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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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오라니를 계속 찾았습니다.

클레어 A. 니볼라(Claire A. Nivola)

미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어린이책 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검은 땅에 핀 초록빛 꿈》, 《나의 아름다운 바다》, 《숲 속으로》, 《엘리자베스》등이 있으며 《오라니》로 2012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11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
2011 혼 북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2011 키르쿠스 리뷰 선정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뒤에 그림책에서는 드물게 작가의 말을 길게 적었는데 이 책이 자신의 고향인 오라니를 그린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던 오라니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작가의 아버지를 위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 내용 꼭꼭!

그 안에 오라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출발한 가족은 지중해 한가운데 사르데냐 섬의 오라니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은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친척들이 있고 수많은 좁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둥지에서 떨어진 새를 발견하기도 하고, 한 노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을의 할머니들은 과자와 초콜릿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친척 아저씨는 가게에 들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어느 집 부엌에 들러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도 한다. 책 속의 글처럼 '마치 마을 전체가 우리 것인 것만 같'다. 그 마을이 바로 아버지의 고향 오라니 마을이다.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지난 주엔 아이를 시골 할아버지댁에 데리고 갔다. 가기 전부터 아이는 집이 낡았다느니 파리랑 모기가 많다느니 하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가서 아빠와 함께 싸이카를 타고 논과 밭을 돌아다니고 한참 있다 돌아오더니 자기는 시골이 정말 좋단다. 산도 가깝고 바람도 시원하고 눈이 시원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자면서 입으 내복을 입은 채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실컷 논 아들을 놀려보았더니 '여긴 시골이라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밭에 가서 따오면 되고 마을 입구의 정자에서 내복입고 떠들고 놀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이 무척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오라니 마을의 사촌들이 '나'에게 묻는다.

"미국은 어때?"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 마음 나도 알 것 같다. 오라니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데에 반해 뉴욕의 사람들은 일행이 아니라면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니까. 요즘은 일행들끼리도 각자의 휴대폰만 보느라 그들마저도 눈

 

 

 

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니 마주한다는 경험 자체가 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귀한 경험이 일상적인 곳이 오라니이다.

 

 

◐ 마음 꼭꼭!

자기만의 오라니가 있을까?

어릴 적 자신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던 오라니를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만 찾고 싶어지는 것은 좁은 골목을 누비며 모두가 서로에게 눈을 맞추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만 해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순수 도시 토박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우리들의 아이들은 명절이 되어 할아버지댁에 가도 또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일 뿐일 때가 많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시골서 나고 도시에서 자라 때가 되면 시골로 향하니 저절로 아이에게 할아버지댁은 시골의 다른 말이 아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그렇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귀한 마음이 든다.

 

공동체가 사라지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썩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따라 우리가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만의 오라니는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가야만 하는 아주 먼 거리의 물리적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어느 지점, 그것을 추억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저기 깊은 곳에 자기만의 오라니를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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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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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땐 윤동주를 떠올리지 못했다, 전혀. 아마 여러 온라인 페이지를 드나들며 주워들은 것 같다, [동주]가 윤동주라는 사실을. 물 속에 둥둥 떠 있는, 출구가 열렸지만 그곳으로 나가려는 어떠한 의지도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저 남자가 윤동주라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좁게는 둘, 넓게는 넷이다. 좁게 말하자면 느즈막이 모국어를 배워 그 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아이누족인 이타츠 푸리 카와 한국인(조선인) 김경식의 글이고, 넓게 말하자면 어린 이타츠 푸리 카인 요코의 목소리와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작가 구효서의 목소리가 있다. 나머지 셋은 작가의 목소리 그 안에 있다는 점에서 사실 구효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각 장의 제목들이다. 저토록 많은 말들을 적었다며 '작가의 말'은 생략 혹은 간략할 만도 하지만 작가는 그마저도 잔뜩 힘을 주어 말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어가 가지는 힘, 언어로 인한 정체성의 완성에 대한 소설이다.

