 작은 둔덕처럼 쌓여 있다. 오전 내내 땅을 파 이것들을 묻고 나니 점심 때. 밥을 먹고 땅을 다지기로 하고 철수를 했지만 오후가 되도 아무도 이들을 찾아오지 않는다.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새벽이 되자 이들은 동네가 비어 있음을 알아챈다. 짐승들이 죽어나간 것이 전염병이 돌아서였으며, 역병이 사람에게도 옮아 흙집에 죽어가는 여인하고 딸이 있을 뿐, 밤 사이에 모두 피난을 간 거였다. ‘나’는 밤에 이상한 낌새를 느껴 그들이 도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들이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궤도를 따라 올라가는 것과 가파른 산을 넘어가는 것, 이렇게 두 가지이지만 괘도 저편엔 교묘하게 차단벽을 세워 벽을 오르려 매달렸다가는 벽과 함께 깊고 깊은 골짜기로 추락할 것이고, 산을 넘어가본들 역병지역에서 온 감화원생을 기다리는 건 또다른 폭력 뿐이었다. 이들은 소년 열다섯 명만 전염병이 나도는 마을에 남겨놓고 그렇게 간 거였다.

  나는 이런 장면은 진짜 처음 볼 뿐더러, 비슷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이 탈출을 했으면 신고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어린 아이들만 역병지역에 두고 자기들끼리 도망한다는 발상은 우리나라 옛 이야기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정말 오에가 살던 지역에서는 양식, 그냥 사는 방법, 환란에 처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단 안쪽에 이런 방법이 들어 있을까? 이들과 협력하고 앞에서 말한 탈영한 해군 하사관 학교 병사를 돌보는 유일한 사람은 조선인 리 말고는 없었다.


  역병의 한 가운데에 떨어진 감화원 원생들 열다섯 명. 이 가운데 미나미와 함께 탈주하다가 잡혀온 어린 소년 하나는 계속 호소하던 복통이 악화되어 일찍 숨을 거두고 남은 열네 명이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그러나 뜻밖에도 이들은 ‘어른’의 감시와 간섭이 없는 산골 외딴 곳에서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며칠 못 가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지만. 읽어보시라.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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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1-30 0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진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름다움… ㅜㅜ

유부만두 2024-01-30 14:21   좋아요 3 | URL
저도요. 진심입니다. 잠자냥님 팔스타프님과 공감하는 데에 더 기쁘고요.

Falstaff 2024-01-30 16:31   좋아요 3 | URL
윽. 지금 오후 네시 반. 취기 돌기 전에 얼른 댓글 달아야 한다는... ㅋㅋㅋ
근데 막상 댓글 달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좋은 작품이니까,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입죠.

잠자냥 2024-01-30 16:39   좋아요 3 | URL
이미 취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4-01-30 16:43   좋아요 2 | URL
ㅎㅎㅎ 리뷰에 건배!!!

stella.K 2024-01-30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면 무슨 원예에 관한 책인가 할 텐데 꽤 괜찮은가 봅니다. 저는 이 사람 책 두 권 가지고 있는데 에너벨리에 질려서 못 읽겠던데. 역시 노벨문학상은 영ᆢ하며. 근데 팔님 리뷰 읽으니 혹하네요.

Falstaff 2024-01-30 16:33   좋아요 2 | URL
저는 오에, 이 양반이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랍니다. 당연히 독자에 따라 호오가 있겠지만 다행스럽게 저하고는 딱! 거 뭐냐, 하여튼 뭔가가 맞았는 듯합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4-01-30 1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도 꼭 읽어야지 했던 책인데 잊고 있었습니다. 커피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4-01-30 16:33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ㅎㅎㅎ 틀림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저도 커피 주문해야 하는데.... ㅎㅎ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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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니아 쉬블리는 1974년에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태어난 범띠 여성이다. 이스트런던 대학에서 미디어 문화 연구로 박사를 받고 베를린 EUME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노팅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Virzeit 철학과에서 파트 타임 교수로 있다. 이이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에 팔레스타인에서 발표한 <사소한 일>이 2021년에 영어, 독일어 등 기타 언어로 번역 출판한 이후이며, 독일어 번역본이 2023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문학상을 받기로 확정되었다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해 원래 이스라엘/유대인한테 벌벌 기는 시늉을 하는 독일 관계자로부터 수상이 취소된 일이 국제적인 문젯거리로 확산되기도 했다. 나도 이 사건을 기억해 혹시나 해서 검색했고,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아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내가 작가에게 굳이 범띠 “여성”이라고 한 것은 2부작인 짧은 소설의 1부 주인공이 남성이고 그것도 군인인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게다가 군인이라니.


