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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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자미 드 레모! 라는 인사말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이 책은 지난 1월 프랑스문학 출판사 레모에서 모집한 북클럽에서 내가 고른 첫번째 책이다. 그러니까 나는 1월부터 지금까지 다른 책들을 고르는 것도 미루고 이 책도 읽다 덮다 반복하다 4개월을 끌어왔다는 말이다. 이것은 책의 잘못이 아니고, 순전히 나의 문제이다. 올해는 유난히 책을 읽는 속도도 양도 예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바쁜 탓인지 게으른 탓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올해는 그럴 모양이다.....하지만, 잊을만 하면 보내주는 레모 출판사의 대표이자 이 책의 번역가인 윤석헌 대표의 메일이 쌓여갈수록 이 책은 내 마음에서 점점 떠올라 드디어 이 달 초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실 내용도 두께도 읽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라 집중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몇 번을 되돌려 다시 읽기 시작하여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그런 덕분인지 이 책이 주는 여운만큼은 길게 남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게으르게 읽는 것도 독서의 괜찮은 한 방법이 아닐까? 지금 읽는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앞부분을 몇 번을 갔다오는지....


파트릭 모디아노는 널리 알려지다시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고, 나 역시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할 무렵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샀던 기억이 있다. 읽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그냥 산 것까지만 인정하자. 이 책 [기억으로 가는 길]은 노년이 된 작가 보스망스가 슈브뢰즈라는 지명을 듣고 떠오른 50년 전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그 기억 속에서 그는 카미유, 마르틴 헤이워드의 안내로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만나고 그 무리들을 통해 그보다 15년 전인 유년의 기억까지 끌어올리게 되는 오로지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 참 솔직하다. 


이 소설은 작은 디테일들이(작다고 하기엔 사건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범상치 않지만) 불러오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년 시절에 보았던 어떤 장면,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아 잊고 지냈던 어떤 기억에 대한.  만약 보스망스가 유년으로부터 15년이 지난 때에 앞서 말한 무리들(책에서는 '얼간이들'이라고 표현한다.)을 만나지 않았다면, 유년의 기억은 그저 내면 깊숙이 자리할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또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그 무리들 중 한 사람을 스치지 않았다면, 또 그로부터 15년 후 오퇴유를 가 보지 않았다면, 또 지금 대화 중에 슈브뢰즈를 거론하지 않았다면 기억은 드러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반복되는 되새김질에 우리의 기억은 망각이라는 거대한 담요를 걷어내고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다 결국은 한 순간 모든 것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좀 무섭기도 하다. 


근래 들어 자주 생각하기를, 나는 여기저기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많아서 뇌가 알아서 효율성을 추구하느라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기억 자체를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것에는 굉장히 세세하게 기억을 하여 주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전혀 기억을 못해서 나만 단둘이 만나는 망각의 신이 따로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무려 65년 전의 기억이라니, 내 기준에서는 가능한 이야기같지 않은데 그런 이야기도 불현듯 끌어내는 매개가 있다면 모조리 끌려나올 수 있다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봐도 무섭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였더라?


학교 다닐 때 교과 내용을 엄청 열심히 듣는 아이는 아니었지만(주로 자느라) 신독이나 평상심이나 전진교 같이 꽂히는 개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다. 듣자마자 내적 친밀감을 느꼈는데, 그 이후론 망각이라는 말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이라는 곡을 무한 반복 청취한 적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망각하고 있었던 그 망각이란 녀석이 생각났다. 망각의 깊은 늪에서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 그 기억에 디테일(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이 더해지면서 실체가 드러나는데 그 과정이 비록 유쾌하지 않아도 시작된 후에는 다시 망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마지막엔 싫든 좋든 복원된 기억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과정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다면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도 같다.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기억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가 인생의 한 고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아, 나에게 만약 그런 기억이 있다면 아무 것에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복원되지 말기를, 기억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싹 지워버리고 싶다. '나를 잊지 말아요.'가 아니라 '나를 기억하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예전부터 기억되기 보단 기억되지 않기를 원했기에 보스망스가 보물을 찾았건 못 찾았건 상관없이 난 그가 전혀 부럽지 않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천착해온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제목의 소설도 좋지만, 대놓고 [기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이 소설을 파트릭모디아노의 첫 소설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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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디너 분 중 이 책들 모두 다 읽기 전이신 분께 제가 택배 보내드릴게요. 착불 아님.

단, 스티커 밑줄 안 떼고 그냥 갑니다....
사진별로 1분씩 해도 좋고 한 분이 다 하셔도 좋고 원하시는 책만 하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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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04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윰님 멋잔 책 나눔 박수로 응원합니다.짝짝짝~~~~

그렇게혜윰 2026-01-04 13:56   좋아요 0 | URL
참여도 하셔야죠 ㅎㅎㅎㅎㅎㅎㅎ
 

책나눔 글을 없앤 이유는
일단 알라디너들에게 낡은 책을 주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착불 드림을 하니 착불비가 넘 비싸단 생각도 들어서예요.

