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그리고 [시인의 계곡]

 

 

 

 

 

 

 

 

 

 

 

 

 

 

 

이토록 아름다운 제목에 저토록 살벌한 표지라니, 

범인에게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다니! 바로 그게 마이클 코넬리다.

 

[시인]은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에서 몇 번 봤던 기자 잭 매커보이가 수사를 주도하는 작품이다. 거기에 FBI 요원 레이첼 월링이 더해지고 그녀는 이후 [시인의 계곡]에서 계속해서 활약한다. 게다가 [시인의 계곡]은 해리보슈 시리즈에 속한다. 두 작품은 8년의 시간을 두고 사건이 진행된다. [시인]에서 행방을 감춘 범인과 8년 후 [시인의 계곡]에서 다시 등장한 범인. 이 두 작품을 연달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찰이나 FBI가 주축이 아닌 피해자의 쌍둥이 동생이자 살인사건 전담 기자인 잭 매커보이가 주인공인 [시인]이 <에드가, 앤서니, 마카비티, 셰이머스, 네로 울프, 베리 상 수상 작가! 『양들의 침묵』이후, 최고의 크라임 스릴러!!>라는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에 대해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인의 계곡]은 느슨한 경향이 있는데 대신 절정을 지난 부분에서 긴장감을 주기 위해 각 장마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 병렬식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던 것에서 벗어나 한 장에서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점이 신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인'을 끝장내야만 했다. 더구나 우리의 테리가 죽지 않았는가! ㅠㅠ

 

살인을 하기 전 피해자들에게 에드거 앨런 포의 시의 한 구절을 유서로 남기게 해서 '시인'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범인, 그 정체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그가 벌이는 수법과 그것을 풀어가는 잭 맥커보이의 두뇌회전이 궁금하다면 [시인]을 읽을지어다. [시인]을 읽었다면 [시인의 계곡]은 자연적으로 펼치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주 사소하지만 [시인의 계곡]에서 테리의 이름을 메컬랩으로 하는데 기존에 메케일랩으로 익숙한 독자로서는 좀 거슬린다. 같은 시리지인 만큼 역자의 줏대 보다는 통일성을 고려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올 한 해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전부는 아니고 나름대로는 시리즈를 역행하지 않는 순서대로 읽고자 노력했다. 그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으로 두 작품의 리뷰를 마친다.

 

읽은 순서       작 품   특징  리뷰
 1

 

 

 

해리보슈 1   http://blog.aladin.co.kr/tiel93/7055737
 2   

 해리보슈 3  http://blog.aladin.co.kr/tiel93/7072430
 3

 해리보슈 7

 <해리와 테리의 만남>

 http://blog.aladin.co.kr/tiel93/7117129
 4  

 미키 할러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읽는 게 더 좋음>

 

 http://blog.aladin.co.kr/tiel93/7146224
 5 , 6, 9    

  연달아 읽는 것을 추천함. '시인 3부작'으로 알려짐. 이중 최고는 [시인]!

[시인의 계곡]- 해리보슈 10

[허수아비]

http://blog.aladin.co.kr/tiel93/7213740

 7,8,10

(이후 읽을 예정)

해리보슈 11-13

 

 

 

   

  읽은 후 느낌 간략히!

[클로저] '컴백 보슈, 굿바이 어빙'에 목적이 있는 징검다리 작품

[에코 파크] 다시 나타난 어빙, 해리 보슈-레이철 월링의 재회. 

 11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주인공 캐시디 블랙이 첫 등장 
 12 

 해리보슈와 미키할러의 만남

 

 

 

 

 