  1부는 1949년 8월 9일의 일이다. 쉬블리는 이런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루만 빼고는.”

  시작부터 내 신경을 확 끌어당긴다. 기막힌 서두였다.

  그러나 독자는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1949년이라면 그들의 내력을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1년 전인 1948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조금씩 모여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해 점령해버린 해이며, 이후 ‘알나크바’ 즉 대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 약7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해버린 악몽 같은 해였다. 5월에 영국의 위임통치기간이 끝나고 이스라엘 공화국임을 선포하자마자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피로감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지원 없이 재래식 무기로 아랍 여러나라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운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까지는 뭐라하기 힘든데, 이후 그들은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말끔하게 소탕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1949년 8월 9일에 건조한 네게브 사막에 도착한 이스라엘 육군 소대는 두 가지 임무를 받고 먼 남쪽까지 내려왔다. 이집트와의 남쪽 국경, 휴전선을 지켜서 아무도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 그리고 네게브 사막 남서쪽을 샅샅이 뒤져서 잔존 아랍인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일이다. 전쟁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인들은 아랍인은 물론이고 유목민인 베두인과도 대단히 바람직한 관계를 맺었다. 사막의 이스라엘인 개척지에 베두인들이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민트 차를 나누어 마실 정도였다니. 그러나 전쟁 중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이제는 엄연한 이스라엘인 자신들의 나라 땅 안에 있는 아랍인종들은 당연히 제5열이거나 정보원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모든 아랍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교 한 명, 부사관 몇 명과 사병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파견군은 이집트와의 휴전 선언이 이루어진 이래 이렇게 먼 남쪽까지 도달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소대로서 지역 안전 유지를 위한 모든 책임(이라는 명목하의 과하게 넘치는 권한)이 주어진 거였다. 즉, 소대는 국가라는 권력을 대신해 이 지역에서 집행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며, 언제나 권력은 주어진 순간부터 악으로 전환되기 십상인 법이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사막의 소대, 이 가운데 특히 최고 지도자이자 단 한 명의 장교인 ‘그’를 관찰자 시점으로, 가장 건조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남아 있던 것은 두 채의 오두막과 부분적으로 파손된 세번째 집 벽의 잔해 뿐이었다. 장교는 오두막 하나를 숙소로 쓰고 지휘소 천막 하나와 부대원의 취사용 천막을 세우게 했으며, 옆에 병사용 막사 세 동의 천막을 설치하라고 지시한다. 오두막에 들어간 장교는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셔 옷을 벗고 몸을 닦는다. 얼굴, 가슴과 복부, 손이 닿는 곳까지 등을 문지르고 이어 다리까지 꼼꼼하게 씻는다. 이후 사병들을 불러 군기를 확실하게 확립할 것과 특히 개인위생에 신경 쓸 것을 주문한다. 면도도 반드시 하루에 한 번 할 것까지. 이후 차를 타고 첫번째 순찰을 나가지만 극심한 더위 속 모래 언덕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날 밤, 더위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낸 다음이라 깊은 잠에 빠진 장교는 잠결에 자신의 허벅지에 뭔지 모를 물것 하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촉감으로 느끼면서 잠을 깬다. 어떻게 할까를 잠시 궁리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면서 물것을 손으로 쳐 떼 버리고 랜턴을 켜서 확인을 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이 잠깐 사이에 그것이 허벅지를 물었는지 허벅지에 아주 작은 빨간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 시작한다.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은 고통.

