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리뷰를 적기엔 어렵지만, 최재천 씨의 글이 참 좋다. 리뷰를 적기 어렵다는 것은 그의 글이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쉬운 말들로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난 번 <통섭의 식탁>도 그렇고 좋은 과학 서적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 책들의 목록을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만 잔뜩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하련다. 작가님이 아시면 좀 서운하실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영장류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어서 그 목록들의 비중이 예상 보다 적을 것임을 미리 써 둔다^^

 

 

 

 

 

 

최재천 교수의 스승님이라신다. 글이 간결하여 읽기에 좋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의 글을 좋아한다면 아마 이 책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선한 내용이다. 식물의 유혹적 행동(?)이 흥미를 돋운다.

 

 

 

 

 

 

 

 

정혜윤PD의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인터뷰이로 소개된 강판권 교수의 책이다. 그 때도 읽고 싶었었는데 이 책에서 또 만나니 더 반가웠다.

 

 

 

1996년 판에는 베르트 횔도 블러의 이름이 더 먼저 나왔는데 2007년 판에는 윌슨 교수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최재천 교수의 영향력일까??^^ 이 장에서 최재천 교수는 신이 나서 개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재천 교수의 개미 책도 읽어보고 싶다.

 

 

 

바로 이 책!

 

 

 

 

 

 

 

이 책에 대해선 <통섭의 식탁>에서도 본 것 같은데(확신은 없지만^^;;) 자꾸 접하니 애정이 생긴다.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야을 두루 갖춘 귀한 과학자라고 칭찬한 김산하 작가가 동생 김한민과 함께 쓴 동물 동화책 시리즈라고 한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동물에 관심을 가져야 할텐데 ㅠㅠ

 

 

 

어린이 과학탐험대 세트리뷰보기

출판
삼성출판사
발매
2005.10.12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구매를 해 볼까 싶어 찾아봤는데 중고 상품 이외에는 없다. 아, 작가님! 조금 더 세심하게 절판 안된 도서를 추천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ㅠㅠ

 

21세기를 피터 드러커는 지식사회라 규정짓고 늘 새로 배워서 쓰고 또 배워서 쓰면서 살게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란다. 멀티 플레이어가 될 필요성이 있겠다. 재주가 메주라 재주를 좀 길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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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비록 표지에 대한 실망감과 아쉬움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해소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기괴하다고 치부하기엔 우리 내면이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아 많은 장면과 많은 글귀들이 가슴에 팍팍 와닿았던 책이다.

 

도대체 해리는 왜 나타난 걸까? 도리언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원망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바질과의 그  화목한 시간을 아무런 생각없이 보낼 수 있었더라면 그의 삶은 순탄을 넘어 소소하게 행복하지 않았을까? 도리언에게만 유독 해리와의 접촉이 파멸로 연결된 까닭은 무엇일까?

 

허영심

 

우리의 내부에 자리한 그 허영심 때문이리라. 허영심이라는 녀석은 사람에 따라 마음 속 너무도 깊은 곳에 있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는 경우에서부터 심장 바로 아래 쪽에 있어 틈만 나면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녀석까지, 어쨌든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 도리언은 바로 심장 바로 아래 쪽에 허영심이 있어 해리가 그저 툭툭 건드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과 머리뿐에 꽉꽉 차 버렸다.

 

감각만큼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없고, 또 영혼만큼 감각을 치유하는 것도 없다는 헨리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 어떤 감각이 어떤 영혼을 치유하고, 또 어떤 영혼이 어떤 감각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부질없는 도리언의 열망은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으며, 허영심으로 가득 찬 그의 영혼은 도리언의 그림을 혐오스럽게 만들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무엇을 치유한다는 말인가? 해리의 이 말에 도리언이 넘어갔다니, 이따위 궤변에 '내가 언제나 젊고 이 그림이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이라고 빌어버리다니!

 

해리의 말에 반박할 궤변을 하나 펼치자면, 우리에게 감각과 영혼은 모두 균일한 양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그 둘의 비율이 반반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의 영혼은 그에 비해 나약할 것이고, 영혼이 굳은 사람은 어쩌면 감각이 많이 무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영혼이 단단한 바질은 그동안 해리를 꾸준히 만나왔지만 별다른 변화를 가질 수 없었지만 평범했던 도리언은 해리를 만난 후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흥미로운 사내에게 해리는 감각의 크기를 더 크게 불어넣는 말을 지속적으로 한다. 마치 과학자가 자신의 실험쥐에게 약을 조금씩 양을 더해가며 투여하듯이 말이다.