그리고 집에 있는 단편집 중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 수록된 작품들도 읽을 계획이다. 되도록이면 올해 안에 모두 읽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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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렛 따위는 관심도 아니라는 듯 아이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옥상의 놀이터로 가자고 떼를 썼다.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매장을 둘러보다 결국은 아이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기로 했다. 경험상 아이들은 우선 순위가 어설프게나마 충족이 되면 더이상은 떼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식구들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어느 정도 어설픈 시간이 지나자 아이에게 이제 그만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좋다고 했고 나는 인심 쓰듯 미끄럼틀을 한 번 더 타고 오라고 했더니 아이는 룰루랄라 세상에 이런 좋은 엄마는 없다는 듯 경쾌하게 뛰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터질 듯한 울음 소리가 들렸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처음엔 엄마에게 화가 난 걸까 싶었는데 마구 돌아다니며 울어젖히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그 울음을 듣고 달려와주길 그 자리에 있던 부모들은 다 기대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아이는 미끄럼틀 기둥에 자리를 잡으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잘 나서지 않는데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소심한 모양이었다. 일단 달려가 아이를 달래주었다. 아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도 모른다고 하고, 엄마가 오늘 무슨 색 옷을 입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무척 당황하고 놀란 듯 했다. 괜찮을 거라고, 엄마 곧 오실 거니 울지 말라고 하고 남편에게는 직원을 좀 찾아보라고 요청을 했다. 아이가 좀 가라앉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이는 엄마와 단둘이 왔고 엄마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한 아저씨가 와서 아이를 함께 달래주었다. 아저씨는 자상하게 엄마는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하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그 방법이 있었지? 우리는 이렇게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직원을 찾으러 간 남편은 결국 찾지 못하고 왜 이 큰 놀이터에 직원이 하나도 없는지를 투덜거렸다.

 

아저씨가 아이의 손을 잡아 주셔서 나는 아이에게 아저씨 손 꼭 잡고 엄마 기다리고 있으라고 자리를 떴다. 아저씨랑 내가 둘다 아이를 잡고 있으면 좀 상황이 이상해보일 것 같아서 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보니 미아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파란색 후드 티셔츠? 아닌데 줄무늬 티셔츠인데? 얼마 쯤 지나자 그 방송 대신 다른 미아 방송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마 아이는 무사히 엄마를 찾은 듯 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엔 정말 많은 부모들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참을 울도록 나를 포함하여 아이들조차 그 아이를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고 훈육받는 편이다. 그런 억압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분명 마음 속으로는 저 아이를 달래주고 싶다고 하면서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쁜 경우에는 엉덩이는 가만히 있고 입으로 아이를 두고 간 엄마를 욕하기만 한다. 자신의 용기없음을 남에 대한 비방으로 덮으려는 얕은 술수이다. 나 역시 엉덩이를 들어 그 아이에게 달려가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이건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달래주는 일이니 그나마 움직였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더 큰일이 일어나는 경우들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새삼 남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전히 자신할 수가 없다. 우리는 남을 돕는 기꺼운 마음 대신 남을 도와서 보는 피해를 더 먼저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나쁜 교육으로 바른 행동을 실천하겠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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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해석의 공간 마루벌의 그림책 이론서
이성엽 지음 / 마루벌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다소 무거워보이는 제목에 살짝 긴장했었는데 표지에 실린 좋아하는 그림책들이 보여 마음이 편해졌다. 게다가 기존 이론서들에 비해 현저히 얇은 두께와 큼직한 글씨와 여유있는 편집이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표지뿐만 아니라 책에 인용된 그림책들의 정보를 참고문헌 안에 수록해주어 유용했다. 논문 형식의 책들은 인용을 철저히 밝혀주는 점이 좋다. 하지만 늘 어려운 게 문제였다.

 