  이후 장교는 극심한 위통과 등에 경련이 나는 등 심하게 애를 먹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사병들 앞에서는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위생병의 도움 없이 자신이 따로 가지고 있는 소독약과 연고, 거즈와 붕대를 이용하여 치료하고자 한다. 이런 상처를 숨기고도 그는 자신의 임무에 조금의 소홀도 없이 매일 차를 타고 순찰을 돌며, 밤이 내려도 혼자 총을 메고 진지 주변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11일에는 물린 곳의 가운데엔 고름이 차고 둘레에는 붉은 원, 푸른 원, 그리고 검은 원이 두르고 있는 상태에 이른다. 그럼에도 밤엔 홀로 소총을 메고 사막으로 나갔다. 새벽에 되자 돌연한 발작을 시작했고 결렬한 오한과 가쁜 호흡, 기침과 트림에 이은 구토까지 경험해 12일 새벽에 진지로 돌아온다. 이제 시야에는 검은 점과 회색점이 날아다니는 비문현상도 일어난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12일 오전에 장교는 다시 차량 순찰을 나가서 계속 직진할 것을 주문한다. 모래 언덕을 몇 개 넘으니 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빈약한 풀줄기 사이에 얕은 샘이 있고, 그것을 끼고 한 무리의 아랍인과 여섯 마리의 낙타,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다. 그와 운전병은 그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해서 아랍인 남자 전부와 낙타 여섯 마리 모두를 쏴 죽여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흐느끼는 소녀 한 명과 개. 이들을 차 뒤편에 싣고 부대로 돌아오는 장교.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인들이 습격할 수도 있어서 특별 경계 명령을 내린 장교는 진지 주변에 추가로 병력을 투입하고 소녀는 주방에서 일을 시키도록 하겠다고 하며 일단 옆 오두막에 가둔다. 숙소에 돌아온 장교는 또 옷을 벗고 깨끗하게 몸을 씻고 잠깐 쪽잠을 잔다. 이 사이에 병사 몇 명이 벌써 소녀한테 손을 댄다. 소녀가 울면서 소리치는 걸 보고 단번에 상황을 짐작한 장교는 병사들을 불러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소녀를 진지 식당에서 일하게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녀를 가지고 놀든지.”

  우물쭈물하던 병사들은 모두 소녀를 겁간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지만 장교는 소총을 짚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모든 병사가 보는 앞에서 소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수조에 호스를 연결해 샤워를 시킨 후 휘발유로 머리를 마사지시켜 머릿니를 제거한다. 밤이 오자 장교는 자신의 오두막에 야전 침대를 하나 더 설치하게 하고 소녀를 들여 잠을 자다가 휘발유 냄새가 지독하지만 겁탈을 하고 만다. 거부하는 소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친 후에.

  다음 날, 1949년 8월 13일. 소녀를 다시 원래 오두막으로 보낸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두막으로 달려가 순서에 의해 겁탈을 하고, 장교의 허벅지 물린 곳은 하얀색과 분홍색과 누런 색의 고름이 한데 섞인 썩은 살의 작은 구덩이로 변해 그곳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정작 장교 자신의 악취는 베두인 소녀의 머리에서 나는 휘발유보다 훨씬 더 지독했던 거였다. 이날 오후, 장교는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소녀와 함께 다시 사막으로 간다. 휘발유가 아까워 진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해 가로 0.5미터, 세로 2미터의 구덩이를 파라고 지시하니 이 말은 들은 소녀는 울면서 장교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장교는 소녀의 머리통에 권총을 발사하고, 아직 채 숨이 넘어가지 않은 소녀에게 부사관이 여섯 발을 더 발사한 다음에 구덩이 속에 묻으면서 1부가 끝난다.


  2부는 이 살인이 있던 25년 후의 8월 13일에 태어난 여성 ‘나’가 등장한다. 인텔리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어느날 베두인 소녀 학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직장 동료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렌터카를 운전해 먼 길을 떠난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옛 팔레스타인 땅에 살기 위해서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경계선을 별 생각없이 곧장 달려가서 한 달음에 뛰어 넘거나 그냥 슬그머니 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조바심 없는 성격의 ‘나’.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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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1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범띠 여성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통조림공장 골목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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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이런 코미디도 썼다는 게 장해서 별점을 다섯 개 준다. 스타인벡, 하면 당연히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이어서 <의심스러운 싸움>과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을 꼽는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생쥐와 인간>은 합본이 한 권 있고, 이미 절판된 책이 있어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통조림공장 골목>은 스타인벡이 이런 작품을 썼는지도 몰랐던 참에 정말 우연히 개가실 책꽂이에서 발견했다. 열람실 제일 구석자리에서 잔뜩 어깨를 숙이며 키득키득 얼마나 들썩였는지. 집에 들어가다 로또 한 장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왔다. 내일이라도 한 장 사야겠다. 1등 당첨되면 천만원어치 책 사겠다. 아, 취소. 더는 책 쌓아 둘 곳이 없다. 그리고 맞다! 이 책 바로 옆에 이미 절판된 <생쥐와 인간>도 눈에 보였다. 그것도 내버려둘 수가 없지.

