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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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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복잡한 사고를 소유함으로써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러한 천재, 그러한 '슈퍼맨'이 히틀러처럼 사악한 인물에게 매수당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159쪽)

 

과연 의식이 있는 철학자가 나치의 당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렇다'라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국가가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것,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점,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의 재산을 자기 주머니에 넣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리는 점 등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권력을 사랑했다. 그 지랄맞은 권력이 이 모든 일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면 과격하게는 그들이 벌레처럼 하찮아 보이는데 그들이 그토록 위대한 철학자이며 위대한 철학 이론을 가진 사람들이라니, 인간 참 하찮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20세기 초반은 암울하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세계적인 일이었을지라도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삶에 대해 뉴스에서 흘려 듣는 그 이외의 것을 내가 어찌 더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히틀러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는데, 어린 나이였기에 희화화된 주인공에 대한 반감은 가졌지만 그것이 얼마나 참혹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몇 년 전에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었고 작년에 [백년의 지혜]를 읽으며 도대체 어떻게 히틀러의 사상과 행동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여졌는가에 대한 의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한 사람의 생각이 그토록 견고한 성처럼 무너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는지 정말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2.

 

[히틀러의 철학자들] 표지 속의 히틀러는 책을 읽고 있다. 그가 읽은 책이 니체와 하이데거의 책이고 읽지 않은 책이 벤야민과 아렌트의 책이라고 되어 있다. 전혀 사실 관계를 모르는 입장에서 니체와 하이데거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히틀러가 읽었다고?라는 놀라움 정도이지 하이데거가 나치당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서로 반대의 입장에 있던 아렌트와 연인 사이었다는 점은 씁쓸해진다. 결국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사랑 때문에 여전히 하이데거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 어디 가서 히틀러의 사상과 행동을 존경한다고 하면 단번에 돌을 맞고 미친 사람 취급 받을 테지만 하이데거를 존경한다고 하면 막연하게나마 대접을 받기도 하는데 도대체 하이데거가 히틀러'의' 철학자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모른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찬양한 범죄자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허용적인가에 대해서는 멀리 독일로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다. 최소한 알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며 미친 놈을 위해 나쁜 짓을 서슴치 않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에필로그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쓴 언어의 맥락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학생들에게 [존재와 시간]을 읽으라고 권하고 슈미트의 저작과 논리학자 프레게의 책을 읽으라고 권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저자는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왜 히틀러의 철학자였던 그들은 여전히 존경받고, 그들의 이론은 살아있는가 말이다. 앞서 이 위대한 학자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씁쓸함이 있다면 이번엔 단호함으로 저자의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 답이 옳다고 믿어본다. 그들의 책을 읽고 배워야 할 사람들은 일반 대학의 철학과 학생이다. 교양 철학 수강생 혹은 철학 서적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이본 셰라트처럼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당시의 참상을 밝혀내기 위한 이들 뿐이라고 믿는다.

 

 수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도살장으로 보내질 때 하이데거가 자신의 고국 독일에서 잠 못 이루는 밤에 시달렸다는 증거는 없다. 히틀러 정권 아래에서 하이데거의 가족은 호의호식했고 그 자신은 많은 영광과 화려한 경력을 누렸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직업적 경험은 크리크와 보임러, 로젠베르크, 슈미트의 직업적 경험에 견줄 만했고 그 점에선 히틀러 치하에서 활동한 수많은 철학자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헌신적인 나치당원이든 기회주의자이든 평범한 철학자이든 탁월한 철학자이든 그들은 모두 부역의 과실을 따먹었다. (189쪽)

 

 

 

3.

한 사람의 허세와 가식, 자아도취와 분노조절장애 및 열등감의 결과물 치고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 전범국가로서 일본의 태도에 비해 독일의 태도는 성숙했다고 믿어왔던 것이 그들도 그저 눈가리고 아웅 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도대체 악행은 저지르는 것에 비해 처벌은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확인하여 씁쓸하다. 얼마 전에 본 기사에 수십 억대 사기를 쳐도 고작 1년 정도의 징역을 사는 것이 우리의 법이라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댓글로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보단 자조 섞인 농을 던지는 글도 많았다.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의 지식 홍보단으로 활동했던 많은 철학자들이 그대로 교수직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태연히 삶을 누렸다는 사실은 실망을 넘어 허탈했다. 히틀러의 세계가 끝이 났다면 그들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야 마당하거늘 어찌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속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한 영역에서 한 사상의 권위자로서 굳건히 여전히 위세를 누리는 하이데거와 슈미트 등의 학자들을 믿을 수는 없다. 그들의 이론을 들먹거리며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이들도 믿을 수 없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본질적인 결론이다. 철학이 윤리학에서 시작되었다는 본질적인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극악한 학자의 학문은 그것이 철학이든 건축학이든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기에 믿을 수가 없다. 최소한 이 책을 읽는 나는 이 책에 거론된 '히틀러의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무너져야 한다. (칸트나 니체가 반유대교적 이론을 펼쳤고 그들의 사상을 히틀러가 추종하고 나치주의에 깊게 적용했다손 치더라도 그들에 대한 판단은 잠정 보류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아마 히틀러는 그들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한 것을 동시대의 철학자들이 용인했다는 것이 더 문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히틀러의 총질은 나치가 패망하면서 멈추었지만 그 때 호사를 누리던 그의 철학자들의 펜질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 중이다. 유대인 철학자들은 히틀러 치하에서 출판이 금지된 이래 책이 출간되지 않는데에 반해 하이데거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는 호칭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이제 그만 그 펜질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4.

