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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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나도 한 번 사 보았고 이번에 책세상 판을 읽으며 그 책의 역자 노트도 읽고 야외에서 읽을 때에는 그 책으로도 읽었다. 책세상 판은 새움 출판사의 역자인 이정서가 주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다. 나는 불어를 전혀 모르고, 작품을 문장 하나하나까지 애정을 가지며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두 번역본이 둘 다 흥미롭게 잘 읽혔다.

 

 

이정서가 비판한 김화영 번역의 책은 민음사 판이고 그 이후에 책세상에서 일러스트 판으로 출간된 것이라 이미 김화영 번역은 또 한 차례 수정이 된 터인 모양이다. 물론 시기상 이정서의 번역본과는 무관하게 출간되었으리라. 그렇다면 한 개인의 번역은 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부던히 수정에 수정을 하는 일을 하게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서의 행위가 불필요했다거나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자 노트를 보면 굳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 점을 꼬투리 잡는 듯 보이는 부분도 있고 일리가 있어 비교하며 읽어보아 이정서의 번역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도 몇 번이고 수정을 하게 될 터 이렇게 일이 커진 망극함을 어찌할 지 지켜보는 내가 다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77쪽)

 

가장 큰 논란이 된 부분은 위의 내용이다. 뫼르소가 속눈썹을 쑤시는 듯함이 결국 첫번째 총을 쏜 계기가 되니 뭐 해석의 개별화라치고 심리적(법적으로는 안되겠지만) 정당방위로 보는 것도 가능할 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당방위인가 아닌가 왜 네 발을 더 쐈나하는 문제보다는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뫼르소의 태도에 집중하게 된다. 아마 이정서 논란이 아니었다면 굳이 거기까지 신경 안쓰고 읽었을 것 같은데 책을 나의 흐름대로 읽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원망감이 불쑥 생긴다.

 

책세상 판을 읽으며 새움판의 역자노트를 보다보면 그가 민음사판을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가 같은 역자임에도 해당이 안되는 곳이 있어 대충 읽어도 역자노트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많이 되는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책세상의 [이방인]은 일러스트가 정말 흥미를 배가 시킨다.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남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여 사형 선고를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그것이 정당해 보이는데도) 어떤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뫼르소를 보며 어쩌면 그는 죽음을 살기 위해 생을 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순간 그 어떤 제스처라도 취하게 되기에 그의 태도는 의문인 동시에 경외감이 들고, 일면 놀랍다가도 질투마저 난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산다는 건 뭐지? 이런 원론적인 질문마저. 답은 물론 없다. 머리만 복잡해졌지만 살면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번역의 논란과 무관하게 나는 어쩌면 그가 실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태양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태양이 아니다. 그가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러니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며,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라는 말인가. 그저 내가 있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할 뿐이다. 그리하여 내가 살고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

 

[이방인]의 문장 하나 하나가 하나의 섬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고 단 한 번의 독서로 이 책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지 싶다. 다만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살짝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인]이라는 제목은 내키지 않는다는 정도로만. 행여 누군가 [일러스트 이방인]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투썸! 

 

 

* 덧붙임 : 새삼 글을 쓴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그림을 가지곤 아무도 딴지를 안 거니 말이다!!! 누군가 [이방인]을 글 없이 일러스트로만 번역을 해야할라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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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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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본 저자의 책이 있었다. 평소엔 일본 저자의 책이라고는 시오노나나미의 역사물과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추리소설만 읽은 나로서는 일본 인문학 책이 낯설었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책의 주제에 굉장히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또한 얼마 전 매우 인상적으로 읽은 [잘라리 이 기도하는 손을]의 저자 이타루 사사키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 있는 터였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읽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의 저자 하세가와 히로시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함에도 읽기 전부터 많이 높아져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끄덕끄덕! 덕분에 일본 인문학서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과 기대가 높아졌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학계와 절연하고 집에서 책 읽고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는 헤겔 전문가라고 한다. '절연'이라는 말에서 그의 곤조가 느껴지지 않는가? 고약한 성질일 것 같다만 독자로서 보자면 이런 성질의 작가들의 글이 매력적인 경우가 많고 역시나 이 책에서도 저자의 매력은 글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흔히 책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칭찬과 감탄 일색인 경우가 많다. 이 책처럼 추천하고픈 책을 저자가 골라놓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기획 형식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하세가와 히로시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고른 책에 대하여 좋은 점은 과감히 감탄하고 그렇지 못한 점은 사정없이 내친다.