 

마을의 수호신당에서 양부모가 주워다기른 아이 요코, 양어머니와 요코에게 잔인한 양아버지와 그에게 비굴하고 무력한 양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온 요코는 잔망스럽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만큼 사악한 구석이 있었고 가엾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만큼 처참한 아이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주가 죽기 전까지의 일이다. 어쩌면 동주의 죽음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그녀이지만 그의 죽음이 일본에 대한 저항이 아닌 시인의 언어를 말살하는 데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아는 순간부터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시를 능지처참하는데 어찌 시인이 참멸을 면하겠느냐. 감히 시인의 손으로 제 시를 훼손케 하다니, 극악하고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육살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다 문득 물었다.

요코가 본래의 이름이더냐?

하도 갑작스러워 나는 딸꾹질하듯 대답했다.

네.

 

요코는 요코가 기억하는 한 자신의 첫 이름이었지만 그것이 본래의 이름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요코는 알았을 터였다.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의 의미는 글자 몇 자의 의미를 훨씬 넘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요코가 자신의 '본래'를 찾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그녀는 이타츠 푸리 카가 되었다.

 

이타츠 푸리 카의 글을 읽고 친구 시게하루의 배신을 겪은 겐타로는 어떻게 김경식이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을 안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같은 일을 하던 시게하루가 어느 날 사라지고 그가 누구보다도 더 걱정이 되었던 겐타로는 그를 찾아 헤맨다. 그 모험의 길이 그를 이타츠 푸리 카에게로 닿게 하였다. 그 사이 돌아온 시게하루에게 왠지 모를 낯섬이 느껴지지만 그 까닭은 이타츠 푸리 카의 번역된 글을 읽고 나서이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3세 겐타로, 그는 이타츠 푸리 카의 윤동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같은 땅에서 살고 같은 언어로 말한다고 하여 결코 시게하루와는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 역사적인 사연이 너무 국가주의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꼭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씁쓸함이 있었다. 결국 겐타로 역시 자신의 '본래'를 찾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윤동주를 사이에 두고 요코와 겐타로가 이타츠 푸리 카와 김경식이 되는 그 과정이 [동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윤동주가 간도(사이의 섬)에서 살았던 경험과 비슷한 종류의 성장기이다. 애시당초 명확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별 고민없이 그저 살면 되겠건만 세상에 그렇게 명확한 일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다만, 불명확한 그것에 괴로워하거나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더 깊이 들어가 자신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 스스로 해설이라고 칭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외부의 자극이든 내부의 발현이든, 두 개 이상의 세계를 궁구하여 스스로를 그 '사이'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해지는 까닭이다. 보통 용기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요코가 동주의 훼손된 시를 찾고 그것을 없애며 아이누어로 자신과 동주에 대한 이야기를 공들여 적어가는 그 마음과 같은 것이다. 실제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바로 그녀의 그 마음 때문이다.

 

저녁마다 나는 글을 적어나갔다. 동주를 불러다 마주 앉히기 위해서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형사에게 끌려갈 때까지. 열다섯에 적어놨던 요코의 서툴고 짧은 글을 재료 삼아 동주를 회상했다. 이따금 그는 방안의 어둠을 타고 내려와, 글 쓰는 나를 지켜보곤 했다.

---

나 이타츠 푸리 카가 보기에 동주의 죽음은 저항인의 저항적 죽음이 아니라, 시인의 시적 죽음이었다. 그의 망설임과 부끄러움은 연약한 이의 성정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가차 없는 것들에 대한 반성이었으며 고요한 자기 응시여다. 굳이 저항이었다고 한대도 그것은 국가나 민족 차원의 것이었다기 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모든 여지없는 것들에 대한 의도적 머뭇거림이었으며 성찰적 저항이었다.

 

작가 구효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 작가로서 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마는 인정받는 문단의 중견 작가가 최근에야 이런 고민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역시 자신의 어느 '사이'에서 많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을 받고 모든 것이 그저 가는대로 내버려두어도 될 것만 같은 사람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멈추어 세운다는 것, 그것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어린 요코와 이타츠 푸리카, 김경식의 글을 각각의 다른 글씨체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윤동주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엮되 하나의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카리스마가 빵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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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집으로 나오기 직전 RHK 출판사에 들렀다가 구입한 책이다. 사실 마이클 코넬리의 명성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선 어떤 책을 고를지 몰랐지만 마침 이 책이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책인데다 판매대에 착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는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샀다. 5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책이었고 그날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상태라 지하철에 서서 가는 입장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실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상하게 좀더 얇은 책이 아닌 가장 두꺼운 이 책을 펼치며 집으로 향했다.

