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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화? 한자어로 繁花? 화려하게 핀 꽃, 만발한 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1952년 12월생. 중국에서 이 시절에 지식분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팔자 참. 아니나 다를까, 열여섯 살이던 1969년에 헤이룽장성, 저 멀고 먼 북쪽의 꽝꽝 언 땅인 흑룡강성으로 하방을 당해 1976년에 상하이로 돌아왔다. 무려 7년 동안 어린 청소년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이 책 <번화>는 2012년에 발표해서 마오둔 문학상, 시내암 상, 루쉰 문화상 등을 탔단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상하이를 무대로 변호사 후성(滬生), 대 아프리카 잡화 무역업을 하는 후성의 친구 아바오(阿寶), 아바오가 열 살 때 영화표를 사러 줄 섰다가 친하게 된 샤오마오(少馬)의 이야기다. 두 권 1,156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이지만 쇤네는 189페이지까지 읽고 때려 치웠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로 접어들지 않았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확 몰입하게 하는 스토리 라인도 없고, 읽고 읽고 죽자사자 읽어온 연애 이야기도 진짜 별 거 없고, 전혀 야하지도 않으며, 젊은이들의 인생관이 심금을 울릴 것 같지도 않은 데다가, 옛 중국문학의 서술기법이라고 하는 화본話本 형식의 문장이, 적어도 189 페이지까지 읽었으면 이젠 적응할 만한데도, 도무지 그렇지가 않았다.

  화본 형식이 뭐냐고? <삼국지 연의>나 <수호전>이나 뭐 하여간 중국 고전 소설에서 사용하던 거라는데 갑식이가 말했다, 점period 찍고, 중얼중얼. 을순이가 물었다. 이렇고 저러냐? 이런 게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걸 1,156 페이지까지 읽는 건 그만두고 2백 페이지도 못 가서 근육경련에 마그네슘 부족은 분명 아닌데 눈꺼풀까지 발발 떨리는 현상이 일어났으니, 만수무강은 못하더라도 괜히 서둘러 숟가락 놓을 일은 없어야겠기에 눈물을 머금고(진짜야?) 접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거라서 웬만하면 죽자사자 읽는 것이 예의범절이요 에티켓인 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어쩌냐, 당장 죽겠는 걸.

  내가 사는 도시 시민들에게 미안한 바가 작지 않다. 뭐 다 인생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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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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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자기가 인간으로 현현한 신인줄 아는 자만 덩어리 잡놈. 여자: 가스라이팅 당하는 걸 즐기면서 마지막 천사의 이름을 갖고 싶어하는 악마. 초대받은 여자: 눈에 뵈는 게 없는 소시오패스. 복장 여러번 터질 각오하시고 읽기 바람. 보부아르 이름 값으로 별 하나 엣다 먹어라, 더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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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30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사실은 2별 보부아르 이별인가요?! ㅋㅋㅋㅋㅋ <레 망다랭>이 더 좋은가 봅니다?!

Falstaff 2024-03-30 21:26   좋아요 1 | URL
넵! 망다렝이 훨씬 좋았습니다! 이 작품 다음에 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요, <초대받은 여자>가 분명히 실존주의 작품이라는 거. ㅋㅋㅋㅋ
 
서자 거장의 클래식 1
바이셴융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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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별은 과하고. 4별은 아쉽다. 퀴어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소, 사랑, 인물 등 새삼스러운 건 없다. 동양적 가족 관계, 특히 부자간 갈등이 절묘한 MSG 역할을 해 시간 내 읽어볼 만함. 제목은 원래대로 <얼孼자>가 좋았을 텐데.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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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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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가강변을 배경으로 한 <고요한 돈강>의 여성형 소설. 당신은 놀랍게도 소설 속 ˝영상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식 옛 이야기. 7년간 탑 속에 갇힌 공주 이야기의 템포 루바토 식 변주. 세계 곳곳에서 좋은 작품은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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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09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리뷰도 그렇지만 여간해서 좋은 점수를 주시지않는 팔님께서 이리 쓰시면 최고의 찬사 아닙니까? 소설 속 영상의 미학이라니! 거기에 21세기식 옛 이야기라니 똭 제 스탈 같습니다. 이 작품 기억하겠슴다.^^