 

[팡세]는 파스칼이 자기가 살던 시대와 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빚어내는 부조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날카롭고 깊이 있게 분석한 지성의 책이다. 파스칼의 신앙심을 공유하지 않는 자에게도 그 씩씩하고 굳센 지성의 말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언제 읽든, 어디를 읽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팡세]이다. (160-161쪽)

 

내게 [논어]는 경의를 강요하는 성가신 책이다.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주제넘은 책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명구나 금언을 만나도 설교투가 흠집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78쪽)

 

하세가와 히로시의 책 소개를 읽다보면 그가 굉장히 냉철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좋게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감정적으로나 낭만적으로 그 책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아주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이 책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이 책이 왜 좋은지 정리를 해 준다. 확인사살 같은 것이다. 그 확인사살을 통해 독자는 그야 말로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2부 첫머리의 세 장을 일컫는다.) 세 장이 없었다면 [죽음의 집의 기록]은 다소 깊이가 떨어지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휴머니즘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세 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집의 기록]은 정녕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것이다. (144쪽)

 

 

이 말을 읽기 전까지 유보되었던 내 입장은 이 몇 줄의 글을 읽고 '읽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바뀐다. 공교롭게도 다섯 개의 주제에 각 세 권의 책이 소개된 중에 읽고 싶다고 별을 표시한 책이 각 주제별로 한 권의 책씩이었다. 총 다섯 권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다섯 권의 책만 읽게 되어도 얼마나 유의미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 권씩 정하고 별을 표시한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하세가와 히로시의 보이지 않는 권함이 내게 침투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 목록 안에 [논어]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전까지 [논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가 [논어]의 설교투를 마뜩찮아 했듯이 책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다른 책에도 비판의 내용이 있고 때로는 그 비판이 해당 책을 읽고 싶지 않게도하고, 때로는 그 비판 때문에 해당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에게 이렇게 휘둘려도 되나 싶을만큼 그의 글이 단호하다. 어쩌면 이것이 권위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제외하곤 그리 책을 권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다섯 권의 책을 찾아보게 된다.

 

[리어 왕], [향연], [죽음의 집의 기록], [팡세], [색채에 관하여]를 당장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을 이용하여 찾아보았고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서 [향연]과 [리어 왕]을 마주했을 때(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말도 그제야 귀에 걸렸을 때) 읽고 싶어지는 욕구가 더 강해졌다. 책은 누군가의 매력적인 글만으로도 불쑥 내게 다가오고, 그 다가옴과 동시에 다발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우연이 그책을 읽게 만든다.  뒤 책날개를 보니 다음 출간 예정작도 일본 저자의 책이고 제목보다도 부제가 나를 더 유혹한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소크라테스에서 샌델까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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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신간 페이퍼는 관심이 가거나 살 예정이거나 갖고 싶다거나 그런, 엄밀히 말하면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면(그 페이퍼는 대체로 나를 위한, 아이쇼핑과 같은 그런 종류의 페이퍼였다면) 이번에 소개할 신간들은 최근에 읽었거나 지금 읽고 있는 신간이라할 수 있겠다.

 

1.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문학동네 임프린트 교유서가의 야심만만 첫 책이다. 사실 하세가와 히로시가 누구인지는 잘 몰랐고 허세가 있는 나는 '철학'이니 '명저'니 하는 말에 약하다. 그런 나의 성향을 제대로 간파한 책이고, 그 책은 좋아하는 언니 S에게 선물받았다. 지금 스무 쪽 가량 남겨둔 상태인데, 우선 허세에 비해 독해력이 떨어지는 나이건만 구성이 일목요연하고 작가의 문체가 배배 꼬인 곳도 없이 시원시원하여 잘 읽혔다. 추후에 관련 페이퍼나 리뷰를 쓸 예정이다만 나의 허세와 지적 결핍을 동시에 채워주는 그리고 더불어 나의 장바구니도 함께 채워주는 책이다.  

 

 

2. [행복이], 김초혜

   나는 김초혜 시인을 한 책에서 남편이신 조정래 소설가의 연애 편지로 처음 알았다. 그후 강화도 육필문학관에서 육필을 접했고 이렇게 책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이 책은 할머니 김초혜가 손주를 기르는 이야기를 쓴 책으로 아직 나는 읽기 전이고 친정 엄마를 먼저 읽게 하였다. 아무래도 손주를 다섯 살까지 키우시다 내가 육아를 전담하게 된 요즘 일이년 박탈감과 배신감으로 정체성 조차 잃어버린 친정엄마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보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야 하건만 그게 잘 안된다. 딸들은 다 나쁘다ㅠㅠ

 

 이 책은 실물이 정말 예쁘다.