이 책을 읽으며 공교롭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많이 떠올렸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문득 문득 이런 저런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스쳐지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사건들을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본 셰라트가 [히틀러와 철학자들]이라는 책을 썼듯이 우리에게도 용기 있는 비평가가 필요하다. 지금 시민단체나 학생단체에서 서명 운동을 하고 용기 있는 미디어에서 사실 규명을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그들이 소수라는 점이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그들의 용기는 다수의 비겁함에 비할 수 없이 값지다. 이 책도 그러하다. 모르면 모르는 채 덮어둘 뻔 했던 이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 주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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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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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서지선

부산에서 태어났고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한 뒤 서울로 올라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의뢰받은 그림을 그려 오면서 늘 마음 한편에서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만든 첫 번째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이 있습니다.

 

첫 작품인 《오늘은 5월 18일》이 너무 강렬했다. 작년 5월 즈음 만난 이 작품은 그날이 될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그날에 관한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는가만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아이들은 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의 전쟁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


◐ 내용 꼭꼭

 비행기를 처음 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1950년 6월 25일은 '나'가 비행기를 처음 본 날이자, 전쟁이 시작된 날이고, 이후 1995년 12월 25일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와 동생,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결코 만날 수 없게 된 이유가 된 날이다. [엄마에게]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기려 박사님의 이야기를 담은 개인적 실화이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을 다루었기에 역사적 실화이기도 하다. 장기려 박사님이 부산으로 데리고 온 둘째 아들이 바로 '나'인데 그 아이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한다.

 

 

다복했던 한 가정, 봉선화꽃 곁에서 행복했던 그 가정이 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만날 수 없이 헤어져 그저 그리워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여 더욱 슬퍼진다.

 

 그날 밤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내지 않고 우셨다.

 

 

엄마와 헤어진 나와 아빠는 부산에 정착하지만 '나'는 엄마가 보고싶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엄마의 만둣국이 떠올라 더욱 엄마가 보고 싶다. 학교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던 노래 '봉선화'를 부르면 엄마가 더 생각난다. 어찌 '나'만 그럴까? 평양에서 그러했듯이 부산에서도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던 아빠,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는 아빠도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온 소포를 받던 그날 밤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못내며 울어야 했던 아빠의 모습은 더욱 보기가 힘들다.

 

 

 

봄은 오고 엄마가 보내주신 봉선화 씨앗은 마당 가득 피웠다. 엄마가 녹음해주신 노래를 듣고 봉선화를 바라보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까?


◐ 마음 꼭꼭!

봄이 왔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고 봄은 왔건만 가족은 만날 수 없었다. 휴전선이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만나자했던 할머니의 말씀은 지켜질 수 없었고 대신 엄마의 마음과 노랫소리가 소포로 왔다. 아마 처음에 그것을 받았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죽여 우는 아빠의 마음을 보면 아다시피 애절하였을 것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하여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그 곁에서 엄마를 추억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산가족의 마음에서 행복은 그들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그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산가족이 아닌 입장에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 보아도 애끓는 그 마음을 문턱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그날의 전쟁은 참담한 것이다. 이미 우리 세대에서도 많이 무뎌진 그 마음이 다음 세대에선 무뎌지다못해 냉정해질까 싶은 걱정이 된다. 지난 책도 그러하고 이번 책도 의미있게 만들어주신 작가님의 앞으로의 작품을 꾸준히 응원하련다.