당근으로 이웃에게 나눔했어요^^

북플엔 좀 요즘 책으로 조만간 나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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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에서 나온 [건륭 ]을 읽는다. 글항아리 책은 너무 예쁘다.

최근 비전문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비전문적 중국사 책을 썼다. 거기에도 건륭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혹여 실수가 있을까 이 책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건륭제는 중드를 보면 늘 미남으로 나온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 미남의 로맨스가 주내용이다보니 암투극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내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 이후의 국가위기를 맞은 가경제가 너무 안쓰러웠다. 태자 22년에 자질도 좋은 황제였는데 본인이 수습하기엔 너무 늦은 청나라였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문장을 보고 무척 안도했고 공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편 전쟁의 씨앗은 건륭제 때 심어졌다.(429쪽)

사진은 역대 건륭제 배우들.
누가 젤 잘 생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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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03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중국을 만든 청나라 강건세대의 주역중 한명이지요.그런데 웃긴것은 현재 중국인민들은 청나라 건륭제가 한족을 정복하 이민족의 황제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데 역사 교육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지요.

그렇게혜윰 2026-01-03 00:58   좋아요 0 | URL
모르는 척이 아니라 모른다고요? 띠용!!!

카스피 2026-01-04 00:53   좋아요 0 | URL
실제 우리나라 남한산성을 불법으로 시청한 중국인들이 왜 청나라 황제와 장수들이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상한 언어(영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만주어를 사용)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국 영화계를 비난했는데 나름 역사를 아는 중국인들이 사실을 말해주자 자신의 역사도 모르는 중국인들이 멘붕에 빠졌다고 하네요ㅋㅋㅋ
실제 중국 드라마에서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경우 배우들이 만주어가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기에 청나라 주요인물(왕족과 만주 팔기같은 만주족)이 한족이 아닌 사실을 모른다고 합니다.

2026-01-03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26-01-03 11:33   좋아요 0 | URL
동북공정 생각하면 ㅠㅠ
 

최근 왼쪽 가슴을 중심으로 통증이 있어 고민이 많다. 처음엔 폼롤러 운동을 할 때 너무 과했나 의심했고 그 다음은 생리주기를 의심했는데 단순 근육통이나 주기적 통증과는 압통이 심해서 소홀했던 유방외과를 다시 가야겠다고 하는 참이다. 그런데 전화를 안 받아 예약이 안 되는 중 ㅠㅠ

그런데 며칠 전부턴 쉬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게 이상했다. 몇년에 한번씩 갑상선 주변 염증 반응으로 그럴 때가 있는데 그정도로 가쁜 건 아니지만 답답하고 두근거리니 자다가도 깬다. 그러다 이 책이 떠올랐다.

맥박을 재 보니 고르게 정상범위에 있지만 심장내과를 일단 예약했다. 네이버 예약이 전화예약보다 편하구나!

일단 유방외과와 심장내과를 다녀온 후 이상없으면 소화기내과도 가봐야겠다. 이참에 싹 확인하자!

책에 나온 것처럼 이젠 취미와 지병을 함께 말할 날이 다가오고 있나보다.

신간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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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1-01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엇 검사 빨리 받으시길 바랍니다. 별일 없기를 ㅜㅜ

그렇게혜윰 2026-01-02 21:36   좋아요 0 | URL
오늘 일단 심장내과 갔는데 정상이래요. 패치 부착하는 것만 3일 동안 체크하고나면 일단 심장 내과는 끝내고 다음 코스로.....

카스피 2026-01-01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사 빨리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저 역시도 심장이 아닌 오른쪽 흉통이 너무 심해서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어요.전 큰병일까봐 병원가기 무서워서 안가고 버티고 있는데 참 어리석은 짓이지만 다행이 요즘은 좀 나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요.아프면 병원에 꼭 가야되는데 큰 병일까 너무 무섭긴 하네요ㅜ.ㅜ
혱움님 새해 목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혜윰 2026-01-02 21:37   좋아요 0 | URL
왼쪽에 심장 위장 폐 다 있어서 ㅠㅠ 어디서 보니까 한달에 한 번 정도다 이러면 넘어가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이러면 병원가라고 하더라구요. 체크해보시고 늦지 않게 다녀오세여. 저도 병원 참 싫어하는데 ㅎㅎㅎ

그레이스 2026-01-01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시길요.
아무일 없을거예요~!

그렇게혜윰 2026-01-02 21:38   좋아요 1 | URL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아플 준비가 안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