 

 

3. [하루키 스타일], 진희정

 

 

 신간의 범위가 갑자기 확 늘어진다. 2013년 9월에 출간된 책인데 도서관에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도서관 신간이다. 사실 저자의 전작들의 제목만 보아도 내 스타일이 아님이 분명한데 요즘 하루키 씨에게 무척 호기심이 많은 나로선 이 책을 이끌리듯 집어들었고 순식간에 읽었다. '하루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표지 디자인도 그렇게 문체도 그렇고 하루키에 대한 책으로는 손색이 없을 듯 싶다. 오죽하면 저자의 [손석희 스타일]이라는 책도 오늘 빌려볼 참일까?

 

 

 

그 외에 아직 읽지 못했지만 사거나 선물받는 등 득한 신간들을 소개하자면,

 

 

도정일 산문집. 말해 뭐하겠는가?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듣고나니 이 산문집이 더더욱 궁금하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다. 늘 곁에 있으니 도리에 늦게 읽게 된다. 빌린 책은 빨리도 읽두만.

 

 

 

 

 

난 니콜라가 참 좋다. 요즘 이벤트로 책갈피 3종 세트도 준다는데 참 탐난다. 얼마 전 구입한 [쌍뻬의 어린 시절]과 어쩜 이리도 우연히 잘 만났는지.... 표지들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읽고 싶어진다. 하루키 씨는 그럼 지금 당장 읽으라고 하겠지?^^

 

 

 

 

 

5월엔 지난 달 많이 사 둔 책들을 읽을 계획이다. 6월엔 국제도서전과 파주어린이책잔치가 있으니 굳이 사지 않으려 노력할 수고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물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걸 안다만 일단 말은 그렇게 해 둔다.

 

* 서울 국제 도서전 http://www.sibf.or.kr/

* 파주 어린이책잔치 http://www.pajubfc.org/

 

소박하게 개최되고 수익금의 일부가 좋은 일에 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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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까망 씨! 비룡소의 그림동화 196
데이비드 위즈너 글.그림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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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집의 귀염둥이일 듯한 까망씨, 주인 아주머니의 이런 저런 장난감에도 심드렁한 것을 보니 누릴 것을 많이 누려온 고양이가틀림없다. 표지만 보더라도 까망씨의 저 몽롱한 눈빛 외에는 알록달록 화사하기도 하다. 이쯤 되면 까망씨를 놀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떻게 까망씨의 약을 올려줄까? 칼데콧 수상작가인 데이비드 위즈너는 이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칼데콧 상 명예상을 수상하였다. 특유의 다양한 컷과 글 없는(여기선 조금 있지만.)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보다 좀더 역동적이라는 점이 새로웠지만 데이비드 위즈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일 것이다. 까망씨가 골탕 먹는게 이상하게 난 좋았다. 마치 거대한 권력을 약올리고 탈출한 느낌이랄까? 좀 삐딱한가?

 

 

 

 

 

장난감 우주선을 고쳐서 까망씨로부터 탈출하려는 이들이 외계인들이다 보니 자연히 외계어가 자주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을 읽지 못하니 당연히 상상으로 채우게 된다. 아이와 여러 번 읽다보니 그 말들이 매번 바뀌기도 하거니와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림책을 사진찍어 종이를 붙여 외계말 번역(?)을 해보게 했었는데 다음에는 책에다 포스트잇을 붙여서 읽을 때마다 몇 몇 장면을 대사 꾸미기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비룡소에서 제공하는 독후활동지를 잘 활용하는 편인데 이 책은 과연 어떻게 깊이 읽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며칠 전 엄마들과 어떤 책을 살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데이비드 위즈너의 책들이 거론되었었다. 그 전에 분명 읽었었는데 눈여겨 보고 있지는 않은 터였다. 또 얼마 전에는 칼데콧 수상작품 목록을 정리하는데 그의 이름이 보여 좀더 친근해졌었고 까망씨가 떠올랐다. 둔하게도 이 책을 받고도 이게 [시간 상자]의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이라는 연결 고리를 퍼뜩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만나게 되니 또, 그의 작품이 얼마간 다양해진 것을 느끼게 된 터라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그의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우연이 세 번 계속되면 인연이라는데, 까망씨를 매개로 좋은 인연이 되어 기쁘다.