 

책을 읽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픈 마음에 독후활동지를 만들어보았다. 첨부가 되지 않아 이미지로만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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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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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철학 사상을 읽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그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만 아무리 이해하려 하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선 최근 회의를 느끼고 있다. 국내 철학자 중에서 누군가가 방대한 철학 사상을 맛있게 버무려서 먹기 좋게 요리를 해 주면 좋겠다는 갈증이 있었지만 인문학의 대유행으로 철학서를 빙자한 자기 계발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좋은 책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 서문을 읽으며 기대감을 품었던 것은 일전에 한병철 철학자의 강연이나 탁석산 교수의 강연을 들었을 때 강조하던 어떤 불편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철학서를 가장한 자기 계발서에는 온통 사탕발림과 희망적인 이야기 뿐이라 읽고 나면 영양은 없고 살만 찐 느낌인데 어느 정도 불편함을 인식하는 철학서를 읽고 나면 살은 찌지 않고 영양을 흡수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오랜만에 책을 다 읽고 밑줄 친 부분들을 옮겨적어보았다. 그중 처음 옮겨적은 것이 철학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이 철학하는 이로서 저자의 마음가짐이랄 수도 있어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이정표가 되었다. 물론 이는 내가 동의하고 공감하는 부분이기에 그러하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의 역할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철학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29-30쪽)

 

불안하면 사람은 그른 선택과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제대로 보고 옳게 행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척 당연한 말인데 요즘의 철학서들은 자기 최면이나 합리화, 자기 긍정이 답인양 제시하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읽지 않는 편이 나아 보인다. 서문에서 말한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는 말도 일맥상통해 보이는데 철학 사상들을 외고 그것을 입밖에 과시하는 것은 결코 철학적이지 않다. 철학은 커피처럼 일상의 각성을 요구한다.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박식함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책의 제목처럼 철학자도 하녀도 모두 이해가 가능한 언어들이고 논리이다. 대중적이되 본질적이다. 낮은 곳에서 살피고 소외되고 어두운 곳을 바라보게 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눈 감지 말고 눈 뜨고 보라고, 그리고 그것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동의를 구한다. 철학은 질문을 던지는 학문으로 알고 있다. 다소 저자의 생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지만 그 생각이 나를 각성시키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저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아는 것만을 이야기하기 위해 부딪쳐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학자들의 생각과 다양한 책과 영화에서 얻은 간접 경험 그리고 자신의 직접 경험을 잘 요리하여 내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산지 직송 특산물처럼 고마운 요리이다.

 

좀더 삶에 밀착된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그것은 그저 '발언'의 형태라고 그들은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 이전에도 철학적인 삶의 태도에 관한 좋은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기왕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조목조목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이야기가 베스트 셀러였고,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형제 복지원'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홈에버 파업도 노사관계의 문제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았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차례를 받았다는 것에 뜨악했다. 제시된 많은 사건들이 모두 그러하다. 나는 무엇을 알고는 있었던 것일까? 철학은 박식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 이 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시사 자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문제들을 우리 모두의 현실 사회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저 모르는 척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책들은 아는 '척'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했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이렇게 긴 글을 남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새 책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은 모양이다. 답이 길어진다.

 

개인으로서 모두는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것이 해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품은 채 삶의 어떤 부분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아픔도 많은 순간 외면하고 마치 남의 삶인 듯 그렇게 살아간다. 결코 해결하거나 부딪히려 하지 않고 그저 없는 '척' 한다. 그러다 촉매를 만나면 개인은 회복할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위험하다.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개인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마주하고 고민해야 한다. 용기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좋은 사회의 극단에 있는 사회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주하고 고민해야 한다. 용기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설 것이고 그것이 해결이 된다면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자, '감히' 용기를 내어보자. 아닌 척 하는 이에겐 인정이나 마주보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의 용기가 발휘될 그 시점에 서서 '감히' 알고자 하여 보자.

 

그가 떠올린 계몽된 사람이란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었다. '감히' 따져 묻고 '감히' 알려고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 말이다.

(80쪽 - 여기서 그는 칸트를 일컫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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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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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이클 코넬리를 알자마자 그의 첫 해리 보슈 시리즈인 [블랙 에코]를 읽고는 작가의 작품에 빠진 터여서 얼마 전 몇 권을 사고 늦어지는 배송 사이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콘크리트 블론드]이다. 역자도 후기에서 제목만 보고 '뭐지?'했다지만 나 역시도 이게 콘크리트에 시체를 묻고 화장을 한 수법을 말하는 것일 줄은 몰랐다. 아마 알았다면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리 보슈 형사의 이야기는 일단 집어들면 빠져드는 법! 졸린 눈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이 이야기는 [블랙 에코]에서도 언급되었던 해리 보슈가 좌천 당하게 된 사건인 인형사 사건의 민사 재판에서 시작하고 '콘크리트 블론드' 사건은 그 재판 도중에 벌어진다. 아니 처치는 이미 죽어서 해리 보슈는 재판을 받고 있건만 여전히 인형사와 유사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까닭은 뭐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콘크리트 블론드]의 내용이다.

