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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년기다
박수현 지음 / 바람길 / 2020년 6월
평점 :
요즘 통증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만 40세가 되는 순간부터 근육과 호흡기 등 몸에 통증이 급격하게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 원인 그 전까지 내가 내 몸에 대해 방치에 가까운 소홀을 했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아프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하나같이 그런다. "40 넘으면 그래. 그래도 넌 좀 늦게 왔다." 이게 늦게 온 거라니? 하지만 너무 심하게 아픈 걸? 그나마 노안은 안 와서 책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통증과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는 중이다. 노안이 오기 전에 좀 건강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 외에 곧 내게 '갱년기'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갱년기는 그저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일 뿐 그것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가 없다. 엄마가 한때 심하게 짜증을 부렸었는데 이제 와서 그때가 갱년기였구나 짐작할 뿐, 주변에 갱년기를 선언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가 없다. 남들은 모르게,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끙끙 앓고 지나가는 게 갱년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 이 책 소식을 들었다.
책에 대한 가장 짧은 느낌은 요즘 나오는 '아무튼 시리즈'의 느낌이었다.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아무튼, 갱년기'랄까? 그 시리즈에 보면 별의 별것이 다 소재가 되던데 왜 자신의 갱년기를 이렇게 진솔하게 쓸 생각을 못했을까? 그 특별함이 바로 이 책의 저자에게 있는 게 아닐까? 별딱지 하나를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갱년기 이야기'가 '너의 갱년기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우리의 갱년기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그 생각을 우리는 생각조차 못한 채 그 시간을 보내기에 급급할 뿐이라 글로 쓸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갱년기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의 판단은 무척 옳았다.
이 책의 끝에 보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터널의 시작부터 걸어야 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보다 먼저 터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갱년기가 어떤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눈치를 채야 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것은 준비 없이 닥치는 것보단 준비를 해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감이나 감정 변화, 생리 불순 등 다양한 증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이 책에는 인터뷰를 통해 사레들이 실려있다. ) 그 증상들이 내 몸에 나타날 때 재빠르게 눈치 채는 것부터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첫번째 순서이다. 책에 따르면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넌 늙어가고 있어. 이제 너의 몸을 좀 아껴줘." 그동안 방치했던 내 몸에 대한 내 호르몬의 경고일 터이다. 일단 터널의 시작에 섰다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터널은 통과해야 하고, 통과의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능동적인가에 따라 그 여정이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왕관을 쓰고 봉을 든 당당한 걸음의 여인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그 터널을 지나가는 것, 그것은 호르몬제, 보조식품, 운동, 체중감량 등 많은 도움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에 임하는 본인의 의지가 아닐까? 내 몸을 아끼고야 말겠다는.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강수지가 갱년기를 겪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 김국진은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미안했다고 한다. 부부애가 느껴지는 훈훈한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강수지의 태도가 나는 더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아보였는데 그 여정을 현명하게 지나온 느낌이랄까 꽤나 편안해 보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 가수가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이고, 감정과 호르몬의 전쟁 사이에서 잘 극복한 느낌이었다. 책에서 말한 '누군가의 끈'은 아마 김국진 씨였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감정과 호르몬에 대하여 차분히 말해주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나는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나에게서 멀어지는 훈련'같다. "내가 왜 이래?"하며 감정이나 호르몬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내 감정과 호르몬의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말이다.
이 책은 전문서적이 아니다. 앞서 말했든 아무튼 시리즈처럼 자신의 갱년기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은 에세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전문적 지식을 담은 전문 서적과 건강 서적보다 갱년기를 이해하기에는 더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10년 내로 겪게 될 사람으로서, 갱년기를 멀게만 보지 않고 건강하게 보내는 법을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말이다. 우울증처럼 갱년기도 질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일터에서 곤란함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병휴직으로도 포함시키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라면 그것을 좀더 양지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그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 갱년기를 앞둔 사람은 이해의 마음으로, 갱년기를 겪는 사람은 공감의 마음으로, 갱년기를 지낸 사람은 응원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