 

표지의 사내 어깨에  땅굴쥐를 그린 문신을 봤지만 그저 지나쳤고(아마 미키마우스가 그려졌다고도 아주 잠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블랙 에코'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크게 궁금해하지 않으며 해리 보슈를 먼저 만났다. 사건 접수가 되는 날인 '5월 20일 화요일'을 제목으로 하는 첫 장의 앞에 쓰인 두 줄의 글귀도 지금에 와서야 다시 확인하였다. 영어로 된 제목을 즉각적으로 한국어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나의 우둔함에 실소가 나왔다.

 

땅굴은 검은 메아리

그 안에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형사 해리 보슈는 베트남 전쟁 당시 땅굴쥐로 활약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5월 20일 화요일 그가 사고를 접수받은 현장인 굴에서 발견된 시신의 주인공인 메도우스는 그와 함께 전쟁에서 땅굴쥐로 참전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의 새 파트너이자 사랑의 감정이 싹튼 FBI의 앨리노어 위시의 죽은 오빠도 베트남 전에 참전하였고, 그들이 함께 수사 중인 메도우스 사건은 1년 전 웨스트랜드 안전금고 도난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사건은 땅굴쥐로 보이는 범인들이 땅속에서 안전금고를 모두 털어간 사건이다. 그야말로 땅굴쥐에 의한, 땅굴쥐를 위한, 땅굴쥐의 사건이다. 범죄를 계획한 것도 땅굴쥐(이 점은 스포일러의 여지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범죄를 실행한 것도 땅굴쥐, 범인을 추적하는 것도 땅굴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건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베트남 전쟁과 땅굴쥐의 존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 내가 전혀 모르는 존재가 이토록 막강한 존재감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감정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뛰어난 살인사건전담 형사인 해리 보슈는 분명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부패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경찰 조직 내에서는 썩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물론 그러하기에 독자인 우리들과는 썩 잘 어울린다. 아직 해리 보슈를 더 만나봐야 알겠지만 그가 탐정이 아닌 형사로서의 위치를 고수하는 면에 알 수 없는 공감을 느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 덕분에 언제나 내사과 등 경찰조직내부에서 감시와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 피곤한 일상이 안되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본인은 그마저도 선택한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하지만 말이다. 아닌가? 하긴 소설 속에서 그들은 해리 보슈의 손바닥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담이 작은 나는 사실 아슬아슬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데 해리 보슈의 사건을 읽다보면 모두가 해리 보슈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홈즈의 사건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긴장감이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좀 싱겁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난 후에 내가 의심했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땐 예상이 적중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홈즈의 사건처럼 도무지 독자가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것보다는 참여의 기쁨이 커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어찌 됐든 처음 만난 해리 보슈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늘 도서관에 갈 일이 있는데 한 권을 빌려올까 싶다. 궁금하다 이 형사, 아니 이 남자가. 어머! 그래 로맨스에도 적극적인 이 형사는 남자였던 게다, 그게 아무래도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 중의 하나는 아닐까? 마침 요즘 출파사에서 온라인 서점에서 아주 파격적인 가격행사를 하던데 몇 권 더 사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안 사실인데 집에 있는 [밤과 낮 사이]라는 작품에도도 마이클 코넬리 작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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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 같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릴케의 그림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지는 몰랐다. 표지도 편집도 맘에 드는 시집이다. 시집을 더 소장하게 만들게 하는 만남이다.

 

릴케의 시 중 전기 작품에 속하는 작품들을 엮은 책으로 후에 후기 작품들을 모은 릴케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시집>에서 느껴지는 풋풋한 감성과 이후 <초기 시집>이라 붙여진 장에서 소개된 시들에게 느껴지는 성숙하고 사색 깊은 느낌이 무척 좋았다. 틈틈히 옮겨 적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교적 색채가 많이 나는 시들은 아무래도 공감이 덜 된다.