  존 스타인벡을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는 없다. 한 시절을 풍미한 작가이며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좀 덜 유명하지만 미국인들이 국민 작가로 추앙하는 인물.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조지아를 방문해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미합중국의 초대 FBI 국장 에드거 후버로 하여금 24시간 감시 처분을 내리게 했던 작가. 메카시 선풍에도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은 건 이미 세계적 명성을 휘날리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부잣집 아들에 공부도 잘해 스탠퍼드 대학에 들어가, 스포츠도 오지게 잘한 엄친아 출신의 존 스타인벡은 굳이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조차 없어서 대학 6년인가 8년 동안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만 수강하다가 졸업장이고 뭐고 필요 없어, 하면서 그냥 자퇴해버렸다며? 이이가 젊은 시절에 동부에 가서 공부하고, 막노동도 하고, 도로공사 같은 막일 전문도 하다가 지쳐 결국 낳고 자란 캘리포니아주 샐리너스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글을 썼는데, 이 작품 <통조림공장 골목>은 고향 샐리너스 카운티와 접한 몬터레이의 캐너리 로, 즉 말 그대로 통조림공장 골목을 무대로 한다. 정말 몬터레이에 캐너리 로, 통조림공장 골목이란 곳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기 고향 바로 옆동네를 무대로 삼아 그런지 스타인벡의 문체가 전에 읽었던 무거운 작품들과 달리 날아다닌다. 피융피융.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의 캐너리 로Cannery Row는 시(詩)이고, 악취이고, 삐걱거리는 소음이고, 독특한 빛이고, 색조이고, 습관이고, 노스탤지어이고, 꿈이다. 주민들은 창녀, 뚜쟁이, 도박꾼, 개자식들인데 이 말은 곧 ‘모두’라는 뜻이다. 이들은 성자와 천사와 순교자와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말과 같다.

  위 문단의 말이 궤변이라고? 아니다. 존 스타인벡은 진실을 서술한 거였다. 이 책은 초두에 자신이 적은 위 문장(들)이 왜 ‘참’인 명제인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그걸 구태여 미리 알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면 저절로 동의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그리하여 스타인벡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그 시와 악취와 삐걱거리는 소음과 독특한 빛과 색조, 습관, 꿈을 산채로 포착할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는 포착하는 데 성공했고, 나는 서슴지 않고 갈채했다.

  작품 속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은 중국인 리청의 식료품점. <에덴의 동쪽>을 읽어보면 스타인벡이 중국인한테 호의적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통조림공장 골목>에서 출연하는 리청도 매우 현명한 사람이다. 좁은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가게에 들여놓은 구색 면으로 말하자면 기적을 만든 사람이다. 한 마디로 없는 게 몇 가지 없으니 바로, 고양이 뿔, 암소부랄, 모기 눈알. 이것 말고 하여간 인간이 행복해지는데 필요하거나 아쉬운 모든 품목을 구비했다. 게다가 캐너리 로의 모든 사람들은 리청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외상거래를 말하는 거였다. 이상도 하지. 그는 도통 외상을 거절할 줄 몰랐다. 현재 고객이 지고 있는 외상값 총계가 얼마인지 독촉하듯 확인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선을 넘은 외상 고객에게는 단 한 푼도 초과해 외상 물품을 건네지 않았다. 리청에게 가장 큰 외상을 지고 있던 사람은 건조 물고기 가루(魚粉) 창고 소유주 호러스 애브빌이란 남자였다.