적지 않은 그림책 이론서들을 읽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페리노들먼의 [그림책론]도 읽고, 아동문학 평론가들의 그림책 이론서들도 한때는 다 찾아읽을 정도였다. 외국의 전문도서의 경우에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어려웠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책들이 많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아동문학 평론가 혹은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 이론서들은 서평집으로서는 훌륭했지만 이론서로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껏 내게 최고의 그림책 이론 입문서는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그림책들도 있었지만 일본 작가들은 그림책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그런지 그들의 책에는 자국의 그림책에 대한 양이 많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면 아쉽달까? 그래서 더더욱 우리 나라 전문가의 이론서를 더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마루벌 출판사는 레오리오니의 그림책은 물론 좋은 그림책들을 많이 출판하는 아동도서출판사이지만 그림책 이론서를 출간하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읽기 시리즈>가 그것인데 이 책 [그림책, 해석의 공간]은 그 세번째에 해당하는 도서이다. 앞선 두 권의 책을 읽지 않아 이 책을 다른 책들과 비교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이 시리즈의 첫 책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이 책이 그림책의 존재 의미인 글텍스트와 그림텍스트의 역할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잘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그림책이론에 대한 입문서로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림책에 대하여 강의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Picture book으로서의 그림책에 대한 정의인데 그것을 좀더 심화하여 '아이코노텍스트 iconotext'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후 글텍스트의 다양한 양상과 그림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그림책 작품을 통해 설명해주어 논문형식의 책에서 경험하기 어렵게 이해가 잘 되는 책이다. 대중적 이론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 의미있다. 내용면에서 보자면 전혀 모르는 내용도 아니거니와 다 아는 내용도 아닌 지라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특히 그림텍스트에 대한 해석 방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여 이후에 그림책을 볼 때 더 신경을 써서 봐야겠다는 마음도 가지게 되고 더불어 인용된 그림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올라갔다. 책의 저자로서 인용된 도서에까지 신뢰감을 주는 점이 무척 인상깊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밑줄 쳐가며 집중하여 재밌게 읽는데 에필로그 없이 바로 참고 문헌으로 넘어가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7장에서 끝내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뒤에 각 요소들을 통합하여 잘된 그림책들을 소개해준다던가 하는 내용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애정어린 아쉬움이 있다. 이제부턴 그림책 입문서로 마쓰이 다다시의 책과 이 책을 함께 추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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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은 이제는 내용을 거의 잊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목과 표지 그리고 내용에 스무 살 나의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서가에서 찾아 읽고 책꽂이에 하나씩 꽂아두기 시작한 것이.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쓴 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지체 없이 감지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강렬한 이야기와 상상이 언제부턴가(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엔 <퀴즈쇼>부터)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단편집을 읽으며 머리가 아닌 가슴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바로, 지금 우리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3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8시, 9시 뉴스들을 떠올렸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사건적이었고, 그만큼 효율적이었고, 그만큼 개연성이 있었다. 이 말은 13편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고 흥미롭게 전개되어 누가 보아도 이건 소설이지만 그 주인공들이 모두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만나는 그 누군가가 「로봇」이었을 수도 있고, 나의 오래 전 연인이 나를 찾아와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러기를 바랄 수도 있었으며, 내 남편이 「조」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실제로 난 「아이스크림」의 이야기처럼 아들의 스틱분유에 들어있던 유충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의 단편이 장편이 주는 매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편에서는 조금은 엉뚱하거나 기괴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하게 되는 망상과 같은 것을 그는 이야기 속에 집어 넣어 기가 막히게 정곡을 찌른다. 가령, 「로봇」을 만나는 순간이나 자신이 「악어」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들 조차도 지금, 우리에겐 숨쉬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인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야 로봇3원칙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0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내다 만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는 휴대폰과 돈과 신용카드가 잔뜩 든 지갑까지 남겨둔 채, 심지어 입으려던 바지까지 침대 위에 걸쳐둔 채, 그는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살던 아파트 잔디밭에서 악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악어는 입이 벌린 채로 죽어 있었다.

p76

 

 

  뉴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의 이야기는 무척 사건적이고 그래서 흥미진진하고 또한 대중적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거울에 대한 명상」이 영화화되었고, <검은 꽃>이 영화화될 것이라는 점을 굳이 꼬집지 않더라고 그의 이야기는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여지없이 충족시켜준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단편집에서 굳이 SF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이야기는 여럿 있었다. 「조」나 「퀴즈쇼」가 주는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이 그러하다.