 

 

 

 

 

 

오랜만에 시오노 나나미의 에세이를 읽었다. 르네상스 저작집은 에세이가 아닌 게 맞지? 사실 그녀의 글은 대체로 인문서와 에세이 혹은 소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가 분명하다. 최근작인 [십자군 이야기]를 내기 전까지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쓴 글들을 편집자가 엮어 출판을 제안한 책이라고 한다. 물론 이후의 시시콜콜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그녀의 책에 아주 깊게 관여한다.

 

30년간의 글이 한데 모였는데 그녀의 글은 나이를 먹지 않는가 보다. 글간의 시차를 느끼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하는 이라면 애정을 갖고 읽을 만한 책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 번 알아보는 차원에서 읽어보아도 좋겠다.

 

글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먹는 것 역시 사람을 나타낸다. 「생각의 궤적」p122

서평은 평을 당하는 책의 평이 아니라, 평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궤적」p405

 

뜨끔뜨금한 문장들이다.^^;;

 

 

 

 책도 책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아작'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 반가움이라고 해야하나? 아줌마 작가 모임이라는데 그 호칭을 전면에 내세운 그들의 용기는 무모하지 않았다. 문장도 그렇고 끌어당기는 힘도 그렇고 좋은 글이었다.

 제목은 조지 6세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 책에는 조지 6세와 그의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고흐와 테오,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 많은 쌍의 인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위인전을 읽을 나이에 같이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서양 역사 속의 인물 편'이고 '한국 역사 속의 인물 편'도 있다고 하니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선물용으로도 좋겠다.

 

 

 

  경주에 다녀올 때 [우리 아이 첫 경주 여행] 책을 들고 다니며 유용하게 썼던 경험이 있어 강화도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읽어보았다. 강화도를 네 개의 구역을 나누고 여행 계획을 짜주는 것이 좋았다. 책을 보니 내가 주로 1, 4구역 위주로만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엔 2,3 구역으로 다녀보아야겠다. 마침 그 구역에 공룡 전시관도 있다고 하니 한참 공룡에 빠진 아들에게 좋을 듯 싶다. 옥토끼는 너무 비쌌다ㅠㅠ

 

 

 

 

 

박람강기 프로젝트3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 시리즈는 믿을만 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시리즈의 첫 책인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였다. 제목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은지! 게다가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의 여행기라고 하지 않는가. 아차, 내가 그 둘의 작품을 뭘 읽었지??? 그래서 그런가 결론적으로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박람강기 프로젝트를 구입할 때 작가가 내 취향과 맞는지 미리 생각해봐야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트친들이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작가의 이름과 '친구'라는 상투적인 제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는데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낯선 이야기에 이방인의 감정을 느꼈다면 아마 그 소설은 그리 좋은 소설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내게 낯선 모든 것임에도 왠지 나는 키부츠 안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여인일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무척 좋았다.  좀더 여유 있게 읽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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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2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시리즈 이후로는 안 읽어봤는데, 우와~ 이런 멋진 글이....

글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먹는 것 역시 사람을 나타낸다. 「생각의 궤적」p122

서평은 평을 당하는 책의 평이 아니라, 평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궤적」p405

점심에 라면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ㅋㅎㅎㅎ

그렇게혜윰 2014-06-26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괜히 부끄러워지는 구절이었어요. 아마 식탐을 부린 직후에 저것을 읽지 않았나 싶어요 ㅋㅋ 시오노 나나미는 글에 자뻑이 과하긴 하지만 읽을만해요 ㅋㅋ

봄밤 2014-06-2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사이>, 아모스 오즈의 단편?이군요! 그의 단편은 어떨지, 얼른 만나야겠어요.

그렇게혜윰 2014-06-26 09:58   좋아요 0 | URL
딱 꼬집어 어떻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서늘한 깊이가 느껴진달까요? 그런게 좀 있는 것 같아요.
 