  아내 둘과 자식이 여섯 있는 호러스가 리청네 가게에 들어와 “내가 빚진 게 많은 거 같소.”라고 말했다. 자신도 외상이 한도까지 찼다는 걸 알고, 우리 아이한테 스피어민트 껌 한 통도 더 이상은 주지 않을 거 아니오, 라고 묻고, 그렇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리청이 대답하니, 자신의 어분 창고와 외상값 전부를 퉁 치자고 제안한다. 리청은 고개를 젖히고 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튀겨보더니 통조림공장이 확장을 하는 시점에 부동산 가격에 큰 변동이 있을 거라 여겨 거래에 합의했으며, 기념으로 속칭 올드 테니스 슈즈라고 불리는 위스키 올드 테네시 사분의 일 파인트 짜리를 선물한다. 미터법으로 237cc. 호러스는 올드 테니스 슈즈를 들고 마지막으로 이젠 리청의 소유가 된 어분 창고에 들어가 권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이후 호러스의 아이들은 언제든지 스피어민트 껌을 씹을 수 있게 된다.


  이제야 등장하는 매력 만점의 쉰 넘은 늙은 부랑자이자 악당이자 절도범 혹은 절도 교사자인 맥이 등장한다. 맥, 하면 떠오르는 거? 나는 <서푼짜리 오페라>의 맥더나이프Mac the Knife. 이 친구도 건달이자 칼잡이. 비슷하잖여? 맥은 가족도 없고 돈도 없다. 동네에서 마실 것과 만족 외에 아무런 야심도 없는 몇 명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자 지도자이며 조언자인 한편 어느 정도는 착취자이기도 하다. 이런 남자의 대부분은 자멸하는 길을 걷는 반면, 맥과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조용히 만족에 다가서서 살며시 흡수해버리는 재주를 가졌다. 친구라고 하면 아주 힘센 청년 헤이즐, 바 ‘이다’의 임시 바텐더 에디, 생물학 연구소에다 개구리와 고양이, 기타 온갖 생물을 조달해주는 휴이와 존스를 일컫는데 이들은 리청 가게 옆 공터에 있는 커다랗고 녹슨 파이프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 맥이 호러스의 어분 창고가 리청에게 넘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아무리 생각해도 리청한테 창고가 필요하지 않을 거 같아 그한테 들러서 어분 창고에 자신이 들어가 살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본다. 다시 고개를 젖히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현명한 리청.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서 살라고 하면 맥과 일당들은 심통이 나서 유리창을 깨거나 불을 확 싸질러 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가게에 와서 물건을 슬쩍 훔쳐가지도 않을 것이며, 가끔 가게를 방문하는 취객이나 깡패 비슷한 것들과의 문제도 쉽게 해결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그냥 쉽게 들어가 살라고는 할 수 없다. 리청은 얼마로 정하든지 어차피 받지 못할 임대료로 주 5달러를 제안하고 이제 사업상 든든한 파트너가 생기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사업상 실수를 리청의 선함, 선의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킨 예로 들어도 손색이 없는 거래였다. 맥과 일당이 어분 창고에 들어가 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꽤 근사한 ‘사람 사는 곳’으로 변모했고, 이때부터 어분 창고 대신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드 그릴”로 불리게 되니 이 아니 근사한 일일까.

  여기에 또 중요한 등장인물 한 명 더. 닥. 닥터의 닥이다. 웨스턴 생물학연구소의 소유자이자 운영자. 작은 몸집이지만 강단있고 아주 힘이 세고, 화가 치솟으면 몹시 사납지만 평소엔 세상에 이이보다 너그럽고 활수하고 남의 사정 잘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캐너리 로의 모든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턱수염을 길렀으며 (이게 기가 막힌 비유라고 읽었는 바) 반은 그리스도이고 반은 사티로스 같은 외모로 얼굴이 진실을 말해준다는 표본이랄 수 있다. 늘 맥주를 입에 달고 다니며 연구소에서 살면서 그레고리안 성가와 찰리 파커를 좋아한다. 사실 이이 때문에 작품에서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어쩌면 한결같이 불한당인 맥과 연결이 되는지, 그것도 팔자라면 팔자다. 우리의 맥이 어느 날 닥한테 주둥이를 얻어 터져서 위 앞니가 하나 부러지는 화를 당했건만 맥의 닥을 향한 존경은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한 명만 더. 도라. 훌륭하고 큼지막한 여자. 리청 가게 오른쪽 공터의 왼쪽 경계에 엄숙하고 당당한 도라 플러드, 매음굴 주인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악덕업체의 사장이 아니라, 나이와 병 때문에 무력한 아가씨도 내치지 않는 후덕한 포주다. 후에 ‘베어 플래그 식당’이라는 옥호를 달지만 어엿한 매음굴이라, 법에 어긋나게 살 수밖에 없으나 다른 누구보다 법을 두 배로 지키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기부금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이 1달러를 기부하는 행사에 50달러를 기부해도 그리 좋은 인상을 얻지 못하는 빌어먹을 운명의 여성. 하지만 현명하게 늙은 호걸이다.