 

맨 처음 일그러진 자신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 그에겐 두려움과 혐오감 외에 쾌감이 분명 존재했다. 자신의 흘려뱉은 소원을 이뤄준 신을 원망하기도 했겠지만 자신은 결코 늙지도 추해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뻤을 것이다. 자신에게 도취된 사람은 남의 불행이 보이지 않는 법, 자신 때문에 목숨을 끊은 시빌 베인은 이미 그의 안중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찬양해 줄 쾌락적인 것, 그 외엔 없었다.

 

바질에게 초상화를 보여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찬양하지 않는 단 한 사람, 바질 홀워드에 대한 복수심은 그가 가진 허영심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아야하면서도 절대 놓을 수 없는 감각에 대한 집착은 이렇게 난폭함과 비열함으로 표출되곤 한다. 우리는 무엇을 놓고 살아야하는 걸까, 지금 내가 절대 놓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떠오를 때 우리는 두려워진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책의 많은 문장들이 평범한 나의 마음을 움찔하게 한다. 내 안에도 어딘가 숨겨져 있을 허영심이 고개를 들까봐 경계하게 된다. 이 기괴한 이야기는 감각에 대한 기괴한 집착 때문에 처절하게 파멸한 도리언을 통해 그것을 경계하도록 나 자신을 만들어버린다. 극단적 과정과 결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의 허영심을 스스로 단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소 억울하기도 하지만 책의 한 구절인 다음을 부정할 수 없어 얼른 단속모드로 입장을 정해야겠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살고, 그러한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다만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단 한 번의 과실에 대해 그 대가를 여러 번 치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사람은 몇 번이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간과의 거래에서 운명의 여신은 절대로 계산을 마감하는 일이 없었다. (308-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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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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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에서 벼리를 처음 알게 되었으니 지금 벼리는 중고등학생 쯤 되지 않았을까? 벼리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웠다. 이 책은 그렇게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책을 잘 읽는 방법에 대한 궁금증은 책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가져봤을 것이고, 아마 거기에 대한 답은 대부분 유보한 상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정민 선생님은 고전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책을 잘 읽는 방법을 하나 하나 짚어준다. 사실 독서법에 대한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건 어른을 대상으로 하건 많이 나와있는 편이지만 전적으로 한국적인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책 이야기>에서는 '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중국, 이집트, 서양의 책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통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도록 하고 있다. 다짜고짜 독서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고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짚어주는 것이 좋았다. 어떤 것의 방법론을 익히기 전에 그것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의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나온 '침자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책을 소중히 다루었는지 느껴졌다. 정민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옛날엔 책이 귀해서 못 읽고 요즘은 책이 흔해서 못 읽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을 좀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는 독자들이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 할 독서의 올바른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익히 독서 방법 중 정독, 통독, 발췌독 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떻게 읽는 것이 바람직한지 궁금해한다. 선생님은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통독할 책은 통독해야 한다고 운을 떼며 시작하지만 결국 가르침을 받다보니 쉽지 않은 그러나 아주 튼튼한 책읽기의 방법을 익히게 된다. 정민 선생님을 정민 작가님이라고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언가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 성급하게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어린 독자들을 잘 다독이며 따라오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어려운 고전을 예시로 들 수도 있건만 '여우누이'나 '만화 삼국지'로 말문을 열어 독자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가르침에 따르게 한다. 선생님도 아주 좋은 선생님이다.
 
다양한 그러나 그 중 골라하는 방법으로서의 다양함이 아니라 하나 하나 모두 따라야할 다양한 방법들이 지루하지 않게 제시된다. 박제가나 이덕무, 박지원, 이익, 정약용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인들의 예화부터 양연이나 허조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의 독서법까지 아주 많은 예화들이 실려있다. 물론 내용에 걸맞는 그림자료들도 흥미를 끈다.
 
마음이 급한 독자는 이 쯤에서 사실 빨리 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읽을 수가 있는데 그것을 말리고 싶다. 많은 독서법을 선생님이 알려주시지만 사실, 그것들 중 우리가 골라 실천해야 할 것이 아니라 모두 체화할 필요가 있는만큼 천천히 읽어 이 책부터 이 책에 나타난 방법대로 읽으면 좋겠다. 여러 번 읽고, 옮겨 적어도 보고, 작은책으로 만들어보면서 말이다.
 