[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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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독서 모임에서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읽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남양주이고, 그곳은 현재 다산문화제가 해마다 열리는 다산의 고장이다. 책 초반에 나오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 마을이 바로 다산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능내, 마재, 마현, 능안, 소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다산이 불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때 회원들이 가져온 책에는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과 박석무가 옮긴 [유배지에서 온 편지]가 주를 이루었다. [다산 정약용 평전]은 바로 [유배지에서 온 편지]의 역자 박석무의 책으로, 그의 저서를 살펴보아도 그렇고 명실공히 다산 정약용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당시 모임에서 [유배지에서 온 편지]가 읽기가 썩 쉽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주고받은 편지글이 왜 그럴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읽은 사람들이 그러하다는데 잘못된 말은 아닐 터 그래서 이번에 [다산 정약용 평전]이 출간되었을 때에도 읽기에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평전'이라는 것이 '평'과 '전'을 모두 담아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딱딱하지 않고 쉬이 읽혔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읽은 [이매창 평전]도 읽기에 좋았던 것을 보면 '평전'이라는 이름에 겁먹을 필요가 없는 듯 하다.

 

명실공히 다산 전문가인 박석무의 다산 평전을 읽다보면 기본적으로 '평'이란 대상에게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하긴 애정도 없는 대상을 무슨 이유로 글의 주제로 삼는다는 말인가. 애정을 바탕으로 인물의 업적과 과오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려주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석무가 다산에게 느끼는 애정이 정민 교수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가 보다. [삶을 바꾼 만남]을 읽었을 때에는 사실 다산이 많이 좀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책에서는 고집있고 세심하고 객관적인 그야말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문장가이자 충신인 완벽남으로 그려져 왠지 잘생기기까지 했을 것만 같은 환상을 갖게 한다. 저자가 가지는 힘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새삼스럽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스펙을 가지며 자란 정약용이 뛰어난 문장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가진 성품으로 인해 그 이상의 모든 자질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임금이 원하는 것을 기대하는 그 이상으로 수행해내는 능력, 그것이 정약용이 정조 치하 왕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비결이었다.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보면, 1793년에 화성의 축조를 시작하면서 임금은 10년의 공기를 정하고 그 기간 내에 완성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산의 공법을 바탕으로 거중기, 기중기, 녹로, 활차 등을 이용하는 바람에 2년 9개월 만에 성의 축조가 완공되기에 이르렀다. (155쪽)

 

이렇듯 다산은 문장가이고 나랏일을 하는 행정가일 뿐만이 아니라 건축가이기도 했고, 의원이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명탐정이기도 하였으니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알면 알수록 놀랍고 존경스럽다. 정약용에 대한 놀라운 업적과 행동들은 책에서 많은 부분 중복될 정도로 많이 언급하여 굳이 더 쓸 필요는 없겠다. 더구나 저자는 '정조와 다산, 18년의 만남'이라는 꼭지를 가지고 정조 치하 다산의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수고로움까지 보여주었으니 이는 282쪽에서 290쪽까지의 글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짚어볼 것은 역사적인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써내려간 책의 내용이다. 비교적 시간의 순서에 따른 구성을 하고 있는 이 책을 보고 있자면 다산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가 왜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유배 생활을 했는지를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의 억울함에 속이 상하고 유배 중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한 그를 보면 존경심이 생긱기도 한다. 분명 저자는 다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의 삶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그야말로 '정약용의 모든 것'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정약용에 대하여 한 권을 읽으라고 권한다면 이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그 내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주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시중에 넘쳐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담은 '평'이 우리의 예상을 많이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의 전 생애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비교적 쉬운 언어로 담고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정약용에 대한 단 한 권의 책으로 권할만 하다 하겠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하여 평하고자 했던 부분들이 있어 공감이 더 가기도 한다. 다산의 고장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이로서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권해보아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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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2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에서 이런 좋은 책을 ..... 선정했군요. (엉엉....)
다산에 대해서는 꼭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그 때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어요.

그렇게혜윰 2014-06-24 09:54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에 이 책의 좋은 점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 건 아닌가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제가 표현한 리뷰보다 좋은 책이에요. 조만간 다산유적지도 다시 한 번 가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