  이렇게 천하의 부랑자 맥도, 매음굴의 호걸 사장 도라도, 식료품점 주인 리청도, 그곳에 종사하는 모든 종업원과 거리의 사람들, 주민들, 심지어 경찰, 소방관, 택시운전사 기타 등등도 캐너리 로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닥에게 뭔가 좋은 일을 좀 해줘야 하는데.”

  바로 이 “좋은 일”을 해주느라 통조림공장 골목의 사람들은 유쾌한 난장판, 포복절도의 비빔밥을 제대로 한 번 볶아낸다. 당신이 성적이 떨어진 학생이거나 실연당한 연인이거나, 마누라한테 얻어 터져 눈두덩이 부었거나, 붓기는 내려갔지만 아직도 시퍼렇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혹시 알아, 기분이 조금은 풀어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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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1-26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
화요일.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수요일. 강은교, 《벽 속의 편지》
목요일. 도리스 레싱, 《그랜드마더스》
금요일. 데어도어 폰타네, <얽힘 설킴>

호시우행 2024-01-26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독가이시네요. 글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그런데, 궁금한 것 하나 문의해도 될까요? 걸려있는 그림의 화가와 작품명은 뭔가요?

Falstaff 2024-01-26 10:25   좋아요 0 | URL
프로필 사진 말씀이군요. 삽화입니다. 삽화를 그린 화백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물은 셰익스피어에 몇 번 등장하는 배불뚝이 술꾼 폴스타프랍니다.
별거 없는 독후감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호시우행 2024-01-2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psyche 2024-01-2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몬트레이에 실제로 캐너리 로가 있어요. 예전에는 통조림 공장이 있던 길이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 옷 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늘어서 있죠. 예전에 이곳에 갔다가 이 책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까먹었었는데 심지어 재미있다니 꼭 읽어야겠네요.

Falstaff 2024-01-26 19:2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ㅎㅎㅎ 하여간 재미난 책입니다. 기회가 닿아서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

Jeremy 2024-01-26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속편인 <Sweet Thursday> 도 마지막 순간까지
스타인벡 특유의 유머가 작렬합니다.
<Cannery Row> 를 즐기셨다면 속편 <Sweet Thursday> 뿐 아니라
<Tortilla Flat>도 추천합니다.
읽는 내내 ㅋㅋ 웃음이 계속 배어나오는 책입니다.

National Steinbeck Center, 스타인벡 기념관이 미국 캘리포니아
Salinas시에 있는데 그의 전 작품들을 정말 잘 정리해놓았고
그 중에서도 <Cannery Row> Section 은 책을 읽은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숨겨진 웃음의 순간들로 꾸며져 있답니다.
제 <프로필 이미지>도 그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Falstaff 2024-01-26 19:26   좋아요 1 | URL
옙. <달콤한 목요일>은 보관함에 넣어 놓았습니다. 스타인벡의 작품을 널리 섭렵하셨군요. 해주신 말씀 잊지 않고 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황니가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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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여름, 오지게 덥기 바로 전인 7월 중순 지날 즈음해서 <마지막 연인>을 인상깊게 읽었다. 그러나 다른 찬쉐의 작품을 고르게 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중국의 선봉파 기수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견지하는 몇 안 되는 작가라서 이이의 아방가르드 적인 포스트모던 스타일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선뜻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그리하여 당시엔 <마지막 연인> 말고는 딱 한 편 밖에 없는 찬쉐의 단행본 <오향거리>를 보관하기만 했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읽겠지 싶어서. 시간은 흐르고 찬쉐를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망설이기를 벌써 반 년, 앗차, 도서관 개가실 신규 구입 도서 진열 선반에 이이의 데뷔작인 <황니거리> 즉 <황니가黃泥街>가 놓여있던 거였다. 그래 두꺼비가 파리 채듯 널름 주워들었다. 이게 읽은 내력이다. ‘주식회사 열린책들’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엽기적 책표지를 뒤로 한 채. <황니가> 이전에 단편소설 <더러운 물 위의 비누방울>을 발표했다고 책 앞날개에 쓰여 있기는 하지만 보통 <황니거리>를 데뷔작으로 치는 거 같다. 1987년 출간작품. 이후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헛갈리는 출판정보에 의하면) 다음 장편소설 <오향거리>를 읽기 위해서 독자는 30년을 기다려야 했다. 문학동네는 <오향거리>를 찬쉐가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광고하기도 하는데 독자 입장에선 그게 문제가 아니라, 30년? 그러면 2017년. <오향거리>를 읽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라고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아니, 그랬으면 좋을 뻔했다.