<책 아닌 것이 없다>는 책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책이 곧 세상이라는 말로도 해석이 되는데, 삶을 살 듯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에서 손을 놓지 않듯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상을 넓게 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많은 옛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의미있게 담겨 있는 이 책이 초등학생 어린이가 있는 집에 한 권씩 꽂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찍부터 책읽는 튼튼한 방법을 습관 들이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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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 이 리뷰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내용을 두 번 게재합니다.알라딘 서재에서는 리뷰 쓰기로 상품을 두 가지 이상 지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풍자이다. 인간이 곧 돼지이고, 돼지가 곧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 그리고 후이넘(말)의 격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야만스러운 야후(인간)의 모습 모두 아주 제대로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돼지와 같고 말보다 못하다는데 그보다 심한 모욕은 없다만 읽는 내내 그렇지 않다고 애써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 문학동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느낌이 있는 책

     

우선, 이 책의 표지가 조지오웰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비가 내리는 배경은 돼지의 위치(물리적, 사회적)를 도드라지게 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지오웰급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풍향계의 약자의 배치이다. NEWS로 묘하게 틀어놓은 방향! 아!! 볼수록 매력있다. 돼지 주제에 뉴스라니! 하! 감탄스럽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요. ---그런데도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소.---." (13쪽)

 

그렇다. 인간은 알을 낳는 것도 아니고 우유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가죽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은 취하기만 할 뿐 다른 동물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끔 사랑을 제공한다는 이도 있으나 그것 역시 제공이라고 하기엔 이득이 너무 크다. 개인적으로 모든 동물은 평등해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메이저 영감을 통해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는 것, 그거 누가 정한걸까? 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인간을 모든 동물의 우위에 스스로 올려놓고 산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콧방귀를 낄 노릇이군.

 

왼쪽의 저 돼지들의 혁명과 달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것은 돼지나 말이 아닌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했던 한 남자가 16년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인간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썼다는 책. 인간의 입에서 소인국, 거인국, 후이넘의 나라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 듣는 말보다 강했다.  

 

타락한 인간과 반대편에 있는 탁월한 네발짐승, 즉 후이넘들의 미덕이 내 눈을 밝혀 주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 결과, 인간의 행동과 욕망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명예를 내세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379쪽)

 

탐욕스럽고, 야비하고, 자신의 이성을 나쁜 일에만 쓰고자 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걸리버는 거울을 보는 순간 가장 치욕스럽다. 자신이 야후(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종족 본성에 역함을 느끼게되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걸까? 수많은 다툼들과 범죄들이 역겹다는 건 작가가 살았던 그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무튼 상이 변했다. 혁명을 통해 농장은 돼지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에겐 자유가 있었고 풍족함과 여유로움,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듯 했다.이름도 <동물 농장>. 동물이 주인이 된 농장이다.

 

일곱 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자 또는 날개를 가진 자는 누구나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결국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가지게 되면 돼지도 두 발로 걷게 하고 침대에서 자게 하며, 더 평등한 몇몇 동물이 되게 한다.

 

힘없고 선량한 동물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지만 결국, 그들은 점점 굶주리고, 속고, 버려진다. 그들이 노동한 대가는 더 평등한 몇몇 동물들이 취하게 되고, 그들이 그리워한 자유 역시 그 돼지들의 차지이다. 풍향계 위에 올라가서 새로운 소식이라며 거드름을 피우고 사기를 치는 모습에 분통해 하지만 이미 한참을 속은 뒤이다. 이름도 <매너 농장>으로 바뀌지 않는가.

 

벤저민이 믿었던 단 한 가지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이란 언제나처럼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항목만이 유효할 뿐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이여, 권력을 차지한 채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라며 우리를 현혹하는 돼지들을 조심할 지어다.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더럽게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리버가 처음부터 인간에 대해 역겨움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릴리풋(소인국)이나 브로브당나그(거인국), 라퓨타 등에 갔을 때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넓은 이해를 하는 좀더 나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영국인으로서의 품위도 가지고 있었고 자긍심도 있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나 태도가 있었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삶도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다.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걸리버는 동시에 당시로서도 무척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 세상에 태어나도 전혀 구닥다리같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도 매우 파격적이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해 보답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고달픈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자녀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사랑의 결합을 할 때는 자녀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75쪽)

 

이런 그이기에 후이넘의 나라에 가서도 그들을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인 사람은 아마 후이넘은 후이넘이고 야후는 야후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걸리버가 서술한 후이넘과 야후의 극단적인 대비는 독자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야후와 같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란 말이야? 지금 우리는 그 야후에서 좀더 사기꾼 기질이 보태어진 악질 야후이고? 어떻게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거참, 인간의 본성이란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두 작품은 모두 성추설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은 추하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기에 한 발 더 얹어서 가뜩이나 추한 본성에 이성이 자리하면서 더 추해졌다고 말한다. 정말, 이렇게 자기혐오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비참하다.