Falstaff 2024-04-10 07:39   좋아요 1 | URL
이 책 정말 괜찮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듯. ㅋㅋ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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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중국의 근대극에 관한 금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차오위의 <뇌우雷雨>를 공연한 것이 신호였다고 한다. 1994년엔 한국, 중국, 일본의 연극인들이 뜻을 맞추어 베세토연극제를 창설해 제1회 베세토연극제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이후 삼국이 돌아가며 주최를 해 오늘에 이른다고. 베세토는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영문표기에서 앞자리 알파벳 두 개를 따와 BeSeTo라고 지었단다. 이후 2018년에 한중연극교류협회가 출범하여 매년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올리면서 출판사 연극과인간을 통하여 “중국현대희곡총서”와 “중국전통희곡총서”를 간행하는데, 내 경우엔 중국현대희곡총서를 통해 중국 희곡의 현대성과 발전상을 보고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국의 현대희곡을 읽으며 든 생각이, 어찌 그동안 우리나라 현대 희곡은 찾아 읽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과 후회와 미안함이었다. 그래 우리나라 현대희곡도 검색해 읽기 시작한 바이며, 이왕 읽기 시작한 희곡이라 영미와 프랑스부터 시작해 독일, 스페인 등의 희곡에도 집중하게 된 내력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 즉시 희곡을 출간하려는 노력을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결과 기껏 찾아 읽어본 희곡집의 수준이, 연극인 및 극작가가 이 잡문을 읽으면 화를 내겠지만, 중국의 현대희곡만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그나마 희곡 작품집도 활발히 나오는 것 같아 (물량의 증가와 비례해) 좋은 작품도 자주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희곡을 자주 읽은 보람이 있어서 허지핑의 <천하제일루>를 읽어 내려가며 단박에 떠오른 건 중국 근현대문학을 거론할 때 전혀 뒤로 밀리지 않는 라오서의 희곡 <찻집>이었다. <찻집>은 1부가 청나라 말기, 2부는 아직 청이 망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군벌이 민중들을 피폐하게 만들던 시기, 3부는 국민당과 일제의 중일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찻집의 쇠락을 그리고 있었다.

  <천하제일루>는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전문점 “복취덕”이 어렵게 명맥을 잇다가 총지배인을 새로이 고용해 경영일습을 맡겨 발전을 꾀했으나 창업자의 무능한 아들들에 의하여 다시 큰 곤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시대는 쑨원의 신해혁명에 의하여 청나라가 문을 닫고, 위안스카이는 이 와중에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다 실패하고 곧 죽어버린 시절. 1910년대 후반이다. 중국은 이제 주인없는 무주공산이 되어 각지에서 군벌이 득세해 위세를 떨치고 있던 때, 장쉰(張勳)이란 작자가 나타나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다시 황위에 올려 놓는다. 청나라가 멸망한 줄 알았던 베이징 시민들은 얼른 시장에 나가 가발을 사 급하게 변발을 해 붙이고 다니고 옛 벼슬아치들이 잠깐 위세를 떨치던 시기가 1막 1장. 1837년에 산동성 사투리를 쓰는 당씨 젊은이가 도로 옆에 돌 두 개에 도마 하나 얹고 생닭과 오리를 파는 노점을 연 것으로 시작해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장사를 잘 했고, 한푼 두푼 모아 작은 가게를 하나 사서 백년 기업을 마련했다. 세월은 계속 흘러 어느덧 20세기에 접어들었고, 조상들의 성실과 정직을 물려받은 당덕원이 늙도록 가업을 번성시켜왔다.

  당덕원 사장이 똑소리 나게 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자식 농사. 맏아들 당무창은 가업 잇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경극하는 무리를 좇아다니며 가산을 아낌없이 뿌려가면서 자기도 극단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둘째 아들 당무성 역시 오리 식당이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하여 온갖 권법, 술법 단련에만 여념이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하고, 형/동생이 쓸어가는 돈보다 결코 적지 않게 자신도 낭비하고자 하는 욕심. 어떤 집안인지 딱 감이 잡히시지? 세상이 하 수상한데 아들들은 정신 못 차려 속이 상한 아버지 당덕원 사장은 궁리 끝에 현명해 보이는 옆 가게 점원 출신 노맹실을 스카우트해 지금 개념으로 전문경영인의 자리에 앉히고 가게 경영의 전권을 맡긴다. 그리고 나서 잔뜩 속이 상한 노인은 절명해버리는 1막 1장.