   ‘조’라는 인물은 우리가 영화나 TV에서 흔히 본 그저 그런 형사의 캐릭터이다. 그런 면에서는 백화점의 점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요소들 간의 차이점은 관찰자에게 있다. 우리는 ‘조’는 눈여겨보지만 점원들을 눈여겨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조」의 이야기가 그저 그런 경찰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여김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며 여기에 작가는 ‘조’라는 인물이 투입하여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서스펜스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퀴즈쇼」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는 TV를 통해 혹은 그 밖의 루트로 일주일에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을 보고 있다. 우리는 쇼를 보면서 주어진 상금에 대하여 그리고 우승자의 기분에 대하여 아주 잠깐 흥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채널을 돌리면서 마주하게 되는 드라마의 이야기 속에 더 오래 빠져든다. 우승자의 사생활 따위에는 큰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후엔 수많은 퀴즈쇼 우승자들이 ‘은이’ 혹은 ‘자말’(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으로 보일 것이다.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이번 단편집은 아주 두꺼운 분량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편이라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로는 50페이지가 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2페이지짜리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김소진의 짧은 소설과 분량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김소진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유머와 슬픔을 준다면, 김영하의 짧은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에서 현실감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내 든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추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청탁이 들어오지 않은 채 쓴 단편들도 많이 실렸다고 하는데 그러하기에 더 자유로운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하지만 난 이번에 새롭게 찍어낸 일괄적인 모든 표지들이 작가의 개성과 자유로움과 거리가 멀어 불편했다. 가장 기계적인 느낌을 주어 미래 독자들의 호감을 목적이어서 아직은 미래인이 되지 못한 내게만 유독 그리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이번 단편집이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품은 개인적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문득 몇 해 전 김영하 작가 홈피에 글을 남기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 때의 홈피는 지금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길을 잃지도 않았다. 그 때 난 늘 끝인사로 ‘사랑하는 하루’가 되라고 남기고는 했는데 그는 아마 이미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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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 휴고 1 - 학교에는 왜 가야할까? 꼬마 철학자 휴고 1
오스카 브르니피에 글, 자끄 데프레 그림 / 이밥차(그리고책)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TV를 즐겨보는 집이 아닌지라 각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 뭘 몇 시에 하는지 잘 모른다. 특히 어린이 프로그램 편성 시간은 <보니하니쇼> 딱 하나만 안다. 그것도 작년 기준으로...작년에 그 프로그램을 볼 때 아이는 진짜 범인을 찾는 코너를 가장 좋아했고 나는 바로 <꼬마 철학자 휴고>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아♬ 계속되는 질문이 좋아 ♬'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이후 아이가 <보니하니쇼>에도 관심을 잃고나서는 자연스레 휴고를 만날 일도 없었다. 가끔 보고 싶었지만 TV 시간이라는 게 나에게 맞춰주는 게 아니니까 아마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책으로 나온 게 아닐까? 어릴 적에 뿡뿡이와 뽀로로 등 애니메이션 책들을 사주었고 그 책들을 아이가 굉장히 좋아했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그런 경험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애니메이션을 거의 보지 않는 덕에 그런 류의 책은 사지 않게 되었다. 작년에 휴고를 몇 번 만나고 근 일 년만에 만나는 휴고를 책으로 만난다는 느낌은 어떨까?

 

 

 

일곱 살이 맞는 10월, '학교'라는 공간을 2년째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유치원생인지라 멀게 만 느껴졌었는데 문득 문득 긴장이 되긴 하는 모양이다. 마침 휴고 1권의 주제는 일곱 살 아들에게 딱 좋은 질문을 했다.

학교에는 왜 가야 할까?

 

아이에게 물어보니 '배우러 가는 거지!'라는 당연한 답이 나왔다. 그리고 휴고도 말해준다.

 

그래, 맞아. 학교에서는 뭔가를 배워.

 

의기양양해진 아들, 그러나 그 이후에 사정이 달라진다.  휴고가

그런데 교실에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라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도 샘과 같이 자전거를 아빠에게 배웠고, 놀이는 친구들에게, 공룡과 우주 지식은 책으로부터 배운 경험이 있는지라 휴고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휴고는 이야기 한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고, 많은 친구들과 놀 수 있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도 배우고, 나중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여러 이유들을.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는 아까 전에 내놓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답 '배우러 가는 거지!'를 넘어서 '친구들하고 같이 체험을 할 수 있다'던가 '급식 먹을 때 예절을 배운다'는 등의 답을 더 쏟아낸다. 휴고가 질문을 던진 보람이 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바로 그 질문 말이다. 휴고 고마워! 다음엔 어떤 질문을 던질 거니? 그나저나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널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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