  찬쉐를 일컬어 중국의 카프카니, 중국의 보르헤스니 하는 건 과장된 수사는 아니다. 특히 카프카 분위기를 <황니가>에서 많이 느낄 수 있다. 황량한 디스토피아 지대. 세기는 끝나가고 도시 변두리 거리는 시간이 감에 따라 땅 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쇠락을 넘어 멸실을 향해 그저 흘러가 버리는 광경. 콕 집어서 <성>을 둘러싼 마을, 물론 총동원과 문화혁명을 거친 20세기 중국이라서 <성>의 촌락보다 훨씬 살풍경한 도시 변두리 지역이지만 하여간 <성>과 그 일대를 떠올리게 되더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성>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스너의 두 작품, <저항의 멜랑콜리>와 <사탄 탱고>와 더 비슷하다. 두 작품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카프카를 확장하여 (카프카가 모색한)한 개인을 넘어 도시/마을 전체의 집단적 히스테리에 초점과 관심을 두었다. 첸쉬의 경우도 황니거리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들 모두의 점진적 몰락과 쇠퇴, 멸절에 렌즈를 맞추어 나간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에서는 몇 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추위가 도시를 급습하거나(저항의 멜랑콜리), 새벽의 보헤미아 벌판을 가로질러 이미 무너져내린 교회당에서 들릴 리 없는 종소리가 이 가을의 첫번째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들려온다(사탄 탱고). <황니가>는 거의 결말 부분에 접어들기 전까지 잿빛 속에 약간의 노란색을 띄는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진다. 한 때, 예전에 황니거리엔 검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하늘에서 죽어버린 물고기가 쏟아진 적도 있고, 그것을 주워 소금을 뿌린 다음 말려 구워 먹다가 독창이 나 죽은 사람의 수가 부지기수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은 아직도 계속된다. 카프카는 다음으로 하고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연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떠오를 만큼 비슷한 분위기. 이 정도면 아실 듯.

  아마추어의 의견이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독자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작가는 전혀 모른 척할 것 같다. 찬쉐도 자신이 어떤 의도로 작품을 썼는지 굳이 독자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작품은 완전히 메타포에 입각에 쓰였으며 마치 측량사가 그렇게 한 번의 면담을 바랐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는 성주처럼, 독자는 <황니가>가 끝날 때까지 왕쯔광(王子光)이라 불리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존재, 이상으로 표현할 길이 없는 존재. 사람인지 아닌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물건(이라 해두자). 아주 오래 전에 왔었다고 하는 일종의 암시이자 광상(光狀: 빛을 내는 형상) 또는 한 덩이의 불. 다만 찬쉐가 카프카, 크러스너호르커이와 다른 점은 동구사람들이 말이 거의 없어서 대신 사변적이고 서술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반면, 단 한 번도 정막 속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최고 번식력을 자랑하는 국가의 작가답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말이 많다. 말은 정말 많지만, 그들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다. 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대신 각자는 각자의 말을 할 뿐. 다변 속의 고립.