 

골탕먹는 까망씨는 '톰과 제리'의 톰처럼 약자에게 당했지만 톰에게 느껴지는 측은함이 없다. 아마  까망씨가 새 장난감인 우주선 안의 외계인들의 탈출을 당하게 될 때에도 나의 통쾌함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 통쾌함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작은 장난감 속의 외계인들과 작은 곤충들이 힘을 합쳐 무기력한 까망씨에게 한방을 먹이고 유유히 웃으며 떠나는 그런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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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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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반란'이라는 말도 낯설고, 데이비드 하비라는 한 사회학자도 낯설고, 그가 서문을 할애한 르페브르도 낯설며 그가 책에서 내내 이야기하는 '도시권'도 낯설다. 모든 것이 낯설게 시작한 책이었다. 이런 나의 낯설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헤아린 듯 1장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제목으로 도시권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여 준다. 다행히 데이비드 하비의 글은 굉장히 정리가 잘 된 글이었고 도시권에 대한 기본지식 전혀 없는 내게도 쏙쏙 이해가 되어 공감을 이끌어냈다.

 

 

아마 데이비드 하비는 마지막 장에 짧게 할애했지만 굉장히 감정적으로 흥분하며 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계기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격앙된 그 감정의 글을 아마 제일 먼저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다행이지만 다시 읽는다면 그 장을 먼저 읽는 것도 몰입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세계적인 월가 시위(우리에겐 이 말이 더 익숙하다.)를 보고 미국 경제나 불평등의 문제를 살짝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저 스쳐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는데 그 안에는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아주 중요한 물음이 담겨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그러게 내가 사는 도시는 누구의 것이더라? 문득 내가 사는 도시가 낯설어 지는 것이다.

 

 

도시는 자본주의의 장이고, 부동산 개발의 장이고, 정치의 장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각각 다른 종류의 장인 도시는 한 부류의 집단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바로 상위 1%의 부를 가진 이들. 그들이 돈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손이 되는 것이 현재의 도시 그리고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씁쓸했다. 하지만 씁쓸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도시를 하나의 공유재로서 우리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우리에게 되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반자본주의 투쟁이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무시무시한 전문용어를 들이대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므로 살짝 하비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반인 스타일로 그저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다는 선에서 생각해도 될 것이다. 다만 이런 움직임은 개인적인 움직임이 되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으며 집단적 권리로서 도시 생활권자 및 도시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주체적인 집단으로 꾸려져야 하기에 하비는 이러한 점을 강조한다.

 

 

약탈과 교활함이 내재된 도시 재개발의 모습의 예 중에 '서울'도 자랑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든 예에는 1980-90년대이지만 그 내용을 보자면 2014년으로 바꾸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에도 도시에 대한 권리는 몇 안되는 정치 경제 엘리트의 것이었듯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은 씁쓸하다.

1980-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높아져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현재 고지대는 온통 고층건물로 뒤덮여 있어 과거 야만적인 재개발 과정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51쪽)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요즘 일반적으로 일컫는 좌파는 아닌 듯 하다. 좌파 디스를 은근히 많이 한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저자 스스로 둘 사이의 차별점을 강조하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이는 좌파의 사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행동을 비난한 측면이 강하다. 수많은 대도시에서 취약계층을 상대로 착취와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자행되는 판국에 도시에서의 혁명을 행하지 않는 점이 불만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도시에서 국가의 많은 부분이 시행되는 만큼 도시에서의 혁명과 투쟁이 주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하비의 주장이며 이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도시에서의 반자본투쟁이 성공한 사례가 있는 만큼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책을 읽다보니 특히 도시 공간이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쪽)는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지난 날 시청 광장의 촛불 시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도시권 사상이 거리에서, 지역 사회에서 형성(13쪽)이라는 점을 살피면 그날의 그 촛불들은 아름다운 몸부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물대포로 무너뜨린 국가가 다시 한 번 부끄럽다.(책에서 보니 물대포 쏘는 나라가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니네 나라도 부끄럽다, 고 추가하여 본다.) 연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든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투쟁이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236쪽) 그 생각에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내딛길 스스로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 본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부의 불평등을 비롯하여 암묵적으로 계급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불평등이 자행되는 공간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함께 잘 살기 위해 존재하지 쎄가 빠지게 고생해서 생판 모르는 네 놈 하나 잘 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자. 내가 사는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자. 이 도시의 냄새가 이상하다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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