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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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비정상회담'이라는 토크쇼가 있다. 여기에 출연하는 패널들은 모두 외국인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표적인 이방인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는 '터키 유생'이니 '알서방'이니 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만 붙일 법한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편을 들어준다. 이쯤되면 이들이 이방인인가, 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방인인가? 엔딩 송으로 MC 전현무가 '정상인듯 정상아닌 정상같은 너~~♬'라고 우스개로 부르지만 그 노래 안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호기심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에게 이방인은 오랫동안 카뮈의 소설과 같은 말로 자리했고 더 단순하게는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사회가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을 때야 비로소 '이방인'은 외국인과 카뮈의 소설을 너머 사회의 한 현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이 바로 나임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이 책은 논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요즘 쏟아지는 대중적 사회학 서적과는 달리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낯선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들 거기에 저자의 수정되거나 반박하는 이론들이 이어지는 형식의 글은 길고 구체적이라 읽는 속도가 더딜 수가 있지만 단언하건대 일단 그 흐름에 익숙해지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져 뒤로 갈수록 쉬이 읽힌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이방인의 속성들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 그렇기는커녕 현대인들과 아주 밀접한 것들이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이방인을 이해하는 것은 곧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아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불안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 유동적인 삶 속에서 부단히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여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이방인이자 현대인의 모습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밑줄을 긋고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가며 이방인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흔적들은 어느 새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동경은 대체로 이방인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행했고 보았던 이방인 흉내내기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모두가 이방인인 현대 시대에 진정한 이방인은 사실상 없지만 우리에겐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허세어린 이방인 행세가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는 끊임없이 본래의 자아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며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 존재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비정상회담'을 보자면,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타국에서 온 이방인이고 세 명의 MC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가면 그 땅에서 그들은 순간 이방인이 된다. 그리고 외국인 한국인 따질 것 없이 모두 '정상아닌 정상인듯 정상같다'.  모두가 이방인인 동시에 이방인이 아니고 비정상인 동시에 정상이다. 매우 복잡하고 모호해 보이는 이 말이 내겐 전혀 복잡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을 읽은 후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인듯'한 말들이 모두 성립한다. 가장 명확한 것은 그들이 모두 현대인이라는 것인데 그들이 가지는 이방성은 타국의 땅에서 그저 단순히 자신의 물리적 고향에 대하여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방인이 없는 사회에서 진정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고 이방인이자 현대인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언제나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야한다는 점, 새길 말이다. 함부로 이방인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자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읽어볼 만한 구절을 첨부한다. 저자의 문체나 책의 성격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란 매 순간 '초월'하면서 동시에 '내재'하고,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 -p129

 

사회 구성원들이 희생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회도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인은 전통사회의 사람들처럼 사회에 대해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희생해야 할 경우라도 한껏 거리를 두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 희생이고, 기꺼이 마음을 내켜 하지 않는 희생이며, 매우 피상적이기에 속된 말로 무늬만 그럴듯한 희생일 뿐이다. 해서 구성원들이 보이는 그런 유의 희생 같지 않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코 전통사회와 같이 굳건할 수 없고, 부실하며 불안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실한 사회의 건축자는 기꺼이 희생하려 들지 않는 현대인들 자신이며, 또한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지닌 불안정의 최대 피해(희생)자 역시 현대인들이다. 마치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부실한 건축물에서 사는 거주자들이 늘 불안에 휩사여 안절부절못하듯 현대인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불안'이라는 또 다른 희생을 떠안은 자가 된다. p247

 

 