  이런 와중에 장쉰에 의한 복벽 기간이 끝나 잠깐 봄바람이 불었던 청 시대의 옛 고관들은 다시 영락해버린다. 세상은 혼돈 자체이며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 전문경영인 노맹실은 금, 은덩이를 자루에 넣어 보관할 정도로 가게를 성장시켰으며, 기세를 등에 업고 여러 금융업자의 돈을 빌어 복취덕을 확장해 크게 키웠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경영인으로 가게의 일 전반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기가 20세기 초반이라 월급쟁이 사장은 월급을 주는 가게의 진짜 주인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여전히 경극단을 쫓아다니는 맏아들은 극단원들을 비롯해 자신과 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리 요리 한 두 마리 정도 선심을 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노맹실에게 큰 돈을 요구한다. 이걸 알고 있는 둘째 당무성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얼른 쫓아와 자기도 돈이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하고, 세상이 답답하게 된 노맹실은 돈이 없다 버티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금은 덩어리를 자루에 담아 보관한다는 말을 들어 당장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아들들. 끝까지 돈 주기를 거부하자 완력으로 돈자루를 나꿔채지만 자루가 튿어지면서 자루 속에 든 금, 은이 아니라, 그 속에선 황토가 푸르륵 쏟아지고 만다. 노맹실은 이렇게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과시하며 저리로 많은 돈을 빌려 가게를 크게 확장하고, 씀씀이가 큰 고객들도 왕창 확보하여 나날이 크게 발전할 기틀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2막에 들면 복취덕은 확실하게 베이징의 최고 오리 요리점이다. 속칭 베이징덕의 대표 음식점. 이미 둘째 아들 당무성은 다른 도시에 분점을 차리고 영업 중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당무성은 여전히 가게 경영은 나몰라라 하고 권법에만 관심을 쏟아 장사가 시들해지고 있던 중이다. 당장 베이징으로 달려온 당무성은 형 당무창과 뜻을 함께 해서, 어떻게 일개 고용인인 노맹실이 고향에 큰 땅을 살 수 있었는지, 돈을 무슨 수로 그리 많이 모을 수 있었는지 가자미 눈을 하고 따진다. 벌써 몇 십 년을 총지배인으로 일했으니 그동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만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건만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의하면 도저히 땅을 사거나 돈을 모을 수 없었을 테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니 이제 사달이 나는 일만 남았다. 당연히 무슨 사달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극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세상은 다시 변해 이제 베이징엔 중국인 알기를 처마밭 애벌레 쯤으로 아는 백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낮에 중국인의 뺨을 갈길 수 있는 시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국일 것은 분명한데 어떤 식으로?


  중국인이 읽었더라면 내가 느낀 감상보다 훨씬 좋았을 듯하다. 특히 중국 근현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청말의 사회적 혼돈과 당시 세태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실제로 등장하는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은 실제로 있는 베이징덕 음식점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고, 오리구이를 하는 방식, 베이징의 시설물, 거리, 복장, 인물과 사건 등 읽으면서 쉼 없이 각주를 내려다봐야 했고, 각주의 양도 만만하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흥미로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오서의 <찻집>을 워낙 근사하게 읽어, <찻집>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각 장면마다 당씨 형제들과 총지배인의 갈등 대신 사회적 문제를 조금 더 부각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인터넷 책방 교땡문고, 너24에서는 팔지만 내 단골집 얼라땡에는 없다. 왜 없을까?


  올해 중국 희곡 낭독 공연은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 예술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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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8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얼라땡에선 팔지 않는다니요. 으흠~ 찻집이 그렇게 좋군요.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낭독공연 본적이 없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베세토가 그런 뜻이었군요. 글치않아도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3-08 16:12   좋아요 2 | URL
예. 이 책 좋습니다. 라오서의 <찻집>은 동아시아의 ˝희곡˝ 고전이 아닐까... 싶네요.

얄라알라 2024-03-10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Falstaff님 이 글은 대학교 문학 강의의 구어 버전 같아요^^

한국에서 중국 문학에 대해 보수적이었다는 데도 놀랐고, 그게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었음은 더욱 놀라워요. 그나저나 ˝ BeSeTo˝ 이름 지으신 공무원(???)은 보너스 받으셨으려나요.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쏘옥 들어오게 좋네요.

일본의 백년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식에게 물려주기 여의치 않으면 ‘노맹실‘을 불러오듯 외부인사(?)를 집안으로 들여 가업을 잇는 전통 가졌나보네요. 이래저래 배워가는 게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falstaff님

Falstaff 2024-03-10 17:08   좋아요 1 | URL
그냥 잡문인 걸 이리 친절하게 읽어주시니 고맙고 즐겁기 짝이 없네요. ㅋㅋㅋㅋ
편한 주말 맞으셨기 바랍니다. 저도 여유있게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