  황니黃泥. 누런진흙. 황니가라면 길거리가 진흙으로 된 변두리 마을이다. 도시보다 더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더 없이 쇠락한 지역. 거리가 시작하는 곳에 S기계공장이 하나 있어 거리의 랜드마크로 기능한다. 황니가의 독생자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 마음 속에 유일하게 거리의 가치를 높여주는 쇠구슬 생산공장. 5~6백명에 달하는 직원의 대부분은 황니가 사람들이고 이들은 매일 아침 회사에서 내주는 소형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러나 좁고 긴 거리. 지금은 너무 낡고 쇠락해서 지저분하고 더럽기 짝이 없다. 거리 사람들은 원래 모든 쓰레기를 강가에다 그냥 흘려 버렸으나, 언젠가 한 번은 동네 아낙이 집의 연탄재를 어느 음식점 앞에 쏟아버렸다. 며칠 후, 연탄재가 쌓인 것을 본 이웃 사람이 또 거기다 연탄재를 부었으며, 어느 새 연탄재는 자그마한 동산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동네 사람들은 집안의 모든 음식 쓰레기와 심지어 요강까지 그곳에 비우기 시작해 썩는 냄새와 이 냄새를 맡고 새카맣게 몰려든 곤충과 그것들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 즉 구더기들이 창궐하더니 거리엔 부스럼과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유난히 높은 암환자 비율로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때를 맞추어 하늘에선 항상 검은 먼지와 더러운 불순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 거리 옆의 화장장은 늘 바쁘게 가동해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공기 정화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사람을 태운 그을음, 검댕이 굴뚝을 빠져나오자마자 기압골에 눌려 황니거리 상공을 포위해 밤새 진주했던 거였다. 미친개와 고양이, 미친개가 물어 죽인 닭과 돼지의 시체들 역시 광견병의 위협 때문에 먹지 못하고 쓰레기 산에다 내다 버리고, 이 와중에 밤새 몰래 낳은 영아도 거적대기에 둘둘 말려 던져버리는 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검은 비가 내리고 하늘은 항상 검은 그을음과 먼지, 그리고 더러운 불순물이 떨어져 내려, 작품 속에 일관되게 높고 높은 습도를 유지해 온갖 곳에 곰팡이가 피고, 대가리와 몸통이 초록색인 파리, 모기가 들끓었으며, 어이없이 크게 자라는 시궁쥐들이 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거리. 띠 풀과 나무로 올린 지붕도 습기와 곰팡이와 세월을 이기지 못해 한 블록 씩 쏟아져 내리고, 집 전체가 일정한 속도로 땅 속으로 가라앉는 곳에서 사람들은 햇빛 속에서 기이하고 왕성한 생기를 토해낼 왕쯔광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쯔광, 빛의 형상 또는 한 덩이의 불이 그러나, 사람이 죽기 직전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한 순간임을 모른 채. 그리하여 거리 사람들은 종이에 표어를 써서 벽에 붙인다.

  “어둠은 지나갔다. 곧 빛이 왕림할 것이다!”

  거의 망해버린 집단농장에서 “보란 듯이 잘 살게 될 것이다. 마음껏 즐기며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주민들의 옆구리를 쿡쿡 지르는 <사탄 탱고>의 주인공들을 어떻게 연상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쉽지 않다. 황니거리. 검은 비가 내리는 진흙 거리. 아스팔트 포장을 생각할 수 없는 멸실의 거리가 징그럽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능한 만큼 오염시키고, 감염되고, 배설하고, 썩어 문드러지는 광경.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짐승들의 헐벗고 병들고, 죽어 함부로 버려졌거나 부패해가는 시신의 상태. 하염없이 쏟아지는 검은 비 때문에 재래식 화장실에서 넘쳐 마당과 부엌과 거실과 거리로 함부로 흘러가는 모습.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일을 보는 중국의 재래식 화장실 전경.  감염된 사람의 몸 속에서 억지로 잡아 빼거나 스스로 몸 밖으로 나오는 생명체의 덩어리. 이런 모든 것을 감수해야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수도물에서 며칠동안 비린내가 난 이유가 물을 끌어오는 입수 펌프 앞에 사람의 시체가 둥둥 뜬 채 파이프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물을 먹어도 아무도 즉각적인 몸의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파리의 대가리와 날개를 떼고 요리해 먹는 것도 비위좋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일부(또는 많은) 독자는 이런 장면을 질색하지만 전향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중국 선봉파의 진짜 기수 찬쉐의 데뷔작품이다. 이이는 이런 허들을 데뷔작에 은닉해 놓았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더했다. 진짜 읽으실 분은 각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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