완전히 망각된 고향을 내 실존을 위해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은 고향을 잃은 자들의 책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결국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 하이데거가 말한 "이상한" 자가 되는 것, '실향성(낯섬)'을 담지한 자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고향을 부단히 찾고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본연의 나의 모습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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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 조선일보 Why 병원 이용 설명서
송태호 지음 / 신원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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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나만큼 골골 대면서도 건강 안 챙기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랜 당뇨로 매일 약을 챙겨 먹고 틈틈히 건강 보조 식품을 찬양하는 엄마와 남들이 이것이 좋다하면 이것을 사고 저것이 좋다하면 저것을 사서 먹는 남편을 둔 역반응으로 그런 쪽은 딱 질색이다만 근래에 사랑하는 아들에게 건강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르게 건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동네 의사'라는 말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옆 동네 의사 선생님을 아들의 주치의로 둔 터라 엄밀히 말하면 '동네 의사'라는 말이 나완 썩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나름 아이가 백일 때부터 찾는 병원인지라 그분이 아니면 썩 믿음이 안생긴다. 하다못해 대학병원 의사라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아들의 어릴 적 모습부터 어떤 식으로 감기가 오는지에 대해 세상 그 어느 의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특별히 급할 때 대학 병원도 다녀봤지만 썩 나와 우리 아이에겐 맞지 않았다. 의사도 그렇겠지만 환자도 여러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주치의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송태호 의사 선생님과 우리의 '옆 동네 의사 선생님'이 떠오르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깝고 믿음직스러운 분들이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개인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는 그저 가벼이 읽을 글은 아니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과 '올바른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의료 시스템'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핵에 대한 글을 읽을 때면 요즘 전세계의 공포가 된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점이 씁쓸해지고, 본인부담금이 없다고 혹은 심지어 보험사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었다고 해서 별로 아프지도 않은 아이를 매일 병원에 출석시키는 주변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들었던 의아함이 언젠가 우리가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할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의사도 인간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일에 있어서 그런 실수를 최소한으로 하려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실수를 부정하는 잘못된 태도보다 훨씬 신뢰가 되었다. 병원용 수첩을 쓰는 것을 권하는 팁은 실제로 활용해볼만하다고도 여겨졌다.

 

소소한 진료 일상에서부터 건강한 삶을 위한 의학적 정보와 전문가로서 다양한 내과 질병에 대한 부연설명이 모두 인상적이었다. 편집도 잘 되어 모처럼 건강 관련 책을 읽으며 잘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 불을 켜지 말고 마음을 열고 읽으면 더 좋은 책이며,  잘 만난 동네 의사 한 분이 명의 한 분 안 부럽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동네 의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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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3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 아고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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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를 두고 113년 후인 2127년의 사회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공상만화에서 길다란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그것을 그저 상상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금세 그것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에드워드 벨러미가 1887년의 시각으로 113년 후인 2000년을 예측한 것이 모두 맞았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비효율적인 여성의 복식이나 생활 방식을 비롯한 몇몇 부분은 예측이 정확해서 놀랐다. 하지만 진정 놀라야 할 부분은 그가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시작된 유토피아 사회를 구축하는 능력이 무척 세심하고 견고하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구축한 사회, 정치, 예술, 교육 등 전반적인 이상사회의 요소들을 확인할 때마다 작가의 역량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여느 소설가와 달리 에드워드 벨러미는 소설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을 밝힌다.  가르치는 느낌을 적게 주기 위해 소설이라는 양식을 빌렸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그렇다고 이 소설이 폄하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로서도 충분히 흥미롭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출간 당시 [톰 소여의 모험]이나 [벤허]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고, SF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이라고 하니 소설로서 인정받았다. 실제로 웨스턴이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것은 해리 포터가 1과 1/2 역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우리의 판타지는 모두 조금씩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유한 계급의 귀공자 웨스턴은 역시 유한 계급의 아가씨 이디스와 결혼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집이 제때에 완성되지 못해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이다. 집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건 1887년이나 2014년이나 같은 문제이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한 짜증은 불면으로 이어지고 평소처럼 최면술에 의지해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보니 2000년의 세상이고 이때의 세상은 그가 살았던 1887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의 말처럼 변화는 때때로(어쩌면 때때로 보다는 자주) 급작스럽게 일어나왔으며 113년의 시간동안 세상은 그 급변을 다시 한 번 맞이했고, 그 사회에서 구성원은 자본가든 노동자든, 남자든 여자든 불만을 갖지 않는다. 유토피아, 그 사회가 바로 소설 속의 2000년이다.

 

2000년 9월이면 국가적으로는 IMF 외환위기 중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연애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유토피아는 커녕 돈 나올 구멍은 없고 돈 들어갈 일만 많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그린 2000년은 너무나 완벽하여 읽으면서 무척 재밌었다. 113년 후의 세상을 이토록 이상적으로 그릴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려낸 사회가 이상적일수록 당시의 사회는 그만큼 더 부조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지금 누군가가 113년 후의 이상사회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이 소설보다 더 멋지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에드워드 벨러미가 그려낸 이상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입장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 말만 듣자면 굉장히 갑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소설에서 말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목조목 인간적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45세까지 의무 산업 복무 기간이 있으며, 직업의 선택은 성장기에 충분한 관찰과 고려를 통해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은 현재 취업 준비 대란을 겪는 젊은 세대들에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입대 전에 설렌다고 하니 요즘 젊은이들과 마음이 상반된다. 또한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급여 차별이 없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는 능력이 없는 사람도 그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가치관 때문이라는 설명에서는 무릎을 쳤다. '평등'과 '복지'에 대한 작가의 혜안에 놀랐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그 신용 금액을 어떻게 정해주나요? 무슨 권리로 한 개인이 자기 몫을 주장합니까? 재화를 분배하는 근거는요?
"인간성이죠. 자기 몫을 주장할 권리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몫을 가져간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죠."    (84쪽)