 

해리 보슈 형사를 창조하면서 애시당초 '인형사' 사건을 첫 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이 사건을 어느 정도 배경으로 깔고 그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다루는 점이 마이클 코넬리를 인정하게 만든다. 아, 이렇게 자신있구나 이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무척 마초적이고 섹시한 탐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해리 보슈가 좀더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그 이유를 이 책의 표지에서 발견하였다.

 

통찰력 없는 스릴러 주인공이야 어디 있겠냐만 해리 보슈의 매력은 '애수'였다. 마초는 마초인데 애수가 있다...이야~~해리 보슈 이 사람!!! 다 가졌네!

 

해리 보슈에 대한 감탄은 이쯤하고 그렇다고 스릴러 소설에서 사건을 시시콜콜 나열할 수도 없고 마이클 코넬리의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로서 필립 말로를 존경하는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ㅋㅋ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제멋대로야.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이 일 마무리되면 나도 사립 탐정이나 해볼까. 필립 말로처럼."  (201쪽)

 

지난 번 작품에서도 필립 말로를 이야기에 담은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서도 그러려나 은근히 기대된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존경심과 그에게 비견해도 손색없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울러 역자가 여러 번 쓴 '더럽게'라는 표현도 맘에 든다. (가령, '보슈는 속으로 허풍도 더럽게 떤다고 생각하곤 했다.'와 같이).

 

해리 보슈의 작품을 모두 읽을 생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읽을 셈이다. [블랙 에코]가 1, [콘크리트 블론드]가 3이니 2였던 [블랙 아이스]를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다음에 읽을 작품이 4인 [라스트 코요테]가 될지 12번인 [에코 파크]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 않을 거다. 애수의 형사 해리 보슈를 떠나 보낼 준비가 난 안되었으니까. 실비아 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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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최후'라는 말에 꽂힌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써도 멋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보루', '최후의 날', '최후의 심판' 등 익숙한 말도 많다. 그런데 '최후의 인간'이라면? 내가 인간인데 이렇게 여럿이 살아있으니 요즘의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미래의 이야기구나.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이다.

 

 

 

 

 

 

 

 

 

 

 

 

작년에 뮤지컬 공연을 하길래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보려 했는데 놓쳤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읽어보고 싶었던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여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 작가로서 어떻게 이런 다소 엽기적인 캐릭터를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궁금증을 넘어 존경심에 가까웠다. 그 작품 하나려니 생각했는디 [최후의 인간]이라니! 더구나 2권의 분량으로!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21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전염병이 돌아 모두가 죽고 홀로 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세계 문학 최초의 종말 문학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느낌이구나! 도대체 메리 셸리라는 작가는 어쩌다가 이런 독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존경심이다. 1797년생이라는데...알고 보면 지금도 살아 있는 거 아냐?? 아무튼 바야흐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공감을 가져다 줄 책으로 느껴진다.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마무리 되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내가 원래 이런 책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1797년생 작가가 쓴 21세기 종말 이야기 궁금하다.

 

 

 

전혀 상반된 느낌이 책이 또 하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입가 가득 웃음이 묻어나는 작가 호어스트 에버스의 책이 나왔다.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라니 아저씨, 넘 오글 거리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할 만도 하지만 사실 나도 이런 생각 해봤다 ㅎㅎㅎㅎ 역시 호어스트 아저씨와 난 통한다니까!!

 

책소개와 목차만 읽었는데 막 읽고 싶어진다. 나의 엔돌핀을 잔뜩 돌리면서 생각도 살짝 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날 사랑할 준비 되셨나용?^^

 

 

 

강신주 작가가 정말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책을 내려고 작정을 했는가 보다. 더이상 그의 책에 흥미가 생기지 않지만 그게 노장 사상이라면 좀 다르다. 오래 전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해 내가 좀더 연륜이 깊어진(?) 상태이니 이 책을 읽고 그때만 못하다면 더이상 강신주를 읽지 않으리....

근데 너무 고만고만한 주제로 쬐끔씩만 바꿔서 이쪽 저쪽에서 책을 내는 모습이 내 보기엔 썩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선입관을 갖고 읽으련다.

 

 

 

 이토록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라니! 그것도 일정한 독자층을 거느린 철학자 이택광이 이런 제목까지! 이런 점은 박수 쳐주고 싶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자뭇 이렇게 영향력이 있는 책을 써 줘야 하지 않는가 싶은 마음이 있다. 그건 의무라기 보다는 책임감에 가깝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비판적인 느낌과 그에 대한 앞으로 우리 현실에 물어야 할 질문들이 기대된다.

 저자의 기존 책들의 특성상 아주 센 책은 아닐 것이고 따라서 어떤 선동적인 느낌은 없지 싶다만 때로는 이런 글들이 나를 더 냉정하게 하기도 한다.

 

오늘의 기대신간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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