  그러니 그 추함이 사라진 아름다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덕을 쌓은 거란 말인가? 내가 후이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 농장>의 선량한 동물들만큼은 가치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니 제발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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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초판본 완역판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제대로 된 풍자이다. 인간이 곧 돼지이고, 돼지가 곧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 그리고 후이넘(말)의 격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야만스러운 야후(인간)의 모습 모두 아주 제대로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돼지와 같고 말보다 못하다는데 그보다 심한 모욕은 없다만 읽는 내내 그렇지 않다고 애써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 문학동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느낌이 있는 책

     

우선, 이 책의 표지가 조지오웰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비가 내리는 배경은 돼지의 위치(물리적, 사회적)를 도드라지게 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지오웰급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풍향계의 약자의 배치이다. NEWS로 묘하게 틀어놓은 방향! 아!! 볼수록 매력있다. 돼지 주제에 뉴스라니! 하! 감탄스럽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요. ---그런데도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소.---." (13쪽)

 

그렇다. 인간은 알을 낳는 것도 아니고 우유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가죽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은 취하기만 할 뿐 다른 동물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끔 사랑을 제공한다는 이도 있으나 그것 역시 제공이라고 하기엔 이득이 너무 크다. 개인적으로 모든 동물은 평등해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메이저 영감을 통해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는 것, 그거 누가 정한걸까? 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인간을 모든 동물의 우위에 스스로 올려놓고 산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콧방귀를 낄 노릇이군.

 

왼쪽의 저 돼지들의 혁명과 달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것은 돼지나 말이 아닌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했던 한 남자가 16년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인간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썼다는 책. 인간의 입에서 소인국, 거인국, 후이넘의 나라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 듣는 말보다 강했다.  

 

타락한 인간과 반대편에 있는 탁월한 네발짐승, 즉 후이넘들의 미덕이 내 눈을 밝혀 주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 결과, 인간의 행동과 욕망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명예를 내세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379쪽)

 

탐욕스럽고, 야비하고, 자신의 이성을 나쁜 일에만 쓰고자 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걸리버는 거울을 보는 순간 가장 치욕스럽다. 자신이 야후(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종족 본성에 역함을 느끼게되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걸까? 수많은 다툼들과 범죄들이 역겹다는 건 작가가 살았던 그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무튼 상이 변했다. 혁명을 통해 농장은 돼지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에겐 자유가 있었고 풍족함과 여유로움,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듯 했다.이름도 <동물 농장>. 동물이 주인이 된 농장이다.

 

일곱 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자 또는 날개를 가진 자는 누구나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결국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가지게 되면 돼지도 두 발로 걷게 하고 침대에서 자게 하며, 더 평등한 몇몇 동물이 되게 한다.

 

힘없고 선량한 동물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지만 결국, 그들은 점점 굶주리고, 속고, 버려진다. 그들이 노동한 대가는 더 평등한 몇몇 동물들이 취하게 되고, 그들이 그리워한 자유 역시 그 돼지들의 차지이다. 풍향계 위에 올라가서 새로운 소식이라며 거드름을 피우고 사기를 치는 모습에 분통해 하지만 이미 한참을 속은 뒤이다. 이름도 <매너 농장>으로 바뀌지 않는가.

 

벤저민이 믿었던 단 한 가지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이란 언제나처럼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항목만이 유효할 뿐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이여, 권력을 차지한 채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라며 우리를 현혹하는 돼지들을 조심할 지어다.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더럽게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리버가 처음부터 인간에 대해 역겨움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릴리풋(소인국)이나 브로브당나그(거인국), 라퓨타 등에 갔을 때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넓은 이해를 하는 좀더 나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영국인으로서의 품위도 가지고 있었고 자긍심도 있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나 태도가 있었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삶도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다.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걸리버는 동시에 당시로서도 무척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 세상에 태어나도 전혀 구닥다리같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도 매우 파격적이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해 보답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고달픈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자녀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사랑의 결합을 할 때는 자녀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75쪽)

 

이런 그이기에 후이넘의 나라에 가서도 그들을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인 사람은 아마 후이넘은 후이넘이고 야후는 야후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걸리버가 서술한 후이넘과 야후의 극단적인 대비는 독자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야후와 같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란 말이야? 지금 우리는 그 야후에서 좀더 사기꾼 기질이 보태어진 악질 야후이고? 어떻게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거참, 인간의 본성이란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두 작품은 모두 성추설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은 추하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기에 한 발 더 얹어서 가뜩이나 추한 본성에 이성이 자리하면서 더 추해졌다고 말한다. 정말, 이렇게 자기혐오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비참하다.

  그러니 그 추함이 사라진 아름다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덕을 쌓은 거란 말인가? 내가 후이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 농장>의 선량한 동물들만큼은 가치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니 제발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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