 

요즘 관심사병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에드워드 벨러미가 구축한 유토피아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탁상공론으로 만들어 놓은 매뉴얼보다 더 가치있다. 한 사람이 머리를 써도 이런 답을 마련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를 어디로 쓰는 것일까? 소설 속 2000년 미국에도 대통령은 존재했다. 다만 그 대통령은 국민들을 돕기 위한 그 목적 외에는 역할이 없으며 따라서 그 대통령은 의무 산업 복무를 모두 거쳐야 하고, 따로 관리되는 여성 산업 군대의 고위직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만 맡긴다고 한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휘가 위험하다는 발상이다.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당부분 공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 걸쳐 꼼꼼하게 구축한 에드워드 벨러미의 이상 사회 2000년은 1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지 않았지만 그가 조목조목 기술한 원칙들은 깊은 감명을 준다.

 

악취가 나는 군중 속에서 그저 자기 혼자만 향수를 뿌렸다고 해서 그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요? (204쪽)

 

아마 1887년의 유한계급과 2014년의 부유층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 밖에는 뒤돌아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적게 노동하고 많이 가지는 시스템의 부조리가 그때나 지금이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다 못해 화가 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쯤은 꿈꿔보게 된다. 흘린 땀방울이 정직하게 돌아오는 시대는 올 것인가? 세상의 수많은 잣대들을 없애고 '인간성' 만으로 서로가 대등한 관계가 올 것인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어느 시대에건 유한 계급에게 읽히길 바라게 된다.

 

그나저나, 웨스턴은 다시 1887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게 된다면 이상 사회를 맛 본 자로서 1887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유한 계급이기에 다시 원래대로 노동자들이야 불행하건 말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게 될까? 약혼녀 이디스와는 순조롭게 결혼하게 될까? 2000년에 만나 설레임을 갖게 된 이디스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무거운 내용과 주제와 더불어 소설적 재미가 더한 이 책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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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7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7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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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우연히 사게 된 [블랙 에코]를 통해 그 이후 마이클 코넬리를 읽고 있는데 모든 책을 읽을 생각은 아닌지라 서가에서 책을 고를 때 무척 고민을 많이 한다. [블랙 에코]와 [콘크리트 블론드]에서 해리보슈의 매력에 퐁당 빠졌고, [블러드 워크]에서 매케일렙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 그 둘이 만난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을 보는 순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제목이 길지? 이건 뭔 뜻일까? 밤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건가????? 알고보니 이 제목은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거리가 어두운 것은 밤보다 더한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라는 문장. 그 말을 쓴 챈들러도, 그것을 제목으로 둔 코넬리도 참....^^

 

해리 보슈는 데이비드 스토리 사건의 재판 중이고, 매케일렙은 제이 윈스턴의 부탁으로 에드워드 건의 사건 프로파일을 작성 중이다. 일전에 에드워드 건의 사건을 맡은 적이 있는 해리 보슈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프로파일 작성 중에 건의 사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슈라는 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름은 해리 보슈의 본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범인은 해리 보슈? 이 책 이후에도 해리 보슈 시리즈가 쭉쭉 나왔으니 해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함정에 빠진 것이고, 안타깝게도 그를 함정에 빠트린 결정적인 사람이 매케일렙이 된다. 이 두 사람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분명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말이다.

 

이 소설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고 코넬리를 읽는 사람이라면 지나쳐서는 안될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긴장감이 좀 덜 생긴 작품이다. 방해꾼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할까? 하지만 테리가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중에 히에로니무스 보슈라는 화가의 작

 

 

 

품과 연관을 짓는 과정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상의 화가인가 싶었는데 알아보니 실존화가였다. 그렇다면 마이클 코넬리는 진작부터 이런 작품을 구상하면서 해리보슈를 창조했다는 말이 되는데, 대단한 작가이다! 인물들간의 망이 모든 작품 이전에 코넬리의 머릿속에서 촘촘히 다 짜있었다는 생각이 들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친절하게도 소설 뒤에 부록으로 인물 관계도를 첨부했는데 그것이 바로 코넬리의 머릿속 같아 보였다.

 

범죄 소설을 읽으면서 문장을 기억하려고 귀퉁이를 접는 경우는 잘 없는데(긴박한 상황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긴장감이 좀 덜해서 그런지 귀퉁이를 두 군데나 접어두었다.

 

"모든 작용에는 똑같은 힘의 반작용이 작용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 이런 진부한 이야기들 많잖아요. 이게 진부한 이야기가 된 건 진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어둠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몫을 가져가게 돼 있어요. 어쩌면 보슈는 어둠 속에 너무 자주 들어갔던 건지도 모르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건지도." (260쪽)

 

물론 보슈에 대한 것은 오해이지만 그 앞의 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귀 기울이게 된다.

 

매케일렙은 아무 말 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시냅스들이 척추를 따라 도미노처럼 불이 켜지면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주차위반 딱지가 발견된 건 대단한 성과였다. 이걸로 증명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매케일렙이 방향을 제대로 잡았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살다보면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증거를 손에 쥐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418쪽)

 

오해가 풀리면서 느껴지는 옳은 방향. 그 촉수를 나도 갖고 싶어....

 

 

 

현재까지 해리보슈 시리즈 1, 3, 7권을 읽은 상태이다. 현재 13권까지 출간된 상태이니 그 중 또 한 권을 골라봐야 할 텐데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서가 앞에 있을 때의 느낌이 참 좋다. [시인]과 [시인의 계곡]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렇다면, 해리보슈 전에 [시인]을 먼저 읽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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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카페 창비에서 오픈 하우스를 단 하루(23일)만 한다고 하여 강화도에서 온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 번 들러보았다. 평소에 계간지 회원들을 대상으로는 큰 할인폭을 자랑하는 창비이지만 일반 독자가 된 최근에는 이런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는데 모처럼의 기회라 방문을 했다. 예상보다 책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하는 소비'를 할 수 있었다.

 

 

엄선된 결과로 구매한 책은 출간될 때 망설였다가 놓친 청소년문학 50선 기념 단편집 [파란 아이]이다. 오는 길에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다 읽었는데 역시 개인적으로는 김려령 작가의 '파란 아이'가 가장 좋았고 내가 이해하기엔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어려웠다만 청소년들은 무척 흥미로워할 것 같았다. 요즘 애들은 좋겠다. 이렇게 자기들을 위한 책들을 써주는 작가들이 많아서!

 

 

 

 

이 책 외에는 아들을 위해 [알들아, 자연사박물관 가자!]를 샀는데 어젯밤부터 한 챕터씩 읽어주고 있다. 공룡엄마가 알들을 데리고 다니는 일정을 쓴 책이라 엄마가 읽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시집으로는 나희덕의 [야생 사과]를 샀다. 오랜만에 나희덕 시인의 시집을 집어드는 데 아련한 추억이 밀려왔다. 나의 20대 초반은 나희덕과 은희경의 영향이 크다.

 

 

 

창비 아래의 [문향]에서 맛있고 정갈한 비빔밥을 먹고 '빨간 책방CAFE'에서 오늘은 좀 머물렀다. 아이스라떼의 맛이 며칠 전 마신 폴 바셋의 라떼 맛과 같아 맛있었다!!

 

좀 걸으며 카페 꼼마에서 책을 샀다. 아는 언니가 북매니저로 계셔서 무척 반가웠다는!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책방에서 책을 사려고 하다보면 평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책인데도 사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카페꼼마에서 그랬다. 복거일이라는 이름만 들어봤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의 소설인데 자꾸만 이 소설이 나를 불러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 가방을 열 때마다 다른 책들보다 이 책이 자꾸만 내 눈길을 끄는 까닭을 나는 아직은 모르겠다만 조만간 알게 되리라. 또 한 권은 어려울까 망설였는데 펼쳐보니 여백이 많아 반가운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이다. 두 책 모두 쓰담쓰담 하면서 왔다.

 

당고집에 가서 맛난 당고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자소담에서 국수도 먹고 이건 뭐 뱃속이 묵직한 느낌이 든다. 그 사이 후마니타스 책방에 갔는데 역시 소문대로 책 읽기 좋은 카페여서 둘다 반했다. 다음엔 종일권 사서 종일 있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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